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기] 칭찬과 모욕


직장인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역시 자네밖에는 없네. “지난 번 그 일은 정말 잘했어” 등으로 표현되는 칭찬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윗사람들이 멋진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부하 직원을 잘 칭찬할 줄 알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칭 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바로 그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힘든 모양이다. 사실 아랫사람들에게서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칭찬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칭찬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크리스천들에게 칭찬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귀한 사역이 될 수 있다.


그 러나 칭찬을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자기가 자기를 칭찬해서도 안 된다.(잠27:22) 크리스천 직장인들은 칭찬을 받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칭찬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크리스천 직장인 개인에게 기쁨이 되며 동시에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 빛 된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마5:16) 그렇다면 칭찬을 받는 삶을 사는 것도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는 중요한 사역이 된다.


그 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항상 칭찬을 받지는 못한다. 오히려 책망을 받거나 심지어는 모욕을 당할 때도 있다. 그것도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별 이유 없이 모욕을 당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직장인들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 그것 때문에 직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급기야는 직장을 떠날 생각들도 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어 느 날 사막의 수도사들에 대한 책을 읽다가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모욕을 당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훈련이라는 것이다. 모욕이 훈련이 되는 이유는 모욕을 참을 수 있는 마음에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 수도사는 훈련을 위해서 자기에게 모욕을 주며 화를 내게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완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칭찬은 오히려 영혼을 괴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그렇게 모욕의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렇게 생각하면 직장 속에서 생활하다가 종종 모욕을 당하는 것이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영적인 훈련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나아가서 모욕을 참을 뿐 아니라 자기에 모욕을 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은 크리스천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사역이 되겠다.(마6:28)


우 리 주님도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셨지만 주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셨고, 사람들이 자기를 거역한 것을 참으셨다.(히12:2-3)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직장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은 예수님의 본을 따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직 장에서 크리스천들은 남보다 많이 칭찬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동기부여에 가장 효과적일 뿐 아니라 성도의 사랑의 표현이 된다. 물론 직장에서 칭찬 받도록 행동하자. 그것이 하나님을 드러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그러다가 칭찬 대신 모욕을 당할 때가 있으면 영적인 훈련의 기회로 생각하자. 아마도 그것이 크리스천들이 주님을 닮아 가는데 가장 효과적인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유정] 태풍 속에서 경험한 예배

이코스타 2006년 2월


2004년 초가을에 불청객 태풍 아이반을 기억하십니까? 당시 저는 워싱턴DC에서 노스 케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그린스보로를 향해 막 출발하던 46인승 United Airline 여객기 속에서 아이반 때문에 2시간 이상 이륙을 못하고 비행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무더위가 지난 초가을임에도 엄청난 태풍이 올라온다는 경고를 뉴스에서 들었기에 다소 긴장이 되었습니다. 창 밖에는 어마한 검은 구름비가 비행장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상층의 거대한 검은 구름으로부터 공항에 흩어져 있는 여객기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시커먼 빗줄기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마녀의 날카롭고 갈라진 혀가 비행기들을 핥고 지나가는 듯 음산한 모습이었습니다. Dulles International Airport내에 막 이륙하려던 40여대의 비행기가 꼼짝없이 발이 묶여 버렸습니다. 태풍 아이반(Ivan)의 영향권이 북버지니아까지 미친 것입니다.


비 행기 안에 있는 승객들은 이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며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며 핸드폰으로 연락하고 사진을 찍는 등 다소 긴장된 분위기였습니다. 내 옆의 한 미국 아줌마는 “내 평생에 이렇게 심각한 상황은 처음”이라며 흥분된 어조로 전화에 여념이 없었지요. 조종사의 안내 방송에 따라 승객들은 때론 한숨을, 상황이 조금 좋아지면 환호성을 지르는 등 초조한 기다림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3시간가량 지나서야 감금상태는 풀어졌으나 안타깝게 비행기 운항은 취소되었습니다. 도착지의 성가대 수련회에서는 예정된 강의 스케줄을 조정하느라 난리였습니다. 담당 목사님은 만약을 대비해 다음날 프로그램을 당겨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공항 대합실에서의 또 다른 4시간 대기상태 끝에 새벽 1시에서야 그린스보로를 향해 출발했고 새벽 3시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나 중에 확인해보니 태풍 아이반의 규모는 역대의 어떤 태풍보다 위협적이었습니다. 시속 250㎞가 넘는 최고등급 허리케인입니다. 뉴스에 의하면 루이지애나 등 4개주 주민 190만여 명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특히 해수면보다 3미터 낮은 저지대인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지역에 40년만의 최대 피해를 우려해서 120만 명에 대한 대피령이 떨어졌습니다.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는 태풍이 도심을 정면으로 강타하면 5만 여명이 익사하고 도시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개의 시신용 백을 마련하기도 했답니다. 1년 후 작년 여름 태풍 카트리나가 이 우려를 재현했지요. 만일 아이반 당시만큼만 재해대책본부가 준비했어도 뉴올리언스가 그토록 처참해지지는 않았겠지요.


아 이반 태풍으로 인해 공항에 갇혀 보낸 7시간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40여대 안에 갇혀 있는 수천여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중요한 약속과 스케줄들이 대자연의 심술로 인해 한 순간 깨져버린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 약속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깨뜨려 버린다면 그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화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천재지변에 대한 대다수의 반응은 수용적입니다. 거절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합니다.


로 마서 1장 20절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대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우리는 일종의 경외감을 갖습니다. 어렴풋이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경험합니다. 단 1시간이건, 10시간이건 자연의 힘 앞에 선 인간은 잠시 자신의 능력, 경험, 삶의 패턴을 일시적으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저 넋 놓고 그 초월적인 힘(power)앞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맡기게 됩니다.


그 런데 하나님은 이 초월적인 자연보다 더 초월적인 분입니다. 아이반의 영향권은 북미 동남부지역에 국한합니다. 제 아무리 큰 태풍이라도 상상할 수 없는 우주의 크기와 비교하면 바닷가의 모래 한 알에 있는 원자 하나도 안 되는 미미한 것입니다. 우리 은하계가 태양과 같은 별들이 약 1천억 개 모여 만들어진 별들의 집단이며, 다시 우리 은하계 같은 은하들이 1천억 개가 모여 전체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상상 해보세요. 현대 천문학의 연구결과 빛의 속도로 150억년을 달려가야 우주의 끝이라고 합니다. 이 우주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인간의 작은 두뇌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예 배야 말로 바로 이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갑자기 닥친 초월적인 존재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진행 결과에 자신을 내어 맡기듯, 주일마다 예배 가운데 나아가는 회중들은 대 자연의 그 어떤 초월적인 힘과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의 전능하심을 높이 찬양하고, 경배하며, 그분이 나의 아버지 되신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대자연의 심술의 결과는 파괴요, 상처요, 엄청난 피해이지만, 초월적인 하나님의 임재의 결과는 구원과 치료, 어마어마한 하늘의 축복임을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황보영] Arizona gpKOSTA를 참석하고


gp Kosta가 애리조나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마치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예비해 두셨던 일인 것처럼 기뻤습니다. 하나님께서 Kosta를 통해 저에게 보이고, 들려주시려는 진리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고, 이런 기대와 설렘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로 이어졌습니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은 평소에 암송을 여러 번 해서 늘 외우고 있었지만, 이번 gp Kosta를 통해서야 저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다른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바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 했지만, 여러 가지 핑계들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사명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피하려 했던 부끄러운 저를 고백하며, 이렇게 제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주시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 는 크리스천으로서 교회를 성실히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믿으며 제 삶에 만족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아니라 제가 기뻐하는 삶이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했지만, 정녕 제가 왜 지혜로워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저는 지극히 이기적이었으며 어리석었습니다.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제 마음 한구석에는, 지혜로워져서 사람들에게 칭찬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 저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간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런 저에게 하나님은 여러 강사님들의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첫 날 있었던 최원영 교수님의 강의에서, 성공적인 삶은 창조주의 의도를 잘 파악하여 그 의도대로 살아가는 삶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그렇게 사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잘못되었던 제 중심적인 삶을 회개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자 하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묵상을 통해 하나님은 저에게 전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셨고, 저는 묵상 적용을 하기 위해 원투원 사역에 대한 small group discussion을 선택하였습니다. Discussion을 하면서 전도하기 위해 제가 준비하고 훈련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앞으로 닥쳐 올 수 있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인지, 또 그러한 어려움들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원투원 사역에 얼마나 큰 인내가 수반되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에게 절실하게 다가온 것은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이었습니다.


저 는 인내도 부족하거니와, 사랑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영접하지 않은 친구를 인도할 때에 한두 번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나 아니고도 다른 사람이 인도하겠지. 하나님이 계획하신 또 다른 사람이 있겠지.’ 라는 교만하고 나태한 생각으로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저에게 불편한 기분을 표시하는 친구들에게는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You deserve it.’ 이라는 못된 생각으로 전도 하려는 노력을 중단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마음이 하나님께서 영혼 하나하나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닮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리고 강동인 간사님의 성경적 직업관 강의를 통해 역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제가 하는 공부가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쓰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과, 단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만큼 제가 성장되어 있어야 쓰임 받는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었고 학업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더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결단들을 놓고 과거의 저의 모습을 떠올리면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능력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하나님께서 저에게 약속하신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기억하며, 다시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 2006년의 시작을 코스타와 함께 하는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수고하신 강사님, 준비위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시 만날 때에 더욱 더 신실한 하나님의 제자가 되어 있을 저와 여러분들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