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2006 KOSTA/USA를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6년 6/7월호

시대정신이 더욱 절망적으로 되어 가는 이 때에,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편견, 편가름, 이기주의, 개인주의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 갈 수록 참 소망과 화해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간절해지는데, 우리가 이러한 수렁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과연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셨던 일에 주목하게 된다. 스스로가 하나님께 드리는 화목제물이 되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막힌 담들을 헐어버리신 주님의 모습에서 가슴벅찬 소망을 발견한다. (KOSTA/USA-2006 주제문에서)


작년 20주년을 맞았던 KOSTA/USA는 “Korean Student Diaspora” 라는 새로운 파라다임(paradigm)을제시한바 있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지난 20년동안 KOSTA/USA는 복음, 민족,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세가지 핵심 가치(core value)로 미국내 한국 학생들을 섬겨왔다. 이제 새롭게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면서 하나님께서 KOSTA/USA를 통해서, 미국내의 한국 학생들을 통해서 어떠한 일들을 하기시 원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자 고민하며 도출해 낸, 새로운 화두였다.


2005년 KOSTA/USA에서는 시카고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두개의 연례 수양회 (annual conference) 뿐 아니라, 코스타 집회의 조장 훈련 프로그램인 jjKOSTA, 웹진(webzine) eKOSTA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서 그 내용들을 나누고 선포하고 고민하였다. 지난 1년 동안 하나님께서 드러내어 보여주셨던 것들은 참 가슴 벅찬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와서, 학업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가 조국 교회와 사회를 섬긴다는 기존의 섬김의 凋응?뛰어넘어, 현재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Korean Student Diaspora 들이 조국과 미국, 선교지 혹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어느 곳이든지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내는 나그네 (sojourner)로서 살아간다는 새로운 정체성(identity)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를 통해서 우리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사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부르심을 향하여 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부르심을 성취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어떤 것일까. 어쩌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러한 질문들이 다시 던져졌고, KOSTA/USA를 섬기는 사람들은 그것이 화목케 하는 것 (reconciliation) 이라는 생각을 구체화 하게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았을때 우리의 모습은 결코 건강하지만은 않았다. 이기적 배타적 본성에 빠져 타민족에 대한 멸시와 배척, 이데올로기적 편가름, 관용과 사랑을 상실한채 화석화되어버린 우리의 신앙, 기득권에 안주하는 혹은 기득권만을 추구하는 성공주의등은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며 우리고자 했던 화목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번 KOSTA/USA-2006 집회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길 소망한다.


첫째, 우리에게 화목의 근원이 될만한 그 어떤 것도 있지 않음을 발견하고 애통해하는 눈물이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성공주의 배금주의적 가치관에 오염되어 있는, 철저하게 이기적이 되어버린 우리의 신앙의 천박함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망가진 모습을 보며 함께 가슴을 치는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 이 일은, 우리의 적나라한 현재의 모습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면서까지 그리스도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화목의 모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조명할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복하게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치루셔야 했던 값(cost)가 얼마나 큰 것이었나 하는 것, 얼마나 하나님께서는 그 화목을 이루기 간절히 원하셨던가/원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둘째, 우리가 화목케하는 사람(reconciler)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 전제되어야함을 실제적, 구체적으로 깨닫기 원한다. 우리안에 존재하지 않는 화목의 근거를 찾아 헤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치루신 그 위대한 사역앞에 철저히 우리 자신이 엎드려져야 할 것이다. 혹시 아직 그 화목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성취된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바로 그 화목의 장으로 나아올 수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매년 수많은 귀한 청년-학생들을 그리스도께 이끌어오는데 하나님께서 이 집회를 사용해 오셨듯이, 금년에도 바로 그런 은혜를 부어주시길 기도한다. 단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수 많은 자원과 물자를 사용해서 그 사람을 위해 이 사랑의 메시지를 외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셋째, 우리가 화목하지 못하고 쌓아왔던 많은 벽들을 발견하기 바란다. 작게는 우리 가족, 친구등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된 벽들로 부터 크게는 우리가 타민족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해, 다른 정치적 사상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정죄등에 이르기 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벽들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길 소망한다. 특별히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는 우리 유학생들과 이민청년-학생들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벽들을 발견함과 동시에, 우리를 타문화에 흩으신 하나님의 뜻이 이러한 벽들을 허물기 위함이 아닌지를 묻는 시간이 되기 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화목에의 사명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망임을 깨닫고 그 앞에 헌신하는 일들이 있기 기도한다. 아직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나아가기로 결단하는 모임이 되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이 집회를 통해서 발견하게 하신 우리 안의 벽들을 가슴아파하며, 그것들을 허물기로 결심하는 일들이 있기 원한다. 그리고 이 화목의 메시지를 듣지 못한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이 화목의 메시지를 전하기위한 헌신이 있기를 원한다.


우리의 준비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이 집회에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난 21년간 신실하게 코스타를 통해서 청년-학생들을 불러모으시고 일깨워오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리고 금년에 또다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깨닫고 그 앞에 순종하는 또 한번의 축복의 잔치를 기대하며 나아가자.

[최원영] 하늘과 땅을 이어라

이코스타 2006년 6/7월호


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배철수씨는 1980년대에 활주로란 그룹으로 대학가요제로 등장한 뒤에 그룹 송골매의 리더로 활약했었습니다. 저의 어렴풋한 기억속에 그가 불렀던 ‘새’라는 곡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멜로디는 이제 잊었지만 가사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라”


이 곡의 작사자는 ‘새’라는 존재를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하늘과 땅. 그 닿을 수 없는 두 지점을 잇는 존재라.. 저는 예전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셨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올해의 주제인 Entrusted Reconciler 와 주제 구절 에베소서 2장 14절의 말씀을 보면서 저는 제 기억 속에 가물가물한 이 노래구절을 떠올렸습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라”


올해 코스타 주제 취지문에 나타난 세상의 적나라한 현실을 바라보면 우울해 집니다. 화석화 된 신앙, 몰이해, 편견, 이기적, 배타적 갈등, 분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모습에 분노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때로 우리가 속한 교회 안에서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청년부 지체 가운데서 발견되기도 하고 교회의 어른들의 스치는 모습속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정말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암울한 것들이 내 안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내 안에 있는 느낌이랄까..


2000년전에 오셔서 온전한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을 이으셨던 예수님 처럼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이 일들을 할 만한 능력과 지혜가 있다면 세상이 지금의 모습이 아닐 겁니다.


우리에게 한가지 나쁜 버릇이 있다고 합시다. 예를들어, 인터넷으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것-영화 다운 받기, 한국드라마보기, 한국신문 종류대로 보기-을 바꾸고 싶은 습관이라 합시다. 하지만 이 한가지 버릇을 바꾸는 것조차도 만만한 싸움이 아닙니다. 말로는 간단한 ‘아침에 한시간 일찍 일어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내가 세상을 바꾼다?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미 하늘과 땅을 이으신 예수님이 나의 삶을 주관 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했지만 내 안에 들어와 계신 주님을 우리가 얼마나 구박하는 지 모릅니다.


“주님, 나 바쁘거든요. 좀 구석에 가 계시죠.”
“주님, 나 잠깐 놀고 옵니다. 집 잘 보고 계세요”
“주님, 나 건드리지 마요. 건드리면 터집니다”
최악의 경우는 다음의 경우입니다.
“…………..”
주님과 이야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 나 자신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자는 주님이셔야 합니다. 내 고집이 승리를 거둔다면 나에게 성장은 없습니다.


월드컵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본프레레 감독에서 아드보카트 감독으로 한국 축구의 사령탑이 바뀐 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회택씨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감독 하나 바뀌었는데 팀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가?”
저도 한국 축구를 보면서 정말 팀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바뀌면 팀이 바뀝니다. 내 인생의 감독이었던 ‘나’를 경질시켜야 합니다. 새로운 감독을 영입해야 합니다. 그 감독님의 이름은 예수님입니다. 선수(나)의 플레이가 얼마나 달라 질까요.


그 다음에 해야 할 작업이 있습니다. 주님이 하셨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과 하늘을 동시에 붙잡는 일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 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라.. 우선 나는 열외해야지..
내 발등에 떨어 진 불 부터 끄고..
이번 시험 붙고 나면..
직장 잡고 나서..
우리 애가 좀 크면..
주변에 Role model이 없는 관계로..


몇 가지 excuse를 적어 봤지만 아마도 우리가 댈 수 있는 excuse는 더 많으리라 생각 합니다. 한마디로 십자가는 세상에서 인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십자가가 가진 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실패의 상징이었고 처참한 처형도구 였지만, “하나님의 영적전쟁”이란 반전드라마에 사용될 복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밭에 묻힌 보화’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보화를 밭에서 발견한 사람이 전 재산을 이 밭에 투자합니다. 모르는 세상사람이 보기에는 한심한 일입니다. 바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사람은 실실 웃으며 아렇게 말할듯 싶습니다. “바보는 내가 아녀, 느그들이 바보여”


보화를 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식 표현을 빌자면 이 일에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 신비를 아는 사람들은 십자가만을 따라 다닙니다.


21세기는 세상을 화목하게 할 수 있는 자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그 사명을 감당할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품은 자만이 감당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키시기 위해 우리를 훈련 시키십니다. 내가 당하는 이 어려움들을 통해 주님께서 메세지를 주십니다. 내가 황무지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이 장미꽃밭이었다는 깨달음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깨달은 자에게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일,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일생를 통해 정말 몇가닥이라도 이을 수 있다면 주께서 기뻐 하실 겁니다.

코스타 멘토님들과의 만남 – 좌담회 (권강현, 김동록, 윤국진)

이코스타 2006년 6/7월호

코스타 집회 기간, 조장을 섬기며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조장들이 있다. 하지만, 조장님들의 뒤에는 조장님들과 조원들의 영적인 상태를 살피고 끝없이 기도하시며, 또 그들과 만나 상담해 주시는 멘토님들이 계시다. 멘토라는 말이 너무도 익숙한 이 때, 진정한 멘토란 무엇이며, 코스타에서의 멘토의 역할은 무엇인지, 권강현 김동록 윤국진 – 세 분의 멘토님들과 전화 좌담회를 가져 보았다.


1. eKOSTA: 간단한 자기 소개와 jjKOSTA와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권강현: 제 이름은 권강현이고요, 결혼한 지 19년 되었고, 현재 아내와 세 아이과 함께 메릴랜드 주에 있는 엘리콧 시티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코스타는 3년 째 참석하고 있고, jjKOSTA 멘토로 역시 3년 째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부터 미국에서 있었고요, 89년에UIUC를 졸업 했습니다.


김동록: 89년에 미국에 유학생으로 왔고요, 지금은 시애틀 근교에 있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코스타는 4년째이고, 현재 Northwest지역인 2지역 멘토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역으로는 제일 넓지만, 참석 인원은 적은 지역이지요.


윤국진: 89년에 미국에 유학생으로 왔고요, 현재 목회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 아들과 함께 일리노이주 어버나 샴페인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예수사랑 감리교회를 11년째 섬기고 있고요. 이 교회는 처음부터 학원선교를 목표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코스타는 미국에 온 바로 다음 해인 90년에 전도사로써 청년부 학생들과 함께 참석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 것 같네요. jjKOSTA는 4년째 멘토로 섬기고 있는데, 섬겼던 지역은 다양 했었습니다. 올해는 6지역 멘토로 섬기게 되었고요.


2. eKOSTA: 이제는 ‘멘토’라는 단어가 상당히 익숙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각자가 생각하시는 ‘멘토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사실 저는 멘토링이라는 단어보다는 제자도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 제자 삼는 사역이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전 인격을 감당하고 성숙하도록 섬기는 것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최근에는, 제자도는 다소 지식적이고 훈련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멘토링은 좀 더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에서 이루어 지는 것으로 나누어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자도가 불신자나 초심자가 성숙에 이르는 단계까지를 목표로 한다면, 멘토링은 특정 인간관계를 통한 리더 양성 과정을 목표로 하는 것 같습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이렇게 구분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제자도와 멘토링을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으로 보자면, 리더 자체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때문이겠지요. 멘토링과 제자도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윤국진: 제가 뜻하지 않게, 작년에 멘토링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인도했었기 때문에, 책을 좀 더 접하고, 사람들에게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멘토, 교사, 제자 양육자 – 각각 조금씩은 다른 것 같습니다. 멘토링은 시간적으로 볼 때 평생에 걸칠 정도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인간관계가 양육이나 친교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의 연속성과 확장을 위해 어떤 한 분야의 전문적인 것을 이미 알고 경험한 사람이, 다음 세대나 후임자에게 그 전문적인 것을 평생에 걸쳐 이끌고 전수해 주고, 결국에는 자기보다 더 확장된 사역의 단계로 세워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멘토링은 하나님 나라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서양 기독교에서는 멘토링이 활발하게 존재하고 있는 반면, 한국 교회는 멘토링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약한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멘토링이 한국교회에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를 본다면, 학생 중심의 목회자로써의 노하우를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목회자로써의 경력이나 나름대로의 교단에서 축적된 노하우, 혹은 아직까지 맺었던 인간 관계 같은 것들을 적재 적소에 알려주고 폭이 넓어지도록 도와 주는 것이 되겠죠.


eKOSTA: 그렇다면, 관심분야가 다를 경우에는, 멘토링이 좀 어려워 지게 되나요?


윤국진: 다른 면에서의 멘토링은 가능 하겠지요. 하지만,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서 좀 더 전문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멘토이고, 도움을 받는 사람이 멘티가 되겠지요.


권강현: 멘토는 좋은 친구로써 하나님을 함께 알아가며 경험해 가게 하는 길잡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삶을 공유하기 위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길잡이가 멘토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멘토님들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신앙의 틀을 잡는 것을 도와 주셨고, 말씀에 씨를 뿌리고 심는 자로 자라도록 도와주시기도 하고, 또 물주고 추수하는 자로 세워 지는 데 도와 주시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충실하도록 도와 주시기도 하고, 다른 영혼을 섬기는 목자로 자라게 도와 주시기도 하고, 내가 못 보는 나의 약점을 보여 주시기도 하며, 나의 삶의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공유해 주시고, 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 멘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삶의 전 분야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 멘토링이기 때문에, 한 분의 멘토님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한다 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인생의 여정에서 시간과 장소에 맞게 보내주시는 분들과 관계를 가져 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 멘토링인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멘토링의 목적을 생각해 본다면, 멘티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멘토가 자기의 사람을 키워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지요. 굳이 제자훈련과 구분한다면, 멘토링이 더 지속적이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요.


윤국진: 멘토링은 많은 사람과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10명 이내의 사람과 정말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3. eKOSTA: 멘토님들은 청년시절에 신앙의 멘토님들이 있으셨는지요? 있으셨다면 그 분과의 만남이 지금의 멘토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혹은, 멘토님들께서 직접 멘토의 역할을 감당하셨거나, 현재 감당하고 계신 경험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윤국진: 20년 전 ‘멘토’라는 말조차 없을 때, 고등학생으로 대전의 중간 규모의 교회를 다닐 시절, 참 좋으신 선배 겸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지금 워싱턴 디씨에 계신 김영봉 목사님 이십니다. 그 당시 제가 고등학생이었고, 김영봉 목사님께서는 대학생이셨는데, 제가 신학교 갈 때, 또 미국 유학을 올 때까지 그 분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같은 교단의 목사님으로써 정말 크게 가르침을 주시고 계십니다. 또 미국에 와서 만난 멘토는, 1995년에 어바나 샴페인에 와서 교회를 개척할 당시, 저희가 건물을 빌려 쓰던 교회의 Davison목사님이십니다. 저와 20년 차이가 나시지만, 기꺼이 제 멘토가 되어 주셨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미국의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고, 또 지금도 주시고 계십니다. 현재는, 저희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 중에서, 사역에 전문성이 가진 분들과 2 3년 정도 교제를 하고 저와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약 4명 정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으로 들어갔고, 또 미국의 다른 주로 옮겨 가기도 했지만, 꾸준히 연락하며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그 분들을 통해 그 지역으로 옮겨 가는 사람들과 연결 시켜 드리고, 더 나아가서, 그 분들과 함께 세계 선교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멘토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권강현: 제게도 멘토님이 계십니다. 저는 UIUC를 학부부터 다니면서 미국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때 University of Kansas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church planting을 위해 그 곳으로 오신 Dennis 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학교촌이라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구하기 못하고, 대신Dennis는 건물 청소를 하셨습니다. 건물청소는 주로 저녁에 이루어 지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학생들과 만나 교제를 하기 위함이었죠. 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일주일에 한번씩 따로 그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말씀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 금식하는 것, 하나님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 노방전도 하는 것 등 말씀을 통해서 또 실제적인 행동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으로 재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까지 구체적인 모습으로 보여주시면서, 이 분이 제 신앙의 근본적인 틀을 세워주신 분이 되어 주셨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멘토링은 제가 섬기고 있는 빌립보 교회의 ‘만나며 사랑하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멘토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대일이나 일대이 정도로 하는 프로그램인데 하시는 분들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몇은 프로그램 후에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올 1월부터 만나며 사랑하며를 통해 한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오래 전에 예수님을 만났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갈등하며 살다가 작년 말에 메릴랜드로 이사오셨습니다. 만나며 사랑하며를 하는 중 3월 초에 텍사스에서 원하던 job offer가 와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형제는 ‘하나님께서 이 교회로 보내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또 이제 겨우 영적으로 삶을 정돈하고 잘 자라가고 있는데 이사가면 어떻게 하나’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그냥 이곳에 남기로 결단했습니다. 그 형제가 지난 몇 달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현직장보다 더 좋은 직장으로 지난 주에 인도해 주셨습니다. 현제는 이 형제의 삶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도 옆에서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동록: 저는 조금 반대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의 말씀과 달리. 청년 시절, 너무도 좋은 선배님들이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멘토의 역할을 해 주시는 실질적인 관계는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일대일 제자 양육 받고 하면서, 관계를 갖고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제가 직접 멘토링을 하고 있다고 생각은 못하고 있고, 차라리 그 분들과 동역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4. eKOSTA: 각자 섬기시는 캠퍼스, 교회, 직장 등에서, 청년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멘토는 어떤 모습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또한, 나름대로 생각하시는 jjKOSTA에서의 멘토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점이 현장 사역에서의 멘토링와 같거나 또 다른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권강현: 사실 이 문제를 보면서, 청년들이 어떤 멘토를 원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역으로, ‘나라면 어떤 멘토를 원할까?’라는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만일 내게 멘토를 선택할 여지가 주어진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난다면, 또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미리 겪어 갔고, 또 삶의 고난과 아픔을 통행 훈련되고 성숙한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을 제가 멘토로 섬기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jjKOSTA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기 어렵고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코스타에서의 멘토른, 집회 기간 동안에 멘토로써 필요에 따라 시간을 내어드리면서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지요. 조원들과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기도 하고, 따로 만나서 상담도 하고 기도도 해 드리는 것이겠지요. 코스타 집회 이후에도 함께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는 좀 더 개인적으로 지속적으로 멘토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동록: 이 곳에서 많은 청년들을 만나다 보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상상하는 인격적인 멘토를 원한다기 보다는, 가시적인 현상들을 기대하기 때문이겠지요. 그것이 청년들만의 잘못이 라기 보다는, 그 동안 청년들이 받아온 교육으로 인해 신앙 스타일이 수동적이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반면, jjKOSTA의 경우는 실제로 멘토라기 보다는, 도우미라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관계성이 다소 우겨 넣어지는 듯한 인상이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 jjKOSTA에서 처음 멘토를 제안 받았을 때, ‘멘토는 무슨 멘토’하면서 거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조장님들이 각 지역별로 모였을 때, 중재자로써의 역할을 감당해 주는 것도 멘토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락 했었습니다. 또한 집회 기간에 상담을 통해, 조장님들 뿐 아니라, 일반 참석자들을 섬기는 것도 멘토의 중요한 역할이겠지요.


윤국진: 학생 사역을 하면서 보면, 권위주의에 사로 잡혀서 명령하거나 자기 자리를 당연하게 여기고 지시하는 사람은 멘토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멋지다고 말하는 멘토는,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JjKOSTA에서의 멘토의 역할은, 실질적인 멘토링이라기 보다는, ‘나도 저런 사람하고 멘토링의 관계를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기대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코스타를 통해, 같은 분야에 신앙의 선배 분들과 만나고 또 그것이 자연스럽게 멘토링 관계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KOSTA: 코스타 참석자들의 경우는, 코스타에서 많은 강의를 듣지만, 그렇게 실제로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jjKOSTA의 멘토님들께서 그런 역할을 해 주시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KOSTA: 각자 생각하시는 멘토의 역할을 실제로 코스타 집회 전, 중, 후에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멘토님들의 경험담이나 노하우를 듣고 싶습니다. 먼저 코스타 집회 전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1. eKOSTA: 코스타 집회 전 조장님들과의 교제와 조장 훈련은 주로 온라인 상에서 이뤄집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조장님들을 섬기실 때 인격적으로 조장님들과 교제하고 나누기 위해 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나요? 혹시 온라인 (이메일 포함)으로 조장님들을 도우신 경험이 있으셨으면 나눠주세요.


김동록: 코스타의 인터넷 훈련은 생각보다 상당해 템포가 빨라서, 사실 좇아 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장님들의 글은 모두 읽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번씩 이라도 글을 접하면, 코스타에서 직접 만나게 될 때,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윤국진: 저의 경우는, jjKOSTA의 코디들을 미리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코디들과 미리 교제하고 갈 수 있어서 그런지, 코스타 집회 중에 조장님들과 좀 더 빨리 친해 질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저 같은 경우는 계속 캠퍼스 사역을 하다 보니, 이성교제, 학업, 직업 선택과 같은 평소에 접하는 질문들이 답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정도를 인터넷 훈련을 통해서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권강현: 저는 온라인으로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익숙치가 않습니다. 올해에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을 섬기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요. 한번 정도 코디님들 또 조장님들과 코스타전에 모이려고 합니다. 친교도 하고 교제도 하고 말씀도 나누려고 합니다. 서로 미리 만나보면 온라인으로 훈련 받으면서도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작년에는 타주를 섬겨서 코스타 전에는 만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eKOSTA: 참석자들은 어떤 멘토링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기대하는 점과 현재의 모습이 잘 맞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윤국진: 조장님이나 코디님들에게 멘토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좀 아쉽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온라인에서도 인사정도만 나누지, 깊은 질문이 오가지 못하거든요. 코스타 측에서 참석자들에게 ‘멘토에게 이런 것을 받을 수 있고 신앙적인 의문이 있다면 멘토를 찾으십시오’ 라고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동록: 코스타 집회 이전의 멘토의 역할하면, 질문이 있고 멘토가 대답해주는 관계를 생각하는데요, 사실 질문이 있더라도 멘토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질문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윤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role model을 찾을 수 있는 기회로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KOSTA: 3주간 교육이 진행되는데 그 방식으로 도움을 주신 경우는 있으신가요?


윤국진: 읽는 정도로 지나온 것같아요. 시간이 많이 들더라고요.


김동록: 답변 잘 올리시는 조장님들 존경스럽죠. 순발력을 가지고 하는 것이 힘든 것 같습니다.


권강현: 한번도 못 만난 분들이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국진: jjKOSTA수양회 때 멘토링에 대한 광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장님들은 한국교회의 중요한 리더로 세워질 분들이잖아요. 건강한 멘토링에 대한 도전을 주어서 조장으로서 축복을 받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2. eKOSTA: 제이제이 코스타 수양회와 코스타 집회 기간 중 조장님들이 섬기시는 조별모임을 어떻게 도우셨는지요? 집회기간 중 조장님들을 섬기시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이고,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윤국진: 금년에 제게 좋은 것은, 제가 세미나를 담당하지 않고 멘토만 하게 되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밤 늦게까지 대화를 길게 하는 것을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코스타 집회 기간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조원들과의 만남을 가지기 전에, 조장들에게 부탁해서 공통된 질문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을 만나면서, 한 분이 질문을 독점하기 보다는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질문을 모아놓고 이야기 하니까 나름대로 효율적이더라고요. 그리고는 개인적인 시간을 더 가져가면서 멘토 관계가 맺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권강현: 워낙 큰 모임이기 때문에 배운 것을 내면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을 위해서 멘토들이 조장이나 조원들에게 그런 시간을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섬기면서 좋았던 점은 작년 집회 때의 한 예를 들겠습니다. 펜실베니아 지역의 조장님 중 한 분이 삶에 너무 지쳐서 얼굴이 너무 어두웠던 것을 보았어요. 조원들도 다들 그렇구요. 주일 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그랬지만, 목요일 저녁 집회가 끝나고 다시 만났을 때는 다들 얼굴이 얼마나 밝아졌던지 몰라요. 결국 그 조원 중에서, 두 분이 선교에 헌신하셨고, 또 한 분은 재헌신 하셨습니다. 그렇게 영성이 회복되는 모습을 볼 때 참 보람 있었습니다.


김동록: jjKOSTA수양회에 총 4개의 강의가 있는 등 빡빡한 일정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그나마 조장님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을 뿐 아니라, 코스타 집회 기간에도 조장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두 번에 걸친 아침 모임 뿐이고요. 사실은, 결국 시간의 문제라기 보다는 농도깊은 만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긴장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농도 깊은 만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코스타에 오신 분들은 주로 ‘앞으로 무엇을 할까’에 대한 관심이 많을 것을 봅니다. 만날 때마다 ‘내가 무엇을 할까’ 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에 관심을 갖기를 계속 권면하고 있고요. 코스타 기간 중에도 그런 메시지가 계속 전달되어야 하겠지요. 저 같은 경우는, 조장님께서 조원들을 미리 소개해서 주셔서, 일반 참석자들과 상담하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시간이 오래 되면서 졸면서 이야기 했었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 준 형제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윤국진: 제가 보기엔 조장님들이 너무 부담과 일이 많아요. 육신적으로 지쳐있는 조장님들을 위로해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합니다.


3. eKOSTA: 코스타 이후 조장님들을 활로우업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있으셨다면 주로 어떤 측면에서 활로우업 (성경공부, 큐티, 상담 등등)을 하셨는지요? 코스타 후 활로우업하시기 어려우셨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김동록: 코스타집회 이후,11월 정도까지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에 점차 멀어지게 되는데요. 다른 조장님들도 그런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극복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윤국진: 학원 사역을 하는 저로써는, 신학기가 되면 시간이 부족하지만요, 그래도 가능성을 보는 것은 멘토링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두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하면 되면 성공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관계가 유지가 되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권강현: 저도 코스타 후에 팔로우업하기는 어렵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거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작년 8월에 펜실베니아 지역의 조장님들과 코디님이 저희 집에서 함께 모인 적이 있어요. 코스타의 뜨거운 열기가 다시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다는 장점을 살린 경우를 한 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작년 코스타에서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학부 때 예수님을 믿었는 데, 졸업 후에 신앙 생활 거의 등한시했던 분이었습니다. 코스타 중에 일대일로 상담하며 말씀을 나누는 중 하나님께서 이 형제의 마음을 깊이 만져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저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대일로 팔로우업 해 드렸습니다. 그런 중에, 이 부부가 하나님을 경험해 가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어요. 경제적으로 한치도 틀림없이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또 진로를 정하는 문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한대로 어떤 경우는 기도한것보다 더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 었습니다. 지역적으로 가까이 있으면 이런 일들이 가능하겠죠.


김동록: 거리에 있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코스타 이후에 멘토링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야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요. ‘멘토들’이라는 리소스를 잘 활용 해야겠습니다. 한 분의 멘토가 아닌 여러 분이 계시니까, 멘토 보드 등으로 공유 공간을 만들어서 함께 계속 교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윤국진: 멘티들이 먼저 필요를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멘티가 주도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멘토와 멘티가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코스타가, 그저 만나는 장소뿐이 아니라 관계를 위한 공간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면 좋겠어요.


4. eKOSTA: 마지막으로 올해 제이제이 코스타를 섬기실 때, 자신이 어떤 모습의 멘토가 되기를 기대하시는 지 간략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권강현: 상처받고 지친 조장님들 계시면 격려받고 치유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보람 있겠지요.


김동록: 그저 열심히 해 보려고 합니다. 조장님들과 많은 시간을 갖고 싶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안타깝기는 한데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제게 멘토 역할을 해 주시는 분께서 ‘멘토는 투명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멘토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을 보게끔 하고, 결국 자신은 사라지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윤국진: 학원 사역만 하다보니 힘든 점도 많았는데요, 경험이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네요.


eKOSTA: 장시간 좋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세분 멘토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Min Chung 목사 인터뷰: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entrusted reconciler

이코스타 2006년 4월호


eKOSTA 안녕하십니까, 먼저 간단하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in Chung 저는 샴페인 어버나에 1990년에 교회를 시작했으니까 16년 된 것같습니다. 여기서 multiethnic church사역을 하고 있고, 한국사람들이 50%정도 되고 나머지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족은 애들이 다섯명 있고 코스타는 두번 가보았습니다. 너무 좋았었고요. 우리 교회는 예배는 영어를 사용해서 아무나 영어를 사용할 수 있으면 올 수 있습니다. 소그룹은 언더와 대학원생들은 나눌 수 있는데, 그 안에서도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eKOSTA 한국어 그룹이 따로 있나요?


Min Chung 한국어 그룹은 따로 없습니다. 저희 주위에 한국교회가 몇 군데 있기 때문에 한국어 그룹을 따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한국말이 더 편하신 분들도 영어를 사용하실 수 있으니까 따로 그룹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eKOSTA이번 코스타의 취지문을 보셨는데요, 먼저 ‘화평케 하는 새 사람 Entrusted Reconciler’라는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Min Chung 이번 주제는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peace가 있은 다음에 우리가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평이루게 해야한다는 Reconcile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마태복음 22장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과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구원의 역사를 잘 반영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Reconcile된 사람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reconcile되는데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점에서 매주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eKOSTA화평케 한다는데는 많은 의미가 포함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주제에서 말하는 화평케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Min Chung 이번 주제는 하나님 나라와 화평케하는 역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하나되는 노력 등이 포함될 것같습니다. 말하자면 회심과 이후에 하나의 공동체로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안에서 하나되는 것을 말하는데요, 교회에서 전자에 대해서는 강조가 되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것같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되는 것은 단순한 강조에 넘어서 진정한 변화가 먼저 있어야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 때 너희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한다고 하셨잖아요? 하나가 되지 않으면 힘이 없어서 세상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마음에 변화가 있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힘이 있으려면 정말 하나가 되도록 각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어야겠습니다.


세상의 여러 역사를 보면 공동체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한 것을 볼 수 있지요. 공산주의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정말 인간적인 마음이 깨지지 않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자마자 갈라졌지요.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Reconcile되는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우선 회개를 강조해서 내가 내 자신의 죄를 볼 수 있고 깨지고 하나님과 Reconcile되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Reconcile이 되는 과정에 있는 거기 때문에 교회도 계속 깨지고 사랑하고 변화되는 과정에서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가 될 때에 전도할 수 있고 선교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eKOSTA 먼저, 세속 문화에서는, 특히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문화나 기호에 간섭하지 않는데요, 복음의 공동체는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Min Chung 모든 문화에 장점과 단점이 있지요. 미국 컬쳐에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고 한국 문화에도 강점과 약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많이 있고 한국은 공동체 위주의 문화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집을 가르키면서 미국 사람들은 my house라고 하는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내 집이라고 하면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겠죠? 우리 집이라고 그럽니다. 그런 문화적 차이가 있고 한국 문화가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도 미국컬쳐에서는 몇 센트까지 나눠서 첵도 따로 나오는데 한국문화에서는 서로 내겠다고 서로 싸우죠. 그런데 이기적인 마음이 깨지지 않으면 그런 마음도 사실 진정한 공동체로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서 미국사람들과는 내가 돈을 내주면 원래 그러지 않기 때문에 너무 고마와합니다. 그에 반해 한국 사람들은 고맙다고 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아무리 공동체를 내세워도 마음 속으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공동체는 형성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름다운 한국의 컬쳐거 진정한 크리스쳔 컬쳐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바꿔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으로 남으셨지만 완전한 사람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셨죠. 그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는데요, 교회가 먼저 깨져서 예수님과 같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진정한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느끼셨던 성육신적 고통 (incarnational pain)을 느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을 직접 겪지 않으면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eKOSTA목사님은 1.5세로서 인터내셔널 사역을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복음이 문화를 넘어서는 것을 직접 경험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민족문화의 배경을 가진 개인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까요.


Min Chung 조금 전에 말씀드린 말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사실 저희 교회의 핵심 가치인 것같습니다.


다인종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느 곳과 달리 melting pot으로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힘든 점도 많이 있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할 때 유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다른 나라보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포스트 모던 컬쳐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문화죠. 그래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래도 역시 복음이 들어가지 않으면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같이 모이고 같이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문제가 일어나서 갈라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님의 사랑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려울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60% 정도 한국 배경의 사람들이 있고 교회를 시작한 것이 16년 정도 되었는데요, 사실 저희가 처음에 계획해서 다인종교회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영어를 사용하는 한국인 언더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다인종교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약 30개국가의 사람들이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살펴보니까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고 학교에서 직장에서 있는 곳에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자라고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교회로 초대하여 모이게 되었습니다. 같이 농구하면서 같은 랩에서 일하면서 친구 삼자, 같이 이야기 하고 식사하고 그리고 기회를 보아 복음을 전파하자 이런 생각으로 하다보니까 친구들을 교회에 데리고 오게 되었습니다.


eKOSTA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Min Chung 어려움도 많이 있었죠. 우리 교회가 주로 2세가 모여있지만 2세인 경우에도 각자의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한국 사람과 공통점이 많다고 하는 중국 사람, 일본사람이라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이기적이기 때문에 나와 완전히 비슷한 사람들과 있지 않으면 서로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다니잖아요. 이런 이기적인 마음이 깨질 때 서로를 위해서 조금씩 희생할 때, 가능했던 것같습니다. 소그룹에서도 다른 문화에 있으니까 자기들끼로 있으면 편하니까 서로 함께 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이 있었죠.


예를 들어서 아무리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 2세들도 스몰그룹에서 가끔 한국말이 나오고 한국적인 농담이 나옵니다. 그럴 때 중국 사람이나 인도 사람들이 기분이 상한 경우가 있었어요. 교회에서 특히 리더그룹, 예배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삼가하자고 했고요.


다른 곳에 교제를 위해 나갈 때도 한국 사람들만 간다거나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스몰그룹에 있을 때는 정말 자기 가족같이 돌볼 것을 강조했고요. 몇 년동안 교회에서 풀기 시작하였고 부딪히면서 풀어나갔습니다.


또 한국 교회에서는 기도 열심히 하고 방언도 하고 그러는데요, 중국 교회에서는 그런 것이 적거든요. 매우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서로 이해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어려움이 많이 예상되지만 그리고 지금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문제보다 크기 때문이죠. 가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사실 가정도 문제가 없는 경우는 없는데요 그때마다 서로 기도하고 사랑으로 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일때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한국교회는 1세 교회와 2세 교회로 구분되어가고 있고, 세대간의 벽과 문화적인 벽이 동시에 작용해서 더 멀어져가고 있는 것같습니다. 교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까요.


Min Chung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1세 2세가 갈라진 것은 이민 초기부터 있었던 문제이고, 요즘은 2세 안에서도 나뉘어진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될 수 있으면 같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리고 education을 통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1세 교회도 많이 가보는데요 부모님들이 2세 자녀들과 하나되기 위해서 너무 갈급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너무 갈라져 있기 때문에 목사님들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어려워하시고 2세들을 어떻게 대할 지 몰라서 힘들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먼저 하나되도록 노력해야하고 교회에서도 예배를 통해서, 세미나를 통해서 가정에서 하나될 수 있도록 돕고 여러가지 프로그램으로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번 한 교회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는데 4일동안 말씀을 전했는데요 20분 정도 영어로 하고 30분 정도 한국말로 메세지를 전했는데요,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가정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때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도 서로 하나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면 1세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2세 목회자를 훈련시키는 경우가 적은 것같습니다. 필요하면 완전히 다른 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생각할 때 교회의 일꾼이 필요할 때 다른 곳에 가서 구하는 것보다 교회에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많은 문제가 다른 교회에 가서 다른 philosophy를 가진 사람을 구할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죠. Panoramic Vision을 갖고 주일학교 시절 때부터 2세들에게 관심을 갖고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잘 교육시키고 대학교 다닐 때도 관계를 갖고 제자훈련을 해서 2세들이 1세들과 함께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때 마음이 하나가 되고 공동체적으로 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코스타를 볼 때 그런 점에서 강점이 있다고 봅니다. 코스타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분들이 조장이 되고 간사가 되고 일하는 분들이 되기 때문에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것처럼 1세와 2세가 함께 하나가 될 때 힘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코스탄들은 두 개의 문화를 체험하면서 그 안에서 복음을 지키면서 사는 특수한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학교, 직장 등에서 문화적 벽을 넘는 화해자가 되기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되겠습니까.


Min Chung 제가 두번 코스타를 갔을 때 맘이 뛰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전파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데, 코스타 집회에서 큰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지적 능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고 미국이나 세계 어디나 가실 수 있는 분들을 보니 큰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Primary Identity는 한국사람이 아닙니다. Primary Identity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 교수, 학생, 어머니 이런 것들은 Secondary Identity인 것이죠. 크리스찬은 자신의 도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에 오신 분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Secondary Identity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코스탄들이 모두 한국 교회에 있으시면서 한국말하는 친구들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좀 부족한 것같습니다. 물론 그 안에서 전도도 많이 하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부색을 보지 않고 국적을 보지 않고 어떤 말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어떤 사람을 영적인 눈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식사를 할 수 있고 꼭 복음을 전하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을 베풀고 마음을 열도록 한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캠퍼스에 있는 인터네셔널 스투던트에게 다가가려고 미국교회도 노력을 하지만 실제로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 인터네셔널 스튜던트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는 세계에서 전도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캠퍼스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코리안 인터네셔널 스튜던트라고 생각합니다. 농구 같이 하고 식사 같이 하고 가정을 오픈하고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의 사랑이 퍼져나가겠죠. 그리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코스탄들이 한국가정 한 가정 인터네셔널 가정 한 가정, 이렇게 두 가정만 모인다면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운동이 몇 년 안에 일어난다면 인터네셔널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탄들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오랜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의 사역에 계속적인 발전이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Min Chung 감사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좌담회 – “민족 간의 벽을 넘어” – 김재신, 최규진, 조혜진

이코스타 2006년 2월호

1. 자신의 소개를 간단히 해 주시겠습니까?


조혜진: 저는 현재 indianapolis에서 1년 반 정도 살고 있습니다. 제약회사에서 biostatistician으로 일하고 있고요. University of North Carolina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이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아직 싱글이고요. 교회는 인디애나폴리스 한인 장로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North Carolina에서는 한마음교회라는 한인교회를 다녔었고요.


최규진: 제 이름은 최규진입니다. 작년에 NC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과 동시에 버지니아로 옮겨왔습니다. 현재는 Korean Bible Studies 라는 단체에서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집에서 10분 정도 떨어져있고, 미국인보다는 저와 같은 (International)이 더 주를 이루고 있는 교회입니다. 코스타와의 인연은 2003년부터이고, 작년까지 jjKOSTA 6지역(NC, SC) 코디네이터로 섬겼습니다.


김재신: 저는 아내와 딸, 아들과 함께 시애틀에 살고 있고, University of Washington 에서 환경공학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Westgate chapel이라는 약 3 4천명 정도 규모의, 약간은 오순절 계열의 성향을 지닌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2. 자신의 삶 속에서 외국인들과 가깝게 접하면서 하시고 계신 활동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최규진: 우선 외국인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만일 외국인을 한국사람을 제외한 다른 민족으로 정의한다면, 성경공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생활은 모두 외국인을 접한다고 봐야 하겠지요. 특히 이곳에 이사 와서 나가고 있는 교회에서 점점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재신: 저도 학교와 교회, 모두에서 외국인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연구실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주로 많기 때문에, 실제로 외국인은 교회에서 주로 접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매주 성경공부를 참석하고, 그 중의 몇 명과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최근 두 학기는 못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international student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돕기도 했었습니다.


조혜진: 제가 다니는 회사는 제법 규모가 큼에도 불구하고, 저희 통계 부서에, 한국 사람은 저를 제외하면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회사가 통계에 관련하다 보니, 중국사람은 상당히 많은 편이고요. 제가 한국 사람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죠. (웃음) 정말 한국사람으로 본이 되어야만 해요.


3. 혹시 이런 활동 속에서, 주류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겪은 갈등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조혜진: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이 곳이 미국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우리를 이방인 취급당하는 경우가 있겠고요, 또 한가지는 제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저를 중국인으로 간주하고 대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문제이겠지만, 중국사람으로 오해 받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거든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으로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받곤 해서요. 제가 가진 나쁜 편견이겠지만요. 그러다 보니, 어쩔 때는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해 ‘마음 붙일 때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참 힘이 드는 것 같아요.


최규진: 저는 미국 생활이 이제 3년째 입니다. 체류 기간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주류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겪었던 갈등은 특별히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있던 학교의 chairperson이 동양인이었는데, 학교 Faculty 선정에 있어서 불합리하게 면책을 당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아마도, 민족주의를 가장한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김재신: 저 같은 경우도 학교에서나 교회를 통해 특별히 차별을 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단지 언어의 차이로 인해, 마음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건 언어 장벽만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다 보면, 함께 몇 개월씩 만나 교제를 하다가도, 얼마나 지나서 다시 만나면,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무시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이런 점은 미국의 개인주의를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갈등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다시 말해, 우리가 차별을 당한다고 여기는 많은 부분들이, 사실은 문화 차이로 인한 오해로 인한 것을 수도 있겠다는 거죠.


4. 일반적으로 볼 때, 소수민족으로서 미국 주류 교회에 다니게 될 경우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요?


최규진: 일반적으로 볼 때, 미국교회를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익숙한 신앙환경에서 벗어남으로써 예배의 본질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경험한 한 미국 교회에서는 Ash Wednesday에 재를 이용해서 이마에 십자가를 긋는 의식을 했었죠. 처음에는 그런 의식이 무척이나 어색했지만,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단점은,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인 것 같습니다.


김재신: 이민교회나 미국교회나 모두 성경을 이해 하려하고, 복음을 해석하려는 점에서는 공통적으로 열심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이해한 것을 실천하는데는, 방법론적인 면에서 자라난 문화적 배경에 영향을 받는 듯 싶고요. 미국교회는 목적을 향해 상당히 합리적으로 일을 진행시키기 때문에, 일의 진행이 각각 독립적으로 잘 되어가고, 상당히 깔끔해 보이죠. 하지만, 그 합리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서로 권면하고 도전하는 면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반면 한국 교회는 일 진행이 덜 합리적이지만, 그런 가운데 서로 도전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는 좋은 것 같고요.


eKOSTA: 현재 섬기시는 교회에 다민족 사역이 잘 되어 있나요?


김재신: 주로 백인 중심이기 해요. 하지만 선교 지향적인 교회이기 때문에 타민족에 대한 차별은 거의 없는 것 같고요. 때로는 필요에 따라 각 민족별 사역이 이루어 지기는 하더라고요.


조혜진: 저는 미국에 와서 한인교회만 2곳을 다녔습니다. 왜 미국교회를 가지 않고 한인교회를 고집하냐고 묻는 질문에 답을 한다면, 그것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한인교회와 미국교회의 장단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한인교회를 나가는 이유는, 우선 한국인으로 언어의 장벽이 없고, 같은 정서를 가진 한국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규모가 작은 교회를 섬김으로써, 내가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공동체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다시 말해 공동체 자체에 깊이 관련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이민교회에 아쉬운 점은 젊은 사람을 키워내기 보다는 교회 봉사 쪽에 비중을 둔다는 점이고요. 음… 반면에, 미국교회에 한번 가 볼까 하는 생각 드는 점이 미국교회의 장점일 수 있겠는데요, 그것은 환경을 바꿈으로써 내 사고 안에 갇혀 있을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허상을 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다시 말해,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 있는 벽을 꺨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미국교회의 단점이라면, 공동체성의 결여랄까요, 멤버십의 결여랄까요… 특히 외국인으로써 그들 가운데 주인의식을 갖기는 쉽지 않을 듯해요.


김재신: 공감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성경적인 가족적인 공동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eKOSTA: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미국교회는 공동체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왜 미국교회에는 공동체성이 부족할까요?


김재신: 분명 미국교회에도 자신들만의 공동체성은 존재합니다. 물론 교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건 사실인 것 같고요. 하지만, 이런 개인주의적 성향을 반드시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는 것이, 미국교회의 성숙한 크리스챤들의 경우에는, 여유시간을 이용해서 책 읽기나 기도 등에 사용함으로써 신앙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기도 하거든요. 반면, 한인교회에 속하면, 여러 가지 모임에 참석하고 봉사하기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또 한가지를 보자면, 한국사람들은 모여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반면, 미국사람들은 개인적인 기도가 깊어지는 장점도 있는 것 같고요.


eKOSTA: 그렇군요.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미국교회는 자신의 교회에 참석하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을까요? 예를 들면, ‘저 사람들은 자기 민족의 교회가 있는데 왜 여기에 나올까?’라고 다소 이질적으로 여기나요, 아니면 ‘미국에 왔으면 당연히 미국교회를 나와야지, 왜 자기들끼리 모이려고 할까’라는 태도를 보이나요?


김재신: 미국교회의 개인주의 성향으로 볼 때, 별로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요.


조혜진: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있었던 일이예요. 회사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내가 교회를 찾는다고 하니까, 그들이 ‘이 지역에 한인 교회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미국인들도 예전의 경험 상으로 한국인은 한국교회를 나간다고 이미 알고 있는 듯 싶었어요.


최규진: 미국인들은 별 관심이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미국교회를 나갈 때, 그들의 눈에 띠게 되는 건 사실이고요.


조혜진: 저희 회사에서는 다민족들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요. 서로의 문화 차이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지요. 이처럼, 크리스챤들도 서로의 다른 점을 문화적인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5. 일반적으로 볼 때, 직장이나 학교 생활을 하는 가운데, 소수민족으로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혜진: 아주 단순한 이야기부터 한다면, 이름 부르는 문제부터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미국 이름이 없어서, 사람들이 제 이름이 잘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때로는 만날 때마다, 제 이름을 묻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다른 어려운 점이라면, 한국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에, 제가 한국사람 전체를 대표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의 작은 행동 하나를 가지고 ‘한국 사람은 저렇구나’라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걸 보면, 정말이지 적잖은 부담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김재신: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소수민족으로 와 있지만, 우리에게 미국적 사고를 기대하곤 하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를 하니까요. 개인주의의 또 다른 형태라고나 할까요. 그런 점은 우리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우리의 기준으로 쉽게 평가하고 단정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최규진: 일반적으로 볼 때, 소수 민족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기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즉, 그 동안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의 주위를 맴돌면서 중심이 아닌 주변에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eKOSTA: 그렇다면, 우리가 타민족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조혜진: 문화적인 것 뿐 아니라, 역사적 환경에 기인할 것 같고요. 지극히 제한된 선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문화를 쉽게 평가하는 것도 큰 편견으로 작용하겠지요.


최규진: 우선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능한 한 벗어나야 한다는 거죠. 결국, 자신의 IDENTITY를 이 땅 위에 있는 어떠한 기준에 둔다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6. 교회나 직장 (학교)에서 생길 수 있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한민족이 가진 장점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최규진: 우선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능한 한 벗어나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identity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것을 계속 인식해야 하겠죠. 그렇게 하늘에 소속을 둔 자만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테니까요.


김재신: 저도 공감입니다. 한국인으로써의 identity를 버리고,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크리스찬이라는 identity를 가져야만 민족 간의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그런 크리스찬의 identity를 가지고 타민족들을 바라보면, 개인주의 속에서도 남모르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요. 그렇게 할 때, 우리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따스한 정의 문화가 그들의 외로움에 다가가는 큰 도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면에서 화해자로서의 삶을 사는 데는 동양인이라는 인식이 더 성경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혜진: 두 분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한가지만 덧붙이고 싶어요. 모든 문제가 다 그렇겠지만, 문제는 일방적이라기 보다는 늘 쌍방향으로 일어나기 마련이잖아요. 상대방이 저희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도 많이 있겠죠. 하지만, 상대방에게 이해를 받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 같아요. 상대방에 대해 민족적인 벽을 만들고, 정죄하고 판단하기 보다는, 그 사람을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한 영혼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지요.


김재신: 맞아요. 물론 민족 간에 다른 점이 많지만, 같은 성정을 가진 부분이 생각보다 많으니까요.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개념 자체를 버릴 필요가 있어요. 소수 민족이라고 먼저 위축될 필요도 없고요.


조혜진: 다른 민족의 크리스찬에겐 ‘복음’ 자체가 벽을 허무는 도구가 될 수 있어요. 한 사람을 다른 민족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벽을 허물 수 있겠죠. 재신 형제님도 말씀하셨지만, 주류 비주류의 개념이 아닌,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과장하지도 않고 축소하지도 않고 말이죠.


eKOSTA: 오랜 시간 좌담회에 임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우주적 교회

이코스타 2006년 2월호

시대정신이 더욱 절망적으로 되어 가는 이 때에,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편견, 편가름, 이기주의, 개인주의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 갈 수록 참 소망과 화해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간절해지는데, 우리가 이러한 수렁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과연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셨던 일에 주목하게 된다. 주님 스스로가 하나님께 드리는 화목제물이 되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막힌 담들을 헐어버리신 주님의 모습에서 가슴벅찬 소망을 발견한다.”

2006코스타 취지문의 일부이다. 이번호에서는 우리 안에 막힌 담을 허시고 전우주적인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그를 중심으로 한 우주적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1. 그리스도의 사역
엡 4:5 주도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바울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의 하나님 안에서 통일될 것을 촉구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죄로 인해 분열된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신 것임을 강조하며 성도들은 우주적 교회 안에서 하나되어야 할 것을 권고한다. 하나님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권고는 당시의 교회의 분열상을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한편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2. 죄로 인한 분열
분열은 죄인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편하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닐까? 미국사회에서 가장 인종분리(Segregation)이 심한 곳은 교회라고 한다. 백인 교회, 흑인 교회가 따로 존재하며 이들간의 교류는 매우 적다. 그리고 교회는 문화적으로 아주 친밀한 가족과 같은 곳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으며, 분열과 소외가 죄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첫번째 관계는 서로에 대한 비난으로 깨어졌고 둘 사이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로 변질되었다. 좀더 나아가 바벨탑 사건은 공동체 안에서는 죄의 결과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언어의 분열을 통한 의사소통의 깨어짐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흩어짐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상처와 분열, 공동체 간의 충돌, 나아가 민족, 국가 공동체 간의 전쟁 등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며 인간의 죄와 그 결과로 구성된 구조적인 죄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 뿐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기반을 세운 사건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하셨으며 (마 16), 교회의 질서에 대해서 언급하신다. (마18)
한편, 신약교회의 기반이 된 사도행전의 성령강림 사건과 방언 사건은 바벨론의 죄로 발생한 언어적인 장벽이 성령 안에서 통합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약교회의 다양한 형태의 분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한 하나님과 한 교회를 강조함으로써 문화와 언어적 차이를 넘어선 보편 교회의 통일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도다 하니


이러한 신약교회의 비젼은 계시록에서 종말론적 환상으로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종말론적인 비젼은 마침내 구원받을 모든 백성들이 연합하여 한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4. 문화적 분열과 교회
구속사적 관점에서 하나님 백성과 교회의 통일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세속 문화 속에 내포되어 있는 분열의 요소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그리고 제도 교회 안에서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구별을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먼저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내포된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성경적 세계관을 갖고 교정해야할 부분을 발견하고 치유하는 노력을 경주해야하겠다. 세속 문화 속에 존재하고 있는 갈등과 충돌을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평화로 변화시켜야 하며, 교회 내에 존재하는 분열상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민족 사회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각 민족어를 중심으로 모여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의도적으로 타민족과의 교제와 배움의 장을 마련해야하고, 그들간에 존재하는 반목과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하겠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과 포용을 교회의 일차적 과제로 받아들이고 그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하겠다.
아래에서는 교회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성을 향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