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일터로, 학교로 돌아가는 코스탄들에게 송병주 목사님께서 시편 113편을 본문으로 ‘먼지더미에서 일으킨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믿음은 자기 암시나 자기 강화가 아닙니다. 과잉믿음은 두려움의 표시일뿐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라는 인정과 주는 완전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며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해석과 의미를 찾아주는 은혜입니다. 고통과 고난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되게 합니다. 상황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사단이 망쳐놓은 훼방과 공격조차 하나님이 하신 일로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먼지더미와 거름더미에서 절망과 두려움에 쌓여 있습니다. 두렵고 무서운 곳에 추락한 상황에서 성육신하신 예수님, 무덤까지 내려가신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고백합니다. 먼지더미, 거름 더미에 있지만 그 더미에 들어와 있는 예수님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나만 있는 줄 알면 두려움이지만 같이 들어와 계신 주님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은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믿어주고 계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지더미와 거름더미를 보지 말고 그곳에 같이 들어와 있는 주님을 봐야 합니다. 그 속에서 “아들, 딸아 내가 도와줄께”라고 우리를 믿어주시는 주님을 봐야 합니다. 그 믿음이 나를 믿게 할 줄 믿습니다.
저는 교육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교육측정 전문가로 시카고 근교 시험관련회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젠 다 자라서 경제적으로 독립한 20대 후반의 두 아들이 있고, 30년째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93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94년에 조장으로 처음 코스탄이 되었고, 졸업후 멘토로 강사로 코스타와 함께 했습니다. 동부지역 한인청장년을 위한 킹덤 컨퍼런스와 젊은 목회자들과 비목회자들의 리더쉽 양성을 꾀하는 Korea Leadership Diaspora Center등을 통해서도 몸과 마음을 보태어 왔습니다. 15년 이상 미국교회에 출석하다 올해 한인교회에 등록하고 새가족반을 마쳐 오랜만에 한인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2. 현재 하시는 일과 관심사는 어떤 것인지요?
저는 시험을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에서 교육측정 연구부서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의 시험들의 점수 분포등을 고려해서 지금의 시험 데이타로 가장 타당하고도 신뢰로운 점수를 개발하는 것이 기본적 일입니다. Pencil and Paper시험을
Computerized adaptive 시험으로 바꿀 때 수많은 연구과정을 거치고 현실을 감안하여, 가장 공정한 시험 점수를 학생들이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수업이나 학습에 유용한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매일의 일과를 시작하곤 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루 7시간 반의 시간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간임을 고백하는 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저의 중년의 때를 온통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이 세상 모든 가난하고 억눌린 이웃들에 대한 관심도 많습니다.
3. 이번 코스타에서 맡으신 순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몇년만에 코스타에 돌아와 중보기도실 멘토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중보기도실은 코스탄들이 등록할 때 제출한 기도 제목을 시작으로, 모든 프로그램 진행과 안전, 그리고 중보기도함이나 조장 또는 친구들로 부터 전해진 기도들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코스탄들의 기도를 하나님의 원대한 역사 속에 참예하도록 올려드리는 곳입니다. 이를 위해 담당간사님들과 컨퍼런스 기간 동안 오로지 기도만을 위해 오시는 다양한 연령의 풀타임 기도 자원봉사자들을 섬기면서 함께 기도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올해 참석하는 코스탄들에게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컨퍼런스 기간중에 2013년에 올린 페북 포스팅이 메모리 창에 다시 눈에 띄였습니다. 코스타 마지막 날 새벽에 깨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그건 청년의 때에 아프다” 그리고 기성세대로서 강사로서 미안한 마음으로 무릎꿇고 기도하며 펑펑 울며 쓴 글이었습니다. 6년이 지나 기도실에서 컨퍼런스를 보낸 지금은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그건 (토요일에 에베소에 사는) 믿는 이들의 생애는 아프다”. 이미 컨퍼런스를 마치고 돌아간 시간일텐데 우리 코스탄들이 세상을 향한 두려움을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두려움과 믿음으로 바뀌어가는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내년에는 여러분들중에서도 기도실 자봉들이 여럿 등장하시길 또한 바래봅니다.
안녕하세요,
최자현입니다. 저는 미국에 사는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제가 속한 곳의 샬롬을 이뤄가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40여개국에서 온 난민들이
6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클락스턴의 샬롬.
분단의 아픔이 존재하는 한반도의 샬롬.
이번 코스타에서 만나게 될 많은 만남들을 통해서 함께 샬롬을 경험하고 함께 샬롬을 이뤄갔으면 좋겠습니다.
2. 현재 하시는 일과 관심사는 어떤 것인지요?
지금은 남편과 함께 미국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다채로운 동네라고 불리는 조지아 주 클락스턴에서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활동하고있습니다.
리제너레이션은 ‘글로벌 디아스포라’인 난민과 이민자 출신의 청소년들이 피스메이커로서의 정체성과 꿈을 찾고 분열된 사회를 회복하는 리더로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이와 관련된 여러가지 교육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또 여성으로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지,
그리고 분단을 극복한 후 한반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또 그것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클락스턴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그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3. 이번 코스타에서 맡으신 순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번 세미나 강의를 통해서 ‘난민’이라는 주제를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예정입니다.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
기근, 핍박 등으로 인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한 상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이웃으로 찾아온 난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성경은 난민과 이방인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나아가 클락스턴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난민을 어떻게 환대해왔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의 샬롬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사례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4. 올해 참석하는 코스탄들에게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만남과 교제를 기대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집회를 통해서 은혜 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코스탄들의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살아낼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격려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 청년세대가 두려움을 넘어 믿음을 가지고 이뤄내야 할 시대적 과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축복합니다.
코스타 세번째 날 저녁집회에서 노진준 목사님께서 계 11:15-19의 본문으로 ‘하나님의 신실함, 나의 신실함’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해주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신앙인들은 불순한 반항아로 취급받았습니다. 로마제목 당시 기독교인들은 관습과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반항적인 집단으로 보였습니다. 반란을 도모한 적도 없고 앞장서서 반대를 하거나 여론몰이를 한 적도 없었지만 로마제국이 볼 때는 가장 위협적인 반항단체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믿는 것에 분명한 소신과 확신을 가지고 있어 어떤 지점에만 이르면 타협을 불허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하에 쓰여진 계시록의 주제는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성도들은 현실은 열악하지만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확신 속에서 저항적인 감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감사를 통하여 현실을 저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월터 브루그만 교수는 안식은 저항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은 세상의 질서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는 자주 세상의 질서에 굴복하는 감사를 하기도 합니다. 매정한 이기심을 담은 감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지러운 이 땅에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사에는 우리는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는 저항적인 의식이 있어야 하고, 내가 누리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상실과 아픔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나눔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저항적 의지로 일용할 양식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하여 감사하고 이 저항적 의지로 불편하고 어려운 중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이웃과 나눔으로 그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벗어나는 길은 우리의 의지를 내려놓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데 있습니다.
2019 코스타 네번째 날 We with God의 날은 박영호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24:13-25의 본문으로 ‘목마른 사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라는 제목의 설교를 해주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엠마오 제자들은 좌절, 낙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이는 예수를 따라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회복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기 때문에 가져야 했던 낙담이었습니다. 희망을 따라 나섰기 때문에 처했던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무명의 제자들,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며 이는 모든 사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때 삶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엠마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자 말자 그리스도는 그들의 눈 앞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재를 아쉬워하지 않고 발걸음을 바꿔어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3인칭에서 2인칭으로 변화된 것을 본문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2인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삶에 들어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의 능력이 그들에게 임하였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예수님의 신실하심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걷는 내내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분께 관심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피하려 하지 말고 희망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댓가를 지불합시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과감하게 꿈꾸고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완전히 정리된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용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 끝에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근본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로부터 나오는 용기라고 하겠습니다.
좋은 신앙서적이 코스탄들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뜁니다. 오늘의 책소개는 이화정교수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코스타 세번째 날 저녁집회에서 노진준 목사님께서 ‘나의 신실함, 하나님의 신실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해주셨습니다. 느헤미야서 8:1-6을 통하여 낙심될 때, 절망스러울 때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힘들고 절망스러운 현실에서 길고 지루한 치열한 윤리적, 영적 싸움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잘 할 수 있다는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수없이 실패함에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실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주인이 되려는 죄인인 것을 인식하고 철저하게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려는 몸부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나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믿음의 성숙과 성화는 결코 독립을 한다는 힘의 추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쉽게 기대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의 이미지에는 오히려 힘의 원리가 숨겨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성숙은 독립이 아니고 오히려 철저한 의존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한 시간도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음이 진정한 성숙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안 되고 그 은혜를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은혜와 그로 인해 주어진 변화 때문에 우리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속적인 실퍠에도, 열악한 환경에도 우리가 절대로 주저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아직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넘어짐을 반복함에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땅을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고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신실함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코스탄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묵상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지해서 살아가겠다고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