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지도자와 휴식”

요사이 수영을 배우면서 느낀 것이 있다. 수영을 하는데 있어서 숨쉬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 것을 잘하여도 숨쉬기를 잘 할 수가 없다면 우리가 멀리 수영하여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수영을 하러 가면 다른 사람들이 수영하는 것을 관심 있게 본다. 한 건장하게 생긴 청년이 몸에는 많은 문신을 새기고 수영을 한다. 너무 힘이 좋아서 무척 잘 할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그는 멀리 수영하지 못한다. 근육질의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멀리 나갈 수가 없다. 곧 지쳐버린다. 그런데 연약하게 생긴 아주머니 한 분이 수영을 하는데 힘이 없어 보이는 분이다. 그러나 그 분은 지속적으로 수영을 잘한다. 그 차이는 한 사람은 숨쉬기를 잘하고 다른 사람은 숨쉬기를 잘 못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도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쉼표에서 잘 쉴 줄 알아야 하고 아름다운 동양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여백을 남길 줄 알아야 한다. 위대한 연설가가 되기 위해서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침묵의 시간 말이 없는 순간을 통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깊이 있는 곳으로 생각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으로 暈遠岵隔?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 가운데 휴식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사실상 신앙적으로도 휴식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안식의 시간을 가졌고 그의 백성들에게 삶의 지침으로써 율법을 주실 때 안식을 명하셨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까지도 안식을 갖도록 명하셨다. 신약의 예수님께서도 그의 삶과 사역가운데 수시로 안식의 시간을 가졌고 우리를 그의 안식으로 초대해 주셨고 그가 주시는 안식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의 나라를 약속해 주셨다.


그러면 바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삶 가운데 어떻게 휴식을 가질 수가 있을까?


첫째, 휴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가 할일 없어서 쉬는 것이 아니다. 일들은 우리 앞에 수없이 많이 놓여있고 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을 다하고 쉬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쉴 수가 없을 것이다. 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 삶의 스케줄에서 휴식을 위한 시간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우리 삶 가운데 틈틈히 휴식의 시간을 갖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학교에서 행정을 하면서 교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을 하면서 교수를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다가 보니까 행정 일을 꽉 채워서 하고 강의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강의실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한번 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노 교수님이 행정가이시면서 교수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셨다. “여러분! 강의 전에는 반드시 10분-15분 정도 휴식을 반드시 취하십시오. 행정 일을 하다가 강의 시간이 되어서 달려가면 효과적인 강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10분 가량은 쉬면서 강의를 위하여 숨을 조절해야 합니다.” 참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또 어떤 사람이 조언하기를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는 꼭 10분 가량 휴식을 취하고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지쳐서 집에 돌아가면 배우자에게 짐이 되기가 쉽다. 그러면 서로에게 지쳐서 도움을 바라게 되고 둘 사이가 좋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러지 말고 10분 가량 숨을 고르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 삶 가운데 가끔은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 자주는 할 수 없지만 가끔은 우리의 몸과 영혼과 정신을 푹 휴식가운데 잠기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절대 휴식”이라고 부른다. 마치 무덤 속에 누워있는 죽은 자처럼 모든 생각과 걱정과 근심과 창조성까지도 모두 포기하고 푹 쉬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삶에 스트레스로 피곤할 때에 가끔 묘지를 찾아가서 미리 사둔 묘자리에 누워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고 한다. “곧 이렇게 누울텐데 내가 왜 이렇게 욕심을 내고 바쁘고 힘들게 사는가” 생각하면서 삶을 바로 잡는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삶의 속도를 줄이고 이렇게 깊이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휴식을 취하는 방식과 패턴이 다양하다. 방법에 있어서 율법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나는 그까짓 휴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초인 의식은 버려야 한다. 네째, 우리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휴식과 안식의 차원을 넘어서 영적인 차원에서의 안식이 필요하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무거운 짐, 욕망이라는 짐, 그리고 걱정이라는 짐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식을 취하여도 영적인 차원에서의 안식이 없다면 우리는 피곤하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 깊은 영적인 안식으로 초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오직 예수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는 깊은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승리롭게 살아갈 힘이 있다.


앞에 수영이야기를 하였었는데 수영을 배우면서 어떻게 하면 숨쉬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연구를 하였다. 팔을 잘 휘젓고 다리를 열심히 구르는 등 열심히 배워서 최선을 다해도 숨쉬기가 힘이 들고 곧 지쳐 버렸다. 근본적으로 나는 내가 물위에 떠있어야 숨쉬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열심히 수영을 연습하다가 한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숨쉬기를 잘하려면 물로부터 열심히 도망쳐서 숨쉬기를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물에다가 내 몸을 맡겨야 한다. 물에서 내 힘으로 뜨려고 하지말고 물에 내 몸을 맡겨 물이 나를 뜨게 해야 되겠다 생각하였다. 힘을 빼고 물에 내 몸을 맡겼다. 그리고 머리까지 푹 물에 담갔다. 그랬더니 내 몸이 물에 뜨는 것이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속력도 붙고 물의 띄워주는 힘 때문에 숨쉬기도 쉬워지고 많이 수영을 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자기의 힘으로 물에 떠 있으려고 하면 사람은 물위에 오랫동안 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없고 연약하여도 물에다가 내 몸을 맡기고 머리를 넣으면 물이 나를 띄워 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우리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면 머리가 좋고 힘이 좋아도 곧 지친다. 인생은 아무리 강한 자라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께 나아가서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나의 삶을 맡기면 평안과 안식이 있고 우리가 성공적으로 지속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이 아닐까? 주님께 나아가서 그에게 나의 죄의 짐과 욕심과 염려를 다 맡기고 힘을 얻어서 하루하루를 승리롭게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

[장이규]변증을 위한 소그룹 운영을 계획하라 (3)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소그룹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변증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그 변증 능력의 개발은 다음의 4가지 전략적인 의도적인 차원 (intentional dimension)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의도적인 변증 능력 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라.
예를 들면 올해 상반기, 혹은 올해 한 해는 특별히 변증의 능력을 개발하겠다고 계획을 세우라.


둘째는 의도적인 변증의 능력 개발 차원에서 설교와 말씀들을 듣게 하라
오랜 세월동안 믿음의 경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이유는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설교말씀을 객관적으로 듣기만 해서이다. 말씀이 구체적으로 내 삶에 부딪히는 사건(event)으로의 전환(transforming) 없이 단지 오늘 설교가 좋았다, 찔렸다, 은혜 받았다 등등의 객관적인 감정의 차원 (emotional dimension) 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 차원의 경험은 시간의 문제이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감정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조차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건이 정말 있었는?없었는지 지어낸 것인지 분별이 잘 안되는데, 하물며 단순한 감정적 차원에서의 이해는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잊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원래 그 자리에 또 있는 것 같이 느끼면서 복음의 변증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신 없어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집중하여 말씀을 들으라. 은혜 받은 바를 느낌에 머물게 하지 말고 이해의 차원으로 끌어 올려 정리를 하게하라.


셋째, 의도적으로 변증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 하게 하라.
이야기 되어 지고, 설명되어진 모든 이야기들은 다시 한 번 나의 생각과 언어의 표현으로 정리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객관적으로 주어진 모든 정보들이 나의 것으로 소화(transforming)되고 체계화(systemizing) 되기 때문이다. 별도의 노트에 혹은 컴퓨터에 메모를 하라. 그리고 이 메모에 맞는 질문을 만들어 놓으라. 그리고 꼬리를 물고 생기는 질문들을 메모해 놓으라.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라. 이러한 경우는 변증에 관한 책들이 많이 도움이 된다. 변증에 관한 책은 2-3권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내 영적 성숙도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반면에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의 대답이 의외로 나의 영성과 성숙도에 맞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참고도서: Help Me Believe, Direct Answers to Real Question by Cliffe Knechtle 혹은Just the FAQ’S about Jesus, Frequently Asked Questions by Max Anders)


넷째, 의도적인 변증의 훈련 을 제공하라


개인의 변증 능력의 개발을 위한 4가지 전략적인 차원 (intentional dimension)에서 네 번째는, 의도적인 변증의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도적인 변증의 훈련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믿음의 능력을 개발(equipping) 하고 믿음의 능력을 나누도록(empowering) 하는 귀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변증의 훈련을 통하여 혹자는 성경의 지식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증 훈련의 유익은 그러한 차원이 아니다. 한번 해 보라. 변증의 훈련은 3가지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을 미치게 하는 유익을 공급하는데,


1. 변증의 훈련을 통해 단순한 정보의 정리의 차원에서의 도움이 아니라, 그동안 지나쳐 오던 나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무엇을 믿지 않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의 의문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하면서 이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동시에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변증의 훈련 자체는 믿음의 능력을 개발하는 (equipping)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기본적인 예들이다.


Q: 예수님은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 말씀하셨나?
A: 회개 와 구원 (마가 1:14-15/ 요3:2-3, 16-18)
Q: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라 말씀하셨나?
A: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38)
Q: 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나?
A: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을 사람들이 믿도록 돕고, 기적의 사건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증거하시기위해서 입니다. (막2:5-12/ 눅 7:11-17). 기적 자체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Q: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해 무엇을 이루셨나?
A: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 하게 하셨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심(롬 4:2-3; 5:1,9; 8:1,)
Q: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죠?
A: 첫째는 그를 믿고, 둘째는 그를 우리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며, 셋째는 우리의 옛 삶을 회개하고, 넷째는 그분에게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요3:16-21, 6:44; 요1 6:4)
Q: 어떻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A: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러나 단지 성경이 기록하는 말씀에 익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시고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사모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히 알게 됩니다.(롬6:17)


2. 더 나아가 변증의 훈련은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자신을 부여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가 생기듯, 변증의 훈련은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적으로 믿음의 용기와 안정을 가져오면서 생명력 있는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 한다. 왜냐하면 변증의 능력은 문제를 다루도록 준비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윌 로우 크릭에서 변증의 시간에 묻고 응답되어진 훈련의 내용이다.


Can we really know what’s true about God?
Why do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Do all paths to God?
What does God think of homosexuality?
Will People really not be in a Hell?
Is Christianity oppressive to women?
Is life predestined or are we free to choose?
What does God want from me?


3. 또 한편으로 변증의 훈련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생명력 있게 나눌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다. 신앙의 내적 경험을 외적으로 표현 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있었던 표면 측면의 지식적 걸림돌이 제거 되면서, 신앙의 내적 경험이 외적인 체계화된 외적 지식의 비행기를 타고 생명력 있는 능력으로 전달되어지게 된다. 이는 마치 음악 발표회 때 악보를 보면서 노래하는 사람과, 악보를 외우고 관객들의 눈을 마주치면서 호소력 있게 노래하는 사람의 차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 있는 전달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복음의 생명력 (power)에 자신을 노출하도록 감화력을 갖는 것이다. 변증의 훈련 자체가 믿음의 능력을 나누게 하는 (empowering) 단계이기 때문이다.


변증의 훈련을 의도적으로 계획하라. 변증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두려움의 장애물들을 넘게 하는 능력이다. 더 나아가 단순하게 지식으로 정리가 되지 않고 나의 믿음에 믿음의 능력이 개발되고, 믿음을 나누게 하는 생명력 있는 힘을 얻게 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윌로우 크릭 교회는 아래와 같은 훈련을 정기적으로 매번 내용을 달리하여 제공하고 있다. 도움이 될 것 같아 그 훈련의 내용을 적어 본다.


Jesus as the ultimate “how to” model
Geared to reach a our changing culture
Using questions to discover truth
Others centered vs. information centered
Spiritual Discovery as a process, not a project.


Date: 03/22, 29, 04/05 – 2005
Time: 7:00-9:00 p. m.


기타 참고 도서


티 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정성욱)
순전한 기독 교(c.s. lEWIS)
Just the FAQ’S about JESUS by Max Anders(IVP:2002)
Help me Believe by Cliffe Knechtle(Nelson, 2000)


훈련된 1분 표현의 변증능력의 개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윤여재] tm KOSTA, 그 목적과 취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변화상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

이코스타 2005년 9월호

tm KOSTA의 목적과 취지
tm KOSTA는 복음, 민족,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KOSTA의 3가지 Core Value 중에서, 특별히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세번째 Core Value를 바탕으로 둔 코스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tm이라는 것은 task major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의 전공분야 혹은 직업의 소명을 받은 분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래서 tm KOSTA는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하여 신앙과 학문의 통합된 삶을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을 지원하려는 사역입니다.


tm KOSTA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이, 소명 받은 전공분야 및 관심분야에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두 가지 영역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지원사역은 전공과 관심자별로 기독 학생, 기독 학자, 전문사역자 간의 연락망(Network)을 구축하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여기에 매년 KOSTA 수련회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전공자와 관심자들이 만나서 긴밀하게 연락 및 토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과 tm KOSTA 홈페이지(http://tm.kostausa.org/group.html)를 통하여 Network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tm KOSTA가 지원하는 사역은 전공별 및 관심자별 resource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Resource를 제공하는 방법에는 Networking을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련회장에서 직접 tm KOSTA 세미나에 참가함을 통하여 전문가로부터 resource를 제공받고 그들의 앞선 고민과 과제 및 방향들을 듣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공별 및 관심자별 resource를 홈페이지 (http://tm.kostausa.org/resources.html)를 통하여 언제든지 찾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tm KOSTA의 변화상
매년 20여가지 전공별/관심자별 이슈들을 코스타 수련회 마지막 날에 전체 코스타 참석자들에게 참석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이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이 너무나 다양하여서 올해부터는 수련회 첫번째 세미나 시간에 기초 신앙에 관심을 갖는 분들과 함께 tm KOSTA를 진행함으로써 영적인 충족을 바라는 분들에게는 기초 신앙 세미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특별히 tm에 관심을 갖고 있는 참석자들에게 tm 세미나를 진행하는 양극화를 통하여 더욱 효율성 있는 세미나를 이루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련회장에서의 논의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지협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상에서 언급해드렸던 Networking과 Resource를 병행한 지원사역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래는 올해 진행되었던 전공별/관심자별 주요 이슈들입니다.


-  미국 교육계의 “No Child Left Behind” 법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  교회지도자(목회자)와 정치참여
-  Computer Science 전공자로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들
-  기독 의료인들에게 요구되는 영성과 전문성을 갖춘 섬김: (Compassionate Heart and Touch)
-  Widening the Spectrum of Music for the Church Year
-  그리스도인과 직장생활
-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과학기술
-  인문학 속의 크리스찬들
-  한국교회 예배와 찬양 운동 – 그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  통일의 꿈, 평양 과기대
-  현대 미술과 기독교
-  캠퍼스 미니스트리
-  오늘의 대중문화 현상


tm KOSTA의 방향성
tm KOSTA의 앞으로의 방향성을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떠오릅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마9:37 38).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여겨,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말씀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특별히 학문하는 영역 가운데서 기독 영성을 갖춘 전문 기독인을 부르시고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러한 부르심의 영역들이 학문의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부시 대통령이 일반 공교육에서도 진화론과 더불어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이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다시 한 번 더 진화론과 창조론, 진화론과 지적설계, 창조론과 지적설계이론이 다시 뜨거운 논쟁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적설계 이론은 이전의 진화론과 창조론의 서로 다가설 수 없었던 거리를 더욱 좁혀서, 과학적인 언어와 논리로 생명체의 정보와 복잡성을 우연의 법칙이 아닌 어떤 무엇인가에 의한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적설계 이론이 이제 십여년의 연구활동으로 인하여 이론의 미비점이 많지만, 적어도 과학적인 언어로 진화론자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하여1987년 미 법원에서 창조론이 종교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교육에서 제외되었던 이후에 지금 미국에서 몇 개의 주와 카운티에서 진화론과 함께 지적설계 이론을 함께 교육함으로 학생들에게 두 이론을 동시에 비교하며 논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이 지적설계에 대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필립 쟌슨, 마이클 베어, 윌리엄 뎀스키를 들 수 있습니다. 특별히 윌리엄 뎀스키는 한국의 지적설계 이론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고, 최근에 윌리엄 뎀스키의 “지적설계”책이 서울대 창조과학회에서 번역하여 IVP를 통하여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지적설계의 운동은 미국에서 지적설계 운동과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각 전문영역 가운데서, 믿지 않는 세상의 언어로 함께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그 가운데 창조주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궁극적으로 모든 만물 가운데 영광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통과 탄식 가운데 있던 모든 피조 영역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해방되어, 태초에 “보기 좋았더라”의 원위치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길이 tm KOST가 걸어 나가야 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차문희] tmKOSTA: 교육 부문: No Child Left Behind Law

이코스타 2005년 9월호


올해 새롭게 달라진 티엠 코스타에 맞추어 교육학을 공부하는 40여명의 코스탄들이 코스타 집회 둘째 날, 한 자리에 모였다. 초등 교육, 중등 및 고등 교육, 특수 교육, 예체능 교육, 교육 공학, 교육 행정 등등 다양한 교육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시는 분들과 심지어 현재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님들도 몇 분 참가하셔서 주위의 시선을 주목하기도 했다.


약 80여분 동안 진행된 이번 교육 관련 티엠 모임에서는 NCLB(No Child Left Behind) 의 소개와 이 법으로 인해 미국 교육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간단한 보고가 있었다.


미국의 공교육 (Public education) 의 질(quality)을 높이기 위해 2002년도 부시 대통령이 통과시킨NCLB Law는 학부모와 학교와의 관계, 학교 당국과 교육 행정직의 책임과 임무, 독해력 (Reading)과 주(state)마다 해마다 실시하고 있는 실력 평가의 수준 향상, 그리고 특수 학생들의 교육 환경과 통합 교육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학부모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육 수준과 실력 평가 결과 그리고 교사의 자격 즉 teaching credential에 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실력이 다른 학교에 비해 뒤떨어진다면 그 지역 내에 다른 학교로 전학시킬 권리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에 학교 행정직의 책임과 임무로는 일반 및 특수 학생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특히 학교 전체 평균이 주 정부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했는지 (adequate yearly progress)를 지역 및 교육 위원회에 보고해야 하고 우수한 교사 및 교직원들을 임용해야 한다. 독해력(Reading) 향상의 일부로 아이가 3학년이 될 때까지 글 읽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고 학계에 알려진 특수한 독해 교육 방법을 도입해서 학생들을 평가하고 가르쳐야 한다. 모든 학생들은 2013-2014년까지 영어, 수학, 과학 부문의 실력 평가에서 주 교육 위원회가 요구하는 이상 수준의 성적을 얻어야 하고 학교는 이 실력 평가의 평균 성적을 보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특수 교육 분야에서는 보통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의 권리를 갖고 가능한 한 통합 교육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강조했다.


결국 NCLB의 요지는, 올바른 교육의 효과는 공교육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데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듫의 학문적인 실력을 향상시키고 그 학문적인 실력은 교사의 지도력에 따라 달라지며 이에 대한 평가는 해 마다 치루는 실력 평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데에 있다.


어떻게 보면 정말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이 법이 큰 효력을 발휘할 것 같지만, 이에 비해 현재 교육 행정 종사자들과 교사들의 불만도 무시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첫째가 바로 실력평가 점수만 보고 그 학교의 우수성을 평가한다는 점인데 이 평가에는 특수 아동들의 성적도 반영이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수 아동들은 mild or moderate disability를 가진 아동들만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특수 아동이 많은 학교는 당연히 전체 평균이 내려 가고 그러다 보면 학교 당국은 평상시에 문제가 많고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을 학교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특수 학교로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들은 이런 실력 평가 점수 올리기에 집중하다 보면 창의적인 교육 보다는 주입식으로 점수 위주의 교육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서로의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 법이 옮고 그름은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티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도대채 왜 이런 법이 나오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미국의 공교육이 신뢰성을 잃은 이유는 바로 신앙에서 멀어진 가정이 무너졌기 때문에,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은 방황하며 학교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이런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성경적 중심의 가정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현재 교육계에 hot issue가 되고 있는 NCLB를 40여명의 학생들이 80분 동안 토론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하지만 많은 코스탄들은 자신과 비슷한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만남을 통해 고민하며 각자의 삶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방선기] 모델하우스 철거현장을 보고서

마포 로터리를 지나다가 모델하우스를 철거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곳은 벌써 몇 번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지어서 분양광고를 했다가 그 일이 다 끝나면 철거하고 또 새로운 아파트 회사가 다른 모델하우스를 지어서 똑같은 광고를 하는 것이다. 잘 지어놓은 모델하우스가 철거되는 광경을 보면서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허무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돈을 들여서 멋지게 꾸몄던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이 모여서 아파트 내부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도 했겠고, 이런 집에서 살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거닐었을 그 공간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버린 것을 보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델하우스가 아깝다고 그것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모델하우스를 짓고 철거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그 장소에 맡겨진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대사회의 일상사의 한 부분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주변에 있는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보았다. (조금 옆에 ‘아크로타워’ 라는 건물을 짓고 있다.) 그 건물들은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곳이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변에 있는 건물은 모델하우스처럼 자주 허물고 짓고 하지는 않지만 그 건물들의 자리에서도 지난 수백 년간 역사를 통해서 수도 없이 여러 건물이 지어졌고 또 철거되었을 것이다. 지금 서 있는 건물도 언젠가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서게 될 것이다. 지금은 멋진 실내 장식이 있고, 그 안을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고, 일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 그 건물도 수명이 다해서 철거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멋진 실내 장식들이 다 쓰레기가 되고 사람들이 왕래하던 그곳이 폐허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건물이 또 지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기간이 좀 길기는 하지만 모델하우스의 변화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서 있는 건물도 언젠가는 허물어질 것이며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곳이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전체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영원히 이렇게 살게 될 것처럼 여기고 살고 있다. 그러나 모델하우스의 사용기간이 있듯이, 건물들이 사용되는 기간이 있듯이 사용기간이 있다. 언젠가는 철거가 되고 새로 지어질 것이다. 그 기간이 좀 길어서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3:4).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개인의 생애가 끝나기 전에 그날이 오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지금 세상이 철거되고 새로운 세상이 세워질 때가 있다고 한다.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종말론의 진리이다. 다 허물어진 모델하우스를 보면서 나는 어느 회사가 또 멋진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짓게 될 것을 예상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건물이 철거되고 공사가 시작되고 있다. 그 허허벌판이 된 공사장을 보면서도 나는 ‘아크로타워’라는 이름의 멋진 건물이 세워질 것을 예상한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무너져버리고 하나님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을 예상한다. 그곳에 입주할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