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희] 가족 요법 (Family Therapy): Caring Heart for Others

기독교사 리포트


가족 요법 (Family Therapy): Caring Heart for Others


처음 미국에 와서 도저히 이해 되지 않고, 문화적 충격 이었던 것이 있다면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미국의 가정 생활이었습니다. 제가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주위에 있는 친구들만 보아도 원만한 가정-양쪽 부모님이 계신-에서 자란 친구들 보다는 기독교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이 이혼하여 편 부모와 함께 혹은 친척들이나 조 부모님들과 함께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어 가면서 사는 친구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아도 제 클래스의 90%의 아이들은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대 부분이고,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란 아이들 보다는 결핍과 학대로 상처 받은 아이들이 더 많이 있다 보니, 그 아이들은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저의 학급에 D라는 학생이 있는데, 그 아이는 매일 아침에 저를 보면 얼마 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난 Mr. Roger가 그의 TV 프로그램 Mr. Roger’s neighborhood에서 부르던 노래 한 곡을 부릅니다.

It’s a beautiful day in this neighborhood,
A beautiful day for a neighbor.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It’s a neighborly day in this beauty wood,
A neighborly day for a beauty.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I’ve always wanted to have a neighbor just like you.
I’ve always wanted to live in a neighborhood with you.


So, let’s make the most of this beautiful day.
Since we’re together we might as well say: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Won’t you be my neighbor?
Won’t you please,
Won’t you please?
Please won’t you be my neighbor?


D라는 학생은 이 노래를 저에게 와서 부를 때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Please won’t you be my neighbor” 이라는 가사 중 ‘mine’ 이나 ‘neighbor’ 라는 단어 대신 ‘mother’ 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부릅니다. “Would you be my mother? Could you be my mother? Please won’t you be my mother?” 이렇게 말입니다. 처음에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저는 너무 재미 있어서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의 엄마가 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할 때에도 계속 웃고만 있었더니, 제가 대답을 안 하면 계속 노래만 할 거라고 하여 결국은 “Yes”라고 대답 했답니다.


그 아이의 아빠는 감옥에 가 있고, 혼자서 두 남매를 키우면서 사는 엄마는 생계 유지에 허덕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적인 여유 조차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가정 환경 뿐만 아니라 그에게 기대하는 엄마의 생각에 저는 더욱 놀랐습니다. 그의 엄마는 아들인 D가 워낙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키는 정서 장애 아동이다 보니 아예 포기하고 이미 초등 학교 2학년 때부터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 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소년원에 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학습적인 면을 보면 그렇게 장애를 가진 아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그의 원만하지 못한 가정 생활로 인해 그가 정서 장애 아동이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또 한 몇 달 전에 이코스타에서 소개한 알코올 중독 엄마의 가출로 다른 엄마를 필요로 하는 B 라는 어린이는 한 동안 새 엄마가 있었으나 학대와 구타를 당해서 힘들어 했습니다. 결국 싱글 인 저에게 자기 아빠와 결혼하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답니다. 제가 보기에 청교도 정신에 세워진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의 가정은 너무나 많은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혼율, 알코올과 마약 사용의 증가, 타락한 성 문화, 10대의 임신, 동성 연애 등등은 한 가정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런 가정 문제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태어난 학문이 바로 가족 요법 (Family Therapy)입니다. 사회의 기본이 되고 모범이 되어야 할 가정의 무너짐은 우리들에게 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가져와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담 (counseling)에 비해 가족 요법은 그 문제를 좀 더 폭 넓게 이해하고 함께 연구하려는 관점에서 치료 (Therapy)를 시작 합니다. 1950년대에 새로이 태어난 가족 요법이라는 학문은 그 역사도 짧은 반면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학문으로서 많은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철학 등의 다양한 학문들이 합쳐 져서 이루어진 가족 요법은 가족 서로간에 갖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회 복지 (Social work/ Social welfare)에 가까울 수 있겠고 문제를 이해하고 도움을 찾았을 때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정신 의학 (Psychiatric medicine) 에도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족 요법이 사회 복지 대학 내에 있는 학교도 있고 의과 대학 내에 있는 학교도 있으며 심지어 많은 신학교에서도 기독교 상담 학을 하면서 가정 사역에 관심 있는 목회자들에게 가족 요법(Family therapy) 자격증을 취득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그럼 이 가족 요법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자세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가족 요법의 기본 적인 개념과 우리 기독교 세계관이 많은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가족 요법을 통해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다 보니 .(Accept yourself the way you are.) 우리에게 처한 환경을 현실 그대로 받아 들인다. (Accept your situation the way it is)


만 약 우리 자신과 처한 환경을 부인하는 것은 어떤 문제와 갈등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가족 요법 치료사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 하기 때문에 각자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감옥살이를 한 요셉의 삶을 보면, 자신의 형제들로부터 시기와 질투 속에서 미움을 받고 결국 노예로 팔려가 수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 갔지만 그의 현실을 비관 하지 않고 언제나 꿈을 갖고 그 꿈을 현실화 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꿈이 이루어 진 이후에도 요셉은 형제간의 우애를 변치 않으며 살아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 크리스천들도 요셉 처럼 자신에게 처한 고난과 아픔 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가족 요법을 통해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Understanding others and their life situation)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의 환경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가족 요법 치료사들은 심리극 (psychodrama)과 같은 방법들을 도입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앞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 시키는 역할을 먼저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큰 다른 점이 있다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순결한 섬김을 통해서, 특히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면서 온 인류의 영혼 구원까지 책임지신 그의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남을 사랑으로 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잘 이해해 주시는 첫 번째 role model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각자 자라온 환경, 즉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Understanding of diversity)


가족 요법 치료사들은 사람들의 자라온 환경을 비롯해서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이해할 때 그들의 문제점과 갈등해소 방법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얼마나 상대방을 향해 마음의 문이 열려 있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 과정에서 치료는 시작된다고 보는데 예수님께서도 어떤 문제들을 갖고 찾아 오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받아 들이시고 치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양성의 이해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열린 마음 (Open mind)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3가지의 내용들을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에 적용해 봅시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와 여자가 부모님을 떠나서 한 몸을 이루어 한 지붕아래 살아갈 때, 자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알지 못 하고 자신에게 처해 있는 현실 (고난 혹은 어려움을 의미함)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상대방 (배우자, 자녀, 가족 구성원 모두)을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달리 성장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갈 때에는 반드시 어떤 문제를 갖고 살아가고 그 문제 해결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의 가족 관계 형태 (different structure of the family)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가 족 요법은 크게 근대적 가족 요법 (modern family therapy)과 현대적 가족 요법 (post modern family therapy) 으로 나누어 지고 이 두 가지 요법 안에는 대략 15개 정도의 요법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과 처한 환경에 따라 치료 방법 또한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법들이 사용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 (Caring Heart for Others)” 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족 요법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았는데 다음 달 이코스타에서는 여러 가지의 가족 요법들 중에 제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들을 소개할 까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최원영]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KOSTA 서평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필 립 얀시의 책을 소개하기로 작년부터 마음먹었다가 이제서야 소개하게 되었다. 그의 여러 저작들 중에서 두 가지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를 놓고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실망”보다 “은혜”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번 달에 소개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거나, 아니면 이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의 영문 판 제목 “What so amazing about grace?”가 말해주듯 은혜가 왜 놀라운지 묻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은혜가 빠진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 생활 중 은혜는 실종되기도 한다. 처음 믿기 시작해서 믿음이 새록새록 자라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믿음의 선배들이 종종 하는 말들이 있다. “처음에는 다 그래.” “꽃 믿음이야, 조금만 지나봐.” 얀시는 믿음의 선배나 후배나 동일하게 은혜의 바다로 들어 갈 것을 권유한다.


영국에서 열린 비교 종교학 회의에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찾아 토론에 들어갔다. 그들은 여러가지 답을 하나 씩 지워나갔다. 성육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이야기는 타종교에도 있다. 부활? 사자의 환생기사 역시 타종교에 있는 것이다. 토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C.S. 루이스가 방을 잘못 찾아 들어 왔다. “토론의 주제가 뭡니까?” 그의 질문에 동료들이 전세계 종교중 기독교만이 기여 할 수 있는 바를 찾는 중이라고 말하자 루이스가 답했다. “그거야 쉽죠. 은혜아닙니까?” (P49)


불교도,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모두 인간의 노력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가 없이 얻는다는 개념은 인간의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 은혜는 우리에게 어색하다. 은혜로 구원 얻고서도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의식에 시달린다. 은혜가 빠진 신앙생활은 재미가 없을 뿐 아니라 피곤하다. 내 힘으로 하는 신앙 생활의 피곤함, 이것의 정체는 무얼까?


내 생각에 위선의 해결방안은 완벽 아니면 정직 두 가지 뿐이다. 그러나 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기에 완벽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해결방안은 회개에 이르는 정직이다. 성경이 말하듯 하나님의 은혜는 살인, 외도, 배반 등 어떤 죄든 다 덮을 수 있다. 정의 상 은혜란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선은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가면이 떨어지면 위선이 은혜를 기피하기 위한 정교한 책략이었음이 밝혀진다. (P242)


얀시의 글의 특징은 ‘설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가지는 문제점들을 꼼꼼히 나열한 뒤 하나하나 독자와 함께 풀어 나간다. 자신의 경험과 간증을 등장 시킴으로 독자의 마음을 열곤 하는데 이 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헤럴드 형의 이야기는 은혜를 외면한 사람의 말로를 극명히 보여준다. 헤럴드 형은 얀시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동네에서 알게된 사람이다. 그는 도덕과 정치에 강박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의 개방 풍조로 인해 심판이 임한다고 믿었고 인종차별 개선정책에 불만을 품고 남아공화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얀시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평신도 설교자로 주일마다 심판과 정죄를 선포하던 그는 그의 집에서 포르노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순수세력과 불순세력으로 양분하다가 그 반경을 좁히기 시작했고 결국 자기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다 자기마저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책의 맨 끝에 얀시의 결론이 나와 있다. “세상은 은혜에 목말라 있다. 은혜가 임할때 세상은 그앞에서 침묵에 잠긴다.” (P333)


사족: 얀시의 또다른 책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역시 한번쯤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부르짖으나 들으시는 것 같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듯한 하나님께 실망한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저자의 욥기에 대한 단상, 그리고 그의 간증이 어울어져 있다.

[곽준혁] 로마를 꿈꾸는 나라에서 (1)

코스탄의 소리


로마를 꿈꾸는 나라에서 (1)


– 결과론에 대하여 (On Consequentialism)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예레미야애가 3:40)


들어가며


몇 해전 9.11테러로 수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이유없이 죽었을 때만 해도, 사건이 터지자 병원으로 달려가 헌혈하는 미국인들을 보았을 때만해도, 교회에서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며 미국인들과 함께 기도할 때만해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알카에다를 소탕한다며 쳐들어가서 부수고 뒤지고 할 때만해도 담담하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바그다드 시내 외곽으로 진입한 오늘 십 수년동안 억눌러 온 옛날 일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2003년 4월 5일에 쓰여졌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이후부터는 바울의 고백에 나오는 헛된 과거로 (빌립보서 3:1-16) 치부하던 일들이 뇌리를 스친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이 일들이 구태여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된 이유는 이때 제가 하나님이 중심 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과, 이 일들이 언젠 가부터 저도 모르게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일들을 기억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기만했던 시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만, 진지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한 세대의 고민을 통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각해 볼만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결과론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과론 (Consequentialism)


대학을 다닐 때 미국 유학은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신식민지 반봉건 사회냐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냐 하는 구성체 논쟁에서 민족민주전선 이니 민중민주노선 이니 하는 민주화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분단의 책임자요 개발독재의 후견인이요 제국주의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던 제게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또 바람직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아내도 박사과정에 있는 지금의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들은 자기기만이나 젊은 시절 철없는 생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론적 시각은 ‘현실’이나 ‘힘’만을 강조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도 이런 결과론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라크와 벌이는 일방적 전쟁이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타당한 명분과 절차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전쟁을 이끌고 있는 강경파든 여론을 두려워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온건파든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 을 폭군(tyrant)이라고 부를 때 사용하는 자유(freedom)나 해방(liberation)이라는 용어들은 영미전통에서는 동의를 수반하지않고 법률적 절차를 따르지않은 자의적 지배와 힘으로부터 자유, 즉 ‘비지배’ (non-domination)의 원칙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주권을 가진 다른 나라에 선제공격을 하면서 국제법과 절차를 무시했고, 전쟁이 시작될 그 때까지 한번도 이라크 사람들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미군과 영국군을 환영하는 이라크 사람들, 구호물자를 앞 다투어 가져가는 사람들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미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벌이는 전쟁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전쟁의 정당성은 단지 미국인들의 안전, 자기들이 상상한 위협(self-imagined threat)으로부터의 자유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석유를 놓고 독재와 타협하려 했지만 번번히 기만 당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말한다면 솔직하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미국이 주장해 온 국제화와 민주화의 세계적 흐름도 이 전쟁에 당위성을 부여하지는 못합니다. 전쟁 이후 경기부양정책이 실효를 거둘 것이라는 전망만이 그나마 솔직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히려 성경말씀을 자기 주장 속에 작위적으로 집어넣는 현 미국 대통령의 연설들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만듭니다 (“while almost every president has invoked a belief in God in some manner, Bush’s use of Scripture is notable because he has used it to help frame the stakes for possible war with Iraq” Chicago Tribune, March 2.)


모두가 결과론에 매달려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강경파는 이라크 재건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벌써부터 손을 쓰는 유럽의 강대국들을 소개하며 국제질서는 결국 승자에게 줄을 서서 떡고물을 먹는 것일 뿐이라는 (to jump on the bandwagon) 신현실주의 이론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온건파 정치인들은 안전을 갈망하는 중산층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전쟁이 단기간에 승리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결과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라며 비판보다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테러와의 끝없는 전쟁이 선포되었을 때부터 다문화주의 나 국제협력의 화술은 힘을 잃었습니다. 인권 단체들도 이왕 일어난 전쟁이니 빨리 끝내는 것이 좋다는 주장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 이라크가 실제 대량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2) 이라크 인들이 미국이 주도해서 세운 새 정부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3) 전쟁을 반대했던 강대국들이 이라크 재건에 참여하기위해 전쟁의 당위성을 뒤늦게 인정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일만 남은 인상입니다.


이런 결과론에 기초한 텔레비전 뉴스와 틈틈이 듣는 국방부의 발표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결과론은 어쩌면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sy)을 심리학적 언어로 위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폭력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일을 고뇌에 찬 결단인 것처럼 말하면서 우리는 종종 상황을 과장할 때가 있습니다. 개발독재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물리적 힘으로 질서를 잡고, 강제로 반대론을 잠재우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만든 그럴듯한 결과를 무조건 칭찬하는 문화입니다. 이런 결과론적 입장에서 본다면 가롯 유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완성하는데 가장 공이 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 그대로 예수님을 팔아 하나님의 말씀을 만족시킨 사람이었습니다. 너무나 극단적인 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어느 누구도 결과론에 입각해서 가롯 유다를 잘했다 칭찬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결코 결과로 정당화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인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로마 흥망 사 속의 기독교


미국에서 벌어지는 보수다 진보다 하는 논쟁에서 흥미로운 점은 로마에 대한 언급입니다. 미국이 로마 공화국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몇 차례나 농사를 짓다가 독재 관(Dictator, 6개월 임기로 위기 시에 선출되며 전시 미국대통령과 비슷한 지위가 보장되는 직책)으로 선출되어 위기로부터 국가를 건져내고 위기상황이 끝나자마자 미련 없이 농부로 돌아간 킨키나투스 (Cincinatus)를 존경했다는 것, 연방 주의자들 (the Federalist)과 이에 맞선 반 연방 주의자들 (the anti-Federalist)의 논쟁에서 로마에 대한 갖가지 해석들이 공공연히 나타나는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 정치인들의 활동이 로마공화국의 원로원과 민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연상하게 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선동적이라는 비난에 민감한 미국 정치인들의 모습을 볼 때 선동이라는 죄목으로 서로를 견제했던 로마의 귀족들이 생각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던 로마의 평민들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귀족과 벌이던 싸움을 포기한 것과, 미국 시민들이 많은 문제들을 접어두고 하나가 되어 전쟁에 몰두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로마보다도 더 로마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적이라고 자기들이 먼저 규정하고, 직접적인 위협도 없는 상황에서 쳐들어간 전쟁을 75% 이상이 지지하는 것은 11년 전의 걸프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도 놀라운 일입니다. 수천발의 폭탄이 터지는 바그다드의 야경과 미군 탱크가 진입하는 바그다드 전투상황을 프로농구와 프로야구와 동시에 시청할 수 있는 이 상황을 이제부터는 미국적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소위 ‘신보수’로 분류되는 정치인들 중에 로마의 멸망을 기독교때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적인 전투성, 견제와 균형에 기초한 정치제도의 역동성, 경쟁을 통한 탁월함을 덕(virtus)으로 추구하던 로마의 문화는 공화국이 몰락한 이후에도 계속 되었지만,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에는 차츰 변질되어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의 역사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말기, 중세와 르네상스의 초기, 그리고 니체의 자조적인 비난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인들이 현실을 회피하는 생활태도를 소위 ‘사색적 생활’ (vita contemplativa)이라며 비난했던 경우는 많습니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삶(vita activa)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비난을 하는 경우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나타나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쳐들어가는 이스라엘의 용맹성으로 신약에서 가르치는 사랑의 실천윤리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부시대통령이 “America is not soft!”라고 말할 때,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이 기자들에게 “we will see soon!”이라며 비판을 피해갈 때 혹시 이 지도자들에게 신보수의 생각이 미국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이미 자리잡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로마의 멸망은 기독교가 가르치던 사랑이라는 덕목이 아니라 무분별한 향락문화, 지도층의 부패, 그리고 가난에 허덕이던 하층민들에게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애국이라는 화 두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이런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는 어쩌면 기독교로 인해 멸망의 시간이 조금 연장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향락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양심이 상실되고,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지고, 지도층의 부패가 이미 상식이 된 로마에서 기독교인은 오히려 소금이요 빛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로마는 건강한 삶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패한 로마는 부패한 삶에 대한 집착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며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한다는 말이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꿈 속에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따가운 햇빛때문에 벌어진 땀구멍으로 최루탄 가스가 들어가서 온통 물집이 생긴 일, 가로투쟁을 가며 두려운 마음에 선배의 대수롭지않은 영웅담을 애써 기억해 내려고 한 일, 종로와 동대문 뒷골목을 이를 악물며 도망 다니느라 허리춤에 넣어둔 유인물들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일, 닭장차에서 친구와 함께 두들겨 맞은 일들이 꿈 속에 나타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어쩌면 힘(power)이 지배하는 권위주의를 무의식 중에 배웠을 수 있습니다. 혹은 독재에게 배운 나쁜 버릇들이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숫자에 기초한 싸움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는 오랜 시간동안 순간순간 소신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준 조용한 다수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이러한 과정을 모르는 세대에게 민주주의는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경쟁의 공간이나 제도일 뿐이고 권력만이 그 목표가 될 것입니다.


케이블 회사마다 기본에 공짜로 넣어주는 Fox뉴스에서 미국 중산층의 배타적인 애국심이 여과되지 않은 체 나올 때, 이 흥미위주의 뉴스채널에 기독교방송 책임자라는 사람이 나와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에서 모두 반 기독교 세력이었다’라는 말을 내뱉을 때, 이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비난하던 뉴스 진행자가 매 시간마다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전쟁소식을 스포츠 뉴스처럼 전하는 것을 볼 때면 여러 해 동안 미국에 살았지만 철저하게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보게 됩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식료품 가게에서 말을 걸어온 미국인이 전쟁이야기를 피하는 제게 ‘북한사람’이냐고 물을 때면 로마제국 말기의 기독교인들이 생각납니다. 다음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국인이라는 말과 함께 ‘기독교인’이라고 꼭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러 왔던 아니면 이민을 왔던 간에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이 예전 같지 않을 때에도 과정과 결과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그리스도인 들은 예전같이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번에는 애국심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김두식] 사법시험 이야기

어느 젊은 기독인의 초상


사법시험 이야기


얼마 전 <다니엘 학습법> 열풍을 비판하는 글이 <뉴스앤조이>에 올라왔습니다.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김동환 전도사님의 책이 이처럼 큰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자체가 결국 한국 기독교의 상향성 또는 업적주의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기독교 서점을 갈 때마다 베스트셀러 분야를 장식하고 있는 그 책을 보았지만, 제가 다시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사서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뉴스앤조이>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다니엘 학습법>의 중요한 메시지 중의 하나는 “완벽한 프로그램 하에 10분 단위까지 계산해 가며 학창생활을 하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김동환 전도사님과는 달리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어디에서도 완벽한 프로그램 아래 10분 단위로 계산하며 살지 못했던 저는, 시험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주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시험 때마다 운이 좋은 편이었고, 기독교적 표현을 빌자면 시험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 저에게 언제나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 알고 계신 것처럼, 예수 믿는다고 모두 서울대를 나와, 성공한 벤처 기업가, 판사, 검사, 의사, 교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무슨 요술 방망이가 아니니까요. 예수만 믿으면 마음에 드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선전하는 교회 지도자가 있다면 교회를 때려치우고 차라리 입시학원을 열어야 할 겁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고시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로 의미 있는 은혜란 나 같은 죄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실 자체를 말하는 것이지, 세속적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제 위에서 저의 부끄러운 고시 합격 이야기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식의 글은 아무리 조심해도 결국 자기 자랑이 되기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법시험이 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까닭에 그냥 빼먹고 넘어갈 수가 없네요.


1989년과 1990년은 저에게 여러 모로 절망적인 시기였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준비를 시작했던 사법시험은 대학을 졸업하도록 1차에도 붙지 못했습니다. 특히 4학년 때(1989년) 도전했던 시험에서는 총 320문제 중 단 1개 차이로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 등을 돌린 것 같은 느낌, 시험에 떨어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차가운 벌판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그 추운 느낌을 알고 있을 겁니다. 모두들 “저 자식은 별 능력도 없는 것이 사법시험을 하겠다고 폼을 잡는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떨어지는 것을 보니 돌대가리가 틀림없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법시험 한답시고 대학 4년 동안 외국어 공부라고는 해 본 적이 없으니, 고시 떨어지면 회사 취직도 어려울 것이 뻔했습니다. “내년에는 꼭 붙을 것”이라는 주변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험에 떨어져본 경험은 그것이 대학입시이든 사법시험이든 입사시험이든지 간에 인간을 성숙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군대 연기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무지막지한 공부를 몇 년이고 계속할 마음이 없었던 저는, 졸업 직후의 1차 시험에도 떨어지면 그냥 고시를 집어치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 혹시 1차 시험에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응시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그 불씨를 아예 제거하기 위해 대학원을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면 졸업 후의 1차 불합격과 동시에 군에 입대해야 했습니다). 제 인생에 가끔씩 써먹던 ‘벼랑 끝 전술’을 이때도 한 번 구사해 본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1990년 6월, 1차 시험에 합격했고, 1년 동안 입영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1차에 합격하고 막 2차 준비를 시작할 무렵, 오랫동안 사귀어오던 여자친구가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이성교제가 절단 나는 것 역시 성숙의 좋은 계기가 되지요. 요즘처럼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실연의 문제는 남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본인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유명한 영화 “유로파 유로파(Europa Europa, 1991년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의 원작이 된 솔로몬 페렐(Solomon Perel)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유태인임을 숨긴 채 소련의 소년단, 독일군 통역관, 히틀러유겐트(히틀러 소년단) 등을 두루 거친 뒤 고향으로 돌아온 솔로몬이 전해 듣게 되는 한 친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의 체스 친구였던 예르지크는 독일 점령하의 게토(유태인 집단거주지)에서 유태 공산당 지도자로 영웅적 투쟁을 벌인 끝에 소련군에 의한 해방을 맞이합니다. 예르지크가 나치 하의 게토에서 겪은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용소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그의 생명력은 그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를 보여주지요. 그런데 유태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그는 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고 그 아가씨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자,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어찌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나치 하에서 영웅적인 투쟁을 벌인 끝에 생존한 사람이 겨우 여자 문제로 자살을 하다니요.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실연은 젊은이들에게 그만큼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실연을 통해 인간은 성숙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는 것이지요.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실연을 통해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한 건 감사한 일이었지만, 두 달 정도를 책 한 권 읽을 수 없는 공황상태 속에서 허송하게 되었거든요. 그러고 나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이었고 2차 시험은 8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었습니다.


겨울바람과 함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으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의 인생에 그 때만큼 열심히 공부한 때도 없었을 겁니다. 12월호에 잠깐 이야기했었지요? 1986년 여름 UBF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가 가을에 그 분과 이별한 친구가 있다구요. 바로 그 친구와 함께 고려대 대학원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그저 하루 종일 교과서를 읽고 밑줄치고 이해하고 외우고, 또 읽고 또 밑줄치고 외우는, 그런 단조로운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남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같이 2차 시험을 준비하던 동료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모의시험을 쳐보아도 결과는 늘 꼴찌였습니다. 스터디 그룹 모임시간에도 워낙 아는 것이 없어 언제나 멍청하게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가끔 논쟁에 끼어 들어봐야 결론은 늘 제가 틀렸다는 쪽으로 났습니다. 남들이 잘 안보는 교수님들의 교과서만을 택해 공부한 탓에(남들이 좋다고 추천하는 교과서들은 도대체 저의 체질에 맞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늘 남들과 달랐고, 그렇다고 저의 논리로 남들을 설득할 실력도 없었습니다.


시험이 한 달쯤 앞으로 다가왔을 때부터는 모두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포기하는 친구들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즈음(1991년 6월 중순), 옆자리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저에게 행정법에 대한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너 혹시 이 문제에 대해 설명 좀 해 줄 수 있냐?” 그런데 그 때가 시험을 겨우 보름 앞둔 시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의 머리 속에는 친구가 질문한 문제와 관련된 지식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공부량의 절대부족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전혀 모르겠다. 그게 도대체 뭐냐? 나는 그 용어도 모르겠는데…”라고 제가 대답하자 친구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이거 이번에 나올 가능성이 높은 아주 중요한 거야. 그런데 아직도 이걸 모르면 어떻게 하냐? 집에 가서 책 좀 찾아보고 내일 같이 이야기해 보자”고 말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려는 고마운 배려였습니다. 그러나 시험 보름을 앞두고도 처음 들어보는 법률용어가 있다는 사실에 저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8개월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절대적인 공부량의 부족은 어쩔 수가 없구나. 어차피 떨어질 시험인데 이쯤해서 그만 두자. 내 실력으로는 사법시험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 대화가 오간 직후,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가방을 쌌습니다. 그냥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습니다. 시험을 눈앞에 두고 한나절이 천금같던 시기였습니다. 저의 심상찮은 변화를 눈치 챈 친구는 “야, 공부 좀 더하다 가. 너 왜 그러냐?”하면서 저를 붙잡았으나 저의 머리 속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집에서 쉬려고.” 가방을 들고 도서관을 나와 학교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아름다운 교정이었습니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고 있던 교정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석조건물들과 만발한 꽃들의 조화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저에게는 어울리는 않는 낯선 그림들이었습니다. 집을 향해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지날 때부터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왕 사법시험은 틀린 거고…. 빨리 군대를 가야겠다. 일단 군대를 가고 나면 결국 법조계와는 완전히 안녕이지만 어쩌겠나, 처음부터 내 길이 아니었던 것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공연한 욕심을 부렸나 보다. 실력이 없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줄줄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제1한강교를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소리를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분명한데 그렇다고 내가 내는 것은 아닌 소리, 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영상에 가까운 것 같은 느낌, 어쨌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마음의 소리였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네가 믿고 있는 것은 너 자신이냐? 아니면 나냐?”


그 순간 저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 내가 그동안 예수 믿는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과연 내가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서 내가 지금 절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차피 나 혼자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다. 그리고 이까짓 시험 안 붙는다고 내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을 얻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 날 밤은 집에 가서 여전히 마음속에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던 그 소리를 깊이 묵상했고, 다음날부터는 다시 학교에 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정된 상태에서 시험 전날까지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 음성은 이후에도 제가 불가능한 일에 부딪힐 때마다 마치 중요한 삶의 원칙처럼 저를 일깨우는 기억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사법시험 2차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렇습니다. 2차 시험은 논술식으로 하루에 두 과목씩 총 여덟 과목을 평가합니다. 한 과목당 50점짜리 큰 문제가 하나, 25점짜리 작은 문제가 두 개 출제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약 24문제가 되는 셈이었지요. 각 과목 100점이 만점이지만, 평균으로 보아 65점 정도만 되면 수석을 할 수 있고, 55점 정도만 되면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사법시험 2차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공부해야 할 범위가 엄청나게 넓다는 데 있습니다. 민법 한 과목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들만 해도 모두 합치면 3,000페이지가 넘습니다. 교과서들의 내용도 날로 깊이를 더하고 있어서 하루가 다르게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워낙 책이 두껍다 보니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쯤이면 처음 읽었던 부분은 모두 잊어버리게 되지요. 그래서 고시공부를 흔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표현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엄청난 범위 중에서 실제로 시험에 출제되는 것은 겨우 30-40페이지에 불과하다는데 있지요. 인간의 머리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엄청난 범위를 다 외울 수는 없고, 어차피 이해하고 잘 정리하고 최소한의 것만을 암기해야 하는데, 하필 자기가 간과한 부분에서 문제가 나오면 실패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법시험은 이른바 ‘운’도 많이 작용하는 시험입니다. 물론 공부를 전혀 안 한 사람이 시험에 붙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상당한 준비를 마친 사람 중에서 누가 과연 그 좁은 관문을 통과하느냐를 결정하는 데는 운도 많이 작용한다는 의미이지요.


여덟 과목 중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한 것은 형법이었습니다. 법대기독학생회 지도교수로 모시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김일수 교수님의 전공이 형법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지요. 그 다음으로는 헌법이 자신 있었고, 아마 그 다음이 민법 정도 되었을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2차 시험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그 결과 2차 시험에만 포함되어 있는 행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의 과목은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횟수가 3회 정도밖에 안되었습니다. 가장 자신 없는 과목은 민사소송법이었습니다. 시험 마지막까지도 저는 도대체 민사소송법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보름 전에 저를 절망시켰던 행정법도 비슷했습니다.


1991년 7월 마침내 시험 날이 되었습니다. 사법시험 2차 시험 현장의 모습은 조선시대 과거장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시험장에 들어가면 둘둘 말린 전지가 한 장 칠판에 붙어있고 그 속에 시험문제가 적혀 있습니다. 시험 시작종이 울리는 순간, 말려있던 종이가 쫙 펼쳐지고, 그 때부터 2시간동안 거기 적혀 있는 논제들을 정신없이 적어나가면 됩니다. 말려있던 종이가 펼쳐지기 전까지는 피 말리는 긴장감이 교실에 넘쳐나고 종이가 펼쳐지는 순간 교실에는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됐어”라고 자신 있게 소리치는 학생도 있고(이상하게도 이런 학생들 중에 낙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너무 좋아하다가 논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까닭입니다), 자기가 준비하지 않은 엉뚱한 논제에 넋을 잃는 수험생도 있습니다. 그 때의 긴장은 정말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2차 시험 응시 첫날, 국민윤리나 헌법은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주제가 나왔기 때문에 특별히 잘 쓰는 사람도 없고 못쓰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첫날 시험을 끝내고 출발은 그런 대로 괜찮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래도 둘째 날과 셋째 날 과목들이 모두 자신 없는 것들뿐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들은 둘째 날 시험부터 일어났습니다. 행정법부터 시작해서 두루마리가 펼쳐지는 순간마다 저는 저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신기할 정도로 제가 시험 직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한 부분에서 문제들이 출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민사소송법은 제가 시험 준비기간 동안에 한번도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는 부분에서 큰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그것도 역시 시험 바로 직전에 제가 화장실에서 읽고 들어간 내용이었습니다. 아마 시험 직전에 읽지 않았더라면, 두 페이지도 제대로 적지 못했을 문제였습니다(보통 큰 문제는 여덟 페이지 정도 적어야 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께서 매일 시험시작 30분전에 학교 교장실 문을 걸어 잠근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가 다른 것은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우리 아들이 지금 보고 있는 바로 그 부분이 시험에 나오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다운 순진한 기도였고, 저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큰 문제는 직전에 본 것’이, ‘작은 문제는 원래 잘 아는 것’이 나오다 보니, 셋째 날 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는 합격을 자신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의 형법은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던 과목이었고, 형사소송법도 다른 과목들에 비해서 위험부담이 적은 과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시험이 저의 힘으로 붙게 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의 형법은 예상했던 것과 여러 모로 달랐습니다. 문제 뜬 것을 보고 자신만만하게 답안지를 채운 다음 여유 있게 시험장을 나섰습니다만, 쉬는 시간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가 논점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작 적어야할 논점에 대해서는 한 줄도 적지 못했던 것이지요. ‘오, 하나님, 저를 이렇게 실패하게 만드실 거라면 어제까지는 왜 그렇게 저를 도와 주셨습니까’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사법시험에는 과락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단 한 과목이라도 40점 이하의 점수가 나오면 무조건 떨어지게 되어 있답니다. 따라서 나머지 일곱 과목을 아무리 잘 쳤다 하더라도 형법 한 과목이 40점 밑으로 나오면 설사 나머지 점수를 합산한 것이 수석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떨어지는 것입니다. 오후의 마지막 형사소송법 시험을 뭘 적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때우고 나서 시험장을 터벅터벅 걸어 나오자니 제 입에서는 한숨만 흘러나왔습니다.


바로 그 때, 저는 다시 한번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번 것보다 한결 간단했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


마치 선언과 같은 짤막한 문장이었습니다. 언젠가 들어보았으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감격이 몰려왔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왜 이렇게 이런 소리가 자주 들리나. 혹시 내가 마음속으로 혼자 상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도 생겼지요.


그런데 그 날 밤에는 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사법시험 끝나는 날이 금요일이었기에, 저는 감사 기도를 드리러 교회 철야기도 모임에 나갔습니다. 나흘 동안 거의 한 잠도 자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는데 어떻게 철야기도 나갈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신기합니다. 어쨌든 그 날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목사님께서 막 설교를 시작하시는 중이었습니다. 본문은 이사야 43장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의심 많은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설교 내용은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너는 내 것이라”라는 말씀에서만 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낮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물론 이 신기한 현상을 그저 우연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고시 공부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이상심리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날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것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의 예수전도단 전도학교에 이어 또 한 번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철야기도 이후 저는 이사야 43장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배경은 물론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국가를 향한 것이었지만, 저에게는 ‘물 가운데로, 불 가운데로’라는 말씀이 더하고 뺄 것 없이 제 인생을 향한 위로의 말씀이라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제 글을 읽어 오신 분이라면 제 삶에 영향을 준 몇 가지 사건들이 하필 물이나 불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시험 발표까지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은 학교에서 예수전도단 신입생 후배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 후배들이 “결과가 어찌될 것 같으세요?”라고 물어보면 “붙으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고, 떨어지면 실력 없어 떨어진 것이니 별로 걱정 안 해”라고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험 붙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어차피 이미 하나님의 것이 된 사람인데 그까짓 시험에 떨어진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는 배짱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함께 성경공부를 했던 신입생 가운데 고환경, 권대식 두 후배는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로펌에서 일하고 있고, 윤유덕은 보험회사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옆에서 지켜보던 1년 후배 류기인은 벌써 몇 년째 검사로 일하고 있지요. 선교단체 출신들 치고는 비교적 특이한 길을 걷는 무리들이 생기게 된 셈입니다.


그 해 가을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에는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성적도 아주 우수한 편에 속했습니다.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결과였습니다. 각 과목의 성적은 그 좋은 결과가 제 실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가장 자신 없어하던 과목부터 시작해서 평소실력과는 완전히 역순으로 점수가 나왔던 것입니다. 가장 자신 없던 민사소송법과 행정법에서는 70점이 넘는 경이로운 점수를 얻었고, 가장 자신 있어 하던 형법은 47점으로 간신히 과락을 넘겼습니다. 형법 과락자가 너무 많아 형법 점수를 전체적으로 10점씩 올려주었다는 뒷이야기가 수험가 주변에 흘러나온 것을 보면 원래 저의 점수는 37점으로 과락에 해당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시험결과 앞에서 정말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4학년 때 아까운 점수로 1차에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신 하나님의 사랑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학년 때 1차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 해 가을 동안 헌법, 민법, 형법의 기초를 충실히 다질 수 있었고, 덕분에 2차 수험기간이 너무나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참고로 4학년 때 1차에 합격했던 저의 동기들은 다음해 모두 2차 시험에 낙방했습니다. 그해 1차에 합격했더라면 저도 아마 그 대열에 동참했을 겁니다)


저는 그런 기적적인 과정을 통해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니까, “실력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다니면 어떻게 하냐? 변호사 영업에 지장 있잖아”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사실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제 인생에는 그보다 더 큰 기적도 많았지만, 오늘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사법시험 이야기를 한 번 해 보았습니다. 물론 저의 글을 읽고 하나님이 그저 기도하면 시험이나 붙게 해 주는 그런 분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할 수 있는 분이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제가 느낀 점 몇 가지를 나눠보겠습니다.


첫째는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저는, 그 메시지에 알게 모르게 담겨 있는 인과응보의 논리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믿음도 하나님 앞의 어떤 ‘행위’로 해석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이 있어야 축복이 뒤따른다는 논리가 그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은혜는 그 누구의 행위보다 앞선 것이며 거기에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믿음으로 부르심에 순종했다 해도, 그 순종보다 앞선 것이 부르심과 은혜였습니다. 부르심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축복은 시작된 것이고, 왜 하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저 은혜일뿐입니다. 저는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에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왜 여러분에게도 그런 음성을 들려주고 계신지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왜 나를 부르시고 복 주시면서, 내 친구에게 그런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는지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걸 자꾸 설명하려고 하고, 그건 “김두식에게 이러저러한 믿음과 선행과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 해석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엇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저런 은혜를 부어주신 것은 결코 제가 남보다 하나님을 잘 믿었거나 정직하거나 신실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먼저 저를 사랑하셨고, 제 필요를 아셨고, 그걸 채워주신 것일 뿐, 제 쪽에서 원인을 찾을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둘째로, 어떤 시험이든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력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조차도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대해 보이는 시험 앞에 지레 겁을 먹고 시험장에 가기도 전에 싸움을 포기합니다. 저도 아마 시험 보름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분명히 시험을 포기했을 겁니다. 시험을 포기하고자 하는 기독인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웃기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아무리 여러분이 지금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 부분에서 문제가 안 나오면 그만’이라는 사실입니다. 시험을 준비하다보면 왠지 내가 잘 모르는 그 부분에서만 문제가 나올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도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전 날의 기도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험 합격 전 날 저는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판검사, 변호사 아무 것도 안 해도 좋으니, 제발 시험만 붙게 해 주세요. 고시 공부하는 동안 저의 인생은 마치 벌레와도 같았습니다. 이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시험 좀 붙게 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만약 저를 시험에 붙여주신다면 저는 앞으로 평생 동안, 저하고 함께 시험을 쳤지만 합격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만큼의 평균적 부와 명예만을 누리며 살겠습니다. 시험에 붙더라도 마치 시험에 붙지 않은 것과 같은 마음자세로 살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올리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험에 붙게 되더라도 어차피 제 실력이 아닌 순전한 은혜로 붙게 된 것일 텐데, 그 추가적 열매를 제가 다 누리고 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제가 잊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은 이 결심 하나였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둘 때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지만, 저는 그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얻은 열매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제가 그 결심을 지킬 수 있도록 잘 인도해 주신 것 같습니다.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대학 동창들 중 사법시험에 실패해서 다른 직장에 진출한 사람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저보다 많은 수입을 올리며 살고 있으니까요.^^


사실 살아오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전 날’의 경험을 갖기 마련입니다. 대학 합격자 발표 전 날, 입사시험 합격자 발표 전 날, 사랑을 고백하기 전 날, 중병 진단 결과를 알기 전 날 등등. 그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저런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를 알게 되어 환호성을 지르게 되지요. 동시에 ‘그 전 날’의 결심들은 눈 녹듯이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일단 하나의 관문을 뛰어넘고 나면 그 모든 것이 다 자기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법조계라는 하나의 분야를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법조계에 진출한 사람들 모두, 아니 기독교인으로 법조계에 진출한 사람들만이라도 ‘그 전 날’의 기도와 결심을 잊지 않았다면 우리 법조계가 이렇게 이상한 모습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렵지만 ‘그 전 날’의 기도와 결심을 잊지 않는 게 저나 여러분들이 행복을 누리며 사는 지름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 껏 시험 하나에 합격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적었군요. 미숙한 제가 누려온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작은 경험이, 지금 절망 가운데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제 부족한 글 솜씨를 생각하면, 제 글을 읽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이나 안 생기면, 그 자체로 은혜겠지만 말이지요.


(*편집자 주) 2002년 9월부터 월간지 <복음과 상황>과 eKOSTA가 기사 제휴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역사와 사회를 조명하는” 복음주의 정론지 <복음과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복음과 상황> 홈페이지 (http://www.goscon.co.kr) 나 이메일 goscon@chollian.net 로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섬김을 배우는 가정 생활 / 김철민

이코스타 2003년 5월호

eKOSTA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미래의 가정을 꿈꾸는 코스 탄들과 이미 가정을 갖고 살아가는 부부 코스 탄들이 현재 안고 있는 가정의 문제점들을 찾아 보고 하나님 안에서 해결책을 찾음으로써 세상 속에 순결한 가정을 만드는 것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정 사역 전문가이신 김철민 장로님을 모시고 여러 가지 좋은 조언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참여해 주셔서 감사 드리고 우선 장로님 자신의 소개를 해 주세요. 미국에는 언제 오셨고, 오신 목적, 가족 관계, 지금 하시는 일, 특히 가정 사역을 하시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철민 네, 저는 연세 대학교에서 물리학 석사 학위를 하고 1975년에 박사 학위를 위해 미국에 와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전자 공학을 공부 하게 되었고 지금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니는 직장은 미 국방성의 미 공군 우주 방위 산업 연구소인 The Aerospace Corp 입니다. 가족 관계는 2남 1녀가 있는데 큰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신학교에 다니고 있고 딸도 대학 졸업 후 학교에서 일하고 있으며 강의도 합니다. 막내로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정 사역을 하게 된 동기는 1989년에 L.A.의 CCC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 한국에서 가정 사역을 담당하시는 장로님 부부가 CCC Staff과 함께 부부 세미나를 실시 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우리 가정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별로 큰 소리친 기억도 없고 이혼하겠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CCC 책임자께서 권하시고, 배우면 사역에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마침 힘들어 하는 선배 부부를 도와 함께 간다는 마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첫 시간부터 눈물을 흐리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불행하지 않은 것이 행복하다고 착각을 하고 산 것이었습니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사역은 미주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분들과 함께 준비하며 자체 세미나를 실시하고 그 이듬해에 LA에서 CCC 새 가정 세미나를 35쌍을 모으고 시작 했습니다. 이 세미나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혼 직전에 있었던 가정들이 회복되어 가는 등 주 안에서 변화되는 가정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저희들이 또 하나 느낀 것은 결혼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결혼 생활에 대해 미리 배우면,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 이라는 확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참가한 부부들도 20여년간의 무지로 어려웠던 결혼 생활을 무엇으로 보답하겠느냐 면서 결혼 전에 미리 알고 결혼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91년에 결혼적령기에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결혼교실을 제가 책임을 맡고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한번에 50여명 정도씩 7주간 동안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 결혼 교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이 사역 자체가 점점 확대 되어서 CMF 선교원 (Christian Marriage and Family Ministries)을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CMF 사역에는 결혼 선교원, 가정 선교원, 그리고 특수 선교원으로 세 가지 선교 원이 있는데요. 결혼 선교 원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크리스천 젊은 청년들이 만나 교제를 할 수 있게 하고, 가정 선교원은 부부 교실, 아버지 교실, 아내 교실, 사모 교실들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훈련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은 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 아래 특수 선교원을 통해 입양 사역, 장애인 사역, 홈 리스 (Homeless) 사역을 비롯해서 선교사 가정을 돕고 더 나아가서는 선교사 파송 사역까지도 하게 되었지요. 개인적으로는 부부 세미나 강사로 여러 나라에 다니고 있습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사회 각 지역에서 하시는 사역들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그 자체에서 시작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가정은 사회의 기본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아름 다운 가정을 가지기 위해서 싱글 코스 탄들이 하나님 안에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시대가 변하듯 젊은이들의 결혼관도 변한다고 하는데요, 기독교 청년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결혼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김철민 Charles Shedd는 “결혼은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내가 먼저 올바른 배우자로 준비를 하게 되면 맞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원칙으로 하여 결혼이란 것에 대해 바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미나를 하면서 결혼의 정의를 물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답을 못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결혼은 둘이 하나 되는 것이다’ 라고 정의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구하면서 나의 반쪽을 구한다고 하는 데 제 생각은 반쪽이 아니라 미완성의 완전한 다른 하나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수학적으로는 1+1=1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Two become one).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창조하셨지만 우리의 죄 때문에 온전치 못함으로 결혼을 통해서 서로 보안하여 둘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 결혼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24-25절에 보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찌어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벌거 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니라.” 라고 하는 말씀에서 배울 수 있는 네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를 떠나는 것이고, 둘째, 연합이 되는 것이고, 셋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완전한 친교인데 이 과정의 순서가 매우 중요하고 연합과 둘이 하나 되는 것을 많이 강조 하는데, 이 연합은 풀칠하는 것과 같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하여 Commitment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고 결합하는 것은 Oneness가 이루어 지는 것인데 이는 서로가 서로를 보안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 보안을 위해 남녀가 각각 갖고 있는 사랑 이라는 Tool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한 것 같이 사랑하는 것이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 같이 순종적인 것인데, 그래서 사랑과 순종이 조화가 이루어 질 때 둘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KOSTA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공부에 전념하여 결혼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뭐 어떤 분들은 공부 하시면서도 연애 사역을 잘 하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 못 한 분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의 대부분은 혼기를 놓쳐서 그냥 자포자기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 이 분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철민 우선 혼기 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고 일반적 혹은 사회적으로 볼 때 결혼의 적령기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맞는 혼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할 때가 바로 그 사람에게는 적당한 혼기가 아닐까요? 저는 많은 사람들이 타 문화권에 살면서 늦게 결혼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선 포기하지 말고 결혼을 위해 기도로서 준비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지금까지 결혼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했으나 이루어 지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생각 합시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동시에 나의 배우자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문제는 내가 준비 되지 못 했기 때문이며, 만약에 준비 되면 하나님의 때에 만나게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여기에서 “준비” 라는 것은 나의 준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준비를 의미합니다. 물론 독신의 은사를 받은 분들도 더러 있지만, 결혼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제도 이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결혼을 준비한다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eKOSTA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해야 할까요? 보통 유학생들이 배우자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서도 여러 가지 조건을 많이 따지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는데요,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배우자 선택은 어떤 것일까요?


김철민 물론 이 문제가 쉽지는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 보다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어떤 분인지 기도로서 알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배우자를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기도를 드리는데, 그 기도를 드리면서 해야 할 일은 로마서 12장 2절에 있는 말씀처럼 (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을 때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순종할 수 있겠지요. 그 경건한 사람들이 우리의 부모님이나 목사님들, 혹은 맨토 (mentor)들이 있는데 이 분들로부터 역시 좋은 조언을 듣고 결혼을 결정하게 된다면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하는 근거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인데, 내가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계획과 함께 나와 내 배우자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때 (Right time) -내가 준비 되었을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준비 되었다는 것은 내 마음의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것인데,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맞는 사람을 보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배우자를 원하는지 list를 만들어서 기도하는데 그렇게 기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씩 하나 씩 정리 시켜주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이렇게 계속 정리 하다 보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등이 남게 되어 자신의 리스트는 축소 되어 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 게서 원하시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싱글 코스 탄들의 배우자 선택과 결혼관에 대해서 알아 보았는데요. 이번에는 지금 현재 가정을 갖고 함께 공부를 하시는 부부 코스 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지요. 보통 부부 코스 탄들이 함께 공부를 하다 보면 가사 문제, 아이가 있으신 분들은 child care에 문제를 겪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학을 와서 공부하시는 기독교인들 중에도 한국의 가부장적인 유교 사상 때문에 아내가 가사일과 child care를 담당하고 공부를 하는 남편을 도와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아내 역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서 이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아 부부간의 갈등으로 이어져 나중에는 가정 불화로 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시는 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진 남편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고, 또한 바쁜 생활 가운데 가사 분담과 학업의 일을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지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김철민 비록 기독교인들이 되었더라도 가부장적인 전통은 유교적인 사상과 우리의 부모님들로부터 영향 받았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보통 남성들은 아버지를 모델로 삼고 여자들은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대가 달라 졌습니다. 아버지가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어머니는 자녀 교육하던 시대가 아니라 부부가 모두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해야 하므로, 서로가 가사의 일을 분담해서 해야 합니다.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에서는 남자가 가장으로 리더십을 가지고 아내는 영적으로 남자가 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돕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만 생활면에서는 서로가 돕고 살아야 합니다. 집안일을 나누어야 합니다. 남자가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아이를 돌볼 수 있고 여자가 밖에 나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먼저 공부하고 아내가 나중에 할 수도 있고 아내가 먼저 공부하고 나중에 남편이 할 수도 있습니다. 가사분담이 서로가 의논해서 시간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이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영적인 부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남자와 여자와 역할은 변함이 없지만 사회적인 생활 문화 부분에서는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eKOSTA 네 결국은, 처음에 이야기 하신 것처럼 서로 섬기면서 함께 하는 경우인 것 같네요. 그런데, 이렇게 같이 공부하시는 코스 탄들이 있는 가 하면 어떤 분들은 성공 지향적인 남편을 따라서 미국에 오게 되어 남편은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가정은 아내에게 맡겨 놓고 자신의 학업에 전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의 학업을 뒷바라지 하느라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미국에서 아내는 cultural shock 을 겪으며 살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 (Self-identity) 에 대해 심한 갈등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간에 많은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럴 때 성경적인 아내와 남편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김철민 우선 배우자 분들이 문화적인 충격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셨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감사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크리스천은 기독교 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의 삶 속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가정을 설립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찾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고 그 순종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섬기는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삼각형의 원리처럼 아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남편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신앙으로 이런 문제가 극복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 된 분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정말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갈등이 생기기 전에 우선 내가 신앙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고 남편을 주님께 섬기듯 하면,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느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eKOSTA 배우자 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이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시 성공 위주의 생활 속에서 실패를 경험할 경우 그 성공 지향적 가치관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서 가정이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성공을 한 후 금의환향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유학을 왔는데, 자격 시험등에 실패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할 경우,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관계를 망가뜨리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아니면 유학생활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학생인 배우자를 따라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는데, 막상 생활 속에서 닥쳐보니 너무 어려워서 그 환상은 다 깨지고 결국 배우자에 대한 불만과 비난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유학생활의 문제들, 성공지향적 가치관, 경제적 어려움, 장래에 대한 불안, 공부에 대한 압박. 이런 것들이 가정에 투영되면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만들어 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복음 안에서 서로에게 요구하는 부부생활이 아닌, 서로를 섬기는 부부 생활로 근본적인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 져야 하는데, 그 가치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고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나요?


김철민 우리가 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얼마든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가 주신 능력으로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게 될 때에 그 분은 우리를 도와 주시게 되는데,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도 미국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부족한데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니까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느끼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특히 공부를 하다 보면 너무나 어려운 나머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서로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으나 좀 더 성공적인 크리스천으로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줄 떼에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eKOSTA 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일이 쉽지가 않지요? 비록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의 생활에 적용한다는 것이 많이 힘듭니다.


김철민 네. 그래서 코스타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 가지 좋은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배울 수 있으니까요.


eKOSTA 지금까지 너무나 좋은 말씀 해 주셨는데 마지막으로 코스타에 바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해 주세요.


김철민 유학생 들이 어렵고 힘들 때 말씀으로 위로 받고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고 특히 한국에서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특히 코스타에 와서 예수님 영접하고 주님의 길을 가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한국에 돌아가셔서 평신도 사역자로서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증거 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며 코스타 사역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학생들간의 networking을 하셔서 유학생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고 그들의 영적 성숙을 도와 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셨으면 하네요.


eKOSTA 네. 말씀 감사 드리고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심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