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유학생 배우자들의 좌절과 희망 / 강지영, 유미송, 이지은, 최홍은

이코스타 2002년 12월호


eKOSTA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이코스타 유학생 배우자 (F 2 )분들을 모시고 좌담회를 하려고 합니다. 우선 이 좌담회에 참여해 주신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자 그럼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소개 하실 때 한국에서의 생활을 비롯해서 (예를 들면 직장 생활), 가족 관계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지역 (도시인지 시골 인지, 그리고 그 곳의 한인 비율에 대해서도), 그리고 코스타 참여 경험에 대해서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지은 저는 이 지은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 단체인 IVF 학사 회 간사로 몇 년 동안 일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이 곳 New Haven에 와 있으며 아직 자녀는 없습니다. 지금 이 곳에서는 청년들과 함께 교재 하고있고 교회도 그렇고 한인 유학생들을 비록해서 한인들의 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코스타는 이 곳에 유학 온 다음 해부터 계속 참여해서 지금 3년 째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미송 저는 유 미송 이라고 합니다. 1996년도에 유학 오는 남편을 따라서 18개월 된 아들과 함께 미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 해서 지금은 큰 아이가 3학년이 되었고 작은 아이가 3살 반이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캠퍼스 사역을 하는 남편을 돕고 있고 제가 살고 있는 매릴랜드와 주변 지역인 버지니아나 워싱턴 디씨에는 한국 학생들이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코스타는 2000년도에는 참여를 했고 그 이후로는 비록 관심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참석하지는 못 했었습니다.


강지영 안녕하세요, 저는 강 지영 입니다. 사실 저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도에 F1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저는 6살 된 아들과 4살 된 딸이 있고 엄격히 따지 자면 지금 이 F2 모임에는 속하지는 않는 사람이지만 제 나름 대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유학 생활을 돕고 지금 까지 살아 오면서 조금 다른 분들 게 도움을 드리는 보조 역할을 하고자 이렇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유 미송 자매님과 같은 지역인 매릴랜드인데요 이미 말씀 하신 대로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한국 교회를 비롯해서 한국 학생들이 학부는 물론이고 대학원에도 많이 있고 여러 가지 연구 단체들이 많은 관계로 한인 방문객들 역시 많이 있습니다. 코스타에는 1993년에 참석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안 빠지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홍은 안녕하세요, 저는 최 홍은 입니다. 저는 1896년도에 유학 오는 남편을 따라 오하이오로 왔고 지금은 남편의 직장 때문에 이 곳 텍사스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아들이 둘 있습니다. 오라이오 는 학생들이 많은데 비해서 이 곳 텍사스는 교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희 들은 침례 교회에 출석 하고 있고 아무래도 학생들 보다는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학생으로 이 곳에 와서 정착을 하고 살고 있는데요, 처음에 유학 생활 시작 할 때 여려 왔던 점들이 참 많았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특히 정체성 (self-identity)애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학생 자신도 이런 문제가 있었다면 배우자오 오신 분들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있었으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특히 배우자로 미국에 오게 되면 아무래도 활동이 자유롭지 않다 보니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혹 그런 갈등을 경험 하신 분들이 있으신지요? 만약 있다면 그 경험담을 나누어 주시고 또 어떻게 극복 하셨는 지에 대해서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미송 제 경우에도 처음에 그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공부하려 떠나는 남편과 함께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에 가서 배우고자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까 유학생이라는 신분에 한계가 있더군요.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고 어디를 가고 싶어도 차가 한 대이다 보니까 그리고 아이들이 있는 관계로 늘 집에 있어야만 하는 상황 이었으며 무엇을 배우고 싶어도 언어 적인 문제가 있고, 차가 한 대이다 보니까 라이드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맡길 만한 곳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남편은 공부를 해야 하는 입장이고 저는 할 수 없이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제 자신이 왜 미국에 왔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고 시간을 헛되게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점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는 남편에 비해서 저는 점점 퇴보해 가는 생각을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eKOSTA 아무래도 배우자 신분이다 보니 많은 제한이 있었겠군요. 다른 분들 나누어 주세요?


이지은 저는 직장 생활을 한국에서 1년 정도 하다가 결혼해서 왔는데 물론 결혼 후에는 직장을 그만 두고 또 미국으로 오면서부터 저를 아끼는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져야 했습니다. 결혼 하면 하나 아닌 둘이라서 좋았지만 “니” 라는 정체성을 박탈당하는 경험이 들었습니다. 유 미송 자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F 2 신분이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고 차가 한 대이다 보니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으며 언어적인 스트레스로 인해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남편과도 많이 이야기를 나누어 봤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저에 대한 정체성 문제와 또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인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최홍은 저는 처음에 올 때 큰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 당시가 매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다른 분들처럼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한 6개월 동안 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후, 교회 일을 하게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구제를 받았고 다른 좋은 분들이 라이드도 잘 주셔서 그럭저럭 잘 지낸 것 같습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이런 단점에 비해, 유학생 배우자의 신분으로 있게 되면 장점도 있는 데요, 바로 그것은 유학생 배우자 역시 유학생들 만큼 potential이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self-identity crisis를 넘어서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 (한인 그리고 미국 사회 을 돕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여러 유학생들에게 영향 혁을 발휘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경험담이 있으신지요?


유미송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는 동안 성경을 읽으면서 “미국은 광야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는 동안 하나님을 더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저의 답답함이나 갈등 하는 모습들이 소명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 자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가치 없는 삶이 아니고 또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면서 자유 함을 얻게 되었으며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매들이나 혹은 F2가 아닌 방문 비자나 사업으로 오신분 들의 부인들과의 만남을 가지면서 미국은 광야와도 같고 이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분들과 자주 만나서 삶의 이야기, 그들의 어려움들을 들어 주고 라이드도 주며 또 더 나아가서는 성경 공부나 QT, 그리고 기도 제목들을 함께 나누면서 내가 이 분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나의 어려웠던 시절과 극복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곤 했습니다. 아마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시키시는 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지요.


이지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이를 보시는 면서 말씀 보는 일이 쉬우셨나요?


유미송 네 저의 아이가 TV를 좋아하다 보니 도서관에서 일주일 동안 읽을 책들과 비디오들을 빌려 놓고 보던 생각이 나는데 아마 그때 기독교 서적을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로 인해서 말씀 보는 일 자체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아무래도 유 미송 자매님께서 F2이셨기 때문에 다른 F2분들이나 배우자분들을 이해하시기가 편하셨지요?


유미송 네, 그렇습니다.


이지은 제가 1년 동안 QT하면서 하나님께서 구해 주셨던 일이 있습니다. F2는 아닌 어떤 자매와 만나서 원투원을 하게 되었고 큐티도 하며 기도 제목들을 나누면서 가까워 졌습니다. 이 자매 외에도 다른 몇 분들의 자매들과 만나서 어떤 모임을 시작했는데요, 이 모임을 통해서 제 자신이 어려웠던 시간들을 잘 극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 미송 자매님은 혼자서 극복하셔서 다른 분들을 돕고 계시지만 저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제 자신의 어려움들을 극복한 것 같습니다. 주 중에 한 번씩 모여서 큐티도 하고 말씀도 나누지만 일 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게 되더군요. 만나서 시장에도 같이 가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으며 또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또 새로 오는 유학생 부부들에게는 선배로써의 격려와 도움이 되는 말들을 해 주곤 합니다. 아무래도 이 모임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커 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 정말 저에게 너무나 귀한 모임을 주셔서 개인적으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eKOSTA 유학생 배우자 분들은 보통 몇 명이나 모이세요?


이지은 한 11명 정도 모이는 것 같아요.


eKOSTA 매우 많이 모이시네요.


이지은 네, 많이 모이는 편이에요. 모이는 사람들 중에서 이야기들을 들어 보면 개인적으로 말씀 보기가 참 힘들 다는 이야기들을 하십니다. 저희는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헌금으로 babysitting비를 받거든요, 그래서 좀 큰 아이들은 따로 babysitter에게 가고 엄마들끼리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홍은 이 곳에 온지 약 3개월 정도 되는데요, 아무래도 교민들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까 맞벌이 부부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콜롬버스 오하이오에 있을 때와는 달리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유학생들이 많았던 지역에서 교민들이 많은 지역으로 오다 보니 대부분의 교민들은 맞벌이 부부라서 그런지 하루하루를 매우 바쁘게 지내고 계셨습니다. 콜롬버스에서는 교회 일도 하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는데 교회의 일이 결국 저희 삶이라 생각하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서 좀 더 깊은 교재를 나누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힘든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 것 같네요. 지금 이 곳에서 역시 이럼 비슷한 모임을 하나 만들어서 저희 집에서 모이고 있는데요, 같이 모여서 말씀 보고 이야기들도 나누고 기도 제목 나누고 있는데 이 모임들이 앞으로 꾸준하게 계속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eKOSTA 네 참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어 주고 계신데요, 강 지영 자매님! 잘 듣고 계시죠? 자매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생각과 의견들을 갖고 계신지요?


강지영 지금 참여하신 분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니까 모두들 자기의 삶에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들을 잘 극복하시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F 2 분들 역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 같고 말씀하신 내용들에 저 역시 공감을 합니다. 특히 아이들 키우시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셨는데요, 첫째는 아이들 때문에 무엇을 하시기가 어렵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고 반면에 비록 아이들은 있지만 이 시기를 잘 넘겨서 아이들과 무엇을 성공적으로 잘 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특히 어린 아이들을 어디에 데리고 가면 환영 받는 것 보다는 일단은 불편한 존재가 될 수도 있는데요, 그래서 아이들 때문에 무엇을 하기가 어렵다 혹은 나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경우가 쉬운데 그 것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동 역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면 아이들에게도 또 나에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아는 어떤 자매는 교회에 중보 기도하러 가기 위해서 아이를 어디 맞길 생각을 했지만 그것 보다는 그 아이와 함께 그 아이를 위해서도 중보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쉽게 자기를 포기하지 말고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거나 찾기를 권합니다. 아이에게도 좋고 자기 자신에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지은 네 추가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유학생 배우자로써의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다는 점이 다른 공부 하시는 분들에 비해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주위에서 너무나 잘 하고 계신 분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매주 수요일 마다 play group이라는 모임이 있는데 자신들이 전공한 분야나 혹은 특기들을 살려서 아이들에게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시고 계신데요, 예를 들어서 미술을 고부하신 분은 미술을 구연 동화를 하셨던 부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들을 들려 주시는 분들이 있고요, 또는 노래도 가르쳐 주고, 이렇게 매주 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eKOSTA 저를 비롯해서 이 좌담회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코스타에 참여하시;ㄴ 적이 있는데요, 티 엠 코스타 유학생 배우자 모임에 참여해 보신 적이 있나요? 모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장 단점 그리고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나누어 주시겠어요?


이지은 저는 배우자 모임 처음부터 참석을 했었는데요, 솔직히 2년전까지는 좋은줄 몰랐어요. 작년이나 올해 같은 경우 목요일 오후에 모이는데, 모여서 참 많이들 우세요. 예를 들면 한 자매가 유산했던 경험을 말씀하시면 또 동감하시는 분들이 울기 시작해서 다들 울고, 또 정체성 문제를 얘기하시면 또 다 그때 생각이 나서 울게 되고 그야말로 울음바다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좋긴한데, 제 개인적으로는 조금 일찍 모였으면 좋겠어요. 한 화요일쯤 모여서 한번 실컷 울고 나서 식사시간이라든가 휴식시간들에 몇몇분들이라도 모여서 깊이 교제할수 있도록 말이예요. 그러면 코스타 이후에도 좀더 깊게 교제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실 티엠코스타 보드에 보면 배우자 모임이 있는데, 저도 코스타 이후에 메일을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잘 활성화가 안 되고 있는데, 뭐 실제 삶이 바쁘고 또 아이들을 가지신 분들은 컴퓨터에 앉아서 글들을 쓸 여유가 안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제 생각에는 티엠코스타가 사실 전반적으로 너무 글들이 딱딱하고 학문적이라 무거워요. 그래서 잘 접근이 안되는것 같아요.


eKOSTA 이지은 자매님은 티엠코스타의 배우자 모임에 대한 비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지은 글쎄요. 저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구요. 아직도 비전을 찾아야 하는 단계가 아닌가 생각이 되요. 저도 정말 롤 모델이 되는 분들을 알고 싶구요.


강지영 저도 올해 배우자모임에 참석했는데, 많이 울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울음이 참 필요한것 같아요. 가정주부들에게는 그런 울음이 참 필요한것 같아요. 시간이 1시간 반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한 15명정도가 참석했었는데, 한번씩 얘기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죠. 두번에 나눠서 모이게 하든지 최소한 어느정도의 시간 확보가 필요한것 같아요. 그리고 이민자 사모님이 오셔서 따뜻함으로 또 개인적으로 삶과 경험을 통해 쌓여진 신앙에 기반에 두고 말씀을 해 주시니까 참 좋았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모임을 위해 좀더 준비와 연구가 필요한것 같아요. 미리 사전에 다루어야할 내용들을 정리한다던지, 몇몇 사람이 준비하던지 하는 방법으로 좀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웹을 통한 교제는 사실 한계가 있는것 같아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 주부로서 컴퓨터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데 웹 보드를 통해 글을 올리고 교제하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쉽지 않을것 같아요. 그리고 코스타에 온 많은 배우자들도 잘 홍보가 안 되어서 15명 정도밖에 오지 않았는데, 코스타 보이스 같은 매체를 이용하던지 해서 이모임을 잘 알리고 권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 있도록 하는것도 고려해야 될것 같아요. 꼭 F2가 아니더라도 저처럼 공부하는 주부들도 참석할수 있구요. 또 그때는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코스타 이후 웹보드의 모임등에 참여할수 있도록 홍보와 알림등도 아주 중요한것 같아요.


eKOSTA 준비와 홍보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요, 코스타 기간과 전후에 어떻게 준비하고 홍보할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강지영 예를 들면, 티엠코스타 같은데서 인문사회 같은 분야는 한두분들을 정해서 발제도 준비하고 하는데 배우자 모임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사실 그냥 모여서 삶을 나누고 또 울면서 경험했던 일들을 얘기하고 하는것도 좋아요.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매년 이 배우자 모임이 지속될것을 생각해 본다면, 준비해서 사회도 보며 모임을 이끌 사람들을 발굴하고 세우는 일도 중요하고, 또 만나서 개인적인 삶과 경험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생각해보면 조금더 세부화 시켜서 얘기할 주제가 많은것 같아요. 예를들면, 영적훈련, 금전 사용문제, 자녀 양육, 여가활용, 성경공부 모임, 그리고 공부하는 주부들의 문제 등 아주 다양하고 사실 주제 하나하나가 많은 준비와 연구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홍보 문제는 코스타 이후 티엠 코스타 웹에서의 모임에 좀 더 많은 배우자들이 참여할수 있도록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올해 같은 경우도 15명 이외에 많은 배우자들이 왔었는데도 티엠코스타 배우자 모임을 잘 모를것 같아요. 그리고 역시 웹지기들을 세우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모임들을 해 나가고 또 주위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유미송 사실 저는 코스타 배우자 모임에 한번도 참석은 못했지만, 지은 자매 얘기를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세미나 시간에 배우자들만을 위한 세미나 시간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세미나 시간에는 아이들을 맡기고 참석할수 있으니까 아이들에게서 자유로울수도 있구요. 그리고 지영자매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여러 필요한 주제들을 가지고 세미나를 해도 좋을것 같구요. 그리고 F2만을 위한 나눔의 시간들을 갖는다거나 치유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좌담회를 하고 하는 것은 그만큼 지금 유학생 배우자에 대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다는 얘기인것 같은데, 그렇다면 배우자들의 필요성을 파악하고 예를 들면 지영자매가 말씀하셨듯이 금전적인 문제, 자녀 양육의 문제, 여가활용의 문제들에 대한 새미나를 하면 근본적인 문제들은 사실 영적인 것인데, 영적으로 어떻게 그런 문제들을 바라볼수 있는지 등을 알려주고 또 토론하고 하는 세미나를 만드는 것도 좋은 생각이란 생각이 드네요.


강지영 예, 그런것이 가장 이상적인것 같아요. 사실 코스타에서 F2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것이 최근 2년정도밖에 안되거든요. 그 전에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였었던것 같아요. 이제는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까 여러 면에서 낳아지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관심과 필요에 따라 세미나 등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준비된 강사분들을 찾는 것이 중요한것 같아요. 지금 현재는 없지만 그런 분들이 이제는 나타날것이라고 생각되요. 하나님이 준비된 강사들을 보내주시겠지요. 이코스타: 예,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배우자 분들은 아무래도 제약이 많고 그래서 활동도 제한되기도 한데, 코스타 준비하는 측에서 어떻게 하면 가능하면 제약없이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은혜받을수 있도록 도울수 있는지, 즉 건의사항 같은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유미송 저도 코스타에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했었는데요,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정신없이 보내다가 돌아와서는 연락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전화번호도 받아왔지만 역시 전화 한 통화 하는것이 그렇게 수월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때는 코스타 전에 f2들을 소개하고 만나서 정보를 주고 받고 하는 것도 좋을수 있다고 생각해요. 티엠 코스타 웹등을 이용해서 소개도 하고 기도제목도 나누고, 또 세미나에 대한 홍보도 해서 미리 마음을 준비할수 있도록 말이예요. 그러면 미리 이름도 알고 또 관심과 생각을 어느정도 알게 되니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코스타를 갈수 있고 또 가서 더 깊이 교제하고 돌아오면 코스타 후에도 계속해서 교제할수 있을것 같아요. 등록을 받을때 F2 명단을 확보해서 메일을 돌린다거나 해서 참여를 유발하면 되지 않을까요?


강지영 좋은 생각인것 같아요. 티엠 코스타 보드를 잘 활용할수 있도록 미리 홍보를 잘 하고, 등록을 받을때 그런 웹이 있으니까 방문해서 잘 활용하라고 한다면 잘 될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예를 들면 한국에서 미국에 처음 올때 웹을 막 찾아서 어떻게 정착하는 문제등을 상담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잖아요. 그것처럼 등록때 그런 웹보드들이 있으니까 방문도 해 보고 서로 질문과 답도 하고 생각도 주고 받으면서 교제를 쌓아 나가면 참 좋을것 같아요.


이지은 코스타를 준비하는 분들에 대한 제안들을 들으면서, 또 앞으로 코스타에 관심을 갖고 계신분들을 염두에 두면서 말씀을 드리면, 단기적으로 가정사역 트랙처럼 배우자만을 위한 트랙같은것을 만들기가 힘이 든다면, 배우자들만이 모여서 함께 말씀을 듣거나 할수 있는 시간이 있는것도 좋을것 같아요. 사실 코스타는 유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말씀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고, F2들은 최소한 한번은 걸르는 작업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니 세부적으로 세미나등을 나눠서 해도 좋고 더 나아가 트랙 같은 것을 만들면 더 좋겠고, 그냥 배우자 전체를 놓고 따로 말씀을 들어도 좋을것 같습니다.


강지영 저는 작년과 올해 상담실에서 섬겼었는데요. 상담내용들이 가정문제, 개인적인 성격이나 자존감 문제, 신앙 상담 등이 주였었는데, 다른 상담 내용은 홍보도 하고 했는데, 유학생 배우자에 대한 홍보는 한번도 안한 생각이 나네요. 내년 부터는 배우자로서 전반적인 상담도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KOSTA 네, 지금 까지 너무나 좋은 말씀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유학생 배우자 분들 역시 유학생들처럼 정말 무한한 가능성 있고 그 가능성을 개발하기 위해서 코스타가 앞으로 해야 할 사역 들이 많은 것 같네요. 늦은 시간 까지 열심히 참여해 주신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인터뷰] 유학생 배우자 생활, 저도 가슴이 아리죠. 그러나… / 이민자

이코스타 2002년 12월호

eKOSTA 12월호 이달의 초점으로 유학생배우자에 대해서 다루는데, 이렇게 이민자 사모님을 만나서 인터뷰하게 된것을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유학생 배우자 선배로써 또 기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것에도 참 감사를 드립니다. 우선 코스타와 관련해서 본인 소개를 좀 해 주시지요.


이민자 저는 1980년부터 87년까지 유학생 배우자 생활을 했구요. 음악을 전공했는데, 결혼해서 사내 아이 두명 있을때 남편을 따라 도미를 했었지요. 그리고 유학기간중 남편과 함께 보스턴 지역의 Gate Bible Study를 섬길수 있게 되었고, 그 이후 코스타가 생길때부터 감사하게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남편과 함께 코스타에서 주로 소그룹 성경공부에 대한 세미나를 거의 매년 하곤 했습니다.


eKOSTA 전체적인 유학생활을 돌아보시면 그 때가 어땠습니까?


이민자 지금도 유학생들이 그렇겠지만, 그때를 돌이켜보면 경제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외롭고, 또 육체적으로도 아프고 연약하던 시절이었던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주위의 이웃과 함께 서로 모여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하던것이 참 기억이 많이 나네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부대끼면서 서로 위로받고 힘을 얻고 지낼수 있어서 참 감사할수 있었던것 같아요.


eKOSTA 힘들고 어려웠던 점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할수는 없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와 구체적으로 어려웠던 점들을 좀 나눠주실수 있는지요.


이민자 저희가 7년동안 있었는데요, 어느때가 특별히 힘들었다고 말하는것이 적합지 않을만큼 고비고비 어려움이 있었어요. 글쎄요, 꼭 꼽으라고 한다면, 처음 미국에 도착했었던 첫 학기와 아빠(남편을 이렇게 지칭하십니다)가 종합시혐(General Exam)을 칠때 였던것 같아요. 첫학기에 아빠는 아빠대로 학교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Kindergarden에 적응하느라 힘들고 저도 역시 다른 언어와 문화속에서 힘들어하는 아빠와 아이들을 돌보느라 힘들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그때 좋은 교회가 없었고, 주위에 교제할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것 같아요. 성경공부 모임도 없고, 또 교회에 가서 힘을 얻지도 못하면서, 저 자신의 신앙도 바닥을 치면서 너무 힘들었었는데, 한학기 지나면서 교제할 사람도 찾고, 신앙생활이 어느정도 회복되면서 전반적으로 안정이 되어가고 되었지요.


eKOSTA 첫학기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고 힘드셨다고 했는데요, 지금도 많은 유학생들과 배우자들이 역시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인것 같아요. 새로운 언어와 문화와 사회에 적응하느라 힘들기도 하지만, 또 많은 유학생 배우자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하면서 자아정체감을 찾지 못해서 많이들 힘들어 한다고 하는데, 사모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셨는지요?


이민자 그 부분이 나오면 저도 가슴이 아리죠. 그 부분때문에 저도 많이 갈등을 했고, 울기도 하고 좌절도 했었지요. 저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많이들 그랬구요. 저희 동네는 워낙 학문에 대한 성취와 욕심이 극에 달했던 곳이라 매학기 입학사정(admission)이 되는 때마다 커다란 여파가 몰려오곤 했었죠. 어느 집 아내가 입학을 하게 되었다. 누구누구 엄마는 part time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촉각이 곤두 세워졌고, 학기때마다 열병아닌 열병을 앓고는 했었죠. 그리고 저도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기도 했구요. 또 많은 배우자들이 자기 아이들도 갖기 전에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남의 아이들 돌봐주면서 기저귀를 갈고 하는 일들을 할때 참 많이 힘들어들 했었지요. 아빠들은 자기 성취를 하고 있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내들은 집안일이나 굳은 일만 했어야 되니, 자연스럽게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수 밖에 없었죠. 저도 예외는 아니었구요. 그럴때는 별로 믿음도 도움이 안 되더라구요. (함께 웃음)


eKOSTA 유학생 배우자 선배로서 지금 현재도 수많은 배우자들이 같은 고민과 갈등들을 겪고 있는데, 사모님이 시간이 지난 지금 후배들에게 주실수 있는 조언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그리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지만 자아 정체감을 찾아갈때 바람직한 예와 그렇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를 좀 예로 들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민자 결국에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경우를 바람직하다거나 실패했다고 할수는 없는것 같아요. 제 얘기를 하자면, 제가 그 시기를 지날때와 시간이 지난후에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 때 당시에는 제가 아내로서 남편을 따라간 것이기에, 어떤것 보다도 남편의 학업이 우선이고 우선 순위가 높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학업을 돕고 남편이 학위 잘 마칠수 있도록 남편을 내조하고 남편이 못하는 부분들까지도, 예를 들면 아이들 돌보는 것들까지도 남편대신 내 혼자서 가능한한 아이를 키우고, 모든 살림을 잘 꾸려나가는 것이 남편을 잘 돕는 것이고 하나님이 내게 맡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조금 자란 후에 자아 정체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수도 있었고, 또 제 자신을 위해서 투자를 할수 도 있었어요. 남편의 배려로 아이들이 학교 가 있는 시간에 좀 배움의 시간을 가질수 있었어요. 그 기간동안에 개인적인 야망이나 욕심 때문에 주어진 환경을 뛰어너머 무리하게 더 나아가지 않은 것에 개인적으로 참 감사해요. 만약 더 나아갔었더라면 제가 무리수를 두었을것 같아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도 문제가 생길수도 있지 않았나 생각이 되요. 하나님에게 받은 사명과 달란트에 대해 나중에 하나님이 너 어떻게 사용했니? 라고 물으실때 할 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가능한한 남편과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제 전공을 부분적으로나마 공부할수 있었던 것에 개인적으로 참 감사를 해요. 반면에 여러 환경과 여건을, 예를 들면, 경제적인 여건, 아이들 양육문제, 가정 문제를 뒤로 하고 무리하게 공부를 했던 부분들도 주위에 많았어요. 그래서 자아 정체감도 찾고 성취도 이루었지만 지금와서 보면 남편과의 문제, 아이들과의 문제등을 종합해 보면 잃은 부분도 참 많더라구요. 부부라는 이름만 있고 함께 동거는 하지만 전혀 부부답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렇지는 않더라도 서로 참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아 아직도 극복되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부부들도 많아요.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위험하기까지 한 경우를 많이 봐요. 모든 경우를 일반적으로 묶어 어느것이 잘 하고 못했다 할수는 없지만, 제 개인적으로 아내로서 또 돕는 배필로서,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엄마로서 제 할일을 할수 있었던 것이 참 감사해요. 그리고 여러 엄마들과 함께 성경공부도 하면서 자녀 양육을 함께 고민하고 격려하고 노력했던것이 저로서는 참 감사해요.


eKOSTA 자아정체감을 찾지 못해서 갈등하는 많은 배우자들이 한국에서는 그래도 능력있고, 유능한 사람들이 남편 혹은 배우자만을 바라보면서 살려니 그 환경때문에 자아를 잃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은것 같은데, 두 가지로 바라볼수 있는것 같아요. 외부 환경을 바꾸는 방법, 즉 공부를 한다거나 자아 성취를 위해 무엇을 하는 방법, 그리고 내부적 사고 전환이나 시각의 차이, 즉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면서 자아 정체감 문제를 극복할수 있는것 같은데, 사모님께서는 두 가지 경험을 다 하신것 같은데, 예를 들면 주어진 환경에서 하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또한 동시에 포기하신 부분이 있다는 얘기잖아요? 사모님과 또 주위에 사람들이 이 두가지 외부적 환경 변화와, 내부적 시각의 변화를 통해 자아 정체감을 극복한 부분들을 좀 나누어 주시죠. 물론 두 가지가 흑백으로 딱히히 나눠지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요.


이민자 시각의 변화를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것 같아요. 내가 공부하는 유학생의 배우자로 왔기 때문에 이 기간동안 남편이 공부하는 동안에 내가 내조를 해야하고 가정을 돌보고 가사일을 하는것이 자신의 삶인데, 이것이 소모적이고 그 삶에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보조자로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고통스럽고 지겹고 고난의 연속이며 정말로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게 느낄수 밖에 없는것 같아요. 지적해 주신대로 이 기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훈련되고 배우는 기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름대로 하나님 안에서 사명과 소명을 잘 정립할수 있다면, 그 시간동안 누릴수 잇는 축복들이 굉장히 큰것 같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설겆이나 하고 시장이나 보고 아이들이나 키우는 하찮아 보이고 소모적인 일일수 있지만, 내가 믿음안에서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순간순간 하나님의 의지하며 사는 바르고 건강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수 있는 여러가지로 믿음의 귀한 훈련의 시간이 될수 있는것 같아요. 그리고 믿음으로 바로 선다면 남편을 내조하는데 있어서 말씀과 믿음으로 남편을 잘 세우고 정말 돕는 배필로 잘 도울수 있는것 같아요. 그 다음에 내가 잘 서 있으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붙여 주시는 것 같아요.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 믿음으로 잘 극복하게 된다면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나눌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하루 하루를 정말 오늘은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하시는구나, 그리고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 였구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정말 기쁘게 살아가며 하나님과 깊이 있는 교제로 나아갈수 있는 기간이 될것 같아요.


eKOSTA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당위적으로 그래야만 된다고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상황속에 갇혀서 아는것과는 다르게 실제의 삶과 느낌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는것 같아요. 사모님은 어떻게 이런것을 극복하고 믿음의 시각으로 바꾸고 다른사람들에게 믿음으로 극복한 간증을 통해서 도움과 힘을 주실수 있으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민자 쉽지 않은 얘긴데요. 저도 많이 실패를 했고, 많이 힘들어 했고, 또 울기도 했어요. 한가지 분명했던건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면서 나아갈때, 그 순간순간이 내가 원하는것과 내 야망과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그래 오늘 지금 너를 이자리에 세우셨다면 그 시각으로 바꾸어서 , 이신간을 순종하고 기쁘고 즐겁게 섬기고 감사함과 기쁨으로 하는것 자체가 하나님께 낳아간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내 자신을 향해서 하면서, 지금 이순간이 하나님께 드려질수 있고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남편한테 밥한끼 맛있게 하면서도, 또 주위의 다른집 아이를 봐 주면서도 순간 순간 기쁨으로 이것을 통해 짜증내지 않고 하나님께 낳아간다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려고 순간순간 내 스스로 노력 했었던것 같아요. 그것을 위해서 계속해서 말씀과 기도, 그리고 교제를 햬야 되는것 같아요.


eKOSTA 성경공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처음부터 성경공부가 있었을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성경공부가 시작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이민자 제가 아까 말씀드린대로 주위에 믿는 분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그때에는 한교회를 참석하고 있었는데, 주일날 가면 사람들이 많은데 교회만 나오면 믿는 사람들이 안보이는거예요. 자기가 믿는다는것을 밝히지도 않구요. 그렇게 한 학기를 힘들게 지나면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두번째 학기가 시작 되면서 모임을 시작했어요. 안 믿는 분들 두세분과 함께 성경을 읽고 얘기하는 모임을 시작을 했는데, 한 두달이 지나니까 제가 나가 떨어져 모임을 더이상 할수 가 없었어요. 그분들 앞에서 믿는 사람으로서 본을 보일수도 없었고, 제 자신이 너무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안 믿는 분들과만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방학이 되면서 모임을 마무리하고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있었어요. 뭔가를 하기는 해야될것 같은데 할수가 없었어요. 그러던중 겨울이 되면서 남편과 함께 모임도 허락하시고 또 우리가 영적으로 살 방법을 보여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마침 홍정길 목사님이 보스톤을 오셨어요. 그리고 그때 쯤에는 저희가 믿는 가정을 너댓가정 정도 만날수 있었구요. 그리고 열심히 믿으려고 하고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분들이었는데, 그 때쯤 다함께 미국 교회를 나가게 되었어요. 그때 홍목사님이 오후에 오셔서, 저녁에 저희 너댓가정을 모아놓고 말씀을 해 주시고 바로 가셨어요. 그래서 힘을 얻고 그때 모인 가정들을 중심으로 비록 부족할지라도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자고 해서 시작이 되었어요. 아마 제 생각으로는 남자분들을 포함한 가정이 모이는 모임보다 아내들을 중심으로 모인 모임이 조금 더 일찍 시작되었을 거예요. 그래서 계속 모일수 있었고, 저희가 떠날때 까지 계속 되었고, 몇해전에 방문했을때에도 그 모임이 지속되고 있더라구요.


eKOSTA 사모님이 성경공부를 하시면서 자아정체감을 찾아 나가셨고 또 그런 과정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하셨는데, 그리고 또 함께 모이시면서 주위에서 우울증이나 힘들어 하시던 분들이 도움을 받고 변화를 받은 분들이 있었을텐데, 그러한 경험들을 좀 말씀해 주세요.


이민자 뒤돌아 보면서 한가지 후회하는 것은 그때 당시에는 제가 잘 참고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하나님보시기에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믿고는 무조건 제가 참고 견디고 했어요. 지금와서 느끼는 것은 분에 과도하게 참는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힘들고 지치고 할때 감정을 표현하고 불평도 해보고 하는것이 건강한 자아를 갖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제가 그렇게 알고 믿었기 때문에 저도 그랬고 또 주위의 분들에게도 그런식으로 권유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한분이 생각나는데, 중매로 남편과 결혼한지 1달만에 온 나이어린 부인이 한명 있었어요. 한국에서 공부도 하던 자매였는데, 좋은 학교에 집안도 괜찮고 하니까 좋은 남편감이다 해서는부모님의 중매로 결혼에 대한 준비도 안되고 남편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에 와서 많이 힘들어하던 자매가 있었어요. 한두달 후에 가정이 위기 상태에 있었는데, 저희 성경공부모임에 초대해서는 복음을 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고 비록 늦었지만, 아내로서의 역할이나 가정의 중요성등을 깨달아 가면서 다시 가정이 세워지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공부 잘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 후에 청년 사역을 잘 해 가고 있는 그분이 생각이 나구요.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결혼하면서 믿음생활을 안 하거나 교회를 떠난 분들이 저희 성경공부에 참석하면서 믿음을 회복하고 나중에 남편까지도 성경공부 모임에 초대해서 함께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성장해 가는 가정들이 참 많았어요.


eKOSTA 사모님께서 무조건 참는 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닐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아직도 많은 유학생 배우자들, 특별히 믿음이 좋은 신실한 분들일수록 더 참는것이 좋은 믿음의 결과라고 생각하실것 같은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며 건전한 자아상을 가질수 있는지를 좀 자세하게 예를 들어가며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민자 부부관계를 예로 들어 볼께요. 그때 제 생각에는 남편의 학업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학업에 방해되는 모든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다 제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육체적으로 힘든것까지도 포함해서요. 남편이 공부해야되고 늘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더구나 저희 남편같은 경우에는 신앙생활도 해야 되니까요. 금요일 저녁에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고 저희가 성경공부 교제를 준비하기까지 했고, 또 금요일 안 나오는 분들은 토요일에 심방아닌 심방도 하기도 하고, 또 주일에는 새벽부터 성가대와 주일학교도 섬기고, 거기에 주중에는 성경암송모임등이 있었으니, 같은 주어진 시간에 공부도 해야되니 그외의 모든것은 제가 마땅히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는 모든 가사일과 힘든일까지도 다 제가 했어요. 제 생각에는 그것이 남편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저는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아이들은 아빠를 잃은채고 살았으며, 저도 남편을 거의 잃어버렸던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불평과 원망이 쌓이게 되고, 무엇보다 나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고, 나는 귀한 존재가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들이 잠재의식속에 쌓이게 되었던것 같아요. 그렇게 유학생활을 마치고 나니까 겉으로는 다 괜찮았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잘 마친것 같은데, 제 내면 깊은 곳에서는 상처로 남아 있는 부분들이 많더라구요. 남편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쌓여 있었고, 표면적으로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기도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당신은 다 이루었잖아? 그런데 나는 누구고 무엇을 했지?’ 하는 생각들이 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에는 건강한 자아상을 찾아가고 있고, 그런면에서 돌이켜보면, 만약 내가 그때 생활로 돌아갈수 있다면, 남편이 학업을 해야하고 영적 지도자로 훈련을 받으며 섬겨야 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가정에서도 남편으로서 아이로서도 함께 훈련받고 성장해 나갈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애써서 그런 부분들을 이뤄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함께 부부가 대화해 나가면서, 최대한 할수 있는 부분들을 함께 하고 도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비록 그 당시는 더 많이 부딪히고 싸우기도 하겠지만, 그리고 학위가 늦어질수도 있겠지만, 건강한 부부로서 가정으로서 하나님 안에서 자라 나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온전한 신앙인으로서 학업성취와 영적 활동도 해야하지만, 가정 생활도 함께 병행해야할 의무가 있고, 그런부분도 함께 자라나가야 되는 것이었어요. 조금 학위가 늦어지더라도 그때 그 기간동안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 그런 훈련을 함께 해 나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남편을 위해서도, 또 저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서도 꼭 해야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시한번 그런 기회가 주워 진다면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eKOSTA 예, 너무 좋은 말씀인것 같네요. 정리를 하자면, 유학생들이 학업과 영적인 부분에서 훈련받고 자라야 되지만 동시에 그 기간중에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정에서의 역할도 함께 훈련받아 나가야 되고 그것을 위해서 유학생들도, 또 배우자들도 서로 대화하며 최대한 함께 노력해야 될 부분이라고 말씀하신 거군요. 많은 유학생이나 유학생 배우자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인것 같아요.
이제 좀 주제를 바꿔서 사모님이 코스타 거의 초기부터 유학생 배우자로서 그리고 또 한국에 돌아가신 후에도 강사로서 거의 매년 오시는데, 배우자로서 코스타를 참석하시면서 느끼신 점들을 좀 말씀해 주세요. 특별히 어려웠던 점들을 중심으로요.


이민자 코스타가 1986년에 처음으로 생겼어요. 저희는 남편이 논문 준비 때문에 1회에는 참석을 못했구요. 논문이 마무리된2회때부터 참석을 했었어요. 그 당시에 저희가 있었던 지역에서는 말씀에 바로선 한국 교회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다른 지역에서도 역시 좋은 한국교회가 참 드문 시절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지역교회에서 다들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다가 모이니까 정말로 너무나 좋았어요. 코스타를 가면서부터 신앙의 동지들을 만날것들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고, 저기 멀리서 집회장소에 들어서면서부터 눈물이 쏟아졌고, 또 목사님들이나 강사님들은 그런 한사람 한 사람들을 안아주며 맞아주시기도 했구요. 그때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배우자로서는 솔직히 역시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리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많은 말씀과 세미나에서 초점들이 공부하는 유학생들에 대한 전공이나 비전 등이였고, 그러다보니 배우자들은 좀 소외감을 느꼈지요. 사실은 누가 소외를 시켰다기 보다는 자아정체성이 서 있지 않은 배우자로서 스스로 그렇게 느낀거겠지요. 그런점들이 좀 어려웠던 점이예요.


eKOSTA 사모님이 말씀하신 부분들이 충분히 동의가 되구요, 사실 두달 전에 이코스타에서 조모임과 조장 사역에 대한 좌담회를 하는 가운데 나눴던 얘기들에서 코스타 기간동안에 부부싸움도 하기도 하고 배우자들이 많이 소외되고 힘들어 한다는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코스타 같은데 와서도 남편은 은혜받고 또 섬기고 하는데, 아내들은 아이를 전적으로 맡아서 돌봐야 하고 남편까지도 챙기다 보니 자기들은 은혜도 받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고 했던 얘기들을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조장으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이것 저것 섬기시는 열정이 있고 헌신된 부부들가운데 더 많았던것 같구요. 그렇다면 코스타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이런 부분들을 도울수 있고, 또 코스타를 참석하시는 배우자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하며 이러한것을 극복할수 있는지 좀 조언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민자 제가 코스타 2회에 참석했을 때는 지금처럼 숫자가 많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아이가 있었던 유학생 부부들은 더 적었구요. 그래서 아이있는 엄마들끼리 같은 방을 쓸수 있도록 방이 배정이 되었어요. 물론 그랬기 때문에 조모임도 잘 못하고 더 힘들고 산만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유학생 부인들끼리 함께 몇일씩 방을 썼을때, 그래도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지내면서 위로도 받고 설교와 세미나 등을 하면서 받았던 은혜들을 나누면서 서로 많이 의지가 되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아이들을 재워 놓고 밤새워 교제하며 은혜들을 나누고 했던 것들은 너무나 좋았어요. 지금 그렇게 할수 있을지, 아니면 그렇게 한다고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같은 처지에 있는 배우자들끼리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하나의 방법일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깊이있는 교제가 가능해질수 있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아내들은 개인적으로 코스타가 전반적으로 남편들이나 혹은 공부하는 사람들 위주로 될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될것 같아요. 참석하는 숫자면에서도 유학생과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많고, 그렇다면 코스타의 방향과 초점이 그러한 분들에게 초점이 맞춰질수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그러한 환경과 여건하에서 하나님은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믿음으로 코스타에 임하고, 그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시고 어루만지시고 치유하시며 새롭게 하실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기도로 준비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리라 믿어요.


eKOSTA 유학생 부인들이 함께 방을 쓰며 지냈던 것은 저희들이 몰랐던 사실이네요. 지난번 조모임에 대한 좌담회때 역시 유학생 배우자들을 같은 조로 묶어주는 것도 얘기가 되었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할수 있을것 같네요. 그리고 또 그 때 나온 제안 중에서 코스타 기간중 하루저녁을 가정의 날로 정해서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또한 그렇게 하면 유학생들이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고 훈련이 안 되어서 의미 없이 보내거나 잠만 자거나 아니면 싸우게 될거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사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민자 글쎄요, 싸우거나 잠자거나 하면서 보내게 될 가능성이 많을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방법은 있을수 있을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그냥 자유롭게 주기 보다는 프로그램화 해서 미리 부부세미나나 가이드 라인등을 주고 나서 실제로 그 시간들을 부부들끼리 적용해보고 나서 다시 평가할수만 있다면 시도해볼만한 좋은 생각인것 같아요.


eKOSTA 사모님은 이번 코스타때, 전공별 모임 시간에 유학생 배우자 모임에 참석하셔서 멘토로서도 섬겨 주셨는데,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그리고 아쉬운 점들은 있으셨는지요?


이민자 배우자 모임에 갈때마다 느끼는 건데, 다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다보니 사실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그냥 모이는 것만으로 많은 위로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만나서 그냥 자기의 아프고 힘든 상황들을 이야기하고 나누고, 또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많이 동감하며 위로받고 하는것 같아요. 그런데 아쉬운 점은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 한사람씩 얘기할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것이 너무 안타까와요. 그냥 자기 얘기를 하기만 해도 그 과정에서 치유되고 회복될수 있는데, 시간이 너무 적다는게 참 아쉬워요.


eKOSTA 예, 저도 이번 코스타 배우자 모임이 너무 좋았고, 많은 분들이 울면서 자기 얘기들을 나누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코스타 이후에 tm 웹 보드의 전공모임에서 배우자 모임들이 활성화 될것을 기대했는데, 코스타 기간중의 뜨거웠던 시간들에 비해 사실 반응이 굉장히 적었어요. 그리고 저희 이코스타에서도 F2 섹션을 만들어서 여러 다양한 배우자들의 삶과 아픔 등을 나누려고 시도했는데, 필자들이 너무 적어서 실패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런 모임을 활성화 시킬수 있고 어떤 식으로 도움을 드릴수 있을까요?


이민자 예, 사실 배우자들이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많은 용기가 필요해요. 어느정도 자신의 문제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정리되거나, 자신을 스스로 깨고 나서야 비로소 입이나 글로 나올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해요. 그러다 보니, 웹에서나 글로서 자신들의 고통과 삶을 나누기는 참 쉽지 않은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배우자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기 진단을 올바로 할수 있도록 상담 전문가나 가정문제 전문가들의 글들을 정기적으로 올리거나, 그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배우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나올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또 한가지는 1-800 같은 무료전화를 개설해서 상담을 해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수 있겠구요. 그리고 또다른 한가지는 저희 남편한테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남편들이 배우자 모임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돕는것도 생각해볼수 있는것 같아요. 웹을 통해서나 글들을 통해서 아내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기도 하고, 또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빌기도 하며, 아내들을 위로하기도 하면 아내들과 또 그것을 보는 다른 분들이 마음을 여는데 도움을 줄수 있을것 같아요. 아내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더 나아가 여러 제안과 대안들을 함께 모색하기도 하고 비전등을 제시할수만 있다면 참 좋을것 같아요.


eKOSTA 예, 참 좋은 생각들인것 같네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그렇고 특별히 배우자 모임이라고 생각해서 남편들을 배제하고 있었는데, 남편들도 적극적으로 도울수 있다는 것은 정말 참 귀한 생각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부적으로 아내들을 돕는것도 굉장히 중요한데, 말씀하셨듯이 또한 배우자들이 자신 스스로 용기를 가지고 자기 삶과 아픔을 나누려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할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많은 배우자들이 그렇게 용기를 내어 자신을 깨뜨릴수 있도록 도와줄수 있을까요?


이민자 글쎄요, 참 어려운 문제인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남편의 인정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사실 남편은 학위를 받고 손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데 제 손에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저의 수고와 희생과 도움을 정말로 충분히 인정하고 고마움을 표현해 주었을때, 자존감이 살아날 수 있었고 또 보람을 느낄수 있었고 그 성취를 함께 공유하며 기뻐할수 있었던것 같아요. 사실 그 어려웠던 유학생활에서 한 것도 없고 이룬것도 없지만, 제가 그때를 회상하며 당당해 질수 있었던 데에는 남편의 격려와 위로 그리고 저를 충분히 인정했던 것이 너무도 큰 역할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가끔 어렵고 힘들고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는데, 그때마다 남편의 인정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자아상과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남편의 인정은 너무도 중요한것 같아요.


eKOSTA 예, 이제는 화두를 바꾸어서 자녀양육문제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부모들은 워낙 자녀교육에 열성인데, 때로는 크리스찬이면서도 세상사람과 동일한 방법과 목적을 추구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영적 욕심에서 더 심하게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안달하는 부모들도 있기도 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엄마들은 자신이 늘 충분히 아이들에게 잘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는 분들도 있다고도 얘기를 들었습니다. 선배로서 우리 유학생 부인들이 크리스찬으로서 어떤 태도로 자녀를 양육해야 될지 좀 조언을 해 주십시오.


이민자 정말로 엄마들이 신앙적으로 잘 서 있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자녀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청지기적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자녀를 교육하고 양육하는것은 너무도 귀한 일인것 같아요. 또 시기시기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혜롭게 가르치고 교육하는것도 너무 중요한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것들을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늘 깨어있으며 스스로 주님앞에서 겸비하게 말씀으로 무장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면서 기도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지 않으면 자기 욕심과 구별하기가 힘든것 같아요. 그리고 또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못 이룬 꿈이나 아쉬웠던 부분들을 아이들에게 반영해서 성취하려고 하기도 하는것 같아요. 이렇기 때문에 건전한 자아상과 자존감, 그리고 자아정체성이 중요한것 같아요. 매일 매일 부모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면서 사는 삶이 결국에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은혜를 구하고 사는 삶이 너무나 중요한것 같아요. 그리고 또한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서 자녀를 위해서 하는것이 참으로 중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곧바로 그 아이의 삶을 좌지 우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것 같아요. 결국에는 아이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면 자책감 등에서 자유로울수 있는것 같아요.


eKOSTA 예, 참 좋은 조언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마무리 하면서 지금 현재 성경공부나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싶은 유학생 배우자나, 혹은 하고 있는 분들을 향해서 좀더 구체적인 조언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실 많은 크리스찬들이 성경공부 모임이거나 기도 모임이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들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잘 모이기도 힘이 들기도 하고, 또 모인다고 하더라도 잡담을 하거나 말들을 잘못 전하고 하면서 상처를 주고 받는 소모적인 모임이 되기 쉬운데, 지금 현재 그런 모임을 하고 있는 분들이 어떻게 하면 좀더 생산적인 모임으로 바꿔 나갈수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민자 참 어려운 일이예요. 우선은 마음속에 성경공부를 사모하고는 있지만 시작을 못하시는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일단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기도로 준비하면서 시작을 했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도 그랬지만 자신은 준비가 안 되어서 더 준비되어서 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람을 모아서 모임을 하고 그 모임을 인도하시고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성령님이기 때문에 그분을 신뢰하면서 인도하심을 받아 모임을 시작하시기를 권합니다. 모임을 통해서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고, 섬기면서 많은 성품 훈련과 귀한 도전들을 받을수 있는것 같아요. 한두번 실패했다고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도 그냥 거기서 주저 앉지말고, 다시한번 주님께 기도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기를 권해 드리고 싶어요. 비록 아프고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도 얼마나 많은 교훈들을 얻는지 몰라요. 그런데 단 한가지 점검해야 할것은 모임만을 위한 가르침이나 유창한 말로서 모임을 이끌거나 그 모임을 위한 일시적 삶으로는 모임이 잘 되기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매일매일의 삶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점검하고 말씀을 적용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자라는 삶으로 먼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쌓인 성화된 삶이 성경공부에서 나눠질때 그 모임이 풍성해지고 삶이 변화되는 역사들이 있게 되는것 같아요. 하나님은 모임에 있는 한분한분을 다 사용하시지만, 한사람의 헌신된 사람이 기도하고 씨름하고 준비할때 그사람을 특별히 사용하시는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현재 정체되어 있는 모임을 하시는 분들도 그렇게 기도하면서 자신의 전 삶을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서, 한꺼번에 다 바꿀수는 없지만 한 부분 한 부분들을 주님앞에 올바로 세워 나가고 그런 산 제사로 드린 삶의 간증들을 가지고 모임에서 나눈다면 하나님이 자신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통로로 사용되어지고 그일들은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며 보람있는 길이라는 것을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앞에서 정말 귀한 시간이었다는 고백을 하는 유학생 기간들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eKOSTA 장시간 귀한 말씀들을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지은] 보이지 않았던 선물

F2 이야기


보이지 않았던 선물


2년 여 전, 결혼과 남편의 유학으로 인해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 타문화권으로 옮겨와 새롭게 삶을 시작하던 그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또한 타의에 의해 나의 것은 모두 버려진 듯한 생각으로 꽤나 눈물을 흘렸던 그 날들….


미국에 온 지 한 2개월 쯤 흘러 교회 청년부 모임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년부의 한 자매와 원투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자매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는데, 그럼에도 나와 공통점이 있다면 ‘주부’라는 점이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QT 나눔을 하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눈 후 기도로 마치는 형태로 만남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보낸 후 자매는 자신의 삶에서 기도 시간과 QT 시간을 따로 떼어서 하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을 그날의 QT 시간으로 정하여 함께 성경을 보고 의문점이나 느낀 점을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더 흘렀을 때 이웃에 살며 인사하고 지내던 K주부를 그 만남에 초청했다. K자매는 집에 있으면서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 나면 그 당시엔 재미있는 것 같아도 헤어지면 허무함이 남는다면서 우리 모임을 자신도 함께 나누고 싶어했다. 이제 모임 인원이 3명이 되었다. 한 명이 더 늘어난 모임이 되니, 궁금한 것도 많아져서 다른 참고 자료도 찾게 되었고, 의미 파악이 어려운 개역성경 대신에 영어성경(NIV)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어난 세 명의 인원은 곧 다섯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K주부를 통해서 P주부가, 나를 통해서는 E주부가 모임에 오게 된 것이다. 우리 모임에 두 명이 더 늘어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실 그동안은 처음 원투원했던 자매가 박사과정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자매의 스케줄과 동선을 최대한 줄여주는 배려로 학교 식당에서 모임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된 E주부는 한 살이 좀 넘은 딸 아이 하나가 있었고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함께 학교까지 가자고 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한 살 박이 아기가 식당에서 얌전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집으로 모임 장소를 변경하게 되었고 5명이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보다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그 대신 학생이었던 자매에게는 라이드(ride)를 해 주었다.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 된 E주부는 한국에서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아기 키우면서 아무런 사역을 하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모임에 와서 신학적 견해나 성경배경 지식 등을 소개해 주는 역할을 맡음으로서 자신이 전공한 것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모임이 깊은 나눔과 성경공부로 채워져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우리가 식당에서 모이고 있을 당시, 우리를 쳐다보며 몇 번 인사하고 지나가기만 하던 H자매에게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그녀에 대한 선입관, 주로 그녀의 독특한 성격과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기를 초청했을 때 놀랍게도 그녀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모임에 꼭 오고 싶었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무척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 H주부도 교회 청년부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주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대다수인 이 모임에서 쉽사리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어려웠고, 유학생의 아내로서만 사람들로부터 인식되는 것처럼 느꼈으며, 임원들은 모두 유학생인 그 모임에서 어쩐지 주부들은 소외 당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는 나를 ‘나’로 여겨주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같은 주부이기 때문에 관심사도 비슷하고 편하다고 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던 이 자매가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고, 선택의 순간 앞에서 기도하며,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이 생겨났다. 지난 청년부 수련회에서 중보기도 시간에 이 자매와 나 사이에 생긴 일이 하나 있다. “난 언니가 우리 모임에 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라는 나의 말에 딱딱하게만 보였던 그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고마와요. 하나님께서 자매를 귀하게 쓰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나같은 주부들을 위해 계속 섬겨 주세요”라고 했던 말을 난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성경공부 모임으로 굳혀진 우리 모임의 인원은 2년 정도의 주기로 새로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때문에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10명 내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간의 나눔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모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인원을 2개조로 나누었다. 또한 2개조로 나누다 보니 리더십을 키워야 하는 문제도 함께 대두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임을 같이해 온 우리들 중에서 추천을 받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임명할 수도 있었지만 모임을 같이 해 오면서 구성원들이 리더십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 조는 K주부가 맡기로 하고 다른 한 조는 내가 맡기로 했다.


우리 모임은 금요일 아침 11시부터 모여서 한 조는 거실에서, 다른 한 조는 방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한다 – 모임 인원이 적은 날은 함께 하기도 한다. 텍스트로는 영어성경을 사용하고, 관주와 표준새번역, 성경사전과 성경지도 등으로 정확한 뜻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함께 나눈다. 그 다음엔 기도 제목을 나누고 기도한다. 요즘에는 성경 말씀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를 위해 책 나눔도 하고 있다. 한 장(chapter)씩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질문과 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가정을 돌아보고 문제를 내놓고 함께 기도하면서 가정을 조금씩 회복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책 나눔을 통해서 공부할 예정이다.


2시간 정도의 모임 후에는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한 식탁에 놓고 먹으며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다른 조에서는 어떤 나눔이 있었는지 자유롭게 얘기하는 교제 시간을 갖는다. 보통 3시 정도까지 두 시간 정도를 함께 나누다가 급한 일이 있거나 아이가 있는 자매들은 집으로 가고, 남는 사람들끼리 쇼핑을 하거나 커피숍에 가서 티타임(Tea-time)을 갖기도 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너무 오랫 동안 시간을 갖는 게 아닌가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부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꼭 점심 시간을 포함해서 오랜 시간 동안 의미 있고 깊이 있는 나눔을 원한다. 이런 사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으며 위로 받고, 또 위로하고픈 역동적인 시간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고 있는 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임의 특이한 점은 주부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내 주위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싱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여드는 건 주부들 뿐이었다. 그들은 처음엔 많은 위로 받음과 편안함으로 왔다가 점점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부분 그들의 남편은 학생이거나 박사후 연구원이었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늘 학교 공부와 일에 바쁜 반면, 아내들은 한국에서는 그런대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자신 있게 살아왔다가 너무나 조용한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삶을 살면서 정체성을 잃었던 것이었다. K주부는 1년을 울면서 한국에 가고 싶어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남편들이 잘 해 주어도 이 자매들의 눈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임을 통해서 그들을 회복시키셨다. 처음엔 자신들의 한풀이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이곳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만 2년이 되는 이 모임은 그들의 남편들과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도 인식되어서,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모임에 나오는 주부들의 남편들은 집에서 아내에게 잘 해야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서운하게 하거나 잘 못하면 곧바로 이 모임에 기도제목으로 나오기 때문이라나? 어쨌든 남편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우리 모임은 왜 이렇게 자라게 되었을까? 처음 나의 의도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대학 시절 선교단체 활동을 통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기에 시작한 원투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6개월 안에 모임의 크기가 커지고 내용도 성경공부로 변화하고 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을 섬기려다 보니 성경도 여러 번 보게 되고, 기도도 더욱 하게 되고, 자료도 찾게 되고 모임의 필요에 더욱 민감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원하고 계셔서 우리를 모아 주신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난 주부 모임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니까. 난 단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은 어디에 없을까’란 생각만 잠시 했을 따름이었다.


며칠 전 창세기에서 요셉의 삶을 공부했다. 그때 우리들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외국에서의 삶과 더욱이 감옥에서도 ‘성실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잃지 않았던 요셉처럼 F2의 삶을 살아가자고 기도했다. 타의건 자의건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옛것에 대한 미련을 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성실함’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요셉이 만 2년 이상을 감옥에 있었지만 그것도 요셉의 삶의 한 부분이듯이, 지금 집안 일로만 하루를 보내는 삶이건, 무언가 공부를 시작했건, 일을 하게 되었건 간에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들어 온 ‘삶’인 것이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서 안달하거나 속상해 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신을 다시 보라. 정말 자신도 꽤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느낄 것이다.


나는 우리 모임에 대한 나눔이 부디 미국에 살고 있는 유학생 부인들에게 힘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 아픔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는 짝을 만날 수 있도록, 아니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아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모여 당신을 알고자 힘쓴다면 그 모임을 결코 찢으시거나 망치실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난 결혼한 지 2년 반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주부 모임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늘 주님이 함께 하셔서 만들어 가실 것을 믿는다. 처음에도 그랬던 것처럼.

[김혜진] 귀국을 앞두고

F2 이야기


귀국을 앞두고


내일이면 한국에 들어간다. 학기 중이라 바쁜 남편은 물론 함께 못 들어가고, 오직 나만의 휴가를 갖게 된다. 겨울 내내 있다 오겠다고, 겨울옷 몇 벌 싸고 나니 어느새 거실에 놓여진 커다란 이민가방 두 개. 한국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비행기 티켓은 6개월간 오픈으로 끊었다. 신혼여행을 못 갔던 것은 물론이고, 1년 10개월 간 시카고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던 나에게, 이번의 한국행은 큰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가는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에 계신 교수님께 직접 추천서를 받아서, 오랜 기간 질질 끌어 왔던 유학 준비를 좀 쉽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근 2년을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교수님께 도무지 미국에서 추천서를 요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나 마나 너 누구냐?라는 반응을 보이실 것이 예상되었으므로, 차라리 한국에 들어가서 부탁드리기로 작정했다. 이런 이유로 결심하게 된 한국행이지만, 이번 한국행에 대한 기대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먼저, 나는 이번 한국행이 나의 무력감을 깨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학생 와이프 생활이 2년이 다 되어가는 근래에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력함이 극도로 치닫고 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 유학생 배우자의 단조로운 생활이야 기혼자 유학생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기에, 나의 생활 패턴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생활이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면, 내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텐데,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변함 없는 나태한 신앙 생활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감정의 무너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지극히 조용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더 내버려 두면 영영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보다는 나은 자아상을 가지고 있던 그 장소로 돌아가, 그 때를 기념하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맛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물론 새로운 멤버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기는 하겠지만, 예전의 그 공동체를 다시 경험하고, 그 때 함께 하던 동기들과 잠시라도 다시 교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대한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또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그 동안, 유학에 필요한 시험 준비들이 내가 내 자신을 위해 한 일의 전부라고 해야 할 듯. 결혼 이후에, 또 미국에서 철저히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를, 그리고 결국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니, 애써 고민을 회피했다고 이야기해야 함이 맞을 것이다. 아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뭔가 하고 있다는 대리 만족감은 유학생 와이프 생활에서 오는 폐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 생활에서 오는 생활 자체의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하루 하루를 의미 없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학위는 남편이 따는 것이지만, 물론 그러한 남편을 잘 지원함으로서 돕는 것이 와이프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만, 결국은 진보하고 있는 남편과 퇴보하는 자신을 비교하며 허탈해 하는 모습들을 빈번히 본다. 나 역시, 오직 남편의 진행 과정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내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금 내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국 생활은 더 힘겨울 것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모처럼 갖게 된,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러한 짧은 기간을 통해서, 나는 앞으로의 미국 생활을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고,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이끄는 삶으로 만들고 싶다.


또, 나는 한국에서의 몇 달을 통해서, 나의 무너져 있던 생활 습관이 바로 잡히기를 기대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또한 한국을 향한 그리움으로 밤새 붙들고 있던 인터넷으로 인해 얻게 된 불면증은, 한국에서 가족들과의 생활을 통해 바로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늘 집안에만 갇혀 있느라고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도 기대해 본다. 언제부턴가 학교의 체육관은 유학생 배우자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용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나마 운동하던 기회를 박탈 당했던 것이고, 또 의지를 내어서 운동을 하지 않게 된 것인데, 결과는 체중은 늘었지만 체력은 떨어져 약간의 노동에도 쉽게 지쳐 떨어지는 상태. 의도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게 될 한국 생활이 내 생활 습관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지 않을까. 물처럼 들이켜고 있는 커피와 다이어트 콜라도 끊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이러한 나쁜 생활 습성들은 몇 번이고 돌이키려 노력했던 것이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들이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자신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자신의 습관에 대해서 때때로 그렇게 느낀다. 자신을 성결히 지키고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들에 사로 잡히고는 한다. 내 자신의 의지를 내어서 고치기 힘들었던 악한 습성들이, 한국에서의 생활로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기대하며, 더불어 소망하는 것은 내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할 시카고에서 어떤 관계들을 맺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남편은 인터넷 중독의 후유증이라고 장난 삼아 말하고는 하지만, 나의 대인 관계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주일마다 교회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경계하는 나의 마음이 그들을 나와 삶을 나눌 동역자로 인정하기를 꺼려지게 한다. 공동체 안에서 회개에 대한 권면과 책망은 없이, 환대와 위로만을 이야기하는 청년회의 리더와 멤버들을 끊임 없이 정죄하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의지인 것 같다. 이제는 함께 해야 할 공동체에 대해서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떤 공동체에 들어갈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에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모든 소망들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주도하시기를 원하는 소망이 있다. 1년 10개월간, 경제적 어려움들과 생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감정의 기복들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밀려 있던 것을 회개하며 고백한다. 어쩌면, 전체적인 내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경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나의 나태함을 변명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묵상과 기도와 학습의 훈련을 통해, 나의 영적 성숙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내 안에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항상 의지를 내어 그 사실을 되새기지 않으면 나는 다시 환경 가운데 매몰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지를 붙들어 주시기를 소망하고, 또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싶다. 아마도 졸업 이후 학사로서 고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들의 모습이 내게 훌륭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쓴 글을 읽어 보니, 마치 수련회에 들어가기 전에 쓰는 선언문 같다. 어쩌면, 이번 한국행은 나만의 작은 수련회가 될 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강사도 없고, 함께 기도하는 무리들도 없지만, 그 어느 수련회 때보다 커다란 소망과 기도를 품고 간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어 주실 것이다.

[김혜진] 유학생 배우자의 소고

F2 이야기


유학생 배우자의 소고


열시 쯤 연구실로 출근하는 유학생 남편에게 맞추어 아홉시 쯤 기상.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서 점심식사 준비. 열두시 쯤 칼같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 남편과 점심식사. 주섬 주섬 설겆이와 청소를 마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스런 미국 토크쇼 두 개를 보고 나면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 여섯시 삼십분에 수업을 들어가는 남편을 보낸 후에, 한국 TV의 드라마 몇 편을 보면서 집안 일을 하고 있노라면 남편이 돌아온다. 그날의 수업 내용을 리뷰하는 남편 옆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한국의 소식을 접한다. 가끔 괜찮은 레서피도 다운 받고, 여러 개의 사이버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떤다. 그리고 한 시 쯤 잠자리에 든다. 일주일에 두어 번 근처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무료 영어수업을 받는 걸 제외하곤, 매일 매일이 동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없다면, 대부분의 유학생 배우자들의 사는 모습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혹 남편의 도시락을 쌀 때도 있고, 남편이 일찍 출근한다면 같이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드물게는 남편과 함께 학위를 밟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와이프들은 요리와 TV 시청, 인터넷과 함께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런 생활 이면에도 갈등과 문화적 충격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학생인 남편을 향한 배우자의 배려 속에서, 때로는 피곤한 남편의 외면 속에서, 이러한 갈등들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날이 갈수록 증폭되기도 한다. 훈련과 사역의 장에 가정의 영역이 포함되는 것이라면, 유학생들과 같이하는 유학생 와이프들의 삶과 생각이 그 장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다음의 글에서, 유학생 와이프로서 가지고 있는 나의 갈등과 불만들, 문화적 충격 등을 나누고 싶다.


1. OO 씨 와이프, 내 이름은 어디로?


결혼과 동시에 나의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학 졸업식도 전에 결혼한 나로서는, 이런 풍토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민) 교회에 가니 부인 성을 남편 성과 갈아 치우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사실. 다른 곳도 아닌 한국 교회에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살려고, 진학도 직장도 고려치 않고 유학생인 남편과 결혼한 내게, 내 남자의 와이프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억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누구 누구에게 얹혀 사는 누구’라는 인상을 주는, 씨 와이프, 이 호칭이 전혀 달갑지 않다. 배우자는 달랑 이름과 생년월일만 기재하게 되어 있는 KOSTA 신청서를 받고 나서, 내년에는 내 이름으로 신청한다고 남편을 달달 볶던 일이 생각난다. 내게도 관심 영역이 있고, 전공이 있고, 훈련받은 공동체가 있는데, KOSTA 역시 배우자는 유학생에게 얹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두고 두고 서운했다. 물론 배우자들을 배려해서 통곡의 방까지 운영하는 KOSTA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김혜진이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교회 공동체나 유학생 공동체에 나 역시 관심을 갖게 될 리가 없다. 남편 때문에 시카고로 오게 된 것, 남편이 다니는 교회에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다니게 된 것, 내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었던 것마저 억울한데 말이야.


2. 영어, Culture Shock의 시작


남편의 학교는 흑인 주거지역인 시카고 남부에 위치해 있다. 인적이 드물어 조용한 학교 도서관 안. 이 학교는 어떻게 된 건지 도서관에 사람이 없다. 갑자기 접근하는 흑인 아이 두 명.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이웃집 아줌마는, 이런 경우 무조건 내 빼라고 하였지만, 나, 영문학 전공자다. 내 비록 영어는 서툴지라도, 다가오는 도전(challenge)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곰곰히 뭐라고 하나 귀 기울여 듣는다. 돈을 달라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들 표정이 험상궂다.



헤이, 레이디, 나 너의 태도가 맘에 안들어!


이쯤 되면 도망갈 채비를 한다. 아무래도 “돈을 좀 주세요”가 아니라 “돈 내놔!”였었나보다. 사전과 책을 주섬 주섬 챙기는데, 진땀이 흘러 손이 더디다.



어쭈? 도망가려고?


끝까지 날 협박하는 지긋지긋한 아이들. 더 험한 꼴은 안 당하고 빠져 나왔지만, 옆에 다른 인도인 남자도 있었는데, 내게 접근한 이 흑인 아이들이 어처구니없다. 동양여자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소리도 못 지르고 도망갈 생각만 한 나도 참 담력이 없다.


그 후론 한 동안 영어가 싫었다! 텔레 마켓팅으로 걸려오는 전화도, 가끔 찾아가야 하는 하우징 오피스의 아줌마도, 무료 ESL 코스의 사무실 직원도, 길을 묻는 아랍인도, 마주하기 싫었다. 영어로 따라가는 수업이 고달프다는 남편들의 한숨은 오히려 사치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요즘 강력하게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이곳의 유학생 와이프들은 그냥 숨 안 쉬고 산다. 날마다 무능해지며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3. 예기치 않은 Culture Shock,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


72년생인 남편은 유학 4년차이다. 하지만, 불과 일년 전만 해도 과 한인 학생회에서는 막내였다. 아무리 막내라고 해도, 나에게는 하늘같은 남편인데, 이것 저것 시키는 과 선배들의 태도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반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불러내는 것은 물론, 꼭 하기 싫은 일들은 나이 어린 사람을 시킨다. 한국인 유학생들이야 늘상 겪는 일이기에, 구태여 내가 길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학생 와이프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다는 것.


76년생인 내가 미국에 왔을 때, 만 23세였던 나는 명실상부한 막내였다. 막내라고 귀여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그토록 무시를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이가 어린데 결혼부터 덜컥 했다고 생각없는 아이라고 무시함, 직장 경력이 없다고 무시함, 공부를 하고 싶다니까 어려울 거라고, 철이 없어서 그런다고 무시함, 요리를 못 한다고 무시함,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고 무시함. 한국에서 그래도 전문직에 있던 사람들이 남편 때문에 이 곳에 오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다 푸는 것은 아닌지. 여자 싱글 유학생 역시 와이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이다. 그럴 때는 자신들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큰 자랑이 된다.


며칠 지나니 모임의 맏이쯤 되는 한 언니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유학 온 남편의 졸업이 예상보다 한참 늦어지게 된 것. 또 한 언니가 안 보였다. 남편이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진 것. 유학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들도 그렇겠지만, 남편들 때문에 와이프들 역시 맘 졸이고 몸 상하며, 와이프들 사이에서의 눈길에 민감해진다. 지난 학기 남편이 석사 디펜스 했을때,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


얼마 전, 자주 들리는 유학준비 사이트에 유학생 와이프들을 위한 게시판이 생겼다. 고달픔을 토로하는 유학생 와이프들과, 정신과 상담이나 받으라는 싱글 여학생들과, 와이프들의 글에 불만이 가득한 남성 유학생들의 글로 연일 싸움판을 방불케 한다. 정녕, 해결책은 없는 걸까?


4. 네 이웃을 사랑하라구요?


남편이 다니는 학교는 유독 인도인들이 많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도 열 두 가구 중 여덟 가구가 인도인들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이웃집에 세 명의 인도 처자들이 이사왔다. 인도인들이 가까이 살 경우, 그네들 집에서 나오는 솜털 먼지가 복도를 돌아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예사이고, 때때로 그 집의 바퀴벌레 등의 설치류들이 침입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자들이 이사를 왔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며칠 후, 건장한 인도인 남자 두 명이 큰 트렁크를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키 작은 인도인이 학기 내내 열쇠가 없어 그 집 문을 두드려 누군가가 열어주길 기다리는 걸 보게 된다. 도대체 이 집에는 몇명의 남녀가 동거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워낙에 지저분하기로 소문난 인도인들이지만, 더욱 분개하는 것은 그들이 너무나도 불친절하다는 것. 미국인들에게 무시 당하는 것 역시 억울한데, 학교 편의점에서 일하는 인도인 직원은 거스름돈을 잘못 주고도 상대편 잘못이라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남편이 들어가는 수업의 TA 역시 인도인인데, 질문에 불친절하게 대답했다가 교수에게 보낸 남편의 이메일로 단번에 수그러들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 아니 영어를 못하는 자에게는 강한 척 하는 그들, 포용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도인들도 있다. 유학생 와이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인도인 여성이 한 명 있는데, 이 사람은 늘 자기는 다른 인도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문화에서 오는 다른 점들을 극복하고, 각각의 문화와 사람들로부터 장점들을 배워야 외국 생활의 잇점들을 진정으로 누렸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러한 이웃사촌들과 같은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꺼려지니 어쩌면 좋을까. 수업에서 이들과 부대끼는 남편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웃을 사랑하기란 뼈를 깎는 고통이다.


5. 무인도에서 표류하기


유학생 와이프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무인도에서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공동체의 소중함. 대학시절을 부대낀 공동체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15년을 동고동락한 지역교회의 동기들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올 줄 알지 못했다. 어학연수 때문에 일년 간 떨어져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 언제 돌아갈 지 모르고, 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삶.


무인도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이전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과 단 둘이 있는 큐티시간은 얼마나 감미로우며, 혼자 드리는 찬양의 재미는 또 어떤가. 내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가끔은 공동체 안에서의 사역이나 내 신앙에 대해 깊이 점검할 수 있는 값진 시간들. 내게도 광야가 필요해! 하고 절절히 외쳤던 때도 있었으니. 그러나, 신앙생활은 역시 무리지어서 할 일인 것 같다. 대학시절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큐티를 나누고, 기도 모임을 갖고, 후배들 때문에 울어도 보고, 그 때처럼 열심히 성경 연구를 할 수는 없겠지만, 세워 주고 세움 받는 공동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격려받는 공동체, 정말로 필요한 것 같다. 오랜 광야 생활, 무인도 생활 속에서,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때로는 잘못된 생각과 상상력을 쌓아간다.


문제는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것인가이다. 여러 군데 찾을 것 없이, 지금 속한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일이겠지만, 한인 교회에서도 내가 설 곳은 없다. 교회 청년회의 사역 대상은 분명 유학생이며, 유학생 와이프는 인원을 채우기 위한 덤일 뿐이다. 하긴,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유학생이 사역 대상인 것도 절대 아니다. 그저 궂은 일을 시키기 위한 일꾼들일 뿐. 어쨌거나 이름뿐이라도 유학생들을 위한 청년회가 존재하는 반면, 그것들도 싱글인 학생들을 위한 청년회이며, 더군다나 유학생 와이프들은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의 결과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내 공동체로 삼기에는 이질감을 느끼는 그런 청년회이다.


내가 아는 것은 시카고에서의 상황뿐이다. 한국의 대학 선교단체에서 수년 간 간사를 하신 분(역시 유학생 와이프)도 소그룹 시작하기를 어려워하는 곳이 시카고라고 하니, 간혹 유학생 와이프들이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어떻게 그러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6. 남편은 화성인, 난 금성인


신혼부부에게는 누구나 깨어질 환상이 있다. 사랑만 있으면 서로의 어떤 부족한 점도 감싸안을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은 금방 지나간다. 2년 여를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으며, 대학에서의 성 관련 수업과 각종 데이트와 결혼에 관련된 서적, 남성과 여성 심리, 가정생활에 관한 서적으로 무장을 하고 결혼했던 우리 부부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열린 도은미 사모님의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남편의 노력과, 여러 가지 좋은 책들을 함께 읽은 결과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유학생 사회를 보면, 유독 특별하게 결혼한 부부들이 많다. 많은 유학생들이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 있다 보니, 선이나 소개팅을 통해서 한 두달 사이에 급속으로 결혼을 진행시킨 경우가 잦다. 이런 경우에, 서로의 단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고, 이것이 고달픈 유학생활과 더불어 냉담한 부부관계로 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꼭 유학생 부부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학생 부부에게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하는 이유는 남편은 시간이 없기 때문. 가령 아버지 학교가 모 교회에서 열린다고 하자. 금, 토, 일요일에 있는 이 학교에 꿈같은 주말을 할애할 유학생 남편들이 얼마나 될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부부가 같이 딱 한 번만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어 권하면, 와이프들은 그것에 호의적인 반면, 공부하는 남편들은 학업 외의 또다른 책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와이프나 남편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무뎌지고, 포기할 때까지 그들의 서로에 대한 불만은 쌓여만 간다.


1999년 전공별 모임을 잊지 못한다. <여성학>이라는 이름 하에 모인, 유학생 남편으로 인해 상처받은 많은 와이프들. 아무런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자신의 하던 일도 버리고,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아이들 기르며 고생하는, 때로는 한국에서 방문, 유학오는 다른 가족들까지 수발해야 하는 와이프들에게 불만이 없을 리 없다. 2000년 KOSTA에서는 참으로 좋은 부부관련 세미나들이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참여가 저조했다고 들었다. 그 이유가 남편들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근거없는 내 생각일까?


주변을 보건대, 많은 유학생 와이프들이 ‘이러한 고민들은 시간이 해결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랜 유학생 와이프 생활 끝에 고민과 긴장에 대해 무뎌지고, 익숙해지며 포기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유학생 와이프들의 문제 해결은 자신의 노력 뿐만 아니라, 유학생 남편들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유학 사회 안에 제대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유학생 와이프들의 정체성 회복, 가정 안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인식, 그들의 잠재력을 하나님께 헌신된 사역으로의 인도하기 위한 대안이 기독 유학인 사회 안에서 고민되어져야 한다.


유학생 배우자로 2년을 채 살지 않은 나의 경험들이, 모든 유학생 배우자들의 경험을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글을 통해서 다른 선후배 유학생 배우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tmKOSTA의 F2/배우자를 위한 웹 보드를 활용하여, 안으로 숨겨져 있던 문제들을 고민하고 나누면서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역시 기대하는 것은, 이런 열려 있는 공간을 통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배 배우자들의 모범을 접할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