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이코스타 2001년 8월호

내가 본 한국 교회, 내가 본 코스타


To generalize is to be an idiot. – William Blake


1.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 신병 교육대와 전투지


어떤 분께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정신에 반하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을때, 그것이 윤리의 문제이든, 문화의 문제이든, 가치의 문제이든, 그 문제에 대해 기독교적인 목소리를 낼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는(cf. 김연종 ‘흔들리는 한국 교회’). 나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반기독교적 흐름을 상대할 기독교적 파워가 없다는 게임의 논리에서도 그렇지만 ‘아군’이라고 분류하는 한국 교회의 정체성 자체에 대해서 의문이 가기 때문이었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잘 모른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뚜렷한 관측적 사실은 한국 교회의 성장 또는 그 규모와 한국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 사이에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안점식, ‘한국 교회와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 이러한 현상은 교회 성장주의, 유교적 권위주의, 기복주의(박성호, ‘한국 교회 그렇다면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등과 감성적, 개인적 성향에 맞춘 교회의 목회 전략, 사회에 대한 교회의 침묵(권오승, ‘세상으로 복음의 영광을 주목하도록’) 등, 쉽게 관측되는 요인들에 의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요인들 위에, 혹은 이런 요인들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요인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며, 위에서 지적된 요인들을 극복하는 교회 개혁으로만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현장의 기독교인’의 부재이다. 반문화(counter-culture)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경향이 많은 한국 교회 안에 짙게 깔려 있음으로 인해 교회의 안과 밖을 철저히 나누고 교회의 벽을 높이 쌓는 이원론적 경향이 팽배해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현장의 기독교인’들을 사라지게 만든 근원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cf. 정진호, ‘부흥을 가로막는 장벽들, 이원론의 문제를 진단한다-(2)’). 1920년대 미국에서 세속 문화에 대한 대항으로 일어났던 근본주의운동의 경향이 복음주의권 안에도 깊이 들어와 미국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은 90년대의 미국 복음주의권에서도 넓게 논의되었던 이슈 중 하나였다 (Mark Noll, ‘The Scandal of the Evengelical Mind’).


나는 ‘신병 교육대와 전투지’의 비유가 ‘왜 현장에 그리스도인이 없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강제 징집이 아닌 사랑과 섬김으로써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돕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들의 삶에서 치열하게 시작될 영적 (지적·감성적·의지적)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말씀 안에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교회는 그들을 ‘신병 훈련’으로 돕는다.


이제 신병 교육대에서 기초 훈련을 마친 그리스도의 전사들은 가끔씩 (한 주에 한 번이든 세 번이든) 후방으로 돌아와 쉼을 얻기도 하고 사기의 재충전을 받기도 하지만, (시간적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들은 전방, 전투지에서 그들의 대부분의 삶을 보내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기본적인 신병 훈련 외에 실전에서 사용될 전투 훈련을 받은 적이 없이 홀로 전투지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부정과 미움, 하나님의 질서를 반하는 어그러짐으로 물들어 있는 직장, 인간 관계, 사회 구조, 문화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장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공격은 그들의 삶이, 우리의 일이 예배가 되지 못하게 한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유지해 가는 것만해도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들이 배치될 전선의 부대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보다 먼저 전선에 들어와 실전을 통해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는 각 분야의 그리스도인 전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들에게 전선의 상황을 알려 주고 공격 목표를 주지해 주며 전술을 가르치고 함께 작전을 펼치는 소대장, 병장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제한된 판단으로는 현장에 대한 부르심에 뜨겁게 헌신한 소수의 정예들은 고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사들은 혼자서 살아남는 일에 급급하여 숨어 있으며 그나마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전사들은 도로 신병 교육대로 돌아가 버렸다. 세상 일에는 흥미를 잃은 반면에(김연종 ‘예수 이름으로 가진 병’) 신병을 모으고 교육하는 일이 그래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채워 줄 수 있으니까. 전선의 병력이 정예 부대여야 하고 다수여야 하는데, 내 눈에는 몸집 큰 신병 교육대만 보인다고 하면 과언일까? 신교대는 커진 몸집을 굴리느라 더 많은 교관을 필요로 하고 그러다 보면 전선으로 나오는 전사들은 당연히 적어진다.


나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커지는 만큼 전선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병 교육대만 커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교대인가? 교회가 커지는데 사회가 그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 사회 속의 그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가를 되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만일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이고 각양의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현장에서 주님의 가르침 대로 하나님의 질서 대로 살고 있는데도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아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앞서 가는 우를 범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겠지만, 현재의 내 좁은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만은 않는다.


나는 또한 현장의 그리스도인이 없다는 것으로 교회의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목회 전문가로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도들이 자랄 수 있도록 도우며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통해 끊임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복음으로 재충전 시켜주는 일이며 이것은 타락된 창조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투는 실전 경험을 통해 전선에서 배우는 것이기에 신교대에서 해 줄 수 있는 훈련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현장의 문제들이 교회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투지의 그리스도인들의 전투 경험이 신병교육 훈련의 내용에 보다 많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문제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다루고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캠퍼스 선교 단체에서 학부 시절 뜨겁게 헌신하던 리더들이 졸업 이후에는 대형 교회의 대예배 좌석에 숨어 버리는 일도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한다. 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영혼의 성장을 돕던 리더십이 부정과 악이 팽배한 직장에서 통전적인(wholistic)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교회는 전사들을 소총으로 무장시켜 개인적으로 전선에 내보내는 무책임함을 넘어서 이들이 현장의 그리스도인들과 연결되도록 구조적으로 도우며 전선의 전력 증가를 위해 신교대에 투자하는 이상의 노력과 자금을 현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플과 교목실을 두는 정도로 구색을 맞추는, 이름 뿐인 기독교 대학이 아니라 학생들이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돕는 커리큘럼을 갖춘 진정한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일, 생명의료 윤리, 개별 대중문화 등, 사회와 문화의 문제들을 사안 별로 연구하고 결과물들을 낳아 교회 교육에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연구 단체나 프로젝트 등에 지원하는 일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지 않더라도,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한 사역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 봉사의 순번제 같은 제도를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상황에 따라 헌신된 성도들 중에서 20~50%는 2-3년을 주기로 주일 학교나 성가대등 교회 봉사를 쉬게 하고, 대신 직업과 현장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다. 교회 ‘운영’에 지장이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겠지만 이들이 2-3년 후에 다시 교회 섬김으로 돌아올 때는 교회 자체가 새로운 공급을 맛 볼 것이며 또한 끊임없이 현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보냄으로써 전선은 점진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수요 예배 가지 않는 대신에, 주일 학교 봉사하지 않는 대신에 같은 시간과 노력으로 직장에서의 삶과 신앙이 부딪히는 문제, 청소년을 어떻게 기독교적으로 양육할 것인가의 문제에 매달려 기도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나누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회 전문 목회자가 현장의 전문가들과 함께 팀사역으로 목회를 하는 교회들에 관한 소식을 듣는 일은 매우 고무적이다. 예배당 중심의 신앙 생활(?)이 믿음의 잣대가 되는 교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고는 세상은 그리스도 없음의 축복(?)과 축제를 계속 만끽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특별한 한계 상황이 아닌 이상, 신교대가 신병 교육을 제쳐두고 전투지에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은 전투 부대가 세워지는 일이다.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해야 한다. 물론 현장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속단하건대)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많은 경우, 또 다시 신병 교육대의 역할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배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간과한다는 오해를 받더라도 전투지에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우리가 부끄러워 하지 않는 복으므이 능력이 각 현장에서 면면히 드러나도록 세상속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져야 한다. 각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이 내게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각 현장의 상황에 맞게 연합하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는 원론 외에는. 그리고 나 자신도 나의 현장의 문제에서 답을 찾는 묵묵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코스타를 이런 시각으로 본다. 지역 교회가 할 수 없는 일, 신병 교육대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을 키우는 일, 이것을 코스타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통하는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은 ‘제자를 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데까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다시 이루는 데까지, 그의 나라가 타락된 온 창조계에서 회복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정진호, ‘두 집 내기’).


2. 내가 보는 코스타 (미주 코스타)


최근의 통계를 볼 때, 코스타의 참석자 중 매년 70% 정도가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매년 새로운 사람들이 코스타를 접하고 간다는 면에서 코스타를 매우 효과적인 사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반면에 한 번 온 사람들 중 70%가 다시 코스타에 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되는 셈이다. 이 통계 자료가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평가 자료나 의견(feedback)들을 참조하여 이것을 해석해 보면 코스타는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 혹은 ‘매 년 똑 같은 수양회’ 라는 얘기로도 볼 수 있다.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라는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한 결론을 이 자체만으로는 내릴 수 없다. 당연히 코스타 수양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고 그에 준하여 이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결단케 하는 것이라면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라는 것이 부정적 평가는 아니다. 그리스도를 두 번 영접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화된 유학생들에게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확립하게 하는 것이라면 약 4박5일의 수양회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이 얼마나 확립될 수 있는가를 평가해 보아야 한다. 코스타의 목표가 유학생들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 연구와 신앙 생활을 격려할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인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도록 한다는 것이라면 일주일의 수양회를 통해서 이 목표의 성취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평가해야만 한다. 사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모두는 코스타의 사명이자 핵심 정신(core value)이다 (미주코스타, ‘코스타란?’).


독자들 스스로 평가를 내리겠지만, 복음화의 목표를 제외하고는 한 번의 수양회를 통해서 나머지 목표들을 성취한다는 것은 턱도 없다. 일주일 내내 ‘여러분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라고 외쳐대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성보다는 지성, 설교보다는 강의에 촛점을 두고 교육을 위주로 하는 수양회로 완전 탈바꿈한다고 하더라도 한 번의 수양회로는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이다. 나는 코스타가 복음전도 집회만으로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을 말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복음 전도의 우선성이라는 복음주의의 기본 입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코스타가 복음전도 집회만을 하는 수양회라면 나는 한 번 이상 가지는 않겠다. 내가 복음을 모르는 영혼들을 섬기겠다는 결정을 하여 섬기는 이로 가지 않는 이상. 나는 수양회에 2번 이상 참석하는 30%의 사람들중에는 이렇게 섬김의 마음으로 와서 헌신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섬김을 통해서 배우는 제자도는 매우 귀중한 배움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 번 이상 오지 않는 수양회’가 된 것은 한국 교회의 신병 교육대적인 성격이 최근의 코스타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복음 전도하는 것 이외에는 별 내용이 없는, 교회에서도 들을 수 있는 복음의 진수를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강렬하게 다시 듣는 것 이외에는, 어떤 참석자들의 보다 신랄한 표현을 빌리면, ‘화끈한 영적 샤워’로 끝나 버리는, 혹은 어느 정도 현장의 문제를 담긴 하지만 한 번 수양회 참석으로도 다 소화해 낼 수 있는 내용의 수양회… 코스타의 시작부터 세워졌던 목표들은 좋지만 지금 코스타의 모습은 처음의 그 목표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라는 반성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3.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양회


복음화된 대학원생 유학생들을 돕는 가장 중요한 안건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전공 속에서 혹은 전공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라는 안건이고 둘째는 “캠퍼스와 지역 교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며 섬길 것일까” 라는 안건이다. 코스타의 모든 프로그램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학생들을 복음화하는 일에 병행하여 이 두 가지 실제적인 안건을 중심으로 짜여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오전은 강의 중심으로 전공과 현장의 문제들을 다루고 저녁은 설교 중심으로 복음과 좁은 의미의 제자도를 다룰 수 있다. 오후의 세미나 트랙의 경우도 ‘구도자의 트랙’, ‘제자도의 트랙’, 그리고 ‘전공과 현장의 트랙’으로 분류 상 세 단계로 나누고 각 트랙에서도 내용의 깊이에 따라 레벨화하는 등 커리큘럼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강사에 따라 내용이 바뀌기 보다는 ‘체계화된 내용에 따라 강사를 선정해야’ 한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란 말이 나의 전공영역에서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에 대해서 학생들이 생각하도록 돕고 답을 찾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야 한다.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 사역을 이해하고 유학생들의 상황·현실에 따라 코스타 전체 프로그램 구조와 세미나의 커리큘럼을 짜기 위한 연구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연구팀을 구성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커리큘럼이 체계화된다고 가정하고 단순화된 예를 들어 보면, (편의상의 구분에 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복음을 모른던 학생이 첫 해에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며, 둘째 해에는 제자로서의 삶에 대해 배우고 익히고, 셋째 해 이후부터는 자기의 전공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 것인가를 목표로 코스타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학생이라면 최소 두 번 이상 참석하여, 한 번은 제자로서의 헌신의 문제를, 그리고 두번째 해부터는 전공과 직업의 문제를 고민하고 돌아갈 수 있다. 또한 보다 헌신된 학생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전공과 현장의 문제들을 목표로 하여 동역자들을 만나고 현장의 삶을 함께 준비하는 코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복음의 핵심을 들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격을 되새기면서 말이다.


두번째로, 강사로부터 학생으로 주입되는 일방통행(one-way)의 설교·강의 흐름에서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상호적(interactive)인 흐름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부생들과 달리 대학원생들은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발표하고 그룹 토론에도 참여한다. 대학원생이라는 것은 학생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직업이다. 즉, 대학원생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들에 맞는 형식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들을 학부생들처럼 일방적으로 앉혀 놓고 듣게 하는 것은 코스타에서 다뤄지는 내용과 참여자들의 질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설교를 제외하고 전체 강의를 포함한 모든 강의에서 학생들의 질문과 토의 시간을 10-30분 정도 배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 없이 관중의 열기나 웃음 소리만으로, 혹은 구매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강의 테잎의 판매량으로 강의의 효과를 평가할 수 없다. 학생들이 그 내용을 되새길 수 있는 다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쉴새 없이 쏟아붓는 것은 교육적 효과면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더구나 현장의 문제를 다룰 때 각 현장의 문제를 어느 정도 겪고 있는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은 매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이런 고민들이 던져질 때,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원론에서 그치지 않고 현장의 문제들, 각론에 대한 해답을 끌어낼 수 있으며 최소한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현실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학생 때부터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누고 함께 찾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막상 현장에 나갔을 때, 그 고민이 지속되고 연합이 지속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넓어져야 한다.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전공에 속한, 혹은 전공을 통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결과물들을 발표하고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공과 관련된 한 가지 구체적인 문제를 연구한 논문 혹은 포스터 발표라든가, 전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팀 프로젝트라든가, 예술 작품이라든가, 문화 현상를 기독교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는 보고서라든가, 각 전공에 따라 얼마든지 창조적인 참여가 가능하리라 본다. 기독교적 색깔이 전혀 없더라도, 학문의 논리에 충실한 결과물도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런 참여를 격려하는 것이 학생들을 현장의 그리스도인으로 구체적으로 준비 시키는 전투 훈련이 아닐까.


셋째로, 보다 연구하는 코스타가 되어야 한다. “아니 학업에 지친 몸을 좀 쉬러 왔는데 기독교 모임에서까지 왠 골치 아픈 소리요” 라고 한다면 대답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전공마다 다르겠지만, 대학원생의 삶의 가장 기본은 연구하는 자세인데 왜 무엇보다 중요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가” 라고 되묻고 싶다. 조용한 방청객으로 남아있기 보다, 밤을 새우는 토론과 나눔으로 현장의 문제를 건드리는 초기의 코스타 분위기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대학원생 모임은 자기 비판을 통한 자정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런데 코스타에 대해서는 건설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뜨거워 할 말을 잊은 것일까?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 운동은 아니다’ 라고 다 떠난 것일까? 나는 각각 자기의 전투지에서 고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코스타가 전도 집회만이 아니고 또한 선교동원 운동만이 아니라면, 그러면 어떻게 유학생들의 다양한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강사와 참여자, 그리고 내용의 폭을 봤을 때 아직 지엽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 코스타가 미국 유학생이란 커다란 사역 대상을 폭 넓게 품기 위해서는, 캠퍼스선교 운동과 선교동원 운동을 넘어서는 도약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 년에 걸친 체계적인 연구와 모델링을 거치지 않고서는 기대할수 없는 일이다. 미주 내에 캠퍼스와 지역 교회의 사역을 파악하려고 막 시작되고 있는 코스타의 HOC 프로젝트는 이러한 노력의 아주 좋은 예이다. 뿐만 아니라 코스타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연구 위원 혹은 연구 간사와 같은 장치도 꼭 필요하리라 본다.


수련회를 평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진행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내용에 대한 평가는 필수적이다. 체계적인 평가자료를 개발하여 참석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 자료를 토대로 향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더불어 이 자료를 공개하여, 코스타라는 이름보다는 코스타에서 담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양회 참석을 유도하고 코스타의 현재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4. 맺으며


나는 코스타를 잘 모르면서 편파적인 얘기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다들 아는 얘기를 장황하게 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동료 대학원생들과 함께 고민했던 몇 년의 시간을 통해서 주께서 우리들에게 주셨던, 삶과 신앙과 학문의 통합에 대한 외줄타기와 같은 균형에 대해 그저 스스럼 없이 나누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를 중요하게 보는 한 사람의 대학원생으로서의 관찰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관찰과 생각들은 많은 일반화와, 때로는 기도보다 앞서는 운동성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타가 어떤 ‘Monument’가 아니라 하나의 ‘Movement’라면, 나는 이 운동을 현재의 나의 삶에 주요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가르침을 기대해 봅니다.

[정진호] 부르심의 현장에 다시 서서….

코스탄 현장 이야기


부르심의 현장에 다시 서서….


내가 갑자기 <코스탄 현장 이야기>를 쓰기로 한 것은 사실 돌발적인 결정이나 다름 없었다. 지난 1년 간 <지성과 영성> 컬럼을 연재하면서 숨가쁜 현장 생활 속에서 한달에 한번씩 무언가 생각하는 글을 떠올려 보낸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을 뿐 아니라, 이론적(?)인 이야기로만 채우기에는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코스타에 참석하는 후배들을 위하여 지난 90년 코스타 이후로 내 인생 속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간섭하셨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고민했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 준다면 그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던 것이다. 사실은 지나간 일들을 엮어서 쓰는 일이 머리 속에서 생각을 짜내는 일보다는 훨씬 쉽지 않을까 하는 속셈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막상 또 과거의 글을 쓰려하니, 또 다른 고민이 다가왔다. 만일 단순히 과거의 정체된 이야기만을 나열한다면 잠시 동안의 흥미를 일으키는 감상거리나 감추어진 자랑거리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죽은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는 이 시대를 짊어질 고민하는 코스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하여 1년 동안 이코스타와 함께 달려가며 <지성과 영성>의 균형을 논하였고 <문화와 복음>의 통전성을 역설했건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었겠는가? 나는 해답을 주느라고 애쓰고 있는데 여전히 그들은 같은 궤도를 그리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느낀 괴리감은 어쩌면 진리의 역사성(?)을 도외시한 데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타락한 이성만으로는 결코 완전한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단순한 원리와도 맥을 같이하는…. 다시 말해, 내가 발견하고 깨달은 문화와 복음의 관계가 아무리 옳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적 담론으로는 결코 바르게 전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더러는 이론적으로, 머릿속으로는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일지라도 그 글이 나타내게된 배경과 그 글을 쓴 정진호라는 한 개인의 역사를 간과하고서는 체험적 깨달음에 동참하기는 거의 힘들다는 말이다.


성경의 진리가 철학적 담론이나 논증의 형식을 띠지 아니하고 반드시 역사성을 띠고 기술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이 지혜와 깨달음을 추구하던 불제자나 철학자들이 아니라 숱한 시행착오 속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발견해 가는 평범한 인간들이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재의 나는 10년 전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던 시절의 내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지닌 문화에 대한 개념이 조금은 급진적(radical)이라고 오해받을 만큼 달라진 것도 (사실은 문화와 유리되어 이원화된 복음의 올바른 자리 매김에 대한 노력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지난 10년의 궤적 속에서 복음을 들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갔던 그만한 역사가 있었기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10년 전 내가 고민하던 문제로 싸매고 있는 코스탄들에게 현재의 나를 바로 소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적 언어를 역사적 언어로 바꾸어 기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독교에서 복음의 전달 매체로서 간증(testimony)라는 독특한 형식을 매우 중시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여기까지 쓰다보니, 내가 이제부터 지적 논증을 가급적 피하고 역사적 논증 즉, 간증의 형식을 빌어 표현하겠다는 서두를 매우 지적으로 논증하고 있는 셈이다. 나 원 참! 아마도 추측컨데, 새로운 시도가 될른 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가 뒤섞인 <퓨전 논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역사를 회고하는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에 있듯이, 과거의 사건들 속에서 역사하신 그분의 손길을 회상할 뿐 아니라, 그 당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쳐 버렸던 것들을 반성하며, 그 일들을 통해 오늘 나에게 다시 말씀하시는 그분의 뜻을 생각함으로 장차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가정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더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에게도 직접적인 유익이 될 뿐 아니라, 현재 비슷한 고민들을 하며 그분의 뜻을 구하고 있는 기독 지성인들과 코스탄들에게 좀 더 생생한 목소리로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아무튼 종종 하나님은 뜻하지 않은 일들을 벌이게 하시고 더러는 우리를 코너에 몰아 넣으셔서 그 가운데서 당신의 음성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 또한 그 분이 시키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


성경 안에 흐르고 있는 성령의 역사는 끊임 없는 역동성을 띠고 있어서, 2천년 전에 발생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지금도 우리에게 수시로 흰 파도처럼 밀려와 미래 지향적인 산 비전을 제시해 준다. 내가 만난 기독교, 아니 그 속에 살아 계신 예수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내 인생의 역동성의 회복을 위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대학 시절, 진리의 끝자락을 찾아 헤매던 그 무렵, 잡다한 철학 사상과 오히려 더 사변적인 듯이 여겨져서 매료되었던 노자와 불교, 인도 철학에 빠져 있었고, 지혜를 구한다 하며 오히려 어리석은 인생으로 치닫던 나에게, 예수의 발견, 아니 예수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진 내 인생은 내가 그토록 고민하던 “진리를 따르는 통전적 삶”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많은 생각하는(?) 코스탄들이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바, 예수 안에서 깨달아지고 회복되어진 지성과 영성을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풀어헤쳐 나갈 것인가에 관한 실천적 질문이 그 당시 나에게도 있었다. 그 간절한 기도와 소원이 나를 이 곳까지 끌고 온 것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90년 코스타에 참석하기 얼마 전, 나는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많은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에 서원한 일이 있었다. 어리석었던 학창 시절의 방황을 되새기며 아파하고 있는 나를 향해서 주님은, 지금도 너와 같이 갈등하며 힘들어 하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도처에 있으니 그들 앞으로 나아가 그들을 복음으로 일으켜 세우라는 분명한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타국으로 나아가 복음을 증거하라는 선교적 명령이라고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비록 주님의 지상 명령이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는 코스탄들이 모두 해외 선교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으려니와 각자에게 구별되어 부르시는 부르심의 영역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 이 말은 ‘주님의 선교적 삶을 향한 부르심이 제한적’이라는 말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타문화권 해외 선교로 특별히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임할 아브라함의 축복은 모든 크리스천에게 열려 있지만, 부르심의 방법이나 방향을 정하시는 것 또한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음에 대한 고백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선교적 삶에 대한 부르심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생소하고 두렵기 조차 한 것이었다. 연변 과기대에서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동역자 임형식 형제의 간증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예수를 믿고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핀 결과, 그것은 한 마디로 “나를 따르라” 라는 내용임을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처음부터 예수님이 따라 오라고 말씀하실 것을 기다리며 어딘가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러울 만큼 너무나도 명쾌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와 같은 단순한 믿음은 없었던 것 같다. 90년 코스타에서 중국으로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을 때 나는 충격에 앞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항상 생각이 많고 복잡한 사람이었으며, 최소한 다른 나라로, 그것도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공산주의 죽(竹의) 장막으로 들어가 삶의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부르심을 피하여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실체는 선교적 삶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 하면, 그 무렵의 나는 늦게 믿은 예수를 전하고자 하는 불붙는 열정에 이미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양육을 받았던 보스톤의 Gate Bible Study의 리더가 되어 새로 유학 오는 후배들을 거두어 섬기며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던 중이었고, 한시 바삐 고국에 돌아가 부모 형제 뿐만 아니라 과거에 내가 알고 지내던 술 친구들과 대학 선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안고 있었다 – 최소한 나에게는 술 좌석에서 사귄 많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간 동기가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느꼈던 두려움의 실체를 정직히 돌이켜 본다면, 그것은 낮아짐 혹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복음 안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삶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는 되었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육신의 정욕으로 남아 있는 부분들…, 다시 말해 높아지기 위해 치달아 왔던 지난 세월들을 한꺼번에 송두리째 빼앗길 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부인하고 외면하는 방법으로, 나는 선교지에 나가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각시킴과 동시에(모세형), 복음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을 다른 곳에서 채우겠다는 자기 회피적 생각으로(요나형)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했다.


보스톤에서의 그 무렵 나는, 무중력 상태 우주 공간에서의 재료의 성질을 연구하는 NASA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고, 그 연구 결과가 신기하리만큼 잘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 교수는 내가 계속 남아서 자신과 함께 일할 것을 몹시 원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균형 감각을 상실할 정도로 영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 결과가 그토록 잘 나왔던 것은 성령께서 지혜를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갖난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빨아들이듯 한창 말씀의 젖꼭지를 물고 성장하고 있는 나를 보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 배려(?)였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나를 조용히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서 자신이 영주권을 내줄 터이니 학교에 계속 남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해 왔다. 그 당시 내가 갖고 있던 J1 비자는 반드시 귀국을 하도록 되어 있는 비자였기에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에 말에 의하면 프로젝트의 중요성에 비추어 미국 정부(?)에 특별 신청을 하여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호의적인 제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바로 그 제의를 거절했다. 예상치 못한 거절에 당황하며 이유를 묻는 그에게 나는 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까지 당당하게(?) 붙였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대부분의 늦게 믿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복음에 대한 열정과 치기 어린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어린 신앙을 세상의 핍박과 유혹으로부터 지켜 주는 보호막이 되기도 하였다. 주 중에는 너무나 바빠서 학생들이나 박사후 과정들(Post-Doc)과 연구에 관한 토론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지도 교수는 항상 주일에 수시로 우리를 불러내곤 하였는데, 내가 그 앞에서 그와 같은 신앙 선언을 한 이후로는 최소한 나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귀국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나의 소명 조차 잠시 잊은 채, 서둘러 포항 제철에서 세운 RIST 연구소의 Strip Casting Project Team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연구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곳이 나의 마음을 끌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MIT에서 함께 지내던 두 사람의 대학 선배 뿐만이 아니라 대학 시절 동기, 그리고 내가 과거에 인간적으로(?) 가장 아끼던 후배가 줄줄이 한 팀에 소속되어 있어서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황금 어장과 같은 곳으로 비추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3년 동안, 나는 마치 요나가 사흘 낮 사흘 밤을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었던 것처럼 철저하게 하나님과 대면하여 싸우며 내 자신의 감추어진 교만과 무능을 체험하였고,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 보내기 위해 철저한 훈련과 준비를 시키시는 기간을 갖게 되었다. 그곳은 나에게는, 모세가 갑자기 변해버린 자기 정체성에 너무 놀라 왕궁을 뛰쳐나간 후 40년 간 방황하며 낮아짐의 훈련을 받았던 미디안 광야와 같은, 아니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진 이후에 그의 율법주의와 각종 헬라 사상을 복음 안에서 용해하기 위해 필요했던 3년 간의 용광로 길… 아라비아 사막길과 같은 곳이었다. (계속)

[반영운] 오른쪽 표지판을 따라서

삶과 기독교세계관


오른쪽 표지판을 따라서


지난 주일(7월 22일) 아침, 현재 서울에서 다니고 있는 ‘문을 여는 교회’의 수양회가 열리고 있는 용인 청소년 수련원에 뒤늦게 참여하기 위해 양재역 근처에 있는 서초 구청으로 향했다. 교회에서 협동 목사로 수고하시는 전현철 목사님과 오전 7시에 만나 함께 가기로 약속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는 미국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던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 하는 성경 공부에 참석했었다. 약간 늦게까지 뒤풀이를 한 후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는 PC 방에 들러 ‘미국’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집에 들어가니 벌써 새벽 두 시가 넘고 있었다. 무더위에 흐른 땀을 씻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적어도 여섯 시 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하는 염려와 함께….


주님의 도우심이었는지 새벽 5시 45분에 눈이 떠져서 적당히 씻고 짐을 챙겨 잰 걸음으로 지하철에 오르니 6시 5분. 양재역까지 가려면 약 한 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아 일단 5호선을 탄 후 7호선과 3호선으로 갈아타고 양재역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 6시 58분. 부랴부랴 서둘러서 서초구청이라 쓰여 있는 출입구를 찾아 나섰다. 출입구에 나와 보니 방향 표지판이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인 오른쪽으로 되어 있었다. 약간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난 번에 한 번 와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착하니 7시 3분.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주위를 둘러 보니 전 목사님은 아직 오시지 않은 듯하여 마치 나는 정각에 도착한 양 핸드폰을 들고 약간의 여유를 곁들여 전화를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은 오고 계시는 중이고 이제 약 삼 분 후면 도착할 예정이란다. 난 안심하고는 책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이것 저것 정리를 하였다. 계획도 세우고, 써야 할 페이퍼 스케줄도 정하고…. 시계를 보니 7시 15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도착하실 때가 됐는데…. 길이 막히나? 아니면 잘못 찾으시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다시 전화를 드리려다가 운전 중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요즘은 운전 중에 핸드폰을 받으면 벌금이 많음) 좀 더 기다리기로 마음을 정하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기다리는 곳에는 여러 여행사들의 차들이 세워 놓고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구민회관이지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예, 맞아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물어보신 아주머니께 가서 여기는 구민회관이 아니라 서초구청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으나 그분이 금새 자리를 뜨시는 바람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동시에 대답하신 아저씨에게도 “그게 아닌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분도 기다리던 차가 도착하면서 막 떠나 버렸다.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비를 피해가며 지하철 안에서 읽던 페이퍼를 마저 읽다보니, 써야 할 페이퍼 제목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것을 수첩에 적어 넣고 나니 시간은 어느 새 7시 4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뭔가 잘못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핸드폰을 찾아 전화를 드렸더니, 전화벨이 한 번 울렸는데 바로 목소리가 들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어디 있느냐고. 우리 둘 다, 서로, 지금 서초구청 앞에 있노라고 자신의 위치를 밝혔다. 이럴 수가 없었다. 둘 중에 하나는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다. 나는 확신있게 빨리 이쪽으로 오시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당신이 정확하게 서초구청 앞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 입구 쪽으로 걸어 가서 건물 이름을 확인해 보니 글쎄 ‘서초 구민회관’이 아닌가? 아뿔싸, 얼굴은 화끈 달아 오르고 어찌 해야 할 지는 모르겠는데 목사님께서 이쪽으로 오시겠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본능적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우째 이런 일이?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난 7월 6일에서 8일까지 녹색연합이라는 단체와 함께 국내에 있는 생태마을들을 답사한 적이 있다. 그 때 출발하기 위해 만난 장소가 바로 서초 구민회관이었는데 그 곳을 서초구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초구청 안에 구민회관이 있는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가설과 오해로 빚어진 실수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어쩌겠는가? 기왕 벌어진 일인 것을….


목사님과 ‘구민회관’ 앞에서 7시 45분 경에 만나서 박장대소를 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기다리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나누었다. 목사님도 전날 바쁜 일 때문에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가 조금 늦게 일어나시는 바람에, 바삐 챙기고 나오다가 지갑도, 주소록도 다 두고 오셨단다. 그래서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하실 수 없었다고 아쉬워 하셨다. 내 전화번호를 알아 보려고 여러 시도를 해 보셨으나 아무도 이른 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더라고. 나는 나름대로 마음에서 오갔던 (위에서 적은) 생각들을 이야기하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드렸다. 그랬더니 당신도 늦게 오셨고 중요한 것들을 챙기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하시면서 위로하시는 것이었다.


수련회장으로 가는 길 내내 머리 속에서는, 이제까지 살아오는 길목마다 놓여진 표지판들을 무시하고 나름대로의 선입견이나 경험에 비추어 나의 길을 선택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과 두려움이 맴돌았다. 분명하게 표지판은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왜 나는 질문도 없이 왼쪽을 거침없이 선택했을까? 그리고 중간에 기회가 있었는데도 왜 이름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얄팍한 경험과 기준(심지어는 망각의 늪에서 생겨난)을 절대적으로 믿는 아집과 교만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성경을 읽고 그대로 산다고 해도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의 신, 창조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본래적인 죄성을 벗을 수는 없는가 보다. 결국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가리키는 방향 표지판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일진대 나의 이런 모습은 철저한 불신의 소치에서 온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참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분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지 애써 연구하고 알아감이 없이, 좁고 뒤틀어진 가치관과 오염된 생각들로 자신의 삶의 방향과 내용들을 결정하고 남도 훈계해 왔으니…. 쥐 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생각을 우리 주위와 한국교회로 넓혀서 어느 부분에서 이러한 현상이 가장 심각할까 점검해 보니 역시 종교적인 전통의 영역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제는 거의 상식적이거나 성경적인 질문마저도 할 수 없고 또 하지도 않는, ‘신학 지상주의’에 까지 다다른 기독교의 실상을 보게 된다. 신학을 최고로 아는 또 다른 ‘전통’이 이미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각의 범주가 넓어지고 질문의 능력이 싹트기 전 이미 그러한 분위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깊이 없이 생각이 고정돼 버린 것이 중요한 화근이라면 화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이야기 하는 것이 질문이나 여과 없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버리는 형국임을 감안할 때 훨씬 더 그 위험의 수위가 높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교회당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을 하는 것은 더 할 나위 없는 하나님의 일이며, 선교라는 이름을 붙이면 무엇을 해도 괜찮으며, 전임 목회자가 되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헌신이며, 가족이나 이웃이 굶어 죽어도 십일조는 반드시 본 교회에 내야만 하는. 이런 국적 모를 전통들이 우리 신자들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본인이 알든 모르든 구조적으로 교묘히. 어쩌면 구조적으로 숨통을 조이는 가해자들 조차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예수님을 죽일 때 손을 씻었던 빌라도는 그래도 양반 중의 양반이 아닐까?


주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흘리신 동일한 눈물로 우리를 향해 외치시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모두 오른쪽으로 난 표지판을 거스르고 왼쪽으로 가고 있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예언서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외치고 있다(이사야 53장 6절). 구체적으로 예배, 헌금, 사랑을 베푸는 것마저 본래의 정신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거나, 아니면 형제들이 피폐해지도록 돌보지 않고 내어버려 두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을 어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습하고 장사터로 만드는 악행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으며 무슨 논리로 정당화 할 수 있겠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 모든 일들을 예언이라도 하듯 주님의 마음을 대변하여 어떠한 헌금이나 제사도 다 가증스럽고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주께는 무거운 짐이 된다고 선언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통렬히 책망하고 있다. 종교적인 행위는 무성하지만 포도주에 물을 섞고, 뇌물을 받아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지 않을 정도로 공의가 없어져 살인자들만 난무하다고(이사야 1장 전체). 예수님도 당시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당시에 통용되고 있는 십일조에 대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하셨다. 이 책망의 촛점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십일조가 형식에 빠져서 율법의 핵심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렸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단언컨대 우리의 실상이 구약 이스라엘의 시대나 예수님의 시대 상황보다 그 타락의 정도가 결코 덜 하지 않다. 화려한 예배당과 그 속에서 연주되는 거룩한 음악, 세련된 설교, 그리고 어떤 지방 자치 단체들보다 풍부한 예산, 바쁘게 돌아가는 모임과 헌신의 약속들. 그러나 정작 교회 안에 참된 의와 인과 신이 있는가? 형제됨이 살아 있는가? 과연 크리스천 개개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공의가 실현되고 있는가? 대교회는 장사터로 변해 버린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지난 90년 대 초반부터 불거져 나온 교회의 부패와 사회 속에서 저질러지는 굵직 굵직한 해악의 중심에는 어김 없이 내노라 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떠올리면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나 또한 그 악함에서 한 발짝도 멀어져 있지 않은 공범자임을 자인할 때, 많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꾸짖으며 외친 세례 요한의 음성이 무섭게 들려 온다 –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태복음 3장 7절-10절)


느헤미야는 성벽을 중수하고 나서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으고 학자 에스라를 모셔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게 한다(느헤미야 9장).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듣는 도중에 백성들 사이에서는 회개가 일어나고 결국 그 회개가 이스라엘 전체의 공통된 삶의 전환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된다. 곧 이방 백성과의 통혼 금지이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 백성들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율법과 그에 깃든 정신을 어그러 뜨렸던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제사와 예배도, 동족 간의 사랑도 모두 저버리게 된 악한 현실만이 남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성의 지도자로서 느헤미야의 업적은 성벽의 중수는 물론 더 더욱 백성들의 마음에 율법, 즉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 놓은 것이 백미 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첨단 전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모양과 형태는 다르지만 핵심은 전혀 다르지 않은) 우상 숭배의 악함이 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회복하는 일, 이것 보다 더 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는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보여준 율법의 회복에 달려 있다. 곧 그 옛날 루터가 외쳤던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의 정신이 우리 개신교의 양보할 수 없는 근간이라면, 우리는 온 정신을 모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의 가르침을 성경 대로 연구하고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절대의 믿음과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로 말미암아 회복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통해서만 인간과 자연의 참된 회복을 이룰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성경과는 다른 종교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십자가의 정신과 사랑의 정신으로 바꿔가는 참다운 회복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단지 교회당과 종교 조직과 연관된 영역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아니 우리의 생각이 닿고 노동하는 그 모든 영역들을 하나님의 신앙으로 되살려 내는 작업. 주께서는 그것을 우리로부터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주께서 성령과 성경을 통해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오른쪽으로 가는, 지혜롭고 순결한 신앙의 결과로서 드려지는 삶의 예배를….

[박성근] 동양 의학에로의 복음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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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의학에로의 복음적 접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탈현대주의'(Post-Modernism) 시대라고 흔히들 부르고 있으며, 근래 코스타(KOSTA)에서도 많은 강의들이 이 ‘탈현대주의’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그 만큼 이 탈현대주의 사조가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우리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발견 되어지는 특별한 현상 가운데 하나가 동양 사상과 동양 의학(한의학)이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양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하는 시각의 일대 전환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은 분명히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 변화의 추이를 우리 크리스천들은 단순히 동양인, 또는 한국인의 시각으로서가 아닌 크리스천의 영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19세기에 서양의 열방들이 동양, 그 중에서도 특별히 우리 나라로 진출하면서 한 편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고 이 때 선교의 귀중한 도구로 서양 의학이 쓰임을 받았던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우리들의 귀한 신앙과 발달된 의료 혜택이 이에서 비롯 되었음도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의 뒤안으로 많은 우리의 귀한 유산들이 사라지거나 감추어졌던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 선조들의 지혜의 유산인 한의학이다.


시대가 바뀌고 땅 속에 깊이 파묻혔던 동양 의학(한의학)이라는 그 지혜의 유물이 빛을 보게 되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 놓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그 유물에 붙어서 굳어 버린 비의학적인 주변 요소들도 함께 세상에서 빛을 보며 보물 행세를 하게되는 의외의 현상이 발생되었는데, 이는 바로 도교, 불교와 더불어 그 아류로서 탈현대주의 사조가 낳은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라는 인본주의 종교들이 동양 의학을 도구 삼아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근자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한국의 TV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된 ‘김용옥의 노자, 공자 강의’나 ‘김홍경의 동양 의학’도 바로 이런 시대 경향으로 볼 수가 있다.


서양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있는 현대 의학과는 달리 동양 의학은 오랜 역사를 통해 우주의 질서와 생명 운동의 법칙을 찾기 위해 끊임 없이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관찰하며 수 많은 경험들을 축적하여 얻은 산물인 바, 그 핵심이 바로 음양오행 이론이라는 질서의 법칙인 것이다. 우주와 인간 생명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의심치 않는다. 인류가 창조 세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바라 보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찾아 낸 이 생명 운동의 법칙을 바탕으로 하는 동양 의학을 깊이 연구해 보면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그 질서의 법칙에 상당히 접근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런데 왜 음양, 오행, 주역, 기, 경락, 경혈 등의 용어를 쓰며 동양 의학을 논하면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질감을 갖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그 의학이 자라난 시대와 문화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서양 의학이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문화에 터 잡아 성장했기 때문에 의학 이론이야 어떻건 간에 기독교적이라고 간주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양 의학은 도교와 불교라는 동양의 인본주의 종교 문화의 환경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의학 이론의 진지한 검토도 거치지 않은 채 비기독교적이라고 간주되어 버린 것이다.


의학은 언제나 철학이 아닌 과학을 바탕으로 하여야 성립이 된다. 동양 의학은 음양오행 이론이라는 균형과 조화의 법칙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크게 유용한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합리적이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죄악된 세상 가운데서라도 그 분의 질서를 따라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이 가운데서 찾아 볼 수가 있는데, 중요한 사실은 건강이란 욕심 부린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질서를 잘 따라서 살아갈 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사상 의학이라는 이제마 선생의 체질 의학만 하더라도 그 내용 중에 각 체질의 사람들이 각기 어떤 욕심을 부림으로써 병이 들게 되는가 하는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내가 무슨 체질이며 무슨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 지는가를 알아 보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나 실은 이런 현상이 병이라는 사실을 사상 의학의 내용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좀더 사상 의학을 깊이 다루어 보면 우리들의 타고 난 죄성을 이해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 요즘 신앙의 세계에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SF(Spiritual Fiction; 영적 허구)의 문제도 동양 의학의 정서 작용(喜,怒,哀,思,悲,恐,驚의 7가지 정서가 질병을 구성하는 원리)을 통하여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감성과 영성의 구분에서 혼란이 올 때 이런 원리도 유용하리라 본다. 감성은 절제가 덕이 되지만, 영성은 어디를 바라 보는가의 방향성이 핵심이 된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상업주의와 신비주의 물결 속에서 병 들어 신음하면서도, 스스로를 수술대 위에 올려 놓는 아픈 결단을 내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의학’은 동서양의 의학을 막론하고 상업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선정적인 퇴폐주의에 휩쓸려 중병을 앓고 있지만 스스로를 진찰대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의식 마저 상실한 불감증이라는 병까지 겹쳐 표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날의 교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의학의 현장이기 때문에 더 많은 영혼들을 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의학은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인 인간의 몸을 인간 능력의 실험장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시대에 헌신적인 크리스천들에 의하여 베풀어 지는 의술은 그 의학의 내용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탈현대주의가 주도하는 이 시대는 의학이 내용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더우기 동양 의학을 둘러 싸고 전개되는 신비주의 경향은 많은 영혼들을 실족케 하고 있음을 임상의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비복음적인 기공이나 요가, 선, 명상 등 인본주의 종교의 수행 방법들이 버젓이 건강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교회로 들어 와서 크리스천들의 영성을 흔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건강이란 취향이나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서의 절대 명제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동양 의학은 분명히 우리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유산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이 귀중한 의학에 붙어 있는 비복음적인 요소들을 하나 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 나갈 때 모든 학문의 주인되시는 우리 주님이 동양 의학을 통해서도 큰 역사를 이루시며 영광 받으실 것이다.

[주명수] 교과용 도서의 검정 제도

복음과 법


교과용 도서의 검정 제도


선교 목적으로 기독교 단체에서 설립한 초·중·고등학교에서 창조 과학에 근거하여 집필된 생물책을 교과서로 선정하여 가르칠 수 있는가?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할 때는 그 설립 목적이 기독교적 교육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래서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가르칠 때 진화 과학을 비평할 수 있어야 하고 창조 과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여 주어야 그 설립 목적에도 부합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조 과학에 근거한 교과서를 자유롭게 집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기독교적 교육을 목표로 설립한 학교는 그런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정하여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용 교과서의 ‘집필’과 ‘선정’의 자유는 원천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다. 대통령령 제8660호로 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초·중등학교에서 학교의 장(長)은 교과용 도서를 선정함에 있어서 재량으로 교과서를 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종 도서 또는 2종 도서 만을 교과용 도서로 선정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한다(동규정 제3조 제1항). 동규정의 모법(母法)은 초·중등 교육법인데 동법 제29조에 의하면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인력자원부 장관이 검정 또는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도록 의무 지워져 있어 초·중등학교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검정 받은 교과서 만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1종 교과서라 함은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서를 말하고, 2종 교과서라 함은 교육부 장관의 검정을 받은 교과서를 말한다. 보통 국어 교과서는 1종 교과서에 해당하고 기타 생물 교과서 등은 2종 교과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어느 학자들이 진화론을 비판하는 생물학 교과서를 집필 하였다 하더라도 그 책이 초·중등학교에서 교과용 도서로 선정되어 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교육부의 검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을 비판하는 교재를 집필한 후에 교육부에 검정을 신청하면 이것은 100% 불합격된다. 검정에 불합격된 교재를 초·중등학교에서는 교과용 도서로 선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법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적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학교라도 생명의 기원을 가르치기 위해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한 교과용 도서를 선정하여야만 하고, 그 결과 진화론 일색의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밖에 없다. 만약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교과용 도서만을 선정하도록 학교의 장에게 의무를 부과한 위 규정이 폐지되거나 개정이 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겠는가. 초·중등학교의 장들은 교육부 검정 유무에 관계 없이 교과용 도서를 선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선교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의 장은 창조 과학에 근거한 교과서를 비록 교육부의 검정을 통과하지 않았더라도 자유롭게 선정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된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람들도 교육부 검정을 통과하기 위해서 교과서를 집필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부 검정을 통과하지 않더라도 자기의 책을 사용하여 줄 학교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학문적이고 신앙적 양심에 근거하여 교과서를 집필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 교과용 도서의 검정 제도는 필요한 것일까? 초등학교에서 국정 교과서나 검정 교과서 만을 사용하게 하거나 국어과 과목에 대해서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게 한 규정은 획일적교육의 필요성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이상의 학교에서 국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에 대해서도 모두 검정 교과서만을 고집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국·공립학교에서 국정 또는 검정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의무 지우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사립학교, 특히 선교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에까지 검정 교과서를 선택하도록 의무 지우는 법은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제 교과용 도서를 국가가 통제하려는 자세를 바꾸어 자유롭게 집필하고 자유롭게 선정하도록 개인과 학교에 돌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획일적 사고를 조장하고 창조적 사고를 방해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국가가 획일적 기준을 정해 놓고 교과서를 진단하려는 생각을 바꾸어 각 개인의 자율에 맡겨 두면 위와 같은 비판의 소리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집필과 교과서 선정의 자유를 각 개인에게 맡겨 두면 터무니 없는 교과서의 출현도 막을 수 없고 결국 그 피해는 학생들이 진다는 우려를 국가로서는 피할 수 없다 하겠으나, 그것 역시 기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런 교과서용 저서가 출판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그런 것을 교과서로 선정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 학교 교과서 선정 위원회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와 그들의 학문적 식견을 믿어야 한다. 이 규정의 전체 폐지가 어렵다면 최소한 사립학교에서는, 특히 특수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사립학교에서는 교과용 도서를 그들의 재량에 의해 선정할 수 있도록 개정하여야 한다. 검정 교과서 만을 사용하도록 의무 지우는 우리나라의 법은 기독교적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학교에 대해서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의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검정 제도만 폐지되거나 개정이 되면 누구든 기독교적 가치와 진리에 근거하여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고 선교 목적 학교의 장은 그의 재량에 의해 그런 교과서를 교육부의 검정에 불구하고 교과용 도서로 선정할 수 있고 결국 창조 과학도 가르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