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영] 난 신입생이다!!!

이코스타 2006년 10월호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쩌다가 시애틀로 오게 되셨어요?” 그 질문에 확실한 대답도 못하고, 은근슬쩍 넘어간 기억이 있다. 바로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하며 외로움과 공허함에 힘들어하던 나였기에, 쉽사리 그 질문에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학부 때부터 항상 미국유학의 막연한 꿈을 꿔오곤 했었다. 4남매 중 큰딸인 내가 공부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신 부모님께서는 미국유학을 쉽게 허락해 주셨고, 나는 2005년 1월에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 동안의 시험준비 끝에 시애틀에 있는 University of Washington으로부터 입학승인을 받았고, 그 기쁨과 설렘, 큰 기대를 갖고 난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쿼터가 시작되기 한달 전부터 연구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어색했다. 미국인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도, 미국인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색했다. 가벼운 영어회화는 가능했지만, 그들과 농담을 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깊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내 영어에도, 내 소심한 마음가짐에도 문제가 있었다. 같은 연구실에 나보다 1년 먼저 입학한 선배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연구실에서 한국말을 쓰지 말라는 교수님의 경고 이메일을 받았다. 연구실 나간 지 하루 만에 그런 이메일을 받아서, 난 몹시 당황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본 미국인 여학생이 교수님께 울면서 얘기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하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영어를 써야 했겠지만, 어떻게 한국사람 둘이서 서로에게 영어로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참 야속했다. 그 사건 이후로 오히려 그 선배와 나와의 관계가 더 어색해졌다. 둘이 얘기하다가도 다른 동료가 연구실에 들어오면, 하던 얘기를 서로 멈추는가 하면, 같이 점심을 먹는 것도, 외출을 하는 것도, 너무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한국인이 없는 연구실이 더 맘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유학생활……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의 하루가 시작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교수님보다 일찍 나와서 연구에 몰입하고 있는 아시아계 학생들, 하나 둘씩 나타나는 미국인 학생들, 물론 외국학생들이나, 내국학생들이나 서로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이상이다. 커피타임을 한 시간 이상씩 가지며 온갖 얘깃거리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실험실은 두 그룹으로 나눠진다. 학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그 대화에 끼어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고 내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할 따름이다.


언제까지나 영어 탓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난, 영어개인교습을 받기로 했다. 시간당 $20이란 거금을 들이면서 미국인들과 어울리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커피숍에서 만나 한 시간 동안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게 다지만,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International student’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며 실험실 동료들과 맘껏 대화할 수 있는, 그들과 맘을 터놓고 어울릴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꿈꾼다. 영어만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먼저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과 친구가 되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쿼터가 시작한지 열흘이 지났다. 건물의 이름들이 낯설어 아직도 캠퍼스 지도를 가지고 다니며, 외국인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영어를 할 때마다 겁부터 먹고, 얼굴이 빨개지는 난.. 신입생이다!!!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면…… 이때를 또 그리워하겠지.


지금은 너무 힘들고, 하루에도 백만 번씩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이 그립고, 당장이라도 관두고 싶지만, 항상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보려 한다. 지금 포기하면, 내가 어디 가서, 또 무슨 일을 잘 할 수가 있겠는가…… 이겨내고 싶다. 견뎌내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기도한다. 지치지 말게 해달라고, 현재를 즐기게 해달라고 말이다.

[정대석] 새내기들에게

이코스타 2006년 10월호

매년 코스타에 참석하다보면 참석인원에 대해 분류하게 되는데 이제는 유학생이 없는 주가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나와 있다. 미국에 머무르는 기간; 평균 어학연수를 위해 최소 육개월에서, 석사과정을 위해 이, 삼년을, 혹은 박사과정을 위해 오, 륙년을, 머무르게 되는 그 시간들은 익숙하지 않은 타문화권에서 언어장벽의 핸티캡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험을 통해서든 자신과 주위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교회를 가게 되고 동시에 무한히 허용된 자유라는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속에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나 또한 지난 팔년간 한인 유학생 교회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해 봤고 또 청년부 안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청년들과 삶을 나누어 왔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들이 들었던 청년들의 여러가지 생각들과 자세들이 있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번째 나에게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던 생각은 미국에 와서 처음 교회를 다니던지 아니면 예전부터 교회를 다녔던지 상관없이 유학생들이 흔히 가지는 ‘난 그냥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니까 대충 예배나 드리고 사람들이나 사귀다가 돌아가야겠다’라는 것이다. 잘못된 나그네의 개념이 주인의식의 결여와 주어진 삶에 충실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산물이다. 그 정체성의 시작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가운데 살게 하신다는 두가지 사실의 인식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자 하나님의 종으로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올바른 나그네의 개념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안주하고 머무르려는 모습을 거부하는 것이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시간과 공간속에서 책임있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가운데 이러한 문제에 정답을 보여주는 인물은 요셉이다. 이집트에 팔려가 군대장관 보디발의 가정총무로, 그리고 감옥에 갇힌 감옥수로 자유가 없이 타인을 섬기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지만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과 공간속에서 원망과 반항의 모습을 보인다던지 대충대충 주어진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 삶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종의 모습과 함께 맡겨진 삶에 충실하게,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자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두번째로 아쉬웠던 점은 교회안과 밖에서 이중적 삶의 모습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한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서는 공부로서 사회적, 개인적인 인정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하지만 다른 문화와 관습속에 평범하다 못해, 평균이하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유학생으로서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고 하나님과 타인들에게 자신의 어려움과 아픔을 나누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중심의 깊은 곳까지 아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과 아픔을 위로해주시고 도와주시길 원한다는 사실들을 가려놓는 마귀들의 방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만남을 위해서는 그분 앞에 진실되고 투명한 모습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의 은밀한 것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하심을 바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주님께서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으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얻게 된다. 성도들과의 관계속에서도 불완전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자신의 삶을 성도들에게 깊이 나누지 못하는 피상적인 교제만이 이루어 진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어려움과 아픔이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속으로 나아가게 된다.


유학생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계획을 학문을 통해 세상속에 실천해 가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 나그네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것과 그 정체성위에 우리가 가진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또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투명성을 유지함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어려움과 아픔을 회복하고 세상속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06 cKosta 집회를 마치고

이코스타 2006년 9월호

만 서른이 넘어 미국에 유학오곤 만 2년이 되던 여름, 그러니까 약 11년전 즈음 시카고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석한 뒤, 깨달은 바가 많아 그후로도 세번을 더 다녀오면서, 나도 언젠가는 평신도 지도자로서 코스타에서 청년들을에게 내게 임한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하는 기도를 하늘에 올렸었다. 그리고는 10여년을 남들 알아주지 않는 자칭 코스탄으로, 한인 유학생 교회에서 대학부, 청년부 교사로 섬기면서, 청년들에게 코스타를 소개하고 참석하도록 종용하면서 지내다가, 작년 늦여름 미국 중서부 gpKosta 개회 예배 말씀을 전하면서 그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꼭 10년전 드렸던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이렇게 코스타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서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고. 그리고 또 다시 1년이 지나, 06 cKosta에 조장 멘토로, 그리고 세미나 강사로 참여하게된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감격으로 다가왔다.


세미나 준비를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대체로 두가지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곤 비교적 힘든 기도의 시간을 가졌었다. 하나는 대학생 나이의 어린 청년들과 생활한지 3년이 지나면서 그들에게 적합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조금은 보수적 관점을 벗어난 개혁적 관점에서의 ‘직업 영성’에 대해 강의하려니 (제목: 기독 청년의 직업 준비), 혹 강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근심이었다. 이런 고민들과 함께, 조장들을 위한 3주간의 큐티 나눔은 시작되었고, 멘토로서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관심이라고 판단되어, 그들의 큐티 나눔에 한줄 기도문을 덧글로 남기곤 하였다. 코스타 주제에 대한 말씀을 적용하고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멘토로서 그들의 내면은 물론 외면을 알아가는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뽀족한 방업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바쁜 초여름 회사일을 정리하고, 부랴부랴 세미나 강의 내용을 마무리하고, 드리어 인디아나 폴리스로 향하던 날. 난 뭔가를 놓고 있다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도 부족이라는, 언제나 있어온, 정답외에도 한두가지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인디아나 폴리스 대학 캠퍼스로 들어섰다.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시작된 조장수련회에서는,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접해온 4지역 조장들의 참신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즐거움과 50여명의 젊은 리더들이 기도로 준비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기쁘고 셀레는 마음이었다. 여기 저기서 집회를 성실하게 준비하는 간사들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즐거움과 함께. 멘토의 정확한 역할에 대해 스스로 준비하고 싶었던 여러 부분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지만, 조장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자 보여준 충성된 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귀한 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같이 움직여야할 가족이 없는 대학생과 취업 초년생인 cKostan의 구성원 성격상, 조별 모임은 전체 집회 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조장의 역할은 시카고 코스타에 비해 더욱 중요한 비중을 갖는다. 코스타 일정이 시작되고 분주해진 조장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멀리서 보면서 그들의 수고함에도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성장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확인할 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감추기도 힘들었다. 때로는 여러 다양한 문제로 가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조장들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려 나서는 것보다는. 이를 영적 성장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한걸음 물러선 뒷자리에서 서 있었는데, 이러한 나의 태도가 조금은 그들에게 아쉬움을 사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정한 멘토는 성령님외에 그 누구도 될 수 없음을 멘토나 멘티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었다.


한인 유학생 교회를 떠나 미국교회 생활을 해온 지난 몇년동안 청년이란 단어에 대한 그 두근거림이 다소 줄어든 듯 했다. 지금 믿음의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한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지체들이 대부분 서른 아래 위의 대학원생들이어서 그런지, 그리고 처음 코스타에 강사로서 참여하게 되어서인지, 설레임보다는 어찌 감당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었나보다.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조장수련회를 마치고, 개회예배로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게다가 월요일 밤 처음으로 가지게 된 강사모임 시간. 어찌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미국 전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 땅에서 헌신하는 30여명의 목사님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 내가 앉아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겸연쩍은 마음에 가장 구석진 곳을 찾아 앉았는데, 그곳 지역 교회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간식을 받아들고는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을 쉬 놓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겸손으로 포장한 나의 교만은, 솔직히 말하자면, 이 30여명의 강사진들 개개인의 신앙의 기저가 무엇인지, 코스타를 향한 그들의 시각이 어떠한지, 또 각자가 담당한 설교나 세미나 등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금은 궁금증 이상의 의구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경계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너졌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는 그들과 직접 대화하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은밀히 표현되는 그들만의 지혜와 겸손과 청년을 향한 사랑이, 나 스스로 먼저 쌓아두었던 돌담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뭐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이런 저런 마음으로 화요일 첫번째 세미나를 인도하고, 그날 저녁때까지 조장 멘토로서 그리고 강사로서, 그리고 상담을 통해 만날 청년들을 생각하면서 뭐랄까 그저 분주한 마음으로만 다녔다.


화요일 저녁 집회 시간.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 소리치며 춤추는 어린 청년들을 보며, 나도 그 한사람이 되어 찬양하다 울컥 가슴에 뜨거움이 내려앉았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다 두고 떠나온 서른 명의 젊은이들 대신, 이제는 여기 이 450의 청년을 네 가슴에 품으라”그 순간 거짓말처럼, 몇년전 경험해야했던 아팠던 상처와 하나님 함께 하신 회복의 과정들이 영화처럼 지나가고, 북받쳐오는 감동을 참지 못해 통곡하며 울었다. 처음엔, 잊었던 30명 청년의 얼굴이 떠올라 그리움과 보고픔에 울다가, 회복의 과정에 동행하셨던 하나님이 고마와 엉엉 울었다. 그리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 들려주심에 어찌할 바를 몰라 울었다. ‘하나님, 이 작은 자의 가슴에 어찌 이 많은 영혼을 품으라 하시나요?’ 밤 10시경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쉬지않고 흐르는 눈물 훔치면서 되묻는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내내 은혜의 미소만 지으셨다.


그 밤부터 집회 기간 동안 내내, 조금이라도 기뻐하는 청년, 근심하는 청년, 슬픈 기색의 청년, 도움 청하는 청년, 말씀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청년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빨갛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일 조장들이 제출한 평가서를 읽으면서, 조장과 조원들 이름 하나 하나에 손을 올리고 기도하곤 했는데, 언제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영혼들과 함께 하는 특권,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내게 있음을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랑하는 영혼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왔고 어쩌면 주님의 아픔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까이서 마음 문 여는 대화도 나누지 못했지만, 청년 한사람 한사람을 이해하며 기도하고자 했던 마음만은 성령님을 통하여 그들에게 충분히 다가갔을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그렇게 하나께서는 무언가 빠트리고 참석하게된 준비되지 않은 나를 만지시며 다시금 준비시켜 주셨다.


코스타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욕심때문에, 내가 원했던 속도로 강의했다면 아마도 4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70분의 분량으로 줄이는 것이 첫시간에는 어렵다 싶어, 강의 녹음을 다음 날로 미루었는데, 다음 날 강의시간에는 마침 녹음기계에 이상이 있다며 그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날에도 녹음을 하지 못하게 되어, 전체 집회와 세미나를 통틀어 나의 강의만 녹음이 되지 않은 해프닝이 일어났다.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처음과 두번째 강의에서는 강의실이 모두 채워져 나름대로 힘을 얻어 강의했지만, 마지막 날 두번의 강의에서는 절반 정도만 채워졌다. 게다가 그 가운데 절반은 피곤한 일정탓인지 잠을 청하고 있어 그리 흥은 나지 않았지만, 한두명의 청년이 부릅뜬 눈으로 경청하여 주어 그들덕분에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강의 내용의 한부분이라도 그들의 미래에 적용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한 강사분은 이렇게 말씀을 나누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준비과정도 그랬지만, 여기 와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영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저의 깊은 내면은 참안식을 누리고 있답니다.” 한 분께서 나누어주신 말씀이었지만, 사실은 30여명 모든 강사들이 느끼고 있던 심정을 그분이 대표가 되어 말로 표현해 주신 것이라고 여겨졌다.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청년들을 만나고 설교하고, 강의하고, 상담하면서, 새벽 1시가 되어야 공식적인 일정이 마무리되던 날들속에서, 그들 모두 참평안을 누리고 있었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표현할 밖에. 바쁜 일정속에서 ‘청년 사랑’으로 붙들린 바된 빚장이가 되어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을 갚기 위해, 그 먼 곳까지 달려와 주었던 강사님들. 종된 마음으로 섬기러 왔음을 그들의 언행과 눈빛에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혹 부족한 나의 모습을 비기기도 하면서, 강사분들과의 만남이 축복으로 다가왔다.


한번은 여러가지 문제로 상담하러 온 학생으로 부터 이런 말을 전해들었다. “강사님께서 십자가 복음을 설명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러니 저도 따라 눈물로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팽창과 긍정과 부유함과 초자연으로 때묻은 현대 교회사안에서, 복음을 말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지도자들이 청년들 곁에 있는 한, 참소망은 하늘을 향해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Kosta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20여명의 강사분들은 서로 전체 이메일을 통해 감사와 감격과 은혜를 함께 나누는 기회를 가졌는데, 모두들 예기치 못했던 하나님과의 만남과 충만히 경험한 은혜에 감복하고 있었고, 나는 또 그들의 모습에 내려앉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엿볼 수 있었다. 청년들과 함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축복 누림에 감사 기도하는 나에게, 그리도 많은 믿음의 선배와 후배와 기도의 동역자들을 알게 하시니, 난 참으로 복있는 사람이다.


코스타가 중반을 거쳐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청년들에게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처음 시작할 때 가졌었던 두려움이나 기도 응답의 불확신, 진로에 대한 고민 등이 하나씩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전체적인 분위기에서도 그러했지만, 상담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학생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중반이후에 상담을 하게 된 학생들의 대부분은 이미 기도의 응답을 얻었으며, 그 기쁨을 나누고자 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마치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현상이라 여겨졌다. 무엇보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처럼, 하나님과의 화목함을 꿈꾸고 간구하면서, 이 땅에서 화목하지 못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 그 잠겨져 있던 화목의 자물쇠를 열게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때 상담받으러왔던 학생들의 미소가 그립다.


학생시절 코스타에 다니면서 간사들의 수고를 짐작한 적이 많으나, 강사가 되어 그들과 가까이서 그들의 움직임을 더 자세하게 보게 되니, 그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식사는 물론 잠을 설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그들을 보며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가끔은 학생들로부터 조금은 불친절하지 않느냐는 불평도 듣지만, 내가 보기에, 나라면 화부터 내었을 주변 상황임을 알고 나면, 그들이 감당하고 섬기고 있는 그 자리는 분명 큰 자리였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도 큰 행복이었는데, 무엇보다 그들의 섬김을 보며 참섬김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코스타 사진을 스크랩하다 코스타후 간사들의 회식 사진을 발견했는데, 그 자리에 나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마도 그들의 섬김을 배우고 싶은 부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 아침, 조장들과 식사를 하면서, 그들이 이때에 읽었으면 하는 책을 한권씩 구입하여 이별의 선물로 건넸다. 또 한해가 가면서 더욱 자라갈 그들이, 그 성장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과의 체험이 간접적으로나마 책을 통해 경험하면서, 내년에는 더욱 성숙한 리더가 되기를 소망했다. cKosta에서 청년들을 만나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가슴속에 한가지 믿음의 꿈이 있다. 그들의 지금 모습이 조금은 연약해 보이고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로 그리 오랜 세월 지나지 않아 그들 모두 나의 멘토가 될 것이라는 믿음. 그들 모두 나의 멘토가 되어 있을 그날을 꿈꾸어 본다. 그날에는 그들은 더 큰 꿈을 꿀 것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 만들기에도 충성을 다하는 청지기적 화목자로 살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청년 예수의 모습으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코스타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 한 형제의 수고로 온라인 만남의 장소를 만들어, 약 180여명의 cKostan들이 회원이 되어, 서로의 믿음 생활을 나누는 연락처로 삼고 있다. 코스타 기간동안에 가졌던 은혜와 감동을 간증하고, 코스타 이후에 변화되고 체험하는 삶의 모습들도 나누며, 혹은 중보기도를 나누면서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참으로 기쁜 일이다. 지금은 조금 분위가가 가라앉긴 했지만, 코스타 follow-up에서 가져온 규티 나눔도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더욱 흐뭇하다. 이번 cKosta를 통해 나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아직은 온전히 헤아릴 순 없지만, 청년 그들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알고 이해하며,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함으로 그들을 품으라시는 음성에 더욱 귀 기울이고 살고 있다. 이토록 미련하고 약한, 천한 자를 들어 쓰시고자 하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 오늘도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의 단에 드린다.

안상현 목사 인터뷰 – cKOSTA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

이코스타 2006년 9월호

1. 안녕하세요. 안상현 목사님. eKOSTA 독자들에게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안상현 간사라고 합니다. 현재 엘에이에 살고 있고 캠퍼스 선교단체인 IVF의 남가주 지방회와 UCLA를 섬기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코스타에서는 cKOSTA를 처음 시작할때부터 섬기고 있고 지난 11월부터 코스타/USA의 서부 순회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2. cKOSTA가 벌써 4년이 되었네요. eKOSTA 독자들에게 cKOSTA가 생기게 된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마도 가장 처음 학부생들을 위한 코스타에 대한 필요가 제기된 것이 2000년 시카고 코스타로 기억됩니다. 당시에 약 1600명 가량의 최대인원이 참가하면서 숙박이라던가 여러가지로 힘든(?) 코스타로 기억되는데 당시에 수양회가 끝나고 참가자 통계를 내보니 그중 약 400명이 약간 넘는 인원이 학부생으로 파악되면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학부생을 위한 코스타의 사역이 수면위로 급부상(?)한 계기가 아니었나 기억됩니다. 그 후 약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에 2002년 3월경에 구체적으로 cKOSTA를 위한 첫 준비모임을 엘에이에서 가지게 되었고 그 후 2003년에 처음으로 엘에이 근교의 채프만 대학에서 제 1회 cKOSTA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3. cKOSTA가 4년을 지내오면서, 2년은 LA에서 그리고 2년은 Indianapolis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변화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처음 엘에이 근교에서 2년 동안 cKOSTA를 가졌던 것을 뒤돌아 보면 당시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현재의 cKOSTA를 위한 귀한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처음 cKOSTA를 섬기시던 분들이 서부지역에 많았던 것과 또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중.동부로 치중되어 있었던 기존의 코스타 수양회와의 균형, 그리고 엘에이를 중심으로 한 한인 대학생들의 숫자를 감안하여 서부에서 첫 2년의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한가지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것은 처음에 시카고 수양회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학부생들이 Big-Ten 지역과 동부지역에서 온 학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cKOSTA 수양회의 장소로 엘에이를 선택한 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어서 참가에 주저하게 만들었던 요인이 아니었나 평가해 봅니다. 동시에 기존의 남가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에 수많은 대학과 한인 교회, 한인 커뮤니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부지역의 참가자들이 저조했던 것은 기존에 개최되고 있는 대학생들을 포함한 한어권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개교회 중심의 집회나 수양회들로 인하여 차별성 부각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두번의 수양회를 거치면서 위에서 말씀드린 부분들이 부각되었으며 특별히 지리적인 위치로서 참가자들이 cKOSTA 참석을 적극 고려할 수 있는 최종 지역으로 인디애나폴리스가 선정되었습니다.


4. 2006년 cKOSTA는 감사하게도 많은 성장이 있었던 집회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2006 cKOSTA의 특징이랄까, 변화랄까 하는 점들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무엇보다도 먼저 학부생 중심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서 미주 한인 젊은이와 대학생들을 섬기는 수양회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코스타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코스타가 더 이상 유학생들만을 섬기는 집회가 아니라 미주 한인/청년을 섬기는 수양회로서 그 성격을 달리하면서 가장 먼저 두드러지게 참가자들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부분이 cKOSTA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재 cKOSTA의 참가자들을 분포를 보면 유학생과 이민자가 각각 반반씩을 사이좋게(?) 양분하고 있는 것만을 보더라도 미주 코스타 사역의 방향성이 자리잡히고 있는 집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가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주에 있는 학부생과 젊은이들을 위한 수양회이고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을 위한 영적인 가려움을 긁어줄 수 있는(?) 수양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일단 강사 선정에 있어서도 한국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아니라 이곳 미국의 대학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자 노력함으로 강사와 참가자들간의 갭을 줄이고자 노력했던 것이 참가자들에게 우리들을 위한 수양회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소그룹과 상담을 통한 크지만 작은 수양회를 지향함으로서 혹여나 큰 대형집회에서 놓칠 수 있는 개인적인 나눔과 그 나눔을 통한 치유와 성장에 치중했던 점이 자리잡히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진행이라던가 등록등 세밀한 부분에 미숙했던 점들은 아직 개선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고 이 자리를 빌어 그런 미숙함을 인해 불편을 겪었던 참가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과 또 계속 cKOSTA를 위해 기도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5. KOSTA하면, 한국말을 하는 청년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요, cKOSTA에는 어쩔 수 없이 영어가 더 편한 학생들도 있을 법 하거든요. 언어의 문제들은 별 장애가 되고 있는지 않은지요?


실제로 많은 수는 아니지만 영어가 더 편한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라고 해서 더 불편해 하지는 않습니다. 참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선 이 수양회가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참가해서 ‘언어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라고 다짐(?)하고 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참가자들과 강사님들이 이런 참가자들을 위한 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단 참가자들이 여기서 현재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또 대학을 졸업했기에 한인 2세를 포함한 다문화권 사람들과의 교통에 그리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어권에 있는 참가자가 와도 소그룹 모임등에서 잘 배려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영어권 참가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점도 있구요, 동시에 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강사님들이 1.5세들 혹은 이 곳 미국에서 공부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비록 전체 예배등에서 한국말로 진행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영어권 참가자들의 어려움을 개인적인 상담등을 통하여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성경강해를 섬기셨던 장성욱 목사님(Steve Chang)만 하더라도 9살에 미국에 오신 분이라 한국말이 서투르시다보니 쉬운 한국말로 설교하시고 또 단순히 언어의 문제를 넘어서서 강사가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가졌다고 하는 점에서 영어권 참가자들이 쉽게 동화되어 상담 신청을 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6. 21년을 지나온 KOSTA의 중요한 목적이라면, ‘복음, 민족,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cKOSTA가 시작하기 전에는 학부생 참석자의 숫자를 제한하기도 했었고요. 이제 학부생이라는 제한을 넘어 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는데요. 그런 과정 중에서, 아직은 학문의 전문분야로 들어오지 않은 학부생들에게 ‘복음, 민족, 학문’이라는 KOSTA의 중요 정신들이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요?


먼저 ‘민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cKOSTA에 참석하는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민족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복합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예전에 코스타가 태동한 후 초창기에 가졌던 내 나라, 내 조국, 내 민족, 내가 돌아가서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할 땅으로서의 민족의 개념과 비교하자면 현재 cKOSTA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 개념은 그보다는 좀더 지리적,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꼭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내 나라로 돌아가지 않아도(실제로 참가자들의 반 이상이 이민을 나온 사람들이구요..) 한민족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충분히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듯 합니다. ‘복음’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개인의 구원이라든가 천국, 혹은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복음에 관하여는 분명한 인식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의 복음에 관한 이해는 좀 약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복음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에 관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강조가 적은 듯 해서 이 부분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가치인 ‘학문’과도 연결이 되는데요, 사실 시카고 코스타에서 강조하는 학문은 말씀하신대로 아직 전문분야로 들어서지 못한 참가자들이 대부분이라 실제로 관심을 갖는 부분 역시도 진로상담이라든가, 혹은 전공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 분별하기’로 치우치는 것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미나나 상담을 통하여 현재 참가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들에 관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역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를 넘어서서 더 학문의 분야로 나가려는 사람이나 혹은 졸업후에 곧바로 직장을 갖고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골 3:23)처럼 하나님 나라의 시각에서 인생을 준비하고 풀어나가는 준비를 돕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7. 그렇다면, 현재 cKOSTA에서 중심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은 어떤 점들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점들이 실제로 cKOSTA에서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점들입니다. 기존의 시카고 코스타에서 핵심가치로 지니고 있는 것들을 지키되 그 안에서 강조점이 조금 다른 식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의 것들에 덧붙여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꼭 cKOSTA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사역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개인적인 회복과 치유에 관한 필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혹은 20대 초반에 이민이나 유학을 온 사람들 많아서인지 이민 가정에서 보여지는 정서적, 영적 방치가 개인의 성품등에 영향을 미쳐 이를 말씀으로 치유해야 할 필요가 많구요, 동시에 유학생들 역시 새로운 환경(이는 이민자도 마찬가지)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여러 상처나 갈등들, 아픔들에 관한 사역의 필요는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8. 그런 가치를 공유하고, 미국 내 청년들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강사님들을 찾고 함께 섬기는 것이 쉽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어떤 분들이 함께 일하시고 또 어떻게 새로운 동역자를 찾고 계신지요?


많은 동역자들께서 이 젊은이들을 향한 마음을 품고 기도해 주시고 섬겨주십니다. 초창기부터 엘에이 지구촌 교회의 이현수 목사님, 뉴저지의 이진석 목사님, 조경호 목사님, 백은실 집사님, 김종필 권사님, 이일형 권사님 등이 섬겨주고 계시고 감사하게도 계속적인 네트워킹을 통하여 젊은 세대를 향하여 마음을 품고 계신 귀하신 분들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9. 지금까지 cKOSTA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또 어떻게 인도해 주실지 많이 기대가 되는데요. 목사님께서는 개인적으로 기대하시는 cKOSTA의 10년 후의 모습을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계속적으로 섬겨주시는 동역자들의 기도와 섬김이 이어진다면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한인 대학생,청년을 위하여 1회성이 아닌, 구체적인 도움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cKOSTA 사역이 되리라 기대하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10년후를 예상한다는 것 자체가 교만한 것 같구요, 처음의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사역에 집중한다면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서 하나님이 쓰시는 그 순간까지 잘 쓰임받는 사역이 되리라는 점에는 확신합니다.

2006 KOSTA/USA 참석자 좌담회 – 김석영, 변정민, 서민경

이코스타 2006년 8월호


1. 자기 소개
eKOSTA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각자 자신의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미국에 언제 오셨고, 또 어떻게 KOSTA에 참석하게 되셨는지도 말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석영 저는 University of Arizona에 작년 8월에 왔고요,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KOSTA는 동생이 적극 추천해서 올 초 아리조나 gpKOSTA에 참석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요, 그 곳에서 한 형제님의 권유로 이번 KOSTA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청년부 소그룹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요.


서민경 저는 2001년에 미국에 와서 Music Therapy를 공부했고요, 이번에 Ilinois로 학교를 옮겨서 special education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오기 전에 한 자매님을 만났는데, 그 분의 추천으로 KOSTA에 2004년부터 3년째 참석하고 있고요. 교회에서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섬기고 있고, 동시에 유아부 교사와 중보기도팀을 섬기고 있습니다.


변정민 저는 1999년부터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formation Science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KOSTA참석은 이번이 처음이고요, 예전에 JAMA를 참석해 본 경험은 있습니다. 이번에 Florida gpKOSTA 준비위원을 맡게 되어서, KOSTA집회를 참석하게 되었고요. 교회에서는 아내와 함께 권사님 한 분이 진행하시는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 중보기도 지원팀과 성가대를 섬기고 있습니다.


2. 전체 주제
eKOSTA 우선 이번 Kosta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Kosta의 주제인 “Entrusted Reconciler”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청년 학생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까요?


서민경 서울을 떠나서 미국에 온 후에,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화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점 이었습니다. 이번 KOSTA를 통해 옛사람과의 제 자신과의 화해라는 점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옛사람의 모습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힘들었던 관계도 회복되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화해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너무 귀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조원들도, 옛 자아와 화해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라는 고백을 들었었습니다.


변정민 이번 KOSTA의 ‘화해자, 화평자’라는 주제가 예년에 비해 사실 다소 무거워진 내용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조모임을 통해서 주제와 관련한 깊은 이야기가 나누어질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교회 내에서의 갈등들이 나누어 질 수 있었고, 그런 가운데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일한 문제를, 어떤 가정은 극복한 경험이 있고, 또 다른 가정은 그 과정 중에 있는 경우가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화해자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미국에서 와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또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데, 세상과의 관계에서 왜곡된 모습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이나 명예에 대한 관계를 잘 정립해야 하겠고, 또 회복되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집회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기본적인 복음에 대한 확인’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김석영 저 역시 서민경 자매님과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이번 KOSTA를 통해 ‘자신과의 화해’라는 측면을 깊이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 같은 경우는 미국에 처음 올 때부터 무슬렘 학생들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우리가 다른 민족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 복음을 통한 화해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조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거나, 학교에서 지도교수와의 갈등으로 힘들어 하던 사람들이 그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하려는 구체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주제가 다소 무겁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집회가 진행되면서, 이 주제가 우리의 실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KOSTA 사실 KOSTA 집회 기간 동안에는 ‘화해자’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자신과의 화해’라는 부분은 많이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요, 두 자매님께서 동시에 언급을 해 주신 것은 좀 특이하네요.


김석영 목요일 아침에 QT 나눔을 하면서, 화해해야 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조원은 교수님과의 화해를 이야기하셨었지요. 반면 저의 경우는, ‘나 자신과의 화해’라는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척’하는 조금은 위선적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이유가 무엇일 지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 이유가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었구나 하는 부분을 깨달았고, 마지막 QT에 그런 부분을 내려 놓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서민경 다른 사람과 화해를 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예전의 변화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볼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 경우에 다른 사람을 잘 용서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다시 말해서,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특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용서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화해자의 삶을 살아 낼 수 있겠지요.


eKOSTA 우리의 계획과 기대를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몸소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군요. 이번에 다룰 질문으로 넘어가지요. 취지문에서 언급되었듯이 ‘한민족 디아스포라 청년들로서 화목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여러 막힌 담들을 허물고, 화평의 관계를 회복하여 가정과 교회와 사회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주제가 전체 집회를 통해 잘 전달되었다고 보시는지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요?


변정민 두 자매님께서 ‘자신에 대한 화해’라는 부분을 말씀하셨는데요, KOSTA 집회동안 찬양시간을 통해 기뻐 뛰면서 찬양하고 있는 참석자들을 보면서, 혹시 참석자들이 눌려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KOSTA 집회 동안의 특징이 상담 신청 횟수가 많이 늘었다고 들었는데요, 그것이 우리가 많은 문제를 안고 집회에 참석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고요, 그런 문제들이 화해자라는 주제를 통해 많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집회를 본다면, QT와 성경강해를 통해, 복음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화해자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석영 첫째날 김형익 목사님의 특강을 통해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는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 그 말을 들으면서, 살아내기에 참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QT와 성경강해를 들어가면서, 지금은 완벽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복음을 살아내는 삶’에 조금씩 근접해 가면서, 화평케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서민경 집회를 통해, 내가 복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었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복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원근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복음의 어떤 부분은 참 가깝게 느껴지고, 또 어떤 부분은 멀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많이 해결된 것 같다는 것이지요. 복음을 총체적으로 마음 깊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김석영 QT에 나온 질문들이 너무 어려웠지 않았나 싶어요. 평소 성경공부에 익숙하신 분들은 말씀을 잘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좀 버거워한 것도 같고요. 그래서 익숙하신 분들만 나누는 상황이 생긴 것도 같고요.


변정민 작년과는 달리, 아침 강해를 한 분이 진행해 주셨고, 더구나 그 강의를 QT를 통해 묵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습니다. 저희 조가 아이들이 있는 상황이어서, 큐티나눔을 깊이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좀 특수할 수는 있었겠지만요.


eKOSTA 이번 주제를 KOSTA 이후에 Entrusted Reconciler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해보았으면 하는데요. 새롭게 깨닫게 된 점들은 공동체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어떻게 적용하고 계신가요?


김석영 사실 처음 이 주제를 접했을 때는 ‘복음을 살아내는 그리스인’이라는 어렵고, 무언가 큰 일을 해야할 것같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회를 마칠 무렵에는 우선 내가 지금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부터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먼저 실천에 옮긴 내용은 조원들을 챙기는 일이었습니다. 싸이도 하지 않았었는데, 조원들과 만나기 위해 싸이도 시작했고요. 솔직히 제가 조장으로 섬기겠다고 하면서, 가장 자신이 없었던 부분이 바로 집회 이후에 조원들을 섬기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거죠.


서민경 솔직히 저도,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하는 점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용서한 자, 화해한 자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 조원들과 올해 조원들까지 열심히 연락하고 나누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실, 조원들과 기도제목을 나누고 나서도, 열심히 끝까지 기도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기도제목을 받고는 꾸준히 기도하려고 애쓰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다른 조원들도 기도제목을 계속 나누고 있습니다.


변정민 저의 경우는 화해자의 삶을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용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집회 기간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모임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집회 대신에 중보 기도실과 통곡의 방 등에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조원들과 함께 철야기도회까지 하게 되었고요. 특별히, 통곡의 방을 섬기는 가운데 한가지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많은 자매님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매여서 영적 공급을 많이 받지 못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통곡의 방에서 잠시 아이를 돌보는 일이지만, 이것이 다른 자매님들께서 영적회복의 기회를 드리는 화해자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또 한가지는 제가 사는 지역에 있는 한 형제가 KOSTA 집회 3일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있었는데, 돌아 와서는 그 형제가 기도원에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5시간을 운전하여 기도원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그 형제의 아내 되는 자매가 또 영접을 하셨어요. 결국 그 부부가 이번 주에 침례를 받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저는 작은 일들을 하는 가운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화해자로서의 삶을 살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


3. 조별활동
eKOSTA 이번 KOSTA는 아침 성경강해와 연계된 말씀 묵상을 중심으로 소그룹 활동에 강조점을 두고 개인적인 단위까지 말씀을 공유하려는 시도를 했는데요, 말씀 묵상이나 조별 모임 활동에 대해서 평가해주시지요.


서민경 첫째날을 제외하고는 중보기도팀에서 섬겼기 때문에, 강의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싶다는 욕심을 있었지만, 그 마음을 내려 놓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요. 조장이 조원들을 잘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부조장으로 섬겨주셨던 형제님께서 너무 잘 해 주셨고요, 저녁 조모임에서 조원들이 각 강의에서 배운점을 나누어 주셨고요. 사실 큐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몇 조원들이 ‘큐티가 너무 어려워요. 저는 평소에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라는 고백을 먼저 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경공부에 경험이 많은 조원들이 도움을 주면서, ‘아 이렇게 하는 거라면, 나도 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소 어려웠던 큐티였지만, 그 덕분에 서로의 약점을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귀한 계기가 되었지요.


변정민 집회 이후에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삶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조원은 교회와의 갈등이 예전보다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며 잘 이겨나갈 희망이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집회 기간 동안, 저희 조는 조원들이 먼저 기도실에 가자고 제안하는 엑티브하게 활동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기혼 조임에도 불구하고, 숙소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저녁 조별 모임을 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애들을 재우고 빌딩을 옮겨서 조모임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김석영 저희 조에도 다른 건물에 숙소가 배정된 분이 2명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친해 지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조원 중에 자매님들이 좀 새침하셔서,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에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오픈하셔서, 집회 이후에도 잘 교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제일 자신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채우시는지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집회 기간에 조를 섬기는 일에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반면에 집회 이후의 섬김에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서민경 이번에 방배정이 늦게 되었던 분들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섬기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4. 세미나와 tmKOSTA
eKOSTA 이번에 짜여진 세미나 커리큘럼에 대해서 평가해 주십시요. 그리고 작년에 이어 기본적인 신앙에 관한 Open세미나와 tmKOSTA가 동시에 열렸는데 이점에 대해서도 평가해주시겠습니까? tmKOSTA의 커리귤럼과 진행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변정민 저는 tmKOSTA에 참석하지 않고, 기초 세미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tmKOSTA에 참석하셨던 한 형제님께서, 평소에는 같은 전공하시는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어딘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tmKOSTA를 통해서, 자신의 전공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해결해 나가고 있는 동역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tmKOSTA가 집회 기간으로 그치지 않고, 내년 KOSTA 집회까지 같이 고민하고 준비하기로 했다고 하셔서 많은 기대가 되고요.


김석영 저도 tmKOSTA에는 직접 참석은 안 해서 그 부분은 넘어가고요, 오픈 세미나는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조원 중에 한 분은 평양과기대 관련된 세미나 들어가셨는데 많이 도전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미국에 있는 무슬림 학생들을 보면서 선교에 대해서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미나를 통해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팽동국 교수님의 세미나, 윤행숙 선교사님의 무슬림 자매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기회를 갖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서민경 KOSTA를 여러 번 참석하신 분은 tmKOSTA에 가지 않으셨고, 다른 분은 전공과 신앙을 연결할 수 있구나 하는 도전을 받았고 고민하는 선배들을 보니까 자신도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고 했고요, 다른 분은 주제가 지엽적이고 자신의 논문과 연관된 것이 아니었나, 토론 시간이 너무 적었고 등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미나에 대해서는 너무 좋았고 들은 세미나를 씨디를 구입해서 다른 분들께 주겠다고 한 분들도 있었구요.


5. 이외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
eKOSTA 집회 기간동안 찬양시간, 책소개, 기도의 밤, 중보기도실, EXPO, Kids KOSTA등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떠셨는지요? 김석영 찬양 시간은 개인적으로 좋았고 조원들도 손을 들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분도 계셨는데, 그 점에 대해 결국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요. 반면, 기도의 밤은 좀 짧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하게 옆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는 마무리 했었는데, 사실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요. 우리 조는 Kids KOSTA는 서로 격려해서 자원 봉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은혜를 많이 받았고요, Kids KOSTA를 마치면서, 초등학교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서로 사귀고 격려하고 또 만나자고 약속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아이들이 훈련받고 준비되서 세상을 향해 나가는구나, 또한 Kids KOSTA를 통해 동역자를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참 좋았습니다.


서민경 찬양 시간이 짧았었는데, 올해는 시간도 길었고 곡 선정도 말씀과 잘 연결되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춤을 출 수도 있는 거고 뛸 수도 있는 건데요, 찬양을 통해서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은혜로웠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중보 기도실은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장소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조가 운영을 잘 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엑스포에서 말씀 공부에 대한 자료도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엑스포 부스에서 각 분야의 선배들과 말씀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요. 통곡의 방에서는, 애들 안아주고 또 울면 품어주고 하는 다소 단순한 과정을 통해서, 형제 자매를 돌보는 것도 그런 거구나 이렇게 반추하는 분들도 계셨고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좀 짧았던 것 같아요. 찬양으로 마무리 되었는데 기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 약간 아쉬움이 남네요.


변정민 박성호 목사님과 대화도 했는데, 이번에는 차분하면서 깊이 들어가는 찬양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책소개를 통해서, 그 동안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게 하던 교회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선택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에 Kids KOSTA 때 찬양하고 섬기셨던 분들께 정말 감사 드리고,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서라도 다음에 자녀가 생기면 꼭 데리고 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많은 어린 아이들이 영접했다고 들었는데, 어린 나이지만 복음에 반응한다는 것이 너무 감동스럽더라고요.


6. 상담실 평가
eKOSTA 이번 KOSTA에는 유난히 상담을 원하는 코스탄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KOSTA 기간 동안의 상담이 어떠하셨는지요?


서민경 저희조도 둘째날에 상담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상담 강사님들이 다양한 분야에 많이 계셨습니다. 고민이 강사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많이 풀렸다고 하고요. 저희 조 같은 경우는 절반 정도가 2 회 이상 상담을 받으셨어요. 상담에 임해주시는 강사 분들께서 새벽이나 밤에 만나 주시면서까지 너무나 정성과 사랑으로 대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변정민 멘토님들이 너무 부담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마지막 날에는 탈진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개인 상담 부분이 더 강화돼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드는 생각은, 이런 고민과 상담들이 각자가 있는 지역에서는 있으면서 서로 나눌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아쉬움도 들었고요. 각자의 지역에 같이 고민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지요.


김석영 많은 분들이 상담실을 통해서 또는 멘토님들을 통해서 상담을 하셨던 것 같아요. 상담을 통해서 가지고 있던 문제를 해결 많이 받았습니다. 상담실을 통하지 않고, 조장들이 직접 멘토님과 연결한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지나가다가 윤행숙 선교사님을 저희 조모임에 초청해서 무슬림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마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가진 상담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기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해주시고 마음 속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왔다고 나눠주시던 분들을 통해서 상담이 참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안타까운 것은, 코스탄들에게 영적 멘토가 없는 것 같아요. 섬기는 교회에서나 가까운 곳에 spiritual accountability가 있는 멘토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거든요.


7. 후속 프로그램
eKOSTA KOSTA의 감격을 안고 열방으로 흩어진 코스탄들이 각지에서 화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특히 gpKOSTA, ekOSTA, jjKOSTA같은 KOSTA 후속 프로그램에 기대하신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변정민 저는 gpKOSTA에서 더 감동이 컸던 것 같아요. 말씀을 더 깊이 공부 해야겠다는 부담과 소그룹 인도자로서 양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요. 코스탄들은 gpKOSTA에 꼭 가셨으면 좋겠구요. 멀리서라도 오시면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는 모임인 것 같아요. 아마 양육 부분은 gpKOSTA에서 더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같고요.


서민경 저도 gpKOSTA가 아무래도 동일 지역에서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참석하게 되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한국은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반면에, 미국은 교사조차도 훈련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별로 없더라구요. 교회 내에서도 교사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이 없어서 참 열악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gpKOSTA가 지역교회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나이 많은 집사님들도 참석하셨는데, 훈련 받으시면서 학생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려우셨던 점도 있으셨지만, 강의 하나하나가 지역 교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시더라구요. 계속 주기만 하다 보니까 힘든 점이 많이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받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그런 점에서 gpKOSTA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KOSTA 끝나고 조원들과 연락하면서 느낀 점은 보드들이 조장 위주로 되어있고 조원들이 가벼운 이야기를 올릴 수 있는 보드들이 열리면 좋지 않을까 생각 해 봤고요. 자원봉사에 처음에 사인 업하지 않다가 나중에 마음이 열려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등록하는 것 같아요. 처음 등록할 때 웹사이트를 통해서, 자원봉사 신청 현황을 분야별로 신청인원을 잘 보이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석영 제 생각엔 KOSTA에서 자원봉사 광고하시면서, 자원봉사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좀 더 강 해야 할 것 같아요. 온라인으로 바이블 스터디할 수 있겠고, 큐티도 노력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KOSTA 집회가 끝나고 나면, 보드를 통한 참여가 너무 낮아지는 게 사실인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저부터라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정민 이번KOSTA집회를 통해 장이규 목사님 강의를 듣고 소그룹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웠는데요, 세미나 시간을 통해 모든 것을 커버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데 eKOSTA에 장이규 목사님 칼럼이 있더라고요. eKOSTA를 통해 주된 주제는 좀 더 깊이 있게 오랜 시간을 갖고 리소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KOSTA 웹 프레임도 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면 좋겠습니다. 또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eKOSTA를 통해, KOSTA집회 기간 전에 Wheaton college에 관한 많은 자료 중에 일부라도 미리 소개해주면 좋겠습니다. 어떤 장소는 선교나 미국의 부흥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시간이 날 때 한번씩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거든요.


8. 개인적인 소감
eKOSTA 이번 2006KOSTA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았던 은혜가 있다면 짧게 나누면서 좌담회를 마치도록 하죠.


서민경 이번 집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게 ‘사랑’을 많이 부어주셨습니다. 내 머리로 힘으로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랑을. 그리하여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생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아주 작은 부분도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화해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영혼에 대해 아파하는 제 마음도 모두 사랑이 근원이겠지요. 아무리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고, 용서할 수 없다 해도 내가 먼저 사랑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끝나는 것 같아요. 군데 군데 끊겼던, 위로의 옆으로의 십자가의 틈이 풍성한 은혜로 차오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이 열리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이 또 들었고요. 저 역시, 제 힘으로 하려는 것을 놓는 순간 하나님의 능력을 witness했고요. 모두의 삶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나눔도 참 귀했어요. 어려움, 나의 약함, 실패, 눈물섞인 밤, 고통, 외로움, 마음앓이, 통곡…. 등등도 하나님은 놓치지 않으시는 섬세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에는 그런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찾게 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저같이 목이 뻗뻗한 사람이 어떻게 작은 한걸음 주님께 내딛었겠어요… 황지성 집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사랑하는게 뭡니까? 사랑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사이에서도 좋아하고 사랑하면 비오는 날 연인을 기다리며 꽃들고 서있고, 전화가 안되어도 묵묵히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감동이 있는 거 아닙니까?” 어디를 가나 새벽제단을 쌓으며 주님께 향하려 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감정적이고 뭐라할까….약했어요. 받은 기도제목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도하는 것과 마음에 떨어뜨려 주신 조원들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도록, 꾸준히 follow up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복음에 대한 귀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집회였어요. 정말이지…..마지막 날 Kids KOSTA 때에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며 격려하는 부모를 보며, 펄쩍 펄쩍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온 마음 다해 주님만을 찬양하고 생각하고 예배드리고 싶습니다.


eKOSTA 오랜 시간 좌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베다니 사역 – 최원영 교수

이코스타 2006년 8월호

KOSTA/USA 2006을 연 jjKOSTA에서 University of Nebraska에서 화학을 가르치시는 최원영 교수의 강의를 편집부에서 요약한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은 우리 각자에겐 ‘사전’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가진 사전의 definition이 다르면 대화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적 가치는 무엇이 문제인가? 공중부양을 하겠다며 도를 찾던 사람이 ‘내가 떠서 뭐하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혀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와 같이 세상적 가치는 그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세상적 가치의 한계를 짚어보자.


1. 세상적 가치는 영원을 담지 못한다.
볼테르의 말처럼, 몇분을 타고 사라지는 지푸라기 같은 삶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나서 평균수명이 ‘영생’이라는 것으로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를 넘어 하나님의 가치를 가진 우리는 ‘생명을 건지는 일’, 즉 ‘화해자로서의 초대’라는 사명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딜레마가 있는데, 바로 ‘나도 가끔은 주목 받는 인생이고 싶다’라는, 영원한 빛인 별보다 20분 타고 마는 불타는 지푸라기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런 딜레마를 처리하는 방법은 욕구를 참는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을 옮기면 된다. 다시 말해 내 사전을 다시 써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그리스도인이 피곤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우스게 소리로 이렇게 답하기도 한다. ‘일요일에 쉬지 못하고 교회에 가니까’라고… 하지만, 이 말을 잘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은 피곤하다’ 혹은 ‘교회는 안식을 주지 못한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서글픈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의 전제들이 깔려있는 사전의 정의를 성경의 바른 사전으로 다시 써야 한다는 말이다. 편한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정말 좋은 것일까? 한번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전제들은 ‘이생의 자랑,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전을 다시 쓰기 위해서는 성경의 메세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2. 예수님의 베다니 사역
나사로를 살리신 사역이 베다니 사역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나사로의 기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예수님의 베다니 사역’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예수님의 사역은 잘 알고 있으리fk 생각한다. 요한복음 본문 1 4절을 읽어보자. 예수님은 나사로의 아픔, 혹은 죽음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이런 의도를 들은 사람은 제자들, 심부름꾼, 마르다와 마리아, 그곳에 있던 유대인 등이겠다. 각각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4절 이후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들었슴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고 베다니로 들어 가지 말 것을 권한다. 또한 도마의 ‘우리도 같이 죽으러 가자’라고 조금은 과장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잔다’라는 표현을 문자 그래로 잠들어 있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반면, 베다니에 도착해 예수님께서 처음 만난 사람은 마르다인데, 그녀의 반응을 보자. 예수님의 의도를 예전에 들었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자신만의 반응을 보인다. 마리아도 마르다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유대인들 역시 ‘이 사람이 죽은 자들은 살리지 못하는 구나’라고 죽은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듯 하다.


정리해 보자.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라는 것이었고, 구체적인 사역은 ‘우리의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였지만, 예수님 주변의 그 누구도 그 의도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예수님의 사역은 참으로 외로운 사역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의 ‘통분히 여기다’라는 표현을 집중해 보자. 다른 번역을 보면, ‘아픈 마음으로 슬퍼하셨다’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아파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 수 있는 베다니 사역의 성격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짝사랑 전문가가 아닌가 싶다. 짝사랑이란 상대편은 관심이 없는데, 당사자만 안타까워 하는 것이니까. 정말 짝사랑은 감동 아닌가? 관심도 없어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쏟아 부어 주시는 사랑은 정말 감동이다. 또한 향유를 붇는 마르다의 사역도 베다니 사역에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예수님의 베다니사역은 정말 쉬운 일이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진정 물어야 할 것은 ‘편한가’ 혹은 ‘쉬운가’라는 질문이 아니다. 그 대신 그 ‘의미’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결혼할 때 물어야 할 것은 ‘쉬운가, 어려운가’가 아닐 것이다. 정말 이 결혼이 의미가 있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사실, 인생은 의미의 싸움이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을 살펴보면,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이라는 의미를 짚어 주셨다. Steven Jobs은 코카콜라의 사장을 설득하기 위해 ‘설탕물을 팔기에 평생을 바칠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데 쓸 것인가?’라고 했다. 사실 애플 컴퓨터를 많이 판다고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없기에 이 말은 별 의미가 없지만, 우리는 세상을 향해 이 말을 선포해야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