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약한자의 친구 / 회심의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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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자의 친구 – 크리스틴 폴 & 크리스토퍼 휴어츠 (복있는사람)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종적으로, 그리고 많은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소수자, minority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차별을 받을 때도 많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과정 가운데에서도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습니다.

그러나 minority로서 살아가는 것에 축복이 있다면, 그들의 또 다른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가난한 이웃과의 우정을 진솔하면서도 감동있게 전하는 책입니다. 약한 사람들,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며, 선교의 핵심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minority로 살아가는 한인 학생들이야말로 이러한 우정을 실천하기에 참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이 쉽지는 않지만 작은 실천부터 시작할 때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경험을 더 깊이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vc_column_text][/vc_column][vc_column width=”1/2″][vc_single_image image=”5432″ align=”center” img_size=”full”][vc_column_text]

회심의 변질 – 알렌 크라이더 (대장간)

‘회심’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번째로 “기독교: 과거의 생활을 뉘우쳐 고치고 신앙에 눈을 뜸” 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렸을 때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경우, 그 당시에는 뉘우쳐 고칠 과거의 생활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늘어가는 나이만큼, 또는 신앙생활을 계속 할수록, 뉘우쳐 고칠 과거의 생활이 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러한 과거의 생활을 뉘우쳐 고칠 때마다 매순간 신앙에 새롭게 눈을 뜨는 것이고, 매순간 다시 회심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회심이 사전의 의미와 달리 일회성 행사처럼 여겨지고, 그 의미보다 훨씬 값싸게 변질된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를 통해 다루고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서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다루고, 그 회심이 어떻게 변질되어 갔는지 이후 역사를 비추어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이 주류로 인정받는 세상의 특징이 무엇인지 다루고, 앞으로 다가올 크리스천이 비주류가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회심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 그 회심의 회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좋은 책입니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강사 인터뷰 – 김지혜 멘토

[vc_row][vc_column width=”1/1″][vc_single_image image=”5417″ align=”center” img_size=”full”][vc_column_text]1.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함께 코스타를 섬기고 있는 김영수 멘토와 결혼한지 28년 째이며 세 자녀가 있습니다. 남편과는 다섯 번 만나 결혼하기로 한 후 당시 유학중이던 남편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한 학기 지나 결혼해서 미국 유학과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온 지 7개월 후에 오랫동안 부인하던 예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과 속사람을 치유받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2. 코스타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셨고, 그동안 참석하면서 멘토로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이나 느꼈던 점을 나눠주세요.

오랫동안 코스타를 섬기고 계신 안종혁 장로님의 추천으로 코스타와 인연을 맺게 되어 5년 전부터 남편과 멘토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멘토로 섬기며 기억나는 일은 몇년 전 저희 교회 청년 부부가 처음 코스타에 왔는데 중간에 싸워서 도중에 돌아가려던 것을 알게되었어요. 저희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기도했을 때 그들의 마음이 풀어져 은혜받고, 부부가 더 가까와져 돌아갔던 생각이 납니다. 또한 짧은 코스타 기간이지만 제 인생에 허락하셨던 아픔과 갈등들을 매해마다 다양한 만남들을 통해 사용하시는 것을 보며 감사함을 느낍니다.

3. 컨퍼런스 중에 멘토로 섬기시는 일 이외에 지역교회나 캠퍼스에서 섬기시는 사역을 소개해 주신다면?

노스캐롤라이나 랄리에 있는 랄리제일한인침례교회에서 25년 동안 있으면서 주일학교 교사로(유아, 유치부, 유년부, 현재는 청소년) 섬기면서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 마음을 더욱 알아가고 있습니다. 남편과는 2003년부터 주로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마하나임이라는 청년부를 섬기고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전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하고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감격이 있습니다. 또한 일대일이나 그룹 성경공부를 통해 주님 안에서 변화되는 자신과 상대를 바라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vc_column_text][vc_single_image image=”5418″ align=”center” img_size=”full”][/vc_column][/vc_row][vc_row][vc_column width=”1/1″][vc_column_text]4. 이번 코스타 주제와 관련하여 멘토님의 경험 또는 생각, 기대함을 듣고 싶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로 제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에게 도움 받는 것을 싫어하며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던 나의 모습이 얼마나 교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지요. 주님을 알고부터는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진정 나의 도움이요, 힘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연약함을 인정할때마다 주님께서 사용하시며, 그분을 온전히 의지할 때 참 자유와 기쁨이 있음을 배워갑니다. 이번 코스타 주제를 통해 그동안 경험했던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는 것과 더불어 코스탄들에게도 동일한 축복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5. 유학생의 배우자로 미국에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비슷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기혼 자매 코스탄들에게 조언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유학생 아내로서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공부가 끝난 후 남편은 직장을 잡게 되었고, 저는 집에서 세 자녀를 기르며 정체성의 문제와 씨름을 했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유학생 그룹을 섬기며 유학생 아내들의 갈등과 어려움을 많이 보게 됩니다. 여러 면에서 분주하게 살았던 자매들이 이곳에서 생산성 없는 듯 보이는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쉽게 낙심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쉬운 것 같아요. 결국 말씀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부르신 주님께 성실하게 나아갈 때 매일의 삶 가운데 우리를 낙심케하고 요동케하며, 유혹하는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며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내 속에 은혜가 흐를 때 그 은혜로 나의 가정과 주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게 되고 나 자신 또한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됨을 믿습니다.

6. 멘토로서 코스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과 갈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는데 청년의 때를 살아가면서 이것만은 꼭 붙잡고 있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청년의 때 소중한 주님을 삶의 자리에 우선순위로 둘 수 있다면 가장 축복된 길임을 믿습니다. 유혹이 많은 청년 시절에 하나님의 변치않는 진리로 마음을 무장하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성공이 반드시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다보면 어려움과 아픔이 더 큰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지요.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은 특히 어려운 시간을 지나며 빚어지니까요. 또한 자신을 누군가와 비교함으로 비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도 결코 우리를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성품, 재능, 환경들을 비교함으로 불평이나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며 주님 앞에 계속 드리다보면 주님이 계획하신 뜻과 계획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낙심될 때가 많지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는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 (히 12:2) 예수님을 매 순간 우리 삶에 초대할 때, 유혹을 이기며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이 주는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그리스도와 약함의 길 (주제 기획기사3)

[vc_row][vc_column width=”1/1″][vc_column_text]예수님의 생애는 약함으로 점철된다. 그가 태어난 곳은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이었으며 누운 곳은 구유였다. 오랫동안 예수님이 가난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 광야에서 사십 일을 지내시며 받은 시험은 경제적 힘, 존귀와 영광, 권력의 힘으로부터 오는 유혹이었고 이를 강하게 거부하신 일도 그의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중병환자들을 치유해 주시고, 죄의 사슬에서 환자들을 해방할 때 몰려든 사람들의 강함에 대한 요구에 조용히 피하신 일도 있었다.

예수님의 정신과 삶의 정수인 십자가의 죽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운명의 순간까지 강함에 대한 유혹을 이기시고 가장 약한 모습인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참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십자가의 약함을 수단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게 하시고 인류 역사에 뻗어내려 있는 악의 뿌리를 이기셨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약한 상태의 죽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약해보이는 예수님의 철저한 수모와 패배의 약함으로써 비로서 강함을 이기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세상의 질서는 강한 힘으로 이 땅을 지배하고 사단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지만 그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승리하셨고, 환희의 부활을 성취하신 것이다. 우리의 죄를 지고 형벌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약함의 길을 걸음으로써 “정사와 권세를 폐하여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골 2:15). 이로써 예수님은 사탄의 질서를 파괴하시고 죽음을 이기셨으며 죄의 권세를 정복하셨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타락했을 때 사단이 다스리고 있는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간 인간을 그리스도가 결정적으로 구원하신 것이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는 고난과 죽음을 즐겁게 선택함으로써 얻어지는 약함의 참 승리였다. 예수님은 순간마다 강함에 대한 유혹을 받으시면서도 고난과 죽음을 통해 약함의 길의 참의미를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길로 초대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따른 그리스도와 그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약함을 통해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기 때문에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도 그 길을 걷는다. 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따라갈 때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어 갖게 되는 부활의 기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약함을 가지고 선한 싸움에 이기는 것이다. 부활로써 그리스도의 상처가 치유와 구원의 샘이 된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까지 감수하며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에 충실할 때 승리를 얻고, 약함을 기쁨과 부활의 원천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고백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 세상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골 1:24) 이런 관점에서 약함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자마다 자기 자신의 약함을 겪으면서 그리스도의 구속적 고통에 참여한다. 약함으로 아파할 때, 고통당할 때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며, 아파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약함의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그래서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기고 죽음의 질서를 물리친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며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협력하도록 허락받는다.

만약 우리 삶의 목적이 예수님을 닮고 삶 속에서 그분과 일치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면 “약함”과 “십자가”를 즐거워할 수 있다. 주님께서 친히 세상의 모든 약함을 지시고, 십자기에 오르셨기 때문이다 (마 8:17). 예수님의 약함의 길을 좇은 그리스도인들은 고통받는 종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의 약함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원천으로 삼고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다. 그 길은 힘든 길이다. 그러나 약함의 길 위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도 약함의 정신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며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난하고도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약해도 약해지지 않고 강해도 강해지지 않는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강사 인터뷰 – 박영호 목사님

[vc_row][vc_column width=”1/1″][vc_single_image image=”5407″ align=”center” img_size=”full”][vc_column_text]1. 목사님 소개와 인사를 해주세요.

IMF가 있던 97년 미국에 유학을 왔습니다. 당시 800원 대였던 환율이 2000원까지 올라가는 충격을 첫 학기 때 겪으며 고생을 많이 했죠. 99년 시카고 대학 인문학부에서 박사공부를 시작했는데, 2012년에 마쳤으니까 13년 반이 걸렸습니다. 제가 했던 과정이 보통 10년 정도 걸리기는 하지만, 공부하는 중에 교회를 개척하기도 해서 좀 더 오래 걸렸습니다. 아내도 박사과정을 공부했기 때문에 아이도결혼한지 13년 반 만에 낳았습니다. 여러모로 특별히 유학생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는 스펙이 아닐까 합니다. ^^
유학생활 중 감사하는 것은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 뿐 아니라, 미국인들 통틀어도 신학생 중에 저처럼 선생님 복이 많은 경우는 드물거라 생각됩니다. 저의 미국 생활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이사야 30: 20)” 입니다. 이런 점에서 코스타는 참 좋은 기회입니다. 이번에도 훌륭한 강사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젊은이들이 여기서 좋은 스승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어떤 고생도 감수할 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젊은이들이 자라서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스승이 되어주는 것이 코스타에 참석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축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세미나에서 <총체적 복음>에 대해서 강의하시는데 소개를 해주신다면

복음은 코스타의 강의 목록에서도 첫 번째를 차지하는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총체적’이라는 말이 붙는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복음이 온전하지 못한 단편적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유진 피터슨이 말하기를 “형용사는 명사가 타락할 때 필요해진다. 예를 들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인으로 충분한데 이 명사가 타락하니까 ‘신실한’이라는 형용사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총체적 복음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이유입니다. 원래는 “복음”이라는 말로 충분하지요.”
강의에서는 성경에서 본래 복음이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에 철저히 집중할 것입니다. 본래 복음은 그것 자체로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목숨을 걸만한 거였잖아요. 삶 자체가 신나게 되는 거였죠. “나는 이제 죽어도 천국 간다”는 것을 확보해 놓고 그것과 관계없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인간을 보는 시각 전체가 바뀌는 즉, 삶의 목적과 의미 자체가 바뀌는 것이었지요. 그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3. 올해 코스타 주제가 신학적으로 어떤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와 그 이유를 설명해주신다면?

어떤 말이든 구체적인 맥락에서 의미가 결정되지요.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사회의 상층부에 진출하는 것을 비전으로 합리화하는 그런 욕망들을 신학적으로 포장해 온 거짓 복음에 속아 왔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 사회 상층부에 기독교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는데 사회는 더 혼탁해지고, 교회는 더 어려워졌지요. 이런 것에 대한 반성의 맥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의 약함과 주님의 능력,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너무 쉽고 자명하게 이 둘이 연결된다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거짓 복음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에 절망할겨를도 없이 그냥 주님의 능력을 가져다 쓰고 싶은 마음에 거쳐야 하는 단계로 약함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거지요. 주님의 능력을 쓰고 싶은데 그 방법으로 “우리의 약함”이라는 카드를 내 놓는다면, 그것은 신앙의 이름을 빈 주술이지요. 내려놓음이라는 주제가 지나치게 유행할 때, 가만히 보니까 이게 “아, 내려 놓으면 더 주실 거야” 하는 기대가 그 뒤에 있더라 하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려 놓는 게 아니라, 내려 놓는 척 하는 것이지요.

 

4. 삶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와 직면하게 될 때 스스로를 약자라고 느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와 고용주/ 실업자와 사회구조/ 빈부의 차이 등) 이런 문제 속에서 많은 크리스천 청년들이 고민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신앙과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사회 전체에 대한 대안적 지혜와 내가 처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헌신, 이 둘의  조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자를 위해서 끊임없는 공부, 성찰, 네트워크, 자신의 시각을 넓히는 도전과 자극을 찾는 게 필요합니다. 후자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내 옆에 한 사람, 즉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내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또는 해야하는 실천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도 때로 내가 손해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강도 만난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를 도우려면 내 일정이 헝클어 진다든지, 재정적으로 출혈이 있다든지, 혹은 안전에 위협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요.
이런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그냥 가도 되지만 만약 만났다면 그 만남 자체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신앙고백적 상황”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그 순간에 결정된다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봤는데 그냥 지나치고 길을 간다면, 이제 나는 그를 만나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겁니다. 곤란에 빠진 이를 외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 순간에 나의 전 존재를 걸고 대답해야 하는 겁니다.

 

5.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하는 적지 잖은 숫자의 유학생들은 미국에 와서 사회, 경제적 약자의 위치에서 처음 서보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 참석자들이 미래에는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강자의 위치에 설 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이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를 추가로 해 주신다면

유학생들 중에 상당수는 어릴 때 부터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서 “나는 천재일지도 몰라”하고 생각하는데, 미국에 와서 그 부분이 깨어지는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지요. 뒤집으면 이 시기가 다른 각도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축복된 시기라는 겁니다. “앞으로 높은 자리에 가면 이런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은 사실 별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결국은 다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어떻게 사는가만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최종 비전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였는데, “로마를”이 아니라, “로마도” 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금 에베소에서 이 말을 하는데, 로마가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기도하면서, “지금 에베소에서 하고 있는 이 일을 로마에 가서도 하고 싶습니다.“ 이런 것이 진짜 비전입니다. 선교사로 가고 싶다는 젊은이가 생활 속에서 옆 집 사람 전도하는 일에 관심 없다면, 선교지 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교수가 되어서 캠퍼스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싶다면, 지금 무엇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시간도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겠지만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같은 일이 없다면 비슷한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비전은 욕심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6. 유학생/청년 사역을 오랫동안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느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의 경제 사정을 비롯한 환경 변화로 젊은이들에게 여유가 없어진 듯 합니다. 공부하고, 연구실에서 일하고, 직장을 구하는 모든 환경이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훨씬 더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럴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급함과 건강한 공동체의 필요성은 더 깊이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외로워서 교회에 나오고 그러다 보면 은혜도 받고, 헌신도 하고 그랬는데 요즈음은 facebook에서 “야, 우리 밥 먹자” 라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것 같으니까요.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놀아주고, 돌봐주고, 재미있게 해주고 이런 것 보다 더 본질에 즉, 복음과 말씀으로 가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목사님이 코스타를 통해서 기대하는 것과 코스타에 참석하는 한인 청년 디아스포라들에게 도전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무엇이 이렇게 많은 청년들을 KOSTA에 모이게 하는가? 저는 “목마름”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멀리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올 수가 없겠지요. 모두 목마름이 있는데 그것을 다른데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는 걸음이지요. 여기에 소망이 있다고 봅니다. “목마른 사람 시냇물을 찾아 헤메는” 간절함,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열정이 있다면 방법은 있습니다. 길은 많이 있습니다. 방법이나 길, 자리 같은 걱정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과감하게 헌신하고 철저히 준비한 후 주님께 요구하세요. 나를 써 달라고! 주님이 나를 부르시는데 “저 아직 준비 안됐는데요” 라고 대답해야 하는 일은 내 인생에 없어야 겠다는 결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vc_column_text][/vc_column][/vc_row]

코스타 둘째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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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 어젯밤에 내린 비로 인해 더 밝고 화창한 날씨로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했습니다. “God’s purpose in Weakness”라는 Daily Theme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약함의 나눔과 약함 가운데 머물게 하시는 이유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오전에 조별 묵상을 마친 후 성경강해에서 마르바 던 교수님은 “A Prayer of David(시편 86:1-12)”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시편의 ‘LORD’라는 단어는 ‘여호와’라는 의미인데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시며 영어로는 언약의 하나님, 약속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주님께 부르짖으면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직장, 건강, 가정 등의 다양한 문제로 압박 당하고 있는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고 하시며,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이고, 주님께 진정으로 삶을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필요가 있는지, 약함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v.6)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마르바 던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육체적인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분이고, 우리 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다고 권면하시며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이어진 책소개에서 서재석 대표님은 고든 맥도날드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 Steve Wilkens& Mark Sanford <은밀한 세계관>,  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 김근주 <구약의 숲>, 김도현 <나의 사랑하는 책 로마서>를 추천해주셨습니다.

오후에는 다양한 주제의 세미나를 들은 후 정신실 강사님의 간증으로 저녁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처받았던 연약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치유하심을 경험하고 음악치료사와 연애 강사가 된 이야기는 웃음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어서 김병년 목사님은 “우리는 약한 질그릇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결혼  후 쓰러진 아내를 11년째 돌보는 남편과 세 자녀의  아빠이자, 엄마로서 살아온 삶 가운데  연약함을 품고 고난을 직면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나누었습니다.

김병년 목사님은 사도 바울이 자신을 질그릇에 비유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할 때 그의 능력없음을 질그릇으로 칭한것이라며, 바울에게 쉽게 깨진다는 것은 나쁜 뜻이 아니라 내게는 능력이 없고,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다는 바울의 확신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인간은 늘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가지고 이것을 채우길 갈망하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소망만이 그 욕구를 다스리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욕구로 인해 매번 넘어지는데 이 때 무너진 욕구를 정죄할 것이아니라 복음의 용서 앞에 엎드리라고 전하셨습니다.

인간은 삶은 그 여정을 알 수 없는 질그릇이며, 이로 인해 인간은 끊임 없이 두려워하고 삶에 찾아오는 고통과 고난이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지만 끝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이 오히여 끝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쉽게 깨어져도 그 속에 담기는 보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성육신 하나님이며, 연약함을 품고 삶의 걸음을 한 걸음씩 걸어갈 때 연약한 존재 가운데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며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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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엄기호, 단속사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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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입니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접속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외로움을 느끼는 모습,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엄기호의 <단속사회>는 이런 모습이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과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지만, 타인의 고통과 같이 우리와 다른 것은 차단하고 외면하며 가능한 개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공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게 되었고, 이 사회는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고 들어줄 수가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우리의 ‘곁’을 회복하는 것이 이 단속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한국사회를 그리고 있으며, 신앙서적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인 사회, 더 나아가서는 우리끼리 모이는 데에 익숙하고 또한 공적이고 정치적인 의견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 한인 기독교 사회에 더 잘 적용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친숙함과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을 뛰어넘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의 고통을 듣고 공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돌아올지 모르는 불이익, 즉 누군가에게 찍히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이웃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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