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경] 사랑과 은혜를 받고서 생겨나는 섬김에 대한 소망

이코스타 2001년 6/7월호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번 코스타 주제 너무 좋아요”, “이번 코스타 주제가는 모르는 노래인데…”, “어제 확인해 보니까 드디어 내 이름이 등록자 명단에 올랐어”, “이 번엔 아무개님이 강사님으로 오신대.” 코스타 2001을 보름 남짓 앞 두고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와 설레임으로 코스타를 기다린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듯 싶다. 이번에 코스타에 처음 참가하는 새내기 코스탄이나, 해 마다 은혜의 잔치를 찾아 나선 선배 코스탄이나, 섬기기로 작정하고 먼 길을 기쁨으로 달려오신 강사님들이나 모두 코스타를 기다리는 마음이야 한 가지이겠지만, 코스타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는 저녁 집회도, 세미나도 아닌 조별 모임이라며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사랑을 나누는 조별 모임을 섬기는 조장님들이야 말로 코스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중에 하나라고 언젠가 한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 누구보다 코스타를 손 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조장님들이 아닌가 싶다. 더더욱이 이번 코스타 주제와 관련하여 ‘섬기는 그리스도인’역에 캐스팅된 코스타의 주연 배우들이 조장님들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작년에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가해서 받은 은혜를 올해 또 사모하여 참가하는 것에 더하여 조장으로 헌신하신 두 분의 형제님들을 만나 보았다. 코스타 2000이 각각의 형제들에게 다른 모습의 은혜의 자리가 되었지만 일 년을 지내면서 조장으로 헌신하기까지의 간증에는 공통 분모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결론 짓기 전에 두 형제의 이야기를 각각 들어 보기로 하자.


A주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유학생 최 아무개 군은 아버님이 목사님이신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모태 신앙을 가진 형제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2000년 겨 울방학 때 친구 따라 참석한 교회 수련회를 통해서 이다.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고 표현하는 최 군은 ‘기도로 준비된 모임에서 얼마나 큰 은혜를 받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교회 형, 누나들을 통해 알게 된 코스타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많은 분들이 기도로 준비하시고 섬기시고 헌신하시는데 은혜가 충만한 시간, 성령이 충만한 모임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라고 그 때를 회상했다. 하나님의 은혜의 참 맛을 알았던 최 군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겸손하라’는 말씀이었단다. “… 새벽 기도회를 통해 중풍병자인 친구를 위해 힘을 합친 4명의 친구들… 믿음으로 병 고침을 얻고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제가 드러나기를 원하는 제가 얼마나 교만한지를 깨닫고 회개를 했어요.” 그 이후로 ‘겸손한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제목으로 지난 1년 간을 기도해 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기도할 것’이라는 최 군은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게 해 주시고 겸손해지고 싶다고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며, 또한 지난 코스타를 통해 함께 예배드리고 찬양하던 많은 형제 자매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많은 동역자의 모습을 보았고 이를 통해 많은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받아도, 받아도 계속 받고 싶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사모하는 최 군이 올해 다시 코스타에 참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이번에는 ‘조장으로 코스타를 다시 찾는 발걸음’에 이유를 물었다. “음…. 정말로 많은 사랑을 받으니까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섬김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장으로 섬기는 것은 코스타 기간 일 주일 만이 아니라 벌써 부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조원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고 싶고 코스타 기간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조원들을 섬길 때 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섬기길 원해요.” 실명을 올리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최 군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번 코스타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마치 이번 코스타의 주제가 최 군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말을 했다. “섬기고 싶다는 마음은 있는데… 실천하는 것이 힘들어요. 섬김에 대해 많이 배우고 싶어요. 깨달음을 주시리라 믿쑵~니다.”


B주 대학교 대학원 2학년에 재학중인 이 아무개 군의 경우는 작년 코스타 이전의 본인 스스로를 ‘나일론 신자’라고 표현하며 모태 신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왜 가는지도 몰랐고 부모님 따라 왔다 갔다 이유 없이 교회를 다녔다’고 회고한다. 당시 교회의 선배 형, 누나들을 통해 코스타를 가 보라는 권유로 미리 신청은 했지만 집회 전에 여러 가지 개인적인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되면서 하나님께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면서 코스타를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가기 전 날 하나님께서 깨워 주시면 가겠다고 기도하고 잠 자리에 들었고, 역시나 이 군을 깨워 주신 하나님 때문에 ‘사람들 따라 가기는 가지만 그 동안 일상적으로 따라 갔었던 수련회를 참석하듯 얻을 게 뭐가 있겠나’라는 반항심에 ‘가서 무엇을 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고, 만약 이번에도 느낌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겠다’라는 다짐(?)을 하고 참석을 했다고 하니 협박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다짐’ 덕분(?)인지 첫날 찬양 시간에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에 ‘왜 손을 들고 찬양을 하나…. 그래 어쨌든 난 5일 뒤엔 집에 간다’라는 방관자적 입장으로 일관했고 이어 새벽 기도도 나가지 않을 작정으로 있었던 이 군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군이 속한 조의 조장을 룸메이트로 붙여 주셔서 새벽 기도의 자리로, 예배의 자리로, 세미나의 자리로 이 군을 이끄셨고, 둘째 날 세미나 때 ‘복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세미나를 통해 마치 이 군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아시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으며, 마침내 저녁 집회를 통해 영접의 자리로 부르시는 은혜를 주셨다. “난생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 다시 태어났죠” 라고 말하는 이 군에게 집회의 남은 날들은 은혜의 잔치였고 코스타가 끝날 때에는 많은 아쉬움과 내년에도 꼭 와야겠다는 생각을 남겨 주었다고 한다.


코스타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후 지난 1년 간 어떻게 그 은혜를 붙잡고 살아 왔는 지가 궁금해졌다. “솔직히 처음 3-4개월 동안은 하나님께 계속 나아가며 잘 살아 왔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닥치는 어려움들 가운데, 그리고 이 전에 내 모습을 아는 친구들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에, 난 해 낼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적도 많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나 이전에 비해 가장 궁극적으로 달라진 것은, 내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실로, 예전 같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제가 하나님께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까’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솔직한 나눔을 들으면서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 하던 (계12:10)’ 쫓겨난 사탄과의 영적 싸움 가운데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는 말씀처럼 이 군을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코 끝이 찡해왔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이 군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나누고, 조원들의 영적으로 힘든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면서 ‘헤아리는 마음'(Compassion)을 가지고 도와 주면, 작년에 이 군을 도와 주었던 조장이 그랬듯이, 조원들의 영적인 어려움을 같이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어서 조장으로 섬기기를 자원했다고 한다. “또 언젠가는 리더로서 섬기게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못 할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책임감이 있어서 더 많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볼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요즘에도 사탄의 시험이 많이 있습니다.” 아, 이래서 우리가 만날 조장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도 귀한 두 형제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름 대로 찾아 본 공통 분모는 ‘사랑과 은혜를 받고서 생겨나는 섬김에 대한 소망’이었다. “저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 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3),”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개인적인 주님과의 만남이 없이, 그분께서 무조건적으로 부어 주시는 은혜를 맛 보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의 나눔과 섬김이 있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 두 분의 형제님들을 비롯한 모든 조장님들이 이번 코스타에서 조원들을 잘 섬기는데 앞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폭포수와 같이 넘치게 받으시기를 기도한다. 베드로 전서 4장 11절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처럼.


“만일 …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박수경] 미시간 앤아버의 토요 성경공부 이야기

이코스타 2001년 5월호

유학온 지 5개월 된 박정은양, 오늘 룸메이트로부터 사소한 일이었지만 섭섭한 소리를 듣고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수연 언니를 찾아갔다. “수연 언니, 글쎄 오늘 룸메이트가요 ….” 감정이 섞였는지 전후 과정 설명에 과장이 섞이더니 룸메이트의 험담이 더해진다. 사건의 전후 사정을 따져서 잘잘못을 가려주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고 단지 위로의 말, 이해와 수긍의 반응을 얻고자 찾아 갔던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수연 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정은아, 전후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룸메이트 없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 내가 듣기엔 룸메이트가 정은이한테 평소에 좀 섭섭했던 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은양은 유학와서짧은 기간이지만 매주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을 배우고 삶을 나눠왔기에 무척이나 친했다고 생각했던 수연언니의 예기치 못한 반응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정은이 지난주에 성경공부하면서 ‘평소 매일매일 삶에서 죄짓는 것에 대해 잘 못느끼겠다’고 했지? 그래서 앞으로 죄에 민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잖아. 하나님께서 이번일을 통해 정은이가 그동안 룸메이트한테 좀 섭섭하게 했거나 잘못한거 되돌아 보라고 하시는건지도 모르겠네.”


혹떼러 왔다가 혹붙이는 기분이라고 표현을 해야하나? 정은양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주 성경공부? 맞아..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것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게 이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지? 그건 성경공부고 이건 그냥 내 일상 생활인데 그렇게 연결을 시키다니…’


교회를 다닌지 11년, 그러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깊이가 지극히 얕았던 정은양은 유학와서 우연히 한국에서 같은 교회를 다녔다는 수연언니를 알게되었고 성경공부를 함께하자는 제의에 썩 내키지는 않지만 호기심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후 말씀을 배우는 재미와 힘든 유학생활을 나누는 즐거움에 계속 성경공부를 나가게 되었고 ‘배운 말씀의 삶으로의 적용’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을 받으면서 수연언니와 다른 조원들의 도움으로 결국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말씀을 깨닫는것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이야기는 1997년 가을 미시간 앤아버에서 생겼던 토요성경공부(이하 SBS:Saturday Bible Study)의 일원었던 박정은양의 예화이다. SBS는 개인적으로 적합한 성경공부 모임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제대로 성경공부를 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유학 생활을 유지해 나갈 때 영적으로 많은 갈급함이 있었던, 그래서 이런 영적 상태를 채워줄 수 있는 성경공부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오던 몇몇 유학생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생겨난 모임이다. 우연히 유학오기전 한국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던 몇몇 학생들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그냥 사사로이 교제하던 중 우연히 다들 영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서 마음을 모아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6명이 모여서 인도자 없이 서로의 묵상을 나누며 진행되었으나 차츰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또 처음 같이 시작했던 연장자들이 졸업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면서 자연스럽게 인도자의 역할을 하게된 김수연. 김요섭 부부(현재 북방 A국 선교사)를 만나보았다. 앞서 언급한 박정은 양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조원들이 SBS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했거나, 하나님과의 만남을 개인적 차원으로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열매들이 맺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김 선교사 부부의 사랑의 섬김과 헌신이라는 것에는 거의 대부분의 조원들이 동의하는데 대해, 정작 본인들은 그들이 성경공부를 인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한국에 있을 때 교회에서 리더를 한 경험이 있었고, 또 부부라는 특별한 상황이 있었기에 싱글로 와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섬길 수 있는 여유 혹은 기회가 주어졌던 것 같다며 인도자가 아닌 도우미로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과연 그들이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성경공부를 인도했는지를 물었다.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은 각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삶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을 나타내어서 힘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 이었습니다. 즉, 성경 공부 하는 것과 삶이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1주일에 한 번 모이는 모임이지만 각자 개인의 생활을 해 나아갈 때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또한 타국 땅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각자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지식과 경험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타국 땅에서 생활하는 특수 상황이 성경에서 나오는 인물들이 겪었던 ‘광야’ 생활 같은 기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러기에 하나님과 더 가까와 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실제적인 차원에서, 성경공부는 반드시 주중에 시간을 내어서 미리 해 가지고 오고, 모여서 나눌 때에는 삶에서의 적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진솔하고 또 열린 마음을 가지고 각자의 경험이나 상황을 나누었으며, 또 같이 모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일별로 기도해야 할 사람들을 정해놓고 중보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단 매주 모이는 시간뿐 만이 아니라 살아 가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함께 공부한 내용에 있는 원리들을 적용시켜서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어느 한 사람이 특별히 인도자라고 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간 성경 공부였고 때마다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을 함께 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운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는 성경공부, 그리고 삶으로의 적용을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SBS를 통해 맺어진 많은 열매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쁜 유학생활중에 조원들을 향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섬김는 것이 쉬운일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짐작하며, 성경공부를 도우면서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 물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사람의 인도 보다는 모두가 참여하는 성경 공부 모임 이었기 때문에 도우미로서 역할을 하기에 크게 힘들었던 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중에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처음에는 6명으로 시작 되었던 성경공부 모임이 10명이 넘게 모이는 모임으로 되어지면서 각 구성원의 필요도 더 다양해 졌고 구성원 중에는 정기적인 성경 공부 외에 신앙의 기초부터 함께 1대 1 양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는데 나 자신도 유학생이어서 시간을 내기 부족하다는 생각에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에 순종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때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더 순종했어야 했는데 라는 많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또 구성원이 바뀔 때 유동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6명남짓한 모임안에서 김선교사 부부외에 모임을 섬기던 연장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후 새로 모임에 동참한 대부분의 조원들이 기초적인 양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김선교사 부부에대한 섬김의 요구는 증가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영적 성장이 지역교회이 성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김선교사 부부는 그동안 SBS를 통해 양육받은 형제, 자매들에게 지역교회로 파송(?)되어 그곳에서 섬기는 것을 권유하였고 현재 Ann Arbor내의 여러 교회들 뿐 아니라 D.C., California, 한국등으로 이동한 조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섬기는 이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한 두사람의 헌신을 통해 60배, 100배로 열매 맺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실감하게 되었다. 1999년 김선교사 부부가 북방 A국으로 파송됨을 계기로, 조원들은 각 지역교회로 흩어져 청년부등을 통해 섬기고 양육받고 있으며 SBS라는 이름으로의 모임은 중단되게 되었다. 이를 인도자의 부재로 인한 모임의 와해가 아닌, 적정기간동안 훈련시키시고, 때가차매 흩으셔서 또다른 양육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인도자로서, 자신 또한 공급 받고 양육되어져야 하는 영적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켰는지가 궁금했다.


” 우선은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 기본이 되었고, 두번째로는 우리 성경공부는 인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도자요, 모두가 적극적인 참가자 였기 때문에 서로 나누고 기도하고 응답 받고 변화 하는 과정에서 우리 속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많은 도전과 힘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가끔 있는 KOSTA, 교회 부흥회 등도 때때에 맞게 적절한 공급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SBS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너무나 값진 보배와 같습니다. 이런 경험을 갖게 된 것은 노하우나 이전의 경험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이며 저도 이 소그룹 모임을 통해서 많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시종일관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였고 열매맺었음을 강조하는 모습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 지금 이시각에도 북방 A국에서 함께하는 영혼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고, ‘힘있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고 있을 김선교사 부부를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신을 얼마나 기쁘게 보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헌신된 한 명의 인도자를 찾고 계실 하나님을 생각하니, 김수연 선교사의 귀한 조언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 성경공부를 인도하거나 섬기는 이로서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촛점을 맞출 수 있는 눈과 동시에 나와 함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이 함께 있어야 하며 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수경] 한 영혼의 성장에 초점을 – Korean Bible Study (KBS)

이코스타 2001년 4월호

‘교회’라는 형식을 빌든, ‘캠퍼스 모임’이라는 형식을 빌든 간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크리스천이 모인 곳이라면 그곳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엄히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할 주체인 것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지난 10여년 간 꾸준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동시에 경작을 필요로 하는 ‘캠퍼스’라는 땅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기도와 헌신으로 물 주어 열매를 거둬 들이는 일을 해 온 캠퍼스 모임 Korean Bible Stduy(KBS)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동시에 KBS에서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과 씨름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현재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그곳 학생들을 향한 비전을 키워가고 있는 김창수형제와 DC에서 KBS를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고 말씀을 알아가는 것에 달음질을 시작한, 그래서 본인 스스로를 ‘Green Christian’이라고 표현하는 김기한 형제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 보았다.


Korean Bible Study(KBS)는 이름 그대로 한국어로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모임이다. 캠퍼스를 본거지로 시작이 되었지만 “캠퍼스 사역”이라는 사역의 한 구분으로서의 활성화 혹은 그 사역 내에서 KBS의 존재성을 구축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한 사람이라도 더 말씀으로 양육하고 양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KBS는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한 ‘활동의 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모임이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면, 1989년도 Washington DC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 현재 KBS의 대표간사이기도 한 이일형권사는 근무처 근처에 위치한 George Washington University(GWU)를 바라보며 그 캠퍼스의 학생들을 젊은 시절부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키우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2주가 지난 후 우연치 않은 연결고리들을 통해 마침 학교 내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찾고 있던 두명의 학생들과 만나게 되고 이 두명 이외에 한 손에 꼽을 만한 인원이 들락날락하며 함께 5년간 꾸준히 성경공부를 하고 나서야 점차적으로 인원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GWU이외의 다른 캠퍼스를 향한 왠지 모를 마음의 부담과 함께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1주일 만에 역시 예기치 못한 경로를 통해 Georgetown University(GU)에서 자체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한 소수의 학생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결국 이것이 GWU 밖의 캠퍼스로의 첫 진출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 GU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한 ‘소수’의 학생중 하나였던 이창수형제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당시대학 1학년이었던 저와 아는 형이 학교 간 성경공부 서클을 만들어서 건전한 교제를 하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헌신된 리더로서의 준비가 거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성경에 대해 지식도 많지 않았던 저희는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5-6명이 모여 돌아가면서 리더를 하는 형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2-3주 후에 저희 모임을 알리는 포스터를 보고 들르게 되었던 한 자매를 통해 KBS와 연결이 되었고 그곳에서 리더로 계신 분이 조인하시면서 체계적인 양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이끄신,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라고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과정 – 젊은이들을 제자 삼고자 하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기도했을 때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인원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그룹이 생성되는 – 을 통해 현재는 두 개의 직장인 그룹과 영어권 모임을 포함하여 7개 캠퍼스에서 (American U, Catholic U, George Mason U, Georgetown U, George Washington U,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 U of Maryland) 15개의 그룹으로 모이고 있으며 DC KBS를 거쳐간 젊은이들이 타 지역에서도 North and South SBS (Seoul Bible Study), NY KBS 등의 이름 하에 같은 비전을 펼쳐 나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KBS의 초점은 ‘KBS’라는 모임의 성장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의 성장에 있다. 자기 시간과 삶 전반에 걸쳐 헌신된 모임의 인도자들은 먼저 본인의 삶을 변화시킨 말씀의 능력이 모임의 구성원들의 삶에도 적용되도록 하기 위해 하루에 ‘최소한 두 시간씩’ 그 주에 공부할 성경본문을 묵상함으로써, 또한 코디들은 각 영혼을 생활적인 면에서 돌보고 일대일로 제자 삼는 일에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림으로써 그들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는 제자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성경공부 참석자들은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가운데 결국에는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마르지 않는 생수를 직접 공급받는 법을 배우는 제자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창수형제는 KBS에서는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오이지’로 비유한다고 했는데 “오이지가 짠맛을 내기 위해서는 소금물에 완전히 절어야 되듯이 우리가 제자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절여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김기한형제 역시 친구의 권유로 처음 KBS모임에 참석했을 때 헌신된 리더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성경에 대한 깨달음과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강하게 느끼게 되어 자연히 지속적인 모임에 참여하기를 결심하게 되었으며 그 첫 발걸음이 그를 거듭나게 하는 첫 단추가 되었다고 하니 말씀의 파워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소그룹 성경공부 외에도 두 번 정도는 각 캠퍼스 모임이 속한 지역(현재 KBS 1-2-3, 세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지역당 3-5개의 모임이 속해있다)의 전체모임을 통해 대표간사님들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마련하며 한 학기에 한 번 그 학기의 주제 하에 전체 수양회를 열고 있다. 또한 매주 두 번 – 한 번은 주중에 각 캠퍼스에서, 다른 한 번은 토요일 아침에 지역별로 모여서 – 열리는 기도모임을 통해 말씀과 기도의 기초 위에서 양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창수형제는 고린도전서 4장 15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 ” 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말씀의 가르침에 더하여 사랑의 기도와 섬김으로 자신이 변화되었다며, 한번은 그가 학업의 부담이 너무 크고 힘들어서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새벽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을 때 함께 기도하고 있던 간사님께서 다가와 아무 말씀 없이 손을 얹고 중보해 주었을 때 스승의 사랑뿐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양육된 형제 자매들은 성장하는 캠퍼스 모임 내의 리더로 혹은 인근 캠퍼스 모임의 인도자로 파송되어 그곳의 영혼들을 양육하는 일을 맡아보게 된다. 모임의 성장이 곧 캠퍼스 내의 다른 영혼 및 주변 캠퍼스의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지역교회가 주로 교회성장에 집중함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교회 바깥에 있는 청년들, 특히 성경공부 이전에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에게 다가가기 힘든 그 공백부분을 바로 KBS와 같은 캠퍼스 사역단체가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캠퍼스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KBS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하나 둘씩 교회로 연결되면서 한때 30대 초반이 가정 젊은 층이었던 교회에 청년부가 세워게 되었고 교회 또한 KBS의 교회외부 사역의 무리없는 진행을 돕는 기반(base)이 되었다. 또한 현재 KBS 고문으로 섬기시는 지역교회 담임목사님이 캠퍼스 사역에 대해 가지고 계신 이해와 수양회 혹은 전체모임 등을 통해 사역에 동참하시는 의지는 KBS를 통해 연결된 젊은이들이 지역교회에도 잘 적응하고 주일에 교회의 모임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은혜 또한 놓치지 않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기한형제의 경우 KBS성경공부에서 받은 말씀에 대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고 목사님의 말씀과 이어지는 청년부 내에서의 설교말씀 묵상을 통한 나눔가운데 그동안 궁금하게 여겨오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을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신앙생활’의 의미가 지역교회의 ‘내부봉사’에 제한되어지다보니 남에게 잘 알려지지 않으면서도 단기적인 안목에서 거둬지는 열매가 상대적으로 적은 캠퍼스 사역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꾼 혹은 그러한 헌신에 대한 후원이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다. 혹은 청년들이 교회봉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캠퍼스 사역에 더 많은 시간과 자기능력들(resources)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교회 어른들의 불만과 그에 따른 압력이 따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은 신앙인의 자세가 ‘지역교회'(local church)를 초월하여, 목회자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하는 틀에서 우주교회적인(Universal Church) 틀로 의식이 바뀔 때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KBS와 그 연결교회들의 경우처럼 캠퍼스 모임의 인도자들과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포용력있는 관심과 배려가 전제된다면, “한국어권 모든 유학생들이 양육을 받아 하나님의 일군이 되도록 해 달라”고 KBS인들이 눈물로 뿌리는 기도의 씨앗이 시편 126장 5절 말씀처럼 “기쁨으로 그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박수경] 우리 주변의 갈등

이코스타 2001년 3월호

‘갈등’이라는 단어 앞의 수식어구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흔히 고부 간의 갈등, 노사 간의 갈등, 여야 간의 갈등, 혹은 얼마 전에 떠들썩했던 의·약분업시 의·약 갈등 등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의 종류를 그 ‘원인’에 따라서가 아니라 갈등구조를 보이는 ‘대상’에 따라 구분한다는 것으로 봐도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은 공통적으로 쌍방 간의 이권의 대립이라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각 대상에 따라 무엇을 이권이라 정의하는가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를 대상으로 갈등을 정의한다면 과연 그 대상은 누구이며 문제되고 있는 ‘이권’에 대한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세상사 갈등의 주요소인 금전적 이해관계가 이권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없진 않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내의 이권은 뭐니뭐니해도 영적 권위, 곧 ‘영권’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갈등을 일으키는 대상은 초신자들이 아닌 영적관심사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중견급(?) 성도들, 혹은 목회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내에 목회자와 성도, 목회자와 부목회자, 그리고 성도와 성도 간의 갈등은 어느 교회나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하기 마련이고, 여기서 그러한 사례 만을 짚고 넘어가는 것으로 그친다면 또 하나의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약함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갈등에 대해 갈등의 대립구조 선상에 있는 성도들이 기도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바쁘게 역사하심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그 안에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제시되는 사례를 통해 서로 대립되는 갈등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고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찾아보기로 하자.


미국 A주의 학원도시 B에 위치한 C교회는 한인교인 총 120명 남짓의, 교인의 40%가 유학생인 유학생교회이다. 교회성도의 평균연령이 40세로 비교적 젊은 성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B지역의 영어권 한국학생들 및 2세들의 기독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돕고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것을 목적으로 영어예배를 한국어예배와 함께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영어예배 담당목회자의 잦은 전출로 장기적 비전수립에 난항을 거듭하던 중, 1995년 인근교회의 외국인 목사님을 영어예배를 담당하시도록 청빙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어예배를 드리던 성도의 자녀들 중 중·고등부에 등록된 아이들은 한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소수였기 때문에, 영어예배 목사님을 청빙하는데 있어서 지역 내의, 특별히 한국계 영어권 유학생과 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목회비전에 합당한 청빙인가에 대한 철저한 검증문제가 성도들 간에 주된 관심사로 등장하지 못했고, 은혜 가운데 인사를 단행한다는 명목 아래 공식적인 절차들을 제대로 밟지도 않았다. 그러나 외국인 목사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영어예배의 구성원이 점점 특정 외국인종(人種) 중심으로 변해가고, 목사님이 한국어를 하실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한국어권 중·고등부 학생들이 드릴 수 있는 예배가 부재(不在)케 되었으며, 그 구성원과 사용언어 측면에 있어서 영어예배와 한국어예배가 융화하는데 어려움이 쌓여가는 등, 문제점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성도들의 중·고등부 자녀의 수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게 되었고 그들이 받고 있는 영적 양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비례하면서, 자녀들에게 한인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영어예배가 한국계 영어권 학생들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영어예배의 기본 취지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한국계 목사님의 청빙에 관한 안건이 제기되면서 기존의 영어예배에서 목회하던 목사님과 성도들의 입지가 도전을 받게 되었고, 외국인 목사님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영어예배 구성원들 사이에서 인종을 초월한 복음 안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두 개의 대립구도 상에 있던 집단에서 각자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했던 하나님의 말씀 중의 하나가 사도행전 1장 8절, “…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말씀이었다. 한국계 교포 중심의 목회비전을 제시하는 그룹은 먼저 ‘예루살렘과 유대’에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한국계 영어권 학생들과 2세들을 복음 안에서 먼저 양육하는 것이 현존하는 한인교회의 우선순위라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기존의 영어예배에서 양육받아 온 그룹들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다국적 성도들에 의한 예배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갈등구조를 악화시킨 것은 두 그룹 모두 말씀과 기도에 근거하여 각기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과 메시지로 인해 인도받았다고 주장하며 모두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대방의 영적 분별력과 권위에 대해 서로 도전을 한 것인데, 이는 대립구도를 ‘상대방에 대한 감정’으로 몰고가는 계기가 되었다. 목회자의 목회·설교내용이 서로를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되고 이로 인해 상처와 도전을 주고 받게 되면서, 영어예배를 시작할 때의 처음 목회비전을 두 그룹이 함께 되짚어 가며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하여 그 해결점을 모색하기에는 서로에 대한 방어자적 입장이 너무 굳어지게 되었다. 이 사례의 경우 피상적으로는 서로가 공유하지 못한 비전에 대한 갈등의 구도를 보이고 있으나 정작 갈등을 가속화한 것은 기존 구도에서 만족을 얻고 있는 그룹과 변화를 모색하여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영적 이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그룹 간의 ‘영권을 둔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하나님 안에서 너무 견고히 서 있음’으로 인해 상대방의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적이고 훈계자적인 태도를 고집했다는 점이다. “…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8:1)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다.


몇 개월 간에 걸친 대립구도 끝에 외국인 목사님께서 섬기시던 영어예배는 거처를 옮겨서 다국적 학생을 복음화한다는 비전으로 새로이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고, 기존의 한인교회는 목회비전에 합한 한인 1.5세 목회자를 1년 여에 걸친 기도 끝에 청빙하여 한국계 영어권 유학생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다. 이러한 아픔을 수반한 변화구도에서 다행스러웠던 점은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아름답지 못한 이 모든 모습을 합력시키심으로 선을 이루셨다는 것인데, 상황이 악화되어 갈수록 교회 내에 ‘꿇는 무릎’이 증가하고 교회의 위기에 대한 관심과 회개와 중보의 운동에 불을 붙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 왔던 교회 내 부서에 대한 무관심을 회개하고,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른 영혼들과 상처를 주고 받았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치유하심에 대한 간구, 교회의 목회비전에 합한 목회자를 찾는 과정에서 있었던 많은 기도들, 자신의 신앙만이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 또 국적을 초월한 외국유학생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목회활동…. 이러한 모습들이 바로 어려움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C교회에 이루신 선한 선물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존재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많이 기도하고 말씀 안에 바로 서 있느냐에 상관없이 자신의 경험에 의해 하나님을 보게 되고 인식하게 된다. 특히나 자신이 하나님의 반석 위에 너무도 든든히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영적 입지를 자신이 서 있는것과 같은 수준의 반석 위에 놓는데 인색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 안에서 거듭나고 성장을 거듭하는 성도로서 특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게 강한 영적자아가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된 자들과의 그것과 이견을 두고 대립할 때 “..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 7:15)라는 말씀을 상고하면서 서로에게 덕이 되는 해결방안(方案)을 사랑 안에서 찾아가야 한다는, 너무도 원론적인, 그러나 행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해결책을 제시해 본다.

[박수경] 개인 영성의 개혁, 사랑의 섬김으로

이코스타 2001년 2월호


개인 영성의 개혁, 사랑의 섬김으로


최근 한국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크리스천 유학생으로서 아마도 누구나 한번쯤은 그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지적된 원인에 대해 공감을 표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의 외침에 동조하기도 하였음직하다. 그러나 개혁의 목소리가 ‘한국교회’라는 대표성을 지닌 ‘집단’에게만 향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하신 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이룬다는 말씀을 상기할 때, 현재 미국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우리 크리스천 유학생에게로 향한 ‘개혁’의 목소리에도 민감하게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개혁’의 사전적 정의가 ‘현존하는 체제를 새롭게 고치는 것’이라고 할 때 크리스천 유학생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묙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다면 그에 비추어 각자 자신에게서 ‘무엇이 어떻게 고쳐져야 하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제시되는, 서로 다른 신앙적 배경을 가지고 유학생활을 시작한 김 아무개군과 조 아무개군의 이야기를 통해 크리스천 유학생으로서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한번 짚어보기로 하자.


김군은 한국에서 학부시절(1991년)부터 교내 기독동아리 회장 역임, 선교단체 활동, 교회 내의 봉사 등을 통해 체계적인 제자훈련을 받아왔고, 97년 초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부터 그가 속한 교회에서 바로 유학생그룹을 양육하는 일을 의뢰받았다. 유학 첫학기부터 준비해야 했던 박사과정 자격시험과 새로운 지도교수 하에서 수행해야 할 연구과제 등에 대한 부담과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전제로 하는 지역교회 섬기기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로 고민하던 김군은 유학생그룹 성경공부에의 참여시기를 박사과정 자격시험이 끝나는 첫학기 이후로 보류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의 실패는 그에겐 커다란 충격이었고,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을 자신의 첫 성경공부 참여일로 잡았던 김군은 그간 계획해 왔던 믿는 형제자매들과의 말씀을 통한 모든 교제로부터 고립되고자 하는 강한 유혹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속한 성경공부 그룹 내의 동료들을 통해 위로와 평안을 주셨고, 이후 그들을 양육하는 섬김의 기회를 주셨다. 같은 시기에 또다른 성경공부에서 김군으로 양육도 받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은 이사야 55장 9절-11절,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고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에 내게 동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일에 형통하리라”로, 그가 마지막 자격시험을 앞두고 그 시험에 떨어지면 바로 귀국하여 입대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혹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모든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평안함을 가지고 시험준비를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믿음 안에서 말씀을 배우고 삷과 신앙을 공유했던 성경공부 동기들로부터의 격려와 중보기도로 풍성해진 믿음의 반석 위에, 학문적 목표를 추구하며 평안 가운데 치를 수 있었던 두번째 자격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김군은 이후로도 꾸준히 섬기는 교회의 성경공부 리더로서, 지역교회 연합 기도모임의 코디네이터로 섬기고 있다. 그는 자신이 양육받으면서 키워왔던 영성이 또한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양육함으로 성장되어왔음을 언급하면서 크리스천 유학생으로서 ‘섬김의 실천’을 통한 ‘믿음성장’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였다.


또다른 경우로, 한국에서 모태신앙이기는 하나 습관적인 ‘교회생활’을 해 오던 조군의 경우는 유학생활 초기에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그에게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을 갖게 한 것은 당시 청년부 리더의 사랑과 헌신, 섬김에 근거한 말씀의 가르침이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 두시간여의 성경공부를 통한 단순한 ‘말씀의 전달’에서 그치지 않고 주중에도 계속되었던 청년부 리더의 관심어린 전화연락과 눈물의 중보기도를 통해 이루어진 ‘사랑의 섬김’으로 인하여, 그의 ‘생명력을 지닌 말씀의 선포’는 조군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은 조군이 발목을 삐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리더가 점심 휴식시간을 통해 파스를 사가지고 와서 직접 그의 발목에 붙여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조군은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님의 섬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러한 모습을 통해 말씀 안에서 감동되어 그간 형식적이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되었고 영성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청년부회장으로 섬기는 기회가 왔을 때 그가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그가 받은 사랑의 섬김을 동일하게 청년부 형제자매들에게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경우와 같이 그들의 영혼이 변화될 수 있도록 쓰임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다.


‘섬김을 받던 위치’에서 ‘섬기는 위치’로의 전환은 그에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랑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가르쳐 주는 계기가 되었고, 그 스스로가 지난 수년간 외면해 왔던, 그를 양육하고자 애썼던 많은 리더들의 섬김과 중보기도를 기억나게 하여 회개하고 감사하게 만들었다. 또 그러한 사랑의 수고에 영성과 기도가 반석이 되지 않는다면 그 수고는 단지 소모적이고 열매가 없는 섬김이 됨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다음과 같은 경험을 나누었다. 한번은 청년부원들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님만을 나타낼 수 있도록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보다 동료들로부터 좋은 리더로의 평가를 받고자 하는 자기 의가 앞섬으로 인해 식사준비에 대한 부담으로만 마음이 집중되어 정작 사랑의 나눔과 영혼을 돌보는 일에 미흡함을 남긴 아쉬운 모임이 되었다고 한다. 청년부 리더로부터 ‘사랑의 섬김’이라는 본을 받아, 섬기는 자의 위치에서 청년부 형제자매들을 대상으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조군 스스로가 그 마음 안에 영혼에 대한 사랑의 강도가 자라가고 영적으로 성숙해 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는 이러한 변화는 ‘섬김의 실천’을 통하지 않았으면 얻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취재를 마치면서 시작이 전혀 달라 보이는 두 형제의 경험을 통해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두 형제 모두 믿음 안에 있는 주변 형제자매들의 섬기는 손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과의 관계를 성장시켜 갔고 결국은 다시 또다른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섬기는 헌신을 통해 더욱 풍성하게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나타나듯, 이를 실천이 있는 살아있는 믿음을 우리로 하여금 유학생활중에 훈련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한다면, 크리스천 유학생으로서 한시적 유학기간 동안 변화받고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준비되기 위한 필수훈련은 사랑의 섬김을 직접 실천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변화되는 것은 ‘내가 섬기는 그 사람’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지성적인 크리스천 유학생으로서 코스타와 같은 말씀의 잔치에서 폭포수같이 부어주셨던 은혜를 어떻게 일년 내내 간직하고 오히려 더 풍성하게 이루어갈 수 있는 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크리스천 유학생을 향한 ‘개혁’의 목소리에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