[최주희] 자존감을 높이기 위하여

자존감은 어린아이에서 시작하여 어른에 이르기까지 늘 따라다니는 신앙의 중요한 이슈이다. 낮은 자존감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처는 가족 및 여러 관계에서 일어난 아픔이 원인이 된다. 또한 상처의 치료방법으로 강조되는 내적치유는 주로 상담과 기도에 의존한다. 모두 의미 있는 접근이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의 원인에는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자존감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상담과 기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중요한 요소들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자존감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상처와 내적치유만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존감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상처와 내적치유를 각각 한손에 부여잡은 채 여전히 자신의 문제 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진보, 인격의 성숙, 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섬김을 이룰 내적 에너지와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자존감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도덕성,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사랑의 삶이다. 이 세 가지는 자아개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상처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위의 세 가지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것들이 된다.

첫째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배를 통해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시고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강조하고 “아멘”이라 화답한다 할지라도,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거나 포르노 컴퓨터에 중독이 되어 있고 혹은 돈에 있어서 투명하지 않다면 그 사람의 자존감은 결코 높아질 수 없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과 가치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머리에 겉돌 뿐, 그런 행동을 그치기 전에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이 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불륜을 가진 우울증 환자들을 위해 순결요법을 사용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환자로 하여금 불륜의 관계를 청산하게 하고 아내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게 했을 때 비로소 그 환자가 마음에 깊은 평안을 느끼고 우울증으로부터 회복된다는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았고 혹은 다른 사람들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과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자신을 결코 사랑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남의 페이퍼를 베껴 A+를 받았을 때 진정으로 자신이 실력자임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유혹을 이기거나 남들 다 하는 편법과 불법이라 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합법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는, 누가 알던 알지 못하던 상관없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떳떳함과 당당함으로 인해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칭찬을 느낄 때에는 말 할 수 없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솟아날 것이다.

둘째는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매일 일상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잘 이해하고 잘 해결하는 것은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된다. 만약 여러 상황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갈등들을 잘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한다면, 자기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필요한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학생으로서 혹은 직장인으로서 혹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거기에 합당한 성실과 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 실수와 실패하기 쉽다.

또한 문제해결능력에는 지혜가 필요한데, 지혜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중요한 과업으로 규정하고 있다.(롬12:2) 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씀 안에 너무나 분명한 교훈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무엇을 옳다고 하시는지 또 무엇을 나쁘다고 말씀 하시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지키는 삶이 중요하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시111:10)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사랑의 삶이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며 섬기고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반대로 사람들을 미워하고 해치며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조종한다면, 우리 마음은 불만과 비난 그리고 분노로 가득할 것이다. 불만과 비난으로 가득한 나 자신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미워하는 사람이 많고 못 마땅한 사람이 많을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비록 지난 과거에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넘어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바로 그분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존중하여 그분의 섭리대로 산다면, 결국 우리는 자신을 존중하게 되고 자존감은 높아지게 되어 있다.

[이영길] 신앙생활에서의 미끄러짐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죄가 관영하는 이 세상에서 미끄러짐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며, 거룩한 신앙인으로 책망할것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숨쉬기를 할때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어 밷을 수 있듯, 주의 말씀을 그렇게 자연스레 순종해 가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야무진 공상일까?

 위의 질문 뒤에는 나의 미끄러짐으로 인한 아픔이 숨어 있다. 내게 있어 미끄러 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크게 벗어났던 작게 벗어 났던지간에 내게 있어서는 미끄러짐이다. 특히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이 미끄러 넘어졌을땐 더욱 더 처절하게 느껴져서 나의 한심한 신앙생활로 인해 눈물을 그렁이며 아파하기도 한다. 더우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보는 데서 미끄러졌을 경우 나는 더욱 좌절한다. “그렇게 살아 가면서 어떻게 캠퍼스 사역한다고 하고, 교회에서 설교 하고, 학생들 상담하지?” 라고 묻는것 같다. 아 내게 이같은 미끄러짐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미끄러짐에는 나의 부주의가 많다. 미끄러운곳을 걸어갈때는 긴장도 해야 하는데 그냥 방심하고 진행할때 미끄러진다. 내 발걸을음 잘 점검하지 못하고, 주변의 환경을 기도를 통해, 또 말씀을 통해 분별해 가면서 지혜롭게 가면 미끄러짐을 극소화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영적 부주의는 미끄러짐을 경험하게 한다. 늘 익숙해진 대학 캠퍼스가 내 생활의 주요 무대인 나에게는 영적인 긴장감을 갖기 보다는 늘 가던곳이고 하던 것이니 방심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늘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편안한 가족이기에 말에서나 행동에서 실수할때가 있다. 아내에게 무례한다던가, 아이들의 말을 온전히 귀담아 들으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방심하고 있을때가 있다. 

일상생활의 부주의가 미끄러짐의 일차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장애물은 나의 교만이다. 나의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함 보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할때 흔히 나타난다. 나의 경우 교만은 나 혼자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나타난다. 나의 선택과 나의 길이 더 안전해 보이고 더 지혜로와 보이는 것이다. 그같은 교만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향해 가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이같은 생각이 내게 들어온 순간 나는 이미 미끄러진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교만은 하나님 보다 나를 더 중요시 하게 된다. 일단 그같은 상황에 놓이면 세상것이 주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되고 하나님 나라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 만들고 싶은 그런 세계 및 상황을 바라게 된다. 이쯤되면 또한 내 왕국을 만들어 보려는 동기로 먹고 마시며, 뛰고, 쉬고, 일하게 된다. 나는 이같은 상황을 미끄러져 내동냉이쳐 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빼먹지 말아야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미끄러짐은 나의 회개의 문제와 아주 깊숙히 맞물려 있다. 입으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기도하기만 하면 그냥 자동적으로 용서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는다. 신앙생활 초기 특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적이 있었다. 이같은 회개는 변화를 동반하지 않기에 똑같은 자리에서 다시 미끄러지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게 된다. 그러나 때론 입술의 고백을 떠나 마음의 고백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아픈 마음으로 주께 용서를 부르짖는다. 입술의 고백보다 좀더 발전된 방법 같아 보이지만 이같은 방법은 도덕적 회개에만 머물 수 있어 또 다시 미끄러지게 한다. 참다운 회개는 가던길에서 거꾸로 되 돌아서야 된다는 결단과, 실제 삶의 현장에서 돌아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던길을 돌어서긴 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며 그 눈을 뒤로 돌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응시한채 걸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고 또 미끄러짐의 가능성을 기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이다.

유학생들과 삶을 나누며 대화하다보면 미끄러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코스타나 교회의 수련회등 여러 집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이제부터는 바른 신앙생활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헌신하려 하였지만 삶에 현장에 되돌아 왔을때 바로 미끄러져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좌절해하며 힘을 잃는다. 신앙생활에서 미끄러진채 거기서 그냥 멈출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복음의 힘은 넘어 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지고 부딛히고 깨지며 살아갈때 우리를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삶이다.나의 아이들과 아내는 내가 미끄러지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분명히 아는 것 하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아빠를 세워주실 것이다 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넘어 지는 나를 믿기 보다 나를 늘 세워 주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의 세 아이들은 나의 거룩한 삶 혹은 거룩을 향한 삶을 보고도 살지만, 나같이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사용하시고 세워 가시고 만져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며 변화해 간다.

과연 영적 미끄러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이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많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과 죄성으로 미끄러지고 깨어지는 많은 체험들이 있을 것이다그러기에 그것과 싸우는 대처방법이 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그러나 나는 새벽이슬과 같은 믿음의 청년들에게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는 반드시 나누고 싶다.

첫채로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유학생활의 목표가 학위취득에 있는것이 아니라 거룩함 추구를 그 우선순위로 놓아야 한다. 이제 구원을 받았기에 천국은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에 신앙의 선한 경주를 멈추고 땅에 주저 않아 쉬고 있어서는 안된다. 공부하며 순간 순간 십자가를 바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주님을 나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면전에서의 삶, 즉 코람데오의 삶을 살도록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늘 동행한 에녹처럼, 오늘날 유학생들은 성경에 한줄밖에 나오지 않은 평범한 신앙선배인 에녹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을 소망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학업의 우수성보다 더 귀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나의 죄성을 심각히 자각하는 것이다. 구원은 받았지만 내 안에 남아있는 옛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자 하는 죄성이 있음을 의식해야한다.  이것을 온전히 자각하게 되지 않으면 죄의 속임에 쉽게 미끄러져 버린다. 그러나 그같은 죄성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그냥 미끄러져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임을 순간순간, 삶의 모든 상황속에서 인정하는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발전 시킨다. 따라서 캠퍼스에서든, 캠퍼스 밖에서이든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깊숙히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를 젖은 눈으로 바라볼때 우리는 나의 죄악들과 세상에 관영하고 있는 죄악들에 대해 치를 떨며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만 멈추지 말고,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박으시면서 까지 우리와 화목을 원하셨던, 그리고 그 화목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오르셨던 그리스도를 바라 보며 큰 사랑에 감격해야 한다. 미끄러져 넘어져 있을때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것도 그 사랑때문이다. 그러나 죄에 대해 소름끼치는 미움이 없이 일어 선다면 또 미끄러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이 두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밖에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고 매일 매일 말씀묵상을 통해, 예배를 통해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미끄러짐 없는 똑 바른 걸음을 걷기 위해 우리는 순간 순간,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글을 마치며 우리들처럼 미끄러짐의 아픔을 경험한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싶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 1-2)

코스타 follow-up 성경 공부를 마치며

2009 코스타 follow-up 으로 진행된 하시용 목사님의 귀납적 성경 연구에 참여하신 방혜지 자매님의 간증문입니다.

귀납적 성경연구 온라인
follow-up을 한 주 남기고 있다.

이번 주일까지 마지막 
숙제를 하면 끝. 지금이 최고로 바쁠 때여서
끝나면 홀가분 하고 여유가 생기겠지 하면서도, 매주
열정에 넘치고 우리를 다독이고 격려하기에 여념이
없으신 목사님 메일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많이 섭섭할
것 같다. 
 

이번에 처음 간 
코스타. 처음인데도 조장으로 섬기면 더 큰 은혜를 받는다는
말에 머뭇거림 없이 조장으로 신청했다. 우리 조는
서로가 마음이 잘 맞고, 모두가 다 배려심이 깊어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 많이 친해졌다. 우리 조가 코스타
기간 중 가장 포커스를 많이 둔 것은, 강사님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는 것과 오후에 진행되는 선택 강의 중 연애
관련 강의는 최소한 하나씩은 들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결혼에 관심이 많은 우리 형제, 자매님들은 
연애 강의를 어찌나 재밌게 듣고 왔는지,
식사 때 줄을 서면서, 식사하면서, 강의 때 들은 내용을
다 그대로 재현해주었다. 어찌 들으면 유치할 수 있는
남녀 관련 유머에 우리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목요일에
강의를 듣기로 되어 있는 나는 그때를 기다렸다.   
 

화요일 점심에 우리는 
식당 앞에서 우연찮게 하시용 목사님을 발견하고는,
목요일 자유 시간으로 초대 약속을 잡았다. 목요일에
뵌 목사님은 따뜻하고, 인자하고, 부담이 없어 보이시는 첫
인상이셨고, 이번 코스타 주제 특강에 대해서, 그리고
목사님께서 강의하시는 귀납적 성경공부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주셨다. 성경과 청년들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많으심을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과의 만남 시간이 
끝나가면서, 목사님은 수업 준비하러 가야 
된다고 하셨고, 나는 그 때, 그 중요하고도 중요한,
코스타 오기 전부터 많은 사람으로부터 듣고 제일 우선
순위에 두고 신청했던, 00 목사님의 연애특강 수업을
포기하고, 이름 조차도 절대 확 구미가 당기지 않는
귀납적 성경연구 강의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와 같은 마음이 들은
우리 조 형제님과 비가 많이 내리는 교정을 지나 수업이
있는 빌리그레함 빌딩으로 향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떻게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목사님의
강의를 듣는데, 이전엔 전혀 모르고, 알 수도 없었던
귀한 비밀을 발견한 듯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마음이
꽉 찼다. 코스타 이후 3개월 과정으로 온라인으로 강의해주시고,
과제도 첨삭해주신다는 말을 듣고는, 실전으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여기서 그 기대되고
흥분되는 마음을 설명하기는 힘든 것 같다. 수업 내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감탄과 놀라움이 계속 되었다.
아마도 내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갈망이, 내가 모르는 갈급함이 있었는데, 성령님이
그것을 알고 계시기에, 이 곳으로 나를 이끄신 것 같다.
 
 

코스타 끝나고, 귀납적 성경연구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목사님의 반가운 첫 번째 메일이
왔다.

무언가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시작단계에 있다는 사실에, 백미터
달리기 하기 전의 그 떨리고 설레임 같은 마음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따라가고 과제 내고 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매주 열정과 열심을 다해서 보내주시는
강의 내용들과 끝까지 열심히 하자고 다독이는 격려와
칭찬 메일, 그리고 간사님들의 과제에 달아주시는 칭찬이
가득 섞인 코멘트들을 생각하면, 내가 일주일에 한번
내는 과제는, 우리를 하나님 말씀연구로 어떻게든 잘
이끄시려는 목사님과 간사님들의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귀납적 성경연구는 
크게 말씀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3단계로 나뉘는데, 이 단계를 더 자세히
세분화해서 매주 배우게 되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과제가 주어진다.

목사님이 정리하신 내용을
프린트해서 회사 오가는 지하철에서 읽고, 집에 일찍
오는 날이나 주말에 숙제를 해서 냈다. 10월은 실전
단계로, 데살로니가 전서를 본문 말씀으로 하여, 분석,
해석, 적용을 한다. 숙제에 보통 3시간이 소요되게 하라고
하셨는데, 2단계는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그래도 전
후 문맥 나누고, 반복된 단어, 문법적 사용, 본문 읽고
궁금한 질문들, 그 질문들 답을 찾는 과정들을 거치면,
예전에 읽고 들었던 성경구절 안에 또 다른 숨겨진
것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귀납적 성경연구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적용에 있었다.
이성적인 접근으로 말씀을 쪼개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해석할 때까지는 나에게 어떻게 
개인적으로 적용이 될 것인가가 바로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을 다 마치고,
조용히 내 마음 속에 있는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깊숙한 것까지,
내가 몰랐던 죄들, 하나님께 감사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교회에서
리더를 하면서,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넘쳐났던
처음과는 달리, 매일매일 조원들을 놓고 기도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이전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왔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함의 삶을 살지 못한 내 모습을 다시
보고, 하나님 앞에 더욱더 거룩함으로 나아가겠노라는
결단을 하게 하였다. 묵상 부분에 들어오면, 나도 예상치
모르게 보여주시는 많은 것에 매주 많이 울게 된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부어서 3중이 될 쌍꺼풀 걱정과 함께,
목사님과 간사님께 숙제 메일을 보내곤 한다.  
 

요즘은 뉴욕에 와서
job을 잡고 일을 한 이래로, 최고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8시가 다 되어서 회사에서
나오고, 일이 많아 토요일 오후는 회사에서 보낸다.
그래도 감사하고 일하는 것이 즐겁다. 부족한 나를
이곳에 보내주셔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기쁘게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일을 즐겨 하고 많이 좋아하는
내가 이전 회사에서 힘들 때, 하나님을 새벽에 만나지
않고서는 회사로 출근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가 싫어서,
매일 매일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교회로 향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욱 친밀한 관계로 나를 이끄시고,
거기에 기쁨이 있게 해주시고, 하루를 지탱해 나갈 힘을
주셨다. 그리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셨고,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께 쓰임만 받는다면 가장
기쁘겠노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 곳,
현재 직장을 주셨다.   
 

현재에는 또 다른 기도제목이
있다. 주님이 주신 것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가 세상에 포커스가 
너무 맞춰있지 않도록, 세상 기준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혼자 힘들어하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구하지 않도록,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새벽기도가 그렇고, 큐티가 그렇고,
교회의 찬양팀, 그리고 지금의 귀납적 성경연구가 그렇다.

예전 같으면 몇 개는
내려놓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없으면
내가 무너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지
방향성을 읽을 것 같아서다.
 

“때로는 지쳐서 비틀거리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 기도, 입술만 달짝 거린다고 자책하거나
비난하는 바로 그 간구가 사실은 연약하고, 지치고,
내면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부닥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만 충직한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드리는
기도” 라는 큐티의 묵상 에세이로 하나님은 또 나를
다독이신다. 예전보다 더 하나님을 사모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마음의 무거움과 죄송한
마음에, 지금의 모습 또한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주
아버지의 말씀. 
 

하나님의 이끄심은 
놀랍다. 코스타 기간, 누가, 나조차도, 연애 강의를
달갑게 포기하고 귀납적 성경연구를 들을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이렇게 온라인 수업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했겠는가.
앞으로 여기서 배운 성경 연구가 어떻게 나의 삶을
더 말씀으로 풍성하게 할까 그것도 기대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끄심이 내 삶에, 내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나를 이끌 것임을 알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