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 2005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5년 2월호
(본 글은 2000년 KOSTA/USA 김경수 총무의 세미나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강의는 ‘복음주의’, ‘학생운동’, ‘한국사회’라는 무거운 주제를 복음주의라는 연결고리 가운데 다루고자 한다.
대학의 위기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한 사회가 건강한가는 “학교”, “교회”, “법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을 돌아보면, 이 세가지 모두 좋지 않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대학의 상황은 더욱 문제가 있는데, 그 예로 서울대의 위상이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들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의 현 상황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3가지를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대학생 스스로의 정체성 인식의 변화이다: 과거에 대학생들은 적으나마 스스로 엘리트라는 의식이 있었으나, 최근의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이유에는 교육부에서 평생교육이라는 기치 하에 대학교육을 보편화 시키고자 했던 정책이 있었다고 하겠다.
대학 문화의 변화이다.: 예전에는 이념이 대학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면, 현재 대학은 스스로 상업화하고 있고, 경쟁 중심의 문화로 변화하였다.
이단 단체와 민족 종교의 침투이다: 과거 대학 신입생들 중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일 종교를 가진다면 어떤 종교를 가지기를 원하는가?’는 설문 조사를 하면, 기독교와 천주교가 다수를 이루었었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를 보면 민족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했슴을 알 수 있고, 더욱이 대학 내 기독교는 이단들에 의해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세가지가 한국 대학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학생운동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학생운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학생운동’하면 주로 정치적인 데모를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학생운동’은 정치적 운동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다. 첫째, 학생운동은 주체가 학생 스스로이어야 하며, 또한 그 대상도 학생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학생운동은 정치, 문화, 종교의 영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국 대학의 경우에는 정치적 학생운동은 더할 나위없이 활발했고, 문화 학생운동도 한 때 ‘탈춤반’이나 ‘샹송반’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그리고 종교적 학생운동은 CCC, IVF, YWAM과 같은 선교단체로 대표되어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세가지 형태의 학생운동은 90년대 들어 상호의 영역을 넘나 들면서, 그 특징을 구분 짓기 어려워졌다. 그 예로 ‘기독 총학’을 들 수 있는데, ‘기독 총학’이란 각 대학의 기독 연합회에서 총학생회장의 후보를 배출함으로써 정치적인 영역에 참여하려는 시도이다. 비록 이런 시도는 성공 사례와 더불어 많은 비난도 받으므로, 시도 자체에 대해 회의을 남기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학생운동’이란 ‘학생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운동’이라 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의문이 떠오르는데, ‘현재의 간사중심의 선교 단체들은 간사들이 주로 최종 결정권이 가지지 않는가?’하는 점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선교 단체들의 운동을 학생운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간사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간사운동 혹은 조직운동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영국 옥스포드 신학부 교수인 Alister McGrath가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라는 책에서 복음주의의 특징을 6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다음 여섯 가지에 우선점을 두는 특징을 지닌다.
성경의 절대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
성령의 주권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
복음전도의 우선성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
복음주의란 어떤 하나의 교파나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특정한 믿음의 관점’이라 하겠다. 그 예로 천주교나 자유주의 신학 가운데서도 복음주의자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주의에 대한 용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evangelism은 ‘복음 전도’, evangelization은 ‘복음화’, 그리고 evangelicalism을 ‘복음주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evangelicalism이라 불리는 ‘복음주의’는 복음을 전하는 ‘복음화’와는 구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복음주의의 역사
복음주의의 역사를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제 1세계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조지 뮬러가 다녔던 학교가 할레 대학이라는 곳인데, 이 학교는 프랑케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할레 대학을 다녔던 사람 중에 진센도르프 백작이 있었는데, 그가 만든 겨자씨 모임을 통해 선교사들이 파송되었고, 그 겨자씨 모임으로 모라비안이 생겨나게 되었다. 최근에 많이 행해지는 선교방식이 ‘전문인 선교’인데, 그 당시 모라비안들은 벌써 자신의 전문 직업을 가지고 선교지로 나가는 전문인 선교를 행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학생운동의 역사는 영국이다. 영국의 학생운동에서 요한 웨슬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 웨슬레는 감리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감리교를 웨슬레가 창립한 것은 아니고, 후에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실 영국의 학생운동을 살펴 볼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챨스 시므온(1759 1836)이다. 이 분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널리 행해지고 있는 귀납법적 성경공부나 강해 설교의 방법을 처음 사용했다는 점이다. 챨스 시므온은 대학 졸업 후에 약 30년을 대학에 남아 교목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후, 영국에는 캠브리지 세븐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1885년에 캠브리지 대학에서 7명의 선교사가 배로 한 달이 넘은 거리인 중국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 일곱명의 선교자 중에 CT 스터드(Stude)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터드는 당대 크로켓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스포츠 스타였기에 영국 전체가 그들의 선교사 파송을 크게 다룰 수 밖에 없었다. 캠브리지 세븐의 배경을 살펴보면, D L 무디 (Moody)가 있었다. 1882년에 캠브리지에서 D L 무디의 집회가 일주일간 열렸는데, 별 반응이 없던 집회는 마지막 날 열기가 오르게 되었고, 무디가 초청을 하였다. 그 날 D L 무디의 집회에 캠브리지 학부 학생의 약 절반이 참석했고, 그 중에서 200명 이상이 회심을 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 C T 스터드가 있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캠브리지 세븐이 파송된 이후 1886년 마운트 헐몬에서 D L 무디의 집회가 열렸었다. 그 집회에 89대학에서 251명이 참석을 하는데, 그 중에 100명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사실 이 무디의 집회는 로버트 와일러가 총무로써 주관을 하게 되는데, 와일러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1945년까지 각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사로 초청하는 일을 하게 된다. 1886년부터 1945년까지 대학생 중에서 무려 20500명이 해외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이 기간은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시기이고,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바로 이 20500명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1886년부터 약 2년간 와일러가 방문한 대학은 약 162개에 이르는데, 그 방문 기간 중에 챨스 스터드가 선교보고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스터드가 방문한 학교는 코넬(Cornell) 대학이었는데, 그 집회 가운데 존 모트 (John R. Mott)가 있었다. 존 모트는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존 모트는 SVM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단체가 아이러니 하게도 WCC이다. 존 모트가 1895년 WSCF (국제 기독학생회)를 창설하는데, 그 후 1990년도 초 WSCF와 현재의 복음주의 계열이 분열을 겪게 된다. 그 분열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의 하나가 자유주의의 침투였다. 존 모트는 감리교 평신도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학생 집회를 열어, 선교사를 헌신케 하는 탁월한 mission mobilizer였다. 존 모트의 집회는 일본에서도 열렸었는데, 그 집회에 참석한 유일한 한국 사람이 윤치호였고, 그 집회의 영향이 한국에도 미치게 된다. 1945년에 SVM은 막을 내리지만, 곧 이어 1946년에 Urbana 대회가 시작되게 되었다. 이 얼바나 집회를 모방해서 한국에서 열린 집회가 다름 아닌 ‘선교한국’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전체적인 학생운동은 ‘선교’와 관계하면서 진행되어 왔슴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제 1세계의 학생운동의 특징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전통 복음주의 신앙을 대학 안에서 발견하고 계승시켰다.
세계 선교 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성경공부와 기도운동이었다.
사회 개혁에 관심을 가졌다.
요한 웨슬러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지 뮬러보다 고아원을 더 많이 설립할 정도로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제 3세계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살펴보자. 제 3세계의 학생운동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나게 된다. 일본의 경우는 개화가 일찍 되는 까닭에 다소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에서 윌리암 클락의 영향으로 1878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우찌무라 간조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우찌무라 간조의 제자로는 김교신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 한국 교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중국의 경우, 문화혁명 전에 북경대학의 IVF에 소속된 학생 숫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활발했다. 다시 말해, 제 3세계의 학생운동은 접목되고 이식되었다는 측면이 강했다.
한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학생운동은 크게 3세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45년 이전, 해방 이후, 그리고 1980년 이후가 바로 그것이다. 해방 전에는 Y운동으로 불리는 YMCA가 주도를 했고, 해방 이후에는 초교파 선교 단체들이 주도를 하게 된다. 1980년 이후에는 초교파로써 연합하고 협력하는 운동들이 많이 생겼다. 코스타도 그런 흐름 중의 하나라 하겠다. 한국 YMCA의 간사 1호는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상재 선생이 60세에 YMCA의 평간사로 일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1세대 운동은 민족적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2세대의 초교파 단체의 운동은 성경공부와 해외선교에 중요한 영향이 미쳐왔다. 3세대 학생운동은 네트웍 운동으로 연합과 협력을 이루어 오고 있다. 코스타도 그 예라 하겠다.
제 2세대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2가지 면에서 평가해 보자. 긍정적인 면은 경건생활, 복음 전도, 제자 훈련을 강조하고, 방법론 강조했으며, 조직 의식화된 기독교 지성을 배출하게 된다. 문서운동이 활발하였으며, 영적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또한 선교의 붐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면은 서구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너무 많이 가지고 섹트화되었다 점이다. 신앙적으로도 너무 편향적이다. 즉 다소 근본주의에 가까운 경향이 있다. 또한 약하거나 왜곡된 교회관을 가지고 있고, 미흡한 상황 문화 변형력이 적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한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정리해 보면, 해방 이전에는 김교신 이상재 선생같은 분에 의해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했고, 해방 이후 유신 정권까지에는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은 공명선거 위원회와 같은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도하는 운동
제자를 양육하는 운동
기도를 강조하는 운동
성경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운동
철저한 성경연구 운동
효과적인 그리스도 학자들을 배출하는 운동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운동
선교하는 운동
생활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
창조적인 기독교 사상 문서운동
학생의 책임에 위탁하는 학생의 운동
민족적 지도력에 위탁하는 운동
위에 열거한 12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 학생운동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왔다.
새 시대의 복음주의
그렇다면, 새 시대에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그 첫째는 ‘선교’에 대한 역할이다.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의 선교는 상당히 활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연합 운동이다. 존 모트의 경우도 학생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트웍킹하고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를 살펴보면, 1996년도 ‘복음 민족 역사’ 집회를 위해 작곡된 고형원씨의 ‘부흥’이란 곡이 기존 교회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997년에는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시작했고, 한달 만에 3억 5천만원이 모이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일반 국민에게까지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이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복음주의 학생운동이 기존의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또한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 되어야 하겠다.
만일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느 곳을 다니실까? 아마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캠퍼스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은 역사에서 거름과 같아서 눈에 띠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뿌려진 씨가 결실을 맺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캠퍼스에 관심을 가지고 씨를 뿌리라고 도전하고 싶다.
Feb 1, 2005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5년 2월호
(이 글은 2004년 KOSTA/USA에서 양희송 실장의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세미나를 편집부에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 복음주의 개관
(1) 복음주의 용어정리
흔히 사용되는 복음주의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부터 정리해 보자. 우선 evangelicalism과 evangelism의 사용이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각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자. ‘복음을 전하다’는 의미 evangelize에는 두 가지 명사형이 있는데, 각각을 살펴보면,
Evangelism : 이것은 ‘주의(-ism)’이라가 보다는 그냥 evangelize(복음을 전하다)의 명사형이다.
Evangelization: 복음화. 단순한 개인전도의 의미를 넘어서 복음의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두 단어의 구분은 74년도 로잔언약에서 구체적으로 사용되었는데, John Stott는 로잔대회 기조연설에서 “Mission에는 evangelism(개인전도)과 sociopolitical engagement(사회참여)가 있다.”라는 말로 두 단어를 분리해서 사용하였다. 또한 evangelize의 형용사형에도 두 가지가 있다.
Evangelical: 복음주의적
Evangelistic: 복음 전도적 (개인전도에 관련되어서)
예를 들어, evangelistic preaching은 전도설교라 할 수 있고, evangelical preaching은 복음주의에 근거한 설교를 뜻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복음주의를 evangelism으로 오해하면, 그저 ‘전도하자’는 정도로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 복음주의는 evangelicalism으로 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이다.
(2)역사적 기원
복음주의라는 말은, 70 80년대의 Billy Graham과 Christian Today라는 잡지의 등장, 그리고 미국 Jimmy Carter 대통령이 자신이 스스로 거듭난 기독교인임을 공공연히 드러냄으로써 보편화되었다. 복음주의는 미국적인 특수한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며, 또한 20세기 초반의 Christian fundamentalism과 구별되는 어떤 것이다라고 일반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복음주의는 7 80년대의 미국적 상황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것임을 인지해야만 한다.
복음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1. 지리적 분포: 복음주의는 영어권 지역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비영어권에서는 복음주의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사용되는 evangelish라는 용어는 루터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자를 지칭한다. 즉 독일에서 복음주의하면 ‘개신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에 루터교도 점차 자유주의로 흐르게 되면서, evangelical이라는 용어가 영어에서 역수입되어 사용되게 되었고, 결국 개신교를 전체적으로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evangelical이라고 하면, 카리스마틱 교회를 지칭한다. 또한 영국에서 evangelical이라고 하면, ‘나는 카리스마틱이 아니고, 또한 자유주의도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복음주의라는 말은 일관성 있게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 영어권 기독교를 주 배경으로 하고 사용되는 용어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럽의 영어권과 북미의 영어권에서 사용되는 복음주의라는 의미도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국에 알려진 복음주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들어온 것이기에, 유일한 복음주의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그 특성에 맞게 복음주의를 받아들였듯이 한국도 우리의 정황에 맞추어 받아 들여야 한다.
2. 현상적 특징: 영국의 데이빗 베딩턴이라는 역사학자가 언급한 복음주의의 특징을 크게 4가지로 요약했다.
Activisim: 전체적으로 활동적으로 움직인다.
Biblicalism: 성경을 강조
Conversionism: 교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심해야 한다.
Cross-centralism: 십자가를 강조
또한 영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인 John Stott는 복음주의자들의 특징으로 ”Bible people and gospel People”이라는 두 가지로 설명했다. 또 영국의 Allister McGrath는 복음주의를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령, 공동체, 복음전도”라는 크게 6가지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복음주의에 대한 언급들은 특성을 묘사한 것 뿐이지, 본질을 묘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복음주의가 운동인가 신학인가?” 하는 부분인데, 점은 John Stott의 ‘복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언급되고 있다. 즉, 내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과 그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런 현상에서 ‘무엇을 믿는가’하는 신학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복음주의 학자인 버나드 램이 스위스에 있는 칼 바르트의 밑에 있으면서, ‘나는 복음주의의 겉만 만졌던 것이지 실제적인 내용을 채우지 못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그러면서 복음주의가 전략과 운동은 있지만 신학이 부재하다고 통탄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복음주의를 신학적으로 정리할 필요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2. 역사 속에 살펴본 복음주의
복음주의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다시 베딩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복음주의의 특성을 activism, biblicalism, conversionism, cross-centralism으로 크게 볼 수 있다면, 복음주의를1970 80년대의 미국적 상황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일 복음주의가 20세기의 일이 아니라면, 보통 18C 부흥운동이나 16C 종교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John Stott는 복음주의의 근원을 초대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4세기의 니케아신조에서 이야기하는 삼위일체를 믿는 믿음이 바로 복음주의 전통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기독교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삼위일체의 신앙으로 부터 시작한다. 사실 니케아 신조가 처음 만들어 질 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나누어 졌다. 동방교회는 세 분 하나님을 강조하면서 성령님을 더욱 강조했고, 반면 서방교회는 하나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도 성령에 대한 좋은 연구들이 동방교회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4세기에 “그리스도 중심적 (cross-centalism)” 이라는 개념이 정리된다는 면에서 복음주의의 뿌리를 거기서 찾는다.
종교개혁의 흐름에 “성경중심 (biblicalism)”의 사상이 나타났고, 더불어 루터가 벼락 맞아 죽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로마서를 통해 회심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에 “회심 (conversionism)”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다. 이런 복음주의의 흐름은 18 19세기의 영미의 부흥운동으로 이어진다. 영국의 잔 웨슬리, 조지 휫필드나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로 대표되는데, 그 특징 중의 하나가 “회심운동”이다. 예를 들어, 웨슬리같은 경우 옥스포드에서 방법주의(Methodist)라고 불리 울 만큼 경건 훈련을 강조하는 Holy club에 열심이었지만, 구원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 Holy club에서 아메리칸 인디안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 되어 미국으로 가던 배 안에서 폭풍을 만나게 되었다. 웨슬리 자신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던 반면, 모라비안들은 놀랄 만큼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그 후 웨슬리는 미국에서의 선교에 실패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모라비안과의 교제를 가지게 되는데, 그 때 모라비안의 한 집회에 참석해서 로마서 강의를 듣는 중에 회심을 체험하게 된다. 그의 일기를 보면, ‘나의 마음이 이상스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불어서, 부흥운동에서는 “행동주의 (activism)”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책만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웨슬리같은 경우는 1년에 1000번, 즉 적어도 하루에 3번 이상씩 설교를 할 만큼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웨슬리와 휫필드가 주로 했던 사역방법은 순회전도였다. 웨슬리의 경우 말 안장 위에서 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순회전도를 다녔다. 이런 일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영국 성공회의 경우 목사들이 담당 지역의 교구를 맡아서 정착 사역을 했었지만, 웨슬리와 휫필드는 광부들을 좇아 다니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선교에 대한 강조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윌리암 케리, 허드슨 테일러, 캠브리지 세븐, 건초더미 기도회, 학생자원자 운동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들이 강조한 것 역시 회심중심, 십자가중심, 성경중심이며 상당히 활동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도 복음주의의 흐름이 존재했슴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복음주의는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이 발달하게 되고, 그에 대항해서 근본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사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미국적인 현상이었지만, 자유주의 신학의 분리주의적이고 상호 비판적인 문제점에 반대해서 복음주의(Evangelicalism)이 등장하게 된다. 반면 영국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복음주의를 준비해 오게 된다. 신정통주의는 칼 바르트의 신학을 말하는데, 그는 정통적인 신학의 모습을 많이 회복시키기는 하지만 방법론은 성경 비판 등에 열려 있어서 신정통주의 (Neo-Orthodoxy)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는 미국에서는 배척을 받지만, 유럽에서는 학생 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존 스토트, 마틴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거, 마이클 그린 등이었다. 그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을 지적이지 못하다고 비아냥거리고 있었는데, 위에 언급한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교육 받은 지성인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복음주의의 흐름이다. 특히 마이클 그린의 경우는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었는데, 그의 전도를 받았던 사람 중에 현재 영국 복음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알리스터 맥글래스와 같은 사람이 있다. 맥글래스는 한 때 막스즘에 심취해 있던 사람이었다.
반면, 미국의 복음주의는 빌리그래함과 크리스챤 투데이, 그리고 풀러신학교로 대표된다고 하겠다. 이런 흐름 가운데, 늘 소수에 머물렀던 복음주의가 7 80년대에 이르러 기독교의 주류가 되고, 다수파가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를 두고 복음주의 르네상스라고도 부른다.
20세기의 복음주의는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면, 앞으로 21세기 복음주의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이제는 수적으로도 많아졌고, 훌륭한 학자도 가지게 되었으며, 재정적으로도 풍부해서 해외에 선교사도 파송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복음주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맥락에 관해 현재 복음주의권에서 크게 이슈가 되는 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복음주의 통합?
복음주의는 계속 통합되어 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작은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갈 것인가?
(2) 복음주의의 성공 이후에 생기게 된 파생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Post-evangelicalism이라는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주의를 계승하면서도 단절하는 행태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주로 복음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은 보면, 복음주의가 물량주의적이고, 대사회적으로 소극적이며,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비일관적이라는 점을 비난한다. 한편 미국의 impowered evangelical은 post-evangelical과 같은 복음주의에 대항하는 흐름은 아니지만, 비슷한 성향을 띤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미국의 Vineyard church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일반적으로 제삼의 성령운동으로 불린다. 첫번째 성령운동은 오순절 운동으로 ‘방언은 곧 구원이며 구원 받으려면 자신에게 와야 한다’는 분리적 성향이 강했다. 두번째 성령운동인 카리스마틱 운동은 분리주의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뚜렷한 신학 없이 성령을 많이 강조했다. 그에 반해서 Vineyard 교회를 중심으로 한 제3의 성령운동은 그 신학적 기반을 복음주의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카리스마틱에 반하는 개념으로 impowered evangelical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Vineyard church에서 impowered evangelical에 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제임스 패커가 그 서문을 썼다는 것이다.
(3) 복음주의 신학의 구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경계 밖으로 나가려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중심 지향적 접근), 다른 사람들은 복음주의의 중심을 두고 가지가 뻗어 나가는 것은 허용해야 한다(경계지향적 접근)는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3. 복음주의권의 쟁점들
(1) 성경관:
“성경의 무오성 vs. 성경의 권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강조하는 반면,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은 성경 말씀을 삶의 최종권위를 더 강조한다.
(2) 성경해석의 방법론과 전제:
“성서비평을 수용하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성경해석이 최종적(final)인 것이냐 아니면 잠정적(provisional) 것이냐에 대한 논쟁도 있다. 이런 문제는 동성애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를 해석하는데 많은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3) 복음전도와 사회개혁: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사회참여와 개인구원이라는 낭만적인 대립구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19 20세기에 유행했던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복음주의를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반대하는 모습으로 연상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라 할 수 있겠다. 사회참여와 복음전도를 더 이상 대립구조로 보지는 않는다. 당연히 사회참여와 복음전도는 함께 가야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 구조에 대해 지나친 논쟁을 겪어 오지 않女?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신학적 방법론과 전제들:
기존의 전통적인 복음주의적 고백과 이해들에 대해 수정을 가하는 입장들이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지옥관 – 다시 말해 영혼 멸절설에 대해 John Stott같은 학자는 지옥이 영원히 불타는 곳에서 영원히 형벌 받는 곳이 아닐 수 있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또 하나의 예는 예정론이다.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하나님은 다 아신다’라는 입장에 대해, ‘하나님 스스로도 미래에 대해 열어 놓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또 하나는 신정론 –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 는 점인데, 만일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다스리시는 분 이시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의와 고통의 궁극적인 책임도 하나님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고통 받지 않으신다’는 기존에 입장에 대해,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자신도 고통 받으셨다’는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토대주의(foundationalism): 사실(fact)이 있고 그에 대응해서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라면, 한 부류의 사람들에 의해 포스트 모더니즘에 근거해서 복음주의적 신학을 해보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실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우리는 상징들을 가지고 말할 수 있고 가치를 창출해 내면서, 실제의 유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라는 포스트 모던니즘에 기초해서 복음주의 신학을 해보려는 흐름들이 있다. 그들은 복음주의 좌파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4. 그러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한국 복음주의는 이런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 제기와 고민을 스스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살펴보면, 사실 서로가 잘 알지 못해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상, 전체적인 신학적인 스펙트럼으로 보자면, 한국의 진보적인 기독교는 보수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990년대에 들어서 민중신학 자체가 사라졌슴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민중교회에는 신학자만 있고, 실제 민중은 존재하지 않게 된 현실이다. 또한 사회 부패에 대해 대항하던 세력들이 이제는 정부로 대거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캠퍼스의 진보운동도 거의 사그러지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 한국 기독교에는 사회참여를 등한시했던 보수적인 세력만이 남게 되어서, 복음 전도를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모임으로 비춰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남아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사회 참여적 혹은 대사회적인 임무에 대해 등한시하게 되다면, 한국 기독교는 사회에 무관심한 세력으로 취급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살펴보면,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며, 정치적으로는 우파”이다. 그런데 이런 가치는 한국사회가 청산하고자 하는 바로 그 가치라는데 아이러니가 있다. 만일 한국교회가 2 3년 내에 의미 있는 몸짓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런 청산의 흐름에 휩쓸려서 아무도 관심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는 입장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반면, 실제 한국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과 청년들은 그와는 사뭇 다른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의견이 실제적인 교인들이 가진 생각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 구성원들은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이제 복음주의에 대한 많은 자원들을 모아서, 누군가는 모든 기독교가 현재 사회에서 비판 받은 바로 그 모습만은 아님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런 노력들이 건강한 복음주의권에 있는 사람들이 애써야 할 부분이라 하겠다.
Dec 1, 2004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4년 12월호
eKOSTA: 인터뷰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되셨고 현재까지 이렇게 헌신하게 되셨는지요?
정진호: 아이구… 또 옛날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는군요. 코스탄 중에 이미 여러번 들은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해서 간략히 말씀드리면… 전 대학 시절에는 완전 앤티로 술마시고 허랑방탕하게 지내던 대표 선수였구요…간접적으로 그 시절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시면… 그에 대한 묘사가. 홍성사에서 출간한 <아바>라는 책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마 읽으시면 놀라시겠죠. 그 시절엔 성경보단 도덕경이나 인도철학 쪽이 더 흥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믿는 아내 만나 결혼 하고도 정신 못차리고 3년간 교회 안나가고 버티다가 미국에 포닥으로 와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후배의 강권적인 안내로 뜻밖의 교회 생활 시작했구요… 보스톤 지역의 Gate bible study Group에서 성경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면서 점차 신앙에 깊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eKOSTA: 코스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는지요?
정진호: 89년 코스타에 같이 가자는 후배의 권유를 뿌리치고 캐나다로 놀러갔었는데… 1년 사이에 제 믿음이 굳어지면서 90년 코스타에는 자원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중국과 북한에 대한 부르심을 받게된 것 같아요. 그해 주제가 “이 시대를 새롭게”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달리 민족과 시대에 대한 메세지가 많았어요. 김진홍 목사님도 오셨고… 송인규 목사님을 통해선 학문과 신앙이 어떻게 통합되어 선교적 사명에 쓰임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학문적 근거를 제시받았다면… 김진경 총장님을 통해 구체적인 부르심을 받은 셈이죠. 폐회 예배 때 홍정길 목사님께서 <영적으로 3국통일을 준비하라>는 메세지도 강하게 들렸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복음, 통일, 중국>이라는 인생의 화두를 안게 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3년간의 포항 생활을 통해 준비를 하였고 94년에 중국 연변과기대에서 들어가서 사역 하던 중, 96년 초 어느 새벽인가요… 강동인 간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강사로 초청해 주셨어요. 그 때 부터 거의 빠지지 않고 코스탄 후배들을 위해 매년 달려오고 있죠. 이것이 저의 지금까지 코스탄 라이프입니다.
eKOSTA: 이코스타에 글을 연재하시면서 다양한 소재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증거해주셨는데요,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 글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정진호: 글쎄요. 제 전공인 재료공학을 통한 성경적 조망으로 다니엘의 환상을 문명사적으로 해석한 글이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의미있는 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영성적인 관점에서는 <루카스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고요. 제 자신도 깊이 은혜를 체험했으니까요. 아무튼 어렵게 어렵게 이코스타를 통해 매달 글을 연재하는 바람에… 제가 미처 예기치 않았던 책을 두권이나 출간하게 되어서 저로서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코스타 원고를 묶어서 출간한 책이 <예수는 평신도였다>와 <치유의 꿈, 루카스 이야기>가 된 거죠.
eKOSTA: 여러가지 사역 중에서도 이코스타에 빠짐없이 글을 보내주심을 감사드리는데요, 평소에 많은 사역을 감당하시는 자기 관리의 비법이랄 것이 있으신지요?
정진호: 한동안 이코스타에 지각하지 않고 원고를 보낸다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셨는데… 최근에 계속 지각 원고를 보내드려서 죄송합니다. 자기 관리 비법이 특별이 있는 건 아니고요… 무슨 일이든 사명감이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흔히 저희 대학에 와 계신 교수님들을 농담으로 사역자(a man of 4 roles)라고 하는데… 가르치고 행정하고 좁은 의미의 사역(학생)하고 또 연구까지 하는 거의 초인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느 순간 부터(아마 제 글을 읽고 변화받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깨달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일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달란트 중 하나요…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평양과기대 일을 맡고 나서 너무 많은 일들이 폭주하다 보니 제 시간 관리 측면에서도 아쉽지만 이코스타를 당분간 쉬어야 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겁니다.
eKOSTA: 현재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코스탄들은 한편으로는 부유하면서 한편으로는 학업과 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데요, 교수님의 떡의 전쟁이라는 복음과 고난의 메세지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정진호: 미국의 물리적 환경만을 보면 물론 부유함이 넘치죠. 그러나 유학생들의 경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인생의 사명에 접목되어 있지 않은 경우는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공허감 속에서 지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믿는 학생들의 경우는 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이 <바알신>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만, 믿는 학생들은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항상 갈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냐 바알이냐?>라는 이 질문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거죠. 사실은 둘 다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시니 그게 문제입니다.
내가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학업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일상 생활에서의 의미로 나타나고 산제사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종>에 대한 개념, 즉 청지기 의식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이웃을 섬기는 종으로서의 목표 의식을 가지고 학업에 임하면 그속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나타납니다. 크리스천의 예배의식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내려와서 나를 거쳐 다시 믿음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올라가는U턴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단순한 U 턴에서 그치면 결국은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고 맙니다. 교회 안의 신자와 세상 속의 불신자로 함께 살아가는 이원론에 빠지고 만다는 거죠.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산제사의 삶, 즉 이웃의 가난에 동참하며 그들을 섬기기 위해 내 자신을 비우는 삶은 U턴이 아니라 P턴입니다. 즉 하나님께 믿음으로 올라갔던 내가 다시 내려와 이웃을 향해 옆으로 달려가는 것, 그 가운데 비로소 십자가가 나타납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혹은 취약성은 교회 안에서 U턴만 잘하는 그래서 결국 세상 속에서는 십자가를 지지 못하는 나약한 크리스천만 양산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세상 속의 가난한 이웃에게 내려가 그 떡을 던질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하고 맙니다. 진정한 예수의 제자란 그의 일상적 삶에서 십자가가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가려지리라 생각됩니다.
eKOSTA: 교수님의 글 중 <선악과와 무감독시험>이라는 글을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현재 연변에서 일하시면서 한편 평양 과기대 사업으로 분주하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과 평양과기대 설립 사업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진호: 예, 정말 기도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그 대학이 세워져서 북한 청년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정말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래서 더욱 exciting 한 일인 것 같습니다. 평양에 그것도 최초의 순교자 토막스 선교사의 기념 교회 터 위에 세워지는 이 대학을 그래서 저희는 <스룹바벨 프로젝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2007년 평양 대부흥 100주기를 맞이하는 의미있는 시기에 맞추어 이 대학이 우리 민족 화합과 화해 회복 그리고 통일과 번영의 기초를 쌓는 초석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학사동 건물이 5층까지 골조가 올라갔고… 식당, 기숙사의 기초가 된 상태에서 잠시 겨울이 되어 공사를 중단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어떻게든 6개동의 기본 시설을 갖추어서 늦어도 2006년 봄에는 1단계 개교를 할 예정입니다. 많은 물질과 또 헌신자가 필요합니다.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은 연변과기대를 지난 12년간 후원한 단체이기도 하며(www.neafound.org , 86-2-561-2445) 현재 평양과기대 설립을 위하여 북한 교육성과 계약을 맺은 우리측 대표기관입니다. 그 곳에서 평양과기대 건립위원회를 발족했고 위원회의 위촉을 받아 현재 이 구성되어 주로 연변과기대 교수님들 12분 정도가 주축이 되어 건축, 학사, 후원/홍보 및 지산복합단지 건설 등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마침 제가 평양과기대에 대한 생각과 묵상을 위해 컬럼을 올리고 있는 제 3시라는 싸이트( www.3-rd.net )에 올라 있습니다. <평양과기대 설립의의 및 진행 상황>이라는 글입니다. 그 싸이트에 요즘 <떡의 전쟁>도 시리즈로 나누어서 올리고 있고요….(제 3시-> 잔꽃송이 -> 루카스 막힌 담을 허시고로 찾아들어가시면 됩니다.) 사실은 떡의 전쟁은 제 마음 속에 통일과 평양과기대를 생각하며 지속적으로 묵상한 글 모음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코스탄들도 그 싸이트에서 평양과기대를 위해 함께 묵상하며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떡의 전쟁-에필로그> 마지막 부분을 아직 미처 못썼는데… 그 싸이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호에는 인터뷰로 대신하고요.
그리고 평양과기대를 위한 미국 쪽의 공식 웹 싸이트는 www.pust.net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양과기대에 대한 더 구체적인 사진 자료나 최근 동영상을 보시려면 www.webhard.co.kr 로 들어가셔서 id:rthomas, p/w:pust 로 들어가시면 guest folder 에서 많은 자료들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계속 업데이트도 될 것이구요.
eKOSTA: 교수님의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아울러 기도제목을 주시면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진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 민족의 통일에 쓰임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행보가 평양과기대입니다. 물론 통일 이후에는 중국으로 다시 나올 것입니다. 기도제목은…
그리고 저희 가정의 행보를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도록. 제 가족, 제 아내와 아들들, 부모형제들이 함께 이해하고 부르심을 받을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요…. 제 아내가 지금 무척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특별 기도 후원이 필요합니다.
평양과기대가 반드시 세워질 수 있도록, 많은 물질 후원자와 교수헌신자들이 나타나도록. 코스탄들이 각자 있는 자리에서 평양과기대를 위한 홍보요원들이 되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연변과기대가 더욱 든든하게 세워져 가도록 위해서도 계속 기도해 주세요.
eKOSTA: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진호:항상 건강하시고 비전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 기회가 되면 이코스타에 컴백하여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당분간은 제 3시 싸이트에서 뵙죠. 짜이찌엔!
Nov 1, 2004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4년 11월호
헨리 나우웬(Henri Josef Michiel Nouwen, 1932-1996)은 심리학을 전공한 카톨릭 사제이며, Yale과 Harvard 대학 등에서 강의한 교수이면서, 말년에는 캐나다의 데이브레이크(Daybreak)에서 지체 장애아를 섬기는 삶을 산 20세기의 대표적인 영적 지도자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저작 여러 곳에서 고독함과 친밀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매일 정신 없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혼자 있는다는 사실, 고독(solitude)이라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만, 헨리 나우웬에게 고독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며,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변화 받는 공간이며, 피곤하고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물러나와 하나님과만 대면을 갖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Clowning in Rome’은 ‘로마의 어릿광대’라는 제목으로 카톨릭 대학교 출판부에서 번역 출간되어 있으며, 고독과 공동체, 독신과 거룩함, 기도와 묵상, 관상(reflection)과 보살핌에 대한 깊은 묵상을 담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국내 미번역본으로 알고 있어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고독함에 대해 묵상하면서, 고독함을 통해 우리가 세상에서 벗어나 은둔자와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고독함을 통해 우??우리 형제 자매, 혹은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고독함은 바쁜 일상과 복잡한 관계로부터 ‘벗어나 있는’ (time-out)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성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며, 고독함 속에서 공동체와의 친밀감이 자라난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고독함에 대한 깊은 묵상은 현실의 피상적인 상황 너머에서 은밀하고 세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이나 외로움과 같은 고통들을 통해, 나우웬은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슬픔이 기쁨으로 가는 한 과정임을 고백하면서 ‘포도 알처럼 뭉개어지는 순간에는 후에 포도주가 되리라는 사실을 생각할 수 없다’는 묵상을 독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로마에 체재하는 동안의 체험과 묵상을 바탕으로 기록된 ‘로마의 어릿광대’는 공동체와 독신생활 및 기도에 대한 많은 묵상들을 담고 있지만, 제목에서 함축되어 있는 ‘로마’라는 물리적인 공간과 ‘어릿광대’라는 구체적인 인간상을 이해하는 것이 ‘로마의 어릿광대’라는 영적인 묵상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마 시내의 빈 공간으로서의 교회당 그리고 돔
거대하고 분주한 도시 ‘로마’의 도심에 위치하고 있는 성당들의 돔(dorm)을 바라보면서, 나우웬은 기독인의 삶 속에서 침묵과, 고독과, 묵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우웬에게는 몇 백명, 몇 천명이 들어차도 될 것 같은 거대한 ‘빈 공간’으로서의 로마의 성당들과 그 성당을 이루는 돔은 그저 비어있기만 한 불필요한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이 일상에서 물러나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혼자됨(solitude)을 위한 공간이며 그 혼자됨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는 공간입니다. 현대인은 바쁘다는 사실에서, 주변 사람들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조차도 돌아볼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나우웬은 신앙인으로서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러한 교제는 일상에서보다 세상과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난 ‘고독함’ 가운데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고독함은 물리적 시간뿐 아니라 우리 마음을 비우는 일까지를 포함합니다. 로마 시내의 비어있는 돔은 공간적인 낭비와 같이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 그 로마 시내의 성당들과 돔은 복잡하고 바쁜 로마의 한 구석에 여유와 고요함이 존재하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나우웬은 로마의 시내처럼 바쁜 우리의 삶과 마음 속에도 성당과 돔과 같은 비어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정직한 모습으로 홀로 나아가 그분과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나우웬의 묵상은 많은 도전이 됩니다.
‘실없는’ 어릿광대
나우웬은 어릿광대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이 어리석고 쓸데 없는 것 같은 행동을 통해 자신들을 희화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로마와 같이 거대하고, 분주하며 번잡한 도시에서 성당의 돔과 같은 빈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들 가운데에도 타인의 미소를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공허하고 외톨이와도 같은 어릿광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맹수 조련사나 곡예 그네 연기자가 받는 관심과 경이감과는 달리, 우스꽝스럽고 실없어 보이는 어릿광대들은 관중들로부터 동정과 웃음 정도를 받을 뿐이지만, 그들의 쓸모 없어 보이고 무의미하면서도 외톨이처럼 비춰지는 삶은, 그 이면에서 우리에게 희망과, 웃음과 위로와 평안을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어릿광대의 삶은 우리의 염려와 걱정, 그리고 긴장으로 채워진 삶에 미소가 필요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조금씩은 어릿광대와 같은 삶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우엔의 ‘로마의 어릿광대’를 읽고 나서는 하얀 얼굴에 빨간 코를 하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미소를 줄 수 있는 삶의 모습, 자신을 희화화하고 한없이 낮춤으로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커스의 곡예 그네 연기자들에 관해 언급하면서, 나우웬은 그들이 서커스에서 위험한 묘기를 펼칠 때, 공중 그네의 손잡이를 놓으면서 반대편에서 동료가 자신들의 손을 잡아줄 것을 확신하는 서커스 단원들의 믿음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혹은 해야만 하는 유일한 일은 그네의 손을 놓은 일과 자신들의 손을 잡아줄 상대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우웬은 이런 곡예 그네 연기자들의 공연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발견합니다.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잡는 데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놓지 못하고 잡고 있었던 그네의 손잡이를 과감히 놓고, 온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때 일어납니다. 그네의 손잡이를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공중에 몸을 던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결코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기 때문에, 설령 우리가 그분의 손목을 놓칠지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묵상은 하나님을 신실하시고 한없는 사랑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Sharlom Day Care 에서 아이들을 보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어찌 지나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매주 금요일은 제게 어떤 의미에서는 나우웬 신부님의 ‘로마의 어릿광대’에서 말씀하시는 도심의 ‘성당과 돔’과 같은 의미를 갖는 시간이 됩니다. 어린 아이들을 섬기는 작은 일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많은 은혜를 깨닫습니다. 유아부/유치부에서 섬기는 일은, 예수님께서 그분께로 나아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새로이 깨닫는 통로가 됩니다. 어린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고 율동하고 때로 아이들을 위한 짧은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이들 앞에서 낮아지는 제 모습, 하나님 앞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저 역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유치’해지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이들과 하나님 앞에서 ‘어릿광대’와 같이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율동, 그리고 말투를 내보일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어릿광대가 하는 것처럼, 제 작은 행동 하나, 표정 하나가 어린 영혼들이 그분을 느끼며, 행복한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한 斂?학교 일들과, 수업, 시험이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든지 그 아이들 앞에서 제 어려움은 모두 뒤로 하고 온전히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로마의 어릿광대’는 고독함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비록 하얀 얼굴에 빨간 코는 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에 희망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어릿광대와 같은 삶에 대한 성찰과 도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영적인 삶에 내포된 구체적인 요소들인 고독, 독신 생활, 기도 그리고 명상에 대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어릿광대’와도 같은 삶의 실제적인 모습과 적용에 관한 개개인의 깊은 묵상이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 그분이 원하시는 모습과 그분께 기쁨을 드리는 모습으로 나아가기 원하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많은 도전으로 다가오는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Oct 1, 2004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이제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마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15년 정도의 대학교 생활, 그 사이에 군대를 갔던 시기를 제외하면, 거의 대학교 안에서만 생활해 왔습니다. 중간에 때때로 왜 내가 지금 이 길에 있는가라고 몇번씩 생각하고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지금껏 걸어왔습니다. 그 15년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했던가 되돌아 보면 여러가지 반성이 많이 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안에 공부하는 것이 꼭 비생산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사회에 나가서 사회의 일원으로 무슨 일을 해야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지금은 준비하는 단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너무나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순간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달성된 목표뿐 아니라 순간순간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리더 훈련을 위한 교재,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1)를 읽으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로 교재 제목에서도 나와 있는 것 처럼 서로 모순(oxymoron)되는 듯한 Servant와 Leader로서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주셨고 그러한 본을 우리에게 또한 요구하심을 다시금 되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쉽이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문의 영역에서도 분명히 나타나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부담감을 계속 가지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삶을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목표만을 향해서 돌진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가운데에서 어떤 불협화음이나 충돌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시는 삶을 사신 모습이 두번째로 나에게 다시금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나를 왜 이 길로 인도하셨는가? 이런 질문들이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큰 과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학문의 영역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흔히 전문인으로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해 두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말자체가 좀 우습기는 하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를 말하면 좀 떨어지는 학문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세태가 말입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삼류로 되어버린 지는 오래되었고 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철저하게 믿음과 신앙적인 것은 배제되고 인과법칙에 따른 논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한 신앙인으로서 저 또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질문들의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저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이것이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장막을 짓는 일을 함께 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부담을 지우지 않게 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5년동안 연구했던 것을 쉽게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 자신도 같은 과에 있는 사람들의 세미나를 들을 때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때가 너무 많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학문이 너무나 전문화되어 몇몇 사람들만 공유하는 그런 암호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학제간 (interdisciplinary) 연구도 많이 하는 듯합니다.
“Formation and Breakdown of Chromate Conversion Coating on Al-Zn-Mg-Cu 7×75 alloys” 이것은 저의 학위논문의 타이틀입니다. 그리고 아래 있는 영화 포스터는 저의 연구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예를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보셨을 영화, “Erin Brockovich”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입니다. Julia Roberts가 열연했던 Erin Brockovich는 PG&E(Pacific Gas & Electronic) 회사로부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3억3천만불의 소승에 승소하였습니다. 그 PG&E회사가 chromate (Cr6+)를 그들의 엄청난 시설물의 부식, 즉 녹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 이 chromate가 어떠한 오염방지 시설이 없이 결국에는 식수까지 오염시켰고 회사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질병, 유산, 심각하게는 여러 종류의 암까지 유발했음이 판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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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erinbrokovich.com) |
이 chromate가 저의 학위논문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였습니다. 학위 내내 지원을 받았던 Department of Defense, Department of Energy, 그리고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는 이 chromate의 심각성을 알고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 지원 해 오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프로젝트는 항공재료에 있어서 chromate의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항공재료는 가벼운 알루미늄이 많이 쓰이는데, 순수 알루미늄으로는 항공재료로서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다른 물질을 첨가하여 알루미늄합금을 만듭니다. 그 중에서 아연, 마그네슘, 구리등을 첨가한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합금이 보잉747, 777 그리고 전투기 등의 항공재료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알루미늄합금 자체로는 아직도 부식 등의 위험이 있기에 여러가지 코팅을 입힙니다. 그 중에서 chromate를 기본으로 하는 chromate conversion coating이 코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chromate가 사람에게 아주 유독하기에 앞으로 몇년 안에 chromate 사용이 금지될 것으로 판단되어 지금 많은 연구가 대체 물질을 발견하는 쪽으로 투자, 연구되어 왔지만 아직도 chromate와 같은 혹은 더 뛰어난 물질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구의 방향이 chromate의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로 돌아왔습니다.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서 Chromate의 특성을 더 완전히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의 연구는 이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 합금에서 어떻게 chromate 코팅이 형성되는지를 연구했고 그리고 어떻게 이 코팅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약화되고 결국에는 붕괴되는지 연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첨가한 물질과 불순물로 인해서 코팅의 취약한 부분이 있었고 이것이 코팅 전반적으로 치명적인 붕괴의 원인을 제공함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원인들과 결과를 찾기 위해서 여러가지 장비를 이용하고 결과를 제시했던 것이 제 논문의 큰 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제를 5년동안 연구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계속 현상들을 알아갈 때 그만큼 모르는 것도 더 많아 짐을 느낍니다. 밝혀진 사실들이 언제든지 더 발달된 기술을 통해서 더 정확히 밝혀지고 이전의 사실들이 수정 혹은 변경될 수 있음을 느끼면서 겸손할 수 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하나의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마음에 많이 남는 것은 제 자신의 능력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도 교수님과의 토론이 제에게 늘 도전이 되었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실험실에 다른 학생과의 대화 속에서, 세미나 속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위 논문이 결코 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준 많은 분들이 계심을 역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생 고민해야 할 쉽지 않는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적어도 저에게는 주어진 일에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원론적인 결론으로 이르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혹시 저에게 다섯 달란트가 아닌 두 달란트를 맡기시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계신지 모르니깐요. 저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을 주어진 삶과 일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이루어 나가는 것이 신앙과 학문이 통합되는 시작이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1) C. Gene Wikens,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 Nashville, Tennessee: LifeWay Press, 2001.
Oct 1, 2004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종합시험, 종합시험, 종합시험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윤동주, 쉽게 씌어지는 시 중
오늘은 비도 주적주적 오는 것이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식스 스퀘어 방은 남의 나라, 아니 지금 있는 곳은 식스 스퀘어는 더 되는 것같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남의 나라인걸. 혼자 좁은 공간에 고립되어 있다고 느껴질 때, 괜히 나를 감옥에 있었던 다른 사람으로 등치시켜보곤 한다. 사도 바울이 그랬지. 김교신이 그랬지. 그리고 윤동주가 그랬었지 하면서.
유학생활한지 수 년, 이때까지 온 내가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이것밖에 아닌 내가 한편으로는 한심하다.
오늘은 문득 공부를 한다는 것이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들어온 미국 동기들은 벌써 패쓰한 종합시험을 한 학기나 미루고 아직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해보인다.
대학교 다닐 때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이 가장 힘들고, 유학을 준비할 때는 준비과정에 제일 힘든 줄 알았더니 코스워크 과정에서는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것만 지나가면 낫겠지 했더니 종합시험 스트레스는 앞의 것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참 하면 끝이 없이 벌어지는 난관에 인생은 고역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하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언어의 장벽을 실감하고 당황해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 하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긴 하다. 과제와 에세이 준비하면서 끙끙대던 기억들, 좋지 않은 성적과 컴멘트로 속상해하던 일, 프레젠테이션하면서 긴장하던 일들 겨우겨우 넘어서 코스워크까지는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새로운 지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영어는 왜 이리 안 느는지, 글을 읽다보면 걸리는게 너무 많아서 다시 예전에 공부하던 단어장이나 한번 훑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논문을 쓰기는커녕 남의 논문 이해하는데도 이렇게 장애가 많으니 언제나 그들을 따라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 잉여인간, 고민
나는 무엇이 힘든가. 육체적으로? 혹은 혼자 사는 삶의 외로움으로? 평소에 공부를 잠을 못자면서까지 하지는 않으므로 몸이 힘든 것은 아닐 것이고, 혼자 사는 외로움이야 삼십년을 따라오던 것이므로 지금 유달리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가 갖는 심적인 어려움은 가끔은 내가 잉여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나하는 회의 때문일 것이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아직 가당하지 않겠지만 뚜렷한 성과물이 없이 사회에 생산적인 기여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가치물을 소비만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대학을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벌써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가정도 갖고 안정도 되어 있는데 나는 아직도 사전 뒤적이고 있는 것이 슬며시 부끄러운 것이다.
나는 지식인인가 아니면 잉여인간인가? 이제 지식인도 앞에 신(新)자를 붙여서 보이는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지식을 도출해내지 못하면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에 내가 지금 들여다 보고 있는 이 종이 자락에서 무언가를 건져낼 수 있을까? 아니 이 정도의 글이라도 써낼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을까? 그저 백면 서생(百面書生)으로 남아 남들이 만들어놓은 가치에 얽어 붙어 살아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감상(感傷)이나 연민으로 세상을 향하기에는 삶이 너무 무겁다. 사랑과 땀이 고이 담긴 학비 봉투는 무표정한 나의 얼굴을 비장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다른 걱정없이 미국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특수한 시간을 감정의 소회로 보낼 수는 없다.
태어나서 지금처럼 많은 돈을 써본 때는 없다. 또 태어나서 지금처럼 많은 돈을 벌어본 적도 없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한 이후 지금처럼 아끼면서 산 적도 없다. 복사 종이 한장도 돈으로 환산되고 커피 한잔도 절약의 방도를 찾아보게 된다. 집에서 타먹으면 일불이라도 절약할 수 있겠지.
일상의 외관은 철저히 현실주의자가 되어 다른 것을 잊고 전진해야함을 상기시켜준다.
사는데 가난한 것이 마음의 가난함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물 속에 잠수해있을 때 느끼는 숨막힘이 공기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는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인의 삶, 쉽게 씌어지지 않는 시
로렌스 형제가 터득한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순히 자신의 평범한 일상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는 맡겨진 일과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의 마음으로 감당했으며, 늘 자신의 그 사랑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한 것이 되게 하고자 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 중
우리의 성화는 우리가 추구하는 생활을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데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활동들을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뜻인 것같다.
신앙과 학문의 조화, 삶과 신앙의 일치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우리에게 요구한다고 노상 들었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유학생활은 특수하면서도 어느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동일하게 보이는 재물을 위해 살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것인가의 선택의 장인 것같다.
나의 유학생활에서의 성화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합당한 목표와 그에 걸맞는 성실함과 자기 절제로 우리의 삶에 적용될 수 있을까?
헨리 나우엔이 적기를 우리가 지식을 쌓는 이유는 우리의 지식을 자유로이 나누기 위함이고 우리가 절제하는 이유는 주님에게 성실하기 위함이다. 오직 관대하게 우리의 가진 지식을 나누어 줌으로써만 우리는 그 지식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알 수 있다고 했군. (It is only by giving generously from the well of our knowledge that we discover how deep that well is. –Henry Nouwen, Bread for the Journey)
이것이 나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영어 공부가 되었건, 종합시험이 되었건, 학위 논문이 되었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절제하는 것이 신앙의 아름다움의 실체이겠지.
그리스도인에게 Simple Life는 의미없는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절제하는 소박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좇는 우리에게는 오늘 하루의 책상머리맡은 하나님나라에 하나의 벽돌을 얺는 신성한 삶의 자리인 것이다. 나에게 오늘 하루는 더 이상 그저그런 일상이 아니라 일일 일생(一日一生)으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완결성은 아직 먼 일이지만 오늘 하루가 달라지만 일생이 달라지리라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희망을 주어본다.
학교의 해거름 생량(生凉)한 찬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준다. 혼자 내 속으로 침전하기 전에 주위를 돌아본다. 삶이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교정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