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영원한 진리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

대학에 입학한 후 첫 등교 길, 신입생을 환영하는 여러 현수막들이 가득한 캠퍼스를 꿈에 부풀어 더듬어 올라갈 때, 푸른 창공에 휘날리며 내 눈을 사로잡는 한 글귀가 있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어느 단체에서 내다 붙인 현수막이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고, 그 때는 그 글이 예수의 말씀인 것조차 몰랐지만, 그 글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면 깊은
곳에서 대학 생활의 막연한 기대와 용솟음치는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대학입시라는 질곡을 통과하여 마침내 자유의 바닷가 앞에
위풍당당하게 세워진 것처럼, 지난 날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유아기적인 몽상과 신화로부터 탈출하여 진리의 대양으로 마음껏 노
저어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감회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싱그러운 봄날의 부푼 가슴으로 진리와 자유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찾아간 강의실에서 어느 젊은 교수의 실존주의 철학 강의로부터 나의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다.

“인간은 피투성(被投性)이다”

아무 이유도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이 세상에 그저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 그 실존의 인식으로부터 인생이 시작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앞으로 펼쳐질
피비린내 나는 대학생활에 대한 예고요 선언이기도 했다. 모호한 것이 약간은 멋있어 보이던 그 교수의 강의를 통해 내가 받았던
감정은 절반은 매력적이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본능적 거부감이었다. 만일 인생이 그와 같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줄달음질치는 것인가? 그리고 삶을 지배하는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유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재 정권의 시녀로 전락해 자유로운 학문 정신을
상실해버린 피폐해진 캠퍼스, 지성의 전당이라고 상상하던 교실 안에서 자행되는 공공연한 부정행위, 절대 권위의 부재로 인한 영적
빈곤 상태를 권위주의로 억누르는 교수들에 대한 실망 감들로 진리와 자유에 대한 대학생활의 꿈이 허상이었음을 점차 깨달아가던 그
해 가을, 캠퍼스는 최루탄 연기 속에서 첫 휴교를 맞이했다. 그리고 최루탄과 실연의 따가움에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진리를 향한
내 인생의 길고 험한 장외 투쟁의 노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대의 청춘을 술과 담배 연기 속에 쏟아 붓고,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진리를 찾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같은 자로 되돌아 와 있었다.

(2)

장님으로 살다가 눈을 뜨게 된 사람의 마음이 어떠할까?

그토록 보고팠던 딸 효녀 심청의 얼굴을 보고 울다 웃다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을 심 봉사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흑암의 세월 속에서 살다가 광명의 세계로 옮겨간 사람의 그
자유함…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더러는 시각장애인이 되면서 비로소 진리의 빛을 찾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안요한 목사님의 이야기에 우리는 또 다른 감동을 맛본다. 참 자유란 반드시 육신의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2003년 캐나다 토론토 코스타에서 아주 특별한
두 사람을 만났다. 한창의 젊은 나이에 시력을 잃은 안요한 목사님과, 불의의 교통 사고로 인한 화상으로 청초했던 소녀의
아름다움을 잃은 이지선 자매가 함께 강사로 참석한 것이다. 흑암 속에서 잔잔히 빛나는 촛불을 바라보듯 그 두 사람의 간증을 듣는
동안 아름다움의 본질과 영혼의 자유함에 대한 근원적 생각을 다시 다듬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감내키 힘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그들
안에서 타오르는 아름다운 생명의 빛은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간증은 우리의 건강한 육체를 오히려 부끄럽게 하였다. 이지선
자매의 정금같이 순수한 간증을 듣고 난 후, 안요한 목사님은 그의 맑고 투명한 두 눈을 허공을 향해 깜박이며 이렇게 말했다.
“자매야말로 우리의 자랑스런 미스코리아 진입니다.” 육순의 이 시각장애인 목사가 보았던 것이 무엇일까? 육신의 아름다움을 상실한
한 여인의 아름다운 영혼을 향한 그 고백이야말로 진리 속에서 위대한 자유를 체득한 자만이 낼 수 있는 승리의 목소리였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두고 제자들이 예수께 묻는다.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 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전혀 다르다.
“그가 소경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예수는 종종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행함으로 자신의 빛 되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를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을 선언하였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 9:39)”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어두운 세상 가운데 진리의 빛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러하기에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 피하는 자들은 스스로 소경 된 자들이며 이미 심판의 길로 들어섰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육신의 질병과 영혼의 불구로 고통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 저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고 자유를 주기 위해 찾아온 예수,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당한 그 고통은 단순한 육체의 고통이 아니었다.“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고 간절히 부르짖었던 예수의 겟세마네의 기도는, 십자가에서 임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잔에 대한 영적 두려움 때문이었다.
순종의 아들 예수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영적 분리(分離)와 유기(遺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겁에 질려 아빠 양을 찾는 어린양의 울음소리처럼 간절했던 그 기도… 사실상 그 형벌은 바로 우리들이 받아야 할 죄의
삯이었다. 그 시간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던 그
‘야훼의 밤’에 애굽의 모든 이들이 잠이 들었던 것처럼…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아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들의 절규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우리에게 임할 그 심판은 오직 어린양의 흘린 피로만
대속 될 수 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키 위한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는 외 아들의 고통과 외침을 외면하시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을 아버지께로 이끌어 살리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침내 하나님은 그 아들을 버리셨다. 그리고 그 아들은 완전한 순종을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순종의 아들 예수가 가장 높은 하늘 생명의 보좌에서
가장 낮은 땅 사망의 십자가로 내려와 마침내 숨을 거두는 그 순간, 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사랑의 빛이 흑암에 싸인
온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진리의 광채가 역사의 시공을 따라 흘러 이 시간 이곳까지 이른 것이다. 그 섬광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그 기이한 빛을 한 번 비추인 사람마다 그의 딱딱한 머리와 얼어붙은 가슴은 녹아내리고 세상의 욕심을 향하던 그의
옛 눈은 멀어버리며 새로운 영적 세계를 향해 눈뜨게 되는 것이다.

(3)

만주 벌판의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에 초원의 신록이
한껏 물을 먹어 싱싱하게 오르고 있다. 멀리서 보면 무덤을 갈아엎어 세운 학교가 흰 파도 거품처럼 꿈틀거리며 그 능선을 따라
물결 치듯 늘어서 있다. 화사한 주일 오후, 분홍색 벚꽃과 철쭉, 노란 개나리가 만발한 교내 정원에서 쌍쌍이 데이트하며 지나가는
대학생들 사이에 교직원 자녀 아이들이 깡충깡충 뛰논다. 이웃에 사는 동역자가 첫 딸을 낳고 이름을 ‘진리’라고 지었다. 그리고
다시 남동생을 보자 이름을 ‘길’이라고 지었다. 일곱 살짜리 내 아들 문영(데이빗)이도 길과 진리와 어울려 함께 달린다.

정신지체장애 아들을 둔 고등학교 후배 J 교수가 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가는 얼굴이 하얀 찬영(가명)이가 그 집 아들이다. 막내 문영이와 동갑인 찬영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항상 가슴 한 귀퉁이가 아리며 당황스런 마음을 감추게 된다. J교수가 후배여서 그럴까? 아니면 찬영이가 우리 아들과
동갑내기여서 그럴까? 가슴이 아프다. 그 부부를 도우려 해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고 위로를 하고자 해도 어떤 한계를
느낀다. 천사와 같이 천진스러운 찬영이를 간혹 안아주고 항상 밝음을 유지하며 지내는 젊은 그 부부가 기특(?)하게 여겨지다가도,
그들이 비장애인 아동들을 바라보며 어쩌다 흘리는 눈물 앞에서 우리 부부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외면한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
아들을 바라보는 J 교수 부부의 마음속에 담긴 그 고통과 절규를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찬영이를 위해서 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사랑 고백을 하는 그 아버지의 마음 뒤에는 어쩌면 십자가 위에서 침묵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J교수가 언젠가 대학생들 앞에서 특강을 했다. “나는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 연변과기대의 교수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박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인생의
참 행복은 내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때 얻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장차 그런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내 아들 찬영이를 바라보며 과연 이 아이가 커서 누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럴 수 있는 위치에 오르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줄 수 있는 그 도전을 내 아들에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찬영이로 인해 아픈
자녀를 둔 다른 부모들이 위로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찬영이가 상처 받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찬영이가
항상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인 나는 찬영이가 있음으로 인해 정말 행복합니다.”

지금도 순종의 아들들이 당하는 고통 뒤에는 그로 인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더 큰 사랑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으로만 함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부활의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면한 사람에게서는 빛이 난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사십 일간 하나님과 함께 거한 후 내려올 때에 그 얼굴에서 광채(shekinah)가 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중국으로 오기 직전 깊은 기도로 매일 새벽 하나님과 만나고 있었던 무렵,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얼굴에서 어떤 광채가
나는 것 같다고 했었다. 그 이후로 더러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동역자들의 얼굴에서 은혜의 광채가 발하는 것을 드문드문
경험하기도 했다.

우리가 언젠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에서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여 만나게 되는 날, 희미하게 깨달아 보던 그 진리의 빛을 완전히 바라볼 날이 올 것이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고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으며, 이전에 있던 모든 상처와
질병들이 다 지나간 곳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 그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진리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처럼, 수정처럼 빛나며 해와 달의 비췸이 소용이 없고 오직 어린 양 예수가 그 등불이 되며 만국의 백성들과 만왕들이 그 빛
가운데 지나갈 것이다.

그 행렬 가운데는 통일된 조선의 백성들도 흰옷을 입고
얼굴에 광채를 내며 함께 줄지어 지나갈 것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한국인과 북한 사람의 경계도 없을 것이요, 중국 조선족과 미국
교포의 구분도 없을 것이다. 재일교포와 사할린 동포가, 우즈벡의 고려인 3세와 브라질의 교포2세가 함께 어울려 웃으며 지나가지
않겠는가? 연변과기대 졸업생과 한동대학 졸업생이, 평양과기대 출신과 포항공대 출신이 함께 지나갈 것이다. 목사요 장로요 집사의
구분도 없을 것이며 기업 총수와 문지기의 구분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탈북자와 순교자가 나란히 걸어갈 것이다. 한족과 조선족이
하나가 되고, 이라크인과 미국인이 하나가 되어 예수 앞으로 모여들 것이다. 그때 거기서…… 루카스와 상재가 웃으며
손짓하고, 찬영이와 문영이가 어깨동무로 함께 손잡고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던 그분이 인자하게 웃으시며, 다시 한번 영원한 진리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실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황지성] 요셉이 가정 이야기 그리고 그 후기

2003년 7월 12일에쓴 간증서신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 그리고 요셉이 가정에 대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미국 코스타 황지성 간사가 존경하는 믿음의 동역자님들과 선배님들께 올리는 감사의 편지.

코스타집회를 통하여 많은 헌신과 수고로 함께 해주셨고 요셉이 가정,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의 가정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기도해 주시고 사랑을 보여주신 여러 믿음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서신을 올리면서도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지난
일년동안 코스타를 섬기는 간사님들 가정가운데 두 가정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천국으로 보내야 하셨던 일에 대하여 또 캔사스에서
코스타에 등록했던 한 자매가 교통사고로 소천한 사건에 저 자신 마음을 다해 같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저 자신 사랑으로
그 어려움들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가 제 마음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

구자신 형제님 가정에 사고가 난 후 벌써 두 주가
지났지만 몇 개월이 지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큰 그림의 조그만
퍼즐조각들이 맞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정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 엄청난 고통가운데에서도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의 순결한 모습을 보여주신 구자신 형제님의 믿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깊은 감동이 있어서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속에서 구 자신형제님 가족은 이제
영육간에 빠르게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황윤희 자매 (요셉이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글로 자기 의사표현을 할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아직은 몇주동안 더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7월 15일 화요일 12시에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그리고
둘째 아이 송아는 인디아나 Elkhart General Hospital에서 Washington DC의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Hospital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제 그 주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간단한 보고를 드립니다.

6월 30일 월요일

사고는 6월 30일 월요일 정오경에 Indiana
Toll Road에 일차선으로 주행하던 자동차에는 운전하시던 황윤희자매, 앞자리에 구자신 형제, 뒷자리에는 본겸이 (14살)
요셉이 (5살) 그리고 세번째, 맨 뒷자리에는 송아(8살) 그렇게 타고 있었습니다. 코스타 장소로부터 거리가 약 3시간 정도
떨어져있어 긴장이 약간은 풀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92번 Exit근처에서 2차선으로 달리던 트레일러 한 대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어 일차선으로 들어왔답니다. 그리고 윤희자매는 급히 핸들을 중앙선 쪽으로 틀고 그 순간 자동차는 중앙분리대 지역을
넘어 건너편 하이웨이로 치솟아 떨어지면서 수 차례 회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 때에 충격으로 몸이 비교적 작은 요셉이는 차
안에서 튕겨져 나오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구르는 차 안에 갇혀있었고 다행히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들이
없어서 더 큰 사고를 모면했습니다. 큰 아들 본겸이는 순간적으로 차에서 나와 건너편에서 오는 차량을 수신호로 막은 후에 가족들을
아버지와 송아를 차 안에서 끄집어 내었고 엄마는 너무 심하게 다쳐있어 운전석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는 먼 발치에
튕겨져 나가있는 요셉이를 찾아내었습니다.

볼티모어 갈보리교회 노진준 목사님께서 불과 몇분 사이로
사고 현장을 포착하셨고 그래서 병원까지 가셔서 도움을 주실 수 있었던 일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세심한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우선
본겸이는 검사결과, 하나도 다친 부분이 없이 불과 몇시간 후에 노진준 목사님께서 코스타로 데리고 오실 수 있었습니다. 김만풍
목사님과 제가 코스타로부터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약 5시였습니다. 가족들 모두 수술중에 있었고 윤희자매는 큰 수술중이어서
그날 저녁 늦게 되어서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기도로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날 밤에 중환자실에서본 황윤희자매는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풍선과 같이 크게 부어오른 얼굴은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의식도 없는듯 했습니다. 구자신 형제는 오른쪽
발뼈들이 흩어져서 뼈를 맞추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송아는 허벅지 뼈가 부러져 여섯개의 금속핀을 허벅지 뼈에 박는 대 수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막내아들 요셉이는 병원으로 왔다가 상태가 매우 나빴기 때문에 Elkhart에서 약 두시간 떨어진 Fort
Wayne으로 헬리콥터로 옮겨져야 했습니다.

화요일

초조한 몇 시간이 지난 후, 화요일 새벽 1시경에
Fort Wayne 중환자 실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요셉이의 뇌 기능이 점점 약해져 간다는 소식이었고 만일 심장박동이 멎을
경우 CPR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아버지인 구자신형제님께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질문이었습니다. 구형제님과 저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새벽녘에는 절망적인 전화가 다시 걸려왔습니다. 요셉이의 뇌사가 임박했으니 마음의 준비와
그리고 기계에 의지해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인공호흡기를 만일의 경우 계속 유지시킬 지 아니면 떼어낼 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Elkhart병원의 Chaplin David Hudson목사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지금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고 분명 하나님께서
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저의 기도는 더욱 간절했습니다. 구자신 형제님께서 요셉이의 출생에 관해 숨기셨던 사실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셉이는 너무도 특별한 아이라서 하나님께서 꼭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 아이는 원래 제 아이가 아닙니다. 요셉이
엄마는 이 아이를 낳다가 낳은 날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데려다가 친아들로 삼고 기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에
이렇게 해서 이 가정에 들어오게 된 이 아이는 반드시 살려주실 것으로 믿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감출
사실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알고 함께해야 할 일이기에 구 형제님과 어제 전화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밝혀도 좋다는 승락을
얻었습니다.)

그날 오전에, 우리 모두의 기도의 힘으로 윤희자매의
회복이 빠르게 감지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 지금 의식이 있고 내가 누구인지 아시면 발가락을 움직여보라는 말에 오른쪽
발가락끝이 약간 움직였습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간호사들 모두 같이 기뻐해주었습니다. 구형제님도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오후 한시경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이의 뇌사판정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심장은
인공호흡기에 의해 뛰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병원측에서는 한가지 요청을 하였습니다. 비록 뇌의 기능은 온전히 정지되어있지만
장기의 기능들은 아직 살아있으니 장기기증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구형제님은 한동안 기도하시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장기기증을 결정하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요셉이를 회생시켜주실 기적을 기대하고 더 버티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장기를 이식하면 살 수 있는 두 세명의 아이(사람)들을 살리느냐 하는 정말 숨가쁜 결정이었습니다. 장기기증을
수락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아버지에게 한 가지 요청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한번 보고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구형제님의 건강상태도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기에 Case Manager는 강력히 반대를 했습니다. 아마도
환자의 liability문제가 심각한 우려로 대두되었던 같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요셉이에게 전화를 걸어 귀에 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미 뇌사판정을 받은 아이라서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쪽 병원에서는 말했지만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스피커폰이 연결되었습니다. 구형제님의 마지막
전화내용은 이랬습니다. “요셉아 아빠가 정말 너에게 잘 대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너는 이제 네 친엄마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겠구나. 그리고 예수님도 만나고… 이제 하나님 앞에 가면서 이렇게 기도하자. 너를 살리려고 그렇게 애썼을 그 병원
간호사들하고 의사선생님들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이 병원과 네가 있는 그 병원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병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요셉아 잘가라. 이제 다시 곧 만나자…” 저는 이 기도를 하고 있는 구형제님 옆에서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병원을 축복하고 있는 구형제님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후에 제가 그 병실에 모여있는 간호사들과 case manager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빠가 무슨 기도를 했는 줄
아느냐고, 이 어려운 순간에 당신들을 축복했노라고… 모든 사람이 다 울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복도에서 짤막한 회의가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case manager가 병실로 돌아와서는, “OK. Mr. Koo, we decided to let you go.”
그리고는 앰뷸런스를 병원측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었습니다. 수간호사 Bobbie는 진통제와
약들을 챙기고 앰뷸런스안에 모든 모니터 기구들을 싣게 했습니다. 구형제님을 싣고 paramedic 팀과 저와 수간호사 가
앰뷸런스 에 타고 장장 두시간 거리에 있는 Fort Wayne의 Parkview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시간에 김만풍
목사님과 민동식형제님은 그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 우리는 저녁 8시경에 아직도 심장이 뛰고 체온이 따뜻한 요셉이의
얼굴과 몸들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사망판정이 난 요셉이, 그러나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면… 아직도 체온은 따뜻한데… 김만풍 목사님의 집례로, 요셉이의 손을 잡고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끓어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종예배가 끝나고 이제 장기기증을 하는 절차를 밟는
도중에 저는 한국에서 오실 요셉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의 비자문제로 병실 전화통화를 통해 한국에 여기저기 통화를 해야만
했습니다. 요즘같이 비자가 까다로운 시절에 어떻게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게 될까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전화통을 붙잡고 여기
저기 전화를 하는 도중에 그 병원 간호사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I have a good news. I found out
that our deputy surgeon general’s wife and daughter are donating their
organs now here at this hospital. We probably can ask him for some
help…” 놀랍게도 그 분, deputy surgeon general은 한국주재 미 대사관과 워싱턴 homeland
security 에 보낼 편지를 즉석에서 써주시게 되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이 6시간만에 10년짜리
비자를 받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은혜였습니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은 착잡했습니다. 제 손에는
요셉이가 기증하기로 되어있는 장기의 목록을 담은 영수증이 들려있었습니다. 병원으로 돌아온 구형제님과 저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낸것 같습니다. 수요일 새벽녘에 안구, 신장, 심장, 신장, 이자, 간등을 포함한 장기제거 수술이 끝났다는 전화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요셉이가 다살지 못한 삶을
그 장기를 받은 아이들이 살아드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들이 살아드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기도를
구형제님의 손을 붙잡고 같이 드렸습니다.

수요일

수요일은 요셉이 엄마 황윤희 자매에게 조금씩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습니다. 요셉이의 몸을 버지니아 알링톤 funeral home으로 이송하기로 조치해
놓고 수요일 밤에 잠깐 짬을 내어 오헤어 공항에서 아내를 픽업하여 휘튼에 돌아왔습니다.

목요일

목요일 아침에 휘튼에서 다시 병원으로 떠나기 전에
몇분의 강사님들이 저에게 요청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집회중에 요셉이 가정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었고 궁금해 하니 짤막한
리포트를 아침집회때 해달라는 요청이셨습니다. 아침 집회중간에 잠깐 나가서 하나님께서 요셉이를 불러가신 일을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를 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를 마치고 떠나는 참에 두 분이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요셉이네
가족이 있는 병원근처의 은혜침례교회 나창옥목사님과 노틀담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하시는 천성창형제님이셨습니다. 천형제님께서는 이제
곧 한국에서 오실 요셉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가 묵으실 숙소로 자기 집을 내주셨습니다. 나목사님은 또한 제가 토요일 매릴랜드로
떠난 후에 요셉이 가족을 돌봐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목요일 점심때쯤 휘튼으로부터 제 아내와 구 형제님
큰아들 본겸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윤희자매를 찾았습니다. 입으로 반경 1인치 정도의 튜브를 폐까지
깊게 박아서 산소 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있었고 자매는 입과 목의 통증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얼굴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정말 의식이 온전히 돌와왔는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본겸이를 침대 왼쪽에, 휠체어에 앉은 딸아이 송아를 오른쯕에 가게
하고 손을 잡게 했습니다. 그리고 윤희자매가 평소에 좋아하던 찬양 “주만 바라볼지라” 찬양곡 씨디를 틀고 구형제님과 함께 같이
모두 찬양을 했습니다. 찬양을 한참 하는 중에 병실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병실 구석에 서서 이를 지켜보는
간호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간호사들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있는 것을 보고
윤희자매를 바라보는 순간 그 튜브를 박은 입의 입술이 찬양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매는 찬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뛸뜻이 기뻐했습니다. 그때부터 자매의 건강은 급격히 호전되기 작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금요일

금요일 저녁 병원을 떠날때 Bobbie를 포함한 많은
간호사들이 다가와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격적인 말들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We are so honored
to have the family with us. We are seeing God’s hands through their
witnessing.” 그리고 한 간호사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믿는 것은 무엇이냐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구형제님의 기도를 통해 이미 그 병원은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가정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제
눈으로 볼 수 있었음이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7월 12일 현재

어제는 구형제님이 전화에 그러시더군요. 요셉이 그놈만
아니었다면… 그러나 이번 일은 형제님 가정에 엄청난 축복이라고요… 요셉이가 우리 대신 갔다고, 마치 예수님처럼…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윤희자매는 이제 눈도 뜨고 글씨도 쓰고 한답니다. 어제밤에는 전화도
직접받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회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아직도 확실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이겠지요… 아직도 가슴아픈 것은 요셉이 엄마는 요셉이가 천국에 간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형제님이 그러시는데, 윤희자매가 정신이 좀 돌아오면서, 며칠 전에 요셉이가 요셉이
친엄마와 천국에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했답니다. 이 부분을 갖고 계속 기도했는데 아마도 하나님께서 충격이 크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시켜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하튼 이 소식을 곧 알려야 하는데, 충격이 크지 않아서 자매의 회복에 지장이 없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이네 가족을 위한 기도제목을 몇가지 적으며 이 서신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1. 요셉이 아빠가 기도하신대로 Elkhart
General Hospital 과 Fort Wayne Parkview Hospital이 환자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적 치료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병원전체의 복음화와 병원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이의 장기를 받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자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이 세상을 치유하는 서번트 리더들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3.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빠 구자신 형제님과 엄마 황윤희 자매님의 소명이
확실히 확인되어지고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드려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아빠의 전공(microbiology)와 엄마의
전공(성악, soprano)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나 혹 이 전공과 다른 소명을 주신다면 그
소명이 확인되어지고 하나님께서 나머지 인생의 길을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나갈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큰 아들 본겸이와 딸 송아의 마음속에 상처가 남지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윤희자매가 요셉이 소식을 들었을 때에 큰 충격없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6. 모든 재정적인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7. 이번 금요일과 토요일에 있을 장례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고 이 예배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있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계속적인 기도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황지성 드림

2003년 7월 12일에

2003년 8월 1일에 이 글에 덧붙이는 소식

여러 믿음의 동역자님들과 선배님들의 기도와 격려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알려드린 대로 지난 7월 18일 19일에 요셉이 장례를
잘 마쳤습니다. 지구촌교회 성도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코스탄들과 그리고 지역의 목사님들과 성도님들도 많이 참석하셔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례식이었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요셉이 어머니께는 요셉이의 장례소식을 고별예배가 있던
금요일의 하루 전날, 목요일 오후에 조지타운 병실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사고 후 모든 사실을 남김없이 알려드렸습니다. 매우 힘든
시간이었지만 ,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덕분에, 김만풍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그
슬픔을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몸이었지만 그래도 장례예배에 가족 모두가 같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 마자 요셉이 엄마아빠는 곧바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매우 연약한 육체로 참석했던 요셉이
엄마였지만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마지막 찬양으로 “주만 바라볼지라”를 이 가족을 향해 불러 드릴 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셨습니다.

토요일은 화창한 날씨를 주셨습니다. 이진석 목사님의
집례로 발인예배후에 곧바로 장지로 떠나 요셉이를 땅에 묻었습니다. 고상환 목사님의 집례로 하관예배가 있었고 참석한 사람들이
마지막 헌화를 하면서 장례식은 그렇게 아름답게 끝났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에는 요셉이의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간단한 편지가 미국 장기 기증협회이름으로 날아왔습니다. 요셉이의 간을 이식받은 아이는 미시간에 사는 10살난
남자아이로, Frank라는 거북이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 신장을 받은 사람은 인디아나에 사는 수영과 음악을 좋아하는
28세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장기들은 장기은행에 보관되어, 추후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기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제 이 장기기증을 받은 위의 두 사람들이, 이름은 모르지만, 건강하게 회복되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요셉이 가족 모두가 퇴원하셔서 집에 계십니다.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회복되어가는 가정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 가정을 향한 기름부으심이 가슴 설레도록
기대됩니다. 요셉이 어머님은 아직은 누워계시지만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계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신 것이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혹 요셉이 가정에 직접 연락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주소나 이메일로 연락하시면 되겠습니다.

Jashin Koo
15608 Marathon Circle #104
Giathersburg, MD 20878
jashin1028@yahoo.co.kr

다시 한번 여러 믿음의 동역자들과 선배님들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메릴랜드에서 황지성 드림

요셉이의 하늘

요셉이의 하늘:
촬영 : 민동식 , 2003년 6월 30일 저녁 8시경
Elkhart, Indiana

[최원영] 신앙 클리닉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내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부터 지금까지 이 질문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되새김질 할 때마다 믿음을 이해하기위해 내가 버려야 할 가치관과 붙잡아야 할 가치관이 있음을 절감한다.
도대체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쉽지 않은 화두이다. ‘8월의 책’으로 선정한 박영선 목사님의 ‘신앙 클리닉’ 은
이와 같은 질문을 고민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신앙도 클리닉이 필요한 시대다.
세상의 가치관에 젖어 살다 보면 무엇이 세상적 가치관이고, 무엇이 성경적 가치관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비전과 성공에
관해서 그러하다. ‘하나님을 나의 성공의 사닥다리로 이용하지 마라’ 란 말에 동의 하면서도 어느새, 은근히 하나님을 사닥다리
취급하는 나 자신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를 구원해주셨으니 이것은 꼭 들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는 기도는 나의 기도 리스트에 사라진 적이 없다. 오호통재 라, 언제나 주님만으로 만족하게 되려나?

잠시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지닌 축복을 확인하려면 예수를 믿지 않는 상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해를 얼마나
깊이 하느냐에 따라 예수를 믿게 된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의 인생에서 감사하는 생활이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p19)

이 책은 ‘그 이해’를 깊게 하도록 도와 준다. 신앙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제거하고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고급 신앙’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으로 나가도록 저자는 촉구한다.

이 책은 9부로 구성되었다. 그것들은 구원이란
무엇인가(1부), 믿음의 조건(2부), 확신:사실인가 감정인가(3부), 신자의 생활근거(4부), 신자의 생활도리(5부), 구원과
교회(6부), 거룩의 연습과 교회(7부), 하나님의 나라가 천당인가(8부), 하나님나라의 운행(9부)으로 전체 50과로 짜여져
있다. 이 구성에서 보다시피, 저자는 구원에서부터 하나님 나라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하룻밤에 후딱 읽어 버릴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루에 한 과 씩 읽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건강을 뺏기도 하고 물질을 뺏기도 하십니다. 오해와 경멸과 천대 속에서 살게도
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문젯거리인 자녀들도 주십니다. 거기서 우리는 무한히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인간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인가, 물질이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행복이 무엇인가를 배웁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우리 앞에 가져 다 놓고
유혹하는 현란한 색깔들의 이면에 있는 허무를 비로소 꿰뚤어보는 눈이 생기는 것입니다.”…(p207)

보이는 것 이면에 숨어있는 안 보이는 것을 보는 능력, 그것이 믿음이 아닐까 싶다.

사족: 저자의 책 중에서 ‘하나님의 열심’도 권하고
싶다. 약 20년 전에 출간됐지만 아직도 스테디 셀러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믿음의 영웅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추적한 책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조차 시작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과 더불어 우리에게 ‘나도 믿음의 인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책이다.

[이진석] 진검 승부는 패션으로 내린다.

2003년의 4월이었다. 개혁을 표방하던 의원이
패션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의원 선서식에 흰색 면 바지, 라운드 셔츠 차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날 고성과 퇴장으로 국회가 정회
되었다. ‘튀는’ 패션의 그 캐주얼 의원은 기존 국회의원 들이 문화 수용의 폭이 좁고 옹졸하다고 지적했고, 양복정장의 기성의원
들은 문화의 품위와 격이 떨어졌음을 한탄했다.


기사를 읽으며, 20년 전 80년도 중반 한국에서 어색했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때만해도, 한국 남자의 양말은 흰색이어야 만
했다. 미국에서 좀 있었던 영향이었을까? 난 그것을 몰랐었던 것이 문제였다. 적어도 나의 상식에는 검은 색 양복에는 짙은 색
양말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장례식이 아닌가? 그런데 방안 모든 남자들 옆의 검은 가죽 성경책, 검은 양복 바지 밑으로
하얀 색 이빨처럼 흰색 목양말들이 가지런히 나와있었다. 그 시위행렬 속에서 새까맣게 반질거리던 나의 외로운 나일론 검정 양말은
영 판 썩은 이빨 빠진 자리였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힐끔 나를 보던 눈들… 그때 난 처음으로 소리없이 쏘아대는 ‘눈총’이
그렇게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줄 처음 알았었다.


실, 양말과 셔츠 둘 다 서양에서 수입된 복장이 아닌가? 웬만한 일에는 감정 표현이 덤덤한 한국인의 정서가 이렇게 민감히 자극된
이유가 무엇일까? 유니폼이 주는 장점은 전체의 공통 분모 속에 개인의 변수가 함몰될 수 있는 편리함이다. 물론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에서는 자기 표현을 막는 장애요 구속이겠지만, 전체의 고양된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도회의
중심가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각 종의 상표를 자랑스럽게 드러내어 놓고 다니는 것도, 이런 네임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에 자신이 동반승차 되어있다는 착각 때문 일 것이다.

청교도도 옷가지고 싸웠다


국인만 옷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것이 아니다. 청교도가 본격적으로 형성하게 되는 계기가 성복논쟁(Vestiarian
Controversy,1563) 이었다. 이미 1550년에 존 호퍼 (John Hopper)가 주교 임명 시 성복 입기를 거부한
것은 단순한 복장의 문제가 아니라, 청교도와 성공회 사이의 신학적 입장을 포함한 다양한 이슈들이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것이었다. 그 후, 오랜 세월을 걸친 사색과 논쟁의 결과로 정립된 것은, 청교도 사상과 신학적 이념들이었다. 복식논쟁은 그런
사상의 표현 방식에 따른 당연한 귀결에 불과하였다. 물론 청교도의 성복 논쟁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왕권 강화 정책과 맞물린
정치적 성향을 띄고 있었지만, 정권 쟁취를 위해서 가외의 의미가 부여되었던 조선의
상복 논쟁
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래서 한국인의 동질성은 의복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단 피부에 와 닿게 하나가 된다는 자극 점이 있어야 된다. 한국인에게 의복은
동질성의 소산, 열매가 아니라, 동질성의 시작이요, 씨앗이다. 동일한 복장은 소속 집단에 귀속하는 의사표시이자 신고식이다.
동질성은 그 다음 하나씩 배워갈 생활의 문제로 남게 될 뿐이다. 목사님 중에 신부님과 같은 복식을 입는 것이 나 개인적으로는
넥타이와 와이셔츠 색깔 고르는 고민을 안 해도 되는 이점이 있을 것이란 이기적인 생각도 하여보지만, 많은 한국 개신교인들이
불편함을 가지는 것도 복식이 단순한 유니폼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런 한국인의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올림픽의 붉은 열풍이었다. 붉은 색은 전통적으로 중국인이 선호하는 색이다. 한국의
단풍이 그렇게 붉어도, 한국인의 감각에는 조심스러운 색깔이다. 더군다나 공산주의자들이 빨갱이로 통하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공산주의와 더불어 붉은 색은 사회적 금기 조항이었다. 그렇던 한국에 붉은 색의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전국의 거리가 붉은
색으로 도배되다시피 하였다. 심지어 미국에 있는 한국계 2세들까지도,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붉은 악마의 휘장과 셔츠를 입고
다녔다. 지방색도, 배경도, 세대도, 이념도, 종교도, 언어까지도 더 이상 갈등의 요소가 아니었다. 복장 통일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화합의 방법이다.

[추영규] 계속 되어지는 제자 삼는 그 일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집에서 처음 여는 파티라서 긴장도 되지만 철저하게 준비해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들뜬 마음으로 상상을 합니다.

‘파티를 열자!
그래 그럴싸하게 하는 거야.
음식도 모든 종류를 빠짐없이 준비하고 온 집안을 멋있게 장식하는 거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야지.
오후 7시 반이라고 얘기했으니까 늦어도 8시쯤이면 한두 명씩 나타날 거야.
그러면 활짝 웃는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해야지.
아마도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우리 집에서처럼 멋있게 파티를 열지는 못할 거야. 이렇게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세심하게 준비를 하는데 안 온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생각만 해도 정말 신나는 일이야.’

7시 30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꾸 시계와 바깥을 번갈아서 바라보게 됩니다. 8시가 되었습니다. 1명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에게 이야기 합니다. “와 주어서 고맙다”
친구가 대답합니다. “내가 안 나타나면 네 얼굴을 다시 어떻게 보냐?”
반갑게 맞으면서도 마음은 실망과 걱정으로 눌려 있습니다.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명이 나타납니다.
또 다시 생각합니다.

‘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벌써 8시 30분인데 왜 두 명밖에 오지 않은 거지.
나머지 11명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준비도 완벽하게 했고 모두 온다고 약속했는데 왜 오지 않는 걸까?’

캠퍼스에서 성경 공부를 한 번이라도 인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음 직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집에서 파티를 여는 것하고 캠퍼스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하고 비교할 수 있느냐고 누군가가 반문하겠지만 그 준비하는 마음과 기다리는 상황은 아주 흡사한 것 같습니다.

지난 5년 반 동안 캠퍼스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간사로 섬겨 오면서 매주 금요일을 같은 마음으로 보내 왔습니다. 금요일 저녁 7:30에 성경 공부를 한다고 모두에게 알리고
일주일 내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름대로는 준비도 열심히 하고 찬양도 연습해 보고 기도하면서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그룹의 멤버들 얼굴을 떠 올리며 내 안에 부어 주신 귀한 말씀을 빨리 전하고 싶어서 못 견뎌 할
때도 있습니다.

드디어 금요일 오후가 되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에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며 캠퍼스로 향합니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 ‘오늘은 몇 명이나 나올까’ ‘아 참 아무개에게 다시
한번 연락을 할걸… 저번 주에도 온다고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안 타나 났지’ ‘그래도 이번 주에는 많이 나오지 않을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그 날 전할 말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주차를 하고 등에는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예약해 놓은 방으로 뚜벅 뚜벅 걸어갑니다. 금요일 저녁인지라 대개는 캠퍼스 전체가 한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면 텅 빈 방안에 혼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방을 내려 놓고 그날의 성경 공부를 주관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잠시 기도하고 책상들을 소그룹 성경 공부하기에 좋게 배열을 해 놓고 기타 줄도 다시 한번 맞추어 봅니다. 첫번째 학생이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고 때로는 외롭기도 합니다. 물론 그 방에 함께 와 계시는 예수님이 계셔서 위로가 되지만 눈은
계속 문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복도쪽에서 낯익은 급한 발소리가 들려 옵니다. 한 자매가 들어옵니다. 시계를 보니까 7시
45입니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는 시간을 잘 지키는 자매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8시가
다 되어서야 또 다른 형제 한 분이 나타납니다.

5 분 정도 더 기다리다가 찬양을 시작합니다. 비록 세
사람 밖에 없지만 큰 소리로 찬양을 합니다. 찬양을 하는 중에 문쪽에서 또 다른 자매 한 명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찬양에 더 큰
힘이 갑니다. 저도 모르게 기타를 힘껏 치다가 줄이 끊어집니다. 순간 당황이 되지만 나머지 5개의 줄을 가지고 계속 찬양을
합니다.

찬양을 마친 후에 그 시간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다 모이지 않았지만 함께 앉아 있는 귀한 영혼들 한 명 한 명
모두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말씀을 전할 때 힘을 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성경 공부가 거의 다 끝
나갈 때 즈음에 또 한 명의 형제가 조용히 들어옵니다. 비록 늦게 와서 성경 공부의 내용을 거의 다 놓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반갑습니다. 말씀을 다 전하고 나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들을 나누면서 친교 시간을 갖습니다.

결국 멤버 중 다른 6명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은 이번 학기 들어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형제입니다. 내일 꼭 전화해 보아야지 하고 결심합니다.

집으로 가는 차에서 생각해 봅니다. ‘왜 그 형제가 안 나타났을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통화했는데.. 어쩌면 내가 조금 더 열심히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일거야.’

이렇게 지난 5년 반 동안 매주 금요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파티를 연 자가 손님을 초대하여 놓고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파티와 캠퍼스에서 제자 삼는
일 사이에는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파티는 사람들이 안 나타나면 실망해서 다시는 안 열겠지만 캠퍼스에서 젊은 영혼들을 예수님께
복종시켜서 제자 삼는 일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꼭 올 건만 같았던 학생들이 몇 번이나 약속을 하고도 안 나타날 때마다 매번
실망하면서도 다음 주에는 그들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간절히 기다리며 또 다시 한 주를 보내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수십 번 아니 수천, 수만 번을 실망시켜드린 예수님께서도 나를 변함 없이 기다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점은 하루 저녁만 즐겁고 말아 버릴 파티가
주지 못하는 기쁨이 제자 삼는 일에는 있다는 것입니다. 매 번 실망을 시키면서 안 나타나던 어떤 형제 혹은 자매가 결국은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 잡힌 자가 될 때 느끼는 바로 그 기쁨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게 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
도 매 주를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은 또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 주게
만드는 그 일 – 바로 제자 삼는 일이 계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있기에 나는 이번 주에도 캠퍼스로 변함 없이 발걸음을
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