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2017 D4] 성경강해 3

[Kosta 2017 D4] 성경강해 3

베드로전서 2:11-12
11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 리하십시오.
12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은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 강해 마지막 시간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우리 한국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지나왔습니다. 그러한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회피하고 싶은데 교회 다니며 종교 생활을 통해 현실을 잠시 잊고자 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한국인들의 믿음이 현실도피적인 면이 많습니다. 어떻게 믿을까, 어떻게 성경을 공부할까, 어떻게 교회 행사를 세련되게 치를까의 고민은 많았지만 어떻게 일상을 살 것인가의 고민이 부족했습니다.

행위, 행실, 실천… 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말하는대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믿는대로 행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는지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세상은 말로 변하지 아니하고, 묵묵한 행함으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나그네 백성으로서 무엇을 행동할까요? 세가지만 나누고 싶습니다.

1. 배타심을 넘어 환대의 사람이 되자.
2. 짐을 가볍게가자
3. 경계를 가로짓는 자로살자

 

1. 배타심을 넘어 환대의 사람으로 사는 나그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본 환상이 나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잡아먹어라.”

베드로에게 이방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거룩함을 오염시킬 수 있는 배척의 대상이었는데 이제 그들을 구원의 대상에 포함시키라 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용납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배타심을 넘어 환대의 사람이 되기 위해 먼저 언어의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나그네로 이 땅을 사는데 우리는 언어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 합시다. 그리고 영어공부 열심히 합시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를 공부하고 정치/경제/문화/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양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 그들을 환대하기 위함입니다.

주변인이 되는 경험은 낮은 자들과 연대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런 버팀목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되고, 설 자리가 없이 소외된 자들에게 설자리가 되어줍시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연약한 이들을 위해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줍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건 아니건, 힘든 일이 있을 때 외로울 때 쉼이 되줄 것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눔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재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감사를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나누는 것입니다.

 

2. 가볍게 사는 나그네

짐을 줄여야 합니다. 우리가 물건을 소유하지만 그 물건이 우리를 소유하기도 합니다. 많이 가지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적게 가지고도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나공방을 하는 목적 중에 하나는 나무라는 자연친화적인 소재를 가지고 사람의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튼튼하고, 아름 답고, 저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무 뿐만 아니라 버려지는 많은 소재들을 이용해서 업사이클링도 합니다. 지금 제가 착용하고 있는 벨트도 자전거 타이어를 이용해 만든 것입니다.

나그네는 남겨놓고 가는 것이 많으면 안됩니다. 떠난 뒷자리가 깔끔해야 합니다.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흔적을 적게 남기고 갑 시다. 조금 덜 먹고, 덜 쓰고, 대신 많이 나누며 사는 그런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강림하고 처음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성도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필요한대로 나누었다고합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대해 어떤 마 음을 가져야 할까요? 나누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아킬레스 건은 무상으로 나누는데 있습니다. 여러분의 재능, 지식, 물질, 하나님께서 모두 청지기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나의 이익을 위해 움켜쥐어야 할 것으로 여기지 마시고, 세상과 나 누시기 바랍니다. 섬김의 도구로 여러분의 재능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저는 9학년 7학년 두 딸아이들을 가을부터 홈스쿨링을 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고, 값비싼 학군에 묶이지 않아도 되겠지요.

3. 화해하게 하는 직분의 나그네

첫날,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듯, 우리의 정체성이 제사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 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 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본질적으로 이쪽 저쪽 망가진 관계를 회복시키며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나그네요, 거류민으로 산다는 것, 우리가 이 땅에 제사장의 정체성을 지니고 산다는 것은 화해케 하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이 세상이 규정해 놓은 경계를 가로지르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이 십자가는 고린도후서 5:17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화목의 십자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하는 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고, 남한과 북한일 수도 있고요, 백인과 흑인일 수도 있 고, 부모와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망가진 관계를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로 화해시키셨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의지해 망가진 관 계들을 화해시키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저는 몇해 전 부터 북한 신의주에서 한국 부산까지 판문점을 통과해서 자전거를 타는 꿈을 꾸어왔습니다. 이번 9월에 저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 북한에 갑니다. 2017 코스타 오전 성경 강해 (셋째날) 페이지 8 / 10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는 아니고,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자전거를 탈 예정입니다. 판문점에서 길이 막히면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 판문점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탈 예정입니다.

누군가가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묻는다면 고린도후서 5:17을 말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화해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쟁과 다툼이 있는 이 세상에서 화해시키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며 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그네, 거류민이 된다는 것은 그저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구경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길, 뒤돌아보면 평화와 생명이 꽃 피워져야 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실천해 나갑시다. 세상을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제사장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모였지만 이제 내일이면 각자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제사장입니다. 돌아가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며 갈등 가운데 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제사장 나그네로 살아갑시다.

사람이 간다는 것은 더욱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이제 이 자리에 잠시 모였던 제사장들이 삶의 현장으로 파송되어 흩어질 때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가 때로는 믿음 때문에 불이익 이 있고 고난과 갈등도 있지만, 평화와 생명, 사랑이 풍성하게 그리고 늘 행복한 길은 아니지만 흔들리면서, 그렇게 묵묵히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나라에 흘러 들어오게 하는 통로로 사십시다. 마치 모래시계의 잘록한 허리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틈 사이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흘러들어오도록 통로가 되는 그런 존재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제가 있는 자리가 그리 거창한 자리가 아니라고 낙심하지 맙시다. 주변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주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여러분의 여정 가운데 삼위 하나님의 동행이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Kosta 2017 D4] 책의 용도

[Kosta 2017 D4] 책의 용도

책은 ‘읽기 위한 것’이라는 부담감을 버리고, 책은 ‘사는 것’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좋은 책은 내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맞는가 하는 것이다. 고전은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있는데, 읽지는 않고, 그냥 꽂아두는 책인데… 새로운 고전의 기준은 ‘곧 절판될 책’이다. …

목요일 오전 책소개를 시작하며 참가자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강성필 교수님의 농담의 일부입니다. 강교수님은 ‘고전’ 몇권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책의 용도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셨습니다.

1.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존 스토트)
섬타고 있는 형제/자매에게 그 책을 옆에 끼고 다가가서는 “미정 자매, 읽어 봤어요?” “아니요.” “이책은 절판이야.”라고 말하면 미정자매는 “이 형제가 나를 위로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난생 처음 절판된 책을 가지고 와서 다가오는 사람에 대한 신선함. “이 책 한번 볼래요? 나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유정자매가 생각나.” 느끼하지만, 확 다가와요. “빌려줄까?” 그럼 미정 자매가 빌려 달라고 합니다. 근데 책 갈피에 한장이 꽃여 있습니다. 그 쪽지 안에 “다양한 예수님 더 다양한 유정 자매”라는 노트가 적혀있습니다. 자매들은 이 형제에 대해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오빠, 오늘부터 Day 1″. 이 책 한권을 사면, 10번 이상을 만나야 알수 있는 형제, 자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유진 피터슨 “메세지”
성경 같지않은 성경같은.. 절판위기에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유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이 책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한데요, 다섯권의 책을 집 안 여러군데 펴 놓으세요. 여기저기 펴놓는데, 예언서는 꼭 화장실에 아주 무심한 듯이 툭 던지세요. 정돈된 느낌을 주면 안 됩니다. 그리고는 교회 형제, 자매들을 초대합니다. 화장실에 갔는데 예언서가 있어요. 미정 언니는 화장실에서 볼일 보면서 예언서를 읽는다. 조원들은 미정 자매를 향한 리스팩트가 막 생깁니다. “다 읽으셨어요?” 라고 물어보녀, “이 책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야. 필요할 때 잠짠잠깐 보는 것야”라고 대답해줍니다. 그러면 ‘리스펙’이 마구 생깁니다. 청년부 형제 자매에게 리스펙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

3. 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짧고, 창세기에서 바울 서신까지 구원에 대해서 쓴 힘이 넘치는 글입니다. 하지만 내용보다 용도가 더 중요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책을 사신 분에게 개인적으로 나누어드리겠습니다.

4. 내년에 또 고전 책소개 부탁을 받으면…
고민하면서 서점을 둘러보는데ㅎ 서점에서 보물의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내년되기 전에 절판될 확률이 매우 높은 책들입니다. 주로 이번에 코스타에 오신 강사님들의 책입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 (송병주). 이 책은 “오후 6시에 온 사람”이 나오면 바로 절판입니다. 누가 iPhone 6가 나왔는데 5를 사겠어요.
‘거북이는 느려도 행복하다’. 누군가가 ‘토끼는 빨라서 행복하다’ 가 나오면 곧 절판. 이런 책들을 조원들이 집에서 보는 순간 – 리스펙스~.

5. 김동문 선교사님의 책. 절판될 이유가 없는데 벌써 절판.

6. ‘로마서 강해’ (김도현). 정말 좋은 책인데.. 중요하지 않다. 화장실 앞에 툭 던저 놓으면 리스펙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책을 사서 집에 늘여 놓으면, 책들이 한번 여러분에게 말을 걸거에요. “한번 읽어볼래?”


깊이 있는 ‘고전’ 보다는 피상적인 인터넷의 채팅을 점점 더 선호하는 세대에게 좋은 책을 알리고 선택하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세대에게 조금이나마 ‘고전’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려는 강교수님의 노력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Kosta 2017 봉사자] 허건 전도사

[Kosta 2017 봉사자] 허건 전도사

My name is Kyeon Heo and I’m currently serving as the EM Pastor at New England Grace Presbyterian Church in Connecticut. I went to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for my undergraduate studies and spent 6 years in the corporate industry as a Multi-media Designer and an English Professor in Korea before attending seminary at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By His grace, I came to know the saving knowledge of Jesus Christ during my youth group days and is interested in long-term mission work overseas focusing on ministering to the youth and college students.
I first heard about KOSTA during the summer of 2008 where my senior pastor asked me to help with the “youth program” of KOSTA. Ever since then, myself along with two faithful brothers in Christ (Michael Chung and Tim Rhee) have been committed to serve each summer. This is our 10th year serving at KOSTA together and regardless of how many times we felt as though we won’t be able to serve year in and year out, God always helped us to remember the blessings that we experienced throughout the years, which keeps us as well as the volunteers coming back again and again.
I will never forget the first year we served together. We were just out of college and didn’t really know what we were doing. KOSTA placed the youth group in a small classroom upstairs at the SRC in Wheaton College. We barely had enough room to fit everyone into that small room and it was definitely a learning experience. However, throughout the 5 days of KOSTA, it was so clear and visible how God was moving and working in the hearts of not only the students but the staff as well as well during our prayer and worship times. It was through this very first KOSTA experience that taught me that despite my inabilities, despite my inadequacies, God is so much greater and He wanted use KOSTA  as an avenue to minister to each and every one of us.
I know KOSTA is predominantly a Korean-Speaking conference which I believe is great! However, ever since KOSTA began 30+ years ago, now I believe there are more and more predominantly “English-Speaking” people to which perhaps the conference can accommodate for.
I want to ask you to pray for the followings:
1. Please pray for the students. We have 30 students registered to be with us for the next five days and we simply desire for these students to hear God’s word and respond. May God open up and prepare their hearts!
2. Please pray for the speakers (Rev. Michael Chung, Pastor Tim Rhee, Pastor Jinu Yu, Pastor Daniel Song, Pastor Kyeon Heo). As we deliver God’s word, that He will empower us and speak through us the truth of God’s living word!
3. Please pray for the counselors and volunteers. That they may not get too caught up on “serving” the youth but also to get blessed as well.
[Kosta 2017 D3] 저녁 설교

[Kosta 2017 D3] 저녁 설교

룻과 나오미 입니다. 룻을 떠나보내려는 나오미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어머니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롯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세분의 액터들이 (나레이터, 룻, 나오미) 성경본문을 실감나게 연출했습니다. 정말 시어머니와 착한 며느리 같았습니다. 성경 봉독을 하고서 박수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고 ‘나오미’께서 말씀하시더군요. ^^

룻의 이야기는 우리가 경험하고 삶의 문제를 대처하는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나그네의 이야기입니다. 본향을 떠나 타지에서 사는 나그네의 삶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가족이 고생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웃고, 울며 죽음을 경험하는 “보통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Paul Miller의 “A Loving Life”라는 책에 이렇게 소개가 됐었습니다.

엘리멜렉 Elimelech = 나의 하나님은 왕 God is My King
나오미 Naomi = 유쾌함 Pleasant, beautiful
말론 Mahlom = 약골이 weak, sickly
기룐 Chilion = 시들이 frail, pine away
베들레헴 Bethlehem = 떡이 있는 집 House of Bread
모압 Moab = 너의 아빠가 누구니? Who is your Daddy?

우리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그네로 살아가는 여정에 대해서 두 여인의 나그네 삶을 통해 보고 싶습니다.

사사의 시대는 영적으로 암울한 시기였고 여러 모양의 부정 부패와 죄로 가득한 때 였습니다.

나오미와 그 가족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베들레헴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압은 베들레헴보다 더 힘든 곳이 되어버립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고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려움이 닥치고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난과 고생을 피합니다.

나오미와 룻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동에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인부를 물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자기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 했습니다. 마라는 쓰다라는 뜻입니다.

1장은 흉년의 시작으로 시작하고 마지막은 추수 시작으로 끝납니다. 여러분 너무 성급하게 자신의 인생을 보고 “마라”라고 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참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자심에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기다림의 묘미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기약이 없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확실한 것, 그리고 갖고 싶어하는 것을 위해 기다리기 때문이다. … 어떻게 하나님을 기다리는가? 인내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인내가 수동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현재의 순간들을 최선을 다해 살며 거기서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의 싸인을 발견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 인내의 기다림은 항상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의 깊게 보며, 거기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의 첫 번째 빛 줄기를 보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

여기서 저는 룻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마치 나오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와 같이 가면 큰일 난다. 너의 신이 있는 곳으로 가라. 내 하나님이 네 인생도 망가트리실 거다.” 가짜 신은 진짜 하나님보다 훨씬 대하기가 쉽고 편합니다. 가짜 신은 우리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룻은 그 리얼 하나님을 좇겠다고 합니다.

룻은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6-19절). 그는 특별한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나오미에게 헌신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겁니다. 룻은 나오미를 위해서 자기의생명을 버리겠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룻은 나오미의 울부짖는 기도의 응답이 되는 겁니다.

룻은 정말 어메이징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랑과 헌신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사랑이 아니라 그가 찾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의 회심은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아주 중요한 주제를 찾게됩니다. “헤세드”라는 단어입니다. 헤세드 사랑은 one way love입니다. 어떤 반응이 온다 할 지라도 사랑과 헌신을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의 공허함을 젊은 이방인 며느리를 통해서 체위 주시려는 계획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룻이 탈출구가 없는 사랑으로 나오미의 풍성함이 되고 다 쓰러진 가정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합니다.

룻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첫 5절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의 망가짐과 타락의 모형을 보게 됩니다. 나오미는 죽음과 헤어짐을 경험하고, 힘없이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상황에 다다랐습니다.

룻이 나오미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내 생명을 지키고 나 살겠다고 떠나면 나오미는 죽을 것이다. 내가 희생하면 나오미는 살 수 있다. 그의 가난을 내가 짊어 메 야지. 그의 주변인 생활을 내가 살아 야지. 내가 나그네로 살아야지. 내가 그의 가난을 짊어짐으로 그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지.”

룻은 자기의 아비의 집을 떠났습니다. 룻은 자기의 본향을 떠났습니다. 룻은 낮은 곳으로 갔습니다. 룻은 주변인이 되었습니다그는 고난의 종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배척당했습니다. 룻을 통하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분명 주변인으로 사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나그네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 오셔서 우리와 함께 지내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므로 죄의 값을 치루고 끝까지 의리를 (헤세드) 지키겠다는 예수님의 헌신입니다.

룻이 가리키는 그분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룻처럼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진정한 집을 떠나 (빌 2:6-7),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 나시고, 머리 둘 곳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다 (마 8:20), 마침내 추방과 거절의 표지인 성 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히 13:11-12).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인류가 당해야 하는 추방, 곧 소외된 상태를 경험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가 쫓겨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궁극적 출애굽이며 추방으로부터의 궁극적 탈출입니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의 진정한 본향이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맛보신 살아있는 증인이 되십니다. 그분은 “만물”을 화목하게 하실 것이며 (골 1:16-20) 다시금 세상을 하나님의 동산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계 21:1-8).

오늘의 주제는 “나그네 하나님 백성”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 중요하지만 그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의 핵심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핵심은 예수님이 주변인으로 오셨으니 나도 주변인이 되어야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것도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The essence of being a Christian is that I’m in Christ.
My life is in Christ.
You are IN Christ.

예수님의 삶과 고통과 죽음과 영광스런 부활에 여러분이 속해 있습니까?
The heart of the gospel is that everything that is actually true of Christ is legally and really true of you if you’re a Christian.

그리스도안에 있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내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면, 믿음으로 예수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지면,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Kosta 2017 Day 3] 코스탄의 ‘삶의 현장’ 2

[Kosta 2017 Day 3] 코스탄의 ‘삶의 현장’ 2

when everybody say you should ……..
넌 왜 나와 다르게 생겼어?
지금 너의 나이에는 결혼을 해야 하지 않아?
넌 여자인데 어떻게 하겠어 ?
아이를 낳고 그냥 쉬는게 좋지 않겠어?
I asked How I serve GOD?

오늘 우리는 김지선 목사님을 통해서 세상의 나그네 이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로써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수 있을지를 고민한 증인된 삶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녀의 캐나다 유년 시절에 겪어야 했던 인종 차별의 문제와 학교에서의 차별 그리고 주말에 교회에서 느껴야 했던 동양인 여성으로써의 차별의 벽, 그 모든것으로 인해 생긴 외로움과 괴로움 가운데에도 어떻게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수 있었을까요?

첫번째는 하나님의 사람과의 만남 이었습니다. 힘겨운 캐나다 시절에도 토론토 유년부의 목사님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 하시고 자신의 삶도 드려야 한다는 결단 가운데에 거하실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자기 자신의 identity 발견한 것입니다. 세상이 말한 나이와 인종과 성별의 선입견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게 평가 받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써의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찾고 인정한것이 그 힘의 원동력 이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의 어려움 속에서 박사를 마친후에 미국에서 안수를 받기까지의 여러 힘든 여정 속에서 그리고 여전히 교회 안에서도 존재 하는 세상의 선입견과 반대 의견 속에서도 하나님과 시선을 맞추고 하나님이 기뻐 하실 일들을 항해서 그 걸음실을 매일 매일 디디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 증인의 삶이 우리에게도 영향력이 임할것을 압니다. [기사제공: 박세희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