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Simply Life, 나의 유학일기 – 2004. 10 어느날

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종합시험, 종합시험, 종합시험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윤동주, 쉽게 씌어지는 시 중


오늘은 비도 주적주적 오는 것이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식스 스퀘어 방은 남의 나라, 아니 지금 있는 곳은 식스 스퀘어는 더 되는 것같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무슨 차이가 있으랴. 남의 나라인걸. 혼자 좁은 공간에 고립되어 있다고 느껴질 때, 괜히 나를 감옥에 있었던 다른 사람으로 등치시켜보곤 한다. 사도 바울이 그랬지. 김교신이 그랬지. 그리고 윤동주가 그랬었지 하면서.
유학생활한지 수 년, 이때까지 온 내가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이것밖에 아닌 내가 한편으로는 한심하다.


오늘은 문득 공부를 한다는 것이 장난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들어온 미국 동기들은 벌써 패쓰한 종합시험을 한 학기나 미루고 아직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해보인다.
대학교 다닐 때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이 가장 힘들고, 유학을 준비할 때는 준비과정에 제일 힘든 줄 알았더니 코스워크 과정에서는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것만 지나가면 낫겠지 했더니 종합시험 스트레스는 앞의 것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참 하면 끝이 없이 벌어지는 난관에 인생은 고역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하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언어의 장벽을 실감하고 당황해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 하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긴 하다. 과제와 에세이 준비하면서 끙끙대던 기억들, 좋지 않은 성적과 컴멘트로 속상해하던 일, 프레젠테이션하면서 긴장하던 일들 겨우겨우 넘어서 코스워크까지는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새로운 지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영어는 왜 이리 안 느는지, 글을 읽다보면 걸리는게 너무 많아서 다시 예전에 공부하던 단어장이나 한번 훑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논문을 쓰기는커녕 남의 논문 이해하는데도 이렇게 장애가 많으니 언제나 그들을 따라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 잉여인간, 고민


나는 무엇이 힘든가. 육체적으로? 혹은 혼자 사는 삶의 외로움으로? 평소에 공부를 잠을 못자면서까지 하지는 않으므로 몸이 힘든 것은 아닐 것이고, 혼자 사는 외로움이야 삼십년을 따라오던 것이므로 지금 유달리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가 갖는 심적인 어려움은 가끔은 내가 잉여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나하는 회의 때문일 것이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아직 가당하지 않겠지만 뚜렷한 성과물이 없이 사회에 생산적인 기여를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가치물을 소비만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대학을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벌써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가정도 갖고 안정도 되어 있는데 나는 아직도 사전 뒤적이고 있는 것이 슬며시 부끄러운 것이다.
나는 지식인인가 아니면 잉여인간인가? 이제 지식인도 앞에 신(新)자를 붙여서 보이는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지식을 도출해내지 못하면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에 내가 지금 들여다 보고 있는 이 종이 자락에서 무언가를 건져낼 수 있을까? 아니 이 정도의 글이라도 써낼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을까? 그저 백면 서생(百面書生)으로 남아 남들이 만들어놓은 가치에 얽어 붙어 살아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감상(感傷)이나 연민으로 세상을 향하기에는 삶이 너무 무겁다. 사랑과 땀이 고이 담긴 학비 봉투는 무표정한 나의 얼굴을 비장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다른 걱정없이 미국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특수한 시간을 감정의 소회로 보낼 수는 없다.
태어나서 지금처럼 많은 돈을 써본 때는 없다. 또 태어나서 지금처럼 많은 돈을 벌어본 적도 없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한 이후 지금처럼 아끼면서 산 적도 없다. 복사 종이 한장도 돈으로 환산되고 커피 한잔도 절약의 방도를 찾아보게 된다. 집에서 타먹으면 일불이라도 절약할 수 있겠지.
일상의 외관은 철저히 현실주의자가 되어 다른 것을 잊고 전진해야함을 상기시켜준다.


사는데 가난한 것이 마음의 가난함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물 속에 잠수해있을 때 느끼는 숨막힘이 공기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는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인의 삶, 쉽게 씌어지지 않는 시


로렌스 형제가 터득한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순히 자신의 평범한 일상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는 맡겨진 일과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의 마음으로 감당했으며, 늘 자신의 그 사랑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한 것이 되게 하고자 했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 중


우리의 성화는 우리가 추구하는 생활을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꾸는 데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활동들을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뜻인 것같다.
신앙과 학문의 조화, 삶과 신앙의 일치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우리에게 요구한다고 노상 들었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유학생활은 특수하면서도 어느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동일하게 보이는 재물을 위해 살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것인가의 선택의 장인 것같다.
나의 유학생활에서의 성화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합당한 목표와 그에 걸맞는 성실함과 자기 절제로 우리의 삶에 적용될 수 있을까?
헨리 나우엔이 적기를 우리가 지식을 쌓는 이유는 우리의 지식을 자유로이 나누기 위함이고 우리가 절제하는 이유는 주님에게 성실하기 위함이다. 오직 관대하게 우리의 가진 지식을 나누어 줌으로써만 우리는 그 지식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알 수 있다고 했군. (It is only by giving generously from the well of our knowledge that we discover how deep that well is. –Henry Nouwen, Bread for the Journey)
이것이 나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영어 공부가 되었건, 종합시험이 되었건, 학위 논문이 되었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절제하는 것이 신앙의 아름다움의 실체이겠지.
그리스도인에게 Simple Life는 의미없는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절제하는 소박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좇는 우리에게는 오늘 하루의 책상머리맡은 하나님나라에 하나의 벽돌을 얺는 신성한 삶의 자리인 것이다. 나에게 오늘 하루는 더 이상 그저그런 일상이 아니라 일일 일생(一日一生)으로 의미가 바뀐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완결성은 아직 먼 일이지만 오늘 하루가 달라지만 일생이 달라지리라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희망을 주어본다.


학교의 해거름 생량(生凉)한 찬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준다. 혼자 내 속으로 침전하기 전에 주위를 돌아본다. 삶이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교정을 나선다.

[김재석] 유학시절 – 거듭남과 제자양육의 최적시기

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한국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중, 외국 유학(또는 주재원) 시절중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거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한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중 대부분은 유학(또는 외국 주재)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교회에 나갈 동기가 없었을 사람들임을 보면, 유학기간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에 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함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이들중 대부분은 타향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다른 한인들과의 교제 목적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곧 거듭남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유학시절에는 교회를 다니다가 한국에 귀국해서는 신앙생활을 하지않는 경우도 많이 보게된다. 이것은 유학기간 동안 교회에서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돕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유학시절은 각자가 품은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기간이기도 하지만, 각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 거듭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는 이러한 사역에 뜻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이제 나의 유학시절에 있었던 실예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유학을 떠날 때, 유학기간 동안은 주일날 교회나 잘 나가면 될 정도로 바쁘다는 (유학 다녀온) 선배의 조언(?)에 따라 성경책 한 권만 들고 떠났다. 나는 이전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받고, 또 다른 사람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훈련도 받았기에, 늘 제자양육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유학기간 동안은 이 꿈을 접어두기로 한 상태였다.



1984년 내가 유학을 갔던 지역(미국 뉴욕주 올바니)에는 당시 한인교회가 한 개 있었고, 주일날 약 150여명 정도가 예배를 드리는 정도였다. 그중에서 절반 정도가 유학생이였고, 기혼자가 좀 더 많은 시절이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기혼자아파트 지역에서는 금요일 저녁에 교회를 오래 다니던 집사급 선임 유학생이 공과교재를 사용하여 전통적인 구역예배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전에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 뿐이였다. 한국에서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으나, 유학의 외로움도 달래고 다른 한인들과의 교제를 위해 교회에 나오는 유학생들은 주로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정도로 다니고 있었다. 이들에게 믿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개인적인 성장을 돕기 위한 사역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나서, 지도교수와 RA도 시작되면서 유학생활이 본 괘도에 접어들자, 내 마음속에 이들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함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믿음 없이 교제 목적으로 교회에 다니던 한 부부를 지목하고, 몇 번에 걸친 방문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 놓았다. 특히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본질을 잘 알지 못하고 남에게 주어 들은 내용 정도로만 알고 있다고 말했을 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였다. 나는 이것을 제대로 알려면 3번 정도에 걸쳐 성경이 말하는 내용을 같이 공부해보자고 제안하였고, 그 부부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세 번에 걸친 성경공부 내용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주되심과 영접하는 길 등을 다룬 복음 소개용 성경공부 자료였다. 이 부부는 이 만남을 통해, 복음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이들은 우리 부부와의 성경공부 만남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갖게된 것을 온 동네에 선전하고 다님으로써, 우리들이 다른 부부들과 동일한 만남을 다시 갖게 되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이것은 유학기간 동안 여러 번 반복되었다.



또한 이러한 입소문은 당시 교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던 다른 집사급 유학생들에게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고, 이들은 그 내용과 방법을 전수받기 원했다. 이를 통해, 그들에게도 복음 소개 자료와 방법을 전수하게 되었고, 이들이 한 가정씩을 선정하여 동일한 시도를 함으로써 좋은 결실들을 거두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적으로도 좋은 반향을 일으켰고, 우리 팀들은 교회의 여름 수양회 등을 기획하고 행사를 진행하면서 비슷한 일들을 교회 전체적으로 확산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을 떠난지 10여년이 지나고나서 우연히 당시 교회 장로님을 뵈었는데, 이 시절이 교회적으로 가장 활성화되고 좋았던 시절이였다고 평가해 주시는 것을 보고, 정말 감사한 마음이 넘쳤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복음 소개용 성경공부가 잘 정착이 되는 중에, 계속적인 성장 단계의 성경공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특히 처음 믿음의 확신을 가진 부부가 계속적인 제자로서의 성장 공부를 원했고, 우리는 네비게이토선교회의 SCL 교재를 이용하여 단계별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을 거친 부부들은 나중에 본인들이 새로운 가정을 선정하여 복음소개용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들은 당시 막 시작된 KOSTA에도 참석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받기도 하였다. 이들중 어떤 가정은 한국으로 귀국후에 대학부 지도부장으로도 섬기고, 교회의 중요한 멤버로 다른 성도들의 변화를 개인적으로 도우면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꿈과 필요성을 심어주셔서, 개인적인 복음 전도와 제자 양육의 멋진 기회를 갖게 된 유학시절이 매우 행복했었고 너무나 놀라운 기회였음을 보게 된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인 유학생들이 유학시절을 다음과 같은 기회로 삼았으면 하고 권하고 싶다.



1)  유학(또는 주재원)은 한국에 있었다면 교회에 다니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에게 교제 목적으로라도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이 기간동안 이들이 믿음의 올바른 내용을 개인적으로 접하고, 거듭남과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주는 기간이 되었으면 한다. 유학기간은 실제로 주말 시간이 한국에서보다 더 여유롭고 단순한 생활 패턴으로 인해, 마음만 먹는다면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갖기가 매우 쉽다. 특히 방학 기간중에 3-5번 정도의 개인적인 만남을 계획하고, 이 만남을 통해 복음의 핵심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권하고 싶다. 1년에 1-2(또는 가정)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일생에서 잊지못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2)  또한 유학기간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성경을 새롭고 깊이있는 시각으로 공부할 기회도 많고, 특히 KOSTA를 통해 새로이 형성된 기드온 모임등도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성경적 입장에서 새로이 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나는 그리스도인 유학생들이 서로 이러한 시각을 배우는 일에 시간을 함께하도록 권고하고, 특히 이러한 모임을 여러분 스스로가 시작하도록 권하고 싶다.



3)  더 나아가 기존에 열심히 교회를 다녀서 본인은 믿음이 매우 좋으나 다른 사람의 변화와 성장을 개인적으로 돕는 것을 잘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방법을 배우고 시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특수한 방법이 아니라,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서 개인적이고 신앙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중요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의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다. 믿음 좋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닮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뭇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복음이 살아서 움직이게 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유학생들에게 이러한 기회들이 주어져서, 유학 생활을 통해 거듭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한국과 세계를 새로이 변화시키는 멋진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진다.

[조근상] 어떠한 찬양을 하나님께 드릴까?

이코스타 2004년 10월


현대 예배에 있어서 찬양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성경에서는 찬양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을 했었지만 그 일들이 실제적으로 지금처럼 일어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 것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아직도 그러한 교회가 있겠지만 처음 찬양인도를 하던 한국의 90년대 초에만 해도 기타를 들고 본당에서 찬송을 인도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드럼같은 악기는 보이는 곳에 놓을 수 있을만한 거룩한 악기가 아니였다.


허 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어느 교회를 가도 드럼이 없는 교회는 거의 없을 정도로 이러한 악기에 대한 생각들과 상황이 바뀌었다. 만약에 내르가 이러한 이야기를 지금의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한다면 거의 비웃음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시대와 생각들이 많이 달라졌다. 기독교인들이 듣는 음악역시 장르가 다양해졌다. 이전에는 클래식한 분위기의 찬양들이 주도하였는데, 지금은 클래식 뿐만 아니라, 락스타일과 모던한 워십 스타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말 많이 변하고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들이 정말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오랫만에 한국을 방문해서 여러 군데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은 늘 인도자로 있었기에 다른 인도자들이 예배인도를 하는 것도 잘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다른 예배에는 어떤 식으로 찬양이 드려질 까 하는 직업의식 비슷한 소명을 가지고 예배를 참석했다. 특히나 미국에 있기에 한국의 예배가 변형되고 있는 것을 건너서 듣기는 들었지만 실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정말 좋은 기회였다. 놀라운 것은 한국의 예배가 전체적으로 엎그레이드가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방지게 일개 사역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지만, 내가 한국을 떠날 때와는 정말 많은 차이가 있었다. 불과 4년정도밖에는 안 된 시간이지만 한국교회의 예배는 참으로 수준이 높아져 있었다. 찬양역시 이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특히 좋은 젊은 예배와 찬양인도자들이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새로운 세대를 예배와 찬양을 통해서 일으키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곳에서 예배와 찬양에 대한 학교와 컨퍼런스를 열어서 이제는 예배와 찬양이 올바르게 교회들안에 보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좋 은 점이 있듯이 역시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예배와 찬양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다 아시는 것 처럼 최근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셔서 사용하시는 호주에 있는 힐송교회를 알고 계실 것이다. 이 교회는 최근에 많을 앨범과 찬양을 보급하고 있다. 호주 뿐 아니라 현재는 이 힐송교회의 찬양과 음악들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호주의 힐송교회의 찬양곡들을 한국의 웬만한 교회나 예배 모임에 가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찬양을 따라 하는 수준이 아니라 곡을 완전히 카피해서 그 곳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러한 교회가 한 두군데가 아니었다. 웬만한 밴드를 가진 찬양팀은 힐송의 앨범에 나온 곡을 카피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앨범에서 나온 찬양을 여러 교회에서 똑같이 연주를 한다고 생각을 해 보라. 물론 성도가 많지 않고 조그마한 교회에서는 똑같이 연주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배 부른 소리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 정도의 밴드와 팀의 구성이라면 충분히 자기것으로 소화를 시켜서 자기 스타일로 만들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모방은 창조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 더 좋은 예배와 찬양 음악이 한국안에 흘러갈 것을 기대한다.


일 전에 한국에 예배앨범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당시에는 앨범을 구입할 수 조차 힘들어서 가끔 나왔던 호산나의 앨범들을 구입하면서 카피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서 이렇게 한 번 연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소원이라는 생각했던 것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마 지막으로 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눌 까 한다. 그것은 우리가 드리는 찬양의 볼륨에 관한 것이다. 찬양은 볼룜을 가지고 승부하는 것이 아닌데 많은 분들이 보통 귀에는 과다한 데시벨을 사용해서 예배와 찬양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 악기 사용을 제한 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성경말씀처럼 공교히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 역시 아는 분에게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지적받은 적이 있다. 찬양인도할 때 너무 시끄럽다는 지적을 받고,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한 적이 있었다. 요즘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것이 아니야라는 말이 입까지 튀어 나왔지만 그 날 순종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인도한 적이 있었다. 그 날 나이가 지긋한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통해서 그 분들이 은혜를 받으시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날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 말을 언급할 때인 것 같다. 정말 그렇다. 너무나도 연습이 안 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와 찬양은 시끄러울 수 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공교함이 사라지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예배와 찬양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안테나를 돋우고 민감함을 가져야 하겠지만, 가끔 너무나도 소란스러운 찬양은 하나님을 향해서 나가게 하는 데 오히려 방해를 가져다 줄 때가 너무나 많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 음악적 찬양방법에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은 어떤가? 오늘 지는 석양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을 묵상하는 것은? 혹은 길가에 있는 아름다운 가을의 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음과 섬세하심을 묵상하는 것은? 아니면 푸르른 바다를 보면서 창조주의 위엄과 영광을 생각해 보는 것은 더 깊은 찬양의 모습이 아닐까?

[윤여재] 학위를 마치며

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이제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마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15년 정도의 대학교 생활, 그 사이에 군대를 갔던 시기를 제외하면, 거의 대학교 안에서만 생활해 왔습니다. 중간에 때때로 왜 내가 지금 이 길에 있는가라고 몇번씩 생각하고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지금껏 걸어왔습니다. 그 15년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했던가 되돌아 보면 여러가지 반성이 많이 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안에 공부하는 것이 꼭 비생산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사회에 나가서 사회의 일원으로 무슨 일을 해야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지금은 준비하는 단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너무나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순간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달성된 목표뿐 아니라 순간순간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리더 훈련을 위한 교재,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1)를 읽으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로 교재 제목에서도 나와 있는 것 처럼 서로 모순(oxymoron)되는 듯한 Servant와 Leader로서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주셨고 그러한 본을 우리에게 또한 요구하심을 다시금 되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쉽이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문의 영역에서도 분명히 나타나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부담감을 계속 가지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삶을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목표만을 향해서 돌진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가운데에서 어떤 불협화음이나 충돌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시는 삶을 사신 모습이 두번째로 나에게 다시금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나를 왜 이 길로 인도하셨는가? 이런 질문들이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큰 과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학문의 영역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흔히 전문인으로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해 두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말자체가 좀 우습기는 하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를 말하면 좀 떨어지는 학문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세태가 말입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삼류로 되어버린 지는 오래되었고 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철저하게 믿음과 신앙적인 것은 배제되고 인과법칙에 따른 논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한 신앙인으로서 저 또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질문들의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저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이것이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장막을 짓는 일을 함께 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부담을 지우지 않게 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5년동안 연구했던 것을 쉽게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 자신도 같은 과에 있는 사람들의 세미나를 들을 때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때가 너무 많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학문이 너무나 전문화되어 몇몇 사람들만 공유하는 그런 암호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학제간 (interdisciplinary) 연구도 많이 하는 듯합니다.


“Formation and Breakdown of Chromate Conversion Coating on Al-Zn-Mg-Cu 7×75 alloys” 이것은 저의 학위논문의 타이틀입니다. 그리고 아래 있는 영화 포스터는 저의 연구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예를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보셨을 영화, “Erin Brockovich”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입니다. Julia Roberts가 열연했던 Erin Brockovich는 PG&E(Pacific Gas & Electronic) 회사로부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3억3천만불의 소승에 승소하였습니다. 그 PG&E회사가 chromate (Cr6+)를 그들의 엄청난 시설물의 부식, 즉 녹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 이 chromate가 어떠한 오염방지 시설이 없이 결국에는 식수까지 오염시켰고 회사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질병, 유산, 심각하게는 여러 종류의 암까지 유발했음이 판명되었습니다.









(출처: www.erinbrokovich.com)


이 chromate가 저의 학위논문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였습니다. 학위 내내 지원을 받았던 Department of Defense, Department of Energy, 그리고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는 이 chromate의 심각성을 알고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 지원 해 오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프로젝트는 항공재료에 있어서 chromate의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항공재료는 가벼운 알루미늄이 많이 쓰이는데, 순수 알루미늄으로는 항공재료로서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다른 물질을 첨가하여 알루미늄합금을 만듭니다. 그 중에서 아연, 마그네슘, 구리등을 첨가한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합금이 보잉747, 777 그리고 전투기 등의 항공재료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알루미늄합금 자체로는 아직도 부식 등의 위험이 있기에 여러가지 코팅을 입힙니다. 그 중에서 chromate를 기본으로 하는 chromate conversion coating이 코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chromate가 사람에게 아주 유독하기에 앞으로 몇년 안에 chromate 사용이 금지될 것으로 판단되어 지금 많은 연구가 대체 물질을 발견하는 쪽으로 투자, 연구되어 왔지만 아직도 chromate와 같은 혹은 더 뛰어난 물질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구의 방향이 chromate의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로 돌아왔습니다.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서 Chromate의 특성을 더 완전히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의 연구는 이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 합금에서 어떻게 chromate 코팅이 형성되는지를 연구했고 그리고 어떻게 이 코팅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약화되고 결국에는 붕괴되는지 연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첨가한 물질과 불순물로 인해서 코팅의 취약한 부분이 있었고 이것이 코팅 전반적으로 치명적인 붕괴의 원인을 제공함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원인들과 결과를 찾기 위해서 여러가지 장비를 이용하고 결과를 제시했던 것이 제 논문의 큰 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제를 5년동안 연구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계속 현상들을 알아갈 때 그만큼 모르는 것도 더 많아 짐을 느낍니다. 밝혀진 사실들이 언제든지 더 발달된 기술을 통해서 더 정확히 밝혀지고 이전의 사실들이 수정 혹은 변경될 수 있음을 느끼면서 겸손할 수 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하나의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마음에 많이 남는 것은 제 자신의 능력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도 교수님과의 토론이 제에게 늘 도전이 되었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실험실에 다른 학생과의 대화 속에서, 세미나 속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위 논문이 결코 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준 많은 분들이 계심을 역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생 고민해야 할 쉽지 않는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적어도 저에게는 주어진 일에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원론적인 결론으로 이르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혹시 저에게 다섯 달란트가 아닌 두 달란트를 맡기시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계신지 모르니깐요. 저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을 주어진 삶과 일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이루어 나가는 것이 신앙과 학문이 통합되는 시작이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1) C. Gene Wikens,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 Nashville, Tennessee: LifeWay Press,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