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fotostory] 가을아이
[Piafotostory by Eunah Oh with Canon 400D, Canon 85mm f1.8]
[Piafotostory by Eunah Oh with Canon 400D, Canon 85mm f1.8]
이런 상황에서 맞은 특새의 주제는
의외로 쉽게 결정되었습니다. 처음 이 주제가 추천되었을 때에 예년과는 달리 모두들 이견 없이 찬성했습니다. 주제는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을 근거로 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입니다.
보통 한빛지구촌교회 특새 주제는 잘 알려진 찬양 곡 제목과 연결되어
결정되곤 합
이번에도 ‘부르짖으라’는 주제의 곡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적당한 곡이 없었습니다. 70년대 옛 복음성가인 “부르짖으라 내 응답하리라”는 곡이 그나마 알려져 있었으나,
너무 옛 스타일의 조용한 곡이라서 특새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또 뜨인돌과 최덕신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바로 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기도부
다음날 찬양 준비하던 늦은 저녁, 후렴 부분의 멜로디가 떠올랐습니다. 평소 제가 쓰는 화성이나 멜로디 스타일이 아니어서 쓰고 나서 무척 생소했고, 또 불러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멜로디가 맴돌아서 후렴을 중심으로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로마서 8:35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극한 상황이더라도 예수의 사랑을 끊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 말씀을 근거로 1절 가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내게 닥쳐와도 나는 쓰러지지 않네.
누구도 우리를 주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네.”
이는 어찌 보면 다급하기까지 한 주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의 현대적 상황을 표현하는
가사였습니
“세상은 변하고 날 배반하여도 예수는 변치 안네.
우리도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승리해.”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인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
이 말씀을 여러 번역본으로 비교정리해서 “땅을 만드신 주, 세상의 주관자, 통치하시는 왕, 그 이름 여
호와”로 정리되었고, 이 가사를결국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 기도로 완성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주제곡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좋습
니다. 특히 가사에 큰 힘을 얻는다는 반응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렇게
가을의 찬양
창조주께 드리는
가을의 축제
[Piafotostory by Eunah Oh with Canon 400D, Sigma 10-20mm]
저녁 준비를 하며 5시 뉴스를 듣고 있었다. 대전 지역 방송 중, 어느 50대 남자가 장애인 아내를 살해하였다는 소식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참 나쁜 사람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교회 아는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
아저씨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김
아저씨는 다리가 불편하여 휠체어를 사용하는 아내와 20여년 이상을 살아오셨다. 우연히 김 아저씨 네를 알게 된 전도사님과 몇몇
분의 권유로 우리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셨다. 조용하고 여성스러우신 아내와 다혈질의 급한 성격이신 남편은 곧잘 토닥거리셨지만
그런대로 늘 함께 다니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장애인 아내는 건강한 남편이 밖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과 교회에서 이 사람 저사람 만나는 것이 늘 궁금하였고, 특별히 남편이
여자들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예민했었던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라도 몸이 불편하여 집에만 있게 되면 남편의 행동을
예민하게 관찰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다툼이 갑자기 큰 다툼으로 번지면서 마침내 다혈질 김 아저씨가 칼로 아내를
내리쳤던 것이다.
놀란 가슴으로 경찰서에 갔더니 교도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성경책을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도소에 갔다. 아마 내 평생 처음
교도소를 방문한 것 같다. 더욱이 그 엄청난 살인죄를 지은 사람의 얼굴도 처음 보는 경험이었다. 창살을 가운데 두고 아저씨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어쩌자고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어요?”라고 울며 소리쳤다. 김 아저씨는 창백하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사모님, 나 성경책 좀 넣어 주세요! 정말 잘못했어요. 내가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김 아저씨도
울었다. 솔직히 장애인 아내를 가진 남편도 건강한 남편을 가진 아내도 다 이해가 되었고, 두 분 다 너무나 불쌍하고 딱하게
여겨졌다.
지금까지 5년 정도의 기간을 보내며 김 아저씨를 만나러 가끔 교도소에 간다. 편지도 주고받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김 아저씨의 모습이다. 하나님 앞에, 그리고 아내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흉악하고 엄청난 죄인지
철저히 회개한다. “제가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사모님, 아내가 보고 싶어요…” 교도소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며 받은 빵은 같은 방에 수감된 다른 사람에게 준다. 연로하여 몸이 아픈 수감자의 소변과 대변 심부름도 자신의
몫이다. 엄청난 죄를 저지른 자신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해서 이미 전도된 사람도 많다. 자신의
몸을 장기기증도 하였다. 또한 성경을 손으로 오랜 기간 정성껏 필사하여 벌써 한 세트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면 김 아저씨가 손으로 쓴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만나리라.
언젠가 김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저씨, 이곳에서 모범수로 잘 계시다가 일찍 출감하시면 좋겠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 죄의 대가를 철저히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출감하면 장애인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늘 “하나님의 아들 김** 드립니다.”라고 편지가 마무리 된다. 철저한 회개와 완벽한 용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김 아저씨가 대전에서 여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여주는 내가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길눈이 어둡고 방향감각이
없는 나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 여주 교도소에 갈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대전에서 이 정도만이라도 김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며, 이것으로 내 몫은 끝났다고 정리하였다. 하지만 QT를 하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였는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멀리 하늘에서 친히 인간 세상으로 오신 것이었다. 이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감동이었다. 창조주 하나님, 만유의 주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 먼 하늘에서 이 구석진 땅까지 오셨구나… 주님,
어떻게 이렇게 멀리 오셨나요…
마음이 달라졌다. 대전에서 여주가 비록 나에게는 먼 여행길이라 할지라도,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신 주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편에게 묻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화로 확인하였다. 마음에 몇 번이고 되새기며 외우고 또 외웠다.
떠나는 날 아침 출근길의 남편은 몇 번이고 종이를 꺼내어 가는 길을 확인해 주었다. 아침 일찍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이천 행 버스를 탔다. 이천에 도착하여 여주 교도소 직원이 알려준 대로 시내버스를 갈아탔다. 아뿔싸! 기사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예약 시간 까지 도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도중에 내려 택시로 갈아탔다. 겨우 시간 내에 도착하여 먼저
영치금과 한 방 8명의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넣어 드렸다. 제 시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김 아저씨와 방 식구들이 함께 모여
치킨과 과일과 과자로 잔치벌일 생각을 하니 온 몸과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창살너머로 김 아저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멀리 여주까지 어떻게 왔냐며 너무나 기뻐하셨다. 김 아저씨는 여전히
그 안에서 회개와 감사 그리고 섬김과 전도에 열심이셨다. 돌아설 때 마다 잔소리처럼 꼭 하는 나의 한 마디 “아저씨, 아무리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그곳에서 절대 성질부리지 마셔요!” 무슨 말인지 김 아저씨도 알고 계실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 달랐다. 갈 때는 행여 길을 잃을까, 차를 놓칠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얼마나 불안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은 달랐다. 시골 넓은 들판 굽이굽이 버스 길 지나며 넓은 고속도로 힘 있게 먼 길 달려가며,
주님께 나지막이 계속 여쭈어 보았다. ‘주님, 어떻게 그리 멀리 오셨어요? 하늘에서 땅까지… 우리가 뭔데… 주님,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멀리 하늘에서 오신 나의 주님…’
수년 전 남편의 안식년을 맞이하여 1년간 미국에서 머문 적이 있다. 그 때 기독교 서점에서 나의 눈길을 끈 책이 있는데, 그
책제목이 바로 ‘Behind Our Sunday Smiles’이다. 이 책의 내용이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매주일 아침이면 많은 교인들이 좋은 옷을 입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 모두들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행복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온갖 문제와 아픔으로 괴로움과 낙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그것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젠 교회도 돕는 사역을 하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사실 미국 교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교회들도 이런 비슷한 현상들이 있다. 주일 아침이면 모두 밝은 표정으로 행복하게 인사를
나누지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갖가지 아픔과 고통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부부간의 갈등, 자녀들로 인한 문제,
재정적인 어려움, 컴퓨터 중독, 흡연이나 알코올로 인한 어려움, 시댁 혹은 친정과의 갈등, 정신질환이나 심리 및 인격 장애…
A집사님은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전도회 일, 구역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일에 관여되어 섬기고 있다. 그러나
아들로 인한 마음의 큰 짐이 늘 자신을 누르고 있다. 한참 공부해야 할 중학생의 나이에 그만 컴퓨터에 중독되어 몇 시간을
컴퓨터하며 보낸다. 뿐만 아니라, 이를 금하는 부모에게 지나칠 만큼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욕도 한다.
하지만 이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다. 우선 자식의 일이라 소문이 날까 두렵기도 하고,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싶어도
구체적인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기도나 한두 번 해 주실까…
B할머니는 요즘 할아버지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 할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거동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심방을 와 주시기는 했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 와서 할아버지 목욕을 도와줬으면 하는 구체적인
바람이 있다. 몇 번 전도사님께 부탁드리려고 마음먹다가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지도 않았고 헌금도 많이 못했으며, 명절에
사역자들께 작은 선물조차도 사드린 적이 없기 때문에 면목이 없어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다.
C성도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아이가 커 가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가면서 혼자 사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홀로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재혼하고 싶은 마음을 누구에게도 꺼낼 수가 없다. 괜히 오해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종류의 어려움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
가지고 돌보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정작 필요한 일을 하기에는
사역자도 성도들도 너무 바쁘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 받을 여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때론 우리가
주님의 일에 너무 열심(?)이므로 은사와 능력만 강조하고, 숨겨지고 가려진 아픔들을 도외시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볼일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고통에 큰 관심을 가지시고 그 고통을 풀어주심을 발견한다. 즉 ‘백성의
눈물’에 마음을 두셨다는 것이다.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과 부르짖음과 우고를 보시고 그들을 구하기
위함이었고(출3:7), 예수께서 사역의 많은 부분을 고통가운데 있는 자에게 다가가 대화하시며 치유하신 것도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안타까워 하셨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며 고통가운데 있는 자를 주님
자신과 동일시하시기도 하셨다.(마25장)
우리도 ‘백성의 눈물과 고통에 마음을 두신 하나님’을 닮아야겠다. 혹 나의 관심과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사랑과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자. 필요하다면 나의 시간과 물질도 희생하자. 그리고 더 잘 돕기 위해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도
쌓자. 그리하여 ‘Our Sunday Smiles’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의 모습이 되면 좋겠다.
1977년 12월은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3의 기간을 불안과 방황으로
보내다가 가정선생님의 전도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QT가 무엇인지 몰랐음에도 나를 만나주시고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신 주님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파랗고 자그마한 신약성경을 들고 다니며 집에서 부모님 눈치, 학교에서 친구 눈치
살피며 성경말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오래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학교 청소시간에는 친구들과
마룻바닥을 문지르며 불안과 초조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도 하였다.
하나님을 만난 5월부터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날이 있었는데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일, 바로 크리스마스였다. 12월에 들어서자 어떻게 하면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밤
새워 성경을 읽으며 주님을 사랑하기로 결정하였다. 잠이 많기로 유명한 내가 밤을 새운다는 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나의 사랑과 헌신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셨다. 아니, 그 이상을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으실 만한 분이셨다.
드디어 12월 24일 밤, 성경을 두 손에 들고 마태복음부터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그때
느꼈던 죄송함과 부끄러움은 차라리 그분을 향한 사랑이었으리라.
1990년 12월은 후회 없는 사랑을 이웃과 나눈 특별한 기억이 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일 때 한인교회를 다녔는데 거기서 만난 김
자매와의 교제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분은 미국인 남자와 결혼하여 테이지라는 우리 아들 진호와 동갑내기 아들이 있었다.
남편이 마약과 방탕한 생활로 참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신앙으로 굳건히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아들은 가정환경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산만하여 때론 교인들의 눈총까지 받아 김 자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심지어는 교회에서까지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나와는 마음을 터놓고 서로 의지하며 지냈는데 참으로 귀한 우정이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김 자매의 집을 방문하기로 하고 테이지의 선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했다. 겨울에도
허름하고 얇은 옷을 입고 나오는 세 살배기 아이를 위해 ‘털 잠바’를 사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때 우리의 생활이 넉넉지 못했기
때문에(유학 간 후 3년 정도 까지는 우리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은 기억이 없다.) 부담이 되었지만 실용적이고 좋은 털 잠바를
열심히 골랐다. 그런데 갈등이 생겼다. 모자가 없는 털 잠바와 모자가 달린 것과는 돈의 액수가 많이 차이 났던 것이다.
망설이다가 모자가 달린 것으로 구입한 후, 김 자매 집을 향해 지도를 찾으며 한 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갔다. 반갑게
맞이하는 김 자매는 우리가 오기를 아침부터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울먹였다.
그
후 다음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가을, 테이지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주님 곁으로 가버렸다. 아이 하나 바라보고 힘든 생활을
견뎌낸 김 자매는 미친 듯이 테이지를 불러댔다. 나는 예쁜 관속에 평화롭게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며 “테이지! 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어!”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모자 달린 털 잠바’는 테이지를 향한 계산하지 않은 우리의 사랑이었다.
1999년은 남편의 첫 안식년으로 미국에서 생활하였다. 유학했던 학교에 교환 교수로 일 년간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김 자매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문을 듣고 우리의 연락처를 수소문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으로 함께 만났다.
그간의 일들을 함께 나누었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테이지가 떠난 몇 년 후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는데
테이지와 너무 닮았다. 남편도 성실하게 아내와 함께 교회에 다니며, 친정 식구들도 모두 미국에 와서 잘 정착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면서 김 자매는 봉투 하나를 꺼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사모님, 제가 미국에서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아시지요? 이거 백화점 상품권이에요. 100$은 저에게 참 큰 돈 이랍니다. 하지만 진호에게 꼭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이 돈으로 진호에게 꼭 옷 한 벌 사 주세요. 물리치지 마시고 제 진심을 받아주세요…” 김 자매도 나도 손을 맞잡고 함께
울었다. 그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무 감사했고, 김 자매의 거친 손을 통해 느낀 그녀의 긴 고통의 세월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신 크리스마스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성경을 읽으며 밤을 새워 보고 싶다. 뿐만 아니라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빵과 불고기를 한 아름 안고 고아원을 방문 해야겠다. 그리고 순간의 잘못으로 20여 년간 함께 살아온
장애를 가진 아내를 살해한 후, 지금은 하나님을 만나 철저한 회개의 증거로 교도소에서 전도와 섬김에 열중인 아저씨를 만나러
여주에 가야겠다. 하늘에서 먼 이 땅에 오신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며…
석양이 흐르고..
모두들 집으로 갈 길을 찾아 가건만
나는 아직 길이 남아 있기에….
저 하늘을 벗삼아…
야간 비행…
길을 떠난다.
[Piafotostory by Eunah Oh with Canon 400D, Sigma 18-200mm]
국민학교 때부터 대학원에 졸업하기까지 수많은 선생님들을 거쳤다. 교회에서도 많은 목사님 그리고 전도사님을 거치면서 신앙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학교 선생님 중에서 특히 생각나는 분은 중학교 일학년 때 선생님이 하시는 일을 무엇인가 도와 드리고 우리 학생 두 서너명에게 선생님이 빵 집에 가셔서 수고 했다고 빵을 사주셨던 생각이 난다. 중학교 2학년때 선생님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리 학생들을 대표하여 집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때에도 많은 교수님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은 년초에 세배하고 집에 가서 밤을 새우고 놀고 온 우리 학교 선배 교수님이 생각난다. 미국에 와서도 한국에 다니러 가면 그 교수님 댁을 찾아 뵙고는 하였다. 미국에 와서 신학교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교수님을 만났지만 집에 초대해주시고 개인적으로 식사를 함께 하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신 클린톤 교수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다. 클린톤 교수님은 많은 지도자들을 연구하시고 내린 결론 중에 하나가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사역의 수단이자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가르침에 있어서 비공식적인 관계와 만남이 교육의 중요한 통로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그러하였고 사도바울의 가르침도 그러하였고 오늘날에도 많은 훌륭한 교사들이 그러하다.
내가 학교에서 학교의 사역을 평가하는 연구를 담당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학생들이 교수님들에 대하여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가 얼마나 개인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가를 연구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교수님들과 친밀하게 느끼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교수와 학생간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에 교육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들에게 학생들의 기도 제목을 받아서 기도해주도록 권면하기도 하고 식대를 대주어서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도록 권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관계는 효과적인 사역의 수단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 학생부 전도사로 사역할 때에 나는 작은 교회에서 사역을 하였기 때문에 늘상 아이들에게 라이드를 주고는 하였다. 토요 성경 공부 시간이던 주일 예배 시간이던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집으로 데리러 가는 것이다. 그러면 차 안에서 교회를 오 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신학적이거나 신앙적인 중요한 애기들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통하여 아이들과 친밀하여 지고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주일날 내가 열심히 준비하였던 설교들보다 차안에서 나와 함께 한 시간들이 더욱 기억에 남을 지도 모른다. 지금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면서 어떻게 우리 학생들과 비공식적인 개인적인 관계들을 맺어 갈 수가 있을까를 다시 한번 고민하면서 어쩌면 나의 가르침의 사역이 교실 안에서의 강의보다도 그런 관계들을 통하여 더욱 지속적인 영향을 남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몇 가지만 살펴본다.
첫째,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한번은 클린톤 교수님의 강의를 통역하고 일부는 내가 직접 강의를 하였다. 약 85명 가량의 학생들이 수강하였고 학생들을 다섯 그룹으로 나누어 나는 그 중에 한 구룹 (박사과정학생들 18명 가량)을 지도하였다. 강의 마지막날 그룹 지도자들과 식사하는 도중에 갑자기 클린톤 교수님께서 자기 그룹 학생들의 이름을 다섯명씩 대보라고 도전하셨다. 어떤 사람은 다섯명의 이름을 대고 어떤 사람은 대지 못하였는데 나도 4명까지 밖에 대지 못하였다. 여러가지 핑계가 있지만 결국 그 많큼 학생 한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 부끄럽고 교수생활에 익숙해 지면서 초심을 잃어가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둘째로, 학생들의 숙제에 정성이 들어있는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페이퍼를 자주 내도록 숙제를 내고 있다. 숙제를 내면 받아서 피드백을 주어야하는데 시간에 쫒겨서 이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서 마음에 깊은 부담감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숙제를 정성껏 내면 피드백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알면서도 많은 일들에 쫒겨서 이 일을 감당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요사이 우리 아들 정민이가 학원에 다니면서 매일 일기를 적어서 내는 숙제를 해야한다. 매일 저녁에 일기를 쓰도록 도와주는 일도 쉽지않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이 어떤 분은 정민이의 일기 숙제를 정성껏 고쳐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그냥 잘 했다고 스마일만 표시해주는 선생님이 있다. 정민이 엄마가 선생님의 반응을 보면서 정성껏 해주는 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물론 그렇고… 교사가 된 사람으로써 반드시 가져야할 태도라고 생각된다. 말로만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숙제 하나하나를 정성껏 읽어주는 실제적인 도움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세째, 학생들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교사는 여러명의 학생들을 대하기때문에 일률적으로 대하기가 쉽지만 학생 한사람 한사람은 다르다. 그 학생들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을 해야한다. 오늘날 교육학계에서 배움의 스타일 이론이 많이 부각되고있다. 사람마다 배우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민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에 교생실습을 하던 대학생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하나씩 맏아서 한학기동안 관찰하고 각 학생의 배움의 스타일에 관하여 리퍼트를 하였다. 그래서 정민이에 대한 리포트를 받아보았는데 나의 아들이지만 객관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생듸 독특성을 고려한 교육이 되어야하지 일률적인 방법과 기준에 따른 교육은 때로 학생들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좌절시킬 수 있기때문이다.
네째, 학생들을 사랑해야 한다. 특별히 기독교 교육에서는 학생이 교회의 성도님이건 학교에서 학생이건 하나님께서 우리 사역자에게 맡겨주신 양들인 것이다. 우리 사역자의 첫번째 그리고 마지막 궁극적인 의무는 그들을 주님께서 사랑하셨듯이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목적으로 대해지고 사랑해야 한다. 그 학생들을 사랑하는 것이 궁극적인 교육사역인 것이다. 최근에 이중표 목사님의 책을 읽었는데 말씀하시기를 영적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성도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젖을 먹일 때에 자신을 먹이는 것이 듯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가 골방에서 사랑을 나누고 유방으로 아이들을 먹이듯이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사랑으로 충만하여 영적 자녀들인 성도들에게 자신을 주는 사랑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가 성도들을 정말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기를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목사의 행복이란 교인들에게 자기 존재 전부를 내어줄 때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가 양들에게 지금 무엇을 주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진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 목회 현장에 가보면 진짜 어머니의 심정으로 목양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자신이 나름대로 교인들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무리를 맏은 자에게 주어지는 진지한 도전이 아닐수없다.
다섯째,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사랑의 시작이자 궁극적인 표현이다. 우리의 사랑이 부족하기에 우리는 그들을 온전히 사랑하시고 또 그들에게 최선을 허락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나아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에 또한 우리는 학생들의 이름도 기억할수있게되고 학생들을 이해하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학생들을 사랑하게 될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맏겨진 양무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않게 해달라고 간구하지 않았는가?
2006년
코스타에서 자주 들었던 문구 중 하나가 ‘영적 낭비’이다. 30명이나 되는 많은 강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영적 포텐셜에 비해 일주일
동안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주강의 한번, 또는 강의 몇 번에 상담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것도 사례를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비, 가족
등록비까지 책임지고 자비량으로 섬기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는 말로 들린다. 실제로 한국, 연변,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오신 강사들의
경우는 거의 10일 정도가 강의 몇 번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이것을 낭비가 아닌 거룩한 투자로 본다.
사도행전
8:26이하를 보면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리신다. 명령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는 사막 길로 무작정 떠나라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고 있었고,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으로 흩어졌고, 아직 회심 이전의 사울은
보이는 교회마다 파괴하고 성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넘기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자들의 복음전도 사역은 점점 확장되고 있었으나,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대의 위기였다. 그런
긴급한 상황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사막 길로 무작정 떠나는 것은 시간낭비는 물론, 뻔뻔스러운 도피로 보일 수도 있다. 태풍으로 교회가 침수되어
정신없을 때 교회의 지도자가 갑자기 성령께서 지시하신다고 먼 시골로 떠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나 빌립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 사막 길에서
당시 에티오피아 여왕 밑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큰 권세를 지닌 내시를 만나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까지 주게 된다. 이 내시는 분명
에티오피아에 복음을 전하는 평신도 선교사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빌립도 나타나, 카이사랴에 이르는 모든 고을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된다.
때때로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에 못 미친다. 이사야 55:8,9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했다. 코스타에서는 4번의 저녁집회가 있다. 미주에서 경험하기
힘든 천여 명의 예배자들이 드리는 감격적인 예배의 향연이 매일 저녁 드려진다. 1,000여명이 뛰면서 드리는 열정적인 찬양과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를 상상해보라. 그 안에는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직업과 소명, 평신도와 목회자, 교파와 교회, 세대와 문화를 초월한 진정한 찬양과
예배의 축제가 드려진다. 진정 천국의 모형 아닌가? 이 예배를 통해 올해도 100여명이 예수님을 영접했고, 200명 넘게 2년 이상 단기선교에
헌신했다. 그뿐이 아니다. 성인 참석자 반이나 되는 500여명의 학생들이 강사들과의 일대일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는 최고의 상담실이
코스타 내내 운영된다. 우리 인간 편의 ‘낭비’가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결실’로 바뀌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
유학생들의
영적
부흥을
위해
이처럼
1세대가
자신의
재정과
시간을
낭비하는
나라가
있었는가?
눈물과
땀과
사랑을
투자하는
나라가
있었는가?
그
결과,
자신의
편의와
안락을
포기하고,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미지의
땅을
향해
회중의
5분의
1이
자리를
박차고
무대
위로
나아가는
그
장엄한
광경을
상상해보았는가?
2006년
현재
전
세계
16개
지역
즉,
남미,
러시아,
남유럽,
북유럽,
토론토,
밴쿠버, 시카고,
인디아나
폴리스,
북경,
상해,
동북차이나,
일본,
대만,
뉴질랜드,
호주,
필리핀에서
이
‘거룩한
영적
낭비’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23년
전,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영적
낭비’를
감히
꿈꾸고
이를
실행에
옮겼던
우리의
1세대
영적
선배들이
없었더라면
이런
영적
축제는
지금까지
이
땅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
그분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이유정
목사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디렉터, 좋은씨앗(CCM)
어렸을 적에 교회에서 배운 말씀들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교회 안에서 자라면서 어렸을 적부터 많은 설교들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중에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목요일 저녁 어린이 예배 시간이었는데 지금 한국에서 목회하시는 김원교 목사님이라는 분이 그때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그림을 잘 그려오셔서 설교를 해주시고는 하였다. 그 날도 도화지에 색 연필로 두 장의 그림을 가져오셔서 설교를 해 주셨는데 그 그림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바위 위에 지은 집이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설교의 주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릴 때 보았던 그림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한 것은 왠일일까?
달라스 월라드 교수는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바로 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바위 위에 지은 집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상적인 순종과 실천이 산상 강화의 마지막 주제이다. 그 분이 최선의 길을 아시고 일러주신 일들을 한사코 행하지 않기 위해 상상 가능한 모든 일들이 시도 되리라는 것을 그분은 분명 미리 내다 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도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의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얼마 전에 존 스타트 목사님의 “The Living Church”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많은 도전과 확신을 주었다. 특히 이 책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부록으로 목사님이 80세 생신 때에 나눈 말씀이 있는데 참 도전이 되었다. 그의 사역 가운데서 몇 가지 중요한 것을 나누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순종에 관한 것이었다. 요한 복음 14: 21 (“나의 계명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이고 나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내가 그에게 나타내리라”) 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이 말을 목사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사랑의 진정한 시험은 순종입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보상은 그리스도가 자기를 나타내심입니다.” “사랑은 무엇보다도 순종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다았다. 우리가 말로 백번 사랑한다고 해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예수님이 멀리 계시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아마 순종하지 못할 때, 혹은 순종하기를 주저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순종은 예수님과 친밀한 동행을 위한 열쇄이다.
내려놓음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있는 이용규 박사가 북경코스타에서 강의를 마치고 한 자매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 수 있지요?” 라고 질문하였을 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세요. 그러나 우리가 가진 안테나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거죠. 안테나를 세우는 한 가지 방법을 말씀드린다면 ‘주님, 제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의 말씀에 100%순종하겠다는 결단 없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백지 수표를 주님께 온전히 넘겨 드리기 전까지는 주님의 뜻을 듣고 순종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순종을 강조한 말씀이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로 안수받고 특히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고 남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조금씩 잘 해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씀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또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분야는 여전히 어렵고 남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잘 가르치지만 나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는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로는 쉬운데 행동으로는 여전히 어렵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하나님 나라의 귀한 진리들을 가르치시고 나서 제일 마지막으로 이 비유의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가 좋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 말씀이 머리의 지식으로 끝이 나고 행동으로는 다르게 행동하게 될까봐서 마지막에 강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적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영적 지도자로서 많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주님께 지도자 자신이 순종하는 것이다. 월라드 교수는 말하기를 “그 분을 “주”라고 부르거나 심지어 그분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행해도 그것이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다.” 특별히 나의 경우에 선생된 자로써 무거운 책무를 느낀다. 알지나 못하고 또 남에게 가르치지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머리로는 잘 알고 남에게는 잘 가르치면서도 실제 나의 삶 속에서는 그 진리의 말씀 대로 살지 못하여 그 참된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는 야고보의 권면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