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The Things That Have Been Fulfilled Among Us

이코스타 2005년 8월호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1:1-2)



 



2000여 년 전 예수께서 이 땅으로 내려 오심으로써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은 오늘 우리의 교회 공동체와 캠퍼스 안에서도 동일한 은혜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그 어느 곳보다도 우리 마음 안에서 가장 또렷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붓을 들었던 누가의 열의를 흠모하며, 오늘 여기에서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을 대신하여 우리 중에 이루어진 일들 (the things that have been fulfilled among us)에 관해 나누어보고자 한다.[i] 우리가 배운 바, 즉 복음의 능력이 다른 여러 곳에서도 귀한 열매 맺게 하시리라 기대한다.



 



한 어부가 내어드린 고깃배



 



요즘 두 명의 자매들과 함께 공부하는 누가 복음을 보면서 흥미롭게 지난 시간들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누가 복음 5장을 펴면 주님이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실 때의 장면이 나온다 (5:1-11). 주님이 게네사렛 호수가 물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다. 곧 제자가 될 어부들에게 말씀의 능력을 체험케 하실 터인데, 먼저 하셔야 했던 일은 작은 요청이었다. 누군가의 배에 오르시는 것이 그것이다. 배 두 척 중 한 척을 택하사 청하셨다. “선택이라는 단어와 만나면 늘 궁금증이 돋는다. 선택 된 배의 임자는 어떤 이유로 택함 받았을까? 하지만, 많은 경우 주님의 부르심을 우리의 단순한 방식으로 해석하려 할 때 항상 문제가 생기는 듯 하다. 차라리 주목하고자 하는 사실은, 주님께서 청하실 때 어쨌거나 먼저 배를 내어 줄 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작은 순종이 가져온 결과는 귀하다는 것이다.



 



주님이 보여주신 기적은 순종한 첫 번째 어부 한 사람만을 향하신 것이 아니라고 보인다. 이웃의 다른 배까지 물고기가 넘치도록 채워졌고, 그러한 말씀의 능력은 함께 하고 있던 호숫가 어부들 모두에게 목격되었다. 말씀의 능력 앞에서 어부는 뿌리 깊이 자리했던 믿음 없음의 죄를 주님께 자백했고, 배를 뭍에 대자마자 세 어부시몬, 야고보, 요한은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주님을 따랐다. 십자가의 길 앞에서 주님을 외면한 뼈아픈 실수들도 범했지만, 종국적으로 그들의 삶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이 훌륭한 제자의 삶으로 변화 되어 오늘날까지 믿음의 후학들에게 주님을 따른 순례자의 본을 보여준다. 그들처럼 우리도 그물을 버리고 온전히 주님을 쫓았노라고, 그 첫 마음으로 끝까지 살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걸릴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작은 순종의 시작은 너무나 소중하며, 우리는 그러한 작은 시작들을 계속할 수 있길 소망한다.



 



작지만 소중한 시작



 



필자는 개인적으로 2001년 뉴욕/뉴저지 지역 KOSTA (gpKosta) 기간에 주신 말씀이 처음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구체적인 힘이 되어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전15:10-11)



 



선명하게 남았던 것은 마지막 구절 이같이 전파하매 이같이 믿었느니라이다. 누구에게든 전하기만 하면 믿을 것만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강한 확신을 주셨다. 그 확신으로 소그룹 리더 초보의 첫 걸음을 디뎠다. 집회가 끝난 후, 본 교회 전도사님의 도움으로 청년부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NAV Press에서 출판된 Richard Peace Learning to Love God, Learning to Love Ourselves, Learning to Love Others 세 권의 씨리즈로 각 권이 7개 단원으로 구성된 영문판 교재를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 교회 안 청년 중 일부는 유학 초년생 혹은 어학 연수생이었던 터라 영어공부에 대한 불타는 열의 때문에 한국어로 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수렴하면서 말씀을 공부하는 자리로 한 사람이라도 더 유도하기 위해 결국 성경공부를 영문판 교재로 정하게 된 것이다. 뒤섞인 동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정화시켜나가셨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들이 영어보다는 말씀에서 받는 은혜를 사모하기 시작했다. 소그룹에서 첫 번째 목격한 복음의 힘이었다.



 



가장 높은 은사, 사랑을 사모하는 공동체



 



서툰 시작을 격려 받으면서 열 달 가량이 지날 무렵 세 권의 성경공부 소책자가 모두 마쳐졌다. 그 사이 주님께 내어드린 시간들이 하나님 손으로 채워져 가면서 생명이 되었다. 주님을 사랑하는 영혼으로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가슴 벅차게 바라보다가 배웠다. 복음 전할 사명이란 것이 사실은 믿는 자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고 기쁨이라는 것을. 말씀을 나눌수록 우리가 열매 맺기 원하시는 성령께서 더 큰 은사를 사모하게 하셨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주님을 알고 주님을 닮고 싶은 열망을 허락하셨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2:31-13:1)”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4-8)”



 



사랑이었다. 주님이 우리 안에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인해 작은 공동체의 나눔이 풍성해져 갔다. 속 사람이 열매 맺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회복되어갔다. 사랑을 실천하려는 열심에 이따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영락 없이 무모한 일들도 했다. 새벽기도의 마음을 주셔서 서서히 새벽을 깨우는 지체들이 늘었다. 그러던 중, 두 시간 떨어진 어느 학교에서 어학 연수 중이던 한 지체가 새벽기도에 동참하고 싶어했다. 결국 새벽 세 시부터 일어나 제일 먼 곳부터 차례로 서너 군데를 돌아 모두 모여 교회에 갈 수 있었다. 새벽 성전을 향해 함께 가던 그 발걸음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는 지금도 생생하다. 이 일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그 여파는 교회 안에서 상당 시간 지속되었다.



 



너희들은 가라 저 캠퍼스로!”



 



교회 안 성경공부가 막바지에 이른 이듬 해 초 여름 우연한 여행의 기회를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도전을 주셨다. ‘기다리다 지쳐 사슴목이 된다’는 캠퍼스 소그룹 성경공부 리더로 헌신 중인 지체들의 삶을 보여 주셨다. 학교로 돌아오는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교회 안의 성경공부가 어느덧 익숙해져 온실 안처럼 여겨졌다. 친절하게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고, 구체적인 인도 방법들을 제시해준 공과 책에 감사했지만, 다음 단계에 대한 새 소망에 갈증이 났다.



 



가을 문턱 자연스레 교회 안의 성경공부는 일단락 되었고, 학교 안은 개강예배 (캠퍼스 안에서 학기 초마다 각기 다른 지역 교회를 섬기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연합으로 드리는 예배) 준비로 분주해졌다. 그 무렵 교통 사고와 함께 차를 폐차하면서 캠퍼스 안에 발이 묶였다. 하나님의 섭리였다. 악도 선용하시는 섭리. 마음 안에 먼저 소망을 두시고 행하시는 섭리.



 



두 번째의 시작



 



2002년 가을 학기 대학원생 연합 개강예배. 말씀 전해 주신 멘토님께서 힘주어 전하셨다.





“하나님의 시계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의 깊이를 측정하고 계십니다. 기억하십시오. [] 복음의 능력은 이미 여러분에게 와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말씀이 전해지지 않고 내 안에 쌓이게 되면, 우리는 교만으로 죽습니다!





주님!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만드신 분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알아가고 있습니까? 또한, 전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주님을 더 잘 알아간다는 착각 사이에서 교만이 싸여 죽게 되진 않을까 두렵습니다.’



 



누군가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들도 살고 나도 산다는데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살 수 있다는 생존본능으로 인해 빨리 결단했다. 때마침 교통 사고를 계기로 이사 들어가게 된 아파트에 한국인 신입생이 둘 살고 있었다. 하나님은 앞서 행하시는 분이심을 또 보았다. 이미 모아두신 이들과 캠퍼스 안에서 목요일 밤마다 성경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예배가 있은 바로 다음날로 구체화 시켜 나갔다. 공과 책이 아니라 성경책을 붙들고 시작했다. 이후 성경공부 모임은 다른 학생 기숙사 아파트들로 서서히 옮겨 다니면서 계속되었다.



 



결단 후 실천은 신속할수록 좋다. 우리 머리 속에서 짜내어 나오는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구실만 그럴싸해지고 그다지 신통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믿을만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오늘 생명의 양식을 받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해가 지기 전, 그 마음이 식기 전에 어서 베푸신 자의 뜻대로 속히 행하길 권한다.



 



처음 배를 내어드리기로 작정하는 어부가 할 일은 매우 간단하다. 하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믿는다. ! 하나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환경을 잘 살펴본다. 당신보다 앞서 행해 놓으신 것이 분명히 있다. 눈을 크게 뜨고 그 뜻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 주위 깊게 둘러 본다. ! 계획이 섰다면 반드시 말씀으로 확인 받는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 싶을 때는 안 한다보다는 한다쪽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 부딪쳐 실패를 경험하게 하셨다면 자성의 시간을 허락하신 아버지께 감사 드린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실패했다면,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더 낮은 포복 자세로 또 시작한



 



그 뜻대로 부르신 사람을 낚는 어부들



 



두 세 명을 기대했던 애초의 짧은 생각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공부 반 첫 날부터 일곱 명의 지체들을 불러 모으셨다. 잘은 모르지만, 마지못해 온듯한 얼굴도 보였다. 첫 만남에서 간단한 자기 소개와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했다. 다음 주 같은 시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시 모였다. 그들 각자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에 성령님께서 친히 각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셨다. 그 때에 우리 중 누구도 자신들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위대한 기회들은 때때로 아주 작은 일인 것처럼 위장 되어있다고 한 워렌 목사님의 말처럼[ii], 이들은 지금 유학생 중심 개척교회의 일군들로, 또 캠퍼스 안에서 아직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섬기는 자들로 세워져 가고 있다. 어려운 시간들도 지나고 있지만, 말씀과 씨름하며 부심하는 삶의 모습들이 귀하다.



 



교재 준비하기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참 믿음으로 인도한 책. 로마서! 그들과 같은 감동으로 아니 더욱 진한 감동으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로마서를 공부하기로 정했다. 로마서 공부를 위해서 필요한 자료들을 이것 저것 모았다. 친구가 권해준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강해집 총 11권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년 전에 지역교회 목사님 한 분과 함께 공부하고 보관해 두었던 유인물들을 복습했다. 교회의 전도사님이 주신 IVP ‘말씀과 삶성경공부 시리즈 소책자를 문제 출제의 뼈대로 삼고 가급적 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성경공부 인도 경험 이제 겨우 두 번 째, 문제 출제에는 더더욱 초보인지라 결국 많은 핵심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빌어다가 쓰기에 그쳤다. 그 밖의 상세한 부분들은 소그룹 인도의 경험이 많은 한 친구와 또 한 집사님을 멘토 삼아 조언을 받았다.



 



하나님의 복음은 자랑스러운 것!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16)



 



가장 놀라운 것은 공부해 나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스러워하게 된 일이다. 능력은 사람의 말에 있지 아니하였고 참으로 말씀에 있었다. 복음의 능력을 확신 시켜준 코 끝이 찡한 감동의 현장도 경험하게 하셨다. 연변에서 온 한 형제 이야기이다. 두 분의 멘토님들께서 방문해 주신 자리에 이 형제가 초대를 받아 함께 하게 되었다. 초대해 두고서도 올 것을 기대하지 못했던 시간. 그 자리에 와서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형제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 모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의 은혜를 체험했다. 믿음은 복음을 들음에서 난다는 것,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됨을 눈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모든 영혼들이 다 그렇게 쉽게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쉬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장기 기도 제목이 되어버리는 지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때에 우리가 배울 것은 지치지 말고 그 영혼을 끝까지 품는 인내심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적인 사랑이 바로 그러하셨다. 포기하고 싶은가? 그럼 한 번 포기해보길 권한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실 것이다.나는 너를 포기한 적이 없단다.”[iii]



 



항해의 바람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 뜻에 따라 영혼을 섬겨보려고 시작한 지체들이 부쩍 나는 받기만 했노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에게서 조원들에게서. 바쁜 학기 중에도 더 바쁜 학기 말에도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게 하신 것은 때마다 우리의 도움되신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하심이었다. 헌신하겠다고 발버둥치는 자녀들을 가장 먼 곳의 별과 지구상의 마지막 모래 한 알갱이 (the remotest star and the last grain of sand) 까지도 동원하여 도와주시는 하나님 은혜였다.[iv] 은혜를 아는 자들이 되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렇게 이루어진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니었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 우리의 이름을 하나씩 친히 불러 한 자리에 모으시고, 모인 중에 서로를 세우게 하신 아버지의 경륜으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우리의 약함을 쓰기 기뻐하시는 하나님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때와 비교하여, 성경공부 중 영혼들을 섬기며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자각과 기도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일 것이다. 리더에게는 모임에 앞서 지체들을 위해 기도할 사명이 있다. 또 먼저 준비된 자세로 은혜 받게 해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이러한 사명감은 어찌 보면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위대한 일로 보일 수 있다. 열심은 있는데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그럼 당신은 잘 준비되어 있다. 의심치 말자.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쓰시는 분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지체들과 함께 공부하는 동안 마음 속에서 리더라면서 내가 왜 이렇게 어눌하지? 이것 하나 똑 부러지게 설명을 못 하다니…’등의 생각들을 수시로 했던 것 같다. 또 어떤 날은 기도마저 너무 서툴고 어린 아이 같아서 스스로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서툰 말솜씨와 다듬어 지지 않은 대표 기도는 다른 지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모범을 보여야 하는 부분에서는 그에 합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감당할 능력도 공급하시지만, 많은 경우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가 되는 것은 리더의 연약함과 다듬어지지 않은 소박함이라고 생각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준비는 물론 중요하지만 애써 완벽한 체 할 필요는 없다. 배를 움직이는 바람은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며, 실수와 좌절감으로 범벅된 눈물을 연료로 쓰신다.



 



낙심하는 순간은 여전히 온다. 아마도 가장 힘든 일은 부족한 스스로의 인격과 싸우는 일이 될 것이다. 리더로서 늘 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두려움도 많을 수 밖에 없다. 탄식 가운데 토로하는 바울 사도의 고백(7:24)을 이해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맛보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 사람들에게 얻는 호의로 높은 마음을 품을라치면 아버지께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을 지체들로 하여금 보게 하셨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도 있었지만, 이로써 모두에게 우리가 바라 볼 자는 오직 예수뿐임을 확인시키셨다.



 



많은 경우, 리더의 자존심을 생각하기 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정직하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 때에 형제 자매들은 오히려 하나가 되어 중보기도를 해주었다. 공동체 안에서 솔직하게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절대로 나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가장 취약한 자리에 가기로 자청하는 일을 기뻐하신다.[v] 내가 직면한 위기의 상황은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절호의 기회였고, 또 한편 더불어 먹고 자고 씨름하며 쌓인 우정의 중심에 주님이 자리하심으로 인해 견고한 삼겹줄이 되는 원리가 드러나는 계기였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4:12)”



 



공동체가 단단한 삼겹줄이 되려면 첫째, 주님이 함께 하셔야 하고, 둘째, 연약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셋째, 기도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감히 제안하고 싶다.[vi]



 



빈틈을 채우시는 하나님



 



본문을 공부하는 사이 사이로 언약, 예표, 성막 등에 대한 보충 수업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 때는 중간에 진도를 멈추고 짚어 나갈 부분을 짚고 지나갔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채워주셨다. 한 번은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단숨에 멘토님 한 분을 직접 학교로 보내주셔서 성막에 관한 보충 수업을 해주시기도 했다. 또한 모임 중에서 우리의 이해가 온전치 못하게 남겨진 성경구절들은 그 주(week) 안에 각자 다른 곳에서 때로는 설교 말씀으로 때로는 묵상과 독서로 한 번 더 깨우치시고 채워주셨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빈틈을 완벽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성경공부 진행 중반쯤이었다. 몸도 맘도 힘든 일로 지쳐가던 중 jjKosta의 어느 지역 웹 보드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성경공부 인도자들의 후기를 모아 만든 어느 잡지에서 발췌한 글이라 했다.  



 



아들을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어하던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피아니스트 연주회를 데려 갔어요. 그런데 공연 시작 전 엄마 몰래 그 조그만 아들이 무대 위 피아노에 올라 앉아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twinkle twinkle little star. …’ 사람들은 ‘저 아인 뭐야..’하면서 웅성댔지요. 그 때 그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나오더니 그 아이를 뒤에서 안고 같이 연주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그 노래의 빈 부분을 채워가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아이의 귀에 속삭였대요.“Keep playing. Don’t quit. Keep playing. Don’t quit.”



 



서투르게 연주하고 있는 어린아이 뒤에서 빈 멜로디를 틈틈이 채워주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통해그만두지 말고 계속하라’고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격려를 읽었다고 말하는 자매의 고백에 나도 눈물이 글썽했다. 우리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성경공부도 사실은 그렇게 하나님 품 안에서 그 분의 도우심 가운데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필요한대로 빈틈을 친히 채우시고 격려하시면서 부르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우셨다.



 



모임이 거듭되면서 형제 자매들이 떨리는 기대감으로 전도를 계속했고, 성경 읽기 모임과 일대일 양육 등이 파생적으로 이어졌다. 성경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이 당시 상황에서 우리에게 터득하게 하신 것은 듣고 안 만큼 어디까지 행동으로 옮기느냐의 중요성이었다. 성숙을 위해 실천은 꼭 병행되어야 한다.



 



여름 방학과 함께, 두 학기에 걸쳐 목요일마다 모이던 로마서 공부 모임은 일단락 지어졌다. 받은 은혜를 실천하고 지속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살자고 결단했다. 이후 모으셨던 자들을 통해 하신 일들은 첫 어부가 한 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주안에서 그들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 ‘흩어지기 위해 모인 자들이라는 디아스포라의 비젼을 지속적으로 나누었고 이제 흩어질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계속 된 사도행전 29



 



이어진 사도행전 공부 모임에 대해 증거하려면, 2003년 코스타 집회를 통해 하나님이 각 사람들의 마음 안에 행하신 일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주일 예배를 통해 지속적으로 은혜를 공급 하신 한편, 계기가 될만한 도전을 받게 하심으로 뒤따른 실천을 용이하게 하셨다. 우리의 믿음은 실천해야 굳건하게 다져질 수 있다. ‘세상의 유혹을 소그룹으로 이겨야 한다는 마지막 날 파송 예배의 메시지가 지체들의 마음에 강하게 남았던 모양이다. 받은 은혜와 도전이 원동력이 되어서 지체들이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사도행전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여름 내 다른 주(state)에서 summer program에 참가 중이었던 나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한편 너무나 당연하게 이 모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멀리서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인간인 내 마음이 이렇게 기쁠 때 하나님은 얼마나 즐거우실까 생각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8)”



 



지체들의 깨달음이 너무 귀했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오직 성령이다. 성령이 없으면 복음을 전할 사명도 겁나고 부담스러운 과제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았노라고 한다. 한 여름을 지내면서 또 한번 부쩍 커버린 모습들을 마주 대하던 날,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보았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3:6-7)”



 



이들의 모임은 프리셉트 성경 연구원의 GBS(Group Bible Study)용 교재로 시작했다. 사도행전 공부의 구성원은 로마서를 함께 했던 멤버 중 세 사람과 그 기간 새로이 주님을 영접한 두 사람, 그리고 새로이 함께 하게 된 두어 명의 학생들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기대처럼 로마서 멤버가 완전히 흩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새로운 그룹의 핵심 멤버가 되어 공동의 리더쉽을 가지게 되었다. 서너 명의 핵심 멤버들이 한 주씩 돌아가면서 준비하여 그룹을 인도했다.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허락하신 리더쉽의 연습시간이었다. 가끔씩 참석할 기회를 얻어서 함께 할 때마다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지체들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고 도전과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난감하리만큼 내가 할 일은 너무나 없었지만, 이제 지면을 통해 이들이 써나간 사도행전 29장을 증거할 수 있게 된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큰 감사의 제목이다.



 



이와 동시에 뉴욕으로 파송된 예수전도단(YWAM)의 한 선교사님과 함께 하는 별도의 제자훈련 반이 캠퍼스 안에서 두 학기에 걸쳐 진행되었다.[vii] 선교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훈련 시켜 주신 것은 우리의 전인격으로 하나님을 알기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하나님의 품성은 짧은 글 속에 다 담을 수 없는 거룩과 순결, 그리고 친밀감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학교 안의 수요일 사도행전과 금요일 제자훈련 반은 해가 바뀔 때까지 계속 되었고, 각 사람들의 믿음의 나무에 하나 둘씩 나이테를 둘러 주었다.



 



순종으로 맺어지는 열매, 그 첫 열매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자로서의 부르심에 한번 순종했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인격이 linear relation으로 계속 향상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속 넘어지고 일어났다가 또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자란다. 각자의 부족한 인격들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소리들이 넘어지는 위기상황을 자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소한 이유로 서로를 의심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사단의 전략도 한 쪽에서는 계속 진행된다. 우리가 사명에 대해 진지해지려 할 때,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고 할 때, 사단은 별의 별 종류의 방해물들을 늘어 놓는다.[viii] 다행히 이것은 아주 낮은 술수여서 조금만 정신 차리면 이겨낼 수 있는 시험들이지만, 그 상황에 몰입되어버리면 헤어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ix]믿으므로 선 자들이 할 일은 두려운 마음으로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 11:20)”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2-3)”



 



지난 학기 초부터 리더들이 한 번 더 흩어져서 다섯 개의 조로 재구성되었다. 유학생 중심 지역 교회 담임 목사님의 도움으로 빌립보서 공부가 시작되었다.



 



아무 일에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자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2:3-5)”



 



또 한번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양육과 성장의 기회를 맞고 있다. 각 그룹에는 신입생들이 많이 수용되었다. 하나님을 알아가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좌충우돌 부산한 모습도 가끔 드러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게서 사랑할 이유만 찾자고 결심하자. 그 때에 복음의 문이 열린다.[x]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그룹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 분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분이었지 않은가! 만일 나를 바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기 불가능한 갈등의 상황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바꾸실 때까지 조용히 인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 (pray God to grant you His support that you may quietly bear them) 하자는 아 켐피스의 조언에 귀 기울여보자.[xi] 성경공부 모임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서로의 모난 부분을 조용히 끌어 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배운다.



 



8:28로 마치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우리는 고백한다. 육신의 소욕을 위해 바친 시간은 너무나 헛되었지만 주님을 알기 위해 바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알게 하신 것을 실천하기 위해 바친 시간은 자연스레 열매를 맺는다는 것도 배웠다. 성령의 열매와 구원의 열매! 조금 더 애쓰고 조금 더 헌신해서 아버지께 열매를 드리고 싶지 않은가? 제자 삼기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같이 넘어지는 사람이지만 그분을 의지하는 자를 아버지는 쓰시기 기뻐하신다. 기억하자. 오직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것을! 아직 준비되지 않았노라고 한없이 기다린다면 어느덧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꾸중하실지 모른다.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를 통해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모두가 협력하고 짐을 나누어 지도록 하셨다는 점이다. 지난 4년간 여러 지역 교회들과 선교단체, 목사님들과 선교사님 또 평신도 사역자님들, 캠퍼스 소그룹과 캠퍼스 연합 예배, 복음주의 운동의 여름 수양회, 지역 지도자 훈련 학교 등 각자가 제 몫을 다했다. 재미있는 것은, 소그룹으로 먼저 초청되었다가 주일 성수와 십일조 신앙으로 자라는 지체가 있는가 하면, 주일 예배만 나오다가 소그룹으로 인도 되면서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지체도 있었다. 실제로 선교사님의 도움으로 리더쉽을 양육 받고 지역 교회에서 더 헌신하기도 했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벽마다 성전에서 무릎을 꿇다가 선교 헌신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마음을 열어두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주어진 몫을 감당하겠다는 각오만 하자. 신실하신 아버지께서 친히 때에 따라 필요한 힘과 은혜를 공급하신다. 가장 선한 열매가 우리 안팎에서 풍성히 맺어지도록 다만 그 분 안에 거하자. 함께 거하자. 주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혼자서 무엇을 이루라고 하신 적이 없다. 리더에게는 특별한 어려움이 올 때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세워진 지체들 중에도 오늘 하루를 살기가 버거우리 만큼 힘든 시간 속에서 여전히 헌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이도 있다. 공동체의 기도가 참으로 절실한 때 이리라. 고난이 육체를 뚫고 들어간 깊이만큼 영혼의 깊은 곳에 주님이 들어가실 수 있음을 배웠다. 형제의 고난이 썩어진 밀알이 되어 하나님이 맺게 하실 공동체 안의 선한 열매를 기대하며 함께 기도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지금 당신의 빈 고깃배를 주님께 내어 드리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채워주실 만선의 기쁨이 당신과 당신이 속할 작은 공동체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i]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썼다. 이젠 참으로 내 피붙이 같이 느껴지는 귀여운 동생들,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 길목에 섰을 때마다 옳은 선택을 위해 도와주신 멘토님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묶인 귀한 이들에게 전하고픈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밑 그림 삼아 부족한 글 솜씨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ii] 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340 .



[iii] 행여 내가 포기하더라도 그 분은 그 지체의 영혼을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그 사실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때로는 그 분께만 완전히 맡겨 버려야 할 때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영혼을 위해 내게 맡기신 역할이 장차 올 주인공의 길을 평탄케 하는 조연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변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 뒤에서 기도하는 자리로 가자.



짧은 지면을 빌어 잠시 사족을 붙여본다. 이성친구를 전도하려다가 겪는 심한 갈등상황으로 인해 본인의 신앙생활 마저 힘들어지게 되는 것을 종종 본다. 현상을 타파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책하는 마음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대체로 ‘1)내가 주게 될 상처로 인해 예수님까지도 영원히 미워하게 될까 두려워서, 2)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심정으로 더 큰 죄를 짓지 않으려고 정리하지 않고 쳇바퀴를 도는 경우의 두 가지인 것 같다. 불신자 이성친구를 무조건 사귀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역할 이상의 것을 위해 분투하면서, 위의 두 가지 예와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다면 과감하게 놓길 권한다. 당신이 포기하더라도, 당신이 실수하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도 실수하지도 않으신다.



[iv] Oswald Chambers, My Utmost for His Highest, Dec 1. 



[v] 이것에 대해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을 조금 덧붙이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저술가 중 한 분인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많은 저서를 관통하는 가르침에는 무기력함과 겸손의 리더쉽이 피력되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바로 그런 종의 모습, 어린 양의 모습으로 사랑 때문에 힘을 사용하기를 끊임없이 포기하시는진정한 영적 리더쉽을 가지셨기 때문이며, 우리가 바로 그 모습을 배워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powerlessness”의 리더쉽은 단순한 심약함과는 다르다. 지나고 난 후 되돌아 보니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나의 심약함과 실수가 자발적 포기와도 같은 효과를 내도록 사용하여 주셨음에 감사 드린다.



[vi] 예수님의 이름으로 (헨리 나우웬)를 보면 기도하는 지도자, 연약한 지도자, 신뢰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새 세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크리스쳔 리더쉽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특히나 소그룹 안에서 연약한 지도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vii] 교재는 YWAM (Youth With A Mission)의 제자훈련 성경공부 시리즈로 진행되었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에는 하나님의 품성을 깊이 알아가고, 배경 지식을 적절히 삽입하여 본문 이해를 도우며, 선교 사명과 중보기도의 동기를 부여하도록 짜여진 좋은 교재라 생각된다. 새 신자가 섞인 그룹에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을 듯 하다.



[viii] 릭 워렌, 목적이 이끄는 삶, 373-4 .



[ix] 사단의 전략에 대해 궁금하거나 아직까지 사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속히 읽어보기 권한다.



[x] 김서택, 출생의 비밀, 208 .



[xi] Thomas a Kempis, The Imitation of Christ, chapter 16. Bearing with One Anothers Failings.

[신선묵]지도자의 삶의 목적

한번은 해마가 돈을 벌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천천히 헤엄쳐서 가고 있는데 그가 많이 가지 않아서 장어를 만났다. “여봐 친구야 어디 가냐?”하고 물었다. 해마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돈을 벌려고…” 장어는 말하기를 “너 참 행운아다 나를 만났으니. 여기 지느러미같이 생긴 발이 있는데 이것을 사용하면 훨씬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그것 참 좋은데…”하면서 해마는 돈을 지불하고 지느러미를 사서 발에 끼고 두 배나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한참을 가다가 해면을 만났다. “어이 친구야 어디를 가냐?” 라고 물었다. 해마는 대답하기를 “돈을 벌려고 가는 중이야.” 해면이 말하기를 “너는 참 행운아다.” 내가 싸게 프로펠러 달린 스쿠터를 너에게 팔게. 네가 휠씬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해마는 남은 돈으로 스쿠터를 사고는 이제는 다섯 배나 빠르게 달릴 수가 있었다. 그는 상어를 또 만났다. 상어가 “친구야 어디를 가니?”라고 물었다. 해마는 대답하기를”돈을 벌려고 가고 있어.” “상어가 대답하기를 “너 참 행운아다. 내가 지름길을 알려 줄께” 상어는 자기의 입을 가리키며 “이곳으로 가면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지.”라고 말하자 해마는 “고마워”하면서 상어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삼켜져 버렸다. 이 우화의 교훈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 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 이르게 되고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분명한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지 않을 때에 우리가 하는 일들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해 보면 분명한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논문을 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의 목적을 정하는 일이다. 분명한 목적이 먼저 설정되어야 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질문이 만들어지고 자료도 모아지고 연구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분명한 목적을 설정하지도 않고 논문을 다 써오는 경우가 있다.아무리 좋은 말과 통찰력들이 들어있어서 하나의 목적으로 묶어지지 않은 것은 논문이라고 할 수가 없다. 분명한 목적이 없는 논문은 마치 대들보 없는 집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집을 세울 때에는 먼저 대들보는 든든히 세우고 그 대들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지 대들보가 없거나 부실하면 아무리 아름답게 집을 장식하여도 위험한 건물에 불과한 것이다.


지도자란 분명한 목적과 방향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조직체를 위한 목적을 바로 인식하고 그 목적의 방향으로 집중하여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지도자는 남들을 이끌기 이전에 자신의 삶에서부터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자기의 인생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이 우화에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인생을 살게 되고 그렇게 살고있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인격도 중요하고 또 기술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집중하여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의 관점에서 목적의식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이름 한다. 기독교인의 삶의 목적에는 모든 기독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 있고 우리 각 개인에게 독특하게 부여된 삶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들을 독특하게 지으셨고 독특한 사명을 부여하신 것이다.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삶의 목적을 바로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런 면에서 모범이 되신다. 우리 주님께서도 세상에 거하실 때에 많은 선한 일들을 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셨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이 모든 병자를 다 고치셨는가? 우리 주님에서 가난한 자를 다 먹이셨는가?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셨는가? 아니다. 그는 당시의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다는 의미로는 다 이루지 못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 이루셨다. 즉 세상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이루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고 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다하려고 덤벼드는 것보다는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고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삶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삶의 목적을 다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주신 사명을 다 이루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삶의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 삶의 목적에 있어서 남의 것을 부러워 할 필요도 없고 나의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할 필요도 없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사명 즉 삶의 목적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집에 손님이 오면 자랑하는 세가지 물품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집의 현관에 있는 은으로 만든 풍향계이고 둘째는 집안에 거실에 있는 금으로 만든 온도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책상에 놓여있는 구리로 만든 나침반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그는 구리로 만들었지만 이 나침반을 가장 소중히 다루고 자랑하였다. 그래서 손님들이 왜 이 나침반을 소중히 여기는가 묻고는 하였는데 대답하기를 풍향계는 은으로 만들어졌지만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로 움직이고 온도계는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주면 환경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러나 나침반은 비록 구리로 만들어졌지만 어디에 어떻게 놓던지 한 방향을 향하여 바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을 이끄는데 있어서 나침판과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있다. 어디에 서있던지 주님을 향하고 또 주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위하여 집중하여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삶의 목적을 붙잡고 살아가는 지도자는 아름답다.

[장이규]변증을 위한 소그룹 운영을 계획하라

소그룹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리고 각 그룹의 종류만큼 그 초점도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a. 돌봄(care) – counseling/ mentoring/shepherding/intensive care 그룹 등

b. 친교 (fellowship) – cooking/hospitality/ decorating/ activities 그룹 등
c. 집중적인 영성 훈련– prayer, QT, serving 그룹 등
d. 리더 양육(discipleship) 그룹 등


그러한 다양한 소그룹의 종류 중 특별히 새로운 리더 양육을 위해 빼놓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소그룹 중 하나는, 변증의 능력을 공급해 주는 (equipping) 의도된 변증 소그룹이다.


이 변증 소그룹은 소그룹을 통한 재 생산 그리스도인 양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소그룹 중 하나로, 소그룹을 인도하는 리더는 반드시 이 그룹의 양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그룹이다. 왜냐하면 오늘 날 영향력 있는 크리스챤의 리더쉽의 하나는 복음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1분 응답의 변증(Christian Apologetics)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이 영향력이 약화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기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2월 11-12에 시카고 외곽에 위치해 있는 윌로우 크릭 컴뮤니티 교회에서는 Cosmic Fingerprint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신앙과 과학의 대화를 위한 4주 변증 씨리즈 중 첫 시간으로 ” New Discoveries of Design in the Universe” 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주 강사로 초빙된 문리 학자이자 천문학자인 Hugh Ross 박사는 자신은 본래 전혀 신앙이 없던 자 (religious ground zero)로서 우주의 생성과 그 디자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7살부터 가지고 있었고, 이 관심이 그의 전공으로 이어져, 우주의 생성과 그 디자인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 종교에 기록되고 있는 우주의 생성과 기원의 내용들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시험해 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성서에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이 이 역사의 창조자시고, 오늘도 살아 우리의 우주와 지구, 그리고 우리의 삶의 한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분, 참 하나님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그러한 확신은 그에게 신앙의 첫걸음을 걷게 하였고 그 이후 하루 2시간씩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과 성서, 우주와 인간의 삶, 그리고 성서 안에 계시된 하나님과 인간의 삶에 대해서 연구하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그의 연구의 결과들에 대해서 설명을 덧 붙이고 공개 질의 토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62명의 과학자들과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원근각처에서 약 3200명에 몰려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휴 박사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던졌고, 휴 박사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과학적인 논리를 가지고 성서에 나타난 우주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디자인을 설명해 냈다. 그 이튼 날 이어진 구체적인 웍샾에도 과학자들과 우주 과학에 관심있는 520명의 사람들이 등록을 하여 과학적인 논리 안에서 만난 하나님에 대해 함께 연구하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www.willowcreek.org 를 참조하라.)


놀랍지 않은가? 한 과학자의 지식과 신앙이 이렇게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과 과학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신앙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세미나를 듣고 태도가 변화된 한 중국인 무신론자의 반응이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좀처럼 설득이 되지 않는다고 늘 말해 왔다. 그런데 이 강연 후 이 강연이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고, 참 좋았다고 하면서 어느 정도 이해되어진다는 믿음의 열린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이 강연 이후 한 사람이 예수 믿기로 결정을 해 수요예배에서 한 사람이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실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맞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각각 다른 신앙의 여정을 주셨다. 어떤 사람에게는 먼저 감정이 움직여야 믿음이 생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사람의 성격이 삐뚫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해 놓으신 질서 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둘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창조 하실 때 우리 삶 가운데 감성적인 차원(emotional dimension)과 지적인 (intelectual Dimension)차원을 동시에 주셨다. 그렇기 때문이 우리들의 감성적인 차원이 먼저 채워지면 그 다음은 지적인 차원의 필요를 느끼도록 만드셨고, 반대로 우리들의 지적인 차원이 먼저 채워지면 감성적인 차원의 필요를 목말라 하도록 우리를 질서지워 놓으셨다. 따라서 이 둘의 차원은 서로 떨어져 있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차원인 것이다. 그러기에 먼저 이성적으로 지적으로 이해가 되어져야 믿음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그 중국인 무신론자도 그렇고 이 강연을 들은 후 믿음의 자리에 나온 분도 그 가운데 한 명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그리스도인의 1분 응답 능력은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부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의 신앙 경험을 가지고 있어도, 감성적인 측면의 신앙적 토대는 강하지만 체계적인 이론적 신앙(solid foundation of Christianity)이라든지, 설명을 통한 다른 사람의 설득면에서는 매우 약하다. 이에 대한 가장 좋은 변명의 응답은 ‘뭐, 신앙이라는 것이 말로 해서 아나요? 그냥 삶으로 보여 주어야 되는 것이지요.!’ 하고 이야기 한다. 맞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삶이 병행되지 않은 신앙은 능력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복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혹은 다른 사람들이 제기하는 신앙적 문제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주부는 주부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사업가는 사업 측면에서, 천문학자는 천문학자대로, 문리 학자는 문리학자대로, 신학자는 신학자 대로, 경제학자는 경제학자대로, 의학자는 의학자 대로—각자의 영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삶, 우리의 사업, 우리의 연구 영역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이분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으로 증거할 수 있어야 복음이 영향력 있게 전하여 지는 것이다. 물론 감성적 차원에서의 믿음이 잘못된 신앙은 아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섬기는 데에 있어서, 변증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변증이라 하면 매우 어렵게 생각하지만, 다른 쉬운 이야기로 바꾸어 말하면, 이는 우리의 신앙에 대한 이론적 정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누구신지, 우리가 성경을 믿는다. 그러면 그 성경이 어떤 책인지. 등등 우리가 믿는 바를 요약하는 것이 변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변증은 나의 신앙의 기초를 분명히 그리고 튼튼히 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수없이 많이 제기되는 질문들 가운데 서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꼭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구원을 얻게 되나요? 믿음은 개인의 신념 아닌가요? 꼭 교회 나아가야만 구원을 얻나요? 술과 담배를 하면은 죄를 짓는 것인가요? 이러한 질문들은 신앙 공동체에는 속해 있으나 믿음의 혼돈에 있는 사람들도 역시 제기하는 질문들 중 하나이다. 혹은 믿음의 상처로 신앙 공동체를 떠나 있는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교회가 왜 이렇게 많아야 하는가요? 한 동네에 하나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죄인가요? 왜 그렇게 잘 믿은 사람에게 그런일이 생길 수 있지요? 목회자가 그럴 수 있나요? 등등—


어떤면에서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주어지는 설교, 그리고 성경공부, 상담도 변증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령이 어떤분인지,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혹은 위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해 하나 하나 응답이 주어진다. 이 모든 것들이 변증의 한 분분으로 사실상 우리들의 믿음을 분명하게 가지도록 해 온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들 스스로는 늘 변증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느끼는가? 오랜 세월의 믿음의 연륜을 가지고도 그리스도인들이 변증의 능력에 스스로 부족한 것으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생각해 보자. 주로 어떠한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변증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자신이 없어지는가? 언제 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증의 능력의 부족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첫째,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이다. 둘째, 하나님 존재에 의심을 품거나 신앙생활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이다. 셋째, 학생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논리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교회 학교 교사가 되었을 때 이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접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들은 무엇인가 분명하게 말해주고 싶은데 그 분명한 근거에 대한 설명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 보여야 할지 모를 때 당황하게 됨을 경험한다. 이 당황하는 경험의 이유의 기초를 자세히 들여다 보라. 우리들이 알고 있는 복음의 말씀이 분명하게 체계가 잡혀져 있지 않고, 안개처럼 뿌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응답은 주로 개인적인 신앙적 경험담으로 대치된다. 많은 경우는 신앙에대한 이성적 논쟁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개인의 신비한 신앙적 경험으로 대처하지 못해,그냥 침묵하기가 일수이다. 그리고 실제로 본인 스스로도 이에 답답해한다.


왜 그렇게 우리에게 신앙의 내용 자체가 안개속에 서 있는 것처럼 뿌연가? 왜 이성적인 질문도 신앙적 경험의 응답으로만 그 대답이 주어지는 것인가? 그 분명한 이유 중 하나는 신앙에 대한 체계 (solid foundation of Christianity)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늘 자신의 신앙이 약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복음의 변증에 대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복음을 전하는데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변증의 능력이 부족한 중요한 이유 중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복음을 체계화하려는 의도적인 환경의 부족 (lack of intention)이다. 변증의 능력은 의도적인 차원 (intentional dimension)에서 얻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변증의 능력은 의도성을 가지고 집중 개발하지 않으면 이 능력은 자연스럽게 개발되지 않는 부분에 속하기 때문이다. 에스 칼레이터는 본인이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래 층(lower level)에서 다음 층(high level)으로 올라간다. 이처럼, 믿음의 성숙에 있어서도 믿음의 시간적 길이를 통해서 성숙해 가는 것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믿음의 시간적 길이와는 상관없이, 의도적인 노력 없이는 아래층에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신앙의 성숙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변증의 능력인 것이다. 이는 집중적인 관심과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증의 능력에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변증을 할 수 있도록 의도적인 차원에서의 준비된 환경에 대한 리더의 투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재석] 몽골국제대학(MIU)에서의 강의사역을 마치고

이코스타 2005년 8월호

2005년 4월 한달간 몽골국제대학(MIU)에서의 강의 사역을 마치면서, MIU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강의 사역을 마친 소감을 소개하고자 한다.


* MIU 설립 배경


몽골은 13세기경 징기스칸에 의해 세계 곳곳을 정복할 정도로 강대국이였으나, 그 이후 오랜 청나라의 지배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매우 낙후되어 있다. 특히 14세기경 징기스칸의 손자이자 원나라 시조인 쿠빌라이가 교황청에 100명의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라마 불교를 받아 들임으로써, 라마 불교와 샤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몽골은 위치적으로 중앙아시아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서, 다른 나라로부터 접근이 힘든 러시아 남쪽의 여러 자치 공화국들에 대한 좋은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몽골 국가의 잇점을 고려하여, MIU는 국제화를 지향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춘 몽골 및 주변나라의 지도층 리더들을 육성할 목적으로 2002년 9월 설립되었다. 특히 몽골과 인접 여러 국가들의 유수한 인재들을 유치하여 국제적 수준의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을 영어로 교육하면서 재생산이 가능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함으로써 이를 성취하고자 한다.


* MIU Vision




  • 몽골 및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여
  • 21세기형 세계적 인재로 육성하기위해 영어로 대학 및 대학원 과정을 교육하고
  • 또한 신앙적인 회심과 영적 성장을 도모하여
  • 해당 국가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갖춘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봉사하도록 한다.

* MIU의 학과 구성




  • IM(International Management) 학과
  • IT(Information Technology) 학과
  • BT(Bio-Tech. & food science) 학과
  • TESOL(국제 영어교사 교육) 학과
  • FD(패션 디자인) 학과(2년제)
  • 교양학부

-   한 학년 정원이 총 150명(증원 예정)임

* MIU 특징




  • 글로벌 지도자 양성을 위해 모든 강의는 영어로 강의함
  • 몽골을 비롯하여 러시아(야쿠츠 공화국, 투바 공화국, 부리야트 공화국, 학카스 공화국, 알타이 공화국), 카자흐스탄, 중국, 내몽골 자치국, 한국 등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음
  • 각 학과 우수 입학생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며, 몽골 외지 및 중앙아시아 국가의 학생에게 기숙사 제공
  • 기독교 세계관에 바탕을 둔 전인적 교육을 제공하며, 5차원 교육법을 적용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
  • 우수 학생 그룹을 매년 2월 중에 한국 및 미국에 단기 비젼 트립을 보냄으로써, 학생들에게 비젼 심기와 글로벌 리더쉽 교육기회를 제공
  • 한국인 전임교수들 모두 선교 헌신자로서, 우수한 강의 제공과 더불어 학생들의 복음화 및 제자 양육에도 사역자로 헌신하고 있음

* MIU에서의 강의사역 소감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기독교적 지도자 양성을 돕고자하는 사명감을 갖고 MIU에서 4월 한달간 한학기 분량의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떠나기는 했지만, 막상 도착한 몽골 땅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4월이건만 녹색 잎은 전혀 보이지 않는 매서운 날씨, 수도 울란바토르의 절반 이상인 게르(몽골 전통식 천막 가옥)에서 피워대는 석탄 연기냄새, 매일 3시간씩 영어로 강의와 면담을 해야하는 강행군으로 인해 며칠간은 코피를 흘려야 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들어가면 의외로 해맑은 표정들과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눈초리들로 인해 새로운 힘을 얻고, 최선으로 이들을 잘 가르쳐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1-2주 정도 강의가 진행되면서, 몽골 학생들에게는 최신 학문을 전해 주는 일과 더불어 하나님을 통한 새로운 영적 변화와 기독교적 삶의 기본 정신들(진정한 사랑, 남을 배려함, 성실과 최선, 정직 등)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 학생들은 오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열심을 내는 것이 부족하고, 또한 남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MIU가 다른 몽골대학과 달리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춘 지도자 양성에 비젼을 두고 교육을 통한 개인의 변화와 나라의 발전을 도모하는 이유라 생각이 들었다.


주일날과 수요일 저녁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개척한 몽골 현지인 교회들을 많이 돌아보았다. 특히 수요예배에 참석한 어느 몽골인 현지교회는 몽골 대학생들이 엉성한 건물안에서 100여명 정도나 참석하여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마지막주 수요예배 시간에는 선교사님 부탁으로 내가 특강식 설교를 하였는데, 말씀을 들을때에 대부분이 노트를 꺼내서 열심히 받아적는 모습을 보고 이들의 영적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다. 이러한 몽골 학생들을 재생산이 가능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잘 양육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는 노력들이 필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으로는 전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였지만, 의외로 다양한 통로들, 특히 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이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많은 가능성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특히 몽골 학생들에게는 한국이 꼭 가고 싶은 선망의 나라임으로 인해, 이들의 마음을 얻기에는 그리 어렵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의 크나 큰 가능성에 비해, MIU에서 강의나 학교 행정으로 섬길 수 있는 교직원 헌신자가 적은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연변 과기대가 초창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우리 KOSTA 모임을 통해 많은 헌신자들이 연결되어 지금은 중국땅에서 매우 성공적인 모델의 대학으로 성장하였다. 이제 몽골 땅에 새로운 선교적 차원의 대학이 세워졌는데, 제2의 성공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코스탄들이 이 사역에 동참하는 헌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한 달간의 짧은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120년전 한국땅에 처음 들어와 연세대학교를 세웠던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씨의 기도문이 떠올랐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그루 시원하게 자라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중략) 보이는 것은 고집스러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중략)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나라에 과연 이런 때가 있어나 싶은 상황이였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전세계가 놀라워하는 은총의 땅이 되었다. 이제 몽골땅이 영적 징기스칸들을 많이 배출하는 21세기 새로운 은총의 땅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많은 교직원 헌신자들이 동참하기를 도전하는 바이다.


* 기도 요청 제목




  1. 우수한 학생들을 잘 유치하여 우수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2. 입학생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영적지도자로 잘 양육할 수 있도록
  3. 졸업생들의 취업 및 진학등이 잘 연결되고, 장차 사회 지도자로 성장케
  4. 우수한 교수요원들과 행정직원들이 헌신하여 동참하고, 몽골 현지 직원들의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5. 안정적인 재정적인 후원을 위해
  6. 필요한 건물 공간들이 적절히 마련되어 좋은 교육공간이 제공되게
  7. 현재 헌신하고 있는 교직원 및 후원자들이 영적으로 늘 충만하도록

* MIU 후원 동역자가 되어 주십시오


1. 기도 동역자(기도제목 참조)


  • 몽골/중앙아시아 및 MIU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정기 기도모임에 참석하여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매달 4번째 수요일 저녁 8시 30분, 서울 목동 제자교회)

2.교수/직원 동역자


  • 전임교수(석사학위 이상 선교 헌신자), 방문교수(1개월 1년), 여름 단기강사(2주-4주, 학사이상 가능)로 강의를 해 주실 분
  • 행정 직원으로 학교 운영을 섬기실 분

3. 재정후원 동역자
1) 학교 운영비 지원 (목표: 3천 구좌)


  • 월 일정구좌 후원을 통해 학교 운영 지원(개인 1구좌:월 1만원, 교회: 월 정액)
2) 장학생 지원(목표: 학생의 30% 지원)

  • 귀하의 이름으로 우수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 전액장학생 (월 5만원 또는 년 60만원)
  • 반액장학생 (월 3만원 또는 년 35만원)
3) 석좌교수 지원

  • 귀교회/귀하의 이름으로 석좌교수직을 개설하여 우수교수를 초빙합니다.

4) 건축 지원


  • 제2강의동, 기숙사, 채플강당/체육관 건립을 지원시 귀교회/귀하의 이름으로 건물명을 정합니다.
  • 건축비 일부를 부담시 특정 교실 및 건물 기증명패에 기증자 이름을 부착합니다.

– 여러분의 후원이 MIU 비젼 성취의 밑거름이 됩니다.

KOSTA/USA 2005 참석자 좌담회 – 오규창, 윤은혜, 한경준

이코스타 2005년 8월호

eKOSTA: 이렇게 eKosta 좌담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각자 가신의 소개를 부탁드릴까요? 미국에 언제 오셨고, 또 어떻게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셨는지도 말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오규창: 저는 미국에 온지 1년 지났고요, 현재 Penn State University에서 MBA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KOSTA는 올해가 처음 참석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큰 비전을 주시고 또한 많은 것을 도전해 주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결혼한지 7년 되었고요, 3살 반된 아들이 있습니다.


윤은혜: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는데, Piano Pedagogy를 전공했고 지금은 Temple University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코스타는 이번이 8번째 참석입니다. 그리고 jjKOSTA 16지역 코디로 섬기고 있습니다.


한경준: 지금 LA에 살고 있고, UCLA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온지는 이제 2년 되었고 코스타 참석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코스타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서부터 들어왔지만, 작년에는 결혼을 하게 되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UCLA에서 Korean Bible Studies (KBS)라는 성경공부 모임에서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 많이 모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코스타 자체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우선 이번 Kosta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Kosta의 주제인 “흩어진 나그네, 선택받은 백성”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청년 학생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볼까요?


윤은혜: 이제는 한국에 돌아가는 유학생의 비율이 전보다 줄어드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참 적절한 주제가 아니었나 싶네요. 이전 코스타의 주제들도 물론 좋았었지만, 올해는 특히 ‘우리가 여기에 왜 와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여러 분들도 비슷한 느낌을 말씀해 주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번 주제는 참 독특했던 것 같고요…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사는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뜻에대해 깊히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경준: 이번 주제에는 현재의 상황적인 측면이 많이 포함되었던 같습니다. 최근의 변화, 즉 유학생의 범위도 없어지고, 한국에 돌아가는 비율보다 미국에 정착하는 비율이 늘어난 상황을 적절히 반영했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유학생으로서, 얼마만큼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고 얼마만큼 미국에 맞추어져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즉 미국생활에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고민에 부합된 주제였습니다.


오규창: 저같은 경우는 미국 생활을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번 주제가 더 좋았었습니다. 화요일 아침 패널토의 중에서 이광연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기억이 나는데요, ‘직장인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써 정체성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1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내가 이곳에 왜 와있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왜 인도하셨는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 왔는데, 이번 집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곳에 흩어진 나그네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보내셨구나하는 점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주제였습니다.


eKOSTA: 취지문에 나오듯이 세계화된 선교적 삶으로의 부르심을 고민하고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소명을 고민하다는 주제가 코스타의 프로그램에 충실하게 반영되었다고 보시는지요?


한경준: 주제가 프로그램에 잘 반영되었냐고 묻는다면 전반적으로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주제를 고려하지 않고 이번 집회를 바라보았을 때, 이번 코스타가 일반적인 수련회와 어떤 큰 차이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찬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교과서적인 주제는 많이 다루어졌지만, 미국에 흩어진 나그네로써의 삶이라는 상황적인 주제가 전체집회에서 잘 다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전 주제강의의 50%정도는 주제를 잘 반영했다고 보고요, 저녁 집회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jjKOSTA의 경우 이번 주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게끔 한 것 같습니다.


eKOSTA: 음… 그렇다면 저녁 집회에도 주제가 더 깊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지금처럼 구원, 성숙, 헌신의 주제를 중심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경준: 물론 죄와 구원에 대한 주제가 너무 중요하고 반드시 다루어져야 하지만, 저녁 집회에서도, 특히 마지막 저녁집회의 경우 코스타의 전체 주제를 좀 더 반영하여 다루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규창: 전체적으로는 주제가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강사님들의 숫자가 좀 많아서, 강의 내용을 깊이 다루실 수 없지 않았나 싶네요. 특히 오전특강의 경우 한 분이 좀더 시간이 많으셨다면, 참석자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강의였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강의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한 분의 강사님이 아침강해나 저녁집회를 모두 맡으셔서 하신다면, 좀 더 주제를 깊이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윤은혜: 저는 주제가 전체적인 프로그램에 얼마나 반영되었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코스타 기간에 시간적으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선택식 세미나 에서 10%정도의 강의에 코스타 주제를 반영 했던 것은 적은 비율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체집회 강의를 해 주신 강사님들의 말씀도 이번 주제를 크게 벗어나시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성경말씀으로 이루어진 오전 성경 강해가 큐티와 같은 본문으로 연계되었던 것은 (아침 저녁으로 있었던)조별 모임에서도 주제와 관련된 문제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도록 흐름을 잡아준 큰 장점 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선교사님 자녀들(MK)의 프로그램이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KOSTA: 이번 주제를 코스타 이후에 다시 흩어진 코스탄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해보았으면 하는데요. 자신들의 경우 어떻게 적용하고 계신가요?


오규창: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저같은 경우는 ‘이 곳에 왜 와있는가?’같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더 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왔는데요, ‘내가 왜 직장을 그만두고 왜 이곳에 와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참석자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우리가 어떤 환경에 놓여있더라도 QT와 기도, 말씀생활같은 기본적이 신앙생활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미국에 살면서 주위에 있는 인도와 중국 사람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부담이 들었고요, 이 이야기는 조금 후에 더 나누고 싶네요.


윤은혜: 흩어진 나그네,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묵상 해봤습니다. 우리의 삶이 흩어진 나그네의 삶이라면 우리는 나그네로써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적인 욕심으로부터 짐을 가볍게 하고, 혹 이곳에서 얻지 못하는 것이 있어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된 삶의 모습을 늘 기억하면서,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기본에 충실하며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경준: 저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첫째는 코스타 집회동안 참 많이 반복되어 나온 ‘성실하라’는 단어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또 한가지는 한민족 디아스포라로서, 우리가 미국 땅에 살면서 우리가 한민족으로서 갖고 있는 강점을 살려서 어떻게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내에서의 교수와 학생관계를 생각할 수 있겠는데요, 자기 필요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미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간 관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의 특유한 끈끈한 정을 이용한,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고 베푸는 생활을 통해 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는 예전보다 소그룹 활동에 강조점을 두고 개인적인 단위까지 말씀을 공유하려는 시도를 했는데요, 말씀 묵상이나 조별 모임 활동에 대해서 평가해주시지요. 더구나 집회 시간이 엄격하게 지켜지면서 조별 시간이 예년에 비해 충분했었는데요…


윤은혜: 아까 말씀드린 내용과 겹치는 부분인지만..QT와 성경강해가 연결되어 있어서 더 깊이 있는 말씀 묵상시간을 가질수 있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각자의 묵상을 통해 말씀을 대한 후, 조원들간의 나눔을 통해, 또 성경 강해를 통해 같은 말씀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습니다. 조별 활동 시간은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meal card의 색깔이 나누어져 있어서, 식사 전후의 시간을 이용해서 더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고 그 시간에 강사님들을 모시고 나눌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경준: QT와 저녁 조별 모임이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충분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기혼조에 소속되어 있어서, ‘따로 또 같이’라는 가이드라인대로 조별 모임을 해 보았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두 가지 점이 특히 좋았는데, 첫째는 아이를 맡지 않는 그룹의 경우 – 저희 같은 경우는 항상 형제님들께서 맡아 주셨는데 –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장점으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는데요, 자매님들의 모임에서 나누시던 이야기의 주제가 전체 조별 모임에서는 많이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체 조별 모임에서는 이야기가 주로 형제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자매님들을 그 이야기에 그냥 따라와 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자매님들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보호받지 못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혼조의 운영을 위해 2가지를 더 보완했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편분들이 아이들을 더 돌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코스타 전체적으로 더 강조하면 어떨까 싶고요. 또 한가지는 부부 모두가 조장으로 섬기시는 경우는 상관없지만 한 분만 섬기시는 경우, 다른 그룹을 섬기실 부조장을 미리 정하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첫날 가서 조 모임 진행을 부탁 드리기가 조금 죄송하더라고요. 저희 조 같은 경우는 너무 잘 도와주셨지만요..


오규창: 저희 조같은 경우는 5가정에 아이가 7명이어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경준 형제님의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사실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하는 문제 때문에 조별 시간이 그리 충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특히 아내들 모임에서 깊은 대화가 있어서 정말 좋았었습니다.


이것은 조별 모임과 직접 연관되지는 않지만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KIDS KOSTA와 영아반 등이 진행되는 동안에, 때로는 아이가 부모를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코스타의 경우는 Alumni Gym에서 대형화면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라고 하시기는 했는데, 그 장소가 아이들을 풀어 놓고 있기에는 조금 불편하지 않았나 싶네요. 혹시 가능하다면, 다음 코스타에서는 아이들이 맨 바닥에서 뒹굴면서 함께할 수 있는 장소가 제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영아반같은 경우 부모님들이 자봉으로 더 섬겨 주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특히 아빠들이 더 섬겨주셨으면 좋겠고요.


eKOSTA: 세미나가 다양한 제목으로 추가된 것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짜여진 세미나 커리큘럼에 대해서 평가해주십시요. 그리고 기본적인 신앙에 관한 기본세미나와 tmKOSTA가 동시에 열렸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평가해주시죠.


한경준: 세미나의 경우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열린 강의는 많은데, 딱히 들을 강의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을 때, 한 카테고리 속에 비슷한 강의가 너무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카테고리를 조금 더 늘리고, 그 안에서의 강의를 통합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더 다룰 수 있었던 주제를 생각해 본다면 ‘교회사’, ‘한국 교회의 현실’,‘기독교 교육’ 등을 첨가할 수도 있을지 않았을까 싶네요. ‘세계관’이 없었던 것도 조금 이상했구요.


eKOSTA: 세계관 강의 같은 경우는 강사 섭외 등의 문제로 인해 열리지 못했구요, 지적하신 다른 강의들도 올해는 열리지 못했지만, 다른 해에는 열리는 강의 주제도 있습니다.


한경준: 또 한가지는, 작은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강의가 일방적이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tmKOSTA와 기초세미나가 함께 열렸던 것은 전반적으로 좋았던 것 같고요, tmKOSTA의 경우는 시간이 짧아서 소개만하고 끝난 경우나 혹은 문제 제기만하고 마친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해결책을 생각해 보면, 게시판이나 이메일 등을 통해 자기 소개나 기본적인 문제제기를 미리 나누고 모인다면 tmKOSTA시간에는 문제에 대해 충분한 토의를 할 수 있지않았을까 싶네요. 또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면, tmKOSTA 횟수를 늘여서, 첫번째 시간에는 서로 소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시간을 갖고, 두번째 시간에는 그 문제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KOSTA: 그렇다면 tmKOSTA를 여러 번 진행한다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어느정도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경준: 해답을 찾는다기 보다는, 시간을 넉넉히 가진다면 준비하신 발제자의 생각과 고민을 더 깊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오규창: 세미나 시간이 너무 짧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많은 강의도 좋지만, 그 보다도, 한 강의를 더 깊이 들을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주제 내에 비슷한 강의가 많았던 점을 지적하고 싶고요.


윤은혜: 제가 생각하는KOSTA 세미나의 수준은 다른 (대형)집회들과 비교해 봐서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매 해 좋은 강사님들의 다양하고 좋은 강의가 많이 열리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tmKOSTA와 기초세미나의 시간이 겹쳐서 갈등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열리는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여겨집니다. tmKOSTA가 더 효과적으로 진행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tmKOSTA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오규창: 세미나에 할당된 강의 번호가 100, 200, 300으로 수준을 나누어 놓았는데, 실상은 그에 걸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각 수준에 맞는 강의가 이루어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정진호 교수님의 경우 3시간의 연강을 하셔서 더 깊은 나눔이 있을 수 있지 않았나 싶은데, 이렇게 한 강사님이 넉넉한 시간을 가지시는 건 어떨까 싶네요.


eKOSTA: 찬양, 책소개, 찬양의 밤, 기도의 밤 등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떠셨는지요?


오규창: 처음 코스타를 참석해서 모두 다 좋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은혜에 의한 흐름을 중간에 끊지 않았나하는 점입니다. 목요일 저녁 찬양의 밤의 경우, 전체 집회의 진행에 방해를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조금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또 한가지를 말씀드리자면, 저녁 집회 이후에 조별 모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그 중간에 있던 광고 시간이 조금 재미 위주여서, 그런 영적 흐름을 흩어지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윤은혜: 찬양 시간에 두 분의 리더로 구성된 것이 독특했었습니다. 이번에 찬양 시간을 보면서 찬양 리더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 소개도 좋았고요. 또한 여러 면으로 성숙한 코스타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참석자들 뿐 아니라, 프로그램 진행하시는 분들이나 강사님들의 준비가 참 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신 강사님들의 진지하심이 전체 코스타를 말씀으로 성숙하게 이끌어 주셨고 또한 진행하시는 간사님들께서 집회를 효과적으로 준비하여 주신 것 같습니다. 집회 시간에 문을 닫아서 집회 질서를 잡는다거나, 2부제 식사 시간이 도입 되 효과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코스타의 성숙된 모습으로 여겨지네요. 이 시간을 빌어서 뒤에서 수고하시고 애써주신 여러 간사님들과 준비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경준: 1600명이 모인 대형 집회가 전문적으로 잘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웠던 점은, 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내용이 조장들에게까지 잘 전달되지 못해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던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중보기도실 운영에 대한 것이라던가 조별 간식에 대한 내용 등을 조장에게 조금 더 자세히 전달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규창: 저도 한가지 덧붙인다면, 식당 지하에서 운영된 중보기도실를 포함해서, 중보기도실이 좀 더 기도에 집중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잘 조성되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eKOSTA: 책소개 시간은 어떠셨는지요?


한경준: 책 소개를 하신 양희송 편집장님께서 책을 알고 마음으로 책을 소개해 주신 것 같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책 선택에 있어서도, 주관적이라기 보다는 균형잡힌 책 소개를 해 주셔서 감사했고요.


eKOSTA: 코스타의 은혜를 갖고 열방으로 흩어진 코스탄들이 각지에서 복음을 전달하는 공동체로 세워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코스타에서는 후속 프로그램으로 여러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로서 미국 혹은 다른 곳에 사는 삶을 살아 가는데 코스타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역할이 있을까요? 어떻게 한인 청년 학생들이 인터네셔널 미니스트리를 섬기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오규창: 이번에 코스타가 후속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구요. 코스타 측에서 그런 후속 프로그램에 관한 여러 웹사이트 운영을 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코스타가 특정 조직들의 연합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건가요? 예를 들어 jjKOSTA는 KBS가 도와주고 있구요.


eKOSTA: jjKOSTA는 특별한 경우이구요. missionKOSTA는 한 선교단체와 협조를 해서 하고 있구요. 그리고 또한 상담의 경우도 전문 상담자분들과 연결을 해서 하고 있습니다.


오규창: 아 예 그렇군요. 후속 프로그램들이 지금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조금 더 넓은 지역으로 퍼지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지역에서 혼자 성경공부 모임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요. 전체 코스타 시간에도 광고를 하면 훨씬 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직화가 되지 않은 곳에서 느끼기에는 코스타는 한 번 가서 은혜 받고 좋은 시간 갖는 정도의 수련회로 느끼기 쉬운데요. 그런게 아니라 후속 프로그램이 잘 되어서 후속 프로그램이 필요한 곳에서의 필요들을 채워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이상적으로는 그런 모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오규창: 작년에 저희 교회에서 코스타에 참석을 한 후, 선교에 헌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What’s the next’라는 후속 집회를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정보를 주고 받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미흡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고 같이 기도하고 선교를 가려고 준비하면서 코스타 측에 그곳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는데 코스타 측에서는 자료도 없고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도 개인적으로 하기 힘든 것들은 어떤 기관과 연계되어 계속적인 도움을 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eKOSTA: 오규창 형제님. 아까 말씀하셨던 인터내셔날 미니스트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 주시겠습니까?


오규창: 전반적으로 한국인들이 중국이나 인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더라구요. 우리가 중국이나 인도에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하고 있는데, 정말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구요.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무지하지 않았나도 생각했구요. 엘리트 주의에 빠져서 코스타 내에서도 그런 것들만 너무 부각이 되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 우리 주변에 있는 지체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필요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다루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는데요.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eKOSTA: 저희들 가운데 벽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벽을 허물지 않으면 힘들 것 같기도 하네요. 후속 프로그램과 인터네셔날 미니스트리에 대해서 윤은혜 자매님이 말씀하고 싶으신 것 말씀해주세요.


윤은혜: 인터네셔날 미니스트리 부분에서는 사실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어쩌다보니 저는 미국에 와서 계속 학교에만 있게 되었는데 한국 학생들은 한국 사람들끼리만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한어권 청년들이 한국 사람들의 교제권 안에만 있으려고 하고 타민족과 교류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적극적으로 외국 친구를 사귀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일차적으로 영어가 그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위축되어서 외국친구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고, 또한 여러가지로 미국 생활에서 겪게되는 힘든 부분 때문에도 문화권 다른 친구를 사귀는데 여유가 없다는 현실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내셔날 미니스트리 부분에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인도하시면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자신도 내 나라가 아닌곳에서 겪는 어려움을 매일 대하고 사는 현실가운데 과연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먼저 영어가 부담이 되어 미국인들과 교류가 꺼려지시는 분들이 계시면 (꼭 미니스트리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영어 못하는 내 모습 그대로도 크리스챤 본토 친구들을 사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 좋은 미국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들과 함께 타 민족 미니스트리를 위해 동역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길수 있겠고요. 또 학교에는 영어 잘하는 외국인도 많지만 영어 못하는 외국인도 많아요. 우리와 같은 문화권에 있는 일본인이나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여러면으로 국가간에 보이는 긴장감이 더 많아져서 서로 깊은 얘기를 하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음대 사람들의 경우는 교수와 제자와의 관계가 아주 친밀해요. 교수님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많이 모이는데 어쩌다 같이 식사하면서 대화 주제중에 민족적인 얘기가 나오면 한국,중국,대만,일본 학생들 간에는 긴장감이 흐릅니다. 여러가지 부분에 입장이 달라서 서로간에 벽이 있다는 것을 실감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벽이 있음에도 그 벽을 낮추는 일이 꼭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걸 이번 제 동생의 중국 선교 여행을 통해서 단면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동생이 중국 선교를 가서 북경에 있는 칭화 대학에서 3주간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왔는데 중국을 가보니 중국 사람들이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많고 안 좋은 모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3주 동안 이 사역을 위해 간 팀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보여준 섬김을 통해 민족간의 긴장감이 많이 해소되었고 마지막주에는 복음을 전하였고 학생들 중에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낮아짐/섬김은 민족간의 갈등도, 언어의 벽도 넘게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전도의 도구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교자원자의 후속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후속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오규창 형제님이 말씀하셨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통해 작은 단위로라도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프로그램의 많고 적음과 관계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내 자신이 다른 지체들에게 필요한 양육과 섬김을 돕는 작은 단위의 후속 프로그램 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KOSTA: 두 분이 말씀하신 것이 절대로 충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늘 보면 우리 개인의 마음이 잘 안따라 주는게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다음에 한경준 조장님이요.


한경준: 시카고에서 집으로 오는데 공항에서6시간을 기다리면서, 성경공부 모임 중 함께 코스타에 온 분들과 코스타 이야기를 했습니다. 코스타 기간도 은혜로운 시간이었지만, 사실 서로가 받은 은혜와 도전을 나누었던 이 6시간이 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후속 프로그램에 대해 코스타 본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지금 하고 계신 것 이상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저의 예에서처럼,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스스로 찾고,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코스타 기간 중에 같은 지역에서 온 사람끼리 만나거나, 그 지역의 성경공부 모임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코스타: 사실 그렇게 밖에 안되기 때문에 코스타의 후속 프로그램이 그런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인 거 같습니다.


eKOSTA: 마지막 나눔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았던 은혜가 있다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윤은혜: 아까 한경준 형제님이 말씀하신 성실성에 공감이 많이 가고요, 그 부분이 저도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가장 많이 생각한 주제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 늘 무거운 짐으로 느껴져 기도하는 기도제목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탁월함’에 관한 기도였습니다. 탁월함이 없는 평범한 내 모습이 늘 안타까웠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주님께서 이번 코스타를 통해 Panel Discussion 중에 말씀 하신 한 강사님의 말씀으로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탁월함은 주님께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하게 해나가며 충성되게 살아가면 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이 코스타 내내 제 마음속에 은혜가 되었습니다.


오규창: jjKOSTA때 첫날 강의하신 황지성 간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코스타 기간이 감정적 카타르시스에 의해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삶속에서 의지적인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말을 들으면서 많은 도전이 되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시간을 주셨는데 이 시간에 감정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것이 가장 은혜로웠던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감사한 것은 지금 이렇게 좌담회하면서 좋은 말도 많이 듣고 부족한 사람을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경준: 강사님들의 말씀으로부터도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함께 모였던 1600명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미국 땅에서 여러 모습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위해 조용히 섬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서 많은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eKOSTA: 나 혼자만 바보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코스타에 오면 아 정말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좌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