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동국] 코스타에서 받았던 은혜들

이코스타 2003년 6/7월호

간증을 시작하며


제가 7년 반만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올 봄에 제주대학에 정착하기까지의 기간을 돌아볼 때, 코스타를 언급하지 않고는 저의 미국에서의 삶을 얘기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코스타가 제 삶의 가장 귀하고 큰 중심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코스타를 한번이라도 참석 할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들이 단 몇 퍼센트도 안 되는 소수라는 생각과, 그런 특권과 복의 기회가 내 인생에서 몇 년 동안이나 주어질까 하는 생각에 기회가 되는대로 참석하다 보니, 7년의 재미기간 중 한해를 빼놓고 6년 동안 코스타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 한번 한번의 코스타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도전과 복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실제로 저는 영적인 복 뿐만 아니라 학업과 삶에 있어서도 코스타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코스타 기간동안과 코스타 이후에 받은 복들을 연도별로 간략하게 헤아려 보면, 96년 첫 코스타 이후 저는 연구 조교 자리를 거의 기적적으로 얻을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 해 여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그 이듬해 봄에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97년 수련회에는 아내와 함께 코스타를 참석하였고, 그 이후 참으로 어려운 상황들이 닥쳐왔었는데,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8년에는 등록까지 했었는데, 아내의 임신을 코스타 바로 직전에 알게 되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었습니다. 99년에는 태어난 지 4개월 된 쌍둥이 딸들과 함께 12시간동안 운전을 해서 코스타 참석을 할 수 있었으며, 그 이후 어려웠던 교회의 문제들을 잘 지혜롭게 대처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코스타 이후에는 그 동안 안 되던 실험 장치와 방법들의 문제점들을 파악해서 해결할 수 있었으며 실험 결과가 좋아서 첫 논문을 쓰게 되었고, 2001년 코스타를 통해서는 오랫동안 정리가 되지 않고 답을 찾던 학문과 신앙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은혜가 있었으며, 코스타 이후에 예상치 않던 값비싼 장비를 빌릴 기회가 주어졌으며 실험결과가 잘 나와서 졸업을 할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2002년 코스타에서는 간사로 섬길 수 있는 특권과, 박사 후 과정을 위해 옮길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귀한 교회와 삶의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반드시 코스타의 직접적인 결과나 코스타를 참석했기 때문에만 일어났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코스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코스타를 중심으로 일들이 전개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던 저의 유학생활 동안의 간증들을 코스타를 중심으로 몇 회에 나누어서 여러분들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96년 코스타를 참석하기까지


저는 이미 유학을 가기 전에 코스타에 대한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었기에, 미국을 가기만 하면 꼭 한번은 코스타를 참석해 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유학 첫 일년을 마칠 때쯤에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거의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영어실력도 안되고 기초실력도 모자라는데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오게 된 유학인데다가, 전공도 바뀌었으니 수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수업시간에 아무리 졸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눈이 감기고는 했던 첫 학기와, 숙제를 아무리 읽어봐도 문제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고, 심지어 선배들이 풀었던 답을 봐도 왜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막막해 하며 한 해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으며, 더불어 연구조교 자리를 찾기는 더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에서 받은 장학금과 온 가족이 모아준 돈을 합쳐도 겨우 1년을 버틸 만큼이었으며, 여름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을학기에 등록을 못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절망감도 절망감이거니와, 설사 어떻게 경제적으로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무능력 감 때문에 이렇게 몇 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사방이 막혀있는 감옥처럼 느껴져 밀폐 공포증까지 있었던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96년 4월초에 코스타 등록원서를 보게 되었고, 등록원서를 보자마자 눈 딱 감고 그냥 등록을 했습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상황에서 자포자기식으로, 또한 어디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어보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등록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전에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수련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셨기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마음도 컸었습니다. 레위기 23장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번제나 화목제 등의 제사를 지내고, 매주 안식일을 지켰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일년에 세 번을 따로 모여 여호와 목전에서 거룩한 성회를 하라고 하셨으며, 그 중에서도 유월절과 초막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모아서, 일주일씩 여호와 앞에 함께 모여서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매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여름과 겨울에 수련회를 가서 몇 일씩 세상과 분리되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쉬는 거룩한 모임이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정하신 절기의 원리 속에 있다는 것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그런 말씀에서 깨달은 영적 원리들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그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어 수련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되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저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커다란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 해의 코스타 주제였습니다. 96년의 코스타의 주제는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 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93년, 94년도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차갑고 강철 같던 저와 제가 속해있던 청년부에 하나님의 열정을 보여주셨고 성령의 탄식하는 영을 저와 저희 청년부들의 심령 속에 심어주셨던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때의 주제와 말씀도 역시 ‘부흥’ 이었고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개교회의 부흥 집회와는 구별되는, 개인이나 집단의 거룩한 회심을 통한 사회와 민족과 족속들 까지도 변화되는 미국의 1차 2차의 대각성 시기 같은 이 영광스러운 시대로의 부흥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부흥을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95년에는 개인적인 여러 사정상 수련회를 못 갔었고, 이제 개인적으로는 2년 만에 맞는 수련회인 그 코스타가 역시 동일한 주제로 계속되었으니, 거기에다 코스타가 열리는 장소는 시카고 부근의 위튼 대학(Wheaton College)으로서 94년도에 미국 크리스천 대학생들의 집회 중에 집단적으로 ‘부흥의 조짐'(주:부흥과 개혁사의 <캠퍼스를 태운 하나님의 부흥을 말한다> 참조)이 있었던 것을 미국 오면서 막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두 대학생의 간증을 들으면서 시작된 저녁 집회가 그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새우며 회개와 기도 찬양으로 계속 되어졌으며, 천 여명의 대학생들이 그렇게 며칠을 회심과 회개와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의 폭포수 같은 은혜를 경험했으며 그 결과로 담배와 음란잡지, 그리고 마약 등을 자발적으로 모아 소각하게 된 양만도 엄청 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주제처럼 저에게도 또한 우리 한국 유학생에게도 그러한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게 되는 소망을 더욱 크게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큰 잔치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하며 지역 교회에서 렌트해 준 미니밴에 대략 여덟 명 정도의 학생들이 1박 2일로 보스톤에서 시카고까지 20시간을 운전해서 가게 되었던 첫 코스타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잔치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예배 때 처음으로 에드만 채플로 들어가는데, 이미 시작된 찬양 팀의 찬양과 강당을 꽉 메운 사람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 속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을 이십사 장로들과 천사들이 찬양하는 천국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코스타는 순서 하나하나 진행될 때마다 얼마나 그 말씀들이 저를 도전하고 심령을 뒤흔들어 놓았던지요. 저녁시간마다 부흥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던 하용조 목사님, 오전 시간마다 다니엘서로 유학생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시던 이 승장 목사님, 그리고 코스타 출신들의 삶의 현장에서의 간증을 통한 도전과 비전들, 오후 시간마다 20여 개의 주옥 같은 선택식 강의들, 그래서 각자의 관심이나 기대, 그리고 신앙의 단계에 맞춰 이삼십 명씩 나눠서 듣는 강의 하나하나들, 그 속에서 저는 저희 앞에 차려진 큰 잔칫상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좋은 경건서적의 저자들,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만 접하거나 소문만 들었던 분들, 그 중 한 분만 오셔도 큰 은혜의 수련회가 될 법한데, 그런 분들이 이삼십 명이나 오셔서 필요한 영적 양분을 다양하게 공급해 주시는 모습 속에서(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코스타에서 이것을 ‘국력낭비’라고 하더군요), 최고의 요리들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 채운 상 앞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조별로 모여서 요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경건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면서 함께 모여서 그날 받았던 은혜들을 나누던 조별 모임, 이 모임을 통해서 대형집회에서 간과 되어질 수 있는 깊이 있는 개인적인 교제가 가능했고 기도제목 들을 나누고 함께 중보기도하며, 이미 코스타 기간 중에 응답을 받은 기도들로 인해 감사하며 함께 기뻐하며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조원 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 나는 분이 두 분이 있는데, 한 분은 텍사스에서 오신 자매인데 코스타를 너무 오고 싶었는데 기말고사가 겹쳐서 포기할까 하다가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각 과목 교수님들께 양해를 받고 오신 분이 있었고, 또 한 분은 한국 모 대학 도서실에서 사서관련 일을 하시는 분인데, 전혀 올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하셔서 캐나다를 거쳐 이 코스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분이었으니, 그 분들과 함께 받은 은혜는 더불어 클 수 밖에 없었지요. 그 외에도 많은 조원들이 코스타를 사모하고 준비해서 왔었고, 또 몇 분은 억지로 끌려오신 분들이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그분들의 얼굴표정이 바뀌고 말과 생각이 바뀌어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했던 분들도 있었으며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답니다. 너무 좋아서 그 해가 다 가기까지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코스타에서 좋았던 점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좋은 양서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언어의 마술사’ 이 동원 목사님의 양서 소개 시간과 한국의 여러 좋은 양서와 찬양테이프 및 CD를 할인해서 살수 있었다는 것과 그 책들을 코스타 이후에도 읽으며 영적 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백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인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는 역사와 또 다른 백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2년 이상의 단기, 장기 선교사로 헌신하는 모습은 참으로 그 감격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백 명 가까이 얻은 이 때에 하늘에서 열리는 잔치의 기쁨을 생각하면 코스타가 여기서 끝나도 원 없이 좋지만,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에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원 받을 때까지 코스타는 앞으로도 계속 되어져야 한다’ 던 한 간사의 말과, 자신의 바쁘고 힘든 유학생활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코스타에 자원 봉사하여 수 십일을 밤잠을 설치며 준비하고 현장에서도 코스타 진행을 도우려고 바쁘게 움직이던 간사들이, 힘든 육체의 고단함에도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한 미소와 얼굴로 우리들을 위해 섬기시던 모습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실패한 코스타 (?)


그러나 그렇게 순서순서 마다 은혜가 가득했고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렇게 기대하고 소망하던 개인적인 ‘부흥’이나 공동체 전체에게 허락하신 ‘부흥’을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부흥’은 너무나 명백히 ‘아주 좋다’ 거나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알고 있었던 저로서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서 금요일 점심시간에 마지막으로 모인 조 모임에서 그것을 얘기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각자 받은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참된 ‘부흥’은 이것과는 명백히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주권적인 임재와 역사이며, 우리가 경험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그 분을 아는 지식과 우리의 죄인 됨의 인식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머리와 가슴과 삶과 우리의 모든 말과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인쳐지는 것이고, 그 결과는 본인이나 공동체 전체가 뚜렷이 알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나 사회, 심지어 한 나라 혹은 세계 전역에 까지 그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해의 코스타 주제가 바로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라는 면에서, 이번 코스타가 실패인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래야 사람들이 ‘부흥’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갖게 되어 이런 것이 바로 ‘부흥’인 것으로 착각함으로써 참된 ‘부흥’을 기대하거나 소망하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 조원 들만이라도 깨어서 계속해서 기도하자고 감히 주장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나 하나님은 일 년이나 지난 뒤에 저에게 다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계속)


마무리하면서 사족


저는 코스타만이 모든 것이고 코스타를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된다거나 누구나 다 물질적 혹은 영적 복을 받는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코스타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많지만 또한 코스타를 참석했으면서도 은혜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에 이것을 꼭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매년 코스타를 참석하면서 어쩌면 이번 코스타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만큼 각박한 유학생활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게 저는 한국으로 돌아온 올해에도 코스타를 참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저에게 마지막 코스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참 기대가 큽니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어찌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이 ‘순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되 세상을 떠나거나 등지지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고귀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이 순결함일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세상의 방법을 너무 쉽게 쫓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 들이 이제는 진실로 순수하고 순결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고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며 그분 앞에서 그 분만을 청중자로 두고 살아갈 때 인 것 같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에 선포되어, 주위에 거룩한 흰옷을 입은 청년들이 자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날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에 물이 가득할 그 날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이번 2003년 코스타를 통해서 그런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강동인] 코스타 2003을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3년 6/7월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마태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


오늘날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 기독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약 1년 전 주제 선정을 위한 간사 모임에서 “순결”이라는 단어가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거대한 문화적 상황과 물질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에 물들어가는 교회의 상황 가운데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선명한 하나님의 기준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모든 무릎을 꿇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코스타 2003을 통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고, 그 앞에 자신의 추하고 벌거벗은 모습을 발견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영적 각성이 있기를 원한다. 세상의 온갖 풍조와 교훈으로 말미암아 가리워진 하나님의 기준이 밝히 드러나며 그 가운데서 애통해 하기 원한다. 영혼의 깊은 애통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기 원한다.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긴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 이제는 더 이상 육신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좇아 행하는 순결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의 결단과 헌신이 일어나기 원한다.


코스타 2003 집회를 통한 기대


코스타로 보면 2003년은 컬리지 학생과 대학원 학생들의 수양회를 분리 개최하는 첫 해가 된다. 연령과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사역을 위해 새로이 시작되는 컬리지 코스타(cKOSTA)는 코스타와 같은 스피릿을 가지고 철저한 자원봉사 정신으로 한국인 학부 학생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대상은 다르지만 동일한 성령께서 이번 집회들을 통해 코스타에 참여할 참석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대를 채워주시기를 기도 드린다.


개인적 회개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죄에 대한 회개와 죄에 대한 감수성의 회복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죄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유일한 길임이 선포되기를 원한다. 복음을 알고 이미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나님께서 미워하셨던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회개가 일어나기 원한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자신의 죄악 된 삶을 합리화시키는 합리화의 수단으로 삼는 뻔뻔함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을 회복하고 적극적으로 죄에 대적하는 삶을 결단하게 되기를 원한다.


공동체적 회개


자신과 자신의 민족의 죄를 위해 하나님 앞에 통회하였던 다니엘처럼 세상에 보내어진 그리스도인 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가정, 교회, 학교, 나라, 민족 등의 공동체를 위해 중보하고 그 가운데서 순결하게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만을 중요시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격리된 극단적인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믿는 이들끼리 성을 쌓고 안전지대에 숨어 지내면서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세상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려 그리스도인 임을 망각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힘겹고 경쟁적인 학문의 장에서 지식의 우상을 좇는 무리들과 동일한 삶의 목표를 추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제점들을 너무 쉽게 지적하면서 그 문제의 해결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향기 (고후 2:15)임을 믿는다면,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향기를 내뿜는 삶을 경주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의 진지한 회개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들에게 물으실 세상에 대한 책임을 엄숙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아성에서,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 순결한 삶을 경주하기를 결단하기 원한다. 그때 비로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하나님의 향기가 스며져 가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의 꿈틀거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제자의 삶의 회복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은 자신 스스로가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임과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삶이다. 그러나 삶과 선교는 너무나 오랫동안 별개의 것으로 여겨져 왔다. 선교는 특별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특정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개념이 만연되었고, 일상의 삶은 제자의 삶과는 별개의 세속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선교와 전도는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특별한 훈련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과 일상의 삶은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다는 잘못된 이원론적인 사고를 낳게 되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 이러한 이원론적인 사고의 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존귀한 제사장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선포되고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기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하나님께 순종하는 순결한 제자의 삶을 살고, 그리스도를 전하고 제자 삼기 원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박차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그의 나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이웃에게 손을 내밀기 원한다.


코스타 그 이후 – 지혜롭고 순결하게 섬김


코스타 집회는 일주일이라는 단시간의 일회적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일 하심은 코스타 집회 이후에 더 강력하게 참석자들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집회를 마치고 전국으로 흩어져가는 참석자들의 상황을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전도하러 세상에 보내시는 상황에 비유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참석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좀처럼 깨기 어려운 일상과 두려운 현실이다. 우리의 섬김을 기다리는 가정, 이웃, 교회, 학교, 직장, 학문의 영역, 민족, 나라는 전혀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곳에 우리들은 나아간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지하고 “지혜롭고 순결하게” 섬기러 나아간다. 깊은 영적인 깨달음은 교만이 아닌 섬김으로 나타나기 원한다. 깊은 회개는 개인적, 공동체적인 순결한 삶으로 나타나기 원한다.


맺으며


하나님께서 미국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을 어떻게 사용하실까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특별히 올해에는 코스타와 더불어 JAMA, Urbana 등 풍성한 기독 행사가 준비되어 한국인 학생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주고 그들을 훈련시키게 되는 것은 참 고무적인 현상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크고 넓음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코스타라는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의 일부를 감당한다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별히 조장으로 멘토로 자원봉사자로 어린이 코스타 교사로 강사로 간사로 섬기는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분들을 통해서 올해도 은혜를 부어주시고 주님의 임재를 우리 가운데 보여주시리라 믿는다. 코스타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집회에서 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작품이고자 한다. 지역에서 그러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함께 동역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원한다. 함께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학문의 세계에서,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기까지” 순결한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 코스타 2003은 그런 제자들을 배출하는 영적 훈련소가 될 것이다.

[박성호] 소담한 찬양이 울려 퍼질 2003년 코스타를 꿈꾼다

이코스타 2003년 6/7월호

2003년 코스타가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2002년 7월, 위튼 칼리지 에드만 채플에서 울려 퍼지던 찬양의 벅찬 함성 소리와 도전적인 메시지들의 파릇파릇함, 채플을 가득 채우며 수많은 이들에게 찾아가 만지시던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감동이 나의 영혼 깊숙이 또 다시 이번 코스타를 기다려지게 한다.


모두에게 마찬가지이겠지만, 바쁜 매일 매일의 수많은 사역들을 감당하면서 보내는 나로서는 코스타와 같은 집회는 지친 나의 영혼을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재 충전시키시며 억수로 쏟아 붓는 폭포수와도 같은 시간들이다. 찬양 사역을 맡게 된 지난 3년 동안은 아무래도 받을 은혜보다는 해야 할 일과 사역에 집중하다 보니 그럴 기회를 많이 놓치긴 했지만, 어쨌든 코스타를 통해서 내 영혼에 채워진 감동과 결심들은 오랜 시간동안 나를 붙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이제는 미국 코스타에 참석하는 것도 햇수로 7년째가 되어가면서 집회에 참석하는 나의 마음 자세도 많이 타성에 젖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늘 다시 기억하고 다짐하는 것은 코스타를 처음 경험하면서 내 영혼에 채워졌던 숨 막힐 듯한 그 감동의 시간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또 수많은 새내기 코스탄들에게 새겨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그것뿐이다.


바쁜 일상생활에 묻혀 살던 얼마 전 나는 무작정 웹 서핑을 하던 중에 어느 한국에 있는 교회의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중보기도 게시판에서 ‘우리 딸이 이번 여름에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하는데 거기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라는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제목을 보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 내 등뒤에 흐르던 소름 끼치는 듯한 감동과 한줄기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곳곳에 숨어 있을 기도의 제목들은 ‘그냥 어쩌다 보니 말씀이 좋은 사역자들과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찬양 팀을 구성해서 집회를 진행하기 때문에 집회에 감동이 있는 것이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들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 어머니와 같은 이들의 땀과 눈물의 범벅으로 드려진 기도들이 하늘의 보좌를 열며 집회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원천적인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단순히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삶으로 인정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나는 그만 그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참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코스타의 찬양 팀을 기획하고 팀을 구성하는 것도 어찌 보면 권력이요 특권이다. 코스타라는 집회의 성격이 전국에서 모이는 각 지역교회에 속한 학생들의 수련회이기 때문에, 그 집회의 찬양팀을 맡게 된다는 사실은 일종의 ‘국가대표 선수단’이라는 헛된 환상을 심어 줄 사탄의 공격이 늘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집회 시간 중에서 자주 눈에 띄고 조명을 많이 받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는 그런 사역이다. 자연히 우리의 영원한 ‘자칼 형사’인 사탄은 늘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유혹과 달콤한 무기를 가지고 찬양 사역자들의 영혼을 삼켜버릴 심정으로 덤벼들고 있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찬양 사역 팀에서 3년째 이름을 드러내고 사역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나의 이름 석자가 알려지게 되고, 또 그렇게 알려지는 것을 즐기게 되고, 나에게 찾아오는 유혹들과 도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하기에는 이제는 코스타의 ‘꽃봉오리’와도 같은 이 사역에서 물러나서 어디론 가 옮겨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올해 역시 ‘이번 코스타에서 찬양 팀으로 같이 섬기고 싶다’는 적잖은 형제/자매들의 연락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순수한 이들의 마음 마저도 괜스레 오해하고 있는 것 같고 있는 내가 싫어진다. 생각해 보면, 그냥 낫 놓고 ‘아 그게 기역자구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해 2001년 찬양 팀의 기억들과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멋진 주제와 어우러졌던 그 모든 감동의 순간 속에 경험했던 섬김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다시금 첫 마음으로, 새해 첫날 찬물로 세수하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음악성과 인기와 그 모든 아지랑이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기로 작정했던 내 삶의 그 모든 첫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소담한 마음으로 다시금 찬양을 준비하며 그 분께 올려 드릴 때 흥건히 받아주실 아버지의 품을 다시금 기대하며.

[이시훈] 그의 손길이 닿을 때

이코스타 2003년 6/7월호

대부분의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활동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 인정 받거나 널리알려지지 못했고 어려운 길을 걸었던 것에 비해, 피카소는 매우 젊은 시절부터 그의 천재성을 인정 받아 명예와 부를 누리며 왕성한 활동을 한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도 처음 파리에 와서 활동을 하던 이십대 초반에는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빈궁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친구 막스 자코브의 좁은 방을 나누어 쓰던 이 년간, 먹는 것도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밤새워 그림을 그리며 석유가 없어 한 손에 촛불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파리의 뒷골목에 자리한 허름하고 더러운 건물에서 예술가, 행상인, 시인, 노동자 등의 온갖 직업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던 몇 년 동안에 그 유명한 청색시대가 구축되었습니다.(1901-1904)


삶에 대한 지치지 않는 탐구와 열정이 넘치는 이 젊은 천재 화가에게 가난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고통은 삶에 대한 명상의 기회와 깊은 통찰의 계기가 되어 그의 예술에 토양이 되어주었습니다. 깊고 차가운 청색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들 속에는 우울함, 고뇌, 허무, 빈곤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가 처한 상황에서 바라보는 삶과 이웃들의 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느낌을 표현하는데 푸른색만큼 적합한 색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청색 하나만으로도 그 명암과 톤을 달리함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시각을 충분히 전달하는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의 청색은 다만 절망과 우울함의 상징만이 아니라 그가 바라 본 새벽의 깊고 아름다운 하늘의 색이었을 것입니다. 어둡고 칙칙하고 비좁은 방에서 이젤도 없이 밤새 바닥에 허리를 구부리고 작업을 하고 난 뒤 창 밖을 보았을 때, 푸르고 깊은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것을 바라보며 젊은 피카소가 느꼈을 감동을 상상해 봅니다. 가슴 깊이에서 서서히 번져 오르는 삶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벅차게 그를 사로잡았을 것 같습니다. 청색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관람하였을 때 제 자신이 느꼈던 감격은 “숨막힘”이라는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흐름, 삶과 죽음, 절망과 구원의 긴 서사가 한 화폭에 압축되어 있는 ‘삶’이란 작품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에 젖기도 했고, 비참한 현실을 대변하는 그의 청색 인물들을 보며 깊은 공감과 슬픔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빈 배 한 척만이 호젓이 떠있는 바닷가에 고개 숙인 여인이 어린 아이를 가슴 깊이 껴안고서 있는 작품 ‘ 바닷가의 여인과 아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기도를드리는 듯 손을 모으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림자가 있고, 작은 아이는 엄마의 품에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온통 푸르른 화면과 창백한 그녀의 얼굴과 손에 대비되는 붉은 꽃 한 송이가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그녀의 모아진 손에 들려 있는 붉은 꽃만이 푸른 계열의 색조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빈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여인의 상심과 슬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근심과 아이에 대한 간절한 소망..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기도가 깊고 푸른 우울의 바다에서 홀로 붉게 피어난 꽃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지요.


삶의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삶에 대한 관조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막막하기 만한 어두운 바다와 같은 삶의 한 복판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은 어둠과 완전히 구별되는 색조의 꽃을 피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시기에 피카소를 사로잡던 소재 중의 한 대상은 맹인이었습니다. 영양 실조와 질병으로 인한 실명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대상이면서 또한 화가에게 절대적인 시각을 내면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하기에 적합한 모델 이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어둠, 절망, 빛의 상실을 의미하는 맹인의 모습에서 화가는 삶의 다른 부분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 맹인의 식사’라는 작품 속에 그려진 맹인의 움푹 패인 눈두덩과 가느다란 손가락은 지치고 고달픈 하루의 끼니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맹인 앞에 놓인 한 덩이의 빵과 작은 물병이 전부인 초라한 식탁에서 그의 고난과 덧없는 삶의 단면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여윈 손이 닿아 있는 물병과 빵은 푸른색의 전체에서 일탈한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색과 노란 색을 통해 물병과 빵이 그에게 주는 의미를 이렇게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화가는 내면적인 시각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맹인은 손의 감각을 통해 빵과 물이라는 물질에서 생명의힘을 보게 됩니다. 그 맹인의 손길은 차갑고 우울한 세상에 색채를 더함으로써 생명의 끈을 잡게 하는 화가의 손길인 것입니다. 절망과 비탄으로 맞는 저녁 식사에서 더듬어 찾아 낸 물병과 한 덩이 빵은 그에게 생명을 약속하는 양식이기에 화가는 맹인의 손에 시각을 찾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림에 한해서 화가는 절대자이며 권능의 손길을 갖고 있습니다. 지치고 참담한 생활 속에서 상처 받은 인물들을 재현하고 그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기도 하며, 그들의 삶의 방향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바닷가의 여인의 손에 아름다운 붉은 꽃을 그려 넣어 주거나 맹인의 가난한 식탁에 놓인 물과 빵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면서 화가는 작품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면서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아름답게 채색되어지거나 삶의 꽃 한 송이로 피어나는 것을 느낄 때가 없으신지요? 우리의 고난에의미를 부여하고 어둠에 빛을 주기도 하는 손길에 의해 내 삶이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슬픔이 감사와 감격의 순간으로 바뀌어 버리는 그 따스한 손길을 경험하신적이 있으신지요?


세상이라는 넓은 화폭에 우리를 그려 넣고 그림이 완성되도록 다듬고 있는 그 손길 말입니다.

[차문희] 가족 요법 (Family Therapy-2):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

이코스타 2003년 6/7월호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치료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장애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아이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 상담을 하다 보면 한결 같은 말씀들을 하십니다. “도대체 우리 아이에게 왜 이런 장애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대로 가르치려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책도 많이 읽어 주고 아이와 대화도 많이 했는데, 왜 우리 아이에게 장애가 생겼는지… 내가 아무래도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가 봐요. 우리 가족들이 무언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대신 죄 값을 치루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갖고 있는 장애는 가족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고 아이는 그 죄 값을 치루는 희생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가족 중에 있을 때 가족들은 그 질병의 원인은 하나님으로 받은 죄의 삯, 혹은 흔히 가족들의 잘못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그릇된 고정 관념을 조금이나마 바꾸고자 생긴 가족 치료 요법의 하나가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입니다. 현대적 가족 요법 (Post Modern Family Therapy)에 속하는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는 단어 그대로 ‘psycho+Educational’ 즉,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라는 뜻으로 일반인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병으로 인한 현재의 상태를 이해하며 앞으로의 해결책에 대한 지식을 배우게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가족들은 대부분 의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환자의 정서적인 면에 무관심 하기 쉬우나 이 치료 요법은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환자의 치유에 함께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가족요법을 통해서 그 질병이 생긴 원인이 그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스스로 깨닫기도 하고,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돕는 일을 통해서 섬김의 자세를 배우게 되기도 합니다. 한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자신의 병을 이해하는 가족들 덕분에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질병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가족들의 역할이 의사의 역할 만큼 중요하고 가족들은 긍정적인 시각에서 이를 받아들여 해결책을 찾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는 강조합니다.


가족 요법은 우리 기독교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유사한 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삶 속에서의 고통(질병, 장애, 고난)의 문제는 누구의 잘못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잘못인 지를 따지자,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 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장애(질병)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둘째, 어떤 장애(질병)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니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의 또 다른 특징 중에 하나가 서로를 위한 섬김의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룻 (Ruth)과 나오미의 예화를 보면 흉년이 들어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살아가는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하려는 며느리 룻을 통해서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 가족 치료 요법을 장애인 가족들에게 한 번 적용해 봅시다. 장애아이를 둔 가족들은 그 아이의 장애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죄책감 때문에 늘 고민과 근심 속에서 그늘진 얼굴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를 적용했을 때 상황은 매우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다운 증후군 (Down Syndrome)을 가진 장애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아이의 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가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졌는지에 대해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다운 증후군의 정의와 특징, 그리고 다운 증후군 성장 발달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먼저 필요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갖고도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잘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사회에서 다운 증후군 아이를 둔 부모님과 그의 형제 자매들의 역할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다운 증후군 장애를 가진 가족들을 위한 모임 같은 곳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좀 더 유익한 정보들을 교환하며 사회적인 네트워크도 형성해야 합니다. 이는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해서 만이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 아이는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사랑을 먹고 자라게 되고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보다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겠지요.


서로의 문제점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그 문제점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에서 시작되는 이 가족 치료 방법을 통해서 장애나 오랜 질병을 앓고 있는 가족들에게 오히려 그 문제점들은 사랑의 열매를 맺는 씨앗이라고 볼 수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장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