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동국] 코스타 이후 경험한 지역교회의 회복

시작하며


별한 은혜가 넘쳤던 2003년 코스타가 끝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 풍성했던 천국잔치에 참석한 후에 아직도 그
생생하던 코스타 때 받은 은혜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매일 매일 코스타 때처럼 승리하며 살아가는 코스탄 들이 있을 것이고, 또
코스타 기간동안에 은혜를 받으면서 결심했던 일들을 처음 며칠 내지 몇 주는 잘 지키다가 지금쯤 지치기 시작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어쩌면 자포자기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 어떤
상태이던지 혹시라도 이 간증을 읽으시면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금은 post KOSTA라 하여 코스타 이후에도 tmKOSTA, eKOSTA, jjKOSTA, gpKOSTA,
missionKosta 등의 프로그램과 각 조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대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메신저를 통해 매일매일 코스타
때처럼 교제를 계속해 나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96년 당시만 해도 일년 연중 코스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을 때였습니다. 미리 이것을 밝히는 것은 지금 같이 여러 프로그램이 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이번에 계속되는 제 간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호에 실패한 코스타(?)에 대한 선언 후에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제가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을 보여주신 일은 지금으로 말하면 부분적으로 포스트 코스타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코스타 이후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교회 청년부 공동체와 한 교회의 변화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96년 코스타 이후 경험한 한 지역 교회의 회복


가 다녔던 보스턴 근교의 한 한국 교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코스타 이후 8월 즈음에 청년부의 위기 상황 가운데 세 명의
임원들이 모여서 새벽기도를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자매는 비교적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믿은 지 3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그 당시 청년부 회장한테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황당해 하면서도 자매는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요한복음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는 말씀을 읽다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주후에
그 자매가 공식적으로 청년부에서 개인적 간증을 할 때를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청년부 임원과 조장으로 섬기고 있던
자매가 청년부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자기가 이제야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섬겼던 조원 들과 청년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들-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자기는 원래 소리내지 않고 기도하던 사람인데 속으로 기도하던 중에 자기의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던 일- 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기도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마침 목사이신 아버지께 상담하던 중에 한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주시며, 자기같이 차갑고 이성적이고 성령과 은사에 대해서 무지하고 냉랭했던 자에게 심지어 소리 없는 방언을 주시면서 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자기에게 보여 주시는 분임을 알게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고집스러운 자신 같은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청년들에게도 임하기를 바란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임원 세
명만이 참석하기 시작한 새벽기도회에 더 많은 청년들이 참석해서 15인 승 교회 밴을 운행하고 그 밴이 매일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차가웠고 새벽기도가 시작된
지가 5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던 때인지라, 새벽기도에는 기껏해야 예닐곱 명 정도가 참석하던 때였습니다. 그 기대와 비전들이
청년부 사람들 가운데 번져 나가기 시작 하였고, 간증을 나눈 뒤 한 달여가 지난 후에는 승용차 한대로 충분했던 서너 명의
청년들이 한두 사람 불어나면서, 비전과 기대를 갖고 기도한대로 15인 승 교회 밴을 운영 해야만 했으며 급기야는 이 밴이
청년들로 가득 채워져서 매일 아침 새벽 5시 45분에 시작하는 새벽기도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은 밴도 모자라 몇 대의 승용차로 카 풀을 하면서 이삼십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거의 매일 새벽마다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밴을 운전하던 형제는 공대 박사과정 학생이었음에도 거의 6개월 동안이나 계속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스케줄에 따라 보스톤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한 명 한 명의 집으로 라이드를 주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몇 명의 헌신자들이 더
생겨 순번을 정해서 그 새벽에 청년들의 발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변화된 청년부 모습의
한 결과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청년들이 개인적인 회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면서 말씀에 대한 갈망과 기도에 대한 열정으로
청년부 모임들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 4 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그 불길이 어른들로 번지게 되었고, 그 다음해 초부터 계속
늘어나는 새벽기도의 참석자들이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에는 70여명의 사람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주일 대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숫자가 200명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교인 3분의 1 정도가 매일 새벽 5시
45분에 있는 새벽기도에 참석한 셈입니다. 그 중에는 소문을 듣고 주위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하는 숫자의 증가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도의 태도와 언어가 바뀌며 그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청년 학생들에게조차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변화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죽어있던 교회와 청년부가 살아나는 그런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소망하고 기대하던 참된 ‘부흥’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한 교회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변화된 청년들과 교인들이 계속해서 그 지역과 나라와 전
세계에 걸친 역사적인 큰 ‘부흥’을 기대하고 갈망하며 열정으로 기도한다는 면에서 너무나 큰 은혜라고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큰 변화의 또 하나의 결과로는 전해에 열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코스타에 참석했었는데 그 다음해 그 한 교회에서만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밴을 빌려 20시간 동안이나 운전을 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기도 하면서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단일
교회에서는 아마도 가장 많이 코스타 참석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코스타가 열리는 가까운 지역의 교회가 아닌 1000 마일
이나 떨어진 보스턴의 한 작은 지역교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이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진 지역 교회들의 변화

96
년 코스타 이후에 그렇게 한 지역교회의 회복을 경험한 후에 97년 코스타에 다시 참석하게 되었을 때 또 한번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 조장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 사람들이 간증하는 바, 작년 한 해 동안 코스타 이후 받은 은혜들을
지역 교회에 가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고, 그러면서 교회 공동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 했으며 그 결과 중 하나로 몇몇
지역 교회에서 그 전년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함께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여러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입을
맞춘 듯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지역에서 내가 속한 지역교회에서 경험한 그런 역사가 몇몇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중 한 지역에서는 코스타 이후에 그 지역의 몇몇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협력하며 사랑하며 그
지역 한인 유학생들과 이민 사회를 함께 돕는 사역을 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고백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을 행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집회에서 일회적으로 큰 역사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각
지역교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저는 간사도 아니 였고, 전체적인
코스타의 진행이나 준비나 계획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단 두 번 그것도 처음으로 참석했던 한 개인이 느낀 것이기에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제게 주어진 정보가 아주 제한적이라서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관적으로 한 개인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만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참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제한적으로 제게 주어진 정보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제가 느끼게 된 점을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주제에 상관없이 매년 일어나는 변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특별했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 지역교회 회복의 현장 한 가운데 서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나눔의 기회가 우리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들이 몇몇의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축복


회의 회복을 통해 받은 복을 누리던 그 때는 저에겐 개인적으로도 큰 복을 받았던 한 해였습니다. 전혀 연구 조교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때에,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학기에 조교자리를 못 찾으면 당장 등록을 할 수 없었던 그 때에 코스타에서 만났던
조원 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눈 뒤,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저는 극적으로 연구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저희
코스타 조원 들을 비롯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때 조원 들의 계속적인 기도 외에, 다니던
미국 교회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에 세 분의 교수가 있었는데, 한 분은
정년퇴직에 가까워서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았고, 또 한 분은 큰 병으로 학교를 나오지 못하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교수만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의 박사과정 말년에 있던 미국 친구가 아무 이유 없이 저를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수에게 편지를 쓰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편지 수정도 봐 주고, 박사과정으로 연구조교 신청을 하면 거의
불가능하니 석사를 일단 하기로 하고 석사 기간 동안만 연구조교를 하게 해 달라고 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권고도 해
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 연구 조교 자리를 얻는 데 유용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것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 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런 접근 없이는 사실 제가 연구 조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나중에 제 석사 과정 연구 테마까지도 제공 해주고 무능력하고 실력 없는 제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일년 후에 석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적같이 연구조교가 확정된 이후로 유학생활 일년 동안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때라 쉬고 싶기도 하고, 또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서, 급히 서둘러 2주 동안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치도 않게 친한 교회 선배의 소개로 지금은 제 아내가 되어있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인 그 다음해 2월초에 결혼을 하고, 97년 코스타에는 함께 부부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2003
년 코스타에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에도 저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항별로 꼬집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았던 시간이나 사건이나 말씀이 없어서도 아니고, 저 개인적으로는 정리가 조금 늦게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제 또 다시 일년을 살면서 코스타 때에 감동하면서 받았던 그 은혜의 말씀들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특별히 저의 삶의 영역이 될 제주도 지역에서, ‘순결’하게 살기위해 씨름하며 얻을 축복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류해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받은 은혜 자체를 나누며 풍성해지는 기쁨을 모른다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웬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꼭 그러고 싶어집니다. 지금 96년의 코스타와 그 이후 일년 동안 경험한 변화들을 기억하며 간증하듯이, 나중에 이번 코스타에서
받은 은혜와 코스타 이후에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들을 또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이제는 매일 매일을
코스타처럼 살아가는 daily KOSTA, 즉 dKOSTA로 살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96년 이후에 있었던 그런
지역 교회들의 회복의 역사가 우리 코스탄들을 통해 계속되어지고, 더 나아가 ‘순결한 삶’과 ‘거룩하게 구별된 삶’, 즉 ‘먼저
자기 집 앞을 청소하는’ 그런 선교사적 삶을 통해 적극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이 시대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는 저와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팽동국] 상한감정의 치유

eKOSTA 서평


상한감정의 치유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를 주제로 했던 2002년도 KOSTA-USA에서는 선포되는 말씀과 조별모임, 상담 등을 통해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있었다. 특히 인생의 커다란 아픔과 어려움을 경험하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일터의 현장을 통해 들으며 도전을 받아, 우리의 커다란 상처와 아픔들은 작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커다랗게 느껴져서 새로운 소망과 헌신과 다짐을 하며 우리의 자아가 치유되기도 했다.


이번 코스타에서 우리 가운데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기도 했고, 우리 영혼의 상처와 아픔들이 치유되고 회복되기도 했으며, 자신의 삶을 장단기로 주님께 헌신하기도 하였지만,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서 말씀에서 다루어진 상처와 아픔과 치유가 전체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성령님은 각자의 삶에 맞게 조명하셔서 개인 하나 하나의 자아를 치유하셨지만 말이다. 이제 코스타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헌신까지 한 우리는 데이빗 씨맨즈의 <상한 감정의 치유> 책을 통해 여러 상처와 아픔들을 좀더 세분화하여 자기 자신의 문제들을 진단하며, 그 문제에 맞는 치유의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알아가며 계속해서 치유의 역사를 경험할 수가 있다.


<상한 감정의 치유>는 기독교 상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기에 사실 대다수의 기독교인이 읽어 봤을 것이다. <좌절된 꿈의 상처>, <탓> 등의 여러 양서를 쓴 데이빗 씨맨즈 목사의 초기 책으로 “명료한 성서적 신학과 심리학의 튼튼한 기초 위에 실제적인 일반 상식이 섞여진 책”이라는 추천을 받았다. 누구에게든지 어떤 모습으로든 있게 마련인 분노와 죄의식, 낮은 자존감과 완전주의, 그리고 우울증과 열등감을 다루고 있으며,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감정적인 아픔의 핵심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줄 뿐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내적 격동과 감정의 상처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발견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20년 간의 목회 사역을 통한 많은 사람들과의 상담 사역을 기초로 하였기 때문에 이 책은 많은 실제적인 일화들로 엮어져 있으며 그래서 그 일화에 나온 사람들의 경험이 독자 자신의 경험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한 여러 문제를 단순화 시켜서 정확하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지만, 그 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깊은 사랑과 이해심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함께 다가가면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아픈 상처들이 아물고 치료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또한 깊은 성경의 진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경건이라는 구실로 책망을 하거나 문제를 단순화시키거나 획일화시키지도 않는다. 구원이 우리의 정서적인 문제들을 즉시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성령충만 하기만 하면 모든 정서적인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며, 성화의 과정으로의 치유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고 우리 인생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성령님의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시켜 준다. 열심있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지만 자주 깊은 회의나 절망상태로 빠져 들거나,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불씨와 같은 부부 간의 갈등문제나 깨어진 인간관계, 또한 자신도 모르게 자녀들에게 깊은 감정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여러 실제적인 경우를 다룬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늘 자신을 부적합하게 여기며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죄의식을 느끼며 계속해서 목표에 도달하려는 지나친 완전주의자,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자 지나치게 애쓰다가 쉽게 상처받는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사람들, 그래서 결정을 못 내리고 그 핑계거리를 남에게서만 찾으려는 사람들, 이 모든 것과 관련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성의 문제들.


이 책은 이러한 사안들을 다루면서, 결국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롬8:26)이 고치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지만 우리의 상처난 감정들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부분들이 있음을 알게 해 주며, 그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안해 주고 원리들을 알려 준다. 먼저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고, 어떤 문제이든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침을 받기 원하는지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고, 문제 가운데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어떻게 문제의 핵심을 알고 어떻게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성령님께 구하라고 권한다.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문제는 첫째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용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생활에 적용시키지 못하는데 있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못하는데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늘 우리는 서로 상대방에게 진 빚을 갚으라고만 요구하게 되어 상대를 용서해 주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거나 누군가에게 빚진 사람으로서 죄책감 가운데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은 용서할 대상이 있는지를 테스트 할 수 있는 세가지 방법을 제시하며, 빚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끌고 간다. 계속해서 우리의 잠재력을 마비시키고, 우리의 꿈과 이상을 파괴하고, 대인관계를 해치며,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 낮은 자존감의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며, 그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치료를 2장에 걸쳐 다룬다. 이어서 완전주의의 증상들과 그 치료 과정을 보여주며, 우울증에 대한 오류와 진실들을 밝혀주며 그 처리를 알려준다. 그리고 끝으로 치유를 경험했던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상담자들로 부르며 책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흐느끼곤 했다. 책을 읽다가는 더 이상 읽어나갈 수 없어서, 책을 덮고 기도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 내 깊은 감정의 상처들이 치료되어질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가장 강하고 인상적인 십자가에서의 예수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예수님이 나와 어떻게 개인적인 인격으로서 만나 주시는지도 알게 해 준 책이다.


두껍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으면서 가슴 벅찬 감동과 예수님의 사랑의 품 속을 느끼게 해 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코스타를 통해 우리 속에 시작된 치유의 역사가 심화되고 확산되어 미국 각 지역과 캠퍼스 내에 치유된 자아들의 모임이 생기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의 치유에서 시작되어 작게는 우리 자신들이 속한 교회와 학교와 직장, 더 나아가 사회와 민족과 조국 위에 회복되어 나가기를 소망한다.

[팽동국] 가트 린(Garth Lean)의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eKOSTA 서평


가트 린(Garth Lean)의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
<윌리암 윌버포스의 생애>
<God’s Politician : William Willberforce’s Struggle>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란 주제로 열 일곱번째 코스타가 이제 다음달이면 시카고 근방의 휘튼 컬리지에서 열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치유되는 자아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지만,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에 대해서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지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본인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지역이나 공동체, 혹은 족속, 민족, 국가에 회복된 경우를 역사에서나 현시대에 보아온 예가 매우 드물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가트 린의 <윌리암 윌버포스의 생애>는 한 정치가와 그의 친구들을 통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한 국가 전체에 걸쳐 회복된, 역사에서도 많지 않은 예임이 분명하다. 특별히 선교사나 목사 등의 전임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였던 정치가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한 국가, 아니 국가를 넘어 온 세상에 회복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윌버포스와 그의 동역자들의 삶은, 특별히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소망조차도 갖기 힘든 조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 코스탄들이 2002년 코스타를 준비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영역이 개인의 삶과 지역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문 분야와 사회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게 되는 거룩한 꿈들을 꾸며 비전을 갖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저자 가트린은 서문에서 이 책을 엄격한 연대순으로 쓰지 않고 주제 중심으로 썼으며 그 이유는 윌버포스와 그 친구들이 독특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시대정신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자질들과 방법들을 살펴보고자 함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으며 좀 더 객관적이며 비교 분석적이라 다른 일반적인 전기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별히 첫 몇 장은 윌버포스가 살았던 당시의 영국의 배경과 노예무역 상황, 그리고 영국의 의회제도와 윌버포스의 정치입문 등을 서술하였는데,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자칫 따분할 수도 있으나, 그 시대 전반을 이해하고 윌버포스와 그 친구들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더불어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 등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도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분명히 했듯이 이 책이 비록 윌버포스의 전기이지만, 한 개인의 전기라기보다는 윌버포스를 중심으로 그의 친구들과 공동체로서의 동역에 강조점을 두어, ‘윌버포스는 한 사람이 그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혼자서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장했다’는 존 폴록(John Pollock)의 말을 인용했다. 첫째는, 자신을 변화시키시고 동기를 부여해 주시며, 인도해 주시고 힘을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또한 자신과 함께 계획하고 일하며, 목표와 동기를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 맞는 친구들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서로 힘을 합해서 필요한 지도력을 창출했으며, 그 지도력을 효과 있게 해주는 전국적인 여론도 만들어 냈다. 그런 면에서 때때로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고만 알고 있기 쉬운데,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어떤 면에서는 틀리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헌신과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동역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고 계시는 것 같다.


윌버포스는 작은 키에 천성적으로 다정다감하며 열정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었기에 사람들을 모을만한 매력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났다. 거기에 그의 목소리는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음역을 갖고 있었고, 의회에서 유창한 표현력과 통렬한 풍자로 가득찬 연설을 할 때에 ‘아무리 적대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즐겁게 들었을 정도’로 천부적인 목소리의 연설가이자 정치가였다. 10대 초반에 윌리암 윌버포스는 조지 휫필드의 친구였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으며 노예선 선장이었다가 회심한 존 뉴턴 목사의 설교와 간증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으며 감리교도가 되어 자라왔으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반대로 고향인 헐로 돌아와 더 이상 신앙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고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정치에의 꿈을 꾸었고, 열 일곱 살에 캠브리지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보다는 사교에 관심을 두며, 후에 친한 친구이자 수상이 되었던 정치 동지 피트와 만났을 뿐 아니라, 다른 신앙의 동역자들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피트와 함께 21세에 의원으로 출마해 윌버포스는 헐에서 당선되고, 24세에 영국내 가장 크고 중요한 요크셔 주에서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탄탄대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해 누이가 아파서 따뜻한 지방으로 여행할 때 친구 아이작 밀너(Isaac Milner)와 동행을 하며 토론을 할 기회가 주어졌고, 성경적인 기독교에 지적 동의를 하게 되며, 그 이후 런던으로 돌아와 짧은 시간을 방황을 하나 결국 회심하게 되고, 친한 친구이자 수상이었던 정치 동역자 피트와 존 뉴턴 목사와의 면담을 통해서 ‘교회의 유익과 국가의 유익’을 위해 변화된 새로운 삶과 사고로 살아가는 신앙인인 동시에 정치인으로서 공적인 생활을 계속 유지할 것을 권유받는다. 그 이후 18개월간 동안 정치가로서의 공적인 삶과 내면에서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갈등과 삶의 목표로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과 갈등의 여정을 통해 결국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앞에 두 가지 커다란 목표를 두셨다. 하나는 노예 무역을 근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습을 개혁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그 두 가지 목표를 위해 50년 동안이나 그는 수상직을 포함한 여러 공직도 포기하고 클래펌 공동체를 형성하며 신앙의 동역자들과 함께 수고하다가, 죽기 이틀 전에 드디어 노예 해방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서야 운명을 한다.


윌버포스와 그의 친구들은 타락한 시대에 새로운 정치적 순결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정치인들로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서 공공복지라는 큰 문제를 책임지는 집단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일들을 했으며, 여론을 환기시키는 새로운 방법들을 개발하여 그것으로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새로운 민주주의가 신앙에 뿌리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영국과 전 세계에 확신시켜준 사람들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후기에서 저자 가트린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한다.


첫째는 개인의 무기력 증후군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시대에 가장 보편화된 오해중 하나는, 개인은 무력하며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기독교는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언제나 반대하며 개인의 무한한 가치와 잠재력을 선언한다. 그러나 헌신되었다는 그리스도인 들도 종종 다음 두 가지 그릇된 대안들에 의존하는 것 같다. 하나는 세상 문제들과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개인적 신앙의 게토(ghetto)속에 도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심할 필요가 없어 보일 정도로 거의 완전하게 정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런 일들이 18, 19세기 영국에서는 일어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조직이 방대하고 권력이 비인간적이어서 한 개인이 더 의상 그런 사회나 국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하심과 능력을 제한하는 것에서 기인할 뿐이며, 저자는 개인적으로 상황의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을 통한 변화를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려왔고 그 변화중 일부는 국제적 규모의 변화였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윌버포스와 그 친구들처럼,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막다른 골목과 같은 상황에서 문제들과 씨름할 일단의 헌신된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도전한다.


이제 우리 나라에도 윌리암 윌버포스와 그 친구들 같은 정치가들이 속속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할 느헤미야, 에스라, 모르드개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삶의 구석구석 모든 분야에 걸쳐 나오되, 특별히 정치분야에 그런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 ‘노풍’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성령의 바람이 우리의 조국을 휩쓸며, 우리 코스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일이 있기를 2002년 코스타를 준비하면서 기대하고 기다리며 기도한다.

[팽동국] 로렌스 크랩의 결혼 건축가

eKOSTA 서평


로렌스 크랩의
<결혼 건축가>


커플들과 결혼 상담가들을 위한 결혼청사진


5월은 교파를 초월해 한국과 미국(아마도 전 세계)의 교회에서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등이 있으며, 미국 교회에서는 어머니 날(Mother’s day)과 아버지날(Father’s day)이 각각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들에게 원하시는 가정의 원리와 본질을 알려주는 로렌스 그랩의 <결혼 건축가>로 양서를 선정해 봤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과 복음적인 교회들조차도 무의식중에 받아들여왔던 네 가지 잘못된 결혼에 대한 성향을 먼저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성경을 즉석 처방 혹은 어떤 공식처럼 사용하여 결혼 문제에 대한 신속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사고를 들고 있으며, 그것은 현대의 결혼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인간의 죄에게서 그 원인을 찾기보다는 심리학의 복잡한 이론들로써 문제의 초점을 파악하여 설명하려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저자는 개인의 책임을 경시하는 사고(思考)노선이라면 일단 반대하고, 사람에겐 자신의 인생의 각 결정과 삶의 순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견해 쪽이 옳다고 생각하며, 순종을 경시하는 심리학적 이론들을 거부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을 강조하되 행동의 선택과 결과를 중시하는 외적인 변화보다는 내적 마음의 변화를 통한 순종을 강조함으로써 우리의 사고와 목표와 감정까지 바뀌어야하는 영적 성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바라보고 있으며, 이 모든 이해의 기반에 인간의 전적 타락과 깊은 죄성을 전재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간 중심의 행복과 만족에 관한 매혹적인 강조와, 세 번째는 심리적인 필요들이 결혼문제의 초점을 차지하고 있으며, 네 번째로는 가정문제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라고 문제를 진단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극적으로 신속하게 변화된 삶과 결혼관계를 보장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으로 쉽지만은 않은 길고 긴 과정으로서 결혼 문제를 바라보며, 긍극적으로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살 때 그로부터 책임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동기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대로 사는 삶이란 좋은 기분만을 쫓는 삶과는 다르고 고통스런 순종이냐, 편안한 타협이냐를 결정해야 할 순간에 직면해서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알려준다. 개인의 경건한 삶을 산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생활까지도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결혼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성경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며 나의 필요에 대한 최상의 충족책이라고 생각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성경을 문화화하고 성경의 결혼관을 제한시키는 문화적인 해석들을 단호하게 거부하며 하나님의 결혼계획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구체적인 행동원리에 있어서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삼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결혼의 목표를 완전한 연합(창2:24)에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격체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뜻하신 바대로 살고 관계를 맺는데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인 안전감(Security)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인 중요감(Significance)이라고 바라본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필요는 반드시 먼저 채워져야 책임감 있는 삶을 살수 있고 성경적인 행동이 가능하다고 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하셨고 그분의 계획속에서 중요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두 필요는 완전히 채워졌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배우자나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 그러한 완전한 연합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간단하지는 않고, 타락한 인간 본성의 속성들과 대립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어렵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권위를 바탕으로 이 책 전반에 걸쳐 답을 해 나간다. 구체적으로 연합의 개념을 영적연합, 정신적 연합, 육체적 연합으로 나누어서 각 장에 걸쳐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설명하고 이 것을 건축가의 청사진에 비유하였고, 이러한 인격적인 완전한 연합의 목표를 지향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 선결 조건들, 즉 은혜, 헌신, 그리고 수용을 건축용 블록에 빗대어 설명하며 우리에게 결혼의 완성된 건물 모습, 즉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결혼제도와 결혼 생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각 장들이 아주 명쾌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적절한 그림을 삽화함으로 쉬운 이해와 지속적으로 기억해서 그 원리들을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진리의 평균대, 낭떠러지와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사랑의 밧줄, 조작과 섬김, 목표와 갈망, 감정의 수용과 거부, 흥미를 쫓는 성관계와 육체적 연합의 차이 등의 다양한 면들을 살핌으로, 우리의 모든 안전감과 중요감의 인격적인 필요들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채움 받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배우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인식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섬기고, 인격적인 관계의 표현과 연장으로서 육체적 연합 즉 성적인 만족을 즐기는 것이 결혼의 목표라고 설정한다. 계속해서 절망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어떤 실패나 낙심이나 비극도 우리의 결혼을 치료하실 수 있고 우리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충만하고 온전한 은혜에 대한 절대적 확신에 기반을 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한 참된 헌신과,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수용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사건, 즉 배우자의 행동에 대해 개인의 선택에 따라 섬김이냐 조작이냐를 결정 할 수 있고, 사건이 낳는 반응으로서의 일차적인 감정은 유쾌함과 불쾌함이 있는데, 각각의 감정 상태를 필요나 갈망으로 그 사건을 평가함으로 이차감정의 반응, 즉 의존심과 만족감, 악독함과 실망으로 나타나는데 궁극적으로 완전한 용서를 하겠다는 결정을 통해서 섬김으로의 결정과 친절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순기능적인 순환을 통해 결혼의 궁극적인 전인적인 연합을 할 수 있음을 아주 쉽게 도표화 시켜 설명해 주고 있다. 더불어 구체적인 사건의 예와 많은 대화법 등도 아주 실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데이트와 결혼에 대한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은 결혼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구체적인 행동원리의 추출에 있어서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삼은 점에서 가장 탁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성경의 무오성과 초문화적인 권위를 인정하면서 이 책을 썼으며, 더불어 인간 중심적이고 자신들의 필요와 만족 중심적인 가정에 대한 생각을, 하나님 중심,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이해와 믿음에 뿌리를 두고 가정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안전감과 진정한 중요감의 원천으로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과 성경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만, 우리의 단편적인 결혼관과, 배우자나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요구, 좌절과 실망,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여러 감정적인 상처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됨을 알려준다. 이 책은 결혼 생활에 대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 중에 혹시 지금까지도 이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독신자이건 결혼을 앞두고 있건, 아니면 지금 현재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건, 모든 분들이 꼭 읽어보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집에 사서 두고 때때로 다시 보면서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을 점검하고 있으며, 실제로 아주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팽동국] 백금산 목사의

eKOSTA 서평


백금산 목사의
<신앙 전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신앙전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에 대해 동의하고 있음에도 어떤 유익이 있으며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리고 방법적인 면에서 어떤 전기를 읽으며 또 어떻게 읽어야 될지 모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부제 ‘신앙 전기 읽기의 체계적 길잡이’에 걸맞게 백금산 목사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신앙전기를 읽는 유익들 뿐 아니라 전기를 읽으며 빠지기 쉬운 함정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전기 읽기를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3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여러 권의 좋은 신앙 전기 책들을 소개하기까지 한다. 저자의 저서와 역서인 <맥체인식 성경읽기 방법> 에 대한 책과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를 출판하고 난 후 목회자들을 비롯한 많은 기독 신자들이 보인 반응 중에서 ‘맥체인’과 ‘조나단 에드워즈’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는, 한국 교회의 현재의 심각한 증상을 ‘교회사 기억 상실증’이라 진단하며, 이 교회사 기억 상실증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바로 신앙의 위대한 선배들의 전기를 읽는 것이라고 처방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전기 읽기 3단계의 경험을 통해 전기 읽기의 중요성을 마치 광맥을 발견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5천 권의 전기를 소장한 목사와 125회 연속 전기 설교를 했던 목사를 통해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전기 도서관 설립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는 자기 경험을 나눈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 교회의 책 읽지 않는 성도와 목회자들에게 도전을 하고 있으며, 더불어 자녀 신앙 교육의 보물창고가 바로 전기임을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해 간다.


뒤이어 2장에서는 전기를 읽을 때의 유익들을 다루는데,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부여하고 신앙 성숙의 목표를 설정하는데 도움을 주며, 신앙 성숙의 과정과 방법을 배우게 되며, 자기 점검과 자기 반성의 기준을 얻을 수 있으며 전기 읽기는, 교회사 이해의 창문이며 하나님의 섭리 이해의 열쇠가 된다는 점들이 바로 유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3장에서는 전기를 읽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을 다루는데, 사람을 영웅화하거나 우상화할 위험성, 자신의 왜소함으로 인해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기 쉬운 점, 그리고 앵무새와 원숭이가 되거나 혹은 구경꾼이나 관객, 혹은 대리만족에 머무를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리고 4장에서는 누구의 전기를 읽을 것이지를 3단계로 나누어서 첫째, 전기 읽기를 맛들이는데 필요한 전기 소개서, 둘째, 중요 인물에 대한 분석적 전기 읽기의 예로 영적 거인 6명을 소개하며 권위있는 전기, 증언된 전기, 일반 전기를 비교 분석해 가며 전기 읽기를 하는 방법과 책들을 소개하고, 셋째, 시대별, 주제별 종합적 전기 읽기에 대한 단계와 각 단계에 맞춰 주요 신앙 전기들을 소개하는데, 우리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유익을 준다.


나 개인적으로 전기를 읽으며 얻는 유익들을 들자면, 우리는 누구나 이 시대와 문화에 의해 갇혀서 한정적이고 제한되게 하나님을 알고, 교회와 성도의 영광스러움을 희미하게 이해하거나, 성경 말씀을 피상적으로 깨닫게 되기 쉬운데, 그러한 한계와 제한점을 신앙의 위인들을 만나며 본래의 영광스러움에 가깝게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최대의 유익이라고 생각한다. 신앙 전기를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 나타나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함을 보면서 가끔 드는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들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동일하게 돌아가셨는데, 왜 그분들은 그렇게 큰 감동과 능력으로 살아가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늘 경박하고 천박하게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으며 이세상의 법과 가치관에 휩쓸려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나 자신과 이 시대와 세대를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과거에 위인들을 통해 세상과 역사를 바꾸신 하나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에, 이 캄캄한 암흑의 시대에 다시 한번 그러한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들을 허락하시기를 기대함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릴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자녀들의 신앙 전기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은데, 실제로 내가 잘 아는 어느 중학생 한 명이 최근 약 6개월 정도 신앙전기를 꾸준히 읽으면서 그의 가치관이 변하고 비전이 변화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는 것을 목격했다. 신앙 전기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허드슨 테일러 같은 선교사가 되고, 조나단 에드워드나 마틴로이드 존스 같은 목사가 되고, 윌리암 윌버포스 같은 세상을 바꿀 하나님의 정치가가 되고, 존 뉴턴 같은 과학자가 되고, 조선을 성서위에 세우려던 김교신 같은 선생이 될 꿈들을 꾸며 자란다면 그보다 더 귀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 하에 우리 부부는 앞으로 신앙전기 전집만은 반드시 집에 사서 보관하여 아이들과 함께 읽어가며 아이들이 신앙 위인들의 삶을 모델로 삼아 자신들의 비전을 발견하고 꿈을 꾸며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약속을 한 바 있다.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도 이 백금산 목사의 책을 함께 읽으며 전기 읽기에 도전과 안내를 받아, 회복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와 자신들의 비전을 새롭게 발견하며, 더불어 자녀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꿈들을 심어주는 일들이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