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찬양을 통해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경배함으로 우리의 사랑을 올려드리기도 하고,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고 넓어지면서,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도 더 깊고 넓어지는 것 같다.
찬양과 기도를 통한 마음의 고백뿐 아니라, 삶 가운데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는 나의 선택으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증명”할 수 있기도 하다.
마음으로 하는 고백이다. 대학 졸업반 때의 일이다. 평소에도 우리 가정은 부모님의 불화와
장애를 가진 동생으로 인한 어려움이 늘 있어왔지만, 그때는 중요하고 심각한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겹쳐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절절히 느끼던 때였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곧은 성품대로 성실하게 일하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억울하게
그만두시는 일이 생겼다(이것은 그 당시 국가적인 사건으로 후에 명예회복이 되셨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던 어느 날 정부에서 ‘대학생 과외 금지 조치’를 내렸다. 졸업 후 특수학교 교사로 A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그
학교가 타종교 재단임을 후에 발견하고 포기하였다. 장래가 막막했다. 결혼한 언니가 가정불화로 친정집에 와서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였다. 임신 8개월이었다. 결혼을 생각조차 않던 나에게 사랑한다며 결혼하고 싶다고 하던 형제가, 내가 마음을 결정하기도
전에 다른 자매와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믿을 남자가 없었고 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큰 산이 사방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고, 소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데 도대체 집안 일이 왜 이렇게 안 되냐는 믿지 않는 부모님의 핍박은 갈수록 더해 갔다. 주일날 교회도 다니지 못하게 했다.
숨쉬기조차 힘들게 느껴졌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을 주님 앞에 울며 마음껏 토로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조금씩 감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심 감사, 사방이 막히어도 내 눈을 하늘로 들 수 있도록
“거기 계신 하나님”께 감사… 그리고 그분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였다. “여기서 또 어려움이 생긴다 하여도, 나를 구원하기
위해 생명까지 버리신 주님은 결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어려움이 해결되는 복 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가 가장 큰 복임을 선택하고 사랑으로 고백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마음으로 하는 고백 뿐 아니라 삶으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모든 짐을 가지고 올 때의 일이다. 대부분의 유학생이 그렇듯이 우리도 짐이 별로 없었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 가구는 전혀 없었고 옷가지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컴퓨터와 프린터가 2개 씩 있었다. 처음에 유학 가서
구입한 것과 졸업논문을 쓰면서 좋은 것으로 구입한 컴퓨터와 프린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삿짐 회사 직원이 말하기를 한
가지 물품이 여러 개 있으면 좋은 것에 세금을 부과하는데 우리 경우 100만 원 정도 될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우리에게는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방 두 칸 얻을 정도의 금액인 천만 원과 급한 대로 냉장고와 세탁기 사라고 친정어머니가 주신 백만 원이
고작이었다. 아까웠다. 그런데 회사 직원이 좋은(?) 제안을 하였다. 세관원에게 20만원만 주면 무사통과라는 것이다(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남편은 단호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한 번도 하나님 때문에
부끄러움을 겪은 적이 없었는데,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세관원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겠지만 양심에 비추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하나님의 자녀이었다. 세관원 아저씨에게 푼수처럼 떠들어댔다. “아저씨, 저희는 컴퓨터가 두 대고 프린터가 두
대예요. 여기 있고, 저~기 있네요. 세금 얼마예요?”
마음도 달라졌다. “하나님, 세탁기가 없어 손으로 빨래를 빨 때 마다 주님을 기억할
것이며 아이스박스에서 김치를 꺼낼 때 마다 주님을 기억할 거예요. 저, 기본은 되었지요? 저 때문에 하나님 창피하게 만들지
않았지요? 주님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가는 것은 찬양과 기도로 고백하는 사랑보다 더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도 평생 마음으로, 또한 삶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이것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은호(가명)는 나와 같은 교회에 다녔던 장애우 형제이다. 지금은 은호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평강 가운데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은호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장애우를 섬기시는 강 목사님과 함께
방문했을 때이다. 그 당시 강 목사님과 나는 일주일에 한번 장애우들을 찾아 심방했었다. 강 목사님과 함께 은호 집을 방문했을 때
오래된 주택에 대문은 열려 있었고 은호는 집에 혼자 있었다. 도둑이 들어도 가져갈 물건이 없었겠지만 은호가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아예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은호는 근육병을 앓고 있었다. 근육병은 처음에는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다가
점차 몸 위로 올라가면서 근육에 힘이 빠지면서 진행되는 병으로 진행성근마비라고도 부른다. 심한 근육병 환자들은 똑바로 앉아있지를
못하고 엎드려 있는 경우가 많다. 은호가 그랬다. 은호는 거의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을 절단하시고 치료 중이셨기에 어머니는 병원을 오가며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수발하셔야 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게도 어머니
또한 다리 한쪽이 불편한 지체 장애셨다.
은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밝은 성격 덕분에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은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강 목사님은 긴 널빤지를 망치와 못으로 뚝딱이며 근육병인 은호가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목수 일을
하고 계셨다. 은호를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 엎드려 지내는 은호가 탈만한 휠체어를 만들고자 목사님이 아이디어를 짜 낸
것이었다.
드디어 은호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다! 수년 만에 첫 외출인 것이다. 휠체어 바닥에 긴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조심스럽게 엎드려 있었고 교회 신실한 형제가 안전하게 휠체어를 운전하였다. 마음 따뜻하고 헌신적이신 강
목사님의 섬김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처음에 약간 낯가림하던 은호도 성도들의 환영과 친절함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나중에는 아예
오래된 식구처럼 우리와 하나가 되어졌다.
어느 날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교제하다가 은호가 “저는 평생 바다에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TV 통해 보았을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모두들 놀라며 “이번 여름에 은호에게
바다 구경시켜주자!”라고 뜻을 모았고 아예 장애인위원회 여름 캠프를 강원도 옥계로 정하였다. 그해 여름, 드디어 수십 명의
장애우와 수십 명의 봉사자들이 은호에게 바다구경 시켜주기 위해 대장정에 나섰다.
바다가 가까운 옥계 어느 교회를 숙소로 하여 우리 모두는 3박4일 동안 드넓은 바다,
해지는 저녁, 맛있는 음식, 가족 같은 친밀한 교제 등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즐겼다. 특별히 장애우 형제자매들을 한명씩 모두
조심스럽게 바닷물에 몸을 담구어 주었을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오던 놀라움과 감격의 탄성, 모래사장에서 휠체어 밀기가 너무 힘들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즐거워 함박웃음 짓던 일, 예수님을 영접한 형제자매에게 하얀 침례복을 입힌 후 고무 튜브 위에 눕혀 건장한
청년 봉사자들의 호위 속에 서서히 바다 속으로 들어가 침례 주던 일, 이때 행여 파도가 밀려올까 몸으로 인의 장막 만들고 울타리
섰던 일… 정말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들이었다.
특별히 모래사장에서 휠체어에 엎드린 채 바다를 바라보며 은호가 한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모님! 어떻게 저 많은 물들이 땅을 삼키지 않지요? 너무너무 신기해요! 하나님 대단하셔요. 정말 창조주 하나님이세요.”
은호의 말에 오히려 놀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은호에게는 만유의 주재,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감격스럽게 체험하는 사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후에 시편 104편 9절에서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섬세하신 창조의 계획이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 명을 위해 수십 명의 형제자매들이 사랑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한편의 드라마였지만,
그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섬기고 온 봉사자들에게도 사람과 하나님에 대해 더 깊고 넓은 깨달음과 교훈을 얻은 유익한 캠프였다. 나와
함께 참여한 아들(그 당시 초등학교 4학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학 숙제로 낸 글짓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목은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이번 여름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장애인 캠프에 갔다. 그저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오히려 많이 즐겁게 지내고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누구나 한 가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뇌성마비 우철 형아의 눈은 누구도 비길 자 없을 정도로 눈이 맑고 아름다웠다…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과
미소를 띈 경훈 형아는 너무나도 귀하고 아름다웠다… 갈매기와 파도소리가 우리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꿈만 같은 여름 캠프를 마치고 돌아 온 후, 그해 가을의 문턱에서 은호는 조용히 주님
곁으로 갔다. 넓고 푸른 바다, 그 바다가 땅을 덮지 못함을 보고 놀라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은호… 그는 드디어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눈으로 뵈오며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그분께 마음껏 올려드리고 있을 것이다.
학기말이라 분주하다. 한학기 내내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텀 페이퍼를 채점하여 학생들에게 돌려 주는 과정에서 몇 학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대화중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여학생들은 잘 운다), 몹시 흥분하며 화를 내기도 하였다 (남학생의 경우 잘 흥분하지만, 이 부분은 남.녀가 비슷하다). 한결같이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비판도 하였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 하나를 전에와 마찬가지로 금년에도 발견 하였다. 즉 실라버스 (Syllabus; 강의안) 를 대충 읽음으로 오는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이 텀 페이퍼를 작성할때 범하는 몇가지 실수중 하나는 실라버스를 주의깊게 읽지 않는 것이다. 보통 실라버스 에는 교수의 강의 계획서와 기대 및 텀 페이퍼 작성 안내가 나온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보통 세부적인 계획을 학생들에게 제시 하며, 학생들이 그 계획을 잘 따라 주기를 기대한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그냥 하루아침에 기분에 따라 작성하는것이 아니고 전문분야의 특성과 세상환경의 변화에 따라 학생에게 가장 유익할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고민한 후에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성된 실라버스는 매해 마다 조금씩 바뀌어 간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거나, 지난해 도움이 되지 않았던것들, 또 학생들에게 혼돈을 주었던것들을 기억하며 보강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유익할 과제를 철저히 검토한뒤 실라버스에 학생들이 반드시 다루어야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는다. 따라서 실라버스는 어떤 점에서 학생들이 충분히 소화해야할 아주 귀중한 자료인것이다. 그리고 실라버스는 어떤점에서 교수와 학생이 맺는 계약서 같은 것이다. 어떤 교수는 실라버스 맨 뒷장에 학생들이 “본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었고, 주어진 계획에 동의함”이라는 내용을 적고 학생들이 서명을 하게 한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은 학생은 어떤 과제가 주어졌는지 그냥 대충 감을 잡을 뿐이다. 텀 페이퍼 쓸때로 대충 이해한대로 쓴다. 이해는 대충 하였지만, 많은 유학생들의 경우 A+를 받으려고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한학기 내내 고생하며 작성한다. 그리고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경우 흥분까지 해가면서 글을 작성한다. 열심히 정성껏 글을 쓴 학생은 텀 페이퍼를 낼때에 A혹은 A+를 기대한다. 그런데 왠 일인가? A+대신 C, D, 혹은 Redo (다시 써라)라는 결과를 받는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흥분해 하며, 더러는 울기도 하며, 분노를 가지고 교수를 찾아 간다. 나는 잠도 많이 줄이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고, 수 많은 책을 참고로 하여 연구하고, 또 걸으면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텀 페이퍼만 생각하면서 고생하였는데 내게 돌아온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학생의 경우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혹시 미국인 교수가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하지 않나 의심하면서 분개해 한다.
교수의 반응은 간단하다. 나는 너에게 시카고로 가는 가장 좋은 운전길을 연구해 오라고 하였는데, 너는 뉴욕으로 가는 길을 적어왔다. 그러나 네가 적은 뉴욕가는 길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그 어떤 방법보다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시카고가는 길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이같은 반응은 실제 교수가 그같은 내용의 과제를 주어서가 아니고, 교수가 쓰라고 한 방향을 무시하고 학생 스스로가 추측하고 생각한 방향으로 글을 썼을때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지난주 내 사무실을 다녀간 티나의 케이스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티나는 나의 “여가 철학”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그 수업에는 많은 과제가 있는데 제법 점수의 비중이 큰 과제중 하나는 크리스쳔의 관점을 가지고 여가 (Leisure)의 철학을 논술하라는 것이다. 그같은 관점을 돕기위해 그동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독교 세계관으로 여가를 바라 볼것과, 성경의 원칙과 여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여가의 관계등에 대한 Guiding Questions도 실라버스는 분명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티나가 준비한 글은 여가의 철학이 아니였고,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철학이었다. 크리스쳔의 관점도 고려하지 않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무엇이 티나로 하여금 본 과제의 특성과 빗나간 글을 쓰게 하였을까 이해 보려고 잠시 애써 보았다. 아마도 내가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주로 가르치는 교수라는 인상 때문이었을까? 본인의 전공이 그것이니 이번기회에 철학적 정의를 해보고픈 개인의 욕망때문이었을까? 어찌하였든 티나는 과제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빗나간 글을 쓴 것이었고, 이로 인해 본인이 기대하지도 않던 권총 (F)을 하나 찬 셈이 되었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는 다른 케이스가 있다. 어제 사무실을 다녀간 캔디스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의 경우가 아주 적절한 실례가 될 수 있다. 캔디스는 페이퍼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교수가 실라버스에 요청한 내용을 철저히 다루지 않았다. 캔디스가 듣고 있는 과목은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원리라는 과목으로서 요즘 미국의 Health Care System의 Issue에 대한 과제가 있다. 실라버스에는 그 과제에 대한 목적과 요구항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고, 이를 강의실에서 설명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Issue의 선택은 학생이 교수의 동의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Issue에 대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Issue를 자세히 소개 하게 하였고, 선택된 Issue와 관련된 과거 역사적 사실들, 현제의 상황,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소,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한 제언등을 다루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항목은 특정 점수를 부여하게 되어 있어서 그같은 내용을 다루지 않으면 점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캔디스의 경우 Issue에대한 나의 동의는 받아내었지만 내가 연구하라고 실라버스에 요구한 구체적 항목들은 일부 다루지 않았다. 대신 내가 실라버스에 요청하지 않은 다른 항목들을 아주 장황하게 조사하여 보고 하였다. 요구한 항목중 잘 다루어진 부분은 실라버스에 적힌대로 점수를 받았지만, 다루지 못한 부분은 아무런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썻으나, 내가 실라버스에서 요청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아무리 훌륭하게 연구하였어도 아무런 점수를 받지 못했다. 받은 점수를 모두 합해 보니 많은 부분에서 점수가 부족하여 결국 캔디스는 권총 (F)을 하나 받아야 했다.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당연한 것을 소홀히 함으로 큰 실수를 범할 때가 많이 있다. 무엇을 만들고 조립할때 그 물건을 만든 회사가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따라 가면 쉽게 조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메뉴얼을 무시하고 나의 꾀와 직감을 가지고 그냥 조립하려고 할때 당하는 어려움이 좋은 예이다. 기본과 당연한것을 무시하지 않고, 조그만 것 일지라도 성실한 크리스쳔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완벽한 실라버스를 만들어 주셨다. 어떤 이들은 그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무시하고 살아 간다. 또 어떤 이들은 일부는 따르지만, 다른 부분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간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성경대로) 살아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추측하고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좇는가? 인생의 실라버스를 충실하게 읽고 주님을 좇아야 할 것이다. 당연한것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 가다가 도착지 (finish line)에 섰을때 나의 달음박질이 헛된것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 한번 심각히 우리의 삶을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딤후 2:5; 표준새번역)
자존감은 어린아이에서 시작하여 어른에 이르기까지 늘 따라다니는 신앙의 중요한 이슈이다. 낮은 자존감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처는 가족 및 여러 관계에서 일어난 아픔이 원인이 된다. 또한 상처의 치료방법으로 강조되는 내적치유는 주로 상담과 기도에 의존한다. 모두 의미 있는 접근이다. 하지만 낮은 자존감의 원인에는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며, 자존감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상담과 기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중요한 요소들도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자존감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상처와 내적치유만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존감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상처와 내적치유를 각각 한손에 부여잡은 채 여전히 자신의 문제 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진보, 인격의 성숙, 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섬김을 이룰 내적 에너지와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자존감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도덕성,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사랑의 삶이다. 이 세 가지는 자아개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들이다. 어떻게 보면 상처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위의 세 가지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것들이 된다.
첫째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배를 통해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시고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강조하고 “아멘”이라 화답한다 할지라도,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거나 포르노 컴퓨터에 중독이 되어 있고 혹은 돈에 있어서 투명하지 않다면 그 사람의 자존감은 결코 높아질 수 없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과 가치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려 해도 머리에 겉돌 뿐, 그런 행동을 그치기 전에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이 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불륜을 가진 우울증 환자들을 위해 순결요법을 사용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울증환자로 하여금 불륜의 관계를 청산하게 하고 아내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게 했을 때 비로소 그 환자가 마음에 깊은 평안을 느끼고 우울증으로부터 회복된다는 것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았고 혹은 다른 사람들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과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자신을 결코 사랑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남의 페이퍼를 베껴 A+를 받았을 때 진정으로 자신이 실력자임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유혹을 이기거나 남들 다 하는 편법과 불법이라 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합법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는, 누가 알던 알지 못하던 상관없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떳떳함과 당당함으로 인해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된다. 더욱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칭찬을 느낄 때에는 말 할 수 없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솟아날 것이다.
둘째는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매일 일상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잘 이해하고 잘 해결하는 것은 자존감에 큰 도움이 된다. 만약 여러 상황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갈등들을 잘 인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한다면, 자기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 필요한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학생으로서 혹은 직장인으로서 혹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거기에 합당한 성실과 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 실수와 실패하기 쉽다.
또한 문제해결능력에는 지혜가 필요한데, 지혜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중요한 과업으로 규정하고 있다.(롬12:2) 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씀 안에 너무나 분명한 교훈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무엇을 옳다고 하시는지 또 무엇을 나쁘다고 말씀 하시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지키는 삶이 중요하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시111:10)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사랑의 삶이다.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며 섬기고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반대로 사람들을 미워하고 해치며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조종한다면, 우리 마음은 불만과 비난 그리고 분노로 가득할 것이다. 불만과 비난으로 가득한 나 자신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미워하는 사람이 많고 못 마땅한 사람이 많을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비록 지난 과거에 많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넘어서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바로 그분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존중하여 그분의 섭리대로 산다면, 결국 우리는 자신을 존중하게 되고 자존감은 높아지게 되어 있다.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죄가 관영하는 이 세상에서 미끄러짐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며, 거룩한 신앙인으로 책망할것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숨쉬기를 할때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어 밷을 수 있듯, 주의 말씀을 그렇게 자연스레 순종해 가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야무진 공상일까?
위의 질문 뒤에는 나의 미끄러짐으로 인한 아픔이 숨어 있다. 내게 있어 미끄러 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크게 벗어났던 작게 벗어 났던지간에 내게 있어서는 미끄러짐이다. 특히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이 미끄러 넘어졌을땐 더욱 더 처절하게 느껴져서 나의 한심한 신앙생활로 인해 눈물을 그렁이며 아파하기도 한다. 더우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보는 데서 미끄러졌을 경우 나는 더욱 좌절한다. “그렇게 살아 가면서 어떻게 캠퍼스 사역한다고 하고, 교회에서 설교 하고, 학생들 상담하지?” 라고 묻는것 같다. 아 내게 이같은 미끄러짐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미끄러짐에는 나의 부주의가 많다. 미끄러운곳을 걸어갈때는 긴장도 해야 하는데 그냥 방심하고 진행할때 미끄러진다. 내 발걸을음 잘 점검하지 못하고, 주변의 환경을 기도를 통해, 또 말씀을 통해 분별해 가면서 지혜롭게 가면 미끄러짐을 극소화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영적 부주의는 미끄러짐을 경험하게 한다. 늘 익숙해진 대학 캠퍼스가 내 생활의 주요 무대인 나에게는 영적인 긴장감을 갖기 보다는 늘 가던곳이고 하던 것이니 방심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늘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편안한 가족이기에 말에서나 행동에서 실수할때가 있다. 아내에게 무례한다던가, 아이들의 말을 온전히 귀담아 들으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방심하고 있을때가 있다.
일상생활의 부주의가 미끄러짐의 일차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장애물은 나의 교만이다. 나의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함 보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할때 흔히 나타난다. 나의 경우 교만은 “나 혼자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나타난다. 나의 선택과 나의 길이 더 안전해 보이고 더 지혜로와 보이는 것이다. 그같은 교만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향해 가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이같은 생각이 내게 들어온 순간 나는 이미 미끄러진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교만은 하나님 보다 나를 더 중요시 하게 된다. 일단 그같은 상황에 놓이면 세상것이 주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되고 하나님 나라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 만들고 싶은 그런 세계 및 상황을 바라게 된다. 이쯤되면 또한 내 왕국을 만들어 보려는 동기로 먹고 마시며, 뛰고, 쉬고, 일하게 된다. 나는 이같은 상황을 미끄러져 내동냉이쳐 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빼먹지 말아야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미끄러짐은 나의 회개의 문제와 아주 깊숙히 맞물려 있다. 입으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기도하기만 하면 그냥 자동적으로 용서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는다. 신앙생활 초기 특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적이 있었다. 이같은 회개는 변화를 동반하지 않기에 똑같은 자리에서 다시 미끄러지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게 된다. 그러나 때론 입술의 고백을 떠나 마음의 고백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아픈 마음으로 주께 용서를 부르짖는다. 입술의 고백보다 좀더 발전된 방법 같아 보이지만 이같은 방법은 도덕적 회개에만 머물 수 있어 또 다시 미끄러지게 한다. 참다운 회개는 가던길에서 거꾸로 되 돌아서야 된다는 결단과, 실제 삶의 현장에서 돌아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던길을 돌어서긴 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며 그 눈을 뒤로 돌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응시한채 걸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고 또 미끄러짐의 가능성을 기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이다.
유학생들과 삶을 나누며 대화하다보면 미끄러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코스타나 교회의 수련회등 여러 집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이제부터는 바른 신앙생활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헌신하려 하였지만 삶에 현장에 되돌아 왔을때 바로 미끄러져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좌절해하며 힘을 잃는다. 신앙생활에서 미끄러진채 거기서 그냥 멈출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복음의힘은넘어지지않는데있는것이아니라우리가넘어지고부딛히고깨지며살아갈때우리를세워주시는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삶이다.나의세아이들과아내는내가미끄러지는것을 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분명히아는 것하나있다. 살아계신하나님아버지가전에도그랬듯이이번에도아빠를세워주실것이다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넘어 지는 나를 믿기 보다 나를 늘 세워 주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의 세 아이들은나의거룩한삶 혹은 거룩을 향한 삶을 보고도 살지만, 나같이 연약한사람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사용하시고세워가시고만져가시는살아계신하나님아버지를보며변화해간다.
과연 영적 미끄러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많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과 죄성으로 미끄러지고 깨어지는 많은 체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과 싸우는 대처방법이 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새벽이슬과 같은 믿음의 청년들에게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는 반드시 나누고 싶다.
첫채로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유학생활의 목표가 학위취득에 있는것이 아니라 거룩함 추구를 그 우선순위로 놓아야 한다. 이제 구원을 받았기에 천국은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에 신앙의 선한 경주를 멈추고 땅에 주저 않아 쉬고 있어서는 안된다. 공부하며 순간 순간 십자가를 바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주님을 나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면전에서의 삶, 즉 코람데오의 삶을 살도록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늘 동행한 에녹처럼, 오늘날 유학생들은 성경에 한줄밖에 나오지 않은 평범한 신앙선배인 에녹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을 소망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학업의 우수성보다 더 귀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나의 죄성을 심각히 자각하는 것이다. 구원은 받았지만 내 안에 남아있는 옛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자 하는 죄성이 있음을 의식해야한다.이것을 온전히 자각하게 되지 않으면 죄의 속임에 쉽게 미끄러져 버린다. 그러나 그같은 죄성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그냥 미끄러져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임을 순간순간, 삶의 모든 상황속에서 인정하는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발전 시킨다. 따라서 캠퍼스에서든, 캠퍼스 밖에서이든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깊숙히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를 젖은 눈으로 바라볼때 우리는 나의 죄악들과 세상에 관영하고 있는 죄악들에 대해 치를 떨며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만 멈추지 말고,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박으시면서 까지 우리와 화목을 원하셨던, 그리고 그 화목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오르셨던 그리스도를 바라 보며 큰 사랑에 감격해야 한다. 미끄러져 넘어져 있을때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것도 그 사랑때문이다. 그러나 죄에 대해 소름끼치는 미움이 없이 일어 선다면 또 미끄러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이 두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밖에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고 매일 매일 말씀묵상을 통해, 예배를 통해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미끄러짐 없는 똑 바른 걸음을 걷기 위해 우리는 순간 순간,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글을 마치며 우리들처럼 미끄러짐의 아픔을 경험한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싶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 1-2)
2009 코스타 follow-up 으로 진행된 하시용 목사님의 귀납적 성경 연구에 참여하신 방혜지 자매님의 간증문입니다.
귀납적 성경연구 온라인
follow-up을 한 주 남기고 있다.
이번 주일까지 마지막
숙제를 하면 끝. 지금이 최고로 바쁠 때여서
끝나면 홀가분 하고 여유가 생기겠지 하면서도, 매주
열정에 넘치고 우리를 다독이고 격려하기에 여념이
없으신 목사님 메일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많이 섭섭할
것 같다.
이번에 처음 간
코스타. 처음인데도 조장으로 섬기면 더 큰 은혜를 받는다는
말에 머뭇거림 없이 조장으로 신청했다. 우리 조는
서로가 마음이 잘 맞고, 모두가 다 배려심이 깊어 처음
만나자마자 서로 많이 친해졌다. 우리 조가 코스타
기간 중 가장 포커스를 많이 둔 것은, 강사님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는 것과 오후에 진행되는 선택 강의 중 연애
관련 강의는 최소한 하나씩은 들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결혼에 관심이 많은 우리 형제, 자매님들은
연애 강의를 어찌나 재밌게 듣고 왔는지,
식사 때 줄을 서면서, 식사하면서, 강의 때 들은 내용을
다 그대로 재현해주었다. 어찌 들으면 유치할 수 있는
남녀 관련 유머에 우리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목요일에
강의를 듣기로 되어 있는 나는 그때를 기다렸다.
화요일 점심에 우리는
식당 앞에서 우연찮게 하시용 목사님을 발견하고는,
목요일 자유 시간으로 초대 약속을 잡았다. 목요일에
뵌 목사님은 따뜻하고, 인자하고, 부담이 없어 보이시는 첫
인상이셨고, 이번 코스타 주제 특강에 대해서, 그리고
목사님께서 강의하시는 귀납적 성경공부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해주셨다. 성경과 청년들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많으심을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과의 만남 시간이
끝나가면서, 목사님은 수업 준비하러 가야
된다고 하셨고, 나는 그 때, 그 중요하고도 중요한,
코스타 오기 전부터 많은 사람으로부터 듣고 제일 우선
순위에 두고 신청했던, 00 목사님의 연애특강 수업을
포기하고, 이름 조차도 절대 확 구미가 당기지 않는
귀납적 성경연구 강의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와 같은 마음이 들은
우리 조 형제님과 비가 많이 내리는 교정을 지나 수업이
있는 빌리그레함 빌딩으로 향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떻게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목사님의
강의를 듣는데, 이전엔 전혀 모르고, 알 수도 없었던
귀한 비밀을 발견한 듯한 반가움과 기쁨으로 마음이
꽉 찼다. 코스타 이후 3개월 과정으로 온라인으로 강의해주시고,
과제도 첨삭해주신다는 말을 듣고는, 실전으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여기서 그 기대되고
흥분되는 마음을 설명하기는 힘든 것 같다. 수업 내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감탄과 놀라움이 계속 되었다.
아마도 내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갈망이, 내가 모르는 갈급함이 있었는데, 성령님이
그것을 알고 계시기에, 이 곳으로 나를 이끄신 것 같다.
코스타 끝나고, 귀납적 성경연구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목사님의 반가운 첫 번째 메일이
왔다.
무언가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시작단계에 있다는 사실에, 백미터
달리기 하기 전의 그 떨리고 설레임 같은 마음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따라가고 과제 내고 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목사님께서 매주 열정과 열심을 다해서 보내주시는
강의 내용들과 끝까지 열심히 하자고 다독이는 격려와
칭찬 메일, 그리고 간사님들의 과제에 달아주시는 칭찬이
가득 섞인 코멘트들을 생각하면, 내가 일주일에 한번
내는 과제는, 우리를 하나님 말씀연구로 어떻게든 잘
이끄시려는 목사님과 간사님들의 노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귀납적 성경연구는
크게 말씀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3단계로 나뉘는데, 이 단계를 더 자세히
세분화해서 매주 배우게 되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과제가 주어진다.
목사님이 정리하신 내용을
프린트해서 회사 오가는 지하철에서 읽고, 집에 일찍
오는 날이나 주말에 숙제를 해서 냈다. 10월은 실전
단계로, 데살로니가 전서를 본문 말씀으로 하여, 분석,
해석, 적용을 한다. 숙제에 보통 3시간이 소요되게 하라고
하셨는데, 2단계는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그래도 전
후 문맥 나누고, 반복된 단어, 문법적 사용, 본문 읽고
궁금한 질문들, 그 질문들 답을 찾는 과정들을 거치면,
예전에 읽고 들었던 성경구절 안에 또 다른 숨겨진
것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귀납적 성경연구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적용에 있었다.
이성적인 접근으로 말씀을 쪼개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해석할 때까지는 나에게 어떻게
개인적으로 적용이 될 것인가가 바로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을 다 마치고,
조용히 내 마음 속에 있는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깊숙한 것까지,
내가 몰랐던 죄들, 하나님께 감사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교회에서
리더를 하면서,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넘쳐났던
처음과는 달리, 매일매일 조원들을 놓고 기도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이전 삶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어왔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함의 삶을 살지 못한 내 모습을 다시
보고, 하나님 앞에 더욱더 거룩함으로 나아가겠노라는
결단을 하게 하였다. 묵상 부분에 들어오면, 나도 예상치
모르게 보여주시는 많은 것에 매주 많이 울게 된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부어서 3중이 될 쌍꺼풀 걱정과 함께,
목사님과 간사님께 숙제 메일을 보내곤 한다.
요즘은 뉴욕에 와서
job을 잡고 일을 한 이래로, 최고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8시가 다 되어서 회사에서
나오고, 일이 많아 토요일 오후는 회사에서 보낸다.
그래도 감사하고 일하는 것이 즐겁다. 부족한 나를
이곳에 보내주셔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기쁘게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일을 즐겨 하고 많이 좋아하는
내가 이전 회사에서 힘들 때, 하나님을 새벽에 만나지
않고서는 회사로 출근할 수 없을 정도로 회사가 싫어서,
매일 매일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교회로 향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욱 친밀한 관계로 나를 이끄시고,
거기에 기쁨이 있게 해주시고, 하루를 지탱해 나갈 힘을
주셨다. 그리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셨고,
주님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께 쓰임만 받는다면 가장
기쁘겠노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 곳,
현재 직장을 주셨다.
현재에는 또 다른 기도제목이
있다. 주님이 주신 것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가 세상에 포커스가
너무 맞춰있지 않도록, 세상 기준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혼자 힘들어하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구하지 않도록,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들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새벽기도가 그렇고, 큐티가 그렇고,
교회의 찬양팀, 그리고 지금의 귀납적 성경연구가 그렇다.
예전 같으면 몇 개는
내려놓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없으면
내가 무너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고 있는지
방향성을 읽을 것 같아서다.
“때로는 지쳐서 비틀거리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 기도, 입술만 달짝 거린다고 자책하거나
비난하는 바로 그 간구가 사실은 연약하고, 지치고,
내면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부닥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지만 충직한 마음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드리는
기도” 라는 큐티의 묵상 에세이로 하나님은 또 나를
다독이신다. 예전보다 더 하나님을 사모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마음의 무거움과 죄송한
마음에, 지금의 모습 또한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주
아버지의 말씀.
하나님의 이끄심은
놀랍다. 코스타 기간, 누가, 나조차도, 연애 강의를
달갑게 포기하고 귀납적 성경연구를 들을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이렇게 온라인 수업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했겠는가.
앞으로 여기서 배운 성경 연구가 어떻게 나의 삶을
더 말씀으로 풍성하게 할까 그것도 기대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끄심이 내 삶에, 내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나를 이끌 것임을 알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사람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발견하는 축복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사랑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자신의 죄성’에 당황하기도 한다. 결국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님 마음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깊은 내면의 성찰도 가져다주어 우리를 성숙케 하는 것이다.
민수(가명)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로 오랜 기간 우리 가정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음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명절을 같이 지내기도 했는데 그 아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군대 간 아들 진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새벽녘에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침대에서 떨어졌어!” 아이의 방에 달려가 안아주며 “저런 놀랬지, 다친 곳은 없어?”라고 묻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주님! 고아들은 이런 때 누구를 부릅니까?’ 물론 박한 재정으로 고아원에 침대를 설치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과 놀램을 당할 때 과연 누구를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날 밤 마음의 아픔을
느끼면서 비로소 우리에게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고 부탁하신 주님의 심정을 조금 알 수 있었다. 후에 진호보다 1살 어린 민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민수를 만난 후 처음 맞이하게 된 어린이 날이었다. 무슨 선물을 할까 망설이다가 직접
물어 보았는데, “장난감이 가지고 싶어요!”라며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가까운 백화점에 갔다. 마침 대목이라
장난감 코너에는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민수는 정신없이 이 물건 저 물건 만지고 있는데 점원 눈치가 보인
나는 그의 귀에다 살짝 “빨리 골라”라고 말했다. 그때 남편이 나의 손을 슬그머니 뒤로 당기며 “그냥 내버려둬. 지금 선택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거야. 언제 이런 일이 있었겠어? 모든 것이 다 자기 것 같은 기분일 텐데…” 드디어 골랐다.
그런데 3만 5천원! ‘주님, 너무 비싸요. 진호도 그렇게 비싼 것 안 사줬는데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비싼 것 안다. 하지만 나는 내 아들 민수에게 그것을 선물해 주고 싶구나!’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주님께 참 감사했다.
민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민수는 내 눈에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보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와의 만남이 항상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숨겨 버리고
싶은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욕심, 이중성과 위선, 사람에 대한 편견, 희생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끊임없는 계산들이 주님
앞에 환히 드러나 수치심과 실망감에 몸서리쳐질 만큼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민수가 초등학생 때 일이다. 여름방학 중 며칠을 함께 집에서 보내는데, 어린 민수는
더위에 자기 몸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온몸에 모기가 문 자국과 긁어서 흘러내린 진물로 얼룩져 있었다. 집에서 깨끗하게 샤워를
시킨 후 큰 수건으로 몸을 닦으려 하는데 어쩐지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수건을 그의 몸에 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별도리 없이
꺼림칙한 마음으로 닦아주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니 자꾸만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주님은 죄악으로 얼룩진 나를 위해 그
큰 희생을 감당하시며 그래도 사랑한다고 지금까지 나를 안고 보호해 주셨는데… 주님 앞에 엎드려 깊은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은혜를 모르는 교만하고 가증스러운 내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부끄럽게 하셔서라도 나를 겸손하고 성숙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인내가 감사할 뿐이었다.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주님과 나 그리고
사랑해야 할 대상, 이 삼각관계 속에 부딪히고 깎이며 채워지고 누리는 사랑의 역동이다. 이 과정 속에 우리는 사랑을 보며 또
죄를 보게 된다. 그래서 더 큰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게 되나 보다.
10년 정도 여러 명의 개척교회 목사님 자녀들에게 영어공부를 가르친 적이 있다. 개척교회 목사님들의 빠듯한 재정으로는 남들 다하는 영어 과외공부 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를 가르친 아이 중 특별히 기억나는 재미난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성환(가명)이다. 성환이는 성격이 배우 밝고 귀여운 아이였지만 공부 중에도 일어나 여기저기 움직이고 숙제도 자꾸만 잊어버리곤 했다. 여러 말로 타일러 보지만 잘 먹히지 않아 좋은 방도를 궁리하였다. 그것은 성환이가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마다 그것을 포착하여 마음껏 칭찬하며 숙제 해 올 때마다 예쁜 스티커를 공책에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티커가 20개가 모이면 문방구에 가서 평소에 사고 싶었던 3천 원 정도의 물건을 사 주는 것이었다.
성환이는 이런 방법을 너무 좋아했고 덕분에 숙제도 열심히 했는데, 어느 날 스티커 19개 모은 공책을 잊어버렸다며 마구 우는 것이었다. 나는 성환이 말을 그대로 다 믿어주고 새로운 공책에 해 온 숙제를 점검한 후 예쁘고 큰 스티커 하나를 공책에 ‘꽝’ 붙여주었다. 바로 20번 째 스티커였다. 그리고 우리는 신나게 곧바로 문방구로 갔다. 속상한 얼굴에서 환한 밝은 모습으로 바뀐 성환이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후에 성환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한 어린이로 칭찬도 많이 받았는데 어느 날 엄마에게 그 이유를 “영어 선생님이 나를 잘 가르쳐 줘서 그래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 말 그대로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성환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겨우 일주일에 한번 하는 영어 공부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작은 섬김을 큰 열매로 이루셨다.
김 집사님은 모시고 살고 있는 시어머니와 관계가 매우 좋지 못하였다. 양쪽 모두 피해의식과 억울함으로 서로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안타깝게도 시어머니가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런 엄청난 통보 앞에서도 두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 관계를 도와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일주일에 한번 씩 김 집사님의 시어머니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매주 금요일 오후 구역 예배를 마친 후 발걸음을 김 집사님 집으로 향하였다. 누워 계신 할머니에게는 주로 과거에 있었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는 질문들을 하였다. 예쁘셨을 젊은 시절 이야기, 학창 시절의 추억, 잘 자라주는 손자들 이야기, 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 하나님 이야기… 뼈만 남은 앙상한 얼굴이셨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행복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며느리 김 집사님에게는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매일 시어머니에게 두세 번만 말을 건네라고 하였다. 예문까지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 날씨가 참 화창한데 거실에 나오실래요?” “오늘은 밖에 비가 오네요.” “특별히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만들어 드릴께요.” “이번 주는 아이들 시험 기간이에요.”…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김 집사님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소천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천하시기 전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에게 전화하여 귀한 딸 데리고 와서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며느리 김 집사님에게도 “고마웠다.”며 마음을 전하셨다 했다. 그동안 가졌던 서로에 대한 앙금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훈훈한 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장례식장을 향하는 나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위에 소개한 성환이나 김 집사님 경우 모두 큰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그저 일주일에 한 두 시간 정도 소요될 뿐이다. 다만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며 살고 싶은 소망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이런 작은 섬김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그 섬김을 기쁘게 받으시고 큰 열매로 되돌려 주신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가장 큰 ‘기적’이 아닐까?
그나라는시간개념으로는미래의것이지만, 현재의역사속으로역행해서들어왔습니다. 놀라운일이죠. 원래는구약시대에는그것이인류역사가진행되는가운데, 여호와께서전격적으로임재하셔서유태인이갖고있는 the Lord day 개념인데 (주의진노의 날의개념).
Here and now 의개념으로현재역사속에역행하여침투해서들어왔습니다. 겹치는부분의초기그리고끝 already but not yet, 곁치는첫부분에십자가가있습니다. 십자가는역사의중심입니다. B.C. 와 A.D.의중심이되는것입니다. 이세계역사, 예수믿지않는사람들도쓰는용어를봐도예수그리스도가중심에있음이보이시죠. 오직십자가의빛만이이전의세상을해석해주고, 십자가이후의날을해석해줄수있습니다.
2009 코스타에서 진솔한 간증으로 많은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박준석 형제님이 2009년 9월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박준석님의 삶을 기리며 형제님의 간증문을 싣습니다. 모든 코스탄들에게 형제의 믿음의 유산으로 남기를 바라며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코스타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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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석 형제의 간증문
안녕하십니까? 박준석입니다. 저는 인디애나 대학에서 Tourism Management로 석사학위를 마쳤고 같은 전공으로 텍사스 A&M에서 박사과정을 이번 가을학기부턱 시작합니다. 3년 전,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결혼생활은 이제 만 2년을 조금 넘기고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유학생활을 영위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학생 가정들이 겪는 학업과 생계의 문제를 저희 가정 또한 겪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에서 비롯되는 어려움들 또한 저희 가정만을 비켜지나쳐가지 않습니다. 누구가 똑같은 통과의례를 지나쳐가기에 제가 여러분 앞에서 저의 유학생활을 자랑스럽게 물건들을 펼쳐보이는 보따리장수처럼 펼쳐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 유학생활을 통해 만난 하나님은 저만의 독특한 경험이기에 감히 여러분앞에서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우선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제가 아무 것도 아님을 여러분께 말씀드려야만 합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박준석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디애나 블루밍턴에서 Tourism Management를 전공했다지만 역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을학기에 박사과정을 시작한다고 한들 그래도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겨우 2년 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아닌 저를 위해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저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오기만을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셨는데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서있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한 때를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2년 전 이맘때쯤인 것 같습니다. 2006년 가을, 인디애나 대학으로 유학을 올 때만 하더라도 저는 기독교, 혹은 신앙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꽤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중적인 가치와 행동들이 너무 싫었던 것 같습니다. 대형 교회들의 집회는 대형 백화점의 바겐세일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교인들을 늘리기 위해 다른 이들의 시선과 편의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은 실적이 인격이라고 믿는 여느 영업사원들과 똑같아 보였습니다. 주일마다 짜증나는 교통체증을 유발하면서도 주중 주차난에 허덕이는 주민들에게 텅텅 비어있는 교회 주차장을 개방하지 않는 교회의 오만방자함도 싫었습니다. 매 주마다 교회 증축을 광고하면서 건축헌금을 들먹거리는 목사는 자신의 3억 원짜리 차는 절대 팔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교회의 병폐와 부조리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교회의 모습은 세금을 면제받는 대기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점점 굳어져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것 같습니다. 제 평생에 교회 땅은 절대 밟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인디애나폴리스 공항에서 저에게는 실로 놀랍고 또한 소중한 한 분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그 때 저는 그 분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저와 함께 유학길에 오른 친구 아버님의 친구분이시고 또 제가 다니게 될 학부에서 교수직을 가지시고 계시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 분 댁에서 하루를 신세 질 것이라는 것이 제가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저 원님덕에 나발부는 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폴리스 공항에서 블루밍턴까지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서, 말을 건네고 받는 동안 교수님이 참 따뜻한 분인 것을 느꼈습니다. 이윽고 교수님 댁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거실에서 잠시 쉬는 동안 교수님께서 저에게 교회에 다니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지만, 저의 대답은 “저는 기독교를 증오합니다.” 였습니다. 제가 의도한 답변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머리로 생각도 하기도 전에 이미 저는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그 분이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지켜오고 계신지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얼마나 기독교가 싫었으면 처음보는 교수님 앞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헌데, 더욱 놀랐던 것은 교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근데, 준석이는 기독교를 왜 증오하니?” 이렇게 물어보시는 그 분의 표정에는 여유로움과 인자함이 묻어나왔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미국식 teaching방법인가라는 생각도 잠깐 들기도 했지만, 이내 저는 제가 기독교에 가지고 있던 제 생각들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저의 얘기를 끝까지 다 들으신 교수님의 말씀을 정리하자면, 제가 가진 생각들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전부가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한 계획을 이미 가지고 계시며, 마지막으로 제가 하나님을 영접할 것을 확신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흠….글쎄요….’
저는 참 고집이 셉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는 아닙니다. 사람들 말은 경청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말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이미 저의 생각은 서있기 때문이죠. 제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제가 판단하기에 옳던가 아니면 저의 생각과 같던가 둘 중의 하나일겁니다. 물론, 교수님 말씀은 경청했습니다. 하지만,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을 통해 제가 느꼈던 것은 ‘이 분 내공이 보통은 아닌 걸’ 그리고 ‘기독교가 제가 생각했던 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마도 이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과의 첫 만남을 이후로 첫 학기가 시작되면서 교수님을 뵐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기가 종반으로 향할 무렵 교수님과 또 다시 운명처럼 재회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짐은 혼자 짊어진 상태로 말입니다. 미국에서의 첫 학기는 정말 혹독했습니다. 영어란 것이 간단하게 생각하자면 그저 언어의 한 종류일 뿐이지만, 미국에서 영어를 언어로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 그 이상이었습니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며느리 냉가슴 앓듯,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Syllabus에서 제시된 과제를 제출하기에도 버거운데, 수업시간에 주어지는 과제는 왜 그리 많은지…..하지만, 문제는 과제의 양이 아니라, 언제 교수가 과제를 내주었는지 한 번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수업시간에 미국 친구들은 어김없이 과제를 제출했지만, 저는 혼자 멀뚱히 바닥만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저의 due date은 항상 그 다음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이러기를 수 차례 반복하는 동안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됩니다. 그룹 프로젝트를 위해서 수업시간 동안 group discussion을 하고 그 날 오후 도서관에서 모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저는 낮 잠을 자다 약속시간에 9분을 늦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도서관 로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서관을 뒤져볼까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를 놓고서 한 참을 망설이다 저는 결국 혼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도서관을 이 잡듯이라도 뒤지던가 그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을테지만, 그 때 저의 상태는 중증 영어 장애로 학교에서 장애인 퍼밋을 받기 직전이었습니다 또 그로 인한 자심감 상실 및 대인기피증(물론 미국인에 한해서 입니다만)은 점점 더 저를 위축시켰습니다. 다음날 수업시간은 발표로 진행되었습니다. 앞의 그룹들이 발표를 다 마치고 저의 조가 발표를 준비하는 동안, 저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위에 적힌 저의 이름을 보았습니다. 조원들이 모두 앞으로 걸어나가는 동안 저는 오히려 뒤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조원으로서 기여한 바가 없으니 점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짧은 영어로 또 직설적으로 내뱉은 저의 영어는 그 할머니 교수님을 자극하기에 딱이었던 것 같습니다. 돋보기 안경을 코 끝에 걸치고 그 너머로 저를 쳐다보던 그 차가운 눈빛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저는 혼자 거울을 보고 삭발을 감행합니다. 제가 너무 바보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가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또 결심합니다. 영어가 될 때까지는 시리얼만 먹겠다고……
한 달 무렵이 지날 즈음, 도서관에서 우연히 교회 소그룹 성경공부를 같이하던 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는 다녔지만 한국 유학생 사회의 특성상 참여하는 사회활동 일환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 형이 저의 머리를 보고 놀라면서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저는 행간의 얘기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 형님이 교수님을 한 번 뵙고 상의 드리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형과의 대화가 다 끝난 후 저는 약속도 없이 교수님 연구실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역시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교수님도 제 머리에 흠칫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또 다시 교수님께 모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의 첫 말씀은 “준석아!, 우선 밥부터 먹어라.” 였습니다. “밥을 먹고 힘을 내야 공부도 하는 거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을 마주하면서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로 눈물을 훔치지는 말자’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오늘 여기에서 또 한 참을 울겠구나……’라는 생각말입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는데 정말 하염없이 나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석이 너를 참 사랑하시는가보다!” 어금니를 악다물고서 참으려고 했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더군요. 서러웠는지, 답답했는지, 혹은 억울했는지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터지는 눈물을 의지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 시간 이 곳에서 또 여러분앞에 서있다고 해서 억지로 하나님을 끼워맞추기는 싫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하기는 더욱 싫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그때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고 생각하지 못했고, 또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려야 할 것은 유학생활 시작 후 그런 평안함은 처음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수님과의 만남은 종종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도움으로 첫 학기를 마친 후 두 번째 학기를 보내는 동안 저는 또 한 분과의 귀한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학업 이외에 집안문제로 고민하던 와중에 같은 교회에 계시던 집사님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나게되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지만 그 때는 그저 스처지나는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어서 저의 문제를 들어주신 집사님께서는 저와의 일대일 성경공부를 제안했습니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서야 모든 일이 원만해질 것이라는 집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주 토요일 늦은 저녁 4시간을 성경공부에 할애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께서 내시는 그 시간은 훨씬 더 귀했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박사과정 논문 proposal을 앞두고 정말 바쁜 시간을 보내시고 계셨는데, 선뜻 4시간을 내어주신 집사님께 예의를 지킨다는 생각에라도 성경책을 펴고 예습을 했습니다. 본문이 4과를 지날 무렵, 질문 중 “당신은 하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4주를 지체했던 기억이 납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그 때 느껴본 듯 합니다. 4 주가 지난후에서야 자의반 타의반으로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크게 변한 것이 있었을까요? 저는 분명한 확신같은 것을 느껴보기를 원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짧은 대답 이후로 제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저의 관점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답이후에도 기독교에 대한 저돌적이고 냉소적인 저의 질문들에 항상 성실히 또 시원하게 답변해 주시는 집사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반기 방학이 끝날때까지 성경공부는 계속되었고, 성경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본인의 경험을 나누며 같이 고민해주시던 집사님의 모습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공부가 끝나갈 무렵부터 가지게 된 생각 ‘내가 기독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가 기독교를 혹은 기독교인들을 판단할 자격이 없구나’라는 것이없습니다. 철옹성 같던 저의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단 1년 사이에 단 2명에 의해서 거의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무렵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에게 결혼 후 미국에 오게되면, 같이 교회에 다닐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여름 방학동안 한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면서 저는 다시 성경과 교회에서 멀어지게됩니다. 교회를 나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들이 불현듯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내 외면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또 지금의 아내와 결혼 준비에 몰두하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미국에 돌아온 후 저는 저로서는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하게됩니다. 블루밍턴에는 매주 목요일 찬양 모임이 있는데, 계속 나와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대놓고 무시하며, 학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일 년동안 한 번도 참석하지 않고있었습니다. 새 학기가 3분의 1선을 지나갈 무렵,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갑자기 목요 찬양 모임에 나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공부가 따분해서였는지 계속 모임의 참석을 권유하던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었는지 전혀 종잡지도 못했지만, 그저 그곳에 가봐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찬양 모임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울기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일어나 찬양을 드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 흐느껴 울기만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또 죄로 가득찬 저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에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또 그때까지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니며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계획하신 시간표중 일부임을 느끼며 저는 제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제가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제가 보낸 지난 세월은 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삶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였으며, 저의 고집불통 자존심은 손에서 놓을 수없는 저만의 성경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을 것이란 죄송함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함에 또 이제껏 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신 그 끊없는 인내함에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3년간의 유학생활을 뒤돌아보면 인내와 겸손을 배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시간이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에서야 교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준석이 너를 참 사랑하시나보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영어의 문제로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영어를 못해서 답답합니다. 돈의 문제로 힘이 듭니다. 통장의 잔고가 하나도 없어서 아내와 16년 된 중고차를 팔아야 할지를 의논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자만심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제가 머리가 나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다음 수업에 제출해야 할 숙제도 알아듣지 못해서 또 Incomplete을 받으면서 힘이 들었습니다. 저의 고집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만 밀어붙이면서 깨지고 박살이 나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들은 하나님안에서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들이 주님의 축복이고 주님의 은혜이고 주님의 계획임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제가 저를 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또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겠지만 주님과 함께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할 따름입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 생각하려고 합니다. 더 느끼려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고 한 번도 놓으신 적이 없으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