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0, 2012 | 찬양과 예배/이유정의 예배를 이야기하자
<트와일라잇 – 브레이킹 던>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소설 ‘트와일라잇’은 1억 50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총 3편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전 세계 흥행수익 18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국에서도 이 영화에 540만 명이나 몰렸다.
특히 20대가 이 영화에 안달이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되었다. 줄거리가 너무 뻔하다. 늑대인간과 불멸의 뱀파이어, 그리고 인간 여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 해프닝이다. 아주 유치한 판타지이다. 깊은 이성적 성찰도 없고, 반지의 제왕(Lord of Ring)이나 해리포터(Harry potter)처럼 복잡한 복선도, 외워야할 지식도 없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흐르는 감정이 있다. 바로 ‘친밀감’이다. 여기에 요즘 미국 20대의 코드가 담겨 있다. 그동안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던 뱀파이어를 너무나 따스하고 친절한 남성으로 그리고 있다. 인간 여성인 벨라의 내면적 연기도 짙은 사랑의 감수성으로 영화 후반부까지 진지하게 끌고 간다.
늑대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누군가가 각인되면 그를 영원히 신실하게 지켜준다. 바로 그가 사랑하는 벨라가 그의 마음에 각인 되어 그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적 사랑을 보여준다. 복잡한 복선도 없고, 아주 일상적이고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까지 손을 움켜쥐게 하는 긴장감과 친밀한 감수성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요즘 한국의 20대는 아주 독특한 세대이다. 한국 역사상 이런 세대가 없었다. 의식도 없고, 예의도 없고, 소명감도 없고, 사회, 정치, 환경에 대한 관심도 없다. 할 줄 아는 건 영어밖에 없고 오로지 성공의 가치에 모든 걸 거는 듯하다.
지금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20대’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고 클릭해보라. 첫 번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들이 출력될 것이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2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지식> <20대여, 지금 당장 주식에 투자하라> <대한민국 20대, 인테크에 미쳐라> <여자 20대, 몸값을 올려라> <20대에 시작해 평생 고수익 올리는 금융 재테크> <20대 여자가 꼭 알아야 할 돈 관리법> <대한민국 20대 여자의 재테크는 남다르다> <20대 직장인 부동산에 빠져라> <대한민국 20대, 내 집 마련에 미쳐라>. 경제 분야에 한정해서 검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모두들 20대가 경제에 ‘미치길’ 권유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사실 20대의 더 큰 필요는 다른 곳에 있다. 그들이 돈에 미쳐있는 이유는 단지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미와 놀이보다 일과 스펙과 성공에 미쳐있는 20대, 그래서 오히려 이들은 더욱 친밀감을 원한다.
예배야 말로 친밀감의 원천을 제공한다. 교회는 예수를 머리로 한 몸 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3) 몸과 머리의 관계는 계산적이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중요하게 여기고 아끼고 보호한다. 이 보호는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것이 지상교회의 특징이다. 그래서 성도의 관계는 친밀한 가족관계이다.
오늘날 교회에 이 친밀감이 사라지고 있다. 교회가 무슨 비즈니스 회사같이 합리적인 시스템에 목을 맨다.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나와야 하는 효율성을 추구한다. 일하고 봉사하고 사역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 많은 예배 외에도 서너 가지는 기본인 봉사에 각종 위원회 회의, 행사 준비, 리더 훈련까지 받으니 매 주일마다 초죽음 아닌가? 성도는 교회성장의 부속물이 아니다. 담임목사의 꿈과 비전에 쓰임 받는 도구가 아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심각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바로 예배이다. 절대자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마음껏 누리는 가족 공동체가 되었을 때 교회는 비로소 20대를 품고 미래를 준비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 이유정 목사(예배사역연구소 대표)
Jan 1, 2012 | 기독교적 세계관/이인엽의 예수의 국제정치학
젊은 시절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민주화 운동의 대부이자,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몇 안되는 정치인으로 일컬어지는 김근태 씨의 죽음이 많은 이들에게 추모열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편, 김근태씨의 죽음앞에 눈물흘리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지금은 목사가 된 이근안 경감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리던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 목사가 되었냐고 황당해 하며 분노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동시에 저는, 기독교인이 되고 목사가 되면서 오히려 이근안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뻔뻔해진 부분도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이근안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나쁜놈을 넘어서 상당히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관련자료: 김근태 ‘예술고문’한 이근안, 지금은 목사?
http://blog.donga.com/sjdhksk/archives/10028


예를 들어 2005년 여주교도소에 면회를 온 김근태씨에게 그는 용서를 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 상임고문은 당시 사죄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씨를 보고 진정성이 의심돼 차마 “용서한다”고 말하지는 못한 채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6년 11월 복역이 끝나고 출소하면서 이근안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그 시대엔 애국인 줄 알고 했는데 지금 보니 역적이다. 세상사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한 회개나 진정성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2008년 이근안은 목사안수를 받고 이후 간증집회를 다니면서 보다 뻔뻔하게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 하는 발언들을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해 한 보수 단체가 주최한 외교 안보 포럼에서 그는 “내가 직접 조사해 간첩 혐의로 형을 받은 범죄자들이 버젓이 국가 기관에 의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한없는 좌절감을 느낀다”며 “나 자신이 한 사람의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2010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밝히면서,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했고, 김근태씨에 대한 전기고문에 대해서도 “내가 취미삼아 만든 모형 비행기 모터에서 ‘AA 건전지 2개’를 가지고 겁을 준 것뿐”이라 하며 부인했는데, “두 시간 넘게 말로 겁을 주고 건전지로 찌릿찌릿한 감각만 느끼게 해서 실토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김 상임고문을) 신문해서 단 몇 시간 만에 노동계와 학원에 침투한 조직을 캐내 전원 검거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김근태씨는 1985년 20여일간 8차례의 전기고문과 2차례의 가혹한 물고문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평생 비염과 축농증을 앓았고 2007년 파킨슨병 진단도 받았습니다. 이근안은 이미 재판을 통해 확인된 고문에 대한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의 윤리적 판단은 주변사람들이나 자신의 준거집단의 반응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과 세리 삭개오의 만남에서 그가 자신의 사회적 악행을 돌아보고 배상을 하겠다고 한 것은 사람들의 ‘수군거림’ 이후였죠. 저는 이근안이 이렇게 대담해 진 것에는, 그가 분명한 사회적 회개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 목사안수를 준 교단의 책임이 있고, 또한 주변에서 그의 행위를 ‘간첩과 좌파를 때려잡은 애국 행동’으로 합리화 해준 기독교인들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무고한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한 이근안의 죄 보다, 더 무서운 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신학대학원 졸업을 앞둔 이 씨에게 대학 총장은 목사 임직을 시켜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고, 신학교 내부적으로 토론을 벌여서 “목사 임직 허가였지만 정치 활동을 안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하며, 이 씨 스스로도 교정선교회 활동에만 충실할 것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근안 아니라 그보다 더한 죄인도 회개해서 새 사람이 될 수 있고, 목사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혁명성이죠. 그러나 그 전에 분명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에게는 사죄하고 할 수 있는대로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회개이며, 교회는 이것을 가르치고 점검해야 합니다.
신학교에서는 정치 활동을 안하는 조건을 달았다고 하는데, 문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분명한 회개 – 개인적 회개 뿐 아니라 사회적 회개- 를 하지 않은 이근안에게 목사안수를 주는 것 자체가 엄청난 정치적 선언(즉, 기독교는 사회정의에 전혀 관심이 없고 독재정권하의 고문행위를 죄로 보지 않는다는)이라는 것이고, 이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하는 이근안의 발언들 자체가 엄청난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종을 키워낸다는 신학교와 교단에서 이런 사회적 상식조차 없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근안은 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측 총회신학교 통신신학부 4년 과정을 옥중에서 밟았고, 현재 예장 합동개혁(총회장 정서영 목사) 소속 목회자, 그리고 한국교정선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화된 복음의 문제와 사회적 차원의 결여, 그리고 그 결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기독교의 회개와 복음을 개인의 윤리적 차원, 그리고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만으로 축소시킨 현재 보수기독교의 신학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원죄사건을 보면 죄의 결과는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다른 인간과의 관계(아담과 하와),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아담과 땅) 모두를 파괴시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 하나님 과의 관계 차원 뿐 아니라, 인간관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관계 모두에서 회개와 회복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죠.
온전한 용서와 회개에 관해, 김영봉 목사(워싱턴한인교회)는 다음과 같이 설교한 바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성서를 바탕으로 가르쳐온 용서는 그렇게 값싼 것도 아니고, 무책임한 것도 아닙니다.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는 온전한 용서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회개의 3R(Three R’s of Repentance)이라고 부르는데, 첫째가 Repentance(회개), 둘째가 Restitution(보상), 그리고 셋째가 Reformation(개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repentance이며, 자신이 끼친 잘못에 대해 어떻게든 보상하는 것이 restitution이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고치는 것이 reformation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온전한 회개입니다.”
영화 ‘밀양’은 이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주인공 신애는 자신의 아이를 유괴해서 죽인 범인이 옥중에서 예수를 믿고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며 환하게 웃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 밀양과 몰트만의 강의를 다룬 글을 하나 추천합니다. 특히 첨부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에 대한 몰트만의 강연내용은 꼭 읽어볼 만 합니다.
박치현, 영화 <밀양>의 질문에 세계적 신학자는 뭐라고 대답할까?
http://blog.daum.net/ursangelus/8484652
중요한 것은 4영리식의 단순화된 복음은 개인적 차원의 영적 회개만으로 가해자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고,피해자에게 너도 똑같은 죄인이니 아무말 하지 말아라 하면서 정의의 회복을 무시한다는 것이죠.
한번은 미국 TV에서 살인죄로 복역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한 죄수의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다른 죄수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그는, 성경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한다 하면서,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죄나, 평소에 거짓말 하는 일반인들의 죄나 다르지 않다고, 아주 대담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일견 복음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만일 거짓말 한 사람이 회개하면서 내 죄가 살인죄나 다르지 않다고 하면 이해가 가지만, 살인한 사람이 내 죄가 거짓말한 사람의 죄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이건 미친소리이기 때문이지요.
최근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여성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을 변호하면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이 말이 감동을 주기는 커녕 코메디 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시대 가장 낮은 성매매 여성을 불쌍히 여겨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힘과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의 성희롱을 무마하자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는 말도 했다는데, 이는 마치, 우리 정치인들이 다 썩은걸 몰랐냐, 이정도 일로 왜 놀라고 그러냐라는 윤리의식의 실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단순화 된 왜곡된 복음은 죄에 대한 깊은 회개가 아닌, 오히려 뻔뻔함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단순화된 신학 뿐 아니라 역시 역사의 무게가 실려 있는데,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죄와 군사독재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했던 보수교회의 죄를 감추고 합리화 하기 위해,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거세해 버린 교회의 역사가 그 뿌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가르치는 회개나 구원은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의 보다는, 중세시대 면죄부에 훨씬 가까운 것이죠.
중세시대 면죄부가 교회가 윤리적 경제적 권력을 갖기 위해 남발 된 것처럼, 이러한 값싼 용서가 보편화 된 것은, 권력에 밀착하려던 보수교회의 욕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것처럼 교회 자체가 신사참배와 군사독재협력의 죄가 있어서 뒤가 구릴 뿐더러, 교회가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가진 이들을 흡수함으로서 영향력을 갖고 싶어 했던 것이죠. 동시에 권력을 잡고 있는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은, 보수교회가 제공하는 종교적 장치를 통해 세상의 부귀영화 뿐 아니라, 양심의 가책으로부터의 자유, 집사 장로등으로 상징되는 종교적 권위, 그리고 내세의 구원까지 누리게 되어 양자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 이지만 한홍구 교수의 글에 따르면 이근안의 고문기술은 일제시대 악질 경찰로, 독립군을 고문했던 노덕술에게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다음 글 참고.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 http://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1/05/021075000200105220360052.html )
결국 왜곡된 신학과 사회적 죄들은 상호작용하며, 정의를 배신한 자들이 교회안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이제는 교회의 주류가 된 것이죠. 그리고 이들이 가진 ‘친미반공 자본주의 정신’이 예수의 복음을 대체해 보수 기독교의 핵심적 가치와 원리가 되어버립니다.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의 종교가 되어 버린 ‘기득교’의 탄생입니다.
물론 ‘친미반공 자본주의’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반미용공 반자본주의’가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이 두가지로 재단할 수 있다고 보는 그 ‘단순무식성’, 그리고 친미반공자본주의로 판단되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우기고, 반대로 반미용공반자본주의라고 낙인 찍은 것은 무조건 악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마녀사냥적 태도’가 엄청난 문제를 야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미국에서 살고 있는 교포 몇분과 대화를 한 적 있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는 교회 장로, 집사님들이었고, 인품도 좋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뜸,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은 빨갱이다’라는 무지막지한 말을 하셔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보시냐 했더니 복지예산을 펑펑 써서 나라가 망할 거라는 거였습니다. OECD 30개국가중 복지예산이 거의 최하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인데, 복지예산을 올려서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도 황당할 뿐더러, 서울시민 다수가 뽑은 시장을 너무나 쉽게 빨갱이라고 하는 발언도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곧 망해아 맞겠죠. 한미FTA반대나 촛불시위도 무조건 빨갱이라고 해서, 여쭤보니, 반미, 반자본주의기 때문이랍니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도 ISD 문제 등, 현재 진행되는 한미FTA는 문제가 많다고 하고, 국익 차원에서도 득보다 실이 많다는 비판이 있는데, 반대의견을 단순히 ‘빨갱이’라고 매도할 수 있다는 그 ‘사고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친미반공 자본주의로 판단 되는 것은 무조건 선이요 아닌 것은 악이라는 단세포적 사고가 아무런 문제 없이 표출될 수 있는 것이 보수기독교인들의 논리라는 것이지요. 이런 얘기를 밖에서 하면 단순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을텐데, 보수 교회안에서 얘기하면 놀랍게도 ‘아멘’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근안이 연결되는 지점도 이것입니다. 이근안의 행위는, 민주화 운동가들이나 간첩으로 지목된 무고한 사람들을 불법으로 고문한, 기본적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시한 악행이라는 ‘상식’ 보다도, 간첩이나 좌파를 때려잡기 위해서는 그정도도 괜찮다는 친미반공 자본주의의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그의 행위는 ‘애국’이 되며 국민들의 비난으로 가졌던 약간의 반성이나 수치심 마저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보수기독교의 프레임이 이근안에게 뻔뻔함과 용기를 주는 것이죠.
잘 아시다 시피, 이러한 프레임은 미국내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에도 유사하게 작용합니다. 무식한 발언들로 웃음거리가 된 사라 페일린을 하나님이 이 시대의 에스더로 세웠다는 예언이나, 오바마는 이슬람교도 혹은 사회주의자이고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근거나 상식이 무시된 주장들이 아주 잘 통하는 것이 미국의 근본주의 보수기독교이지요.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이나 언론(한국으로 치면 한나라당과 조중동, 미국은 공화당이나 티파티, 폭스뉴스 등)도 이렇게 단순무식한 논리를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물론 생각은 다르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서 사용하지요. 하지만 보수 기독교가 보이는 이러한 단순무식한 입장은, 보수 정치세력과 보수 언론에 가장 큰 지지와 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근본주의 세력의 특징이 바로 인간의 삶과 사회적 현상의 복잡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아주 조악한 신학적, 사회적 프레임을 가지고서 타인의 삶과 사회를 판단하려 들고, 나는 답과 진리를 알고 있다라는 태도로 접근하기에 세상의 조롱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역시 충격적이면서 상징적인 사건 하나가 2010년 한국에선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6월 22일 개최된 평화 기도회에 간증 강사로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부시’를 초청한 사건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그 명분이 되었던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조직과의 연계성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 것 외에는 그 결과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미군과 다른 연합군에서 사망자가 7500명 이상 발생했고, 최근 참전 미군들 중 전쟁후유증으로 많을 때는 하루에 18명씩 자살 한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라크 측에서는 자그만치 백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통계가 있고 18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충분한 증거도 없이 그러한 전쟁을 밀어붙여 이러한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부시를 평화기도회에 주 강사로 초대한 것은, 개인적으로 마치 한편의 ‘거대한 부조리극’, 혹은 슬픈 코메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에 항의하러 갔던 기독청년들은 “당신의 평화에는 너무 많은 피가 흘러”라는 팻말을 들고 갔는데,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평화라는 것이 내가 십자가를 져서 화해와 용서를 가져오는 예수의 평화가 아닌 힘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희생자를 만들어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어떤 삶을 살든 자기 스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born-again Christian)이라고 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우리의 회개에 대한 관점도 잘 보여주고, 또한 친미반공 자본주의의 틀로 얼마나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지도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그리고 미국에서 6년정도 체류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안타깝게도, 사회에서 가장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정치적 사회적 분별력이 가장 낮은 집단이, 바로 한국과 미국의 근본주의 보수기독교인들이라는 점입니다. 보수 기독교의 사회적 죄악을 합리화 하고, 또 교회 안에서 목사의 절대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우민화 정책의 결과, 이것이 이제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지와 독단의 사회적 동력’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결국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이 볼 때, 말도 안통하는 기괴한 집단, 즉 “괴독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선배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이근안과 관련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아렌트는 2차 대전중 유태인 학살주범으로 1962년에 처형된 아돌프 아이히만이 알고 보니, 개인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악의 일상성’을 설명하는데, 개인의 도덕만을 다루고 사회적 분별력이 없는 인물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지적해 주었습니다.
비슷한 인물로 박정희 시대에 ‘차지철’이라는 사람은 아시다시피 독재권력의 하수인으로 충성을 다했는데, 그는 개인적으로 교회 집사였고,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아서 자신이 충성해 마지 않는 박정희가 주는 술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술 마시지 말라는 기독교의 개인윤리에 충실한 사람이 독재정권의 오른팔 노릇을 하다가 총맞아 죽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예로 전두환의 오른팔이었던 ‘장세동’이라는 인물은 청문회때 자신의 가방에 늘 성경을 가지고 다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고 교도소에 있을 때도 교도관이 감동할 정도로 매일 성경을 묵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광주 학살의 주범중 하나였고, 박종철 사망사건, 그리고 한 가족을 억울하게 파멸시킨 수지김 간첩 조작사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목사가 된 이근안 경감이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교회 장로인 ‘그분’까지, 결국 이들은 권력과 결탁하고 복음을 왜곡시킨 보수교회가 낳은 ‘괴물’들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 그리고 기본적인 사회 정의에 대한 의식도 없는 집단으로 이해 받는 보수 기독교는 이제 ‘개독교’로 불리웁니다.
결국 오늘의 문제는 보수 교회가 사회참여에 관심이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리고, 빛과 소금으로서 사회의 어둠과 악을 정화하는 역할을 못한다는 문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일부 근본주의 보수 교회들이 뿜어내는 오염이 사회를 심각하게 어지럽히는 수준이 된 것입니다. 저의 지적이 과하다고 생각하시거나 불편하신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현실은 이런 제 표현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보수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프레임인 ‘단순화된 복음’과, ‘친미반공 자본주의’를 금과옥조로 하여 세상을 마녀사냥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깨고 나가지 않으면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한기총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 보수기독교회의 행보가 언제나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길을 고민하고 사회의 개혁과 정의를 바라는 교회들 모두가 싸잡아서 “개독교, 괴독교, 기득교”로 치부되고 있고, 이러다가는 역사와 국민들로부터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선한영향력을 소망했기에 우리가 잘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다면, 이제는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역시 동일하게 우리만 잘해도 세상이 바뀔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적이었고 원칙을 지키려던 또 한명의 바보정치인 김근태의 죽음과,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 경감의 뻔뻔함을 보면서, 오늘의 교회를 다시한번 고민해 봅니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웬만한 분들은 한번 쯤 생각해 보았을 부분이지만, 답답한 마음에 2011년이 저물어가는 이시간에 긴 글을 남겨 봅니다.
2012년은 새로운 희망의 해, 예수님의 이름이 영광받으시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Dec 30, 2011 | 선교 전략/조윤이의 정의라는 이름의 사랑
“내 풍만한 가슴 골격을 보고 색욕을 느껴보세요! 내 날씬한 허리라인을 만지고 싶지요? 내 탱탱한 엉덩이에 눈이 가서 후끈 달아오르시지요? 내 매끈하게 쭉뻗은 다리가 당신을 유혹하나요? 내 눈짓과 몸놀림을 보고 욕정이 불타오르시겠지요! 나는 상품가치가 높은 물건입니다. 나는 상품입니다. 나는 당신의 섹스욕구를 건드려서 미친 망둥이처럼 뛰놀게 하는 상품입니다. 나를 마음껏 즐기세요! 나를 애용하세요!
<–어지간한 걸그룹 뮤직비디오는 노래 가사에 상관없이 죄다 이 메세지를 정말 신실하고 열심히, 힘차게 외치고 있다. 미치겠다. 난 정말 마음이 불편해 미치겠다!
빛의 자녀들아, 함께 일어나자! 우리 빛을 발하자!”
위의 글은 어느 한 선교사가 엘에이 사역방문중 한국 팝 문화를 보면서 통분하며 쓴 페이스 북의 status 글이다.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좀 비약이 심하다’ 혹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건데,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뭐가 문제라고’ 혹은 ‘맞아, 내가 다 부끄러워! 저것들 쯔쯔’ 혹은 ‘내부 깊숙한 곳에서의 분노’ 혹은 ‘아픔’ 혹은 ‘연민’?
필자는 엘에이의 한인 타운의 유흥가에서 일하는 몇몇 여성들을 알고 있다.
한 선교단체의 선교사 후보생으로 있으면서 섬기고 있던 교회 청년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새신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노래방으로 포장된 룸쌀롱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그녀에게 전도(?)되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이들이 마피아나 갱 혹은 포주들에게 붙잡혀 있는 성매매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이냐고? 성매매 인신매매의 피해자인것은 맞는데 당신이 아는대로 물론 강제로 붙잡혀 있는 포로들은 아니다.[1]
성매매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분들이 노예라고 할 수가 있냐는 질문을 한다. 그들이 강제로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닌데, 섹스가 좋거나, 돈 좀 쉽게 벌려고 혹은 명품 중독에 편하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며 그렇게 사는 여자들이 대부분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들이 선.택.한. 삶.이라는 거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그렇게 쉽게 선택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깨어진 가정에서 어릴적에 미국에 맨몸으로 혼자 버려진 아이. 어릴적 친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면서 자란 아이. 불법으로 체류하며 유흥가에서 돈을 벌어서 한국으로 여전히 생활비를 보내고 있는 아이. 공부는 애초부터 타고난게 아니었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무언가 실력을 개발할 기회는 커녕, 당장 빚쟁이에 쫒겨다니며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 가진건 나름 남들이 말하는 이쁘장하다는 몸뚱이 하나뿐. 세상은 섹시한게 착한거라는데.
다른 방법은 없었느냐고 묻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니, 분명 있었을 겁니다. 당신이 조금만 다른 선택을 해서 더 열심히 살았으면 지금쯤 혁신적인 한 회사의 젊은 CEO가 되었거나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처럼. 혹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런 류의 책을 출판하는 유명한 법조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아니,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신의 부모님들이 늘상 언급하시는 그 엄친아 엄친딸 만큼쯤 될 수도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그 길 뿐이었다고 말하는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 누구도 쉽게 ‘이렇게 저렇게 했었어야 했다’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거다.
전에 언급한 네파리어스 다큐에 나오는 한 전문가의 인터뷰에 의하면 보통 미국 여성 세명중 한명이 성폭행의 경험이 있는데, 성매춘 현장에 있는 여성들의 경우는 그들의 90%이상이 어릴적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냥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거기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미국의 남성들의90%는 8세에서 16세 사이에 포르노그래피를 처음 보게 되는데 그 평균나이가 11세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포르노를 보는 소비율이 전세계 포르노 소비율 랭킹 1위인데 2위를 차지한 국가에 비해 그 소비율이 다섯배 이상이란다. IT 산업의 최강국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정마다 인터넷 광케이블이 깔렸던 때가 X양 비디오가 처음 터졌을때라는 것은 IT 산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비들이 음란물을 보기위해 인터넷을 깔았고 자녀들이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서 어릴적부터 포르노를 보면서 자라온 것이다.
그들이 듣는 음악과 가수들의 몸짓들은 계속적으로 성적인 유혹을 불러 일으킨다. 어릴적부터 쉽게 접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야동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이게 정상처럼 여겨지는 문화가 되었다. 여자 연예인들의 옷차림과 춤사위와 그들의 표정은 여느 스트립바에서 볼만한 여성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들은 여과없이 공영방송에 흘러넘치고, 소녀들은 그 여자 연예인들을 말 그대로 그들의 아이돌(Idol)로 삼는다.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며.
서두에 인용한 글처럼, 소녀들로 구성된 걸그룹의 유혹적인 메세지에 그 비슷한 또래의 자녀들을 둔 아비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그리고 옆에서 그의 딸들은 그 춤을 따라한다. 아비가 딸을 성폭행 했다는 뉴스가 종종 미디어에 올라오는 것은 이런 문화가운데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는 어쩜 당연한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한 단면이다.
어릴적부터 음란문화에 그대로 노출되어온 남성들에겐 이미 여성은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한 도구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남성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자랐으며, 세상의 과대성애화된 문화가 섹시한것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는 가운데 이미 그 정체성이 망가져 있는 어떤 여성들에게는 유린당하고 강간당하는 것이 일상이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 돈으로 지불까지 한다는데에야 오히려 감격스러울 수 밖에. 마치 ‘이제야 내가 사랑받거나 인정을 받고 있구나’ 자부심까지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삶에 매춘이 들어오는데, 통계에 의하면 여성들이 매춘을 시작하게 되는 평균 나이가 열세살 이란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들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나가요 언니들’이라고 비아냥을 섞어서!
누가 열한살의 남자아이에게 여성들을 돈으로 사서(포르노) 마스터베이션을 하라고 가르쳤는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다 포르노를 발견한 열한살 소년이 바로 당신은 아니었는가? 깨어진 가정에서 혹은 직장이나 유흥으로 바쁜 부모대신 자리를 지켜줬던 TV 앞에서 연예인들 춤을 따라했던 열두살 소녀가 당신은 아니었는가? 혹은 아무도 보지 않을때, 은밀한 곳에서 슬며시 야동을 틀어 본적은 없었는가? 당신은 걸그룹의 춤사위를 보며 박수치지 않았는가? 당신은 연예인들의 야동운운하는 저질대화를 시청하며 함께 웃어본일이 없는가?
돈을 위해서라면,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을 희생해도 상관없었던 우리 부모세대 혹은 우리 세대가 계속해서 성상품화와 성산업을 키워왔고 그 음란의 문화는 지금 자녀 세대가운데 60배 100배 1000배의 열매를 맺고 있다. 이제 자녀세대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상관없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어릴적부터 음란의 문화에 잠겨 자랐던 열한살짜리 남자 아이가 40대에 50대에 무엇을 하고 있을것 같은가? 5살 6살 7살된 아동 성매춘과 아동포르노 싸이트가 넘쳐나는 것으로 부터 우리 중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교회에서 조차도 자매들끼리 수다의 자리에서 종종 ‘이야~ 너 오늘 섹시해 보이는데!’ 이런 대화들을 쉽게 듣는다. 다르게 표현하면 ‘너 오늘 남자들이 너를 보면서 음란한 생각을 품을 만하게 유혹적으로 보여!’와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듣는이에게 모욕이 아니고 칭찬인 것이다.
여성들은 거울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면서 섹시한지 아닌지 다시말해 남성들이 보기에 유혹받을만 한지 아닌지를 생각한다. 아버지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의 눈이 아닌 남성들의 음란의 렌즈로 자신을 바라본다. 남성들이 마음으로 간음을 하듯, 하루에도 열두번씩 자신의 육신을 남성의 눈으로 바라보며 음란의 생각들과 교제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한참, 동남아고 유럽이고 K-POP 이 뜬단다.
한국 유명한 연예인들 덕분에 선교하기가 쉽다는데 그게 영 마음에 걸린다.
음란의 견고한 진들이 먼저 자리잡게 하고 나서 그곳에 복음을 전하겠다는게 우리 전략이 될 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조윤이
Eunice Cho
eunicecho@exoduscry.com
현대판 노예제 폐지를 위한 기도운동 본부
엑소더스 크라이
Exodus Cry
A Prayer Movement to End Modern Slavery
www.exodusc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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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회용 사람들: 글로벌 경제 시대의 새로운 노예제]의 저자인 케빈 베일스에 의하면 세상에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실제로 이천칠백만에 이른다고 한다.
Dec 21, 2011 | 선교 전략/유시은이 만난 북한이탈주민
제게는 북녘에서 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는 저와 동갑내기 친구이며 중국 주재 한국영사관내 보호시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벌써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로를 친구로, 선생님으로 부르며 지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면서 부릅니다. 그녀는 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꼭 부릅니다. 제가 그녀에게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어떻게 그러냐며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1주일에 한번씩은 꼭 만나 편안하게 밥을 먹으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 한국에서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어냅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정말 특이했습니다. 제가 탈북민 상담을 10년 동안 하면서 이런 만남은 손에 꼽을 만 합니다. 그녀는 활동성 결핵으로 중국 주재 탈북민 보호기관에서 거의 1여 년 동안 독방에서 생활했습니다. 배달되는 음식을 혼자 먹으면서 혼자 생각하고 책보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면서 다른 탈북민 또는 사람들의 왕래 없이 외롭게 지냈습니다. 제가 그곳 기관에 상담심리사로 파견 되었을 때 직원들은 그녀를 내담자 명단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저 또한 그녀의 병명을 듣고 상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1주일 동안 기관에 체류하면서 계획된 상담을 모두 마친 후 자투리 시간을 잠시 내어 몇 권의 책을 들고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책만 전해주고 빨리 나오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제가 상상했던 환자의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당사자라고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1년 동안 활동성 결핵으로 1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말상대도 없이 오락거리도 없이 누워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병자 특유의 절망감도 없었고, 외로운 기색도 없었으며 오히려 영사관의 다른 탈북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유자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녀에게 책을 건네 주며 ‘힘내세요, 쾌차하세요.’라고 말하는 제가 어색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멀리 서울에서 저희를 위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결핵이라서 안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잠시 기도만 하고 방을 나와 담당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활동성 결핵이 맞느냐? 굉장히 밝더라.’고 말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호기관에서 오랫동안 격리생활을 하는 탈북민들은 대부분 신경이 예민하고 우울하며 불안하며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특히, 몸이 아픈 탈북민의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과 조속한 한국 송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 어떻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지, 평안할 수 있는지 저는 의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저는 일상생활로 인해 그녀는 차츰 흐릿해졌습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어느 늦은 가을 날, 저는 충남 공주의 기독학생회 수련회에 우연히 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가게 된 길이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혹시 저를 아세요? 낯이 익네요.’라고 하자 ‘처음 뵙는데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다시 ‘혹시 탈북민 아니세요? 어디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중국 보호시설에서 잠시 만난 그녀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낯이 익은 탈북민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놀란 그녀는 중국 보호시설에서 저를 만났으며 제가 도착하기 전날 저에 대한 간증을 했다고 하며 반겨주었습니다. 저 또한 그 사실에 놀라며 그녀와의 재회를 기뻐했습니다. 보호시설에서 그녀는 병든 몸으로 낯선 남한 땅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너무나 선명한 꿈을 꾸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도대체 해몽할 수 없어 또 다시 꿈을 해석해 달라고 기도하던 참에 저에게 책을 받았고 그 책 표지의 그림이 꿈에서 본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책을 단번에 읽었으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계획하신 한국 땅에서의 삶과 길을 열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이 흘러 학교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저는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여서 더욱 놀랐습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나이 많은 그녀가 우리 대학에 입학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은 저를 두 번 아니 세 번 놀라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학생회관에서 많은 젋은 신입생들 틈에서 그녀를 발견했다는 놀라움과 또 동문으로 만났다는 것… 사실 우리는 중국 보호시설이나 공주의 수련회 장소에서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지 않았고 그저 만나고 헤어졌을 뿐이며 다시 만나자는 인사는 했지만 이렇게 절묘하게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맺어준 인연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약속을 하던 우연찮게 만나던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역사와 세계사를 아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36세의 나이에 Y대학 역사학부에 입학했습니다. 그녀와 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북한을 떠날 당시의 이야기, 한국 생활의 어려움, 학교 생활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언어의 어려움 등…
그녀는 북한 두만강을 넘어오면서 함께 강을 넘던 어머니를 그 강에서 잃었으며 중국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이모님 댁을 찾아 왔으나 어머니께서 자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중국에서 의지하고 마음을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었으며 오로지 새로 알게 된 하나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누구도 반겨주는 이 없을 때, 안전한 다른 곳으로 숨어야 할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오직 하나님만이 그녀의 피난처요 등불이요 안식처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낯선 한국 땅에서 독신으로 살면서 공부하고 일하며 봉사하며 하루에 서너 시간의 쪽 잠을 자면서도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감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교우라기 보다는 이모뻘이 되는 자신이 때로는 어이없고 낙심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돈도 없고 나이 든 자신의 현실을 바라볼 때 지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1년에 한 번씩 고향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고, 주위 어려운 친구들에게 학비의 일부를 남 몰래 후원하고, 아르바이트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며 다시 웃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꿈을 기억하고 약속하셨다는 그 믿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그녀는 Y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함께 입학했던 남한 친구들과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식을 대하는 그녀의 감회는 어떨까요? 졸업식을 축하해줄 부모님, 형제들은 없지만 그녀와 늘 함께 하신 하나님의 기쁨은 얼마나 크실까요? 상상만 해도 뿌듯하고 대견하고 그런 친구가 제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선생님으로 만났기 때문에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친구야 말로 제 선생님입니다. 힘든 상처가 있어 아프다고 힘들다고 넋두리를 할만한 그녀지만 ‘그래도 감사하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 친구야 말로 제 선생님입니다.
“친구야 난 네가 내 친구라서 정말 고맙고 좋다. 우리 진짜 친구하자, 딱친구!.”
주) 딱친구는 북한 말로 서로 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를 뜻합니다.

Dec 8, 2011 | 선교 전략/조윤이의 정의라는 이름의 사랑
미국 어느 신학교의 제자훈련관련 세미나에서 일어난 일이다.
학생들은 제자훈련을 하면서 겪는 다양한 고민들을 교수에게 질문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의 질문이 다음과 같았다.
“제가 제자훈련을 해주고 있는 학생이 있는데, 이 친구가 마약중독이 있고 열네살 소녀에게 마약을 팔고 있다는 것을 고백했어요. 저는 이 청년을 정말로 사랑하는데 제가 한번 더 기다려 주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이 학생이 열네살짜리 소녀를 성폭행 했다는 고백을 했다면 또 어떻게 하겠는가?
정의라는 단어는 너무나 버겁고,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면 안된다는 묘한 합리화 뒤에 혹은 자비와 사랑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명분뒤에 숨거나, 종종 나나 잘하고 살자라는 자조섞인 비관에 머물고 마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결국 하나님의 정의도 사라지고 사랑도 희미해진다.
신학교 교수의 답은 의외로 간결했다. “경찰에 전화하세요. 그게 열네살 소녀를 사랑하고 그 청년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공원에서 당신이 가족들과 피크닉을 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라. 일단의 깡패들이 와서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괴롭히고 있다. 당신은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의는 어쩌면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들이 상처받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싸우는것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정의(Justice)”에 대한 많은 정의(definition)가 존재한다. 굳이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찾아 듣지 않더라도 단어만 떠올려도 이미 머리가 복잡해 지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정의는 의외로 참 간단해 보인다. 많은 이들의 죄를 한사람이 대신 짊어지는 것,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그들을 신원하여 주는 것, 힘이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사랑인 것 같다. 혹은 하나님에게 있어 정의는 사랑의 또다른 이름은 아닐지.
유다의 번영과 평안 가운데 그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이로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다가왔을때, 하나님은 그분의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1:16-17]
스스로 씻으며 깨끗이 하라고 하시면서 실천해야 하는 항목들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여 주라는 것이다.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의에 대해서 너무나 어렵게만 생각하며 살아가는건 아닐까? 사랑에 대해 너무 감상적으로만 생각하는건 아닐까?
필자는 현대판 노예제라 불리는 인신매매 성매매 폐지를 위해 헌신되어져 있는 한 선교단체에서 사소한 일들을 돕고 있다. 5년전 단체의 대표가 노예제의 피해자 여성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큰 부담을 주셨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그저 한 젊은 중보자였던 이분은 간단한 관련 비디오를 만들어서 세상에 알려야 되겠다는 마음의 부담으로 이 사역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4년여를 걸쳐 전세계를 다니며 실태조사로 이어졌고 이제 그것이 “네파리어스: 영혼의 상인(Nefarious: Merchant of souls) ”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상에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영화의 말미에 어떤 매춘현장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포주였던 한 남성의 인터뷰가 나온다.
“제가 했던일들을 후회합니다. 제 스스로를 정말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요. 그 여성들은 포로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저 또한 어떤것에 포로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한가지 깨달았던 것은 하나님은 내 죄악보다 훨씬 크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무엇에 포로가 되어있었던 걸까? 이 남성은 정말 가해자이기만 했을까?
현재 이 남성은 결혼을 했고, 청소년들이 성매매에 팔려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 공간을 통하여 의외로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인신매매 성매매라는 불의를 코스탄과 함께 들여다 보고자 한다. 정의라는 커다란 주제를 다룰 철학적 통찰도 없고, 쌈박한 신학적 지식도 없지만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만은 없는 이러한 숨겨진 불의를 들여다 보고 피해자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우리가 함께 기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서 말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풀어지기를 갈망하며-
조윤이
Eunice Cho
eunicecho@exoduscry.com
엑소더스 크라이
현대판 노예제 폐지를 위한 기도운동
Exodus Cry
A Prayer Movement to End Modern Slavery
www.exoduscry.com
Nov 30, 2011 | 선교 전략/유시은이 만난 북한이탈주민
세 번째 원고에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북한이탈주민들의 고향 땅에 대한 소개와 남한 입국 현황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입국하기까지의 여정과 외상 경험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입국 경로는 시기 및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따라 변화하였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제3국 체류 실태는 조사 기관에 따라 다양합니다. 아직까지 제3국 북한이탈주민 규모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유관 기관에서는 대략 2~3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2003)은 10만 여명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들이 은둔, 도피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따라서 이러한 편차가 나타납니다.
본문에서는 제3국 체류 규모를 논하기 보다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입국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외상 경험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안정된 국가로 입국하기 까지의 여정은 <그림 1>과 같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북한의 군사분계선의 육해로을 넘어 오는 경우는 극히 소수이며 제3국을 통해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인 함경북도를 경유하여 연변에 도착하게 됩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 인접 지역은 자강도, 양강도, 평안북도가 있으나 조선족 사회의 유입요인으로 인하여 함경북도 출신이 북한이탈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7년 이전에는 중국 공민증을 위조하거나 재중 한국 영사관 및 국제학교 등에 진입하여 신변보호를 받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한국 출국이 늦어지면서 베트남 및 캄보디아 등을 경유하여 태국을 통하여 한국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이들이 한국으로 오기까지 목숨을 걸고 3-4개 이상의 국경을 넘습니다. 이 과정에서 혼자 올 수 없기 때문에 브로커의 도움을 받게 되며, 대체로 브로커 비용은 한국 입국 이후 지불하게 되며 300만원에서 1,000만원 선까지 다양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 사회, 탈북하는 과정, 중국 및 제3국 체류과정에서 많은 외상을 경험합니다. 이때 외상 경험이라 함은 개인의 생활 및 신체적 보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외상 사건은 개인뿐만 아니라 자녀, 배우자, 친척, 친구들에 대한 위협을 포함합니다. 즉, 심각한 상처, 죽음을 목격하거나 죽을 뻔한 경험을 하였는지가 이에 해당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외상 사건은 크게 북한 및 제3국 체류 기간 동안 겪은 것으로 구분합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이미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경우가 많고, 탈북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또한 한국 입국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이 받았던 외상 충격이 계속적으로 재경험되기 때문에 초기 예방 및 치료가 중요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경험한 외상은 수년이 지난 과거 사건이지만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쳐 일상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까지 지장을 주게 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 내에서 가장 많이 경험한 외상은 가족, 친지, 가까운 이웃 중에 굶어 죽는 것을 목격하거나 소식을 듣는 것으로, 817명(68.1%)에 해당됩니다. 다음으로 추위나 식량 부족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58.2%), 가족과의 생이별(56.2%), 아는 사람의 공개 처형을 직접 목격함(42.8%) 순입니다. 탈북 여성의 경우 북한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했거나 인신매매를 당함, 심한 성적 모욕이나 강간을 당했다는 경우가 남성에 비하여 유의하게 많았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탈북 과정에서 가장 많이 경험한 외상 사건은 가족과의 생이별(46.8%)이었고 체포나 강제 북송의 경험이 있거나, 거의 그럴 뻔한 위험에 처한 경우(45.5%), 총격이나 추격을 받은 경험(27.5%), 예상치 못한 배신 경험(25.1%), 강제 결혼이나 인신매매 경험(22.8%), 수용소, 교화소나 감옥에 간 경험(21.8%) 순입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10여명 중 3명 가량이 원하지 않는 강제 결혼을 했거나 인신매매를 당하였습니다.

외상 경험으로 인해 심리적인 증상이 생기는 것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합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정의는 강간, 심한 폭행, 자연재해(홍수, 지진, 폭풍), 뜻밖의 재해(자동차 사고, 비행기 추락, 대형 화재, 해상 사고), 인공 재해(폭격, 고문, 수용소, 인질) 등 생명의 위협 및 정신적 충격으로 심리적·신체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유병율은 연구에 따라 다릅니다. 강성록(2000)은 27.37%, 홍창형 등(2004)은 29.5%, 윤여상 등(2007)은 26.15%, 서주연(2006)은 45.1%, 국경없는 의사회(2005)는 18.2%, 김병창 등(2010)은 8.7%로 보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병율 차이는 연구대상자의 크기와 집단 특징, 진단 도구, 거주기간 등이 원인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해외 난민과 달리 남한거주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자연 치유된다는 사실입니다(조영아, 김연희, 유시은, 2009; 홍창형, 2005)<그림 2>.

이러한 결과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외상 후 성장 및 회복력(탄력성)이 강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착 초기가 그들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시기이니 만큼 초기 예방 및 치료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북한이탈주민들의 탈북 여정과 외상 경험을 정리하니,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학자로서 그들의 경험을 짧은 도표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짧지도 간단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의 순간 순간이기에 경험하지 못한 저로서 언급한다는 것이 죄스럽기만 합니다.
상담 후 내담자인 북한이탈주민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다소 서운했지만, 이제는 “그렇습니다. 저는 모르지만 그 때 그 자리에서 주님은 당신과 그 고통을 모두 당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Nov 29, 2011 | 삶과 신앙/양혜원의 여성과 삶
이 글은 지난 6월에 청어람에서 했던 유진 피터슨 읽기에 대한 강의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14년째 기독교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 양혜원입니다. 제가 번역한 유진 피터슨의 책은 공역을 포함해서 총 8권입니다. 나열해 보면,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The Wisdom of Each Other),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Like Dew Your Youth-Growing up with your Teenager), 「현실, 하나님의 세계」(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s)(공역), 「이 책을 먹으라」(Eat This Book), 「그 길을 걸으라」(The Jesus Way), 「비유로 말하라」(Tell It Slant), 「부활을 살라」(Practise Resurrection)(공역), 그리고 가장 최근작으로 「유진 피터슨: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The Pastor: A Memoir)입니다. 저는 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그냥 번역가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한 저자의 글을 자신의 모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각하게 되는 몇 가지의 것들을 번역가 입장에서 다루어 본 것입니다.
6. 한국 목회의 남성 중심성
이제 마지막으로 저는 한국의 목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피터슨은 목사입니다. 그의 저술과 번역은 다 목회 활동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사의 목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했던 목회를 한국 사회에서 실현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한국 사회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제가 꼽는 이유는 바로 한국 목회의 남성 중심성입니다.
「이 책을 먹으라」에서 피터슨은 캐슬린 노리스의 이 글을 인용합니다. “나는 진정한 일상의 신비가는 격리된 채 거룩을 관상하는 사람들, 고요한 침묵 가운데 신과 같은 깨달음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소음으로 가득 찬 삶, 자신을 소진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와 끝도 없는 의무들로 가득 찬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해 내는 삶들이라고 믿게 되었다.”(188쪽)
이것은 바로 여성의 삶을 묘사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엄마를 부르며 이것저것 요구하는 아이들, 세탁, 요리, 청소 등으로 늘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살림’을 하는 여성의 삶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목회는 남자들의 잔치입니다. 유교 문화는 남자와 여자를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남자들의 세계와 여자들이 세계가 분리되고, 여자들의 세계는 남자들의 세계에 가려지고 종속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은 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일상의 대부분의 일은 여자들의 세계에서 일어납니다. 여자들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돌봄 노동의 태반을 여자들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회 현장에 여자들이 들어올 때는 철저하게 유교적인 방식으로 들어옵니다. 여자들은 늘 뒤에서 거드는 일을 할뿐 자신의 경험을 목회에 통합시키지 못합니다. 일상과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 목회 안에 자연스럽게, 피터슨의 표현대로 하면,유기적으로 하나가 되는것이 아니라, 목회와 삶이 따로 놉니다.
「현실:하나님의 세계」에서 피터슨은 자신의 ‘임신’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418-419쪽)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이 첫 손자를 볼 때, 아내와 주변 사람들은 다 흥분하며 기다리는데,자신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미 자기 자식을 세 명이나 낳았는데, 이번이라고 뭐 특별히 다르겠나 싶었다지요. 자신만 너무 감흥이 없는 게 좀 그래서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가 “그건 당신이 임신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에요.”라고 했답니다.
이 말 앞에 남자는 벽을 느낍니다. 생물학적으로 임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터슨이, “아니,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라고 했더니, 아내가 요람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에 가서 요람 사진책을 찾아서, 원하는 디자인을 골라, 스케치를 하고, 목공소로 가서 꼼꼼하게 목재를 고른 후에, 교회 마치고 집에 오면 매일 한 시간씩 요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포로 거듭 문지르고, 수세미로 다듬고, 여러 차례 동유를 바르고 했지요. 일일이 모양내고, 다듬고, 문지르고 또 문지르면서 그는 그 요람에 누울 아기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드디어 임신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출산 이전에 열 달이라는 임신 기간을 통해서 그 생명을 물리적으로 그리고 상상력으로 품습니다. 그러나 남자 입장에서는 하룻밤 자고 난 것이 전부인데, 자식이 생기지 않습니까? 피터슨은 요람을 만드는 기간이 자신에게는 여자의 임신 기간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 요람에 누워 자라 갈 아기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점점 불러오는 며느리의 배에 있는 그 생명에 대한 감사와 기대가 생긴 것이지요.
피터슨의 이 이야기는, 목회 안에 생명과 인격과 일상이 들어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좋은 은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의 목회가 남성 중심성에서 벗어나야 저는 인격성과 일상성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터슨의 글을 보면 여성의 경험을 자신의 글에 많이 녹여낸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냐 여성이냐 보다는 어떠한 경험들을 자기 삶으로 가져오느냐가 중요합니다. 인격적 관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일치의 삶, 그리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 이러한 것들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토양을 가장 잘 가꿔주는 경험이 남자냐 여자냐를 떠나 중요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ov 11, 2011 | 선교 전략/유시은이 만난 북한이탈주민
누구나 의미 있는 사람과의 첫만남은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지금 형편이 어떤지 알게 되면 더욱 관계가 깊어지고 마음에 담게 되며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만난 북한이탈주민과의 첫만남은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온성 아이입니다. 온성 아이를 만난 건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이었습니다. 저는 하나원 상담심리사 면접 후 양지바른 곳에서 혼자 앉아 있는 꼬마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신문지 안에 끼어 온 광고지를 아주 귀중한 듯 이리 저리 만져보고 곱게 접어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남한의 여느 아이라면 휴지통에 버렸을만한 광고지를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햇빛에 비춰보며 누가 가져갈세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너 어디에서 왔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공손하면서도 경계하듯 “온성에서 왔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아이의 모습과 억양이 낯설기만 했고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기에 다시 물었습니다. “뭐 언성이라고?” 그 아이는 “아니오. 온성이요.” 라고 대답하고 저 대신 광고지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렇듯, 저는 북한이탈주민과 북녘 땅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저를 선택하셔서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심으신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마음을 북녘 땅을 보면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린 온성 땅에서 온 그 아이, 지금은 얼마나 자라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 가야 할 그 온성 땅이 어디인지, 북녘의 시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북한이탈주민들은 어디에서 살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온성군은 함경북도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최북단에 있는 동네입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으며 중국과의 국경선 길이는 105km입니다. 함경북도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식량 배급이 가장 먼저 중지된 곳이기도 합니다. 90% 이상이 산간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식량난 이후 대부분의 산간을 개간하여 김일성 유적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이 황토 빛 민둥산입니다.
북녘의 정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며 수도는 평양특별시이며 9개 도로 나뉩니다. 평양은 서울에서 육로로 1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중국 국경과 인접해있는 곳은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입니다. 대한민국과 인접한 곳은 강원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입니다. 강원도에 있는 개성직할시는 2005년부터 개성공단이 가동되고 있으며 현재 46,284명의 북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즉, 남녘의 산업 기술과 북녘의 인력이 협력하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황해도는 북녘 땅에서 평야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경지율이 북녘에서 가장 높은 약 14%를 차지하고 있어 황해도민을 ‘띵해도’라고 부를 정도로 성품이 느긋하고 인심이 후합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는 한 대한민국으로 올 수 없고 중국 국경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탈북하는 사례는 5% 정도 수준입니다.

아래 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출신 지역과 탈북 동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이 표를 보면서 그들의 고향과 생활 환경을 위해 중보해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북녘주민들이 생활고와 가족 해체로 인해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기아로 가족이 죽거나 헤어져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간의 삶을 공유할 수 없으며 마음과 몸이 떨어져 있었던 상처로 인해 또 다른 불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북녘 출신지역별 유형(2009.10 기준)

탈북 동기별 유형(2009. 10 기준)

저와 함께 생활한 탈북 소녀의 이야기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 소녀는 8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곡식을 구하기 위해 며칠 있다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녀는 나이 어린 동생과 이모님댁에 맡겨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고난의 행군’시기이기 때문에 더부살이 하는 입은 천덕꾸러기 자체였습니다. 추운 겨울 그 소녀와 동생은 감자창고에서 잠을 자고 식사 때가 되어야 방어 들어가 풀 죽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 배가 너무 고픈 동생이 누나에게 썩은 감자를 가리키며 ‘누나 나 이거 하나 먹으면 안되나? 배가 너무 고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썩은 감자로 배를 채우려는 동생이 불쌍하지만 자존심이 상해 매몰차게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모가 아침을 먹으라고 소리쳤지만 평소와 달리 동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의 소녀는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동생에게 썩은 감자라도 실컷 먹일걸, 나 때문에 동생이 죽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 그 소녀는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다시 만난 엄마에게도 그날 밤 일을 말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마구 울었습니다. 만약 엄마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해하시고 이모와 싸웠을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울었습니다. 지금 그 소녀의 나이는 16살, 한창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릴 철모를 소녀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를 먼저 걱정하는 애 어른 소녀입니다.
기도해주십시오. 나이에 어울리는 건강한 사춘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헤어진 그 시간 동안의 상처가 주님 안에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도록, 이들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유시은 자매는 연세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Post-doctor Fellow로 일하고 있다.
Nov 9, 2011 | 찬양과 예배/이유정의 예배를 이야기하자
“목사님, 일주일간 평안하셨는지요? 바쁜 일정과 사역에도 시간 구별하여 준비해주시고, 열정으로 섬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쉬움과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평신도들이 처음으로 준비한 컨퍼런스라는데 의미를 두고, 여러 리더들이 너무 좋았다고 평가를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너무 찬양팀에 초점이 맞추어진 건 아니었나 조심스럽기도 했는데, 성가대와 평신도들도 좋았다고 하시니 다음에는 좀 더 짜임새 있게 준비해야겠다고 다짐도 해봅니다. 그동안 목사님의 찬양 곡으로 많은 은혜를 나누고 있었는데, 목사님을 직접 뵙고 함께 찬양하고 간증도 듣고, 예배회복, 사역 원리, 본질적인 면도 배우게 되어 참 감사했어요. 준비하고 계신 예배앨범과 예배사역연구소의 출발에도 큰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 드릴께요. 목사님, 힘내세요!! 오직 주 만이 우리의 반석이시고, 구원이시기에 다시 한 번 그 은혜와 만남의 축복에 감사를 올립니다. 목사님, 자주 연락드릴께요.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LA 아름다운교회 찬양팀으로부터 온 메일이다. 예배와 찬양사역으로 봉사하는 성도들이 주축이 되어 예배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이다. 그 모습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 필자도 섬기는 교회에서 주최한 예배컨퍼런스를 여러 번 해보았지만 이민교회에서 기획, 홍보, 진행, 재정에 이르기까지 순수하게 평신도 중심으로 이런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름다운교회는 필자가 신념처럼 갖고 있는 평신도가 왕 같은 제사장(벧 2:8)임을 증명해준 모델교회이다. 8년 전까지만 해도 전문 찬양인도자를 초청해서 예배사역을 했는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사이에 리더십이 바뀌는 것에 회의를 느낀 고승희 담임 목사가 직접 총대를 메고 평신도 중심 체제로 사역을 전환시켰다.
고승희 목사에게는 소박한 꿈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최 진사댁 프로젝트”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사는 최 진사가 자신의 이웃이 잘 살아야 자신도 잘 산다는 신념아래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실천했다. 그로 인해 최 진사 집은 물론 그 마을 전체가 잘사는 복을 누렸단다. 최 진사댁 프로젝트는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와 예배의 축복을 반경 몇 십 마일 안에 있는 작은 교회들과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각 예배마다 2개의 찬양팀을 세우고 한 팀씩 타 교회를 섬기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 꿈대로 현재 주일출석 장년 350명 사이즈 교회에서 1,2,3부 각 예배마다 2개의 찬양팀과 2명의 워십리더가 세워져 있다. 수요찬양팀, 새벽찬양팀까지 총 8개의 찬양팀에 10명의 평신도 워십리더가 헌신하고 있다. 향후 총 12개의 찬양팀을 세워서 지역교회는 물론 선교의 현장에서 예배를 회복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직장을 가진 평신도로써 회중예배의 워십리더로 섬기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헌신한 만큼 영적 축복을 체험한지라 즐겁게 헌신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특이한 것은 매일 새벽마다 30여명의 성가대가 새벽예배 찬양으로 섬긴다. 그뿐 아니다. 찬양팀이 찬양인도도 한다. 처음 새벽성가대, 찬양팀 모집 광고가 나갔을 때 교인들이 무모한 시도라며 고개 저었지만 요즘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오히려 헌신한 대원들이 수많은 기도응답을 체험하며 이 자리를 사모함으로 새벽을 깨우고 있고, 이들의 희생적인 섬김이 교회성장의 영적 진원지가 되고 있다. 물론 이런 열매의 배후에는 담임목사의 기도와 영적리더십이 뒷받침하고 있다. 어떤 목회적 아이디어라도 철저하게 하나님께 결재를 받은 후 움직였을 때 6개월에서 1년 뒷면 실재로 그 꿈이 현실화되는 것을 이미 교인들도 다 알고 있다.
지난 9년간 섬기는 교회는 물론 북미, 남미를 다니며 수천 여명의 평신도 예배사역자들을 만나서 훈련하고 세우는 사역을 해오면서 점차 분명해지는 신념이 하나 있다. 21세기 예배갱신의 키워드는 “목회자에서 평신도로”라는 것이다. 이는 제2의 종교개혁에 준할 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종교개혁자들의 모토가 말씀을 회중에게 돌려주는 것(Returning word to the people)이었다면 21세기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모토는 예배를 회중에게 돌려주는 것(Returning worship to the people)이다. 평신도 중심의 예배사역으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는 아름다운교회가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 이유정 목사(예배사역연구소 대표)
Oct 28, 2011 | 삶과 신앙/양혜원의 여성과 삶
이 글은 지난 6월에 청어람에서 했던 유진 피터슨 읽기에 대한 강의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14년째 기독교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 양혜원입니다. 제가 번역한 유진 피터슨의 책은 공역을 포함해서 총 8권입니다. 나열해 보면,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The Wisdom of Each Other),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Like Dew Your Youth-Growing up with your Teenager), 「현실, 하나님의 세계」(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s)(공역), 「이 책을 먹으라」(Eat This Book), 「그 길을 걸으라」(The Jesus Way), 「비유로 말하라」(Tell It Slant), 「부활을 살라」(Practise Resurrection)(공역), 그리고 가장 최근작으로 「유진 피터슨: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The Pastor: A Memoir)입니다. 저는 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그냥 번역가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한 저자의 글을 자신의 모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각하게 되는 몇 가지의 것들을 번역가 입장에서 다루어 본 것입니다.
5. 한국의 맥락들
사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했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첫 번째 글에서 텍스트 포지셔닝을 했는데요, 피터슨의 책이 한국 사회에 들어오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피터슨은 미국사회의 맥락에서 책을 썼습니다. 그는 미국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며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한국 사회와 공통되는 부분이 있지만, 구체적인 맥락은 서로 다릅니다. 인격성, 일상성, 인내 그리고 기다림은 미국사회에서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실현되기 위해서 우리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미국사회의 것과 다릅니다. 바로 그 지점을 이해해야 비로소 이 텍스트를 우리의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번역가의 입장에서 저는 우리 사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우선은 한국어 어법의 문제입니다. 한국어의 열등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관련된 우리 언어의 특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격적 관계의 기초는 I-You관계입니다. 그런데 한국어 용례에서는 안타깝게도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일컫는 2인칭 대명사인 ‘너’가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상대방을 일컫는 대명사는 다 ‘you’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2인칭 대명사를 쓸 수 있는 사이는 동갑내기밖에 없습니다. 한살만 차이가 나도 ‘너’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게다가 나중에 사회에 진출하면 다 사회적 직함으로 부릅니다. 번역할 때 이 부분이 문제가 됩니다. 영어로 2인창 대명사 ‘you’를 그냥 ‘너’ 혹은 ‘당신’이라고 그대로 번역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 서열, 직함 등을 찾아서 확인한 후에 그것을 써줘야 합니다.
한국사회는 사람을 이름으로, 나와 대등한 ‘너’로 알려 하지 않고, 즉 인격적으로 알려 하지 않고, 직함에 따라, 기능에 따라, 역할에 따라 알려하는 문화적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언어와 문화와 인간관계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유교질서입니다. 이러한 서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따른 도리와 같은 것이 우리의 외피를 단단히 감싸고 있어서,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고, ‘자기’로서 자기를 알지 못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나와 분리된 고유한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나와의 관계에서 이 사람이 나보다 위냐, 아래냐, 높냐, 낮냐, 이런 것을 계산한 후에 관계 설정을 합니다. 이것은 아주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이러한 서열 관계는 우리가 ‘인격성’을 이해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호칭과 직함이 세분화된 것은 그만큼 그 문화가 위계적이라는 뜻인데, 한국어의 화법은 또한 청자 중심의 화법입니다. 이 말은 화자가 말을 정확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청자가 알아서 그 말을 해석할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가 ‘오늘 날이 좀 덥네.’라고 하시면, 같이 사는 며느리는 이 말을 그냥 날이 덥다고 하신 걸로 이해하면 안 되고, ‘오늘은 그럼 시원한 콩국수라도 만들어 드려야 하나.’ 뭐 이런 고민을 하면서, 윗사람의 ‘의중’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서로가 아주 깊이 통하는 사이에서는 이러한 화법이 다소 시적이고 멋있게 들릴 수도 있지만, 늘 윗사람의 의중을 헤아려야 하는 아랫사람은 적잖은 억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관계의 피로가 커지는 것이지요.
두 번째 한국 사회의 특징은 ‘탈식민성’입니다. 말이 좀 어려울 수 있는데요,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우리 것으로, 우리의 ‘현실’로 보느냐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1세계 국가들은 이런 고민이 없습니다. 이 고민은,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들의 고민입니다. 왜냐하면 식민지 시절을 보낸 국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저항하는 ‘우리’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기 위해서 더 ‘우리’다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서구 나라를 갈 때랑, 다른 아시아 국가를 갈 때랑 좀 다릅니다. 서구에서는 우리 자신을 서구 앞에서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너희는 왜 우리와 다르냐’, ‘너희는 누구냐’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대답할 필요를 느낍니다. 서구는 존재 자체로 정당하다면,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설명해야 합니다. 한국 문화는 이렇다, 한국 사람은 이렇게 한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아시아 국가를 방문할 때는 다르지요. 특히 동남아 국가 같은 경우, 오히려 우리가 존재 자체로 정당하고, ‘너희는 왜 그러냐’라고 묻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설 때,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다름’을 나타냅니까? 우리가 우리로서 설명하는 ‘한국적인 것들’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한국이라는 것을 외국에 알리려고 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들이 한복, 농악, 김치, 한옥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람들은 한복도 안 입고, 농악도 일상적이지 않고, 저는 결혼 16년차지만 김치 담글 줄도 모르고, 한옥은 한옥 마을 가야 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를 설명할 때,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전형화합니다. 이때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현실: 하나님의 세계」에 보면,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아침의 풍경을 이런 말로 묘사합니다. “베이컨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면, 이제는 버터를 바른 토스트와 스크램블에그 그리고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자바 산 원두로 새로 내린 커피를 기대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의 일상을 한국 사람답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상황을 끌어올까요?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구수한 냄새?” 이럴 때 바로 전형화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사실 저희 집도 아침에 빵을 먹는 날이 많고, 커피는 매일 원두를 갈아서 내려 마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인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와 현실에서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전형화에 빠지면, 우리는 현실의 온갖 다양한 ‘결’과 그 ‘울퉁불퉁함’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우리가 ‘변명적’으로 민족주의를 사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때그때 편리하게, 그건 한국적이지 않다, 서구적이다, 하는 식으로 변명하기 위해서 민족주의를 사용한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합리적인 것이 반드시 서구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합리적인 사람을 우리는, 서구적이다, 정이 없다, 은혜롭지 않다, 하는 말로 비판합니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미국이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 미국 것은 다 좋은 것이고,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압축적 성장’입니다. 서구에서 몇 백 년에 걸쳐서 이루어낸 것을 우리는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몇 십 년에 걸쳐서 이뤄냈습니다. 피터슨이 미국 사회가 아무리 ‘속도’를 지향하는 사회라고 비판해도, 우리만큼 ‘속도감’을 느끼지는 못할 겁니다. 박민규씨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보면, 유명한 인디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이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압축적 성장을 이룬 우리 문화의 특징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야미도, 6년 사이에 지도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지금 대야미는 제가 처음 살던 10년 전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한번 속도에 빠지면 속도를 늦추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지금도 늘 쫓기듯 삽니다. 지금은 절판된 책인데, 김진경 시인의 「삼십년에 삼백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잃은 채 경쟁과 성장에 쫓겨서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지금 우리 삶의 특징입니다.
피터슨이 35년에 걸쳐서 쓴 책들을 우리는 10년 안에 다 번역했습니다. 물론 번역은 필요합니다. 일본의 근대화에 번역이 기여한 바는 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도 어떻게 보면 압축적 성장입니다. 자신의 토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는 시간보다 번역이 빠릅니다. 피터슨이 성경을 현대 미국어로 다 번역하는 데에 10년이 걸렸습니다. 박상익 교수는 「번역은 반역인가」라는 책에서 ‘출판사 사장 대학 총장론’을 이야기하는데요,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가 학문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말입니다.
피터슨이 메시지 성경을 내는 데에는 출판사의 편집자 공이 컸습니다. 출판사의 후원 하에 현대 미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나왔습니다. 만약에 한국에서도, 메시지를 수입해서 번역하지 말고, 출판사가 믿을만한 학자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주면서 이 작업을 한국어로 수행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압축적 성장은 구호와 동원에 익숙합니다. 사람과 세상을 찬찬히 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구호가 많습니다. 뭘 자꾸 이루려고 합니다. 압축적 성장은 인격성, 일상성, 인내가 자라기에는 너무도 좋지 않은 토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