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회중기도는 이렇게 하십시오

행복한 교회생활


회중기도는 이렇게 하십시오


eKosta 독자라면 신앙적으로 앞서 있는 분들이라 회중 기도를 인도할 기회가 많을 것입니다.


사실 기도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생각을 언어로 하나님께 표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 기도의 경우입니다. 회중 기도를 인도할 때에는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회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개인 문제를 언급하거나 자신만의 관심사를 놓고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둘째는 짧아야 합니다. 공중 기도가 길어지면 공감도가 낮아집니다. 회중 기도를 인도할 때에 회중들이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다가 기도가 길어지면서 “아멘” 소리가 점점 약해지든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집중이 흩어졌다는 뜻입니다. 공중기도는3분을 넘겨서는 안됩니다.


셋째는 계제에 합당하여야 합니다. 식사 전 기도라면 식사에 관해서만, 기도회에서 드리는 대표 기도라면 기도를 위하여서만, 봉헌 기도라면 헌금에 관해서만 기도해야 합니다. 헌금기도를 드리면서 투병하시는 분들을 위한 기도를 곁들인다든가 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주일 예배나 공식적인 집회에 기도 인도를 맡았을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첫째,준비하십시오. 회중 기도 인도를 부탁 받았으면 며칠 전부터 어떤 내용을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둘째, 기도의 주제를 두 세개로 한정하십시오. 교회의 모든 필요를 다 아뢰려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은 개인 기도 시간에 아뢰면 됩니다. ‘개인 기도는 길게! 회중 기도는 짧게!’ 이것이 기도 원칙입니다.


셋째, 연습하십시오. 설교자는 미리 설교를 연습해서 제한된 시간 안에 마칠 수 있도록 설교를 다듬습니다. 기도하는 분들도 3분 안에 마칠 수 있도록 기도를 다듬어야 합니다. 네째,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회중을 향하여 기도하지 마십시오. 회중 기도를 처음 드리는 분들은 하나님이 앞에 앉아계시다고 생각하고 그분에게 말하듯이 기도하면 됩니다.

[오화영] 어머니를 닮은 딸내미

Joy의 편지


어머니를 닮은 딸내미


미국에 살다보니… 한국의 명절이나 공휴일은 잠시 방심하면 지나쳐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나마 교회에서 떡이나 맛난 음식들이 풍성하게 등장하면 설인지 추석인지 알 수 있지만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삼일절이나 식목일과 같은 매우 심심한(?) 공휴일의 경우, 지나갔다는 사실 조차 뒤늦게 아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식목일이 공휴일이었는데 요즘도 그런가요?!?!
믿을 수 없는 제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식목일엔 흐리거나 비가 내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나무 잘 자라라고 그런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붙였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식목일 하면… 저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봄철이면 어머니는 화원에서 한바탕 봄꽃들을 사다가 베란다 가득 꾸며놓곤 하셨어요. 꽃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고, 죽어가는 식물도 다시 살리는 마애스터 울엄니. ^^ (물론 그 열심이 아버지께로 전염이라도 되었는지 근래에 들어서 아침에 물주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 되었습니다만…)


가까스로 살려놓은 식물을 딸래미에게 맡겨놓고 여행이라도 며칠 다녀오시면 저는 그 잠깐 사이에 그 풀들로 하여금 다시 사경을 헤매게 만들어 놓곤했습니다만… 베란다인지 식물원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화초들을 골고루 채워놓고 자식키우 듯 아니 때로는 자식보다 더 정성껏 키우시는 울엄니를 저는 꽤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거의 화초없이 지낸 적이 없다는 사실.
봄철이면 어김없이 좋아하는 하얀 데이지 한 묶음을 사다가 화병에 꽂아두는 게 연례행사가 되었고 방학이면 집에 다녀오는 친구들의 온갖 화초를 맡아서 키워주는 이른바 plant sitter가 되었죠. 수퍼마켓에 가도 제일 먼저 눈길을 주는 곳은 구석에 있는 꽃과 화분 코너이고, 특히 야외 꽃시장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제 방엔 대개 꽃이든 풀이든 식물이 하나쯤은 꼭 있곤합니다.


제가 그렇게 나무를 좋아하는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나무 냄새, 풀 냄새, 꽃 냄새…
오늘도 캠퍼스를 오가며 킁킁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심지않고 지나쳐 버린 식목일이 어쩐지 자꾸만 마음에 걸리네요.
나도 모르는 사이 울엄니의 화초사랑하는 마음이 전염이라도 된 건지…


사실 어디 이것 뿐이겠어요. 저도 모르게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 닮은 것들… 끄적끄적 글쓰기 좋아하는 것, 비평하기 좋아하는 것,
구경하기 좋아하는 것, 음악 좋아하는 것, 커피 좋아하는 것,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새 친해지기, 남의 이야기 들어주기, 속눈썹 짧은 것도 닮고, 눈물 많은 것도 닮고, 웃는 모습도 닮고, 합창을 하면 알토 음을 내는 것도 닮고, 화장 진하게 하는 걸 싫어하는 것도 닮고, 이것저것 죄~ 다 닮고, 닮고, 닮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도 닮은 것들,
나도 모르게 어머니 품 안에서 자라며 저절로 배운 것들이죠.


그래요.
어머니 품안에 있으면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들, 저절로 따라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군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익힌 것들.


음…


문득 하나님의 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머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모습을 어느 새 닮게 된 것 처럼
그 분의 마음을 나도 모르게 닮게 되면 좋겠습니다.
일부러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술술 흘러나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분의 품안에 거하는 삶으로 인해…


주 안에서 행복~*


sAN frANcIsCO,
Joy~*


[황지성] 순종으로 회복되는 기쁨

순종과 회복


순종으로 회복되는 기쁨


Holocaust를 주제로 한 영화가운데 <Sophie’s Choice> 라는 영화가 있다. 두 아이를 가진 유대인 엄마, Sophie가 포로수용소로 가족과 함께 실려가던 중 나찌의 무자비한 총구 앞에서 두 아이 중 한 아이만을 계속 데리고 갈 수 있으며 다른 아이는 사살당할 것이라는 위협을 받는다. 그 엄마는 가슴을 찢는 고통과 숨막히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 중 한 아이, 아들을 택해야만 했다. 그 영화는 엄마의 고통스런 절규를 화면 가득히 채운다.


선택이란 삶의 순간마다 주어지는 부담이며 많은 경우에 그것은 마음의 갈등과 고통을 수반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이란 날마다 순간마다 선택이라고 하는 두 갈래 길에서 한 길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선택은 대단한 용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겨우 용기를 내어 한 길을 선택한 순간, 우리는 많은 경우에 마음에 큰물처럼 밀려오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가? 그 불안감은, 그 두 갈래 길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한 길이 만일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길이었다면 나의 인생의 발걸음은 이제 실패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다. 이 순간에 우리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불안한 갈등과 고민 속에서도 확실히 붙잡을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시며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신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나면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의 의문이 즉각적으로 제기된다. 첫째는 어떤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분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둘째는 나의 의지를 ‘고통스럽게’ 쳐서 복종시키는 이 순종하는 삶이 도대체 어떻게 기쁨이 충만한 삶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이 물음들에 답하기 전에 이 물음들 앞에 서 있는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의 참다운 실존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가 이전의 존재가 아닌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완전히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according to)’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아버지의 자녀’로서(as)’의 삶을 사는 것을 먼저 의미한다. 이 그리스도인의 참다운 실존을 바로 이해하는 순간, 앞서 제기된 난해한 질문들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 그 구체적인 해답이 로마서 11장 이후에 나와있다. 로마서 11장까지에서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가 하나님의 심판(condemnation), 칭의(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그리고 선택하심(sovereign choice)을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로 보여졌는가가 조목조목 설명된 후 이제 성경은 이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말씀하기 시작한다. 로마서 12장의 서두, 1절과 2절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Therefore I urge you, brethren,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 living and holy sacrifice,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service of worship. 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renewing of your mind, so that you may prove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여기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성경의 중요한 약속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질 때, 즉 그 삶이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이 아닌, 새롭게 태어나 계속적으로 변화되는 (transform, metamorphsis) 삶이라면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의가 그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좀 더 명확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prove by testing (dokimazein)’ 즉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약속이다. 이 선언은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 너무나 많다고 불평하는,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우리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도전의 말씀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씀은 우리를 얼마나 자유케 하는 은혜의 말씀인가? 아버지의 의로운 뜻이 순종하는 자녀들의 삶을 통해 내가 경험할 수 있도록 드러나게 된다는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자녀된 우리들이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의 순간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주신다는 은혜의 약속의 말씀이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 속에서 나타나기 위한 열쇠는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나의 삶을 명도하는 순종함의 믿음에 있다. 바로 나의 영혼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의 임재로 충만한가 하는 데에 있다. 나의 가슴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치는가 하는 데에 있다. 나의 마음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열망으로 얼마나 가득 차 있는가 하는 데에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위대한 전도자 Moody선생이 그의 생전에 쓰시던 성경책에는 “T, P” 라는 두 글자가 깨알같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난 그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try” 하였더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대로 자신의 삶을 통해 “prove” 되었다고 하는 유명한 간증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기 위해 먼저 드러나기보다는 오히려 순종하는 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 드러날 수 있다고 하는 놀라운 간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의 선택과 결정 속에서 발견되어지고 이루어지는 삶의 진정한 기쁨은, 나의 노련한 판단과 재빠른 기회포착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어떤 결정으로 인한 결과에서도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하는 믿음과 그 인도하심이 보일 때에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려는 결단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행전 16장에 있는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의 경험에서 이 교훈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다.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시리아의 안디옥을 떠나 육로로 에베소가 있는 서쪽 아시아 지역으로 가려고 길을 떠났으나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신다. 결국 그들은 북쪽에 있는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그들은 다시 갈라디아의 북쪽에 위치한 비두니아 땅으로 가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그 길을 다시 막으신다. 할 수 없이 방향을 틀어 북서쪽, 에게해의 동편에 위치한 드로아 항구로 가게 된다. 결국 그 곳에서 그들은 마게도니아의 한 사람이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와 우리를 구해달라고 청하는 환상을 보게된다. 마침내 그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로 건너가 그 곳의 많은 영혼들을 구하는 사역을 이루게 된다. 그들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려는 분명한 목적과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순간순간 자신들의 마음의 확신이 주는 선택으로 방향을 결정하고 행동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순종에 대한 의지와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을 보시고 그들을 최적의 목적지로 인도하시기로 결심하신 주님께서는 적절한 순간마다 그들이 결정하고 가는 길의 다른 방향들을 막으시고 가야할 방향은 열어놓으시면서 결국은 그 최적의 목적지까지 인도하신 것이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사도들에게 나타났던 동일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남을 잊지 말자! 먼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길을 떠나야한다.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목적지로 기꺼이 가고자하는,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길을 떠나자! 그리고 지금은 비록 확실히 보이지 않는 그 목적지라 할 지라도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주님께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에 흔들리지 말자! 때로는 우리가 그 가는 길에서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마치 두 갈래 길들로 계속 전개되는 것 같이 느껴졌던 우리의 인생이 고통스러운 선택의 연속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나의 삶 속에서 하나하나 체험해나가는 신나는 ‘wonderpath’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내리는 우리들의 결정들 앞에서 우리는 자유하자! 왜냐하면 성경에 있는 약속의 말씀이 증거 하듯이, 우리의 중심에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열망이 있었다면,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결정들을 내렸다면 그 결정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의 의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예정하신 뜻이 우리의 순종으로 우리의 삶 가운데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흥분되는 기쁜 경험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심각한 인생의 결정을 놓고 방황하며 절망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가 회복되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되도록 기도하자. 그러면 주님께서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보이시고 이루시기 위해, 혹 우리의 연약함으로 내린 결정으로 초래될 지 모르는 위험한 길과 굽은 길을 막으시고,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기뻐하자. 먼 광야와 같은, 미래가 아득하고 잡히지 않는 우리들 유학생의 때야말로 이 순종의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아니겠는가?


[함철훈] 오월

eKOSTA 갤러리


오월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기쁘게 해드리는 환한 오월에도
우리들의 뒷골목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가난한 삶의 구제는 나라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계절에 만났던 ‘내미는 손’들과 눈빛은 내 말과 생각들을 막아 세웁니다.


[팽동국] 로렌스 크랩의 결혼 건축가

eKOSTA 서평


로렌스 크랩의
<결혼 건축가>


커플들과 결혼 상담가들을 위한 결혼청사진


5월은 교파를 초월해 한국과 미국(아마도 전 세계)의 교회에서 가정의 달로 지키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등이 있으며, 미국 교회에서는 어머니 날(Mother’s day)과 아버지날(Father’s day)이 각각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하나님께서 우리 신자들에게 원하시는 가정의 원리와 본질을 알려주는 로렌스 그랩의 <결혼 건축가>로 양서를 선정해 봤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들과 복음적인 교회들조차도 무의식중에 받아들여왔던 네 가지 잘못된 결혼에 대한 성향을 먼저 지적하고 있다.


첫째로 성경을 즉석 처방 혹은 어떤 공식처럼 사용하여 결혼 문제에 대한 신속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사고를 들고 있으며, 그것은 현대의 결혼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인간의 죄에게서 그 원인을 찾기보다는 심리학의 복잡한 이론들로써 문제의 초점을 파악하여 설명하려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저자는 개인의 책임을 경시하는 사고(思考)노선이라면 일단 반대하고, 사람에겐 자신의 인생의 각 결정과 삶의 순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견해 쪽이 옳다고 생각하며, 순종을 경시하는 심리학적 이론들을 거부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을 강조하되 행동의 선택과 결과를 중시하는 외적인 변화보다는 내적 마음의 변화를 통한 순종을 강조함으로써 우리의 사고와 목표와 감정까지 바뀌어야하는 영적 성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바라보고 있으며, 이 모든 이해의 기반에 인간의 전적 타락과 깊은 죄성을 전재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간 중심의 행복과 만족에 관한 매혹적인 강조와, 세 번째는 심리적인 필요들이 결혼문제의 초점을 차지하고 있으며, 네 번째로는 가정문제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라고 문제를 진단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극적으로 신속하게 변화된 삶과 결혼관계를 보장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으로 쉽지만은 않은 길고 긴 과정으로서 결혼 문제를 바라보며, 긍극적으로 성경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살 때 그로부터 책임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동기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씀대로 사는 삶이란 좋은 기분만을 쫓는 삶과는 다르고 고통스런 순종이냐, 편안한 타협이냐를 결정해야 할 순간에 직면해서 하나님을 따라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알려준다. 개인의 경건한 삶을 산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생활까지도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결혼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성경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며 나의 필요에 대한 최상의 충족책이라고 생각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성경을 문화화하고 성경의 결혼관을 제한시키는 문화적인 해석들을 단호하게 거부하며 하나님의 결혼계획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구체적인 행동원리에 있어서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삼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결혼의 목표를 완전한 연합(창2:24)에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격체인 우리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뜻하신 바대로 살고 관계를 맺는데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인 안전감(Security)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인 중요감(Significance)이라고 바라본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필요는 반드시 먼저 채워져야 책임감 있는 삶을 살수 있고 성경적인 행동이 가능하다고 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하셨고 그분의 계획속에서 중요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두 필요는 완전히 채워졌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배우자나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 그러한 완전한 연합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간단하지는 않고, 타락한 인간 본성의 속성들과 대립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어렵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권위를 바탕으로 이 책 전반에 걸쳐 답을 해 나간다. 구체적으로 연합의 개념을 영적연합, 정신적 연합, 육체적 연합으로 나누어서 각 장에 걸쳐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설명하고 이 것을 건축가의 청사진에 비유하였고, 이러한 인격적인 완전한 연합의 목표를 지향하는데 필요한 세 가지 선결 조건들, 즉 은혜, 헌신, 그리고 수용을 건축용 블록에 빗대어 설명하며 우리에게 결혼의 완성된 건물 모습, 즉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결혼제도와 결혼 생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각 장들이 아주 명쾌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며, 적절한 그림을 삽화함으로 쉬운 이해와 지속적으로 기억해서 그 원리들을 적용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진리의 평균대, 낭떠러지와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사랑의 밧줄, 조작과 섬김, 목표와 갈망, 감정의 수용과 거부, 흥미를 쫓는 성관계와 육체적 연합의 차이 등의 다양한 면들을 살핌으로, 우리의 모든 안전감과 중요감의 인격적인 필요들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채움 받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배우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인식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섬기고, 인격적인 관계의 표현과 연장으로서 육체적 연합 즉 성적인 만족을 즐기는 것이 결혼의 목표라고 설정한다. 계속해서 절망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어떤 실패나 낙심이나 비극도 우리의 결혼을 치료하실 수 있고 우리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충만하고 온전한 은혜에 대한 절대적 확신에 기반을 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기초한 참된 헌신과,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수용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사건, 즉 배우자의 행동에 대해 개인의 선택에 따라 섬김이냐 조작이냐를 결정 할 수 있고, 사건이 낳는 반응으로서의 일차적인 감정은 유쾌함과 불쾌함이 있는데, 각각의 감정 상태를 필요나 갈망으로 그 사건을 평가함으로 이차감정의 반응, 즉 의존심과 만족감, 악독함과 실망으로 나타나는데 궁극적으로 완전한 용서를 하겠다는 결정을 통해서 섬김으로의 결정과 친절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순기능적인 순환을 통해 결혼의 궁극적인 전인적인 연합을 할 수 있음을 아주 쉽게 도표화 시켜 설명해 주고 있다. 더불어 구체적인 사건의 예와 많은 대화법 등도 아주 실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데이트와 결혼에 대한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은 결혼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와 구체적인 행동원리의 추출에 있어서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삼은 점에서 가장 탁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성경의 무오성과 초문화적인 권위를 인정하면서 이 책을 썼으며, 더불어 인간 중심적이고 자신들의 필요와 만족 중심적인 가정에 대한 생각을, 하나님 중심, 특별히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이해와 믿음에 뿌리를 두고 가정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안전감과 진정한 중요감의 원천으로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사실과 성경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만, 우리의 단편적인 결혼관과, 배우자나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요구, 좌절과 실망,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여러 감정적인 상처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됨을 알려준다. 이 책은 결혼 생활에 대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 중에 혹시 지금까지도 이 책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독신자이건 결혼을 앞두고 있건, 아니면 지금 현재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건, 모든 분들이 꼭 읽어보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집에 사서 두고 때때로 다시 보면서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을 점검하고 있으며, 실제로 아주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