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KOSTA의 주제를 생각한다 / 김정숙, 박종승, 이성욱, 이일형

이코스타 2002년 9월호

eKOSTA 안녕하세요, 이렇게 eKOSTA가 주관하는 eKOSTA 좌담회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좌담회는 코스타의 주제에 대한 토의인데요,또한 코스타의 주제가 학생들의 필요(need)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패널리스트들의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일형 저는 지금 직장인으로 코스타에 참여한 지는 3년이 되었습니다.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캠퍼스 사역(campus ministry)을 하고 있습니다. 


박종승 예, 저는 아리조나에서 공부하는 학생이고요 코스타에 3 번 참여했습니다.  지금 현재 학교에서 캠퍼스 성경공부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성욱 예, 저는 미시간에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공부하고 있고요, 코스타는 2001년과 2002년,  두 번 참석했습니다.  연합감리교회에서 평신도로 섬기고 있습니다. 


김정숙 저는 지금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고요, 코스타는 학생 때 처음 참석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전부터는 간사로 섬기고 있고, 지역 교회에서는 청년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네, 모두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2002년 코스타를 되돌아 보면서 코스타 주제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얼마나 반영이 되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했는지 경험하신 내용들을 나누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어느 분이 먼저 해주시겠습니까?


이성욱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코스타 홈페이지 보드에 이미 올린 바가 있습니다만, 주제에 관한 것은 (지난8월호 eKOSTA에 실렸던) 한명선 형제님의 견해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eKOSTA  다르게 생각하신다면, 어떤 면에서인가요?


이성욱 주제가 필요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일단은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금년 코스타의 경우에는 오전 성경강해에는 주제에 많이 근거해서 말씀을 하신 것지만, 다른 나머지 강사분들의 말씀 대부분은 치유되는 자아와는 별로 관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준비하는 간사님들과 강사님들 간의 교류가 사전에 미흡했던 때문은 아닐까 싶고요,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만족했습니다.


eKOSTA 또 다른 분들은 어떠셨습니까? 참석하시면서 코스타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나요?


박종승 저는 주제 자체에 대해 특별히 안좋았다는 생각은 없고요. 코스타의 주제에 대해서는 주제 자체가 참가자들에게 기대감을 준다고 봅니다.  또 이것이 주제가 필요한 이유중에 하나이구요. 올해는 이성욱형제님의 말씀처럼 부족한 부분이 조금 있었긴 있었지만 주제 전달이나 치유와 회복에 대한 참석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해의 주제는 우리 개개인들에게 중요했던 것들이고 그리고 많은 분들이 원하시는 것들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eKOSTA  그럼 주제가 어떻게 연결이 되었고 반영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종승 코스타를 마치고 다시 자기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코스타에 참가하는 코스탄들이 많은데요. 많은 분들은 코스타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다시 가까워지고 자신의 회복과 재충전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코스타의 주제는 이런 부분을 채우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히 작년과 재작년에 그런 갈급함이 매우 컸던 것 같은데요.  재작년에는 “새 천년을 여는 믿음의 개척자들” 이었고 작년에는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 이였는데, 올해 주제는 개인적인 부분으로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았습니다.


eKOSTA 강사로 참석하신 이일형 권사님은 어떠셨나요?


이일형  네, 저도 역시 3년 동안 참석하면서 올해 집회가 특히 주제에 더 많이 초점(focus)을 맞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전체모임에서 가능한 것 같고 세미나는 전체적인 주제에 맞추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면에 맞추어 볼 때는 괜찮았고…, 혹 제가 우려했던 것은 복음적인 내용보다는 심리학적인 면을 강조하시는 목사님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았는데 다행히 그런 접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코스타에 있어서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세미나에서는 일반적인 것으로 진행하되 전체 말씀들은 주제에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집회 때는 주제면을 많이 반영하고 세미나는 일반적인 것으로 갔으면 하는 말씀이시지요?


이일형  저희가 다루는 의견들을 계속적으로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세미나 강사분들에게 일부러 주제에 맞추어서 말씀을 부탁한다면 이성욱 형제님의 말씀처럼 약간의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치유되는 자아, 회복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이 주제가 매우 광범위한 주제인데 -코스타의 주제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 코스타 세미나 강사님들께 주제만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미리 사전에 어떤 의제(agenda)를 드리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강사님들께 전체적인 주제의 의미, 즉 왜 그 주제가 나왔는지 그 배경을 설명드린 다음에 나머지 부분은 강사님들로 하여금 알아서 정하시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강사님들께 어떤 유연성(flexibility)를 드릴 때 전체적인 밑그림(outline)에 대한 처리도 어느 정도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작년보다 올해 집회가 더 주제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작년같은 경우에 저는 상당히 혼동이 되었었거든요 – 오히려 주제와는 반대되는 말씀들이 나왔다는 말씀들이 나왔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 올해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네요.


eKOSTA 그럼 이번에는 김정숙 간사님께서 말씀해주실까요?


김정숙 , 의견을 나누기 전에 저는 이자리에서 코스타의 공식적인 입장보다는 제 개인의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주제와 관련해서 집회를 준비하는 입장이나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는 정해진 주제를 적절히 표현하고 포커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 주제가 다루어졌는지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주제가 얼마나 유학생들의 놓여있는 상황과 필요를 반영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참석하는 유학생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주제라면 더욱 좋을 것 같구요.
그런면에서 저는 올해 주제에 학생들의 상황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코스타에 참석하신 분들과 혹은 지역교회에서 유학생들이 겪고 있는 개인적인 어려움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들을 비롯해서 – 새벽에  코스타 사무실로 부부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전화하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 진로와 관련된 자아상의 문제등 다양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02년 코스타의 주제로 회복과 치유가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되었고 준비위원들도 주제를 통해서 많은 유학생들이 회복되고 치유를 받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올해 집회가 준비되었던 것 같아요.


eKOSTA 다른 분들을 위해서 주제의 선택이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정숙  몇 년 전하고는 최근에 그 과정이 달라졌는데요, 3년전 “새 천년의 믿음의 개척자들”때까지만 해도 이사회에서 결정이 되었었어요.  물론 그 이사회에 참석하신 간사님들도 있었지만, 이사님들이신 목사님들이 인도하시면서 기도하시면서 주제를 주시면 거기에 맞는 부제들은 간사들이 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하고 올해는 간사들이 주가 되어서 주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주제가 정해질 때도 간사들끼리 5월 정도에 모여서 유학생들의 필요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해진 것이거든요….


eKOSTA 네, 그렇군요.


박종승 주제 정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한가지 해도 되겠습니까?


eKOSTA  네.


박종승 김정숙 간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주제를 해마다 이렇게 얼마 전부터 정하셨던 이야기 같은데요 코스타가 이제 15년 이상 정도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코스타의 완성도나 평가 도는 비슷한데요, 주제에 대해서는 코스타가 앞으로 더 큰 그림(big picture)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코스타 주제에 대한 큰 그림이 제게는 보이지 않던데요.  


김정숙  그러니까 어떤 5년 이상의 주제를 갖고….


박종승  네, 그러니까 장기적인(long-term) 주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김정숙 , 아까 제가 말씀드린대로, 간사들이 모여서 다루어졌으면  하는 주제들을 여러가지 내어 놓게 되는데 그 내용들을 보면 한 해에 다룰 수 있는 분량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몇년의 주제들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큰 그림을 보려고 하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요, 아직 그 부분에서는 미흡한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eKOSTA  네,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난 eKOSTA에 실린 “주제가 필요없지 않을까”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성욱  주제가 필요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주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라면 동의합니다. 코스타의 전제는 방금 박종승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텐트메이커(tent-maker)이거든요. 장기적이라면 상당히 장기적인데 그쪽에 우리는 맞추어져 있으니까  1년간의 계획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한형제님께서) 이야기하신 것 같은데요, 원칙적으로는 크게 보면 맞는 말씀이지요.
코스타에 대해서 저도 참석한지 2년 밖에 안 되었지만 저희 모임에 가보았더니 저희 조안에 3년, 4년도 계시더군요. 계속 참석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지만 한 번 참석하시고 마는 분들이 실제로 더 많거든요, 그 이유는 많은 분들에게 코스타는 유학생들의 영적 강건의 수련회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미국서 공부한 많은 유학생들이 그런 것을 소망하는 마음들이 많이 있거든요 이전에 수련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수련회에 주제가 없으면 각자 혼자서 기도하러 온 것이지 많은 사람들을 공통 분모로 엮어서 어떤 말씀을 전달하고 어떤 생산적인 결과를 이끌어지지가 않잖아요. 저는 코스타를 수련회로 인식하여 준비한다면 그해 주제에 맞춰서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난호 eKOSTA에서 한명선 형제님께서 주신 지적은, tmKOSTA 같은 것이 있는 만큼 수련회 때문에 얻는 것을 tmKOSTA에 와서 이룰 수 있게 하고, 코스타에서 얻는 기본은 평상시처럼 미국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위한 영적인 수양회로서의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구요.


eKOSTA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이일형권사님?


이일형 조금 전에 말씀해 주신 이형제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박종승 형제님 말씀하신 것과도 조금 연관이 되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코스타의 목표나 방향성에 따라서 매년 주제를 선정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그것에 동의합니다. 코스타의 방향성이 설정된 다음에 그 목표에 따라서 학생들의 상황에 따른 필요(selective need)에 따라 그 주제를, 그러니까 부제(Sub-theme)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씩 다루는 것이 올바른 접근(approach)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KOSTA 지금까지 코스타가 다루어야 하는 목표(goal), 비전이라 할까요, 이런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난호의 한명선 형제님의 글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코스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주제로부터 출발한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코스타가 다루어야 하는 주제(theme)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일형 코스타 홈페이지에 보면, 코스타는 텐트메이커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라고 이해를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 텐트메이커의 정의를 제대로 내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제가 그 정의를 정립하겠다는 것은 아니구요, 일단  텐트메이커의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고 난 다음에 이에 대해서 서로 갈급해 하는 필요 중에서 공통된 것을 찾아내서 주제들을 선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3년 전에 참석했을 때와 지금하고 비교해 보면 지금은 텐트메이커라는 개념(concept)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어느 한해에 마음먹고 한자리에 앉아서 짜맞출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계속 진화해가는(evolve) 개념인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한번 정의해보라고 하면 나름대로 할 수는 있겠지요. 그 근본정신이 본질적으로는 바뀌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은 바뀌기 때문에 텐트메이커의 근본적인 현 삶의 위치에서 제자의 삶을 사는 그런 사람들 위치에서 그 개념을 바라보는 과정의 일부를 코스타의 부제가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제를 정한 다음, 그것을 가지고 현재 학생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가운데 인도하심을 받은 다음에 그 주제를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eKOSTA 네, 그럼 코스타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에 대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종승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코스타 참석하는 목표도 그런데요.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이 각자 자기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분명한 비전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코스타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앞에서 얘기한 텐트메이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eKOSTA  김정숙간사님, 텐트메이커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신다면?


김정숙 코스타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대상이 대학원생들에게 맞추어져 왔는데요, 코스타에 오시는 분들이 신학교로 진학을 해서 전임 사역자가 되는 분보다는 전문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하는 마음들을 가지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 중요한 이슈는 본인의 일(혹은 학문)과 신앙,복음을 전하거나 신앙 공동체에서의 섬김등이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야 하는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그런 부분이고 어느 정도는 해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일형권사님 말씀처럼 코스타의 주제는 그때 그때 바뀌게 되겠지만 근본적인 주제는 평신도들 (텥트메이커) 의 삶과 신앙의 연계를 다루는 그런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KOSTA 그렇다면 과연 텐트메이커의 올바른 정의는 무엇일까요?


이일형  텐트메이커의 정의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텐트메이커란 ‘복음을 위해서 직업을 갖는 사람’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목사도 텐트메이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목사도 목회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텐트메이커라는 것이 무엇이냐하면 목회를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그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면서 그의 핵심적인 힘을 바로 제자를 삼는 일을 하는데서부터 얻게 되고, 그 다음에 실질적인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기본권(fundamental right), 예를 들어 밥을 먹을 수 있는 권한,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면 그런 몇가지 요소(elements)들이 보여지거든요. 저는 그런 요소들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텐트메이커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eKOSTA  네, 지금 이일형 권사님께서는 텐트메이커를 그렇게 정의 하셨는데 또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이성욱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기본적인 생각들을 모아서 정의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굳이 정의를 내려 본다면 텐트메이킹(tent-making)이라는 용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2년 동안 코스타를 참석하고 또 저에게 코스타를 권했던 선배 참석자들이나 코스타를 기대하는 많은 분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하는 이 전공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지금의 삶과 의미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고민을 하는 것보다는 ‘나는 지금 이런 직업을 갖고 있는데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거에요.  이미 방향이 정해진 삶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대학원생인 것과는 관계없이 20대 후반 30대초반의 젊은 영혼으로서 갈등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저는 코스타가 타겟으로 하는 대상이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 특정대상에 대한 주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박종승 형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장기적인 주제는 텐트메이킹이다’라고 혹은 ‘선교사이다’라고  – 선교사가 반드시 전업으로 나가는 분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 동의는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코스타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그 음성을 귀기울여 찾고 그렇게 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서적, 영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 표현이 이상하지만 – 어떤 분들한테는 그해의 주제가 “낮아지자! ”라거나 혹은 “영적 치유” 이거나 간에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 분들은 코스타에 와서 목사님의 말씀이나 듣고 고민들이나 나누고 또 “아! 나와 똑 같은 사람들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고 말씀을 받고 말씀을 사모하고 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코스타는 미국 땅에 유학생이 없어지기까지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기본적인 생각에 동의를 한다면, 다시 말해서 미국에 있는 젊은 영혼들의 휴식과 공급 그리고 그들이 온전하게 사는 것을 돕는다는 것이 코스타의 목적이라고 동의를 한다면, 코스타의 큰 주제를 텐트메이커로 구체화시키는 것은 한 방향으로 이룰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에 있어서는 거기에 얽매여서 주제가 실행되고 적용되었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번의 주제를 놓고 말한 다면 몇분들은 어떤 부분들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부분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성욱 형제님의 말씀에 의하면 어차피 매년 유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영적인 휴식과 공급이라는 것인데요.


이성욱  예, 저는 그렇습니다.  코스타는 지금까지 방향성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실제로 기본적인 주제로는 코스타가 15-16년 동안 잘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유학생들의 영적인 휴식과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요…. 그런 것에 동의 한다면 지금까지 코스타는 잘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만.


이일형 저도 이성욱 형제님과 동의하는데요, 역시 표현에 있어서 정리를 하자면 전체적인 주제(main theme)가 있고 이 주제가 정해지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다루시고자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유학생들의 영적 정서적 휴식과 공급에 대한 필요(need)가 매년 주제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우리 코스타의 주인도 주님이시기 때문에 약간 조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네요. 주제를 선정한다 하더라도 주제 말씀을 강사님들에게 부탁할 때 왜 이런 주제를 선정했는지 확실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준비하시는데 영향을 받으시거든요, 그런데 성령께서 그런 지휘권을 갖고 움직이시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네요.  어떤 주제를 정해야 할 지 매년 고민하면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몇사람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정숙 실제로 준비를 하면서 그런 고민들이 계속 있어왔었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주제가 실질적으로 짧은 코스타 집회기간 동안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과  주제가 자체가 가지는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좀 다른 이슈인 것 같고요. 이일형권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님의 여러사람들의 고민을 통한 역사가 있는 것 같아요. 참석하는 분들이 주제를 통한 기대감을 가지고 오셨을때 수양회 기간 동안에 실제로 그와 관련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터치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이라면, 주제가 표현되는 것을 말씀의 선포에만 제한을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eKOSTA 이일형 권사님 말씀처럼 성령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이끌어 가신다면 집회에서 선포된 말씀에 제한될 필요없이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이군요.


이일형 간사님께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내년 주제가 결정이 되었나요?


김정숙 네,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이일형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좋은 주제인 것 같은데요.


eKOSTA 어떤 주제들이 다루어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나, 여러 각 지역에서 모인 간사들이 간사모임을 통해 기도를 하면서 주제를 정하게 되는데요, 다른 곳에서 유학생들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말씀해 주세요. 주제는 이미 정해 졌지만 앞으로 어떤 주제들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들…. 코스타 주제를 잠깐 살펴 보면 86년에 “우리가 어디로” 87 년에 누가 이 때를 위하“, “조국에서 땅끝까지(88)”, “어떻게 살 것인가(89)”, “이 시대를 새롭게(90)”, “치우침 없는 걸음으로(91)”, “2000년대를 향하여(92)”,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93)”, “복음과 민족(94)”, “새 시대를 향한 리더쉽(95)”,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96)”, “거룩과 능력(97)”, “예수, 신세대의 참 소망(98)”,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99)”, 그리고 “새 천년을 여는 믿음의 개척자들(2000)”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2001)” 그리고 금년(2002년)에는 다들 아시는 대로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 였지요.


박종승 글쎄요, 지난 코스타의 주제들을 들어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대학에서 1,2학년때 공통과목을 듣다가 3,4학년때 자기 전공을 따라 전공과목을 듣는 것과 비슷한거 같습니다. 물론 지금 코스타에서도 오전과 저녁집회가 모두가 참석하는 공통과목이라면 오후 세미나는 자기 목적에 따라 듣는 전공과목이구요. 지난 코스타의 주제들도 전체를 위한 공통주제에서 개개인을 위한 세부적인 주제들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이성욱 세부적인 것도 있고 주어지는 주제가 모두 좋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고요. 조금 전 말씀해주신 지금까지의 주제를 들어 보니까 할 것은 다 하셨군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앞으로 이 미국 땅에서의 삶에 맞는 주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에게 예수님 믿는다고 말을 못할 때가 대부분이거든요. 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바로 서야 하는데, 예를 들면 제가 있는 이 지역은 유학생과 교민사회가 공존하는 장소이거든요. 그런데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영적으로 깨지기가 쉽잖아요, 그런 깨진 영혼이 다시 일어서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주제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eKOSTA 다른 분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일형 예 저도 이성욱 형제님과 많이 동의합니다.  특히 제가 코스타를 몇년 동안 지켜볼 때 주제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었던 것 같고요, 코스타의 제반사역들인 tmKOSTA, gpKOSTA ,eKOSTA  같은 것들이 이성욱 형제님이 요청하신 것들과 비슷한 사역들인 것 같고요. 한가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 있다고 보는데 지금까지는 세상적인 목표를 세워 놓고 기독교적인 면에서 바라보았는데 이제부터는 자신이 진정한 기독교인라면 세상적으로 어떻게 표현이 되어야 하는가로 그 지향하는 방향(direction)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박종승 이일형권사님 말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 그런 것들을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말씀들을 했는데 이것을 조금 다르게 이야기 한다면 “우리가 어떤 판단의 기준으로 살아가는가?”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서 있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주변에 소위 신실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냥 따라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부적절한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판단 기준이나 어떤 표준(criterion)이 분명하게 서 있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제시해 주는 주제들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숙 저 개인적으로 세상 속에서 사는 저의 모습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나 직장생활 자체로 평가해보면 한마디로  두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앙공동체안에 있을 때의 판단의 기준과 세상에 있을 때의 판단의 기준이 다른거죠.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일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세상에서도 적용해야 할 법이 최상위법인 하나님의 법인데 그 법은 따로 내려 놓고 세상에서 정해 놓은 법대로 살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eKOSTA  그런 의미에서 내년의 주제인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어쩌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미 정해진 내년 코스타의 주제와 앞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이일형  내년에 강의를 하실 강사분들에게 주제를 알려주실 때, 주제가 그렇게 정해진 배경(background)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의 경우에는 주제가 많이 다루어 진 것 같지만, 제가 간사들하고 이야기했던 문제들과는 안 맞았었는데 어디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어요.  주제를 제대로 정의해 주시고 왜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성욱 간사님들이 주제를 정하시고 그 주제가 강사님들에게 전달 되어서 한사람 한사람 유학생들에게 말씀이 다가갈 때 그 어떤 목표도 중요하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귀히 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작년 김동호 목사님의 주제설교가 사실은 “낮아지신 예수” 라기보다는 “고지를 점령하라” 쪽을 강조하신 것 같거든요. 흔히 유학생하면 학위를 받을 사람들, 앞으로 좋은 직장을 가질 분들 뭐 이런 쪽에 많이 중점을 두는데, 사실은 한 개인이 미국이란 곳에 와서 나라가 바뀌고 말이 바뀌었을 뿐이지 겪어야하는 어려움이나 갈등은 동일하거든요. 그런 현실을 간과한다면 직장을 잡기 위해서 또 다른 학위를 받아야하는 현실의 유학생들의 입장하고는 동떨어지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깊이 공인하시고 형상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막연하게 “유학생” 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특히 20년 전의 유학생들이나 학위 취득자들의 현실과는 달리 보시고,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정숙 저도 코스타 사역을 가까이서 지켜 보면서 그런 필요들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코스타 사역이 유학생들을 어떤 목표를 향해 drive하는 사역이 아니라 한 영혼 영혼을 품을 수 있는 사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형제님 말씀처럼 유학생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고 직장을 얻는 일이나 현장에서의 삶이 예전보다도 더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을 잘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코스타 집회가 규모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한 영혼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쉽지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기는 간사나 강사님들께서 한 영혼을 섬기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eKOSTA  지금 이렇게 나온 이야기들을 시간 관계상 정리를 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정리의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이일형 다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코스타를 통해 일하시는 것이 너무 확실히 증거가 잡히니까  좀 두렵고, 계속적으로 참여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한 것처럼 계속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접근을 했으면 좋겠어요.


eKOSTA  예,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밤늦게까지 좌담회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시훈] 편지

이코스타 2002년 9월호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는 나를 위해 창밖 가득 꽃과 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나뭇잎이 반짝일 때 마다 그의 웃음을


꽃잎이 흔들릴 때 마다 그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바람으로 내게 다가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속삭이는 그도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나를 보기 위해 햇살이 되어버린 그


나를 지키기 위해 별이 되어버린 그.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참으로 오래 기다렸건만


성내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에 넘쳐 달려온 그의 따스한 품을 기억합니다.


그는 조용히 흐르는 강물입니다.


그의 앞에 앉아 나를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나의 손과 발을, 혀와 눈을 닦습니다.


아무리 씻어도 사라지지 않는 얼룩을 그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는 하염없는 눈물로 그것을 지워 주었습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생의 어느 한 순간에도 그를 잊지 않고


생의 작고 작은 부분에서도 그를 느낍니다.


하늘 가득 노을이 물든 저녁


떠나가는 철새들의 무리를 바라 보다가


문득 외로워져 돌아보면


언제나 그가 가까이 다가와 노래를 들려 줍니다.



낡은 외투처럼 남루하고 무거운 삶을 끌고 가던


지난날 그를 만난 곳은 뜨거운 사막이었으나


그는 내게 별이 쏟아지는 사막을 보여 주었습니다.


언제나 걷던 길에서


언제나 만나던 사람들에게서


언제나 하던 일들에서


볼 수 없었던, 들을 수 없었던, 느낄 수 없었던


그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내안에 들어 옵니다.


용서할 수 없던, 참을 수 없던, 견딜 수 없던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떠나버렸습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그도 사랑에 빠졌답니다.


세상은 온통 빛나고 있습니다.

[차문희] 기독교사의 자질

이코스타 2002년 9월호

교사채용 인터뷰를 할 때에 흔히 접하게 되는 질문 중에 하나가 “당신의 교육철학과 왜 교사가 되고 싶은지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인데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교사채용 인터뷰를 하는 대부분의 교장선생님들이나 교육청관계자들은 이 질문을 통해서 그 교사의 교육방침이라든가 교사의 자질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교사의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보통 ‘자기의 전문 분야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그 자체를 천직으로 알고 늘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 훌륭한 교사는 행동수정(Behavior management)에 능숙해야 하고 학부모님들을 비롯해서 다른 교직원들과도 좋은 인과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적인 면에서 보는 훌륭한 교사의 관점은 무엇인가? 아마 다양한 의견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은 교사로 학생들을 섬기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교사 예수님께서 가진 성품을 분석해 보기로 하자. 첫째, 그는 열두 제자를 편애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셨다. 교사로써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떤 학생들은 유난히 말을 듣지 않고 숙제도 안 해 오며 말썽만 피울 때가 많은데 이 때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는 이미 그런 학생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아무리 가르쳐 보아도 구제불능의 아이들을 보면 우리는 흔히 “그 아이는 안 돼. 도대체 IQ가 몇이야? 그렇게 수십번을 가르쳤는데도 모르다니…. !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가르쳐도 그 애보다는 낫겠다” 고 혀를 찰 때도 더러 있지 않는가?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달랐다. 그를 배신한 사람들까지도 사랑하셨고 또 용서하셨으며 그들의 영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시지 않으면서까지 희생하셨다. 흔히 우리는 나에게 잘 해주고 나와 친한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희생하기는 쉽지만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배신한 자에게는 우리의 죄 속성 때문에 희생은 커녕 원망과 미움만을 주려고 한다.


둘째, 아가페 사랑의 삶을 보여 주신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는 제자들이 혹 그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기도시에 졸고 있을 지라도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무자비하게 나무라지 않으셨고 오히려 제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타이르시며 그릇된 행동을 한 그들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셨다. 하지만 오늘날의 어떤 교사들은 학생들이 혹 실수를 하거나 무슨 그릇된 행동을 하면 언성을 높이고 여러 학생들이나 다른 교사들 앞에서 참피를 주어 그 학생으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순간 그 학생은 “앞으로 다시는 안 그래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그 교사의 눈을 피해 또 실수를 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특히 정서적으로 장애가 심한 학생들에게는 이런 방법의 행동 수정은 많은 역효과를 가! 져온다고 교육계의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셋째,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자기의 목표가 뚜렷한 교사이셨다. 33년 동안 의 짧은 인생을 사셨고 3년 동안의 공직에 있으면서 그는 제자들에게 삶의 비전을 공급하는 지혜를 주셨고 또 그 지혜로만 끝나지 말고 마태복음 28장 16-20절에 있는 말씀처럼 선교사명의 꿈을 실현하라는 커다란 프로젝트까지 남겨 주셨으니 그의 가르침은 한 순간적인 지식의 습득과는 다른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쳐준 선구자이시다. 이에 비해 오늘날 우리 교사들은 자기의 전문분야를 가르치고 학생들로 하여금 계속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보다는 대학진학적성검사(SAT)나 다른 모의고사(ITBS)와 같은 규격화된 시험(Standardized Test)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는 것에 더욱더 열을 올리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이런 시험을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학생들로 하여금 시험성적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가르침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이! 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아이들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훌륭한 교사의 자질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인 자세는 모범교사훈장을 여러번 받았을 우리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가르쳤듯이 우리의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곧 섬기는 기독교사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