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1,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컨퍼런스
미주뉴스앤조이의 코스타관련 기사입니다.
원문은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52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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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길 목사, ‘코스타 한계 인식하고 욕심 부리지 마라’
‘터닝 포인트 제공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2008년 07월 10일 (목) 12:02:53 [조회수 : 674] 박지호 ( simpro )
▲ 홍 목사는 코스타가 “개인의 소명과 신앙을 발견하고 구도자에게 복음 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스타의 산파 역할을 했던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 그는 코스타를 향해 ‘복음 전도 집회’로서의 성격에 충실하라고 주문했다. 이것저것 욕심 부리지 말고, 제 역할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홍 목사는 복음주의자라 자칭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코스타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코스타가 세워지던 과정을 조곤조곤 설명하던 홍 목사는 뜻하지 않게 코스타가 세워졌고,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커져버렸다고 회고하며 웃었다.
“그때는 한 번 모이고 말거라 거라 생각했지 계속 모일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첫 수련회 때부터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부어주시더라. 그래서 다음해에 또 모이기로 했고, 그렇게 어느새 23년이 흘렀다.”
홍 목사는 “모든 사역이 자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코스타의 중요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것이 자원봉사 운동이다. 강사비도 없고, 차비도 없다. 보수를 받지 않고 섬기며 함께 참여하는 운동이다.”
지난 20년 동안 코스타에 어떤 열매가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홍 목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을 이어갔다.
“지금 한국에 뜻 있는 단체에서 헌신하는 사람의 많은 숫자가 코스타 출신이다. 예를 들어 연변과학기술대학이나 한동대학을 일구어낸 주축들도 모두 코스타를 거쳐 갔다. 기독교 학문 연구회나 남북나눔모임 연구위원도 그렇다. 코스타 출신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요구하는데 결국 코스타 출신들이 그런 일을 해나가고 있다.”
한번 은혜 받고 끝나는 일회성 수련회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아예 코스타의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들어갔다.
“우리는 여기서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터닝 포인터만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코스타 모임을 하자고 하지만, 나는 반대한다. 자기가 속한 교회나 직장으로 돌아가야지 코스타라는 곳에 메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홍 목사는 오히려 연속성을 가지고 운동으로 이어가자는 목소리에 대해서 “운동은 운동으로 끝나야 한다. 한계를 인식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홍 목사는 또 “여러 가지에 초점을 두면 신경이 분산된다. 우리는 복음주의자다. 개인의 소명과 신앙을 발견하고 구도자에게 복음 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복음 전도와 해외선교를 위한 코스타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Jul 21,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컨퍼런스
미주뉴스앤조이의 코스타관련 기사입니다.
원문은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50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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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가 일회성 수련회 한계 탈피하려면’
우종학 박사, “현장의 고민 담지 않으면 복음 왜곡될 수도”
2008년 07월 08일 (화) 13:10:54 박지호 ( simpro )
” 최근 통계를 볼 때 매년 70% 정도가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풀어 말하면 70%는 코스타에 다시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코스타는 ‘한 번으로 만족되는 수양회’, ‘혹은 매년 똑같은 수양회’라는 것이다. 나는 코스타가 복음 전도 집회만으로 구성된다 하더라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코스타가 복음 전도 집회만을 위한 수양회라면 나는 한 번 이상 가지는 않겠다.”
“화끈한 영적 샤워로 끝나버리는, 한 번 참석으로도 다 소화해낼 수 있는 내용의 수양회라면 말이다. 그러나 코스타의 목표가 복음화 된 유학생에게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 연구와 신앙생활을 격려할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적인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면 일주일의 수양회를 통해서 이 목표의 성취가 어떻게 가능한지 평가해야 한다.…” (우종학 박사가 2001년에 쓴 ‘내가 본 코스타’ 중에서)
▲ 우종학 박사는 “삶의 각 영역에 대한 고민이 담겨지지 않으면 복음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며 “비록 코스타 수양회의 초점이 다른 곳에 있더라도 현장의 문제와 세계관의 훈련을 지속해서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0년 코스타에 처음 참석했던 우종학 박사가 코스타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해내며 내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그는 수련회 직후 “다시는 코스타에 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만일 코스타가 복음 전도 집회만을 하는 수양회라면 나는 한 번 이상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사로 그리고 강사로 코스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생각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코스타가 변한 것일까.
우종학 박사는 예일대학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의 물리학과에서 거대 블랙홀을 연구하고 있다. 1999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코스타와는 2000년 처음 인연을 맺었고, 그해 가을부터 티엠(task-major의 약자 : 신앙과 전공의 통합의 일환으로 만든 사역) 사역을 맡아서 간사로 활동했다.
“처음 코스타에 참석했을 때 기대가 컸다. 대학원생 수련회라면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여지없이 깨졌다. 그저 대학생 선교단체 수련회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코스타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웃음) 주제가 개인 영성에 한정되어 있었고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든가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기독교적 세계관에 맞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조장이었던 우 박사는 조장 평가회에 참석해 “대학원생들이 모이는 모임인데 왜 교회 부흥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느냐? 삶의 현장에서 활동할 전문인들이 모이는 코스타는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만들어 갈 유일한 기회일 수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코스타를 떠났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 박사가 내뱉은 쓴소리가 계기가 되어 우 박사는 코스타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 코스타는 우 박사에게 간사로 사역할 것을 제안했고, 우 박사는 코스타가 하나님나라 운동의 장으로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스스로 고민했던 부분들을 코스타에 담아내는 시도를 했다. 실제로 우 박사가 사역을 시작한 시점부터 코스타에 몇 가지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전공 분야별로 깊은 차원의 논의와 운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티엠(task-major의 약자)이라는 사역의 등장이다.
“코스타 사역의 초창기부터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전공과 직업의 영역에서 어떻게 전문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왔다. 그 전에도 전공별 모임이 있었지만 더 강화된 의미에서 티엠 코스타 사역이 시작되었다. 삶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면서 세상의 가치와 질서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유학생들을 준비시키고 돕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실패한 것 같다.(웃음)”
이번 2008년 프로그램에도 티엠 세미나가 한 순서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시간 할애나 참석자의 숫자를 감안해볼 때 우 박사가 소망했던 그림보다는 기능이 축소된 셈이다. 우 박사는 이를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코스타 수양회 자체가 전도와 선교 그리고 부흥 집회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코스타 수양회는 한마디로 ‘복음 전도, 선교 동원, 부흥 집회’였다. 어쩌면 그것은 유학생들의 필요에 의해 생긴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실제로 매년 참석자의 약 10% 정도가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약 10%정도가 타문화권 선교에 헌신한다. 그리고 더 많은 참석자들이 헌신을 다시 결단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그 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그러면 각 전문 영역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에 무게를 두기가 어렵다. 작년부터 강사로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다른 강사들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현장에서 전문인으로 활동하는 강사들은 코스타가 뭔가 다른 것들을 공급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현장의 문제가 더 담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를 갖고 있다. 이 한계는 코스타가 어쩔 수 없이 지고가야 하는 짐이 아닌가 싶다.”
우 박사는 코스타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위한 고민의 장으로서의 역할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지만 코스타를 통해서 많은 유학생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며 코스타의 순기능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미국에서 유학생들이 처해있는 영적 지형도를 보면 코스타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미국 전역에 흩어진 한인 교회들의 상황은 더없이 열악하다. 오랫동안 영적 갈급함에 굶주리던 학생들이 십여 시간씩 운전을 해서, 혹은 어려운 경제적 형편에도 불구하고 주머니를 털어 회비를 내고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코스타로 모여든다. 고독과 상처의 문제로 패잔병처럼 코스타에 왔다가 복음으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보는 일은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코스타 참석자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볼 때 코스타의 이런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역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코스타가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랄까. 안타깝지만 유학생들의 영적 필요를 무시할 수도 없는 상횡이다.”
코스타는 2005년에 20주년을 맞으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더 이상 유학생과 비유학생의 구분이 불분명해졌고,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유학생들도 전부 한국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이에 코스타는 섬겨야 할 대상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새롭게 정의하고, 시대에 맞는 섬김을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에 대해 그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코스타의 핵심가치가 희석될 순 있겠지만, 하나님나라라는 큰 흐름에서는 볼 때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20주년을 맞으면서 코스타가 추구했던 ‘민족’, ‘조국’이라는 개념이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확장되었다. 예전에는 유학 생활을 마치고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조국과 민족을 섬기라는 측면의 강조가 의미 있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미국에 남게 되고 해외로 뻗어나가면서 민족과 조국이라는 영역으로 한정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유학생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사역의 대상에 담게 되었다. 물론 코스타의 사역 대상이 넓어졌다는 점 때문에 학문과 신앙의 통합이라는 가치는 더욱 옅어질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계층의 한인 디아스포라가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간다는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코스타에 대한 우 박사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애증이다. 코스타에 대한 그의 애증은 무관심으로 가지 않고 대안 창출을 위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코스타가 직면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 박사는 코스타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 박사가 코스타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의 코스타가 일종의 신병교육대 역할을 했다면,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사역이 생겼으면 좋겠다. 부흥 집회와 복음 전도, 선교 동원 대회로 치르는 동시에 신앙과 삶의 통합을 모색하는 파생 사역이 생겨나야 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그리스도인을 많이 만들어냈지만 그들이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은 데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적 본성에 충실한 악착같은 사람들로 낙인찍혀 버렸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늘어난다고 해서 하나님나라가 도래할까? 코스타도 마찬가지다. 삶의 각 영역에 대한 고민이 담겨지지 않으면 복음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 비록 코스타 수양회의 초점이 다른 곳에 있더라도 현장의 문제와 세계관의 훈련을 지속해서 담아내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으로는 파생 사역을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 적용되는 하나님나라를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시켜나갈 수도 있고, 여러 전문 분야에서 좋은 롤 모델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Jul 21,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컨퍼런스
미주 뉴스앤조이의 코스타 관련 기사입니다.
기사 원문은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855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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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TA USA 2008’, 성과와 한계
코스타 통해 ‘섬길 대상‘ 발견할 수 있어야
-미주뉴스앤조이 박지호 기자
미주 한인 청년 집회인 ‘KOSTA USA
2008’이 6월 30일부터 나흘간 시카고에 있는 Wheaton
college에서 열렸다. 올해 대회의 주제는 ‘이 시대에 바른 길로,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였다. 첫째•둘째 날 저녁집회는 갈보리교회 노진준 목사가, 셋째•넷째 날 저녁집회는 OMF 한국 대표인 손창남 선교사가 설교했다.
저녁집회 전에는 ‘일터의 현장’이란 순서에는 평생 노숙자 사역에 몸담아온 김진숙 목사와 서울대학교에서 ‘국제예배’를 만드는 데 기여한 김명문 교수, 코스타에서 5지역 멘토를 맡고 있는 김동록 박사가 나와 사역을 소개했다. 오전에는 화종부 목사가 세 차례에 걸쳐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의 태도와 방향에 대해서 강의했다.
선택식 세미나는 42개의 주제로 펼쳐졌다. 기본 영성에 대한 부분이 14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제자 훈련 7개, 기초 신학 6개, 가정 상담과 선교가 각각 5개씩 편성되어 있었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서부터 영성훈련, 귀납적 성경 연구, 그리스도인의 직업과 소명, 유학 생활, 한국 내 타문화권 학생 선교 등 주제도 다양했다.
코스타는 1986년 워싱턴DC 근교에 있던 유학생들의 연합 수련회가 모태가 되었다. 홍정길•이동원 목사 등이 주축이 되어 미국 내에 있는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민족’을 위한 변혁의 일꾼으로 양육하며,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주도할 그리스도인들을 세우자는 취지로 방향을 잡고 이끌었다. 코스타는 20주년을 맞으면서 사역의 대상을 유학생으로 한정하지 않고 한인 디아스포라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자취 감춘 고지론…치유와 회복 기능 감당
올해로 23살을 맞은 코스타. 규모가 커지고 역사가 깊어지면서 코스타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도 다양하다.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 코스타를 둘러싼 일반적인 선입견 중에 하나다. 이런 의식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 고지를 점령하면 하나님나라 확장에 큰 힘을 받을 것’이라는 식의 고지론에 대한 강조로 이어졌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시카고 대회에서는 엘리트주의적인 분위기나 고지론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학생과 비유학생의 비율이 2:1 정도 되기 때문에 유학생만을 고려한 메시지를 전할 수 없는 현실적인 배경도 있지만 한국 교회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복주의와 성공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내부에서도 작용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이 강사를 섭외하는 과정에서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강사들의 설교 핵심이다.
“교회의 능력은 주님의 자취를 따라갈 때 진정한 능력을 발휘한다. 교회가 세상이 말하는 힘과 세상에게 충분히 많은 것들을 보장받아서 세상을 바꾼 적은 한 번도 없다.”(화종부),
“사단은 돌을 떡덩이 되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대신 화려한 성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속삭임이다.”(노진준),
“고지론은 2000년 기독교 역사에 지속적 반복적으로 나타나 교회를 실추시킨 시행착오다. 교회가 영적 흡입력 대신 권력과 명성을 얻고 고지를 점령하면 복음 전파에 큰 힘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경과 역사는 오히려 정반대임을 증거한다.”(정민영)
한국의 대형 교회 목회자를 데려다 강단에 세우는 대신 미주 한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현지 목회자를 주강사로 세우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일부 유명한 목회자의 유명세를 등에 없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고, 미국이라는 다인종, 다문화,
다세대 사회에서 살아갈 한인 디아스포라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치유와 회복의 장으로서의 코스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전문 상담 사역자와 강사들명이 동원되어 4박
5일 동안 총 375건을 상담했다. 참석자
1,600명 중에 550~600명이 1회 이상 상담을 받았다는 통계다. 진로에 대한 문제가 105건, 이성교제가
104건, 신앙생활 84건,
인간관계 76건, 가정 상담 14건 순이다. 진로와 이성교제에 대한 참석자들의 고민의 비율이 단연 높았다. 38
코스타에서 상담하고 난 뒤 1년 넘게 상담이 지속되면서 후속 조치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진로와 이성문제와 같은 상담이 있는 반면 강사들이 “차마 상담 일지에도 쓰고 싶지도 않다”고 털어놓을 만큼 심각한 경우도 많았다.
코스타 통해 ‘섬김의 현장’ 발견할 수 있어야
20살을 훌쩍 넘긴 코스타가 마냥 칭찬만 듣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종학 박사가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화끈한 영적 샤워로 끝나는 일회성 수련회’라는 비판이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다는 점은 코스타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이런 인식은 코스타 내부에서도 가지고 있다. 권오승 코스타 총무간사도 “어떻게 하면 일회성 수련회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연속적인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가 현재 코스타가 직면한 가장 큰 고민이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권오승 총무간사는 “요즘 학생들이 피동적이기 때문에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젊은 세대가 거대 담론에 대한 관심이 없고 자발성이 약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우종학 박사는 코스타 수양회 자체가 “전도와 선교 그리고 부흥 집회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며 코스타의 방향 설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코스타의 부흥 집회적인 특성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대한 강조점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과, 그 적용점이 전도와 선교로 귀결되는 것으로도 드러났다. 42개 주제별 세미나 중에 절반이 넘는 세미나가 개인 영성에 관련된 주제로 편성됐던 것이나, 상담 건 수 중에여 건이 이상이 진로와 이성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상담이었던 것, 조별 모임 때 어려움이나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던 것도 이번 대회가 부흥 집회로서의 기능이 강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200
또 첫째•둘째 날에는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경험하는 삶에 대해서 강조했지만 셋째•넷째 날 저녁집회에서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헌신을 타문화 사역에 대한 헌신으로 연결시키면서 ‘하나님나라 헌신’은 곧 ‘전도와 선교’라는 등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유학생들의 영적 필요를 무시할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국’ 정도로 여기지 않고,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해야 하며, 그것은 전도와 선교로 실천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나라의 발현이 전도와 선교로 국한되어선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콘텍스트에 해당하는 다양한 ‘섬김의 현장’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개인이 진로를 선택하거나 배우자를 만나는 일에도 적용되지만, 세계에 만연한 분쟁의 현장에도, 사회적•경제적 불의로 고통 받는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현장은 우리의 일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 있다.
작년 코스타에 참석했던 A 씨의 경우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금융 기업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직장인이다. 코스타에 참석해 왜곡된 신앙을 거두고 온전한 복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코스타에서 해외선교에 헌신했기 때문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선교지로 떠나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해외선교를 나가는 대신 ‘내 옆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부터 섬기기로 했다. 이후 평소에 관심 있게 지켜보던 장애인 선교단을 찾았고, 시간과 재정을 나누며 꾸준히 장애인들을 도왔다. 매칭 펀드(직원이 비영리단체에 일정액을 후원하면 그 금액 만큼 회사가 추가로 지원하는 제도)를 이용해 후원을 하기도 하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위에 소개한 A 씨의 사례는 단순한 예지만 이런 작은 사례가 바로 하나님나라 운동의 출발점이며, 또 하나의 새로운 롤 모델일 수 있어야 한다. 코스타에서 인식한 하나님나라를 미주 디아스포라 청년들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이슈들에서부터 선포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며, 또 코스타가 그런 다양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의식이 없고 수동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나라는 이렇게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들을 보여주면 참석자들의 자발성과 창조성도 이끌어낼 수 있다. 또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에 대한 정의를 조금만 확장하면 다양한 이슈나 롤 모델을 한인 교회와 미국 복음주의권 내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면 그 대상은 목회자나 선교사일 수도 있지만, 세탁소나 네일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일 수도 있다. 코스타를 통해 내가 하는 일(공부)을 통해서 ‘섬길 대상’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고민을 함께 엮어갈 동지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Jul 10, 2008 | 찬양과 예배/이유정의 예배를 이야기하자

요즘
한국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찹찹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도, 초등학생까지 참여하는 국민적 촛불시위도, 종교계의 대처 그 어느 곳에서도
가슴 시원한 해법이 보이질 않습니다.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천민 민주주의’ 등 유희적 논쟁으로 매체가 들끓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의 소리가 더 깊은 불신의 병을 낳을까 염려됩니다. 광우병을 둘러 싼 몇몇 입장에 묘한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시민들과
야당, 국민대책본부가 여당과 정부, 대통령을 향해 쏟아내는 성난 목소리, 그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졌습니다. 플래카드마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비난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질책을 넘어 인격 모독입니다. 대통령을 무슨 길거리 촌부 취급합니다. 참여정권을 심판한다는 국민의 힘에 의해
압도적 표차로 뽑힌 대통령이 100일도 안 되어 그 국민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국민의 권위가 국민에 의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나라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생명이 담보가 될 소지가 있는 소고기 협상 과정에서 국민을 배려한 최선의 신뢰적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터지고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 국민의 입장에서, 민초의 마음을 읽으려는 낮은 자세도 없었습니다. 국정의
책임자들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국민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크리스천 정치인이나 목회자가 ‘사탄의 세력’ 운운하는 것도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비 신앙인도 인간의 생명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긍휼과 사랑의
언어로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성속의 이분법적 태도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최근 사회에 기독교 불신과 안티세력이 급속도로 커져가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반기련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안티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사회에 패악질을 일삼는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도전합니다.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를 한국교회 총체적
난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자정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이것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이며, 교육의 핵심개념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인간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존엄합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형수라도 형틀에서 마지막 죽기 직전의 순간만큼은 엄숙합니다. 바로 생명 그 자체가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기치로 삼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성숙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 입니다. 80년대와 사뭇 달라진 좌파우파의 논쟁도, 물고 뜯기가 끝없는 국회의 야당과
여당도, 권력의 추가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동하는 시국현장에서도, 노동자와 사주 사이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인간존중의 언어와 소통의 미는 없고
비난과 반목질시만 난무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역행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혈루증을 부정한 병으로 취급했기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생을 마쳐야했습니다. 그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 “이제 당신은 안 돼요! 이 병은 더
이상 치료 불가능합니다!” 병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없이 괴로움을 주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말합니다.
“당신은 부정한 여인이요!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마시오.” 종교적 기준으로 가차 없이 처단합니다. 이처럼 주변에서 들려오는 불가능과 절망, 비난의
소리에 갇혀 있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문을 박차고 무리를 뚫고 예수께 가까이 가서 그 옷자락을 만진 순간 즉시 혈루병의 근원이
말랐고 병이 나았습니다.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12년 동안 짓밟혀 있던 이 여인의 가치는 그 짧은 순간 예수 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인간의 외형적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비난, 불신, 정죄, 절망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이름 난 대형교회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그 어떤 정치적 입장, 이데올로기, 학술적 권위, 종교적 허울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존재의 회복을 열망하는 솔직한 한
생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예수 복음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신념의 근본적인 회복과 변혁을 가능케 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번 광우병 사태의 위기가 오히려 실종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유정
/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 CCM 남성듀엣 좋은씨앗
Jul 5,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2008년 시카고 컨퍼런스의 코스타 보이스 PDF 파일입니다.
월요일 – 제21권 1호 통권 118호
ik0.pdf
화요일 – 제21권 2호 통권 119호
hk0.pdf
수요일 – 제21권 3호 통권 120호
hk1.pdf
목요일 – 제21권 4호 통권 121호
jk0.pdf
금요일 – 제21권 5호 통권 122호
jk1.pdf
Jul 5,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오늘 코스타 보이스 서평에서는 최근에 발표된 영화 중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몇 가지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설득력있게 영상으로 소개한 영화들은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기독교적 메시지에 관심을 가진 주위사람들에게 복음을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독교 영화평은 http://www.umc.org/site/c.lwL4KnN1LtH/b.2285817/k.644B/Movie_Review_Archive.htm 에서, 추천 기독교 영화와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http://artsandfaith.com/t100/에서 참고할 수 있다.
Dogville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가장 기초는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죄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일부의 사람들, 악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이 아니고 어떤 때에 선한 의도와 행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다. Dogville은 이 죄의 문제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Dog과 달리 죄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있는 반면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없다. 영화는 외부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있는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마을의 순박한 사람들의 매일매일의 삶 속에도 죄가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연극 같은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사람들에게 죄와 구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Children of Men
예수가 태어났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식민지와 피식민지 간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점점 심해지는 식민정권의 억압정책으로 강제로 호구조사에 응하는 여정에서 인간이 누울 수 있는 가장 낮은 곳,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힘의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장 약해보이는 생명의 아기였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있었던 일을 현실에 비추어 재구성하고 있어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밀양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제시하는 영화. 예수님에 대한 오해처럼 하나님에 대한 오해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에게 퍼져있는 것 같다. 예수님 속에 계시된 하나님은 낮아진 곳을 향하고 있던 ‘숨어계신 하나님’이셨다.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이미지, 곧 힘과 영광의 실체가 기독교적인 생각이 아님을 생각해볼 수 있다. 빈 곳과 초라한 곳, 약한 곳과 병든 곳, 낮은 곳과 조용한 곳에 비치고 있는 햇볓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김영봉의 책 <숨어계신 하나님>은 이 영화를 바탕으로 기독교인들이 고민해볼 만한 문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소그룹에서 함께 읽고 나누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Cider House Rules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John Irving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주인공인 Homer의 가출과 귀환은 성서의 탕자의 비유를 모티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야기의 아버지처럼 Dr. Larch는 강요하지도 않고 아들의 결정을 들어주지만 끝까지 자신의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결국 어떤 규칙도 그 근본이 사랑일 때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에 근거한 규칙은 사랑에 기반한 규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자연스레 예수님의 삶과 공명하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깊이있는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을 잔잔한 영상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Amazing Grace
영국의 노예무역제도 폐지 200주년 기념작. 노예무역폐지를 성경적 소명으로 받아들인 William Wilberforce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윌버포스가 당시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노예무역 폐지운동을 벌이던 감리교회 공동체와 함께 인내심을 갖고 끝내 노예무역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인 소명과 공동체적인 비전 안에 기독교적 비전을 꾸준히 추구해간 한 인물의 생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Jul 5,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죄로 왜곡된 이 세상은 분리와 차별의 사회이다. 이곳에서는 서로간의 소통은 사라지고 오해와 반목과 갈등만이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세상의 나라를 거스르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이런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겸손의 하나님,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오셨고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어주셨다. 그분의 낮아지심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 주님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간의 죄로 갈라진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다른 언어지만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모든 성도들의 지향점은 그리스도 한 분이 될 것이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피조 세계와 인간은 완전한 관계를 회복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주와 회복된 관계를 갖고 구속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는 하나님의 화해에 대답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므로 다른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완성을 향해 가는 하나님 나라의 발전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왜곡된 세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되찾고 그 나라에서 그분의 뜻과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전달된 그 나라는 이어져 이제 이곳 휘튼 코스타 수양회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하나님 나라를 더 넓히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현실에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하나되는 완성된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을 다 내주신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에 동참하며 그 뜻을 실현시킬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이 요청에 응답할 것인가? 누가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것인가? 누가 이 열방을 향해 나아가 그들과 하나가 될 것인가? 누가 이 열방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것인가?
우리는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겠다고 결단한다. 우리는 인간을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결단한다.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고 그분의 질서에 따라 살아갈 것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할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의 책임과 중요성을 믿고 그 공동체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기여하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감사하여 그것에 부응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다할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의 직장과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우리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가정이 그분의 계획하신 질서에 따라 세워지기를 바란다. 주위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라보며 우리를 희생하여 그들을 돌볼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영광 중에 다시 오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킬 것을 믿는다. 그날이 이를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생을 인도하시는 그분의 주되심을 믿고 즐거이 순종함으로 그분을 기다린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려고 한다. 열방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가 이 열방을 비추는 빛으로 살 것을 결단한다.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해 주시기를.
Jul 4,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My bones suffer mortal agony as my foes taunt me, saying to me all day long, “Where is your God?”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d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Psalm 42:10-11)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전 우주에 미친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온 시간을 규율하신다고 우리들은 믿는다.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세상의 나라의 질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주권이 적용된다면 의로운 사람이 당하는 고통, 고난을 하나님은 왜 허용하시는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신다면 왜 세상의 나라가 번창하며 이 우주에는 왜 죄와 악이 번성하는가? 이 세상의 수많은 악과 무질서, 그리고 세상 나라가 번창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세상 나라의 질서, 그리고 악의 주권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그 질서를 유지하는 분(sustainer)이라는 믿음, 역사를 전지와 전능 그리고 전적인 선하심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자주 우리들은 심각한 악의 존재에 이런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분이라는 믿음을 버리거나,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거나, 그분의 전적인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든 것 같다. 성경에서도 이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욥,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
욥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전제되어 있다. 심지어 사탄의 어떤 행동이 하나님의 계획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욥은 하나님께 항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대답한다. 욥의 항의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기다렸다가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대답은 그에게 닥쳤던 일들에 대한 설명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대답은 욥과의 관계에서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일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형성되었던 믿음과 신뢰에 대해 지적하신다. 우주와 세상의 운행은 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시고 과거에 그에게 쌓인 믿음과 신뢰를 다시 되살아나게 하신다. 지적인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고통 당하신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세상의 악과 그 악의 결과에 의한 고통에 대하여 무관심한 하나님이신가. 세상에서 생기는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인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죽음을 경험하실 때 예수님 뿐 아니라 그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계시던 성부 하나님도 죽음을 경험하신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은 성부 하나님에게도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 자신이 모든 악의 결과인 죽음을 스스로 감당한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당하신, 고통을 직접 경험하시는 하니님이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
하나님 나라의 운행의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들의 지적인 한계로 역사와 사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발전되어 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것은 지적인 동의가 아니고 영적인 결단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에 관심이 있으신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이 그런 믿음의 근거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고 그 승리를 향한 역사의 발전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하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는 그 믿음으로 산다. 그 믿음으로 산다.
Jul 3,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우리는 기획기사를 통해 예수님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 그분은 십자가를 지신 자신의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그리고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그가 주장하고 보여주었던 하나님 나라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의 확증이 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임재한 하나님 나라와 승리할 하나님 나라의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실현시키는 사명을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 교회에 대해서 살펴본다.
예수님은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님은 당시의 세상의 질서를 적극적으로 거스름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그것에 걸맞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원했다. 그 새로운 공동체는 다른 종교 운동을 추구하는 공동체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폐쇄된 집단, 분파가 아니었고 모든 사람들이 초대되는 곳이었다. 심지어 죄인이라도 손가락질 받던 세리들과 창기들도 초대되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신분과 직업, 종교적 성향, 지역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셨고 그것에 반응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베풀어 주셨다. 곧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다양성과 예수님의 관심인 가난한 자와 약자에 대한 관심이 예수님이 원하는 공동체, 교회의 기본 성격이라 하겠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가 특별히 구별하여 자신의 사역에 언제나 동참하도록 부른 열두 사도 공동체도 비슷한 성격을 띤다. 그들의 출신은 매우 다양하여 그 안에는 강한 민족주의자(zealot)들 뿐 아니라 세리라는 식민지 정부 관리까지 포함되어 있다. 열둘이라는 숫자에는 이스라엘 전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했는데 세상에는 교회가 세워졌다고 말한다. 사실 예수님은 교회에 대하여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구체적으로 임재하는 장으로 삼으심으로써 자신과 그 공동체를 동일화하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인 하나님 나라와 그 공동체를 동일화하는 것이었다. (마 18:17, 20)
예수님의 새로운 공동체, 교회에 대한 사도들의 이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충만함이 이루어지는 장이 된다고 사도 바울은 증언한다 (엡 1:22-23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골 1:18-20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실재이며 교회를 통해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비전은 죄로 인해 분리되고 분열된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갱신되고 통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 7:10-11).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분열과 분리, 소외와 배타,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려는 모든 성도들의 노력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나라’라는 이상은 그리스도라는 실체로 전이하며 역사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점을 공동체가 공감하고 추구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된다는 비전은 현실의 교회의 모습을 지도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만들어 내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며 우리들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실재하는 몸으로,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의 노력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가 그것을 막는 최대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며 나아갈 때 그것은 가능한 미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우심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실 것을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Jul 3,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이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앞을 쉽게 내다보기 힘든 불투명한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호소력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복음의 시각으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그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해 본다.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IVP
리차드 미들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살림출판사
이승구,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SFC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문제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세 책은 기독교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큰 틀을 제공하는 교과서적인 책들이다. <창조, 타락, 구속>은 세상의 창조, 죄에 의한 타락,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에 의한 새로운 사회의 창조라는 주제를 교과서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입문서이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은 그런 주제를 좀더 확장하여 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의 사조와 비교, 대조한 책이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틀을 좀더 심층적으로 검토하여 대안적인 틀에 검토해보는 책이다. 세계관 문제를 좀더 지성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IVP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들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은 정치, 이혼과 재혼, 동성애, 반유대주의와 인종갈등, 낙태 등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그런 문제에 어떤 견해를 갖기 전에 성경에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원칙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서 논의하듯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연구할 때 바울서신, 복음서, 계시록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세윤,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 두란노
<The IVP Women’s Bible Commentary>, IVP
복음주의권에서 성적 차별의 문제, 여성성과 남성성의 역할 문제, 여성성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각 가운데 성적 차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 그에 대한 의미있는 문제제기와 성경적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은 교회 안에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좀더 바람직한 공동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The IVP Women’s Bible Commentary>는 여성 저술가들에 의해 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신구약에 대한 각 권 주석을 시도한 책이다. 본문 중 이슈가 될만한 70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에세이도 포함되어 있다.
제임스 패커, 캐롤린 나이스트롬, <하나님의 인도>, 생명의말씀사
우리는 매일같이 삶 속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외부의 징후를 통해 확인해야만 안도감을 느끼고, 각자의 지혜와 분별력을 외면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한다든지, 혹은 지나친 신비주의를 용납하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면서 시편 23편에 등장하는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다 실용적인 지침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거나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