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지도자와 시간

시간관리에 관하여 나에게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었던 이야기를 두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한 시간관리 전문가가 경영학과 학생들에게 시간관리에 관하여 강의를 하도록 초대 받았습니다. 그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먹만한 돌을 꺼내 항아리 속에 하나씩 넣기 시작했습니다. 항아리에 돌이 가득 차자 그는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습니다. “네” 그러자 그는 “정말일까요?”라고 되묻고는 조그만 자갈들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항아리에 집어 넣고 깊숙히 들어갈 수 있도록 항아리를 흔들었습니다. 주먹만한 돌 사이에 자갈이 가득 차자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제 항아리가 가득 찾습니까?” 눈이 동그래진 학생들은 “글쎄요”라고 대답했고 그는 “좋습니다”하더니 다시 테이블 밑에서 모래주머니를 꺼냈습니다. 모래를 항아리에 넣어 주먹만한 돌과 자갈사이의 빈틈을 가득 채운 후에 다시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학생들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그렇습니다” 라고 하면서 물을 한 주전자 꺼내 항아리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실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한 학생이 손을 들더니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바빠 스케쥴이 가득 찼더라도 정말 노력하면 새로운 일을 그 사이에 추가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시간관리 전문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요점이 아닙니다. 내가 이 실험을 통하여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만약 당신이 큰 돌을 먼저 넣지 않는다면 영원히 큰 돌을 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간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간을 얼마나 꼭꼭 채워 바쁘게 사느냐가 아니라 중요한 것을 먼저 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인생의 사소한 문제들로 인하여 그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고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일을 하는 것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그의 저서 “성공하는 자의 7가지 법칙”에서 다음의 네 가지 종류의 일들 중에서 어떤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할지 묻고 있습니다. 첫째, 중요하고도 급한 일, 둘째,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셋째,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넷째, 중요하지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


여러분들도 한번 대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당연히 “중요하고도 급한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코비는 예상외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제일 먼저 하라고 제안합니다. 물론 우리가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에는 다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왜 급한 일 보다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해야 합니까? 그가 설명하는 이유는 “둘 다 중요하지만 급한 일을 먼저 하면 사람이 그 일을 하면서 지쳐 버리게 되나 급하지 않은 일을 하면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경험적으로 이 주장에 상당히 동감을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로 하루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주에 강의할 내용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쏟고 하루 하루를 채워가다가 다음 학기가 되면 또 그때 강의 준비를 하루하루 해 나아가는 것으로 급급해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바쁘게 그러나 간신히 강의를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코비의 법칙을 내 삶 가운데 적용해 보았습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는 법칙을 사용하여 하루의 시간을 보낼 때에 우선 다음 학기 강의할 내용을 연구하고 공부하는데 일정 시간을 항상 배분하였습니다. 오늘의 강의도 중요하지만 다음 학기 강의도 동일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오늘 준비하지 않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므로 급한 일은 아닙니다. 즉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음학기 강의 준비에 우선적으로 일정 시간을 배분함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유익을 경험하였습니다. 첫째, 다음 학기 강의를 미리 준비할 때에 이번 주 강의 준비를 하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습니다. 둘째, 오늘 준비한 다음 학기 강의 준비가 쌓여서 다음 학기가 되었을 때에 강의 부담을 많이 줄여 나의 삶에 지속적으로 여유를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셋째,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 학기 강의를 미리 준비할 때에 당장 강의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보다 보다 더 연구하고 깊이 생각해서 나에게 먼저 적용할 수가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가르치기 위한 수준의 공부를 넘어 나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연구도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대는 어느 때보다도 바쁜 세대입니다. 마치 시간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 속에서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삶 가운데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또 그 중에서도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할 수 있는 시간 관리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어떤 것들입니까?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창희] 그리스도인들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코스타 2005년 6/7월호

그리스도인들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복음과 민족 1

미국에 이민 온 1.5세나 혹은 2세 그리스도인들이 미국 땅에 살면서 꼭 돌아보게 되는 질문이 있다. 미국유학 후 미국에서 취직할지 아니면 한국에 돌아갈 지를 결정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장기적으로 당면하게 될 질문이 있다. 한국 땅에 살면서, 혹은 외국생활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이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을 제기하면 어떤 사람은 당연한 것을 왜 새삼스럽게 묻느냐고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복음의 보편성을 넘어서 쓸데없는 민족주의를 자극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분들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이나 선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어느 하나의 입장을 취하게 되면 반드시 논쟁을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오랫동안 내가 고민해 온 주제일 뿐 아니라 또 앞으로 내가 사역하고자 하는 방향과도 관계되기에, 독자들도 기존의 선입관을 내려 놓고 기초부터 함께 생각해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에는 모든 신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한 하나님에 속한 자임을 말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롬 10: 12),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갈 3:7). 한 마디로 모든 신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늘에 속한 자라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자라면 이 사실을 결코 의심할 수 없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이 땅에서의 신분이나 모든 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이란 한 특정 민족을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얻게 될 구원의 한 모델로 선택하셨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 그 특수성은 사라지고 모든 민족에게 동일하게 임할 구원의 복음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국가와 민족이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국가간의 분쟁이나 이해관계에 있어서 전쟁의 위험을 무릎쓰고 그렇게 매달릴 필요가 있는 것인가?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안에 있다면 한국인이 된다는 것이나 미국인이 된다는 것이나 일본인이 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 동일한 것이 아닌가?


사실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고 나 역시 한 때는 이런 생각을 가졌었다. 그러나 성경을 가만히 읽다 보면, 미묘한 부분들이 발견된다. 바울은 주안에서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말한 바로 그 로마서에서 자신의 민족과 혈육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들을 토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2) 그는 얼마나 자신의 동족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으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의 구원을 원하고 있다고 자신의 양심을 걸면서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로마서 10:1에서는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나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복음안에서 한 자손임을 믿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골육과 친척에 대한 우선적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당위적 명령이 아니라 바울이 가졌던 애정에 대한 사실적 표현이기 때문에 이 자체가 곧 민족에 대한 우선적 책임을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이 구절들을 가지고 ‘민족주의는 성경적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사실(IS)에서 당위(OUGHT)를 추론하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도 바울이 그랬다는 것은 우리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줄 수는 있다.


그러면 민족에 대한 우선적 책임을 말하는 직접적인 명령은 없는가? 사실 성경, 특히 신약에서 이 부분에 대한 명시적인 구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민족에 대한 우선적 책임을 시사해 주는 구절을 찾을 수는 있다. 바울은 과부나 나이 든 부모를 봉양할 우선적 책임이 그 가족과 친족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즉 신자일수록 자기 가족과 친족에 대해 일차적인 책임이 있으며 더 돌아보아야 할 의무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과 친족에 대한 의무는 구약에서부터 강조되어 온 것이다.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레 25:25) 즉 형제가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으면, 그의 친척이 그것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심지어 형의 아내가 과부가 될 경우에는 동생이 그 형수와 그 재산을 책임질 의무까지 부여하고 있다(신 25:5-10). 이러한 친족에 대한 의무는 바울의 말을 통해 신약에 와서도 형태는 다소 변해도 신자의 공동체 내에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가족이나 친족은 기본적으로 혈연적 관계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만 유효할 뿐 하늘나라에 가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도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결혼제도 자체가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천사와 같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마 22:30)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족이나 친족에 대한 우선적 책임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땅에서만 유효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더 확장하면 민족과 국가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민족과 국가는 엄밀히 말하면 동일하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 국가에서는 동일시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족과 친족에 대한 우선적 책임이 있다면, 그 관계가 가족보다는 상대적으로 느슨해 졌을 지라도 민족과 국가도 혈연적 유대로 이루어진 공동체인 한,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도 우선적 책임을 가진다. 적어도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한민국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면,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좋든 싫든 한국민으로 살아야 하며 동족에 대한 우선적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여러 사람가운데서 일차적으로 부모를 전도할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동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것은 성경적인 정신이 부합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국가와 개인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각 개인들은 국가의 일원으로 태어났다면 국가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함께 가지는 공동체적 운명을 갖는다. 나는 내가 목회를 하기 전 한 때 철학을 공부하면서, 코넬대에서 박사후 과정으로 집단윤리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집단윤리의 핵심은, 국가와 같은 집단은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을 넘어선 어떤 공동체이며, 이 집단의 행동에는 그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독일이나 일본이 이웃나라를 침략했다면 그 집단행동에는 그 나라 모든 국민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으며, 따라서 모든 국민들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행동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행동에 대해 책임있게 결정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과 그가 속한 집단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성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국가 전체적으로 범죄할 때는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징계의 채찍을 그 국가 전체에 함께 내리셨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의 행동을 했을 때, 비록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40년동안 광야의 생활을 해야만 했다. 또 유다왕국의 말기에 예레미야나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은 그 자신은 비록 의인이었을지 몰라도 국가 전체적으로 범죄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도 국가에 대한 징계의 현실을 피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국가 전체의 책임을 묻고 계셨던 것이다. 이것은 개인과 국가의 운명이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경제적 위기나 전쟁의 채찍을 맞는다면, 비록 그 가운데 의인이 있고 참 신앙인이 있다 하더라도 어느 사람도 그 운명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록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 책임은 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국가적 형벌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 국가와 개인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국가와 민족에 대해 더더욱 우선적 책임감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욱 더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도 나라와 민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니 신앙인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나라와 민족을 보면서 안타까와 하며, 울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인들을 찾고 계신다. 예레미야나 다니엘처럼, 나라와 민족의 죄가 자신의 죄인 것처럼 회개하고 금식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우리 모두 이러한 부름에 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강동인] 코스타 2005연차 수련회를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5년 6/7월호


“Korean Student Diaspora – 흩어진 나그네, 선택받은 백성”
벧전 1:1-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올해는 코스타 연차수련회가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사람도 스무 살이되면 자타가 공인하는 성인이 된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성숙한 코스타 사역은 어떤 것일까? 미국 코스타 준비위원들의 고민이었다. 기도하며 주의 뜻을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여러 지체들에게 동일한 마음을 주셨다.


첫째, 미국의 한인 유학생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세상을 섬기게하려는 의도로 시작했던 코스타가 이제는 한인 학생/청년 디아스포라로 그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이는 유학 패턴의 변화를 수용하는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서 기독 한인(Christian Korean) 이라고 하는 확장된 민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한인 학생/청년을 전 세계에 퍼뜨리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연차 수련회를 통해 우리는 한인 학생/청년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열방을 향한 원론적 부르심을 살펴보고, 그러한 부르심에 응답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코스타 2005는 이 시대에 한인 학생 디아스포라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한인 학생/청년들이 더욱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겉으로 드러나는 집회의 외형적 화려함과 심리적 흥분상태에 기인한 뿌리없는 헌신의 열매를 지양하고 비록 현재는 작아보이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뿌리있는 헌신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열매는 예수님의 제자삼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깊이 있는 말씀과 삶의 나눔이 일어나는 소그룹 활동(조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조모임은 코스타 2005 연차 수련회의 가장 중심활동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연차수련회에 조장으로 자원하는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코스타 집회가 끝난 후에도 집회에서 경험된 하나님의 말씀이 참석자들의 삶에서 크고 작은 결실을 맺어가는 것을 보게하심에 감사를 드린다. 코스타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길러지고,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를 양육하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나그네의 삶을 경주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코스타 2005를 통해 우리는 미국, 한국, 그리고 제 3세계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라 지체들의 삶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생의 자랑과 하나님 안에서의 성공이 혼동되는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스스로 나그네된 선배와 후배들의 삶을 접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하나님 앞에 거룩한 것으로 드려지게 되는 헌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1:16,17)”


<결어>
20주년을 맞이하는 코스타 사역에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있기를 기도한다. 많은 기독 운동(movement)들이 세월이 흐름으로 인해 운동성을 상실하고 기념물(monument)로 바뀐 역사의 교훈을 엄하게 받아들이면서, 20세를 맞이하는 미국 코스타가 더 큰 운동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계속 새롭게 되기를 소원한다.

[안상현] cKOSTA 2005를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5년 6/7월호

칼리지 코스타/USA가 올 해로 세번째를 맞이 했습니다. 지난 2년동안 미 서부지역에서 열리던 칼리지 코스타가 올 해부터는 중부의 인디애나폴리스로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개최장소를 옮기면서 몇 가지 변화의 조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먼저 무엇보다도 좀더 넓은 지역의 한인 대학생/청년들을 품고자 하는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서부지역에 치중되어 있던 지역성에서 탈피하여 미국의 지역적 중심에 자리 잡음으로 말미암아 미 전국의 한인 대학생/청년 학생들을 향하여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는 장점을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두 번의 칼리지 코스타를 치루면서 좋은 간사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코스타의 중요한 가치중의 하나인 참가자가 주인이 되는 자발운동의 정신이 칼리지 코스타에도 뿌리내리는 것을 보면서 20세기 초반 선교의 근원지였던 학생자발운동(SVM)이 시대를 달리하지만 똑 같은 미국땅에서, 그것도 학생자발운동의 수혜자들이 한민족의 젊은이들을 통하여 다시금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들의 위대함을 꿈꾸어 봅니다. 그러나 단순히 간사들이 새롭게 배출되고 지역을 옮겨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는 것 이상의 중요성을 올 해의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강사와 간사들만이 나누고 고민하는 주제가 아닌, 모든 한인 대학생/청년들에게 각인되고 실천되는 주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 모든 한인 대학생/청년들은 우리를 선택하여 주신 주님의 피흘림과 희생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한 ‘선택받은 백성’이 되었음이 우리의 정체성의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분의 죽으심과 희생에 의한 선택에 온전히 “순종함”(2절)이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의 삶의 이유에 분명한 이유를 주고 또한 영원함에 관한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3절)가운데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유일하고 변치 않는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희생의 복음위에 자신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의 뿌리를 다지는 칼리지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를 “흩어진 나그네”로 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가운데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유학으로 왔건, 이민으로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던지 간에 우리는 현재 이 땅에 발을 내딛고 살고 있습니다. 몸은 미국땅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들이 아직도 이전의 가졌던 습관이나 태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을 바꾸거나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려는 안주해 있는 대학생과 청년들의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보곤 합니다. 이것은 어떤 문화가 우월하고 다른 문화가 더 우월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어떤 문화, 어떤 삶의 정황가운데 살던지 간에 그 곳으로, 그 상황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우리의 응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의도와 계획은 아니었을지라도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흩어짐이 곧 ‘하나님의 미리 아심’(2절)이었다고 선포하는 사도 베드로의 선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미주의 한인 대학생/청년들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는 말씀이고 또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로서 지금 바로 이 자리의 삶의 정황가운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선택받은 백성으로 흩어진 나그네의 삶을 가능케 하고 또 거룩케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거룩하게”(2절) 하시는 능력임을 깨닫고 그 거룩함을 능력을 추구하는 칼리지 코스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거룩함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거룩함이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채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우리의 꿈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모든 환경들— 학교, 가정, 교회, 일터, 만남—가운데에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들을 그려보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vision 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하지만 이 vision은 하나님의 계획과 그림들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속에서 상상해 보고 그려보는 일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고작 ‘큰 집, 좋은 차, 멋진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 혹은 그보다도 더 비참하게 고작 ‘포르노’의 영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속에서 이런 그림들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그림들로 채우는 일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이는 우리가 온전히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앞에 순종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 거룩의 능력을 발견하는 칼리지 코스타와 칼리지코스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서, ‘나’와 ‘우리’를 뛰어넘어 ‘저희’를 바라보고 품을 수 있는 칽리지 코스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0여년전 사도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흩어진 땅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일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를 향하여 사도 베드로는 너희도 나와 같은 마음을 품기를 기도하며 바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을 향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행 10:14—“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가르치시고(19-20절—“성령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그의 편견과 세계관을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을 의지하는 것처럼 또한 우리 모든 칼리지 코스탄들은 성령의 가르치시고 변화시키시는 능력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보여준 모습입니다(행 10:28, 34-35—-“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노라”) 순종함은 곧 실천을 동반하고 그 실천하는 신앙의 모습을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인가, 한국에서 열린 대학생, 청년 선교대회의 주제가 ‘벽을 넘어 열방으로’ 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 마음의 벽, 얼굴 색깔의 벽, 성별의 벽, 인종의 벽, 교육 배경의 벽,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베드로로 변화하기를 애쓰고 추구하는 칼리지 코스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흩어진 나그네로 다른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전하고 실천하는 일들이 바로 이 땅에 나그네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무엇으로도 값을 수 없는 희생을 치뤄주신 주님께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005 칼리지 코스타 집회가 진심으로 이 ‘선택받음’과 ‘흩어짐’의 소명들을 신실함과 열정으로 채우는 집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영길] 디애나대학 어느 코스탄 교수의 이야기

우리들의 삶은 “이야기”로 표현되어질 수 있으며, 우리의 이야기는 또한 삶의 모습을 잘 조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는 삶에 의미를 가져다 주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야기를 아주 잘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야기는 참으로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eKOSTA에서 내게 글을 부탁할때도 “…. 몇몇 코스탄들의 이야기들을 실어 보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 복음에 빚진자로서 … 이땅의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가정, 학교, 직장등에서 격게되는 고민과 갈등을 나누어 주시면…”이라고 하였다. 즉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는 것이다. 내게는 예수님 때문에 할이야기가 많이 있음으로 쾌히 털어놓아 보겠다라고 답하였다.


나의 이야기


본래 나는 운동선수 였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2학년때 부터 빙상을 시작하여 한국체육대학졸업할때까지 앉아 있는 시간 보다 뛰거나, 자전거 타거나, 얼음위에 서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다른 운동선수들과 같이 수업을 거르거나 오전수업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특히 고등학교시절 학교에 나간 날 수는 한달이 채되지 않을정도로 운동만 하였다. 따라서 운동으로는 제법 유명해져서 나를 나로 정의 되어질 수 있는 것이 “운동선수” 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운동선수=무식한이”로 정의되어 지는 상황이었기에 누가 무식하다는 말만 내게 사용하면 상대방을 무조건 두들겨 패는 자존심에 큰 문제가 있는 젊은 이였다. 그 자존심의 문제는 운동선수로서 “1등 제일주의”로 남을 이겨야만 살아 남는 세계관을 형성 시켜 주었다. 그같은 정신으로 나는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많이 땄고, 그덕분에 예비고사 (지금의 학력고사)는 점수와 관계없이 빙상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은 별 불편함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고등학교 1학년때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에 따라 고3학년때에는 남들과 같이 시험은 보아야 했고 에비고사에서 나는 120점의 점수를 받았다. 그점수는 당시 그냥 아무거나 찍으면 나올 수 있는 점수 였던것 같다. 왜냐하면 매 과목당 2-3분 걸쳐 다 응답을 하여서 받은 점수 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나는 그렇게 소원하던 1980년 동계올림픽을 나갈 수 없게 되자 운동을 그만두고 갑자기 교수가 되고 싶어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워낙 기초가 없었던 지라 나는 병원에 몇번 입원할 정도로 “무식하게” 공부하였다. 덕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원과정중 한번 더 입원했는데 고향인 원주 연세대학 병원에서 나의 병을 다룰 수 없다고 하여 서울대학병원으로 진급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서울대 병원에서 한달을 누워 있으며 젊음을 누워지내기가 너무 한심해 우연히 당시 지하실에 있던 교회에서 예배드리게 되었고 건강을 달라고 “무식하게” 기도 했다. 은혜로 수개월개월 후인 1984년에 미국의 University of Oregon으로 유학오게 되었다. 아름다운 Eugene에 도착하자 마자 주변에 “예수쟁이”들이 벌떼 처럼 달려 들었다. 특히 Nevigator아이들이 많이 못살게 굴었지만, 모국에서 처럼 사람을 구타할 수 없어 많이 참았다. 덕분에 예수님을 많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김치찌개를 아주 맛있게 끊여 대접하는 한국교회에 음식때문에 정기출석 하였다. 그당시 나는 교회 예배하러 간것은 결코 아니었고 한국식당쯤으로 생각 하였다. 제법 단골손님이 되자 교회에서는 나를 서리 집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 직분을 제대로 감당해 보려고 성경공부를 부지런히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즈음에 예수님을 잘 믿고 있었던 아내를 여름방학중 모국에서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 집사라 믿음이 좋은줄 알고 결혼했던 아내는 결혼후 바로 내게 믿음이 없음을 알고 새벽기도를 하며 나를 위해 중보하였고, 나는 그런 아내를 심하게 핍박하였다 (핍박속에 구타는 없었음을 명시한다). 여하간 공부를 열심히 한덕분에 1990년초에 여가학 (Leisure Sciences)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국에서 직장을 빨리 잡아보려고 졸업도 하기전에 귀국하였다.


당시 여가학 박사가 참 드물었던 지라 쉽게 교수자리 잡을 수 있을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출신학교가 운동은 잘하지만 공부로 별로 유명세가 없는 지라 나는 모 여자전문대학교 야간 수업에서 교양과목 하나를 가르치며 나머지 시간을 집에서 아이를 보았다. 왜냐하면 집에서 아기를 키우고 밥만하던 아내는 귀국전부터 연세대학에서 강의자리를 여러개 받아놓은지라 나는 아내를 외조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아빠는 나 하나였고 엄마들의 눈총은 나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였는지 모른다.


하나님의 낮추심이 그곳에서 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것을 그당시에는 몰랐었다. 낮추심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는 방법이었고, 그것은 아내의 기도 응답이었다. 당시 아내는 하나님께서 나를 광야같은 미국으로 다시 보내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The University of Georgia로 Post-doc하러 오게 되었고, 그곳에 있던 몇몇 형제들의 열성어린 중보와 섬김, 아내의 기도 등으로 어느날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마음 활짝 열고 영접하게 되었다. 캠퍼스 산책중 갑자기 그동안 귀로 듣고 간간히 성경공부를 통해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성경지식이 가슴으로 내려오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무한한 기쁨을 체험하였다. 나의 죄가 하나님께 얼마나 죄송했던지, 그리고 그런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나를 대신 하여 돌아가셨다는 사실로 인해 나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되어 울고 웃는 미친사람처럼 캠퍼스를 걷다가 결국은 창피하여 연구실에 들어와 하나님께 감사와 회개기도를 한참드렸다. 학자로서 느낌보다는 사실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지만 성경의 내용들, 특히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참으로 분명한 사건으로 깨닫아 지는 은혜를 체험하였다. 그뒤 나의 세계관은 온전히 바뀌고 성경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계속 다듬어가고 있었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의 성공을 무섭게 추구하던 사람이 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기쁨을 서서히 체험해 가고 있었다.


그뒤 Florida International Univeristy와 Ohio University 에서 각각 3년씩 교수로 보냈다. 특히Ohio University에서는 이근상 목사님의 스파르타식 성경공부, 전도훈련, 새벽기도 등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처음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했고 훈련 받았다. Ohio University에서 2년째 되던해 지금 재직하고 있는 Indiana University에 교수채용 공고가 났었으나 새벽기도하던중 하나님께서 계속 남아있으라는 인도함 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자훈련을 계속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순종하였다. 인디애나대학은 사실 나의 분야로서는 미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 이미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라는 소식을 학회에서 들었을때는 순종을 잠시 후회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소위 내노라하는 좋은 학교는 기존의 같은 전공 교수가 은퇴하거나 그가 다른 대학으로 옮기지 않는한 다시 교수채용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한학기에 3-4과목 가르쳐야하는 Ohio 대학이 주님께서 나를 있으라 한 대학이기에 그곳이 제일 좋은 대학이라고 믿으며 기쁘게 남아 있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즉 “좋은대학의 교수”라는 육신의 정욕을 믿음으로 포기한것이었다.


나는 계속 제자훈련 받으며 그곳 생활을 철저히 즐겼다. 성경공부와 새벽기도가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이 었는지 모른다. 그러던중 3년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Indiana University에서 편지가 왔다. 지난해 오기로한 교수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였지만 오기를 거부해서 다시 교수채용을 하니 응모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시 기도하며 인디애가 가는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일까 여쭈는 가운데 평안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마침 구약과 신약을 개관하던 성경공부의 교제도 거의 끝나는 상태이기도 했다. 나는 지원 하였고, 인터뷰하자는 제의를 한달뒤 받았으며, 그뒤 학교로 부터 공식적인 Offer를 받았다. 그러나 제의를 그자리에서 수락하지 않고 기도할 시간을 가지려고 1주일의 시간여유를 부탁했다. 뛸듯이 기뻤지만 나와 아내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 하려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6일째 되도록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나 7일째 여호수와 1장의 말씀을 통해 떠나도 된다는 하나님의 “결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뒤 이곳 인디애나대학에 와서 한인기독 학생회 (Indiana University Korean Christian Fellowship 혹은 “목요모임”)의 지도교수를 하며 매주 목요일 학생들과 함께 캠퍼스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매주 30-40분의 설교를 맡고, 그 설교를 위해 매주 10-20시간을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한다. 강의 준비는 몇시간 안해도 지난 여러해 동안 했던 것이고 평소 늘 책과 논문을 읽고 새로운 글을 늘 쓰고 있었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지만 말씀준비는 늘 힘들다. 그러나 힘든 말씀준비는 교수로서, 미국에 사는 “이방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귀한 방편이 되었다. 오하이오 대학에서 tenure를 받았지만 금년 이곳대학에서 다시 tenure를 따낼 수 있었던 것도 말씀준비하고 설교하며 받은 하나님의 은혜덕분이 었다.


지금까지는 나의 짦막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죄인이었던 때의 나의 모습이 있고, 구원 받는 과정속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구원 이후에 어느 목자의 헌신어린 제자훈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캠퍼스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 죄인이었을때의 삶과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비록 간단히 이야기를 하였지만 1984년 유학온 이후의 이야기는 20년간 이방에서의 삶에 대한 재빠른 요약이다. 나는 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eKOSTA에서 요청한 몇가지 주제를 다룸으로 나의 이야기를 좀더 정리해 보려 한다.


이방에서의 삶


삶의 환경 측면에서 보면 미국에서의 삶은 흘어진 나그네의 삶, 즉 이방 삶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사고 방식에 있어서 우리와 친숙한 한국의 삶의 환경과는 참으로 다르다. 뿐만아니라 백인중심의 사회에서 얼굴 색갈이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으면 소수민족에 속한다. 따라서 이방의 삶은 소수민족의 삶이기도 하다. 물론 미래의 미국은 소수민족이 현재의 다수인 백인과 비슷해질것으로 추정하는 자료들이 많이 있지만, 과거와 오늘의 현실로 보면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살고 있는 우리는 소수에 속한다. 특히 유학생 시절 언어가 능숙치 못해 어려움 많던 시절에는 어른인데도 언어의 수준을 나이 수준하고 비슷하게 맞추어 대하려는 백인들을 대한적이 있다. 따라서 이방의 삶은 매끈한 삶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껄끄러운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신앙의 측면에서 보면 낮설고 광야같은 이방의 삶은 우리의 신앙을 단련하는 훈련장소 같다. 평소 의지하던 부모, 형제, 친척이 이곳에 없으며,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즉 의지할 곳이 별로 없는 광야 같이 황량한 곳이다. 특별히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고 머리가 비상하지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 학업이나 교수의 삶은 결코 안락한 삶이 아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의 뒤에 서고 싶지 않고, 앞서자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고 능력이 부족한 나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


그뿐아니라 미국에서 학생으로나, 교수로서 다수인 백인을 섬기며 이끌어 나가려는 삶은 늘 편안 하지만은 않다. 지난해 이곳 캠퍼스에 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가신 높은뜻 숭의교회의 김동호 목사님은 신앙생활을 “유격훈련장”으로 비유 하신적 있다. 나는 현재 매학기당 두과목씩 강의 한다. 그외 박사논문 지도 및 학생 상담, 여러 회의 등 분주한 교수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말씀을 전해야 하기에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성경을 보면서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두과목 강의 준비보다 거의 두배의 시간이 들때가 많다). 때로는 지역교회 및 다른주에 있는 한인교회에 수양회 강사 혹은 지역교회 목사님 출타시 가끔 말씀을 전하는 역할로, 그리고 내가 속한분야의 주요학술지의 편집장으로, 1,500명 교인이 나오는 미국교회의 장로로, 세아이의 아빠로, 지역사회에서 사업을 하는 아내의 동업자/동역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 적힌 모든 역할은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단순한 일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조금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동호 목사님이 삶은 유격훈련장 으로 비유하셨을때 나는 크게 “아멘”하였다.


복음의 차원에서 보면 이방의 정의는 갑자기 바뀌게 된다. 즉 하나님 믿지 않는 이들이 이방인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된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삶은 믿지 않는 이들을 감싸주고, 사랑하고, 섬김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장이다. 믿는 자들이 미국에서 유학하며 이방백성들, 즉 복음에 눈먼자들, 세상 성공과 물질의 욕심이라는 교도소에 같인자들, 상처로인해 억눌리고 삶을 절뚝거리며 사는자들은 복음으로 자유케 해야하는 귀한 사명을 가진 제자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이다.


정체성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아이들, 특히 대학진학을 앞둔 큰 아들과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딸아이의 경우 한때 정체감의 혼돈으로 힘들어 한적이 있다. 영어는 미국아이들 같이 하고 미국에서 17년, 14년 살았지만 얼굴은 동양사람이기에 온전히 미국사람도 아니고 한국사람도 아닌 “between and betwixt” 혹은 “limbo”의 상태인 자신의 정체감을 놓고 고민을 털어놓은적 있다. 앞으로 결혼을 반드시 한국사람과 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묻는 아이들을 대하며 정체성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꺼내 놓았다.


나는 한국인이기에 앞어 “그리스도인”이다. 따라서 나를 나로 정의해주는 정체감은 그리스도인으로 표현되어 져야만 한다. 아이들에게도 그들이 민족적 차원에서는 한국인임을 분명히 인지 시키지만, 정체성의 문제에서는 그들이 Christian (두아이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임을 강조하였다. 결혼도 한국사람, 백인, 흑인과 결혼하지 말고 좋은 그리스도인과 하라고 이야기 하였다. 이같은 설명은 아이들을 자유케 한것 같았다. 다시는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감사히 여긴다. 예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현재의 삶속에 교만할 필요도 없고 비굴할것도 없어졌다. 교회에서 미국인 형제.자매들을 대할때도 인종을 먼저 보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혹 인종 문제로 인해 나와 벽이 있을지 몰라도 내가 그들을 대하는데는 큰 장애가 없다. 내게 있어 그들은 백인도, 흑인도 아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 첫날 학생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반드시 발표한다. 그리해야 믿는자로서 예수님이름 때문에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표해야 매번 강의를 철저히 준비할 수 있고 또 학생들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의 첫날에 이렇게 발표한지 약 10년이 되었지만 어느누구도 이같은 발표로 인해 시비를 걸고 나온이는 아직 한명도 없다. 오히려 나를 좋은 교수로 인정을 해주어서 금년에는 Trustee Teaching Award까지 받았다.


고민과 갈등


흩어진 나그네의 삶, 그리고 선택된 백성의 삶은 하나님과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안되는 긴박한 영적전쟁속에서 살아가는 삶 같다. 따라서 순간순간 기도하며, 말씀으로 온전히 서 있지 않으면 일시적 편함을 위해, 외로움을 달래기위해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려고, 혹은 잠시의 성공을 위해서, 잠시 예수님을 부인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혹은 세상에 속한 것에 예배하며 살아가려는 모습으로 변화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중간에도 나는 이같은 영적전쟁을 체험하였다. 아내는 이곳 Bloomington지역에서 The UPS Store라는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고, 남편인 나는 동업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사업을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고 있기에 동업자가 아니라 동역자라는 관점에서 서로를 대한다. 이곳 지역사회에서 사업을 하지만 우리들은 늘 캠퍼스로 들어오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이곳 학생회관에 있던 The UPS Store가 5년 계약을 마치면서 학교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따라서 인디애나 대학에서는 비슷한 업종을 계속해서 학생회관에 유치하려고 사업계획서를 받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기도하며 열심히 준비하였고 마감시간 2시간을 앞두고 있던 때에UPS본사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간 아무말 없다가 갑자기 학교에 제출하는 사업계획서는 본사의 차원에서 허락을 내려야 지원할 수 있다고 무작정 통보하는 것이다. 우리는 준비한 것을 그대로 제출하였고, 그들은 약 30분 후에 응답을 하였다.


응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업계획서에 적힌 사명진술 (Mission Statement) 가운데 잠언 11: 25절 말씀인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는 말씀을 빼어야 사업계획서를 허락해준다는 것이다. 굳이 성경말씀을 그곳에 적지 않고도 말씀대로 살면 문제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는 이미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고 그 말씀을 사업의 근본 사명으로 하고 있는 터이라 말씀을 뺄 수 가 없다고 맞섰다. 당연히 UPS는 허락치 않는다라고 더 강하게 맞섰다. 말씀을 시키는 대로 빼버리고 그냥 말씀대로 사업을 하면 되지 않겠는냐 하는 유혹이 나를 엄습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그같은 행위는 일본사람들이 한때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에게 강요했던 “신사참배”와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 순간을 영적전쟁으로 선포했다. 그리고는 사업계획서는 내지 않겠다라고 했다. 한편 하나님은 지혜를 주셔서 마감시간인 오후 5시전 대학의 담당자에게 전화로 문제의 진상을 설명함으로 제출날자를 하루 연장하였다. 바로 그때 UPS에서는 전화가 왔고,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삭제한뒤 우리를 대신해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음날 오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간 우리의 계획서를 학교가 검토할것을 요청하며 제출하였다. 한편 학교측이 우리의 계획서가 아닌 UPS회사의 계획을 선택할 경우 우리는 학생회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통보하였다.


흩어져 살고 있는 선택된 백성들이 받게 되는 갈등은 배경만 다를뿐 나와 아내가 체험한 영적 전쟁과 별 다름 없는 비슷한 성격의 것이다. 돈을 하나님 대신 잠시 섬기는것, 학위를 하나님 대신 섬기는 것, 육신의 쾌락을 위해 하나님을 잠시 버리는것, 직장을 얻기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등지는것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잠시의 성공을 위해 세상과, 악한 세상의 영과 타협하고 만다. 복음을 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유학생활중, 나그네의 삶인 광야의 삶속에서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이야기를 마치며


나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모르는채 살던 운동선수의 삶으로 시작하여 미국에 유학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알게됨으로 이제 선택된 백성으로, 복음에 빚진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마치고 있다. “쥐뿔도 가진것이 없으면서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살아가냐?”라고 묻던 어머니는 2003년 미국 방문중에 구원받고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 1995년 나의집을 방문 하였던 여동생 역시 “오빠와 언니는 무엇때문에 저렇게 기쁘게 살지?”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가 귀국을 며칠 앞두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지금 지구촌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으로 섬기고, 자신의 시어머니를 전도 하여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 그외 여러 학생 및 방문 교수들을 도처에서 만나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지금 그리스도인이 된 형제.자매들이 여럿이 있다. 이들은 또 여러 곳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박사학위 마치고 교만의 어둠속에 살던 나를 하나님의 흩으심으로 조지아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제 대학 교수라는 직업을 주셔서 아직 은혜에 이르지 못한자를 향한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높여드림으로 나의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