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이 달의 소개할 책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고든 맥도날드, 윤종석 옮김, IVP) 이다.


복이란 단어는 우리의 신앙 단계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초신자일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축복으로 알았다.
우리의 요구를 세심하게 들어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의 한심한 요구 조차도 맘씨좋게 들어주시던 하나님이 언젠가 부터
바뀌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No”를 경험 하게 되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원망과 혼돈의 시간을 지나보낸 뒤,
하나님의 “No”가 그의”Yes” 보다 훨씬 나에게 유익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서’ 더 많은 축복을 쟁취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원망과 혼돈의 시간들-고난으로
변장된 순간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축복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자는 말한다. “폭풍은 다가온다. 영혼이 시험받는 힘겨운 순간들은 떠오르는 해만큼이나 확실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런 어려운 순간들을 허락 하시는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지길 원하신다. 위기의 순간을 통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눈에 보이는 것에서 우리의 내면(영혼)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주길 원하신다. 그러면, 영성을 추구
할때 무엇이 따르는가? 자기 발견의 고통과 굴욕이다.(p1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바울의 고백에서도 보듯이 많은 영적 스승들은 욕망, 정욕, 분노로 가득찬 우리 영혼의 하수구까지 내려와 본
사람들이다.

주님은 우리가 먼저 비우길 기대하신다.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비운뒤, 그 다음에는 주님은 무엇을 원하시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 집요한 열망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분의 본질, 그분의
능하신 행사, 그분의 뜻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계획 등을 알아 가는 것이다. 실은 이런 연습이 바로
신학이다”(P221).


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화학을 통해 ‘신학’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말미에
‘엄청난’ 신학을 했던 한 중국인 목사님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다소 길지만 꼭 인용하고 싶다). 이 목사님은 신앙때문에
18년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지낸 경험을 말해 주었다.


제 친구들은 제가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일을 했길래 몸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그곳에서의
삶은 너무너무 고된 것이었다고 대답 합니다. 수용소 당국자들은 제게 인분 구덩이를 치우는 일을 시켰습니다…간수들과 모든
수감원들은 악취 때문에 가까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혼자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강제 수용소에서는 보통 모든 수감원이 엄격한 감시하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혼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구덩이에서 일했기에 혼자 있을 수도 있었고 주님께 큰소리로 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그것이 바로 내가 인분
구덩이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입니다…


시 내가 제일 즐겨 부르던 찬송 중 하나가 ‘저 장미꽃 위의 이슬’입니다. 그것은 체포되기 전에도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였지만
그때는 그 찬송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치 못했습니다. 인분 구덩이에서 일하면서 나는 우리 주님과의 놀라운 교재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장미꽃 위의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그 구덩이 안에서 몇번이고 반복해서 이 찬송을 부르면서 나는 주님의 임재를 맛보았습니다. 그분은 결코 나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게 되었고 그 인분 구덩이는 나의 은밀한 동산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삶에 복 주시기로 택하신 한 평범한 사람의 고백이다. 결국,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우리의 삶을 통해 쌓아가는 주님과의 관계가 축복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이진석] 모듬 비빔밥으로 하나되다


국인의 하나 되는 정서는 한 솥 밥을 먹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구한말 보부상들이 다닐 때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더라도 솥만큼은
따로 가지고 다녔고, 손님은 따로 솥에 밥을 지어주었던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빔밥, 그것도 모듬 비빔밥은 이런
하나됨을 한 차원 더 올리게 한다. 어릴 적 자랐던 교회에서는 여름마다 산 집회를 갔었다. 일주일간 천막을 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각 천막 별로 공동식사가 이루어진다. 야외인지라 식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여분의 숟가락만 있으면 걱정하지 않았다.
깊숙하게 파진 큰 양푼 그릇에 남은 밥과 반찬을 넣고 휘 젓 거리면 훌륭한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킬킬거리며 머리들을 맞대고 입
속에 무엇이 들어가는 지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즉흥 모듬 비빔밥이었다. 이런 모듬 비빔밥이 한 솥 밥을
먹는 식구의 의미를 피부로 미각으로 체감하게 한다. 현란하게 오가던 스텐 숟가락의 공중곡예들, 먹으랴, 말하랴, 튀기던 침과
다시 양푼 속으로 낙하하던 밥알들, 그리고 흔들거리는 머리칼에서 반짝거리며 떨어지던 하얀 가루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다 먹고
소화시켜야 했었다. 한 식구(食口)가 될 때 비로소 한 가족(家族)이 되었다. 그래서 가족이란 모름지기 식구여야 하는 것이다.
요즘 생각하면 B형 간염의 주요 감염경로라고 펄쩍 뛰겠지만, 위생의 이해 득실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 때 이루어
졌다. 물론 디즈니의 만화영화 건달과 숙녀(Lady and Tramp)에도 두 마리의 남녀 개가 달빛과 아코디언의 생음악을
배경으로, 한 가닥의 스파게티를 나누는 진한(?) 장면이 나온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과 스파게티 국수 한 가닥과는 그
농도와 풍성함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분명 한 그릇에서 너와 내가 같이 떠서 먹지만,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은 먹을 때마다
숟가락에 무엇이 건져질 지 모른다. 바다에서 낚시하듯, 다양한 종류가 걸려서 올라온다. 친구의 침 속에 무엇이 섞여 있을까
걱정하면 절대로 못 먹을 밥이다. 신뢰의 농도가 진한 만치 다양한 반찬이 섞인 모듬 비빔밥을 먹게 된다. 흩어졌던 다양함이
신뢰로 모일 때, 우리네 삶이 당장 풍성하여 지는 것이 한국인의 잠재적인 비빔밥 파워다. 오늘도 한 양푼에 재료를 넣고 친구끼리
먹는 모듬 비빔밥은 서울의 한 복판에서 버젓이 팔린다.

조화로 먹는 비빔밥; 융화를 부추기는 비빔밥


왕 비빔밥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더 우리의 먹거리 이야기를 하여보자. 서양의 먹거리는, 쪼개고 구별해서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선택을
통해서 음식의 맛을 찾는다. 한국인의 음식은 다른 음식과 융합과 조화의 맛을 느끼게 조리한다. 내친 김에 한식 이야기를 좀
더해보자. 비빔밥이 문헌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18세기 말엽 시의 전서라고 하며, 골동반(汨董飯)으로도 불린다. 어지러울
골(汨)자에 비빌 동(董)자가 아우러져서 나온 음식이다. 주식에 곁들여 먹는 서양의 샐러드와는 달리, 비빔밥은 주식이다. 그리고
각 재료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반찬이다. 그렇지만 각각으로 섭취하면 온전한 미각의 기준에 아쉬운 감이 드는 음식이기는 밥과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함께 섞어지면 모두의 맛이 살아난다. 이런 비빔밥의 유래는 다양하게 설명된다. 임금의 가벼운
점심상으로, 또는 섣달 그믐날 새날을 맞기 전 묵은 음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시작되었다고도 하며, 그릇이 여의치 못한 야외에서,
편리하게 식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분주한 농번기에 농부들의 식탁에서, 성묘 시 차례를 마치고 제물을
골고루 음복하기 위한 신인공식(神人共食)에서, 심지어는 동학 혁명군의 야전 음식에서,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한국인에게
통일된 미각과 음식을 공유하게 하는 길이 비빔밥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점심 시간, 자리 지키고 열심히 제 도시락 파먹는 얌전
파와 도시락을 들고 교실 안팎을 방황하는 배회 파가 있었다. 무말랭이 같은 메마른 짠지 종류를 반찬으로 싸오던 급우들도, 교실
한 바퀴 돌면 각 양 고급(?)반찬으로 도시락 통이 채워지고, 그 양철 도시락 통을 들고, 김치 국물 배어 나오기까지 한참
흔들고 나면, 비빔 도시락이 만들어졌다. 당장은 어지럽게 보여도 비비고 부대끼다 보면 함께 어울리는 상생의 길이 열린다.
한국인은 비빔밥으로 이 진리를 체득한다.

찜 닭 속에 계셨던 예수님


와 유사한 음식문화는 중동인 들에게서도 보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공부할 때였다. 이란 유학생들의 초대를 받아서 여러 나라
유학생들, 그리고 지도 교수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통상적인 식탁은 아예 치워놓았고, 아파트의 거실 중앙에 큰
신문지들이 겹겹이 펼쳐 져있었고, 가운데 큰 대접을 놓은 것이 영 판 소풍 가서 점심 시간 먹는 모양새였다. 향긋하게 찐 쌀밥과
짭짤한 배추절이가 수북하니 담겨져서 나왔다. 그리고 금방 돌아가신 듯, 아직도 눈을 지그시 감은 요염한(?) 자태의 발가벗은
치킨들이 가지런히 대접의 원을 따라서 누워있었다. 우리는 먼저 오른 손을 씻었고, 둥그렇게 앉아서 손바닥에 고기와 야채와 밥을
오므려 싸서 먹었다. 한국인은 그래도 숟가락이라도 쓰지만, 원색적 손가락들! 힘껏 쭉쭉 빨던 그 손가락으로 덥석 고기도 밥도
주물럭거렸다. 미국인 교수들이 엉거주춤하니 당황해 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왼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먹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손으로 직접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역겨울 정도로 버거운 요구이었음에 분명하다. 대부분이 곧 포크를
요청해서 식사를 마쳤다. 그들은 포크를 사용함으로 자기 침을 남들에게 줄 기회는 놓치고, 남의 침 튀긴 쌀과 고기, 반찬을 먹는
선택을 한 것이다. 제 3세계 국가에 속한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비빔밥에서 화목 제물로


래서 중동의 식사 문화는 밀접한 신체적 접촉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한 집단에 소속함을 의미한다.
손을 씻는 결례 (潔禮)의 전통에 무지한 무례한 사람들이나,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타 그룹을 제외하는 용도로 쓰였던 식탁이 예수를 통해서 포용의 자리로 변화되었다. 각 양의 사람들이
초청되고 포용되었다. 예수가 그 당시 기득권자들에게 드러나게 눈 밖에 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식사와 관련된 이슈였음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마태 9:10-11). 그 분이 한국인으로 태어나셨다면 아마도 천민들과 함께 모듬 비빔밥에 숟가락 꽂고
잡수시다가 양반들에게 심한 핀잔과 질책을 받다가 가문의 호적 명부에서 이름이 파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성경의 화목제물을
먹는 장면도 이와 흡사하게 실용적인 의도를 참석자에게 유도한다. 기름은 제단에 불태우고, 갈비 살과 오른쪽 넓적 다리는 성전에
남겨두고, 나머지 고기들은 집으로 가지고 와서 식구들과 친지들을 불러 함께 먹는다 (레위기 3장). 굳이 신학적 이유를 몰라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과, 함께 손에 침 발라가며 같은 밥그릇을 주물럭거리며 먹는 것은 급체의 원인이 될 것이다. 화목제의 밥상
위로 오가던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이웃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비로소 화목제의 온전한 모습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레위기의
혁명적 시도는 이런 밀접한 만남이 일어나도록 디자인 된 의식이다. 출애굽의 가장 드라마틱 한 모습은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라암셋에서 가나안을 향한 진군을 시작하는 해방의 장면이다. 보행하는 장정만 60만, 무수한 무리 들 가운데, 중대한 잡족이 함께
섞여서 출발한다 (출애굽기 12:37).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그들을 출애굽의 신민으로 묶어준 상징적인 식사가
유월절 식사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한 솥 밥을 먹는 식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를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출애굽기 12: 48-9). 예수님의
유월절 식사도 음식 정서 상은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성찬은 중동식 레위기 비빔밥의 완성이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서로 손가락
빨아가며 양고기와 반찬을 무교병에 상추 쌈 먹듯이 그렇게 먹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침을 사람이 먹고, 사람의 침을 하나님이
먹었다. 침 한 방울에 우리의 모든 유전자를 다 추적해 낼 수 있는데, B형 간염 같은 죄성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우리로 인해서 거룩하게 망가지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초(超)인이 아니라 초(初)인이다


상이 목말라 기다리는 사람들, 세상이 기대하는 사람은 여기에 있다. 이 육사가 목말라하던 초인은 백마를 타고 인간을 건너뛰는
초(超)인이 아니라 인간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켜주느라 너무나 인간다운 모습을 지니고 사는 초(初)인이어야 한다. 천년 후에 오실
기약 없는 바람만 주는 분이 아니라 과거에도 오셨고 현재도 오시면 미래에도 오시는 분이어야 한다. 이 분이 오시면 과거의 원한과
상처로 눈을 흘기고 부라리며 살기가 등등한 얼은 밥상이 한 솥 밥으로 묶어주고 먹게 하는 모듬 비빔밥으로 바꾸어진다.
출신학교도, 소속 교회도, 지방과 풍속도, 억양과 사투리도, 집 평수와 학군도, 세대차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애찬을 먹는
사람은 천국에 사는 사람이다. 꼭 청포를 입고 오지 않아도 된다. 예수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비빔밥이 가진 복음적 가능성을
경험하며 살게 한다. 그래서 세상을 예수께로 이끄는 화평의 한국인은 예수 만난 한국인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을 예수인이 먹을 때 산나물도 고추장도 화목제물 성찬이 된다. 세상의 화평과 인류의 평화는 구호와 현수막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요란한 선전무대 위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평화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평화가 곧 길이다. 젖은
청포도 몇 알만 있어도 즙 묻은 손 닦을 하얀 모시 수건 준비하는 육사의 정성이라면 예수는 우리 가운데서 섬김을 받는다. 사람과
사람이 살갑게 꾸밈없이 만나는 먹거리의 현장에서부터 예수 보듯이 사람과 만물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서재석] “영광의 문” & “전능자의 그늘”, 엘리엇 지음, 윤종석 옮김

2003/11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린 사람들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쓴 책 두 권















영광의 문(복 있는 사람, 2003), 343, 1만원

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 윤종석 옮김



원제 Through Gates of Splendor

전능자의 그늘(복 있는 사람, 2002), 412, 12천원

원제 Shadow of the Almighty



630일 미국 코스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포켓판 양장본 영광의 문(Through Gates of Splendor)은 느낌이 남달랐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이 책에 나오는 다섯 주인공 중 코스타가 열리는 휘튼 대학 출신들이 있다는 것과, 이 책이 나온 지, 아니 이 책에 나오는 다섯 선교사들이 남미 에콰도르에서 살인부족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살해당한 지 어언 50년이 되어 가기 때문이었다.



현대 선교의 고전, 필독서



짐 엘리엇, 피트 플레밍, 에드 맥컬리, 로저 유데리안과 비행(飛行) 선교사 네이트 세인트가 에콰도르 정글 깊숙한 한 강변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접근하던 아우카 부족의 창에 찔려 순교한 것은 19561월의 일이었다. 짐 엘리엇 선교사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같은 해에 남편의 일기와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이 책의 자매편 격으로 좀더 널리 알려진 전능자의 그늘(Shadow of the Almighty, 작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역시 포켓판 양장본으로 역간)을 집필하던 중에 다른 네 미망인 선교사들의 부탁을 받고 이들 다섯 선교사와 주변의 기록을 엮은 이 책을 먼저 냄으로써 전세계에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알리고 그로써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이 속출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두 책은 지난 50년 가까이 현대 선교의 고전, 필독서로 널리 읽혀 왔다. 인터넷 영문서점 아마존(amazon.com)에 들어가 Through Gates of Splendor를 검색하면 18개의 짧은 독자 리뷰를 읽을 수 있는데, 그 중 몇몇 리뷰는 이 책을 20년 전, 30년 전에 읽고 최근 다시 읽었다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있을 정도로 영어권 기독인들에겐 널리 알려진 책이다. 전도유망한 20대 후반의 헌신된 다섯 젊은이들이 살인부족의 창에 찔려 죽었다는 이 비보는 그 후 세계 각지의 각종 선교대회와 수련회 등에서 널리 알려지면서 후배들의 각오와 헌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언론들도 하나같이 호평을 하고 있는데, Christianity Today 같은 잡지는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기록은 감동적 작품 이상이다. 그것은 복음 증거의 심장박동 자체다.”라는 최상의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이다. (실제로 전능자의 그늘 프롤로그 여덟 페이지만 읽어봐도 이 말이 별로 틀린 말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다.)



그들은 영웅도 순교자도 아닌 그리스도인이었다



무엇이 전도유망한 다섯 젊은이들을 남미 에콰도르의 이름 없는 한 살인 부족에게 나아가게 만들었을까? 이들은 굳이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처자식을 둔 평범한 보통 선교사로서 할 일이 많지 않았을까? 그들은 명성이나 모험을 즐기며 무슨 큰 일을 찾고 있던 걸까? “사람들은 짐 (엘리엇)과 그와 함께 죽은 이들을 영웅으로, 순교자로 칭송했다. 나는 찬동하지 않는다. 본인들도 찬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이 그토록 크게 다른 일이란 말인가?(전능자의 그늘 초판 서문에서). 저자의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선교가 무엇인가를 웅변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짐 엘리엇이 1949년 휘튼 대학에 재학중일 때 남긴, 그 후로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의 결단의 순간에 되뇌어지는 이 유명한 말은 그대로 그들의 삶이 되었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이들 5인의 개척선교와 선교사로서의 삶과 사역도 감동적이고 도전적이지만, 그걸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들을 발로 찾아 다니면서 책으로 묶어내는 장인정신이다. 자신의 삶의 여정, 사역의 순간들, 생각의 편린들을 (누가 보든 안 보든) 그저 일상처럼 적어 내려가는 동안 이들은 또 얼마나 하나님과 살깊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 묵상의 깊이는 아마존 정글의 깊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뿐인가.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듯, 또 그 일기와 메모는 물론, 가족과 친구 등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면서 옛 기억들을 복원해 내는 동시에 오늘의 독자들이 호기심과 흥미를 잃지 않고 끝가지 읽어 나가도록 붙잡는 성실한 글쓰기는 수작(秀作), 역작(力作)의 견고한 기초를 이룬다. 모르긴 해도 이들이 오늘을 살았다면 니콘이나 캐논 디지털 카메라로 영상 기록을 남기고,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수려한 포토 에세이로 기도편지를 대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록을 남기고 책으로 묶어내는 장인정신



여기서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인 선교를 하기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 되고 있고, 지구촌 곳곳의 미전도종족에 이르기까지 만 명이 넘는 일꾼들이 나가 있고, 1세대 선교사들은 이제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선교지 르뽀나 선교사 전기, 자서전, 회고록으로 내세울만한, 권할만한 책들은 극히 미미한 편이다. 시작은 다들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한데, 그 후 어떻게 일했더라는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한 기록들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선교사들 자신과 단체들, 파송교회들의 일차 자료(기록물)에 대한 인식 부족, 문서 자료에 대한 푸대접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기도 편지는 물론 사역 기록(spiritual journal)에 대한 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며, 사진 자료로 가면 그 희소성은 더해만 간다. 요르단의 김동문 선교사 표현을 빌자면, 아무 근거 없는 알량한 선교보안 의식만 버려도 크게 달라질텐데 말이다.



이것은 비단 선교 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쟁쟁한 1세대 목회자들의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는 목회 영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별로 쓸데없고, 그 얄팍한 울타리만 벗어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이너서클(inner-circle)의 용비어천가 식 찬하(撰賀)나 무성하지, 그들의 인간적, 사회적, 목회적 고충과 분투를 있는 그대로 리얼하고 균형있게 묘사하고 기록해 비단 그 추종자들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널리 읽히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당대 유명 목회자, 운동가들의 전기, 자서전, 회고록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지 가히 요원하기만 하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남편의 끔찍한 죽음이란 시련을 딛고 쓴 이 두 책은 이런 의미에서 오늘을 사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중의 감동과 도전을 주기에 충분하다. 짐 엘리엇 선교사들처럼 치열하게 살고, 기록을 남기며,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같이 그 기록들을 고르고 정리해 책으로 묶어내는 장인정신에 대해 생각할 때이다.



사족 1. 요즘 나오는 책들은 내용 못지 않게 표지도 신경 써 만드는 게 많은데, 영광의 문은 아마존 정글을 드러내는 듯한 청색과 흑색만을 쓰면서 젊은 다섯 선교사들의 50년 된 활짝 웃는 흑백 사진을 앉혔는데, 마치 정글의 새벽을 여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또 이 두 책은 등장인물도 같고 저자도 같지만, 판형과 번역자(윤종석)도 같아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좋았다.



사족 2. 다섯 선교사가 죽임 당한 후 살인부족 아우카족은 어떻게 됐는지 그 결말이 궁금한가? 두 책 중 하나만 읽어도 알 수 있다.^^




[이정희] 어느 유학생의 가계 꾸리기

이코스타 2003년 11월호

삶을 살아감


아침에 일어나면 졸린 눈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가장 만만한 것이 계란 후라이에 토스트와 커피 한잔. 한 손으로 만들며 한 손으로 먹으며,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한편에는 어제 먹었던 도시락 그릇을 설거지하며, 몇 가지 일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활기찬 아침이다. 학기 시작하여 주어진 Syllabus.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수업 내용보다 프레젠테이션 어사인먼트와 텍스트북이다. 어사인먼트 확인되면 필요한 책과 textbook이 도서관에 있나 잽싸게 확인하고 다른 사람이 빌려가기 전에 빨리 빌린다. 수십 불씩이나 하는 교과서를 모두 샀다가는 렌트 값 못 낸다. 한두 달 빌린 책을 보다가 정말 필요하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인터넷으로 유스드 북을 주문한다. 인터넷으로 사면 소비세가 면제되니 몇 불이라도 싸니까.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사 먹으면 빈곤한 식단에 돈까지 나가는 이중고에 시달리니까 아예 샌드위치로 먹는 게 마음도 편하다. 먹는 데에는 외국 학생뿐 아니라 미국 학생들도 다들 아끼고 절약하는 것 같다. 수업이 대충 끝나면 이메일 체크 겸 신문, 잡지를 도서관의 인터넷으로 읽고 필요한 부분을 스크랩하여 웹에 잘라 붙여 놓지만 프린트는 대개 하지 않는다. 종이 한 장도 아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때 도서관으로 향하여 인터넷의 무료 음악사이트에서 다운받고 영화는 티비에서 녹화했다가 틀어본다. 중간에 광고가 있긴 하지만 그런 대로 볼만하다. 그러나 가끔은 혼자 비참해진다. 공부도 힘들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나님, 일과 안식의 주인공


하나님이 안식일을 쉬신 이유가 항상 궁금해왔다. 안식일 뿐 아니라 각종 절기, 안식년, 희년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인간들에게 삶을 중단시키는 하나님의 질서는 무엇일까? 성경책을 펼쳐본다.
너희가 저마다 이웃에게 무엇을 팔거나, 또는 이웃에게서 무엇을 살 때에는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서는 안 된다. (레위기 25:14, 표준 새번역)
일곱째 해에는 씨를 뿌려도 안되고, 소출을 거두어 들여도 안 된다면,  그 해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여섯째 해에, 내가 너희에게 복을 베풀어, 세 해 동안 먹을 소출이 그 한 해에 나게 하겠다. (레위기 25:20-21, 표준 새번역)
같은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함에 있어서 정직과 안식을 취함에 있어서 근면은 일견 상반된 명령인 듯하다. 상반되어 보이는 일과 안식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일관된 메시지는 뭘까? 하나님이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원하시는 건 분명하다. 열심히 일해서 정직한 대가로 돈과 재물을 얻고 불필요한 소비와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칠 일째, 칠 년째, 오십 년째 되는 날과 해는 확실하게 또는 정직하게 쉬어야 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일을 통해 나에게 베풂이 있다면 안식과 구제의 일을 통해 이웃에게 베풂이 있다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재물의 사용처 보다는 마음의 정직함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안식을 취할 때는 나에게는 쉼을 이웃에게는 베품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다하는 것이 하늘의 뜻인 듯 싶다. 하루의 피곤이 조금은 풀린다. 오늘 하루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이제는 나에게 안식을 선물로 줄 때다. 일을 열심히 했으니 쉼에도 감사가 따르며 갑갑하고 가난한 일상에서도 보람이 뒤따라온다.


재정 생활의 원칙: 검소와 품위


대학교를 입학하여 재정적으로 반독립 상태에 들어선 이후 돈 문제에서 떠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에 학과 공부에 어느 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거기에 교회와 기독학생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만 둔 실패의 기억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어느 곳에서도 이해 받지 못했다고 할까. 그 와중에 그래도 배운 것이 있다면 재정 사용에 있어서 검소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천 원 아끼려다가 만 원 잃고 만 원 아끼려다가 건강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학 생활에 있어서 재정 생활의 원칙이 있다면 검소와 품위, 두 가지를 들고 싶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은 수입을 떠나서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지출은 동전 세어가며 최대로 줄이지만 안식을 해야할 땐 최대한 감사하게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다. 쪼들리는 가계부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방법은 안식일을 최선을 다해서 충실하게 즐기며 사는 것 같다. 안식을 위해 시간을 떼어놓고 쉼을 위해 돈을 구분하여 놓을 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다시 검소하고 성실한 일주일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겠다. 안식과 일 모두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감사한 마음으로 일과 휴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의 영성


가난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돈의 결핍, 정서적 안정의 결핍, 사랑하는 사람의 결핍, 안전의 상실, 자신감의 상실 등이 그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가난한 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시길 원하는 장소입니다.                        
-Henry Nouwen, Bread for the Journey


미국에 와서 유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호사스러운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은 원해도 재정적인 문제로 오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호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적은 수입으로 생활까지 영위해야 하니 가끔씩은 혼자만 고생 다 하는 것 같다. 유학 생활에서 가끔 느끼는 가난에서 내가 얻는 것은 힘들게 생활할 때 하늘의 위로가 더 크다는 것이다. 항상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에 서 주신 하나님은 가난과 결핍의 장소에 임재하시길 원하시며 그곳을 비울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들 때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금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인 정직과 성실로 그 삶에 충실하며 안식으로 함께 하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곤 한다.
가난의 영성으로 얻는 또 다른 유익은 나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편하게만 살아온 내가 궁핍으로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들과 함께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좀 더 충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해준 것이다. 지금은 얼마 안 되는 물질로 나누는데도 인색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직장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이때의 기억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물질위주의 사회에 편입되어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교회에 가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함께 하는 짧은 시간에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위로와 이해를 찾는다. 자주 서로 이해하지 못해 불신과 상처를 주고받지만 성령의 끈으로 하나된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찬양과 말씀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얼마나 많이 듣던 이야기던가! 하지만 아직은 교회가 빈자와 약자를 돌보는 하나의 모습이 되면 더욱 좋겠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같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모임이 되면 좋겠다. 유학생의 처지를 인정받기 어려워 유학생은 유학생들끼리 모이게 되는 현상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유학생들도 교민들의 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다시 가계부를 꺼내며


저녁 5시가 되면 대개 집에 돌아간다. 그래도 한끼는 여유 있게 잘 차려 먹어야 하니까 고기도 굽고 국도 끓이고. 디저트로 과일도 한 조각. 쉬면서 보는 각종 고지서들 살펴보면 한숨만 나온다. 수입은 빠듯한데 빠지는 물구멍은 왜 이리 많은지… 가계부를 꺼내어 정리를 시작한다. 요즘 이래저래 너무 많은 돈을 쓰지 않았나 자책감이 몰려온다. 이런 추세로 학위 받을 때까지 수지를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까?
다시 마음을 정돈해본다. 하는 일에 정직하고 검소하게 그대로 신앙 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품위를 잃지 않기. 결과가 어떻게 되건 이 길로 정진하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 다음 단계의 일이 맡겨질 거라고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서 하고자 한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아직 내가 그 일에 준비가 덜 된 거라 받아들이면 된다. 지출은 최대로 줄이며 생활을 지혜롭게 짜 내본다. 부지런을 더 떨면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주일이 기다려진다. 다음 주를 계획하며 머리를 쉴 수 있는 평안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일의 시간표를 확인하며 가계부를 덮는다.
주님과 함께 한 내일도 무사히.

[김동록] Professional Student

이코스타 2003년 11월

<font size=”2″>Professional 이란 말은 전문성이 있는 직종을 가리켜서 쓰는 말인데 학생을 가리켜 professional 이라고 하면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학생이 정말 연구와 공부를 잘해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전문 직장인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완벽할 정도의 실력과 솜씨를 보이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하도 그 학생의 학업이 늦게 진행되다 보니 그저 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전문 직업인인 것처럼 굳어져 버리는 경우입니다.


제가  이 두 번째 경우에 속하였습니다. 학위 과정이 길어지면서 학생이란 신분은 왠일인지 제 나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달리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를 아주 당당하게 변명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비단 저 자신 뿐 아니라 저의 생활비를 보조해 주는 양가 부모나 가족들도 저희의 그러한 경제적 의존성을 당연히 여기며 공부가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마 밑빠진 독은 아니겠지라는 심정으로 보조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특별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저의 삶을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던 제 실패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저축을 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축할 수 있는 상황이었슴에도 불구하고 늘 모자란 듯 살았습니다. 그리고 졸업만 하면 남들이 사는 것 처럼 모든 경제적인 문제가 풍성하게 되고 떵떵거리고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학생의 신분으로 있는 동안은 아직 돈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학생이었기에 당연히 학위가 저의 최우선의 목표였습니다. 아니, 사실은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으로 “35세까지는 저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일에 나서리라”는 야무진(?) 생각을 가지고 유학을 결심한 이후 오로지 저 자신의 학위와 또 그 학위 이후의 career를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후 우연히 씨애틀에서 제가 다니던 (정말이지 저는 “다니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청년부를 섬기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가 은혜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섬김을 통해 저 자신의 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딱한 모습은 “나는 이런 일 하기 위해 여기 온 것 아니야”라며 헌신하기를 주저하는 청년부의 학생들에게서 비추어 졌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 왔었는데, 그 지난 10년이 알고 보니 미래를 핑계로 삼아 현재를 사는 삶을 미루고 있었던 기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긴 살았지만 왜곡된 열심, 균형을 읽어버린 열심으로 살았기에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현재 내게 닥치는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루며 살았던 것입니다. 미국땅에 살면서 항상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니까, 작게는 학과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 지역사회에서, 또는 자녀들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주인의식이 전혀 없이 붕 뜬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과연 성인이 된 (심지어 가족을 거느린)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고 하지만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 면책이 되는가 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유학생이라면 이민 사회에서는 열외로 취급하니까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사회적인 인정(?)을 받아서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저 자신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앙생활은 지극히 소극적으로, 헌신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졌었고 당연하게도 10년동안 전혀 성장되지 않고 위축된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많이 쓰이는 용어를 빌자면 고지론을 빙자한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저축도 하지 않고 또 돈을 굴리는 일에 문외한이 되어 있다가 놓쳐버린 아까운 기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코스코, 등 소위 뜨는 회사들의 주식, 치솟아 오른 서북미 지역의 부동산 가격, 일찍 졸업하여 실리콘 밸리의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생겼을 막대한 수익, 그나마 졸업 후에 취직하여 드디어 왕창 부어넣었던 401k 의 반액에 가까운 마이너스 손실, 저축했던 돈이 없어서 아깝게 놓치고 때를 잘 못 맞춘 모기지 loan, 등등 돈이 희한하고 섭섭하게도 저와 제 가족들만 피해서 비껴지나 간다고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이제 무엇보다도 가슴아프게 아쉬운 것은 미래를 미리 앞당겨서 그것으로 현재를 대치해 버렸기에 놓쳐버린 그 10년의 세월입니다.


신기하게도, 성경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우라는 구절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지만 현재에 대해서는 잔인하리라만큼 현실적입니다 (특히 우리 인간의 음흉하게 숨은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미래를 지레 앞당겨서 현재를 대치해 버린 삶은 뿌리가 없는 삶입니다. 저축을 하든지 돈을 굴리는 방법을 일찍부터 궁리하든지, 다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궁리속에서 미래를 생각하다가 또 현재를 놓칠 까 두렵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 – 눅12:21 ). 그러나 현재를 충실하고 건강하게 (예를 들자면 직장, 지역사회와 교회에 대한 봉사와 베품, 그리고 개인의 영적성장) 열심히 살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이모저모로 재정에 대한 회계장부까지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관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눅12:31).


유학은 특히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환경에 처한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삶에 대한 면책권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에 유학생의 삶의 최대 약점이 있습니다. 저 자신이 이민자가 되는 과정에 있기도 하지만, 제가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유학생이나 이민자나 다 한가지로 내가 여기에서 사는 동안은 마치 평생 살 것 같이 충성하는 성실한 삶을 이루어 나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미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temp (임시직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곧 떠날 것 같이 책임지기 싫어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는, 전인격적으로 현재에 헌신하는 삶, 즉 full time의 삶 이라는 것을 제 인생의 고개에서야 깨달았습니다. Professional student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전인격적으로 현재의 삶에 헌신하는 학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